소설리스트

181화 (181/200)

"검은... 안 찾으러 가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처분하려 했는데요, 뭐. 그 주인 말이 다섯 냥도 나가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 제가 손해 본 것은 없지요. 돈도 없이 잘도 퍼먹었다고 주인장 펄펄 뛰던 거 생각하면, 그나마 이빨 빠진 싸구려 검이라도 받아 준 것이 다행이지요."

그러고 보니 옆구리에 찼던 철검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가...

           

                 *           *         *

한중에서 염소아버지의 가족을 찾지 못하자 휘는 다음에 처리해야 할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낙양을 가야 한다면 어차피 [낙양 유벽혜]라는 이름도 알아 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 일단은 아버지들의 일부터... 한가지 한가지...

종숙부에게 들은 대로라면, 석두아버지를 잡아 가뒀다는 임가형이 철혈성 한중분타를 맡고 있다 했었다. 

말이 분타지 한중분타는 철혈성의 외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요시 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곳은 한중의 동문 외곽 오리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동문을 나서려 하자 꾸물꾸물 몰려오는 시커먼 구름이 한바탕 비라도 쏟아 부을 것처럼 태양을 가리고 있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 모든 애타는 농부들의 가슴을 적셔 줄 수 있을 테니 반가워 해야 할 일이지만, 길을 떠나려는 사람들에게는 탐탁치 못한 손님일 뿐이었다.

'그래도 가뭄이니 비는 내려야 겠지...'

비를 맞아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걸어가는 휘의 뒤를 초평우가 휘적휘적 따라간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여전히 두 사람을 한 번씩 쳐다보고...    

안 되겠는지 휘가 물었다.

"초형."

"예, 형님!"

"혹시 말입니다. 면구 파는 곳 아십니까?"

"면구요? 어... 가면이나 뭐 그런 것 파는 곳에서 팔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그런 곳 말입니다."

"음... 팔지 안 팔지는 모르지만, 오만잡것 다 파는 잡화점은 알고 있습니다. 가보시게요?"

초평우의 말에 휘는 즉시 발길을 홱 잡아 돌렸다.

"지금. 갑시다!"

한중성의 남쪽은 온갖 이족(夷族)들이 다 모여 사는, 말 그대로 만향로(萬鄕路)라 불리는 곳이었다. 

사는 사람이 각양각색이다 보니 물건을 파는 장사치들도 별의 별 것을 다 팔고 있었다. 

그 곳에서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이 없었다. 있다면 오직하나, 물건을 팔기 위해서 달려드는 사람들 뿐.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피부가 시커먼 사람부터 하얀 사람들까지 온갖 군상이 다 지나다니니, 두 사람의 인상이 특별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보고는 초평우가 빙그레 웃었다.

"여기는 사천오지에서 몰려 온 사람들, 청해 쪽에서 온 사람들, 그 밖에도 멀리 서역에서 온 사람들까지 별의 별 이족(夷族)들이 다 모여있는 곳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별로 못 봤지 않습니까?"

"관에서 편하게 관리하려고 이 곳에 모아 논 것이지요. 이족들이 이 곳을 나가기 위해선 특별한 통행증이 있어야 합니다."

"통행증?"

"아무래도 군사적 요충지이다보니 간세가 있을까 저어하는 것이지요. 뭐, 요즘에 와서야 관인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지만서도..."

별향교라는 다리를 건너자 이족들의 모습이 더욱 많아졌다. 그리고 길도 더 복잡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초평우가 이끄는 대로 골목 골목을 누비던 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결국은 의아한 표정으로 초평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초형, 아직 멀었습니까? 계속 맴 도는 것 같은데..."

"저.... 그게... 오랜만에 왔더니..."

벌게진 얼굴의 초평우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끝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초평우 대신 길을 안내할 사람들이 곧바로 나타났다. 두 사람을 반기는(?) 말과 함께.

"호오! 이런 험한 길에 여행객이라... 간덩이가 머리통 보다 큰 모양이군."

