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152/200)

휘아가 난감한 표정을 짓자 도사할배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것은 네 마음에 달려 있단다. 보고 못 보고는..."  

"치이. 너무 어려워. 그런데 할배는 진짜도사는 아니라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

"그래, 나는 진짜도사가 아니다. 하지만 도사가 아니라고도 말하지 못한단다. 굳이 말하면 반쪽도사인 셈이지."

"에이. 뭐가 그렇게 복잡해?"

도사할배가 창백한 안색으로 빙그레 웃었다.

"이 할배의 사문이 바로 도가와 비슷한 곳이거든. 어찌 보면 도가의 원류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지."

"그럼 나도 도사가 되어야 하는 거야?"

눈이 커진 휘아의 말에 도사할배가 풀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도사가 아닌데 네가 왜 도사가 되어야 한단 말이냐?"

"할배에게 내가 배우고 있잖아. 그럼 내가 제자가 되는 건데.... 하다못해 할배처럼 반쪽도사라도 되어야 하는 거 아냐?"

"허허허...쿨룩..."

억지로 기침을 삼킨 도사할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너를 제자로 삼고 싶다만.... 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죽기 전에 얼마나 전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문의 법통은 몇 년에 전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자신이 사부를 모시고 겉핥기로 배우는데 만도 이십 년이 넘게 걸렸다. 그나마 그러고도 정식제자는 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 지옥같은 곳에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니 휘아를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러면서도 신주령이 잊혀질까봐 전해 준 것을 보면 속마음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저 우리 휘아의 마음만으로도 고맙기만 하구나."

처연한 할배의 말에 휘아는 가슴이 이상하게 뭉클한 무엇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치이... 나는 그래도 할배를 사부처럼 생각할 거야. 아부지들이 그랬거든, 받은 게 있으면 갚아야 한다고. 은혜든 원수든."

"허허허. 그것은 옳은 말이다.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지."

도사할배는 빤히 휘아를 바라보다 어렵게 말을 이었다.

"휘아가 정 그런 마음이면.... 훗날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거든 나에게 배운 것을 전해 주거라."

아버지들은 휘아가 할배에게 특별한 것은 배우지 않지만, 그래도 자신들을 귀찮게 하지 않자 마음이 놓이는지, 이 곳 저 곳을 들쑤시고 다닌다.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무공을 찾으려는 목적으로. 

그래도 이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무저뇌옥이 아니던가. 

-잠깐이라도 정신이 들은 어떤 놈이 자신의 무공이 사장될 것을 염려해서 어딘가에 무공구결을 남겨 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세 사람이 끙끙거리며 생각해낸, 휘아를 만족시킬 마지막 대책이었다.

그렇게 일 년간 세 사람이 들쑤시고 다닌 동굴이 서른 두 개다. 그 중 두 군데서 그림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낙서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조잡한 그림이었다. 

이제 그들이 가 보지 못한 동굴이 여섯 개가 남았다. 그야말로 갈 수 없는 동굴들. 

하나는 호수가 있는 동굴이다. 그들의 식수원인 곳. 

넓이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다. 깊이 역시 자신들 키를 넘는다는 것만 알 뿐 더 깊은 곳은 젤 생각도 못했다. 그러니 더 갈 수도 없었다. 

다른 다섯 곳은 앉은뱅이들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높거나 험한 곳에 있는 동굴들이다. 

"우리들이 못 가는 곳은 다른 놈도 못 간다."

진형구의 한마디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포기했다. 하기는 자신들은 그래도 조금 낳은 경우의 죄수들이 아닌가. 자기들보다 심한 상태의 죄수들이 수장 높이의 험한 곳에 갈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세 사람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시시껄렁한 거라도 발견을 해야 하는데.... 

뭔 놈의 고수들이 갇혔다는 뇌옥에 무공구결하나 남겨진 것이 없단 말인가.

"아! 씨불, 옛날 이야기 들으면 동굴에서 신선같은 고수를 만났다는 이야기들도 많더만, 어떻게 된 놈의 동굴이..." 

진형구가 궁시렁거릴 만도 했다.

어떤 놈이고 동굴에서 기연을 얻어 고수가 되었다는 놈을 만나면 그 주둥이부터 부셔버리고 싶은 세 사람이었다. 

휘아는 여전히 틀에 박힌 생활을 한다. 

천공이 밝아오면 그 밑에서 다섯 걸음에 대해 고민하며 지내고, 암흑의 세상이 찾아오면 도사할배에게 간다. 

요즘은 신주령 외에 다른 것도 알려 주니 그 재미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혼을 다스리는 법이라는데... 

