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9화 (169/200)

지나가던 바람이 일그러진다.

파앗!

휘아의 일권에 마침 그의 앞으로 떨어지던 낙엽이 미세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변화가 열 여섯 번 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후우... 한계인가?'

적어도 일격에 서른 두 번의 변화가 일어나야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하지만 아직 내력이 딸리는데다 수련의 정도가 못 미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용히 숨을 고르는 휘아의 옆으로 연연이 쪼르르 달려 왔다.

"오빠! 그게 천붕권이야?"

"응."

"우와! 낙엽이 가루가 됐어. 분명 연연이 볼 때는 조금 떨어져 있었던 것 같았는데."

세치 정도 떨어져 있었다. 언뜻 봐서는 알 수 없는 거리. 헌데 연연은 그걸 보았단다. 대단한 눈썰미였다.

연연의 자질은 사부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대단했다. 그 중 제일은 역시 눈썰미, 그리고... 눈치였다.

요즘에는 자신이 가르칠 단계가 지났다는 것을 눈치로 알고 시무룩해져 있었다. 그래서 휘아는 될 수 있으면 연연 앞에서는 화려한 초식들을 펼친다. 즐겁게 해주기 위해.

어느덧 겨울도 막바지를 향해 치달리고 있었다.

휘아의 무공도 조금씩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철혈십팔검과 유성십삼검은 이제 내력의 수발이 자유로워 지고 있었다.

천붕신권은 워낙 많은 내력을 요구하는지라 겨우 열 여섯 번의 변화만을 펼칠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정도를 익히는데도 휘아는 쉬지 않고 수련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혈련삼화는 그나마 약간의 성취가 있었지만, 광섬사결은 아직도 그 기초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두 가지 무공은 아직 연연에게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었다.

처음부터 말했다면 몰라도, 지금 보여 주었다간 아마 삐칠 것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빠가 나를 속였어? 이럴 수가!!!' 

그러면 큰일이니까. 

연연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오보천환이었다. 비월신영으로 허공에 몸을 띄우고 오보천환을 펼치면 연연의 감탄성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우와! 오빠 춤 잘 춘다!"남은 거리는 삼장. 

내려서자마자 주욱, 나아가는 휘의 신형이 춤을 추듯이 흔들렸다.

순간, 허공에는 춤추는 다섯 개의 그림자가 환영으로 남겨지고, 몸은 어느새 무저동의 정자 안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누군가가 봤다면 유령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광경이었다.

그것은 전력을 다해 펼친 오보천환의 결과였다.

"후... 다행히 성공했군."

안도의 숨을 내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디에서고 인기척은 느낄 수가 없었다.

휘아의 눈이 천천히 무저동의 안쪽을 향했다. 가늘게 떨리는 눈이 그의 격동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부지.... 휘아 왔어. 오랜 만이지?"

웅얼거리는 입에서는 진한 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참동안 무저동 안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물레 쪽으로 다가갔다.

물레에 매달린 바구니가 보였다.

일단 바구니를 따로 떼어놓고 밧줄을 무저동 안으로 넣은 다음 물레를 돌렸다.

한참을 돌리자 물레에 감긴 밧줄에서 표식이 보였다.

"음? 혹시...?"

얼마나 돌려야 무저동의 바닥에 닿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밧줄이 다 풀릴 때까지 돌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표식이 보인 것이다.

분명 필요에 의한 표식일 것이다. 

물레를 돌리는 사람이 필요할만한 일은? 바구니가 바닥에 닿았다는 것, 그 이외에는 필요할 일이 없을 터였다.

표식이 있는 곳이 물레에서 풀리자 돌리는 것을 멈추고 고리를 걸어 고정 시켰다.

그리고 무저동 쪽으로 다가갔다.

밧줄을 한두 번 잡아 당겨보던 휘아의 신형이 밧줄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주르륵, 십장... 이십 장... 

호로병의 주둥이 같던 곳이 끝나면서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휘아는 일단 그 곳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밑에까지 내려가고 싶었지만, 허공에 매달린 채 백장이 넘는 곳을 내려간다는 것은 무리가 가는 일이었다. 

자칫 올라오지 못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설령 올라올 수 있다 해도,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것은 스스로 불안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자신이 사라지면 사부님이 찾아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은 굳이 무리가 가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워 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생각대로만 된다면, 나중에 언제든 찾아 올 수 있으니까. 

