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1화 (151/200)

"응."

"휘아는 크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지?"

조동인의 말에 휘아는 말없이 자그마한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그럴 줄 알았다. 이미 밖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저 영악한 휘아가 가만 있을 리 없다. 

"그러려면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단다. 거기서는 그래야 살 수 있거든."

"그럼 배우면 되잖아."

"그래..... 그래서 아버지들이 이제부터 휘아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칠 생각인데, 휘아는 참고 배울 수 있지?"

"응."

          *          *           *

무저뇌옥의 생김새는 목은 길고, 바닥은 넓은 호리병을 생각하면 된다.  

천공의 입구에서 오십여장은 폭이 일장이 될까 말까 할 정도로 비좁다. 하지만 그 아래부터는 점점 넓어지기 시작해서 바닥은 반경 이장에 달하는 커다란 광장처럼 되어있다.

그리고 구석구석에는 미로처럼 뻗은 동굴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 중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도 있고, 본래 자연동굴이었다가 철광석을 캐기 위해서 파 들어간 인공동굴도 있었다.

어떤 놈이든 동굴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놈이 있다면 무저뇌옥에 쳐 넣어 봐야 한다. 그러면 아마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방에는 온통 망치로 부순 돌 쪼가리들이 널려 있고, 온갖 동굴벌레들이 기어 다닌다. 

철광석이 발견되기 전에는 먹을 게 부족해서 벌레들이 씨가 말랐었는데, 요즘은 그럭저럭 벌레를 잡아먹지 않아도 될 만큼 음식이 내려 오기 때문에 다시 벌레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동굴 전체가 다 삭막한 것은 아니었다. 무저뇌옥의 지배자 세 사람이 기거하는 곳은 그래도 제법 운치있게 꾸며져 있었다. 나름대로 십여 년간 노력한 결실이었다. 그래 봐야 바닥이 조금 편편하고 석벽에 조각 비슷한 것들이 장식되어 있는 정도였지만.

그 방에서 세 사람이 다시 머리를 맛 대고 두 번째 고민에 빠져 있었다. 

물론 휘아 때문이었다.

"어떡하지?"

“별 수 없지. 마지막 방법을 써보는 수 밖에....”

"방법이 있어?"

조동인과 여강두가 기대에 찬 눈으로 진형구를 바라봤다. 

"우선.... 굴리는 거야."

"컥!"

조동인이 목이 막히는지 목을 움켜 쥐었다. 그러자 여강두가 말했다.

"그건.... 매일 하는 거잖아."

"......"

"조금 더....."

"....."

"씨발, 그럼 방법 있어? 밑천도 다 털렸는데 자꾸 조르기는 하지, 

어떡해, 그럼?"

"하긴....."

삼년 만이었다. 

네 살짜리 어린애 데리고 뭘 가르친다며 심심할 때마다 이것 저것 가르쳐 준 것이.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금씩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에 와서야 그것이 더 이상 가르칠 만한 재주가 그들에게 없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때부터 세 사람은 일곱 살 휘아에게 휘둘리기 시작했다. 

"아부지! 뭐해! 공부 열심히 해야 바깥에 나갈 수 있다며?"

“어? 어...”

하긴 해야 하는데.... 할게 있어야지......

조동인은 자신이 가진 재주인 침을 가르친다며 몸에 있는 온갖 혈도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서 죄수 중 누가 조금만 아프면 실습 한다고 안 아픈 데까지 찔러 버리는 만행도 수없이 했고. 

헌데.... 이 쪼끄만 놈은 어떻게 된 놈인지 한 번 가르쳐 주면 잊어버리지를 않는다. 

잊어버려야 반복학습도 하고 야단도 치면서 시간을 때울 텐데.

진형구는 휘아가 아직 어려 뼈도 제대로 여물라면 멀었고 체력은 더 말할 것이 없으니 조금 느긋했었다. 그런데 자신의 계산을 저 멍청한 돌머리 여강두가 다 망쳐 놨다.

세상에.... 저 배운 대로 가르치라고 했다고 아예 애를 잡는다. 

시간만 나면 팔굽혀펴기를 시키고 물구나무를 서게 한다. 돌 들고 뛰게 하는 건 기본이고... 애가 무슨 힘이 있다고. 

게다가 언제부턴가 저 큰 손바닥으로 아이의 전신을 두드려 팬다.

그래야 체내에 잠재된 신경이 발달 한데나? 알고나 하는 건지....

이를 악물고 참아 내는 휘아를 볼 때마다 조동인이나 진형구는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었다. 

불쌍해서? ....아니....

'진짜 독종이다. 하긴 다 죽어가는 몸으로 애 낳겠다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던 지 어미를 보면.....'

