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9화 (159/200)

"에구, 그래. 그래야지.... 참! 내 정신 좀 봐! 주인나리가 밥 먹고 주인나리 방으로 오라시더구나."

무슨 일 일까?

"예. 알았어요."

식사를 마치고 휘아는 방을 나섰다. 고봉천의 방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하지만 휘아는 조심스럽게 그늘 쪽으로만 이동해서 움직였다.

어제 멋모르고 시험 삼아 직사광선이 내리 쪼이는 햇살 아래 들어섰다가, 하마터면 손이 불에 타 버리는 줄 알았다.

황급히 방으로 돌아와 살펴보니 벌겋게 변한 손이 눈에 들어왔었다. 얼굴은 그나마 면사로 가려져 있었기에 괜찮았지만. 

새삼 면사가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한 번 덴 경험이 있는 휘아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피할 그늘이 없는 곳은 달리듯이 재빨리 움직였다. 

그렇게 고봉천의 방으로 들어가자 탁자에 두 개의 잔을 놓고 있는 고봉천이 보였다.

"부르셨어요?"

"음. 앉거라."

자리에 앉자 고봉천이 물끄러미 휘아를 바라보았다.

"몇 가지 물어 볼 것이 있다. 솔직하게 대답해 줄 수 있겠느냐?"

그답지 않게 신중한 물음에 휘아는 손에 땀이 배는 것 같았다.

혹시 나에 대해서 알아 낸 것이 있나? 그 때 무저정을 지키던 무사가 찾아 온 것은 아닌가?

휘아는 긴장한 채 고봉천을 바라보았다.

"예. 말씀하세요."

"우선.... 너는 부모님이 계시느냐?"

"....아뇨.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염소아버지와 석두아버지에겐 미안하지만 빼빼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그럼, 너를 보호해 주는 사람은 있느냐?"

"없어요."

"음.... 그럼... 사부는 있느냐?"

"지금은 안계시지만... 사부라 생각했던 분은 계셨었어요."

고봉천의 이마가 깊게 찌푸려졌다.

"너는 네 몸에 제법 많은 내력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아느냐?"

"예."

"설명해 줄 수 있느냐?"

"도사할배라고, 다 죽어가던 그 분이 가르쳐 준 호흡법을 어릴 때부터 익혔어요."

그것도 거짓말이 아니다.

"그 분은 살아 계시느냐?"

"아뇨. 오래 전에 돌아가셨어요." 

고봉천의 눈빛이 깊은 곳에서 번뜩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질문이라는 듯, 보다 신중한 목소리로 묻는다.

"너는... 무공을 배우고 싶지 않느냐? 배우겠다면 내가 가르쳐 주고 싶다만."

휘아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고아저씨는 철혈성에서도 제법 지위가 높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가르쳐 준다는 것도 결코 예사 무공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힘을 얻을 건지를 걱정 했었다. 마침내 힘을 얻을 기회가 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회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철혈성의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어떡해야 하나. 받아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은 잠시, 휘아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한가지만 물을게요."

"물어 봐라."

"아저씨는 철혈성의 사람이죠?"

"그래."

"제가 철혈성의 사람과 원한이 진 일이 있어서 그 사람과 다툰다면 아저씨는 어떻게 할 생각 하세요?" 

"흠...."

고봉천은 물끄러미 휘아의 면사 쓴 얼굴을 쳐다보았다.

"너는 내가 누군지 정확히 아느냐?"

"아뇨.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래, 사실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지.... 대답해 주마!"

고봉천이 휘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철혈의 도전이 무엇인지 아느냐?"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휘아는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예. 도사할아버지가 말하길, 철혈의 도전은 원한이 있거나 철혈성에 따질 일이 있을 때, 일대 일로 대결하는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철혈법이라고 했어요."

고봉천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맺혔다가 곧바로 굳어졌다.

"그렇지! 멋진 법이었지!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이제 철혈의 도전은 없어졌다."

예??

휘아는 목구멍까지 올라 온 물음을 삼켜야만 했다.  