그래도 가슴 한구석이 떠오르는 추억으로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올라가면서 주위를 살펴 보았다. 움푹 파인 곳도 있고 툭 튀어 나온 곳도 있었다. 

처음에는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력을 눈에 집중하자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구에서 십여장 아래쪽 되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움푹 파였으면서도 그럭저럭 발을 디딜 만한 곳이 보인다.

줄을 흔들어 가까이 가 보았다. 넓이는 그리 넓지 않지만 움푹 파인 깊이가 넉자는 될 듯 싶었다. 

줄을 더 흔들어 그네를 타듯이 해서 그 곳에 내려섰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십 여장 정도 될 듯하다. 

잠시 좌우를 살펴 보던 눈이 반짝였다.

'됐다. 이 곳으로 하자.'

무엇을 하자는 것일까?

휘아는 옆구리에서 한자 반 길이의 쇠막대 하나를 꺼내고는 그것을 바위 틈 여기저기에 꽂아 봤다. 

그렇게 몇 군데를 꽂아 보더니 마침내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 했는가 보다.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바위 틈바구니에 쇠막대를 박고 그 곳에 밧줄을 묶었다.

밧줄이 굵어 조금 힘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밧줄을 다 묶은 다음 품속에서 자그마한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점 망설임 없이 밧줄을 끊어 버렸다. 

툭! 

이제 밧줄은 위와 아래로 분리가 되어 버렸다. 세상이 두 개로 갈라졌다. 

휘아는 흔들리는 눈으로 잠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아부지. 휘아도 내려가고 싶은데 지금은 힘들어. 대신 길은 만들어 놨으니까, 자주 올게!"  

아래를 향해 소리치고는 건들거리는 위쪽의 밧줄을 잡았을 때였다.

"아 참!"

문득 위로 올라가려던 휘아의 머리 속으로 잊고 있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이 기회에 그 곳을 가 봐야겠다."

위쪽의 밧줄을 놓고, 자신이 묶어 놓은 밧줄을 잡았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 곳.... 탈출할 때 보았던, 가로로 찢어진 동굴이 생각난 것이다.  

벽을 밟고 내려가는 것은 허공에 매달려 내려가는 것보다 더 수월하게 느껴졌다. 

십 여장을 내려가자 동굴이 넓어지면서 발을 디딜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는 매달려서 내려가야만 한다.

계속 십 여장을 더 내려가자 가로로 찢어진 동굴이 보였다.

이장의 거리. 

다시 그네를 타듯이 밧줄을 흔들었다. 그리고 탄력을 이용해 동굴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마치 악마의 입처럼 길게 찢어진 동굴의 어둠이 한 입에 휘아를 삼켜 버렸다.

어둠, 이 곳에 살 때 같으면 그다지 방해가 될 것도 없었던 어둠이, 지금은 벽이 되어 자신의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었다.

어느새 바깥세상에 익숙해진 자신의 눈이라니...

내 육체가 간사해진 것인가. 아니면 당연한 자연의 섭리인가.

어둠의 벽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자, 희미하던 동굴의 내부가 점점 더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동굴은 생각보다 깊어 보였다. 

천천히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천장은 안으로 갈 수록 낮아지고 있었다. 

오장 여를 들어가자 다시 천장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주위에 사람의 흔적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부서진 암석만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십여장을 들어갔다. 

단순한 내력만으로는 전진하기가 힘들 정도로 완전한 어둠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신주령을 암송하며 남아 있는 기운을 모두 끌어 올렸다. 

신주령의 효능 중 하나가 감각의 확대가 아니었던가.

전신에서 삼령의 법에 따라 기운들이 일어났다. 심지어는 희미한 풍령의 기운까지.

그러자 점차 눈앞의 어둠이 뒤로 밀려 가고, 동굴의 내부가 시선에 잡히기 시작했다.

"후... 다행이다. 하마터면 그냥 나가야 할 뻔 했구나."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사방을 살펴 보았다. 여전히 별다른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수북한 먼지만이 여기저기 쌓여 있을 뿐이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휘아의 마음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냥 나가야... 응?"

걸음을 옮기면서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동굴이 옆으로 휘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휘어진 그 곳이 동굴의 끝처럼 보였다. 헌데...

"헉!!"