무지 어렵다. 듣다 보면 머리기 빙빙 돌 지경이다. 

세 아버지는 여전히 철광석을 캐는 일이 끝나면 동굴들을 조사하러 다니고, 지친 몸으로 돌아오면 내일을 걱정한다. 

전만해도 세상사 포기하고 아무 걱정없이 살았는데 아들이 생기고부터는 바쁜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싫다는 한마디 안하고 몸을 혹사시키는 것을 보면, 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은 누구나 똑같은가 보다.

“젠장! 두 놈이 싫다고 안 하니 나도 할 수가 없잖아!”

잔머리를 잘 굴리는 조동인의 투덜거림이었지만, 알게 모르게 정이 담겨 있기에 나올 수있는 투덜거림이었다.

매일 똑같은 생활 속에 천공의 빛이 정확히 칠백 이십 번이 바뀌었다. 

일장 높이의 바위틈에 발을 걸치고, 거꾸로 매달린 채 신주령의 법문을 외우고 있던 휘아의 고개가 어둠에 잠긴 구석의 동굴로 향했다. 

어깨가 처진 아버지들이 동굴 탐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것이 보인다. 

적어도 서너 번씩 살펴보지 않은 동굴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또 다닌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아버지들은 자신을 볼 수 없지만 자신은 아버지들을 볼 수 있다. 희한하게도 신주령을 외운지 삼년이 되자 모든 감각기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도사할배의 말로는 그것이 자신의 혼에 힘이 실려서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감각기관이 밝아지니 모든 것이 좀 편해졌다는 것이 즐거울 뿐이다. 

휘아는 아버지들이 뭣 하러 다니는지를 알고 있다. 얼마 전 세 아버지가 모여서 쑥덕이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휘아가 다섯걸음을 옮기는 방법을 이용해 아버지들을 놀래키려고 다가갔을 때였다. 염소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하나라도 건져야 하는데....."

'뭘?' 

휘아의 의문에 답하듯 빼빼아버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누가 그걸 모르냐? 있어야 건지든가 줍든가 하지...."

석두아버지가 고개를 저으며 여전히 멍한 눈으로 두 아버지를 쳐다보다 힘없이 말한다.

"그런데, 휘아에게 가르칠 무공이 있기는 있을까? 삼 년을 찾아봐도 없잖아. 고생만하고...."

휘아는 다가가던 발걸음을 돌려 몰래 그 곳을 빠져 나왔다.

아버지들은 자신을 위해서 무공을 찾으러 다니시는가 보다. 말로는 그저 철광석이 어디 또 없나 다니시는 거라고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아버지들에게 졸라 댔던 것이 부담이 되었던가 보다. 

나도 이제 다 컷는데(?)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겠다. 

'세 아버지들보다는 그래도 내가 힘도 더 세고, 더구나 나는 발까지 있잖아.' 

마침내 열 살이 되던 해, 휘아는 자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뭐? 이제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한다고?"

휘아를 바라보는 조동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너.... 지금 네가 몇 살인 줄이나 아냐?"

진형구가 어이가 없는지 휘아의 나이를 물었다.

"열 살...."

휘아의 대답에 여강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잘 아네. 뭐."

진형구의 부릅뜬 눈이 여강두의 머리를 쪼갤 듯이 노려 본다.

"에라이.... 지금 그게 중요하냐? 저 쬐끄만 것이 지가 알아서 살아가겠다는데?"

"솔직히 휘아가 우리보다 더 낫다는 건 사실이잖아.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더 안 돌아다녀도 되고...."

조동인이 조심스럽게 자기의 의견을 말하자 진형구의 일그러진 얼굴이 조동인을 향했다.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가 아버진데....."

"아, 생각해 보라구. 휘아가 여길 떠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아들이 아닌 것도 아니고, 우리가 휘아의 아버지가 아닌 것도 아닌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잠시 머뭇거린 사이 조동인의 말에 힘이 실렸다. 그러자. 

"....문제야.... 없지."

진형구의 어깨가 축 처진다.

그라고 왜 모르겠는가. 

휘아가 자신들을 졸라 대지 않은지 삼년, 행여나 졸라 댈까 두려워 무공을 찾으러 다니느라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런데 이제 안 해도 된다. 분명 몸이 편해질 것이다. 

헌데.... 왜이리 마음은 편하지를 않단 말인가.

'후우.... 자식을 멀리 떠나 보내는 부모의 심정이 이러할까?'  

