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200)

휘아는 자신이 얻은 괴책자의 선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은 피한 채 사부님께 말씀을 드렸다. 혹시나 선입견으로 인해서 자신이 본 것 외의 것을 보지 못할까 봐 그렇게 한 것이었다.

다음날, 휘아와 함께 철혈무각을 들른 고봉천은 휘가 건네준 괴책자를 자세히 살펴 보더니, 돌아오자마자 휘아를 불러 마주 앉았다.

고봉천은 곤혹한 표정으로 휘를 바라보았다.

"음... 나로선 그것이 뜻하는 바를 정확히 알지 못하겠구나."

사부님은 자신이 봤던 것조차 보지 못한 듯하다. 

조심스럽게 자신이 봤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해서 제가 볼 때는 그것이 쾌에 대한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무엇으로, 어떻게 펼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제자의 성취가 낮아서..."

고봉천은 제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반쯤 감았다. 

휘아가 보았다는 책자는 자신도 오래 전에 보았던 책자다. 물론 안의 내용까지. 다만 보고 바로 덮었을 뿐이다. 미친 자가 남겨 놓은 거라 생각했기에. 

그리고 오늘, 다시 한 번 세밀히 살펴 보았다. 휘아의 말을 듣고. 

그래도 알 수가 없었다. 

헌데 어린 휘아는 그 속에서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다. 운이든, 실력이든.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는 아이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은 휘아의 미래가 어디까지 갈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무공을 배우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비기를 누구에게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무공은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사부와 제자 사이이기에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관계는 된다 하지만,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즐겁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요즘 세상에 몇이나 될까.

문득 고봉천은 생각을 해 봤다. 

자신은 자신이 얻은 것을 사부께 말씀 드렸던가? 안 드렸다.

사형은 자신이 얻은 것을 사부나 자신에게 말했던가? 안 했다.

웃음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앞에 앉아 있는 어린 휘아만도 못했던 거 같다. 알량한 무공을 무슨 천하제일의 무공이라도 되는 양 혼자서 익히기에 급급했었다. 어린 휘아도 사부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있거늘. 

하지만 어찌 보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 자신을 감추는 것도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봉천은 웃음 띤 얼굴로 휘아를 바라보았다.

"휘아야."

"예. 사부님."

"아무래도 그것은 너만을 위한 무공인 것 같구나. 허허허. 오랫동안 아무도 보지 못했던 것을 네가 본 것도 그렇고, 보고도 몰랐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사부 역시 너에게 듣고도 모르겠구나. 허니 너는 그 무공을 너만의 무공으로 갈고 닦도록 하거라."

"예. 사부님. 하지만 제자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사부님께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으면 합니다. 제자가 스스로 깨닫기에는 너무 아는 게 없거든요."

"하하하!! 당연하지 않느냐? 내가 너의 사부인데 말이다."

사부의 대소를 듣으며 휘아가 나직이 말을 꺼냈다.

"저... 사부님."

"음."

"며칠 전 사백님의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휘아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만 있던 고봉천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저는... 그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저만 건들 지 않는다면 요."

"응? 하하하! 휘아야."

"예. 사부님."

"물론 그 생각도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허나 말이다. 네가 나를 사부라 부르고 성주를 사백이라 부르는 이상은, 일단 그들을 사형으로서 대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네가 커서 언젠가 너만의 길을 갈 때가 되면 그 때는 네 마음대로 하거라. 나는 네가 철혈성이라는 틀에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휘아는, 창천에 날개를 펼친 고고한 독응(獨鷹)조차 아래로 내려다 볼 정도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

고개가 수그려졌다. 

사부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언젠가는 철혈성을 향해 검을 들이댈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저런 말씀을 하시는 거다.  

"아무리 그렇게 된다고 해도... 사부님은 사부님이에요."

"허허허... 고맙구나. 그 말만으로도 나는 만족하단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휘아가 가는 길에 불을 밝혀 주는 정도일 뿐이다. 고봉천은 그것이 안타까웠다. 

유폐되어 있는 동안에 좀 더 열심히 무공에 대해서 신경을 썼더라면, 보다 더 멀리 빛을 비추어 줄 수 있을 터인데.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은... 이거 아무래도 내일부터는 나도 좀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듯싶구나.'