지저분한 골목길에서 나타난 다섯 명의 장한의 말에 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다, 곧 그들의 말이 자신을 가리킨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휘보다 초평우가 먼저 그들을 반겼다.

"내 간덩이는 머리통보다 작지만 네 놈 간덩이는 머리통보다 클 것 같구나."

초평우는 정말 반가웠다. 이 놈들은 분명 만향로에서 기생하는 건달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충실한 길 안내자가 될 수 있을지도.

초평우가 그들의 말을 비꼬며 한소리 하자, 건달들 중 한쪽에서 삐딱하니 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빼빼한 자가 몸을 세우고는 초평우에게 다가온다.

제법 날이 선듯한 눈빛은 그가 그저 평범한 건달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날카로워 보였다.

"만향로에 들어와서 시비를 걸 정도로 실력이 있다는 건가? 재미있군."

싸늘한 말과 함께 스르륵, 그의 옷소매에서 한자길이의 짧은 단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초평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자신이 비록 이류에도 미치지 못하는 무사라고는 하나, 감히 건달 따위가 자신을 무시하다니.

커다란 도를 잡아가는 초평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건달들도 상대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허리와 등에 매달린 무기들을 꺼내 들었다. 

순식간에 싸늘한 살기가 골목 안을 뒤덮었다.

초평우의 표정도 가볍게 변했다. 

단순한 건달들이라 생각하고는 단칼에 요절을 내 버릴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제법 기운들을 갈무리한 흔적이 보이는 것이다.

그는 문득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만향로에서는 일류고수라 해도 함부로 칼을 빼 들지 마라.-

눈을 돌려 빼빼한 자를 향해 물었다.

"만향로는 삼살귀가 지배하고 있다 들었는데...." 

초평우의 말에 빼빼한 자가 냉랭한 어투로 답했다.

"알고 있다면 함부로 칼자랑 해선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텐데?"

"그대는?"

빼빼한 자가 단검을 입으로 가져가더니 혀로 검신을 핥으며 말했다.

"내가 삼살귀 중 단홍귀다."

그 말에 초평우의 눈이 꿈틀거렸다.

"과연 소문대로인지 알아봐야겠군!"

도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주위를 에워싼 자들이 무기를 쳐들더니 금방이라도 덮쳐 들 듯이 허리를 숙인다.

순간,

"타앗!"

초평우의 입에서 거친 기합소리가 터져 나오고, 커다란 도가 도집을 빠져 나왔다.

휘이잉!

휘둘러지는 도세의 거센 풍압에 둘러싼 자들이 대경하며 뒤로 물러서고, 뒤따라 초평우가 한 걸음 나서며 도를 사선으로 그어 간다.

차창!!

막아가는 도검들이 허공으로 튕겨 나가자, 건달들의 눈에 경악이 떠오르더니 급급히 뒤로 물러선 그들의 안색이 신중하게 굳어졌다.

생각보다 훨씬 강맹한 일도가 그들에게 충격을 던져 준 것이다.

그 때, 단홍귀가 입을 열었다.

"제법이군. 내공은 별 볼일 없어 보이는데 칼질 만큼은 일품이군. 헌데 그런 칼질을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냉정한 판단, 흔들림없는 눈. 

그는 초평우의 도세가 지닌 약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확실히 일반적인 건달이 아니었다.

내공의 유무를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 이상의 실력이 있다는 뜻. 

초평우의 안색이 신중하니 굳어져 갔다.

움켜 쥔 칼이 부르르 떨었다. 오래 끌 수는 없으니 전력을 다해 상대하려는 것이다. 헌데...

"뭣 좀 물읍시다."

느닷없이 휘의 한마디가 장내의 살풍경을 날려 버리며 튀어 나왔다. 

순간, 단홍귀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휘의 위 아래를 훑어 보던 단홍귀가 입술을 꼬며 말문을 열었다.

"...계집 아니었나?"

초평우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웃었다간....

퍽!

단홍귀처럼 맞을 지 모르니까.

일장 밖으로 튕겨 나간 단홍귀가 벌떡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친 것인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뻘겋게 변한 눈두덩에서 몰려 오는 격렬한 통증.