"나는 철혈성이 존재하는 한 철혈의 도전을 계속해야 한다고 우기다가 이 곳에 유폐되었다."

고봉천의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처음에는 작았지만 점차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아느냐? 나는 철혈성이 없어지더라도 철혈의 도전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했고, 다른 자들은 그나마 철혈성을 보존키 위해서는 철혈의 도전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단 말이다!"

으르렁거리는 사자의 울부짖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철혈성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해 버렸다! 아니지! 호랑이라는 말도 쓰기 민망할 정도다. 고양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울부짖던 사자가 고개를 쳐들고 한스러운 눈빛을 지었다.

사자의 눈에 언뜻 이슬이 보인 것 같이 느껴진 것은 휘아만의 착각일까.

헌데... 철혈성이 종이 호랑이, 아니 종이고양이라니.... 무슨 뜻일까...

설마... 지금까지 이상했던 것이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내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 무슨 말인 줄 알겠느냐?"

"예...."

왠지 대답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안 하면 고아저씨가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휘아는 왠지 몰라도 그것이 보기 싫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봉천은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나직이, 그러나 힘있게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철혈의 도전법에 따른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승낙을 할 것이다."

그것이었다. 고봉천에게 철혈의 도전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비록 이제는 철혈성이 종이고양이로 전락했다지만 그의 마음 속에서는 그 옛날 천하를 질타하던 사나이의 웅지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어찌 하겠느냐!?"

휘아가 대답했다.

"할 게요. 휘아의 은원은 오직 철혈의 도전법에 따라서만 해결할 게요."

"좋아! 아주 좋아!"

고봉천은 '과연 내가 사람을 잘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이 꾸고 있던 꿈이 이루어 질지도 모른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고봉천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휘아의 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나를 사부로 인정하겠느냐?"

휘아는 이를 악물었다. 사부라니... 

무공을 배우려면 사제간의 예를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헌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휘아는 도사할배를 마음의 사부로 섬길 생각이었다. 삼령문을 자신의 사문으로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휘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고봉천을 바라보았다.

"저는 전에 만난 도사할아버지를 마음의 사부로서 생각하고 있어요."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래? 허나 돌아가셨다고 하지 않았느냐? 더구나 호흡법을 제외하곤 특별한 무공을 배운 적도 없고."

"그래도 가르침을 받았는걸요?"

주사위가 한 바퀴 굴렀다.

"살다 보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무엇을 하나 배웠다고 해서 사부로 섬겼으니, 다른 사부를 섬길 수없어 보다 더 나은 것을 배울 수없다면 너무 아쉬운 일이 아니겠느냐?"

"그럼 아저씨는 제가 도사할아버지 말고 다른 사부를 모셔도 된다는 말인가요?"

주사위가 두 바퀴 굴러간다.

"흠... 일반적으로는 진정한 사부를 섬기면 다른 사부를 섬기지 않는 것이 보편화된 예라 할 수있다. 허나, 일반적인 것이란 것은 또 다른 말로도 해석할 수있다는 말이다. 진심이 따를 수만 있다면 두 사부를 섬겨서 안 될 것도 없다는 말이지. 더구나 너 같은 경우는 굳이 다른 예를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고봉천이 휘아를 보며 가벼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저씨가 이해해 주신다면... 저는 아저씨를 사부로 모시겠어요."

마침내 주사위가 멈춰 섰다. 드러난 면에는 한 점도 찍혀 있지 않았다.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없었다.

이제부턴 두 사람이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휘아가 일어서더니 천천히 절을 올린다. 

일배... 이배.... 삼배... 

고봉천은 위엄있게 앉아 아홉 번에 걸쳐 절을 하고 있는 휘아를 내려다 보았다.   

용이 될지 뱀이 될 지는 그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물어 본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다.

-두고 보게! 나도 모르니까!-

그리고 껄껄껄 웃을 것이다. 