진형구는 문득 어릴 적 무공을 배운다며 집을 도망쳐 나올 때, 싸리문 너머에서 눈물짓던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크흑! 어머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 모습을 조동인이 바라본다. 여강두도 바라본다. 하염없이 바라본다. 끝내 눈자위가 붉어졌다.

'조또.... 왜 어머니를 부르는....거야.... 크윽.... 어무이!'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세 아버지를 쳐다보는 휘아의 눈이 글썽거린다.  

"씨이.... 아부지들, 왜 우는 거야? 휘아가 잘못 했어. 앞으론...."

헉, 안돼! 세 아버지의 눈물이 뚝 그쳤다.

"자립해라!!"

"니 맘대로 해라!"

"거럼, 나이가 몇인데!"

뚱한 표정의 휘아가 세 아버지를 돌아다 본다. 눈물은 그렁그렁 하지만 진심이 잔뜩 담겨 있는 눈빛이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는 휘아.

"알았....어."

세 아버지의 거처 옆에 있는 자그마한 동굴을 손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자립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철광석도 캐야 하고, 먹을 것도 자신이 알아서 챙겨야 한다. 적어도 자립을 생각 했으면 이제부터는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이빨 아저씨의 동굴도 찾아가고 도사할배의 동굴도 찾아갔다. 

이빨 아저씨는 자신이 갈 때마다 벙긋 웃으며 반겨 준다. 

어쩐지 더 늙은 것 같은 도사할배의 기침소리는 여전하다. 

그렇게 단조로운 생활이 지속되던 어느 날, 천공을 바라보며 누워서 신주령의 법문을 거꾸로 암송하고 있을 때였다. 

"...휘....아...."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껏 발달된 귀는 호수동굴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도 들을 정도이니 잘못 들은 것은 아닐 것이다.

벌떡 일어나 귀를 기울이고 방향을 가늠해 봤다.

"...휘...."

또 들린다. 오른 쪽, 도사할배의 동굴이다.

휙, 바위에서 뛰어내린 휘아의 발걸음이 날듯이 동굴로 향했다.

"도사할배?"

동굴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더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누워 있는 도사할배가 보인다.

"도사할배?"

"으음..... 휘...아."

도사할배의 안색이 조금 이상하다. 평상시보다 훨씬 붉어진 안색에 숨소리도 거칠기 그지 없다. 처음으로 보는 모습이었다.

'가만? 지금 시간이면?'

문득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시간은 도사할배가 정신을 놓고 있을 시간이다. 제 정신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라는 말이다. 

헌데,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어찌 된 거지?'

도사할배하고 만난 지 몇 년만에 처음있는 일이다.

"할배, 정신 들었어?"

"으음... 휘아...냐?"

"응. 휘아야.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네? 어떻게...."

"...잘 들어.... 삼신주.... 삼신주를 찾아...."

"응? 그게 뭔데?"

"....본문의 모든 것..... 삼신주를 찾아.... 여기에..."

"하.할배!"

점점 더 붉어지는 도사할배의 안색에 휘아는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잠깐 기다려! 염소아부지 데려 올께!"

후다닥 뛰쳐나가는 휘아를 바라보는 도사할배의 눈에 안타까운 빛이 떠올랐다.

"잠.... 휘아.... 돌... 신발...."

달려나가는 휘아의 귀에 도사할배의 말이 아스라히 들려 온다.

'할배, 조금만 기다려! 내가 염소아부지 데려 올 거야!'

"염소 아부지!!"

휘아의 외침이 동굴을 울리며 퍼져 나갔다.

느닷없는 외침에 여기저기서 죄수들이 고개를 내민다. 침을 질질 흘리는 그들에게 휘아의 외침은 그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 뿐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도사할배의 반대편에 자리한 동굴에서 고개를 내미는 자의 눈에는 분명 의혹이라 할만한 눈빛이 떠올라 있었다. 이빨 아저씨라 불리는 자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세 아버지가 기거하는 동굴에서도 반응이 있었다.

"뭐야? 휘아 아녀?"

"왜 그러지?"

"어디 다친 것 아냐?"

각기 다른 세 가지 대답, 그러나 반응은 하나였다.  

"뭐? 다쳐? 휘아가?"

"어디를 다쳤는데?"

"얼마나 다쳤는데?"

넘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빠르게 손을 놀리며 튀어 나오는 세 아버지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자 빠르게 달려오던 휘아가 오히려 당황해 버렸다.

자립한 이후로 못 본 체하며 자신에게 신경을 끊은 듯 하지만, 아버지들의 속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던가 보다.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그게 아니고....." 

