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8화 (158/200)

"희한한 병이구나."

"의원께서 시간이 흐르면 낫는다고 했으니 나중에는 괜찮아 질 거예요." 

염소아버지가 그랬었다.

"흠. 다행이구나. 그럼 일단은 그걸 쓰거라."

복면을 뒤집어 쓰자 등잔불이 켜진 방안이 자세히 보였다.

휘아에게는 방안의 모든 것이 신기했다. 복면을 쓴 채 이 곳 저 곳을 돌아보는 휘아가 고봉천에게는 더 신기하게 보였지만. 

입가에 웃음을 띤 고봉천이 의자를 가리켰다.

"앉거라!"

처음으로 앉아 보는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자 고봉천이 입을 열었다.

"나는 이 곳에 유폐되어 있는 상황이다. 해서 너에게 이것 저것 심부름을 시킬까 한다. 헌데 너는 눈이 안 좋아서 당분간은 아무 일도 못할 것 같구나."

휘아의 마음이 다급해 졌다. 이 곳에 머물 수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것이다.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 질 거예요."

"그래? 그럼... 기다려 보도록 하지."

"고마워요."

고개 숙인 휘아를 바라보는 고봉천의 눈가에 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래, 나도 며칠 두고 보마. 네가 어떤 아이인지 말이다. 후후후...'

방 하나가 주어졌다. 휘아에겐 생애 처음으로 방에서 잠을 잔 날로 기록될 날이었다.

침상을 만져 봤다. 조금 딱딱하긴 했지만 어찌 돌 침상에 비하랴. 

손에 든 복면을 침상 위에 던져 놓았다. 불을 켜지 않았으니 굳이 복면이 필요 없었다. 

침상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도사할배가 가르쳐 준 호흡법대로 숨을 들이 쉬었다. 길게 들이키고, 더욱 길게 내쉬었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자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많은 일을 겪은 날이다. 

무저동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온 날이다. 

아버지와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 날이다.  

음식이 동굴에 던져졌으니, 아버지들은 휘아가 무사히 탈출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만, 오늘 본 두 명의 무사가 내일은 과연 어떻게 나올지... 

오늘 한 행동을 봐서는 괜찮을 것 같기도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휘아의 입술이 지그시 깨물렸다.

"문제는 내일이다."

그렇다. 오늘은 어떻게 보냈다고 하지만, 내일은 휘아에게 수많은 시험이 치러지는 날인 것이다.

아마 지금 날씨로 봐서는 날이 밝자마자 태양이 뜰 것이다. 

그게 첫 번째 시험이 될 것이다.

염소아버지의 말대로라면 하늘아래 가장 무서운 적이 태양이었다. 자신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찌해야 할까. 

우선은 복면을 써야겠지. 그러나 오늘의 경험으로 봐서는 복면 만으로는 결코 태양의 빛을 견디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눈을 감고 방안을 생각해 봤다. 별의 별 생각을해도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무작정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려야 하나?'

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이 집의 주인아저씨는 무작정 기다려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일단 부딪혀 봐? 그러다 눈이 멀면... 응? 가만... 부딪힌다? 부딪힌다는 것은, 결국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과 반대 되면서도 어찌 보면 같은 뜻이다.'

받아들인다 라..... 

'좋아! 일단 해 보자! 해 보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지 뭐.'

시간이 흐르자 어둠이 밀려나고 날이 밝아온다. 

방문을 통해서, 창문을 통해서 빛이 들어 온다. 

급히 복면을 뒤집어 썼다. 잠시 후, 단순한 빛이 아닌 거센 광선이 창문 틈을 통해 쏘아져 들어 왔다.

복면을 쓰고 있음에도 눈이 따가워진다. 염소아버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신주령의 법문을 암송하며 천양의 법을 떠올렸다. 순간적으로 몸이 후끈 달아 오른다. 무저동에서 행하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없는 기운이 쏟아져 들어온다. 온 몸이 타 버릴 것만 같다.

'으윽... 너무 거세다!'

이를 악물고 천양의 법을 되뇌었다.

'천지만물의 기운을 양생함에 하늘의 양기가 그 바탕이라....'

독맥을 따라 기운을 이끌었다. 

티끌 같던 불꽃이 점점 커지더니 불덩이가 되어간다. 척추를 타고 불덩이가 오르내린다. 그럼에 따라 점점 더 고통이 심해진다. 

"크읍..."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 때였다. 몸 속 깊은 곳에서 묘한 기운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기운이었다.