                              *              *                 *

괴책자의 무공을 광섬사결(光閃四訣)이라고 이름 붙였다. 처음에는 광무사섬(狂武四閃)이라 부르려다 너무 거창한 것 같아 바꾼 것이었다. 사실 광섬사결도 좀 거창하게 들리긴 하지만...

하루 중 잠을 자는 두 시진을 빼고, 열 시진 중 네 시진을 광섬사결과 혈련삼화를 익히는데 주력했다. 

두 가지 무공은 완전히 극과 극을 달리지만, 번갈아 참오해도 이상하게 머리 속에서 섞이지가 않았다. 오히려 속에 숨은 변화가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사부님께선 상생상극 하다보니, 느림 속에서 빠름이 잘 느껴지고, 빠름 속에서 느림이 잘 느껴지면서 서로를 보완하는 것이 아닌가 하셨다.

그러면서 깊이 참오하다 보면 언젠가는 둘이 하나가 될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셨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머리 속에서 맴도는 변화들이 손 끝에서는 잘 표현이 안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이 지나면, 한시진은 철혈무각을 찾아가 이것 저것을 살펴보고, 두시진은 사부님의 무공인 무연관천심공을 운기하며 유성십삼검과 비월신영을 익히는데 주력했다. 

그 때가 되면 귀신같이 연연이 나타난다. 옆구리에 손을 턱 하니 얹고.

"오빠는 기본이 안 되어 있다니까! 그러니까 연연이 꼭! 있어야 돼!"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삼령의 법을 깨우치는데 전력을 쏟았다. 근래 들어 삼령의 법에 많은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 휘아였다.

천양의 힘이 늘어나자 지음의 법도 덩달아 그 힘이 커져 간다. 어떤 때는 몸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기운이 날뛸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대기의 법인 풍령의 기운으로, 천양과 지음의 법에서 파생된 기운을 조절해주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        *         *

사부님과 이야기를 나눈 지 열흘이 지났다. 

이틀 전부터는 사부님과 같이 철혈무각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오늘도 두 사람이 철혈무각에 들어가자 종자정이 웃음으로 반겨준다. 

헌데 고봉천이 며칠 째 계속 모습을 보이자,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지 종자정이 기이한 표정으로 물었다.

"단주, 요즘은 자주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려?"

"험! 살다 보니 나이 먹어도 배워야 할 것이 있더군. 더 나이 먹기 전에 하나라도 더 배워 보고 싶어서 말일세."

차마 제자에게 밀릴까 봐 그런다고는 말 못하고 둘러대는 고봉천의 말에 종자정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한마디.

"노망 들 나이도 아니고, 이제야 무슨.... 헉! 아이고!"

느닷없이 종자정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눈을 치켜 뜬 고봉천의 관월지가 화살이 되어 엉덩이에 꽂힌 것이다.

"자슥이... 그 동안 놔줬더니 빠져 가지고..."

"큭!"

휘아가 그 모습을 보고 큭큭대자, 종자정이 도끼눈을 뜨고 바라본다. 두고 보자는 듯한 눈빛이다.

음... 앞으로는 웃음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키키키...."

어쩔 수 없었다. 

성주의 제자들이나 성주가 심혈을 기울여 키우고 있다는 자들은 요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열흘 정도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한두 가지 무공을 챙기고는 철혈무각에 발길을 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 사부를 제외하고 철혈무각을 방문하는 자는, 어쩌다 들어오는 본성의 간부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사부를 보고는 무서들을 훑어보다 어정쩡하니 서고를 나선다.

결국, 근래 들어서는 철혈무각이 두 사제의 개인무서고가 되다시피 해 버렸다.  

"휴... 대체 대사형은 여기에서 무엇을 보고 심득을 얻었는지 알 수가 없구나."

고봉천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벌써 삼일 째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특별히 무엇을 얻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의 마음은 대사형이 얻었다는 절정검 쪽으로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무공이 결코 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때 섬서의 패주 철혈성의 비영검단주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휘아를 보면 볼수록, 자신의 무공만으로는 휘아에게 만족을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휘아의 능력을 알수록 은근히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도 사부라면, 최소한 제자에게 가르침을 내리다가 막혀서는 안될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대사형이 얻었다는 절정의 검학, 바로 그것이었다.

고봉천은 모르겠지만, 어이없게도 그 역시 무저동의 세 아버지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성취에는 아픔이 뒤 따른다?

고봉천이 머리를 저으며 건너편 서가 쪽으로 가려 할 때였다. 

한쪽 구석에서 휘아가 자신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휘아야. 이제 그만..."