단홍귀는 손에 든 단검을 치켜 올리며 휘를 노려보았다.

"이.... 계집같은 놈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휘가 한 걸음 내딛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곧추세우는 단홍귀의 눈이 경악으로 흡떠졌다. 

이번엔 확실히 느꼈다. 

상대가 다가오는 것을 본 것이다. 그래서 뒤로 물러서려 했다. 

헌데, 미처 발을 땅에서 떼기도 전에 상대의 신형이 환상처럼 몇 개로 갈라지며 어른거리더니, 퍽! 뇌리가 멍하니 흔들려 버렸다. 

퍼억!

동시에 이어진 일격. 처음에 맞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

"크윽! 웩!" 

아랫배가 터질 듯한 고통과 함께 아침에 먹은 우두육이 모두 기어 나올 뻔했다. 

그 후, 놈의 주먹질에 몇 번 더 맞은 것 같다. 

전신이 무기력한 것이... 

주저 앉고만 싶다. 손에 들린 단검조차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단홍귀는 입술을 깨물며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었다.

'내가... 이 딴 놈에게...'

단홍귀가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자 휘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뭐 좀 물어 보자니까?"

고통 이전에 어이가 없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에라이!!'

단홍귀가 자신이 아는, 천하 최고, 최악의 욕설을 뱉어 내기 위해 막 입을 열려 할 때였다.

허여멀건 한, 천년구미호 같은 놈이 손을 척, 든다.

'헙!'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술이 붙어 버렸다. 

그러자 휘가 조용한, 더 없이 편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를 좀 찾으려 하는데..."

단홍귀는 절대 입을 열지 않으려 했다. 헌데... 또 척!

"어디를..."

재빨리 대답했다. 

'이.이런... 내가...'

그의 생각이야 어떻든 휘는 초평우를 돌아봤다.

"물상만가(物商萬家)입니다. 형님!"

존경이 가득한 목소리가 골목을 울리고.

"아시오?"

한마디 물음에 단홍귀의 입이 악물렸다.

'이번에는 절대....'

그러자 휘가 한 걸음 내딛었다. 순간, 큰 소리로. 손까지 들어서...

"쩌어기를 돌아가면....!"

척, 땅에 발을 내딛은 휘는 단홍귀가 가리킨 골목을 바라보았다. 

골목을 돌아가는 곳에 제법 큰 건물의 끄트머리가 보인다. 하지만 어디에고 물상만가라는 표식은 없다. 

휘는 눈살을 찌푸리며 단홍귀를 다시 돌아보았다. 

"헛! 저 건물이.... 물상만가의 건물 끄트머리....요."

옆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네 명의 건달들은 덤벼들 생각은 아예 꿈도 못 꾸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세상에... 삼살귀 중 한사람이라는 단홍귀가 손짓 한 번, 고갯짓 한 번에 꼬리만 강아지가 되다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공포심이 심장을 갉아 대는지 가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진짜... 잘못 걸렸다!'

단홍귀는 죽고 싶었다. 

칠 년간 만향로를 지배해 온 자신이 귀향루의 향이보다 더 계집처럼 생긴 놈의 손에 두어 대 맞았다고 이리도 비굴해 지다니... 

"크흑!"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전신에서 몰려오는 고통은, 마치 개미가 뼈를 갉아 대는 것만 같았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또 묻는다면 또 대답할 지도...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게 있었다. 

심지어는 휘조차, 자신이 흘려 낸 삼령의 기운이 단홍귀의 정신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니...

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덕분에 쉽게 찾았소. 그럼..."

휘가 걸어가자 존경의 염을 담은 눈으로 휘를 바라보던 초평우도 바삐 걸음을 옮겨 뒤따라간다.

남겨진 단홍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물러서 있던 네 명의 건달이 그에게 달려갔다.

"형님!"

"끄으으.... 이 단홍귀가 서너 대 맞았다고 이런 꼴이라니... 내 이 놈들을 가만두면...."

