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보기에는 어떻더냐?"
철군명의 눈에 살기가 살짝 감돌았다. 그러나 워낙 짧은 순간이었기에 고개를 돌리던 철운성은 미처 보지를 못했다.
"소자가 보기에는 제법 자질이 있어 보였습니다. 철혈검법을 장으로 변환시켜 소자의 풍혼철장을 막아낼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정도의 기재는 저희 철혈단에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염려스러울 정도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흠? 철혈검법으로 풍혼철장을?"
철운성의 말투에 떠오른 감정은 가벼운 흥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흑의인은 철운성의 표정에 단순한 흥미만이 떠오르자 더 이상 진조여휘라는 아이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아이에 대해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같군. 재미있는 일이야. 재미있는 일...'
적어도 신마천궁의 삼마령주 중 흑마령주이자 철혈성과의 연합을 위해 와 있는 무사들의 총 책임자인 자신의 눈에, 그 아이의 자질은 결코 철혈성의 소성주이자 신마천궁주의 셋째제자가 된 철군명에 비해서 못하지 않게 보인 것이다.
'소궁주를 위해서라도 그 아이와 철군명이 다투도록 놔두어야 겠어. 후후후...'
* * *
어느덧 상무원의 정원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앙상하던 가지에도 연두 빛 새싹들이 움터 나오고, 화사한 봄날을 기다리는 온갖 봄꽃들이 봉오리를 맺기 시작했다.
더 이상 불청객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기득염도, 철군명도...
가끔씩 종자정과 강인엽이 와서 고봉천과 담소를 나누다 갈 뿐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득달같이 찾아 온 종자정은 분에 못 이겨 -왜 멍청이처럼 가만 있었소!-라며 소리쳤었다. 그러자 사부님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셨었다. 그러면서 마지못해 한마디 하셨다.
-너도 장가가고 어린자식 있어 봐라. 네 성질대로 할 수 있나.-
-지금 노총각이라고 약 올리시는 거유?-
-에그... 내가 팔 하나 버리고 다 살았으니 내가 이득을 봐도 많이 본 것 아니냐?-
-그럼 도망이라도...-
-자식들하고 마누라 놔두고? 나 혼자? 너라면 그러겠냐?-
그 후로는 그 일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 한다. 그래도 불만은 여전한지 입만 삐죽거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팔이 나아가면서부터는 또 다른 불만을 얘기했다.
-이 곳에 계속 있을 이유가 뭐요? 죽이려 지랄 하는 놈들이 많은데...-
그러자 사부님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여기서 나간다면... 저들은 나를 정말 죽이려 할 게야. 나야 그렇다지만 연연이는... 부인은... 휘아는...-
연화문과 염부경은 그 사건이후 성에서 축출되었다고 한다.
무사들의 동요를 염려해 죽이지는 않고 무공을 폐한 채 쫓아내 버리기만 했다는 것이다.
또한 기득염은 스스로 성을 나가 버렸다. 그리고 소식이 없다 한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고봉천의 상처는 두 달이 지나자 어느 정도 완치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무엇을 할 정도는 되지 않았지만 가볍게 산책을 하며 휘아와 연연의 마음을 달래려 할 정도는 되었다.
그 날 이후, 휘아의 얼굴에서 밝은 웃음이 깊숙한 내면의 세계로 침잠되어 들어가 버렸다.
오직 수련, 수련만 할 뿐이었다. 너무 심하게 몸을 혹사시키는 것 같아 연연이 불안 해 할 정도였다.
어느 정돈지는 모르겠지만 전신을 흐르는 내기가 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천양의 기운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무럭무럭 커나가고, 기해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지음의 기운도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러자 두가지 극성의 기운을 조절하는 풍령의 기운도 덩달아서 함께 커지고 있었으니, 이제는 삼령의 기운을 균형있게 이끌고 간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성질이 부드러운 무연관천심법을 중점적으로 수련하면서 삼령의 기운을 달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혈련삼화나 광섬사결은 연무장에서 드러내 놓고 수련을 할 수가 없었기에 방안에서만 수련해 왔었다.