일 년, 이년이 지나자 몸이 잡히기 시작했다. 

힘도 여섯 살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세졌다. 그걸 보고 여강두는 흐믓하게 웃었지만 진형구는 불안감이 가중될 뿐이었다. 

그리고 일곱 살이 된 요즘은 주먹으로 팬다. 자신도 그랬단다.

'저 눔의 시키! 애가 불쌍하지도 않나?'

그래도 설마 했었다. 

'일곱살 짜리가 해 봤자지...'

그런데 그 설마가 끝내 사람을 잡았다.

일곱 살 먹은 놈이 태극권 팔괘권에 삼재검법의 투로를 완벽하게 밟아 가는 것이다. 자신보다도 더 잘하는 것만 같아 아들만 아니면 질투심에 무슨 짓을 저질렀을 지 모를 정도다. 

‘아! 씨팔, 부럽다. 내가 저 정도 똑똑했으면 강호의 고수로 이름을 날렸을 텐데....‘

그래서.....

셋이 다시 머리를 싸맨 것이다. 

“가만? 죄수 중에 그래도 제 정신이 쪼끔씩 돌아오는 놈들에게 뜯어낼 수 없을까?”

진형구가 고개를 번쩍 쳐들고 말했다. 순간.

“지 이름도 모르는 놈들인데.... 가능할까?”    

여강두가 초를 쳤다. 그리고.

“그래도 사이비 도사나 이빨은 조금 정신이 있잖아?”

조동인이 불씨를 살리자, 진형구가 이를 지그시 깨물고 덧붙였다.

“돌팔이 네 침 솜씨로 어떻게 그 놈들 정신 드는 시간을 늘리면 안될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조동인.

“한 번 해 보지, 뭐.”

‘까짓 거, 침이 잘못 꽂혀 봐야 죽기 밖에 더 하겠어?’ 

             *            *            *

휘아는 까마득한 하늘에 걸린 천공을 쳐다 보고 누워 있었다.

약한 빛이었지만 이 곳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저 천공을 올려다 보는 것을 두려워 한다. 

네살 땐가? 왜냐고 물어 봤다.

"눈이 아파서."

한결같은 대답이다. 심지어 세 아버지까지 그렇게 대답한다. 그 중에서도 염소아부지가 제일 자세히 알려 주셨다.

"우리는 어둠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약한 빛에도 눈이 다친단다."

"그런데 나는 왜 괜찮은 거야?"

"너는 아직 어려서 회복이 빨리 되거든. 그래도 빛이 강할 때는 너무 오래 쳐다보지 마라."

빛이 사라지면 하루가 지난 거라고 한다. 휘아는 매일 그 수를 세었다. 뭣 때문인지는 모른다. 그냥, 세어봤다. 염소아버지가 말한 일 년이란 것이 뭔 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세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몸이 커진 것처럼 느껴진다.

천(千)도 더 센 거 같다.

요즘에 와서는 아버지들이 자주 모여서 몰래 쑥덕거린다.

씨... 빨리 빨리 뭐든지 가르쳐 줘야 저 밖으로 빨리 나갈 텐데....

자신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 커다란 바위 위에 누워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저 만치 세 아버지가 꾸물거리며 다가 오는 게 보였다.

“아부지!”

아버지들도 팔을 이용해서 움직인다. 다리로 걷는 사람은 오직 자신 뿐이다. 

전에 한 번 왜 다리로 안 걷고 팔로 걷느냐고 물었다가 석두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 후로는 절대 안 물어 보기로 작정했다.      

“뭐 하는 거야? 왜 요즘은 아무 것도 안 가르쳐 주는 거야?”

“우하하!! 안 가르쳐 주긴, 더 좋은 걸 가르쳐 줄려고 고민 하는 거지.”

진형구의 너스레에 휘아의 눈이 치켜 올라 갔다.

“정말?”

“그럼!”

“뭐 가르쳐 줄 건데?”

“그건... 흠, 오늘부터 다른 사람의 것도 배워 보는 게 어떻겠느냐?”

“다른 사람? 누구?”

“응... 도사 할배나 이빨 아저씨한테. 어떠냐?”

주르륵, 휘아가 바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이빨아저씨 것은 다 배웠는데....”

툭 툭, 자그마한 돌조각을 발로 차대는 휘아를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다.

“언... 제?“ 

“이빨 아저씨하고 가끔씩 놀았잖아. 그 때 배웠지.”

“뭐 배웠는데?”

조동인의 대답에 말도 없이 휘아가 풀쩍 뛰었다. 그러더니 갈지자로 몇 걸음을 걷는다. 

“?”

“뭐 배웠냐니까?”

“방금 보여 줬잖아.”

“.....?”