핏물이 배어 나오는 입으로 이를 갈며 일어서던 단홍귀는 옆에서 부축하고 있던 수하건달의 말을 듣고...

"저.... 형님. 서너 대가 아니라... 이십 대도 더 맞았는데요?"

"예, 맞습니다. 순식간에 눈에 보이지 않게 패는데.... 머리에서 발끝까지 안 맞은 데가... 정말 악귀같은 놈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빼빼한 형님을 어디 때릴 데가 있다고... 얼굴은 향이보다 더 이쁘더만..."

끝내...

"끄으으... 어쩐지... 전신이..."

다시 주저 앉아야 했다. 

물상만가라는 편액은 두자 길이의 자그마한 목판에 새겨져 있었다. 어떻게 못 찾았는지 신기할 정도로 두 사람은 그 골목만을 피해 다녔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온갖 물건이 진열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만물상이 따로 없었다. 

서너 사람이 물건을 고르고있다가 두 사람이 들어오자 힐끗 쳐다 본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각자가 자신들이 원하는 물건을 찾는데 정신을 팔려 두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다. 

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곰방대에 연초를 쑤셔 넣고 있던 노인이 힐끔 두 사람을 바라본다. 

유난히 굵은 주름, 가늘면서도 긴 백미, 코의 우측에는 팥알만한 점 하나. 노인은 곰방대를 유등에 갖다 대 불을 붙이고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뭘 찾으시는가? 처음 보는 분들 같은 데."

초평우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칠 년 전쯤에 한 번 들렀었으니 처음 오는 것은 아니우."

"호? 칠 년 전?"

툭툭, 곰방대로 진열대의 모서리를 두어 번 내려친 노인이 몸을 일으키더니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노인을 바라보는 휘의 눈이 반짝였다. 

'잘 갈무리된 내기가 막힘없이 흐른다.'

노인이 잔기침을 하며 물었다.

"쿨룩! 쿨룩! 그래 찾으시는 물건이 무엇인가?"

초평우가 휘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주인이라는 뜻.

휘는 노인에게 다가가 품 속에서 찢어진 면구를 꺼내 보여줬다.

"혹시, 이런 물건 아십니까?"

비록 찢어졌지만 매미날개처럼 얇으면서도 사람의 살결같이 부드러운 면구는, 척 봐도 보통의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헌데 면구를 바라보는 노인의 가느다란 눈이 일순간 번뜩인다. 

휘는 은근히 노인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었기에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아십니까?"

다시 휘가 물었다. 그러자 노인의 입가로 슬며시 웃음이 떠올랐다.

"알긴 아네만... 살려구? 좀 비싼데..."

초평우가 비싸다는 말에 눈을 부릅뜨지만 노인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살려면 따라오게."

그러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안으로 들어간다.

휘는 잠깐 망설이는 듯 하더니 노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초평우는 휘를 따라가며 속삭이듯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해 줬다.

"형님, 이 곳은 이상하게도 만향로의 건달들도 절대 건들 지 않는다고 합니다. 말로는 이 곳 주인이 전대의 고수라는 말도 있고요. 아무튼 조심하셔야 합니다."

휘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나 자신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체를 숨긴 전대고수?'

노인은 건물을 빠져나가더니 뒤채로 들어갔다. 

뒤채로 따라 들어가자 단아한 실내가 보였다. 전면의 어수선했던 건물과 완전 딴판이었다. 

사방에 걸린 품격이 묻어 나는 고서화, 진열장에는 고색 창연한 도자기들.

빙긋 웃은 노인이 묘한 눈빛으로 휘를 보며 말했다.

"다 가짜야."

'그럼 그렇지.' 

초평우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짖자 노인이 또 말한다.

"진짜는 따로 넣어 놨지."   

휘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손님이 여기서 고르면 진짜는 나중에 내준다. 그런 겁니까?" 

"흘흘흘...."

노인이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말하기가 쉽군. 하기사...

조금 기이한 뒷말을 남긴 노인이 다탁 앞에 앉으며 손짓했다.

"앉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