헌데, 그것이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내력을 운용하며 변화의 맥을 찾아야 하는데, 방에서 내력을 운용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정좌를 하고 앉아 명상에 잠겨 있던 휘아의 눈이 뜨인 것은, 춘삼월 봄날 태양이 중천에 떠오른 미시 초였다.
‘아무래도 이제 사부님께 결심을 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무연관천심법에 따라 휘돌던 내력을 거두어 들인 휘아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밖에는 따사로운 햇빛이 정원에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정원에서 피어오르는 봄꽂들은 은은한 향기를 품어 내고 있었다.
햇살 속에 발을 내딛었다.
싱그러운 꽃향기가 가득한 정원을 가로질러 사부님의 방으로 가려 할 때였다.
정원의 한쪽 구석에서 나무를 손질하고 있는 구노인이 보였다.
잠시 멈칫거리던 휘아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구노인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혼잣말을 하는 듯한 구노인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어이구! 그 놈들 이쁘게도 핀다. 그런데 말이다. 휘아야.... 이 꽃을 내가 피워 냈겠느냐, 아니면 스스로 피었겠느냐?”
또 다시 멈칫 발걸음이 흐트러졌다.
“네가 가진 꽃은 네가 피워 내느냐, 아니면 스스로 피어나더냐?”
억지로 세 걸음을 더 옮기다 끝내 우뚝 서 버렸다.
“나는 그냥 꽃들이 잘 필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뿐이다만, 너는 어찌하고 있느냐?”
쾅!!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갔다.
“저는...”
나는 어찌 했던가.
나는 꽃을 피우기 위해 무엇을 했던가.
혹시 억지로 꽃을 피우려 하지는 않았던가?
구노인이 다시 말한다.
“네가 그려 내고자 하던 선을 보았다.”
광섬사결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헌데 언제 보았을까?.
“네 방을 지나가다 우연히 보았으니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자신을 보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마음을 읽고 있다. 대체...
“헌데 말이다. 그 선은 본래 선이더냐, 아니면 그걸 그린 사람이 다른 것을 그렸는데 선이 된 것이더냐?”
‘선... 선이라고...?‘
그걸 그린 무명인은 선을 그렸던 걸일까? 아니다. 아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는... 단순히 빠름을 그렸을 뿐이다. 빠름을...
그것이 수백 개의 선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선은 형일 뿐이고, 마음은...
번쩍!! 우르르콰광!!
하얗게 빈 뇌리 속에 벼락이 내리 꽂혔다.
벼락 맞은 버드나무가 태풍에 흔들리듯 전신이 떨려 온다.
움켜쥔 두 손이 사시나무 떨 듯 떨리지만 진정을 할 수가 없다.
구노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여전히 나뭇가지를 쳐간다. 꽃나무의 썩어 가는 부분이 힘없이 떨어진다. 여전히, 여전히 천천히...
이를 악물고 물어 봤다. 오래 전부터 궁금했던 한 가지를.
“그렇게...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왜 그 때는... 가만히 계셨습니까. 예? 왜! 왜!!”
꽃나무 가지를 쳐가던 구 노인의 손이 우뚝 멈추었다.
잔주름 가득한 노안이 휘아를 향해 돌려졌다.
“허허허... 그게 그리도 원망스럽더냐?”
휘아는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많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악다구니라도 쓰고 싶었는데,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내 나이도 이제 구십이다... 나는 삼십 년 전에 한가지 맹서를 한 사람에게 했단다. 헌데.... 그 날처럼... 나의 맹서가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단다. 정말 미안하구나.”
자신의 발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모르고 사부님의 방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일이 더 진행 됐더라면... 나는 나의 맹서를 깨어야만 했을 것이다.-
방안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 때까지도 구노인의 목소리가 귓속을 울리고 있었다.
-그 흑의인이 너를 노렸다면... 말이다. 맹서를 깨고 손을 썼을 것이다. 그자는 네 사부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거든.-
“사부님, 휘압니다.”
싸한 약냄새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부님의 상처는 거의 나았지만 아직도 약은 계속 잡숴야만 했다.