그거다! 일명 애들영양제라 불렀던 정체불명 영약의 차가운 기운! 그 기운이 뜨거운 기운을 급격히 가라앉히고 있다. 

지속적으로 천양의 법문을 떠올리며 기운을 조절했다. 그러자 두 기운이 얽혀 들더니 서로를 감싼 채 휘돌고 있다. 

뭐가 어떻게 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던 어느 순간, 두 기운이 갈라서기 시작했다. 

명문에서 시작된 뜨거운 기운은 영대, 신주, 대추를 거쳐 풍부혈에 이르고, 기해에서 일어난 차가운 기운은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자 다시 기해로 돌아갔다. 

"휴...."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휘아는 천천히 눈을 떠봤다.

복면의 틈으로 빛이 보인다. 조금씩 눈을 크게 뜨자 강한 빛이 눈을 부시게 한다. 그래도 전과 같은 고통은 많이 가신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자 사물도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후우.... 며칠만 계속하면 적응기간이 빨라질 것 같구나.'

그래도 아직 밖에 나간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창문을 통한 빛에도 이런데 밖의 빛은.....   

아침은 밝아오고 휘아의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간다.

이 곳에 있는 세 명의 일꾼은, 밥을 하는 할멈과 정원을 가꾸는 구노인, 그리고 잡다한 일을 하는 어린 시비 청아가 다였다.

부엌이 휘아의 방과 그리 멀지 않은 탓인지 식사는 늙은 할멈이 가져다 주었다.

할멈은 새로운 식구가 들어 온 것이 마음에 드는 듯 낄낄거리다가, 휘아의 옷을 보고는 혀를 찼다. 

허름한 넝마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안 되 보였나 보다. 그래도 들은 말은 있는지, 복면에 대해선 조금 신기하다는 눈으로 볼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으로 만든 음식인지는 몰라도 식사는 꿀맛 같았다. 

꿀을 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들의 말로는 무지 맛있다고 했었다. 문득 먹다 말고 아버지들이 생각나 우울해진다.

'치이, 약해지면 안 되는데...'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눈물이 반쯤 들린 복면을 적셨다.

바깥 세상에서 먹는 휘아의 첫 식사시간은 그렇게 눈물과 함께 지나갔다. 

할멈이 옷 한 벌을 가져다 주었다. 

"조금 크지만 입을 만 할 게야. 에구.... 불쌍도 하지...."

보면 볼 수록 불쌍해 보이나 보다. 옷도 그렇고, 눈까지 아픈 아이로 알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맛있게 먹었어요. 할머니."

"그래, 그래. 더 필요하면 이 할미에게 말 해."

"예."

잠깐 우울해지긴 했지만 할멈 덕분에 기분 좋은 첫날이 되었다.

둘째 날도 밤새도록 법문을 외우며 내기를 다스리는 일에 열중했다. 잠이야 할 일도 없는 낮에 실컷 잤으니, 밤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공부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모든 힘을 쏟기로 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삼령문의 법문들을 중점으로 연구하기로 했다. 

만물이 생동하는 새벽. 

어스름한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온 세상에 빛을 뿌리려 할 때, 그 시간이 휘아에게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빛에 적응하기에는 새벽만큼 도움이 되는 때가 없었던 것이다.

서서히 빛이 밝아온다. 휘아는 실눈을 뜨고 밝기에 따라 눈을 조금씩 크게 떠갔다.

아직 복면을 벗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제 해가 뜨기 전에는 그다지 눈에 부담이 가지 않았다. 

"후우..."

다행이었다.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밖에도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해가 떠오르고 얼마 후, 할멈이 식사를 놓고 갔다. 바라보는 눈에는 여전히 불쌍하다는 눈빛이 어려 있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방문을 슬며시 열더니 자신을 쳐다본다. 

자그마한 아이였다. 자기보다 머리하나는 작은 계집아이였다. 아마 열살 정도 되지 않았나 싶다. 

휘아가 고개를 돌리자 깜짝 놀라 재빨리 문을 닫는다.

삼 일째가 되었다. 

아이가 또 찾아왔다. 헌데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고 자신을 빤히 바라본다. 신기한 동물을 바라보듯이. 그러다 뭐가 궁금했는지 조그맣고 앙증맞은 입으로 물어온다.

"오빠 누구야? 오빠 눈이 많이 아파? 아버지가 그러는데.... 눈이 아파서 복면을 쓰고 있다며?"

아저씨에게 들었나 보다. 그런데 오빠? 오빠라.....

웃음이 절로 나온다. 

오빠 오빠 오빠..... 