나가자고 말하려던 고봉천의 입이 다물어졌다.

뭔가 이상했다. 평소의 휘아라면 책자를 들고 신중히 살피는 모습이 보여야했다. 헌데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아니 자신의 뒤쪽을 바라보고만 있다.

'저 애가 왜 저러지?'

의문이 일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 때였다. 휘아가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 위를 가리킨다. 얼떨결에 고개를 들고 자신의 머리 뒤쪽을 바라보았다.

지하서고의 입구 위쪽, 커다란 목판에 글이 새겨져 있었다.

[무학지무종(武學之無終)] 

무를 배우는 자에게는 끝이 없다.

고봉천이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참 좋은 말이지 않느냐? 꼭, 사부에게 하는 말 같구나."

그러고는 휘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려 할 때였다. 맑은 목소리가 지하서고를 울렸다.

"정말 멋진 글이네요!"

"그래, 백여 년 전에 괴팍하기로 유명했던 오대성주님이 쓰셨다고 들었다만..."

고봉천은 기억을 더듬어 목판의 글에 대해 설명을 하려다가 다음에 이어지는 휘아의 말을 듣고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선이 살아 있어요. 마치 살아서 꿈틀대는 것 같아요."

'선? 선이 살아 있다고?'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한자, 한자에 혼신의 힘이 담겨 있는 것이 보여요."

'힘이 담겨 있다고? 대체 저 아이가 무슨...'

고봉천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호.혹시?'

떨림이 입에까지 옮겨갔나 보다.

"뭐.뭐가 있는지 아.알 수 있겠느냐?"

휘아는 목판을 보고 무의식 중에 느꼈던 감정을 나직한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마치 천근 무게로 짓눌러 쓴 것 같이 보여요. 그런데... 그 선들이 춤을 추고 있어요. 천근 무게가 담긴 춤을... 무겁고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춤... 보는 것만으로도 질릴 정도로, 마치 일권에 산악을 무너뜨릴 것 같은 엄청난 힘이 느껴져요."

끝내 더 참지 못한 고봉천의 입에서 신음같은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맙소사! 천붕신권(天崩神拳)! 천중무(天重舞)!!"

"예?"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고봉천이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휘아를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정말... 정말... 너라는 아이는..."

휘아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다가오는 사부를 바라보았다.

두자 거리까지 다가온 사부가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러더니.

"잘했다! 잘했어!! 허허허!!!"

와락, 품에 끌어 안은 채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뭔 지는 모르겠지만, 사부의 품은 따뜻하면서도 넓었다. 

"사부님..."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 지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고봉천이 휘아를 떼어 놓고 흡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네가 본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

"그래, 모르겠지. 모르는 게 당연하지. 허허허!"

고봉천이 너털웃음을 흘리더니 휘를 한 쪽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목판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이기도 했다.

"저 글을 쓰신 오대성주 철백님께서는 본래 성주 위에 오를 분이 아니셨다고 한다. 헌데 사대성주셨던 철우검제 철현궁님이 돌아 가시고 마땅히 성주 위에 오를 분이 없자 원로들이 나서서 억지로 성주를 맡겼다고 한다. 억지로 성주를 맡게 된 그 분껜 제자가 한 명도 없었다. 왠지 아느냐?"

알 리가 없다. 말을 안 해 줬으니.

"워낙 성질이 괴팍한 분이었기에 누구도 그 분의 제자가 되길 꺼렸지. 너도 생각해봐라. 매일같이 두들겨 패고...." 

석두아버지가 그랬는데...

"단순한 동작을 수백, 수천번씩 반복하게 하는데..."

빼빼아버지도 그랬었지...

"어느 누가 붙어서 배우려 하겠느냐. 더구나 언제 완성할지도 모르는 무공을... 헌데 어느 날이었다. 그분이 성주에 취임했다는 말을 듣고 당시 무림의 절정고수 중 한 사람인 절명신장 한추용이 본 궁을 찾아왔다. 그는 철혈성에 그렇게 사람이 없느냐며 성주께 비무를 요청했다."

고봉천의 입가에 고소가 떠오른다.

"성주께선 자신의 일장만 받아내면 자신이 진 것으로 하겠다는 선언을 했고, 대경한 원로들은 성주를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은 성주의 고집대로 되었지. 그렇게 두 사람의 비무가 막을 올렸다."

고봉천은 휘아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되었는지 아느냐?"