“좀 어떠세요?”
“허허허... 이제 괜찮다. 보면 모르겠느냐? 봐라!”
고봉천이 왼손을 들더니 알통을 보이듯이 구부렸다. 어떠냐는 듯.
“그럼... 말씀 드려도 되겠군요.”
“응? 뭘?”
휘아의 눈과 고봉천의 눈이 마주쳤다.
“무저동에 들어가겠습니다.”
“무저동?”
“그 곳에 혼자 다닐 수 있도록 나름대로 방도를 만들어 놨습니다. 아무래도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무공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들의 눈에 뜨이지 않아야 하거든요. 헌데, 상무원이나 철혈성의 어느 곳도 그럴 만한 데가 없어요.”
“그래서 무저동에 들어가 무공을 익히겠다?”
“예.”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예?”
고봉천이 빙그레 웃었다. 오히려 각오를 단단히 다졌던 휘아가 놀랄 정도의 반응이었다.
“나도 어떻게 할 건지 오래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더구나. 헌데 말이다... 네가 떡! 하니 방법을 가져 왔으니 내가 오히려 너를 무저동으로 밀어 넣어야 할 판이야! 하하하!!!”
그런데 왜... 눈에는 안타까운 빛이 서려 있을까.
아마 자신이 직접 가르치지 못한다는 것에 미안한 감이 들었나 보다.
“얼마나 있을 것이냐? 자주 나오겠지?”
“물론이죠. 사부님하고 가족들이 있는데...”
“그래? 허허허... 일단 무저동에 들면 음식은 연연을 시켜서 넣어 주마. 가만! 바구니를 잘랐다며? 그럼 음식을 어떻게 넣지?”
“간단합니다. 던.져.주.세.요.”
“그런데 연연이 가만 있을까?”
“....사부님이 알아서 막아 주세요...”
".....끙. 왜 팔이 갑자기 아파진다냐...."
삼령....
어둠만이 존재하는 곳, 무저동도 이제는 절망의 대지가 아니었다.
아니 희망이 움트는 어머니의 품속이 되어 있었다.
무저동 호수동굴의 물이 유입되는 곳에 앉아 무아의 상태를 즐기는 휘의 마음도 무저동의 고요함처럼 평온하기만 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온 몸으로 차가운 감촉을 음미하는 휘의 얼굴에 수면만큼이나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미소 띤 휘의 손이 쉬지 않고 물결을 따라 움직였다.
잔잔한 것 같으면서도 수면 아래로 미미하게 흐르는 물살은 어느 한 방향 보다는 전체적으로 넓게 흐르고 있다. 그 모든 물살이 그의 친구와도 같았다. 보듬고, 쓰다듬고.... 그러다 보면 한두 시진이 훌쩍 지나간다.
그가 지금처럼 호수동굴의 물 속에서 물결과 친구가 되어 지낸 것은 본래부터 그러고자해서 그렇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저동에 들어 온지 이년이 되었을 때였다.
천양의 법에서 파생된 열기가 점점 커지자 지음의 기운만으로는 강렬한 열기를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는 풍령의 기운으로도 조절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휘는 천양의 법을 수련하는 것을 멈추어야만 했다.
자칫 균형을 이루지 못한 기운이 한쪽으로 폭주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하는 수없이 무연관천심법만을 이용해서 혈련삼화와 광섬사결을 익혀야 했다. 하지만 위력은 아무래도 삼령의 법을 운용하며 펼치는 것만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삼령의 법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천양의 기운이 너무 강해서 지음의 기운이 막지 못한다면 지음의 기운을 키우면 되지 않을까?'
생각은 단순했다. 그러나 방법이 문제였다.
일단은 천양의 기운을 끌어 올려 지음의 기운을 두드려 보기로 했다.
처음에 한두 번은 그럭저럭 생각대로 되는 듯 했다.
자신감이 생기자 조금씩 천양의 기운을 강하게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일단 천양의 기운을 끌어 올리고 기해혈속에 잠들어 있는, 현재 움직일 수 있는 것보다 몇 배나 되는, 그 거대한 지음의 기운을 억지로 끌어내려 했었다.