-용? 뭔 용? 요즘 강호에 진정한 용이 얼마나 있던가? 그깟 용, 다른 사람이 되라고 하게. 나는 이 아이를 무인으로 만들 거네. 진짜 무인으로 말이야!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이 아이가 만들어 갈 거네. 그러니 나도 모르는 거지.-

절을 마치고 일어선 휘아를 바라보는 고봉천의 눈빛에 자애로운 빛이 가득했다. 유폐기간 중에 제자를 들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헌데 제자가 생겼다. 그것도 마음에 드는 제자가. 

고봉천은 마치 십 년간 자식이 없다가 늦둥이라도 얻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연아가 들으면 삐치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지만.

"이제 너는 나의 제자가 되었다. 그것은 나의 자식이 되었단 말과도 같다. 너는 행동에 있어서도 말에 있어서도 그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예. 아저... 사부님."

무저동에 계신 아버지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어떤 표정이실까. 아마 서운함에 삼일간은 말을 안 하실지도....

'염소아버지, 석두아버지, 그래도 제게는 두 분이 진짜 아버지세요.'

휘아가 잠시 두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고봉천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내 나이 마흔 다섯, 늦게 혼인한 부인과의 사이에 연아가 생기자마자 이 곳에 유폐 되었다. 십 년을 이 곳에서 지내다 보니 이제는 꿈도, 웅지도, 모두 가슴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그러던 차에 네가 나타난 것이다."

조용한 고봉천의 음성이 실내에 울려 퍼졌다. 독백 같기도 하고, 회상 같기도 한 말이. 

"너를 보다보니 젊을 적의 내가 그리워졌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직 어린 너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도 우습고. 허나.... 그렇다고 너에게 나의 꿈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아니,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그저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의 안내인이 되어주고자 할 뿐이다."

휘아는 사부의 눈에 불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고 맑은 불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 같은 영원의 불이.

"다만...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라! 진정한 무인이 되어라! 그 것만 네가 지켜 준다면, 나는 네가 어떤 길을 가더라도 관여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알겠느냐?"

"사부님의 말씀, 휘아는 명심할 게요. 사람이 될 게요. 진정한 무인이 될 게요."

'그럼요. 저는 사람다운 사람이 될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무저동을 나왔는걸요. 아버지들도... 아버지들도...'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눈에 맺힌 눈물이 면사를 적시고 흘러 내렸다.

그걸 본 고봉천은 자신이 너무 격하게 말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가서 쉬거라. 내일부터는 많이 힘들 것이다."

"예. 편히 쉬세요."

조용히 물러가는 휘아를 바라보는 고봉천의 머리 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이 서로 앞으로 나서려고 아우성 쳐 댔다. 

무얼 먼저 가르쳐 줄까.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참으로 기분 좋은 아우성이었다. 입가에 자리잡은 미소가 가실 줄을 모를 정도였다.

'하... 마음에 드는 제자를 들인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인 줄은 미처 몰랐는걸?'

그 날 저녁, 휘아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고봉천의 말이 계속 귓전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너는 나의 제자가 되었다. 그것은 나의 자식이 되었단 말과도 같다. 너는 행동에 있어서도 말에 있어서도 그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제자가 되었다... 자식이 되었다...

행동에 있어서도... 말에 있어서도....

밤이 새도록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휘아가 벌떡 일어섰다.

'이대로는 안 된다. 거짓을 품고 살아갈 수는 없다. 사부님은 나를 진심으로 대해 주셨다. 그렇다면.... 나 역시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설령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더라도. 아버지들도 나의 결정을 찬성해 주실 것이다.'

벌컥!

방문을 열어 제낀 휘아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거침없이 고봉천의 방으로 찾아갔다.

                  *           *          *

"사부님... 휘압니다."

"...들어 오너라." 

방으로 들어가자 무언가를 서탁 아래로 쓸어 넣는 것이 보였다. 

아마 뭔가를 쓰시고 계셨던 것 같다. 힐끗 보이는 걸로는 무공에 대한 것처럼 보인다.

[유성십삼검을 익히기 위한 기초.... 비월신영의 내력운용에 대한 기본...]