자신들의 걱정과 달리 휘아의 모습에 다친 곳이 없는 듯하자 세 사람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험 험, 무슨 일이냐?"

조동인이 제일 먼저 마음을 진정시키고 휘아에게 말을 건넸다.

"도사할배가 이상해. 나를 부르길래 가 봤는데, 몸이 많이 아픈가 봐.  염소아부지가 빨리 가서 봐줘."

"응? 도사영감이? 가만.... 아직 정신이 들 시간도 아닌데?"

"그게.... 나도 이상하긴 했는데, 어쨌든 정신이 들었거든? 그런데 얼굴이 빨개져 가지고 곧 죽을 것처럼..... 뭐해? 아부지? 빨리 가자니까?!"

"어? 어. 그래 가보자."

네 사람이 정신없이 도사할배의 동굴로 들어가서 본 것은, 붉게 변한 눈을 부릅뜨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조동인이 다급히 다가가 노인의 맥을 짚어 보았다. 그러다 무얼 느꼈는지 후다닥 손을 놓았다.

"왜 그래?"

조동인의 행동이 이상해 보였는지 진형구가 물었다.

"이.이.이건 산사람의 맥이... 아니야...."

"무슨 소리야?"

"맥이... 안 뛰어...."

".....?"

"아직 숨을 쉬고 있는데 맥이 안 뛴단 말이야!"

"으헉!"

동굴 안에 침묵의 어둠이 내려 앉았다. 그 사이로 거친 도사할배의 숨소리만이 흐른다.

"푸우...."

침묵이 부담스러웠던지 휘아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부지 말대로면 도사할배가 죽었단 말이야? 숨을 쉬고 있는데?"

"그게.... 그래서 아버지도 놀랐다니까!"

휘아가 도사할배에게 다가갔다. 아무리 쳐다봐도 살아 있는 것만 같다. 이상한 마음에 휘아는 도사할배의 이마에 손을 얹고 떨리는 목소리로 도사할배를 불러봤다.

"도사할배.... 안 죽은 거지?"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러나 잠시 후, 사람들은 놀라운 광경에 눈을 크게 뜨고 말을 잊었다. 

노인의 무섭게 보일 정도로 붉게 물들었던 안색이 제 색을 찾아간다. 부릅떠졌던 새빨간 눈이 스르륵 감겨진다. 

그리고 숨소리마저 서서히 잦아 들더니, 종내에는 안도의 표정만을 남긴 채 모든 것이 멈추어 버렸다.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도사할배의 변화를 지켜 보았다.

그는 죽은 것이 분명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괴이한 현상이었지만, 누구도 그 원인을 알 수는 없었다.  

휘아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지금껏 여러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지만, 가까이 지냈던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맞이하는 죽음이었다. 

왠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이게 슬픔이란 걸까?  

휘아가 아무런 말도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자, 조동인이 슬며시 진형구의 팔을 잡아 당겼다. 멍하니 있는 여강두의 머리를 톡, 쳤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바깥을 향해 손짓했다.

'놔두고 나가자.'  

굳이 말이 필요 없었다.   

세 사람이 나간 동굴 안에는 휘아와 도사할배의 시신만이 남아 있었다. 

새삼 도사할배의 빈자리가 다가온다.

항상 중얼거리듯 신주령을 외우며 자신에게 강호의 이야기를 드문드문 하던 할배가 눈앞에 누워 있는데....

이제는 이야기를 할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도사...할배.... .흑 흑...."

눈물이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무릎에 떨어지더니 미끄러져 흘러 내린다. 

휘아는 하얀 손등으로 쓰윽 눈물을 훔치고 도사할배의 평온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신주령이라 이름 붙여진 기나 긴 주문 같은 구결이었다.

"하늘을 우러르며 양기의 바다를 헤엄치니 곧 천령이......... 땅을 보듬어 안고 음기의 호수에 몸을 담그니 지령이........ 대기에 내 마음을 담고 하늘과 땅을 바라보니 그 모든 것에 나의 영혼이 깃들어 풍령이......."

전문(前文)인 삼령에 대한 부름구결이 끝나면 각기 이어지는 서른 세 가지의 후결이 이어진다.  

한시진에 이른 신주령의 암송이 끝나자 휘아는 조용히 도사할배를 내려다 봤다. 

어쩐지 도사할배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휘아는 조용히 일어나 도사할배를 향해 절을 올렸다. 

"할배, 휘아는 할배의 제자야. 그렇지? 그러니까 편히 가. 아부지가 가끔 그러는데 저승도 여기보다는 나을 거래."

휘아가 잠시 도사할배를 쳐다보다가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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