하지만 기해혈속에 있는 지음의 기운은 어느 정도 천양의 기운이 식으면 바로 되돌아가 버렸다. 그러면 천양의 기운이 또다시 요동을 친다. 계속 반복되는 상황...
본래 풍령의 기운은 두 기운이 통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며 서로의 기운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조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천양의 기운이 너무 강해지자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는지 점점 저울추가 천양의 기운 쪽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침내 천양의 기운이 자신의 앞길을 막는 지음의 기운을 밀어내고 폭주를 하고 말았다.
"우욱!!"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휘의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다.
안간힘을 쓰며 지음의 기운을 일으키려 하지만, 한 번 억눌러진 기운은 쉽게 기해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갈 수록 거세지는 열기.
전신이 시뻘겋게 달아 오르고,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친 채 열기를 토해낸다.
손을 뻗어 기운을 방출 해 봤다.
핏빛 붉은 노을이 손가락 끝에서 환하게 피어 오른다.
허공 가득 뜨거운 열기가 회오리 칠 듯 휘몰아친다.
마치 용로에 달구어 진 쇳물이 척추를 타고 머리 속으로 치솟아 올라가는 것만 같다.
극렬한 고통, 입천장을 뚫고 머리 꼭대기로 불길이 솟구치는 처절한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너무 성급했다!'
욕심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재로 태워 버리는 것만 같았다.
육신도, 정신도, 천양의 열기에 잡아 먹히고, 혼백마저 비명을 지르기 직전이었다.
고오오....
극한 상황!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암울함!
화아악!!
허름한 옷이 불길에 휩싸이더니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날린다.
'끝...인...가...? 아버지...! 사부님....!'
휘가 그렇게 정신을 잃어 가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전해지는 아랫배 쪽에서 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강렬한 감각.
'아!!'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기해 속에 갇힌 채 나올 길을 찾지 못하던 지음의 기운이 송곳이 되어 날카롭게 솟구치고 있었다.
천양의 기운이 결국은 기해마저 점령하려 하자, 참지 못한 지음의 기운이 격렬하게 반항을 하는 것이다.
천운이라면 천운이었다. 정신이 완전히 소멸되기 전에 지음의 기운이 움직였다는 것은.
그 충격으로 뇌리의 한 쪽이 억지로 정신을 일깨우고 있었다.
‘정신차려라! 휘야!! 정신차려!!!’
그러나... 그마저도 일순간일 뿐이었다.
심장까지 올라오던 기운이 주춤거리고 더 이상의 전진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도와줘야 한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지음의 기운을 도와줘야 한다!
그것만이 살 길이다! 헌데 어떻게?
찰나, 휘의 머리 속으로 번개가 스치며 지나간다.
'호수동굴!!'
화르르.....
불꽃처럼 타오르던 휘의 몸이 한줄기 불화살이 되어 날아간다.
방으로 뻗치는 불꽃이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쿠궁!
쏘아져 가던 신형이 호수동굴로 들어가는 입구에 부딪쳤다.
번쩍, 머리에 가해진 충격이 또 다시 정신을 일깨웠다.
벌떡 일어선 휘가 머뭇거릴 사이도 없이 동굴 안으로 돌진한다.
십여장의 거리, 광란하는 천양의 기운은 거대한 불줄기, 그 자체로 거대한 힘이었다.
평소에는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십여 장의 거리를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풍덩!! 치이이익.....
붉은 불덩이가 호수동굴의 한 가운데에 떨어져 내렸다.
뿌연 안개가 동굴을 메우며 피어오르자, 순식간에 동굴 안은 안개의 동굴이 되어버렸다.
뭣 모르고 물가를 서성이던 동굴벌레들이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안개 속을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벌레들의 몸부림이 광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일각... 이각.... 한시진...
사위가 조용해졌다. 기어 다니는 벌레들의 속삭임조차 사라져 버렸다. 오직 들리는 소리는...
퐁! 퐁!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