“다섯 걸음이야.“

진형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섯 걸음?”

“응. 이빨 아저씨가 그러는데, 다섯 걸음만 잘 걸으면 당할 자가 없데.”

어이가 없는지 세 사람의 표정이 허탈하게 일그러졌다.

좀 전에 이빨에게 가서 이야기를 했을 때 히죽 히죽 웃던 게 생각났다.

‘이 때려 죽일 놈이 감히 우리 아들을 놀렸단 말이잖아.’

금방이라도 달려가(?) 이빨을 팰 것처럼 주먹을 움켜 쥐었던 진형구는 휘아가 하는 다음 말에 손에서 힘을 풀어야 했다. 

“근데 굉장히 어려워. 일 년이나 배웠는데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거든.” 

컥! 일 년? 다섯 걸음 배우는데 일 년이라고? 

그럼 열 걸음은 이년... 백 걸음은... 우흐흐흐....

“몇 걸음까지 배워야 한다고 하던?”

뚤래뚤래.

“그게 다야.”

크윽! 무슨....

진형구는 실망감을 가슴 저 깊은 곳에 차곡차곡 재워 놓고 입을 열었다.

“그럼.... 도사 할배는 어떠냐?”

“도사 할부지?”

“응. 그 할배는 여러 가지 알고 있을 것 같은 데....” 

“알았어. 그러지 뭐.....”

휴! 다행이다. 도사 영감은 아직 휘아에게 가르쳐 준 것이 없나 보다. 휘아의 두 눈이 기대감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 보인 것이다.

걸음을 옮겨 사이비도사 영감이 있는 동굴 쪽으로 가려던 휘아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돌아다 본다.

“근데, 아부지. 왜 무적권은 안 가르쳐 줘?”

“음.... 그건 네가 아직 어리기 때문이지. 그거 배우려면 십 년은 더 있어야 되거든. 설마 아부지가 가르쳐 주기 싫어서 안 가르쳐 줄까 그러냐?”

“십 년? 알았어.”

조동인이 근엄한 표정의 진형구를 쳐다본다. -무적권이 뭔데?-하는 눈으로.

여강두가 화난 표정으로 진형구를 노려 본다. -그런 것 있으면 진작 내놓지 왜 이제 말해?- 하는 눈으로.

마침내 진형구의 고개가 푹 수그러졌다.

‘씨팔! 그런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심정을 니들이 알어?’

도사 할배라 불리는 자는 진형구가 들어 왔을 때도 할배였다. 그리고 이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물론 할배다.

진형구는 그가 사이비 일거라 생각했다. 무슨 도사가 귀신을 제일 무서워하고 점도 칠 줄 모른단 말인가?

진형구는 도사에게 그에게 물었었다. 

“내가 언제나 나가겠소?”

도사가 대답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점을 쳐 보면 되잖소?”

“그 정도 도사면 내가 미쳤다고 여기 들어와 있냐?”

결국 자신이 잡혀 올 줄도 몰랐단 이야기. 역시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사이비가 분명했다. 

그가 아는 도사는 그런 것 정도는 점을 쳐서 알아내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 도사할배는 제일 구석진 동굴에 기거한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혼자서 지낸다. 뇌호혈도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는지 가끔씩 정신이 돌아 온다. 그 때마다 그는 벽을 향해 절을 하던가, 아니면 멍하니 컴컴한 천장을 바라보며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린다. 마치 무슨 저주를 거는 듯한 이상한 주문 이었다.

진형구와 휘아 등이 동굴을 들어가자 도사할배의 기침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요즘 몸이 부쩍 안 좋아졌다. 그래서 철광석을 캐는 일에서도 제외 되었다.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다 그러려니 할 정도로 나이도 먹었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다만 눈빛 하나만은 아직 누구 못지 않게 반짝였다. 그것만이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의 증거였다.

오늘도 동굴 안에서 기침소리와 함께 쏘아보는 도사할배의 눈빛이 보인다.

“무슨.... 쿨룩 쿨룩.”

“잘 있었소?”

진형구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어디나 마찬가지로 지저분한 동굴이었다. 이런데서 수십 년을 살아 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험 험. 뭐 좀 부탁할 일이 있소만.”

“크큭.... 이 정신도 없는 늙은이에게 무슨 부탁이란 말인가?”

“오래 산만큼 배운 것도 많으리라 생각하오. 해서 말인데.... 우리 휘아에게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 주시오.”

도사할배가 잠시지간 기침을 멈추고 진형구를 쳐다 보았다. 그가 진형구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아는데는 굳이 많은 시간이 필요 없었다. 진형구가 그를 속여서 이득 볼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이 곳에 들어온 것이, 아마..... 사십 년은 됐을 것이오. 알고 있던 것도 다 잊어버릴 만큼의 세월이오. 그래도 상관 없다면...”