고개를 젓는 휘아를 바라보며 고봉천의 입가에 고소가 짙어져 간다.   

"단, 일장이었다. 성주께서 허공으로 떠올라 춤을 추듯이 한 걸음을 내딛자 한추용의 안색이 굳어지고, 일장을 내치자 한추용이 피를 토하고 쓰러져 버렸다 한다. 그제야... 사람들은 성주의 진면목을 알고 서로 제자가 되겠다고 했지. 하지만 말이다... 성주께선 결국 제자를 들이지 않으셨다."

길게 말을 이어가던 고봉천이 다시 목판을 바라보다가.  

"그리고 한 말씀만 남기셨지."

휘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떤 놈이든 재수 좋은 놈이 다 가져가라!"

휘아가 멍한 얼굴로 바라보자 그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저 목판을 떡 하니 철혈무각에 걸어 놓으셨다. 사람들은 이 곳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아우성을 쳤지. 하지만 아무도 그 분의 무공을 찾지 못했다. 헌데... 그 재수 좋은 놈이 네가 된 것 같구나."

멍하니 고봉천의 말을 듣던 휘아가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 저 목판에 남겼을까요?"

"그분의 취미가 목각이었거든. 한때는 무사가 목각을 한다고 핀잔깨나 들었다고 하더라만..."

휘아의 눈이 목판을 향했다.

언뜻 보면 둔탁하게까지 느껴지는 글씨였다. 

자신도 괴책자를 보지 못했다면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혈련삼화를 몰랐다면 느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선의 흐름, 곳곳에 느껴지는 힘. 다섯 글자에 녹아 있는 그 모든것들을. 

                                 *           *         *

사부는 며칠을 더 철혈무각을 들락거리다 요즘은 자신의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신다. 

휘아 역시 철혈무각에 가지 않은지 며칠이 지났다.

-대사형의 절정검은 잊어라! 천붕의 권을 얻었으니 오히려 너에겐 더 나은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얻은 것을 너의 것으로 만드는 것만이 네가 할 일이다.- 라는 사부의 말도 있었고, 자신 역시 지닌 것조차 넘칠 지경이니 이제는 연무에만 힘을 쏟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두 사람이 발길을 끊자 종자정이 찾아 왔다.

매일 보다 안 보이니 궁금했던 모양이다. 

"여! 우리 휘아, 잘 있었나?"

"어서오십시오. 종숙부."

얼마 전부턴 숙부라고 부른다. 그럼 헤벌쭉하니 웃으며 좋아한다.

그 모습을 보면 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은 왜 안오는 거지? 안오니까 내가 심심하잖아.”

“가진 것도 언제 다 익힐지 모르는데요, 뭐. 당분간은 수련에만 힘을 쓸려구요.”

"그래? 흠....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난 또, 내가 싫어서 안 오는 줄 알았지. 하하하!!!“

“그럴리가요?”

-인상이 좀 그래서 그렇지, 속은 순진해 보이는데요?- 그 말은 할 수 없었다.

“아! 단주님은?"

"방에 계셔요."

그 때, 방안에서 사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왔으면 들어오게나! 내 할말도 있으니까."

찡긋 웃은 종숙부가 방으로 들어갔다. 큭,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다. 

한시진 이나 지났을까, 방을 나온 종숙부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휘아를 쳐다 보더니 상무원을 떠나갔다.

"열심히 해라! 다음에 보자."

한마디만을 남기고.

종숙부가 가시고 난 다음에도 사부는 방에서 두문불출 하셨다.

하도 궁금해서 무얼 하고 계시는지 연연에게 물어 봤다.

"아빠? 좀 이상해.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왔다갔다 하시는데 내가 다 정신이 없다니깐."

이상한 대답이었다. 그렇다고 사부께 직접 물어 볼 수도 없는 일.

휘아는 일단 궁금증은 접어두기로 했다. 자신이 할 일도 적지 않았으니까.

시간이 흘러도 고봉천의 이마는 펴질 줄을 몰랐다.

"구노인을 설득해 보는 것이 나을까? 그분이라면 휘아를 예쁘게 봤으니까 뭔가를 가르쳐 줄 법도 한데... 아냐 아냐. 그렇게 해서는 오히려 부작용만 생길 수가 있어. 그분하고 휘아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게 나을 거야. 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한참을 더 손을 턱에 괴고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어느 순간 고개를 번쩍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