동굴을 돌아가던 휘아의 입에서 느닷없는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맙소사!! 대체 저것이...!!"

그 곳은 벽이었다. 휘어지다가 끝나는 동굴의 끄트머리는 벽으로 끝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벽에는... 한 사람이... 백골이 반쯤 틀어박혀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사람의 흔적이 석벽에 박힌 백골이라니...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가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가까이 가 보았다.

백골은 석벽에 허리까지 박혀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 대체 어떻게 하면 사람이 저렇게 박힐 수 있단 말인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구경만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일단 석벽의 아래를 살펴 보았다.

부서진 뼈와 피로 보이는 시커먼 자국 이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부서져 나온 돌조각도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다. 

사람이 박힐 정도면 돌들이 튀어도 적지 않은 양이 튀어야 할 것이다. 헌데 손톱만한 조각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사람을 밀가루 반죽에 꽂아 버린 것처럼.

주위에서 아무 것도 발견을 하지 못하자 휘아는 석벽에 박힌 백골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백골은 석벽에 덜렁거리며 꽂혀 있었다. 살이 붙어 있을 때라면 빼내기가 쉽지 않았을 테지만, 뼈만 남은 지금은 그저 들어 내기만하면 되었다.

백골을 들어내는 휘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아무리 이름없는 백골일 뿐이지만 그래도 사람의 시신이었던 것이다.

골반뼈로 보이는 넓적한 뼈를 들어내자 길다란 다리뼈가 보였다.

하나하나 마저 남은 뼈들을 들어내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곳에는 마른 핏자국이 시커멓게 남은 한 벌의 낡은 장삼만이 걸쳐져 있을 뿐이었다.  

천천히 장삼을 빼내어 보았다. 

미처 빼내지 못한 무릎 아래쪽의 잔뼈가 딸려 나왔다. 

조심스럽게 뼈가 담긴 장삼을 빼내어 장삼의 안쪽 여기저기를 살펴 보았다. 

역시나 아무 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흔히 지니고 다니는 무기나 은자같은 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직 찢어지고 피 묻은 낡은 장삼과 뼈다귀뿐이었다.

살펴보던 휘아가 허탈해질 정도였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런 곳에서 죽다니..."

무저동에서 죽은 사람을 그냥 놔두기도 그랬다. 일단 한쪽에 돌무덤이라도 만들어 주는 게 나을 듯 싶었다.

장삼에 다시 뼈를 주워 담고, 묶기 위해 소매를 집어 들었다. 

소매에는 많은 양의 핏자국이 말라 붙어 있었다. 

그 때였다.

눈살을 찌푸리며 소매를 잡아 당기던 휘아의 손이 우뚝 멈췄다.

소매의 접혀 있던 부위 안쪽이 그의 눈길을 잡아 당긴 것이다.

접힌 부위를 펴 보았다. 글씨였다. 피로 내갈겨 쓴 글씨. 

휘아는 싸매려던 장삼을 조심스럽게 펴 보았다.

[마침내 마백(魔魄)이.... 현세...]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백? 삼악 중 하나의 이름이 마백이라 했는데....'

세상의 악을 쥐고 흔든다는 전설 속의 삼악, 그 중 하나의 이름, 그것이 마백이라 했었다. 삼령문의 존재 이유가 바로 삼악 때문이라 했었다.

머리 속이 멍해질 지경이었다. 지금은 자기 방의 한쪽 구석에 숨겨져 있는, 도사할배가 남긴 천에 쓰여 있던 이름을 이런 곳에서 볼 줄이야.

[흔적을 보고 찾아 올 삼령의 제자여... 신주를 찾아.... 그들을... 놈들에게 쫓기던 중, 세 곳에... 오직 신주령만이...] 

눈이 놀람으로 굳어졌다. 

글자는 몇 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내용만큼은 휘아로 하여금 그 어떤 다른 생각도 못하게 할만큼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설마? 이 분이 지양선인?!'

맙소사! 뼈만 남은 채 석벽에 박힌 사람이 삼령문의 삼십 삼대문주 지양선인이란 말인가?

그럼 삼신주는?

쓰여진 글을 천천히 음미해봤다. 비록 두서가 없는데다 띄엄띄엄 흘려 쓴 글씨였지만 이해하는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마백이 나타났다.-

-그들에게 쫓기다가 세 곳에 삼신주를 숨겼다.-

-신주령만이 삼신주를 찾을 수 있는 열쇠다.-

대충 그런 내용 같았다.