“물론 아는 만큼만 가르치면 되오. 우리도 할배에게 모르는 것을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니까.”

“쿨룩 쿨룩, 알... 겠소.”

그 날부터 휘아는 도사할배의 동굴을 뻔질나게 드나 들었다. 휘아가 그 곳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세 아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저 휘아가 자신들을 닦달하지 않는 다는 것만이 마음에 들 뿐이었다.

“휘아야....”

“응. 도사할부지. 이제 정신이 들어?”

“그래.”

도사할배의 얼굴에 씁쓰름한 웃음이 떠 올랐다. 

그도 자신이 하루 중 반이상은 정신을 놓고 지낸다는 것을 안다. 그 것이 뇌호혈에 침이 박혔기 때문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정신이 들어 온 시간 만큼은 매우 신중하게 행동했었다. 자신의 사문이 있을 거라 짐작되는 곳을 향해 절을 하며 자신의 죄를 빌었고, 행여나 이 세상에 자신만이 알고 있는 하나의 구결을 잊지 않기 위해서 쉴새 없이 외워 댔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확실히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도사할배의 깊은 두 눈이, 앞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휘아를 바라 보았다. 

불가사의하게도 무저뇌옥에서 태어난 아이. 태어난지 일 년만에 어미를 잃고 혼자가 된 아이. 

성도 모르고 그저 휘아라 불리면서 세 명의 아버지를 둔 아이.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생을 살고 있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세 아버지에 의해 자신에게 맡겨진지 일 년이 되었다.

자신은 휘아에게 도덕경 따위의 경전을 가르칠 생각은 애시당초 없었다. 자신이 가르칠 것은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아이가 훗날 밖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험한 세상에서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이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사십 년간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심지어는 제정신이 아닌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었다.  

       *              *              *

휘아는 비칠거리며 일어나 앉는 도사할배를 보며 벙긋 웃었다.

"할배, 괜찮아?"

"음... 쿨룩 쿨룩! 휘아를 보니까 괜찮은 것 같구나."

"헤헤..."

벌써 일 년, 그러니까 천공의 빛이 무려 삼백 육십 번이나 바뀌었다. 

그간 도사할배가 가르쳐 준 것은 두 가지 뿐이었다.    

그 중 하나가 신주령의 법문. 도사할배가 정신이 날 때마다 중얼거리던 바로 그 법문 이었다. 

어디에 쓰는지도 모른다. 

무슨 특별한 효능이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도사할배가 무조건 외우라고 하니 외울 뿐이다.

헌데 어찌나 긴지, 머리 좋다는 휘아조차 닷새가 걸려서야 외울 수 있었다. 그 뒤로도 도사할배는 틈만나면 휘아에게 그 긴 구절을 외워 보도록 했다. 

휘아는 조금 질리기는 했지만, 그 긴 구절의 신주령을 외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 마지못해 신주령을 외워 댔다.

세 아버지가 '저 놈도 미쳐 가는 것 아녀?' 하며 걱정을 할 정도였다. 

또 다른 하나는, 그저 할배가 세상을 떠돌아 다닐 때 보고 들었다는 일상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버지들처럼 똑같은 것을 반복하지 않고 매일같이 다른 이야기를 들려줘서 조금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그렇게 바람처럼 지나간 시간이었다.

"저 번에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응. 촉산을 넘어 청성산을 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할배가 정신을 잃었어."

"그랬나? 흠... 그래 청성산이 도가의 성지라는 것은 이야기를 했지?"

휘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도사할배가 눈을 반개한 채 말을 이었다.

"청성산 중턱에는 천사동이 있단다. 헌데 천사동의 건물을 돌아가면 몇 개의 동굴이 있지. 그 중에는 옛날 후한 때 장릉이 수도했다는 동굴도 있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동굴도 여러 개가 있단다. 이 할배의 친구 중 한 사람이 바로 그 곳에서 도를 닦고 있었단다. 헌데 어느날 신선같은 노인이 나타나더니 친구에게 그러더란다. '도는 도인데 헛 도를 닦고 있구나.' 그래서 친구가 물었단다. '그럼 진짜 도라는게 뭡니까?' 신선같은 노인이 말했단다. '항상 네 앞에 있었지 않느냐!' 그 후 그 친구는 청성산의 동굴을 박차고 나와 그 신선같은 노인을 따라 다녔단다. 쿨룩... 으음. 그 친구 지금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은 얻었는지......"

도사할배가 말을 멈추자 휘아가 이 때라는 듯 물었다.

"그럼 내 앞에도 도가 있는 거야?"

도사할배가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앞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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