한 쪽의 벼루에는 아직 마르지 않는 먹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급히 치우는 것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거야 사부님께서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일 것이고...  

고봉천이 턱에 먹물이 묻은 줄도 모르고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험험! 무슨 일이냐? 쉬지 않고."

휘아는 무릎을 꿇고, 고(考)하는 심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사부님께서는 휘아에게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고 하셨어요."

"흠."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선 여러 가지를 지켜야 하겠지만, 우선 자신을 믿어 준 사람을 거짓으로 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고봉천의 눈이 흥미를 담고 휘아를 직시했다. 

이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 걸까....

"저는 사부님께 거짓말은 안 했어요. 하지만 진실도 말하지 않았어요."

점점... 

고봉천은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휘아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느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미처 물어 보기도 전에, 나직하고도 무거운 음성이 휘아의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고봉천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없는 말이... 

"저는.... 제 고향은... 무저뇌옥이에요."

"....?"

이 아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믿든 믿지 않으시든 사실이에요."

끝내 고봉천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무저뇌옥은 비록 지금 관리는 해도 십 수년 전부터 죄수를 감금하지 않았다. 헌데 무저뇌옥이라니, 무슨...??"

문득 스치는 생각. 

고봉천의 눈이 점점 휘둥그레지고, 입은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조용히, 나직이, 휘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맞아요. 십 수년 전부터 그 곳에 들어온 사람은 없어요. 제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그 곳에 갇힌 분이니까요."

이 아이를 만난 것은 숲의 거목 위, 사람이 입고 다닌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거적을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빛을 보지 못하는 눈... 

눈처럼 하얀 피부.

고봉천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려워서도, 노여워서도,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냥 떨려왔다.

휘아의 말이 다시 고봉천의 귀를 천둥처럼 두드린다.

"저는 그 곳에서 태어났고, 그 곳에서 자랐어요. 사부님을 만나던 그 날, 비가 오기 전까지 말이에요."  

휘아의 말이 잠시 멈췄다. 하지만 고봉천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맙소사! 그게 어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조용히 흘러나오던 말이 점점 떨려 나오고, 고개 숙인 휘아의 눈에 뿌연 안개가 서렸다.

"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곳을... 나왔어요."

고봉천의 눈에 맑은 이슬이 맺혔다.

휘아의 이가 악물렸다.

"십육 년을 사람으로는 살았지만... 사람답게 살지는 못했어요. 

여기에 사는 사람들 기준으로 볼 때는 말이에요."

"대체... 어떻게...."

끝내 뚝, 한 방울 눈물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졌다.

"어렵게... 어렵게.... 그 곳을 나왔어요. 그리고..."

휘아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그런 휘아의 얼굴도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사부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처음으로.... 사람다운 사람을...."

고봉천은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그러니 휘아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믿을 수없는 일이었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었으니....

참으로... 참으로...

"이리... 이리 오너라. 휘아야."

고봉천이 두 팔을 벌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휘아를 불렀다.

"사부님..."

엉거주춤 일어선 휘아가 고봉천에게 다가가자, 고봉천은 힘껏 휘아의 작은 몸을 껴안았다.

"세상에....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크윽! 얼마나 힘들었느냐."

"...사부님.... 흑 흑! 엉 엉!"

구슬같은 눈물이 휘아의 볼을 타고 폭포수가 되어 흘러 내린다.  

그간 가슴 속에 응어리 졌던 고뇌와 아픔이 모두 눈물 속에 녹아 흘러 내린다.  

고봉천의 가슴에서 휘아의 눈물 섞인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그 곳에는....두 아버지만이 남아있어요. 저를 내보내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쓴 아버지들이..."

휘아가 고봉천의 가슴에서 머리를 떼며 울먹인다.

"두 아버지는 아마 저를 보내고 많이 울었을 거예요. 아버지는... 흑. 어엉!"

참았던 눈물이 한없이 흘러 나온다. 멈추고 싶어도 멈춰지지가 않는다. 휘아는 자신의 눈에 이렇게 많은 눈물이 들어있을 줄은 미처 몰랐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