지양선인은 삼령문의 제자가 자신을 찾을 수 있게 삼령문인만이 알 수 있는 흔적을 남겼었다.

도사할배는 그 흔적을 보고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무저동에 들어온 것이다. 헌데 어이없게도 이 곳에는 삼신주 자체가 없다. 

참으로 허망한 일이었다. 

그나마 그 위치를 알 수 있는 단서라도 찾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럼 왜, 단서를 밖에다 남기지 못했지?

당연히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당시 마백에 쫓기던 지양선인의 급박한 사정을 그가 어찌 알까. 

"후우..."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삼신주를 찾는답시고 얼마나 동굴을 뒤지고 다녔던가. 

자신은 그 덕분에 광량이 남긴 것을 얻기라도 했지만... 도사할배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쓸쓸히 죽어가지를 않았는가 말이다.  

백골을 바라보자 온갖 상념이 떠 올랐다.

고개를 휘저어 상념을 털어내고 일단 소매를 묶었다.

'어떡하지?'

어쨌든 자신이 도사할배를 스승처럼 생각하기로 한 이상 지양선인의 유체로 보이는 백골을 이 곳에 놔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무저동으로 내려갈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이 곳에 석분을 쌓아 놓자. 그리고 나중에 도사할배 옆에다 묻어 드려야겠다.'

입구 쪽에 있던 돌을 주어다 백골을 덮었다. 그냥 놔둘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형식이나마 갖춰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돌을 가져다 백골을 덮을 때였다.

"웃!"

휘아의 입에서 가벼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손을 바라보았다. 피가 배어 나온다. 마치 예리한 칼날에 베인 것같은 상처가 손바닥에 나 있었다.

결코 돌의 모서리 따위로 인해 생긴 상처는 아니었다.

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엇?"

두 주먹을 합친 것보다 조금 커 보이는 돌의 한 쪽에 무언가가 박혀 있었다. 

품속에서 소도를 꺼내 박혀 있는 물체를 끄집어내 보았다.

두치 길이에 양끝이 날카로운 자그마한 쇠붙이였다. 

그 중간 부위에는 귀면이 새겨져 있었고, 입 부분에는 하나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대체 뭔데 이리 날카롭지?’

차가운 느낌의 쇠붙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귀면, 그것을 바라보는 휘아의 등줄기로 한줄기 소름이 훑어 올라갔다.

조심스럽게 날카로운 쇠붙이를 품속에 넣고 하던 일을 마무리 지었다. 다행히 쇠붙이에 독은 없었는지 피가 멈추고 나자 조금 쓰라리기만 할뿐 별 이상은 없었다.

잠시 후, 휘아는 대충 완성된 돌무덤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그러고는 발길을 동굴 밖으로 향했다.

아련한 눈동자가 어둠에 잠긴 아래쪽을 내려다 본다. 

망설여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또한 어쩔 수 없기도 했다.

마음을 다잡은 휘아가 밧줄을 잡고 무저동을 빠져 나온 것은, 무저동에 들어간지 꼬박 한시진이 흐른 다음이었다.  

밖에는 아직도 함박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숲을 하얗게 뒤덮은 눈이 휘아의 마음도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 보던 휘아가 물레를 돌려 남아 있는 밧줄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손을 들더니 물레의 이음새를 지그시 눌러, 표시 나지 않게 몇 군데 나무틀을 부숴 버렸다.

누가 쓰지도 않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는 않지만, 앞으로 물레를 이용하려 한다면 물레 자체를 새로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휘아의 입가로 하얀 웃음이 걸렸다.

오직 자신만이 아는 하나의 비밀이 만들어졌다. 

이번 일이 어떤 도움이 될 지는 자신도 모른다. 다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찾아 올 수있는 장소가 하나 생겼다는 것이 위안이 될 뿐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밖의 상황을 걱정하지 않고 무저동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일단은 이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고개를 돌려 무저동의 저 깊은 안쪽을 바라보았다. 

"아부지, 휘아 간다. 나중에 자주 올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신형이 둥실 떠올랐다.

주욱 나아가던 신형이 허공에 환영을 만들며 눈 쌓인 밧줄 위를 미끄러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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