아직 어린아이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들어보는 여자의 목소리다. 어떻게 저런 맑은 목소리가 나는지 신기할 뿐이다. 

아이가 다시 입을 연다.

"음... 나는 연아야. 고연연."

"나는...."

그 때였다. 밖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아야! 뭐하니?"

아이의 고개가 밖을 향해 돌아갔다. 그러다 다시 안을 보고는 배시시 웃더니 밖으로 뛰어 나갔다. 

미처 휘아가 자신의 이름을 말해줄 틈도 없었다.

훗!

절로 나오는 웃음에 휘아는 가슴이 아팠다.

지금도 아버지들은 무저동에 갇혀 지내는데 이렇게 웃어도 되는 걸까? 

이 곳에 사는 사람들도 철혈성의 사람들이니, 어찌 보면 자신에게는 원수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웃어도 되는 걸까?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다. 

휘아는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사실 무저동에서도 얼마 전까지는 원수니 뭐니 그런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었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언제 밖으로 나가지? 

이런 저런 생각하며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삶의 모든 것이었으니까.  

아무 것도 모르고, 심지어 절망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내 온 십 수 년, 아버지들은 행여나 어린 마음에 부담이 될까 봐 아무 것도 알려 주지 않았었다. 알려 줄 필요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나가기로 결심을 굳히고 준비를 하면서부터 이런 저런 말을 해 줬다. 

아버지들이 잡혀 온 이유도 자세히 이야기 해줬고, 염소 아버지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었다.

어머니에 대한 것은 나올 때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들은 복수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저 운명이니 어쩔 수 있느냐 하셨다. 휘아가 생각 하기로는 행여나 무리하게 덤벼들다 해라도 당할까 봐 그러셨던 것 같다.  

하지만 휘아는 그 모든 일에 대해 모른 체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냥 넘어갈 생각자체가 없었다. 

철혈성으로 하여금 어떻게든 대가를 치루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밖을 나와 보니 상황이 변한 것 같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뒤죽박죽 복잡해진 상황에 휘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은 부딪히고 보자. 뭘 알아야 복수고 뭐고 할게 아냐?"

그건 그렇고.... 앞으로 뭘 하지?

일단 아버지들을 구해내는 것이 우선인 건 분명하고.

아버지들이 억울하게 갇힌 것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 내 힘으로 그게 가능 할까? 

어머니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할 텐데... 누가 어머니를 그렇게 했는지....

도사할배의 삼령문이 어떻게 됐는지도 알아 봐야하고...

참! 염소아버지의 가족들은 언제 만나러 가지?

생각해보니 알아 봐야할 일도, 해야 할 일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일단은 그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몸을 만들고 힘을 길러야 한다. 힘을....

그런데 힘을 어떻게 기르지? 

'아이고 머리야!'

에라 모르겠다. 우선은 당장 오늘 일부터 천천히.... 하나하나...

닷새가 지났다. 낮에는 방안에서 지내고 밤에만 밖으로 나간다. 

이 곳에는 고아저씨의 가족 세 명과 일꾼 세 명, 그리고 자신이 있을 뿐이다. 누구도 해가 지고 밤이 으슥해지면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는다. 오직 휘아만이 돌아다닐 뿐이다.

언제부턴지 휘아는 자신만의 세상인 밤을 즐기고 있었다. 방을 나와 청석을 밟고 다니는 것도 좋았고, 흙을 밟고 다니는 것도 좋았다. 

휘아가 흥얼거리며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흠, 휘아가 이제는 복면을 쓰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구나."

고봉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동안 밤에 한 번도 나오지 않더니 오늘은 무슨 회가 동했는지 휘아가 활동하는 늦은 밤에 나온 것이다. 하늘도 뿌옇게 흐려 별들도 보이지 않는데.

"안녕하셨어요?"

휘아는 이제 인사하는 법도 배웠다. 다 고연연에게 배운 것이다.

어제 찾아 왔을 때였다.

-피이! 오빠는 인사할 줄도 몰라?-

-어... 아버지하고만 살아서... 네가 가르쳐 주면 되잖아.-

농담처럼 말했는데,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어찌나 귀엽던지 휘아는 자기도 모르게 또 웃어 버렸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인사말을 해 봤다.

고봉천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연아가 인사법을 가르쳐 줬다더니 잘하는구나."

연아가 자기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다 한 모양이다.

"그런데 밤에 어쩐 일이세요?"

"후... 마음이 좀 답답해서 나왔다."

고봉천은 하늘을 보고 한숨을 짓다가 문득 휘아를 돌아보았다.

"아!"

그의 입에서 가벼운 탄성이 터졌다. 

처음 보았다. 처음 데려 올 때만 해도 자세히 보지를 못했다. 하긴 거적같은 넝마 옷을 뒤집어 쓰다시피 하고 있었으니.

그 후로도 복면을 쓴 모습 밖에는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 마침내 복면을 벗은 모습을 처음으로 자세히 본 것이다. 

비록 달도 뜨지 않은 밤이었지만 고수인 고봉천에게 이 정도 어둠은 무얼 보는데 그리 방해가 되지 않았다. 

하얀 얼굴, 눈으로 빗어진 것처럼 하얀 얼굴에 송충이같은 시커먼 눈썹, 게다가 얼굴이 하얘서 더욱 돋보이는 붉은 입술은 고봉천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름답게까지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아직 어려서이기 때문이겠지만,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하얗게 분단장을 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후우...."

고봉천의 입에서 좀 전과는 다른 뜻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휘아야."

"예."

"어디 가서 함부로 얼굴 보이지 말거라."

"예?"

휘아가 무엇을 아랴.

의아해 하는 휘아를 바라보는 고봉천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서역으로 가면 얼굴이 희고 눈이 새파란 색목인들이 산다던데, 휘아가 색목인의 후예일까? 눈이 검은 걸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그 동안 살펴 본 바에 따르면 이 아이는 매우 순수한 아이였다. 음식을 갖다 주는 할멈의 말을 들어도 그렇고, 딸인 연연의 말을 들어도 그렇다. 특히 연연은 빨리 복면을 벗은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다.

문득 그의 입가로 하얀 웃음이 떠오른다.

'후후후.... 연연이 휘아의 진실된 모습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고봉천이 웃음띤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휘아를 향해 물었다. 

"그래, 언제면 눈이 다 나아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겠느냐?"   

그는 아직도 휘아가 눈 때문에 빛에 약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이삼 일이면 가능할 것 같은 데요.... 저... 그래도 당분간은 얇은 천으로라도 가려야 할 것 같아요."

고봉천의얼굴에 빙그레 웃음이 걸렸다.

"내가 얼굴을 가릴 면사를 하나 주마. 마침 나에게 네가 쓸만한 면사가 하나 있거든. 그리고 그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조금 이상한 뜻이 담긴 말이었다. 

뭐가 낫다는 말일까. 

"??"

                                 *             *             *

아침 해가 밝아 온다. 

휘아는 창문을 뚫고 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면사를 걸치지 않았다. 

눈만 가늘게 뜨고 빛에 적응될 시간을 기다렸다. 뿌옇게 흐려 보이던 방안의 광경이 차츰 차츰 제 모습을 잡아간다.

상무원에 들어 온지 팔 일째 되는 날이 었다.

이제는 제법 햇빛을 보고도 참을 만했다. 물론 해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늘진 곳에서 나무에, 돌담에, 지붕에 드리워진 햇살을 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게 된 것이다. 

천양의 법을 매일 쉬지 않고 여섯 시진씩 익힌 결과였다.

그리고 그 덕분에 많은 것도 얻었다. 

우선은 몸 안의 내기가 훨씬 강해졌다. 무저동에서 보다 두 배는 됨 직하다. 영양제의 기운이 많이 몸에 흡수돼서인 것처럼 생각이 되었다.

또 다른 것은 두 가지 기운, 천양의 기운과 지음의 기운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지음의 법에도 조금씩 진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땅을 밟고 걸을 때마다 마치 땅이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문득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할멈인 것 같다. 

휘아는 손을 뻗어 면사를 집어 들고 얼굴을 가렸다. 고아저씨가 이틀 전에 건네 준 면사였다. 

머리를 반쯤 가릴 수있는 흑색면사는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얇으면서도 머리카락 면사보다 훨씬 질기고도 촘촘했다. 그러면서도 앞을 보는데 아무 지장이 없을 정도로 투과율이 좋았다. 

고아저씨 말대로면 칼로도 잘려지지 않는다 했었다. 정말 그럴 지는 아직 모른다. 칼로 잘라 보지 않았으니까.    

면사로 얼굴을 가리자마자 방문이 열리고 할멈이 상을 방에 밀어 넣었다.

"이제 좀 괜찮은 것 같구나. 에구 불쌍한 것...."

항상 할멈이 하는 소리다. 휘아는 빙그레 웃었다. 할멈은 못 보지만.

"예. 이제 거의 다 나았어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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