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50/200)

맑은 하늘빛 청삼을 입은 삼십 초반의 장한 한 명과 무저뇌옥의 간수로 보이는 갈의무사 두 명이었다. 

청삼인은 신분이 매우 높은 자인 듯, 두 명의 간수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피범벅의 여인 한 명이 바구니에 담긴 채 구겨져 있었다.   

무저뇌옥에서 그런 상태에 처할 사람은 죄수 뿐이었다. 

두 간수 중 오른 쪽에 있던 자가 고개를 들어 청삼인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할 건지를 묻는 눈빛으로. 

하지만 청삼인의 눈은 바구니의 여인에게로 고정된 채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눈에서는 연민과 동정, 조소가 조금씩 섞인 묘한 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바구니 속의 여인이 장한을 향해 불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묻는다.

'왜? 당신이.......?'

어제 저녁 사랑하는 이가 찾아와 같이 차 한 잔을 마시다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은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전신이 갈가리 찢긴 채. 

꿈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꿈이어야 했다.

하지만 전신을 타고 오르는 고통은 지금 상황이 결코 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헌데 왜 저 사람은 나를 바라보고만 있단 말인가. 왜? 왜?!

"미안하오. 이럴 수 밖에 없는 날 용서치 마오."

청삼인의 전음에 고막이 천둥처럼 울어 대자,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에 한기가 서렸다.

'이해할 수가.... 어떻게 당신이 나를......'

"이해해 달라 않겠소. 그러기에 너무 늦었다는 것을 나도 아니까."

마침내 얼음보다 차가운 한 방울 눈물이 맺혔다.

'이렇게 끝나는가요? 당신에게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는 게 원망스럽군요. 그래서 한 때는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당신에게 맡기고 살아 왔거늘.....'

눈물이 갈가리 그물처럼 찢어진 얼굴의 상처를 따라 핏물과 뒤섞여 흘러내렸다. 

갈라진 목에서 새어 나오는 그르륵거리는 소리만이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내려라!"

무겁게 울리는 한마디에 물레가 돌기 시작했다. 

세월이 풀어져 내린다. 

희망이, 사랑이, 끝없이 풀리는 동아줄을 따라 땅 속 아득한 곳으로 잠겨 들어간다. 

멀어진다. 십 년간 고이 간직해 왔던 사랑이 떠나간다. 

아무도 알아 주는 이 없어도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생각했건만, 모든 것이 부질 없는 일이었나 보다.

점차 멀어지는 구멍이 악마의 눈구멍이 되어 쳐다보고 있다. 

눈을 감고 싶지만 행여나 잊혀질까 감을 수가 없다. 

그도 여전히 나를 쳐다 보고 있다. 귓볼을 긁적이며 잠시지간 아래를 내려다 보던 그가 하얗게 웃으며 뒤돌아 서더니 그대로 떠나간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연민이나 동정, 그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고통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심장이 수십 번 찢겨 나가는 고통을. 나 역시 그러했으니까....'

왜.... 왜 그는 나를 버려야만 했을까.....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다 거짓이었단 말인가?

구월 삼일. 

혈사궁의 첩자라는 혐의로 조씨성을 가진 시비가 망형(罔刑)을 당한 채 지옥의 무저뇌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철혈성 내 일꾼들 사이에서 돌았다.. 

그리고..... 한 여인이 심처 깊은 곳, 자신의 방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구월 사일.

"왜? 왜? 내 곁을 떠나야만 했단 말이오? 조금만 더 기다려 줄 것이지... 그토록 나를 못 믿었단 말이오?"

한 남자가 울부짖었다. 

"찾을 것이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을 찾을 것이오! 그 누가 반대한다 하더라도 당신을 나의 곁에 있게 만들 것이오!"

떠나간 사랑을 찾아 천근 만근 무거운 눈물을 흘리던 남자가 부와 명예를 훌훌 던져 버리고 자신의 거처를 뛰쳐나갔다. 

            *        *        *

까마득한 하늘에서 비치는 희미한 빛만이 모든 것인 어둠 속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옷이라 불리기 보다는 거적이라 불려야 할 천을 몸에 두른 자들이었다. 그 중 너무나 말라서 해골에 거죽만 씌운 것 같은 자가 투덜거리며 입을 열었다. 

"제기랄! 일 년만에 들어 온 신참이 다 죽어가는 계집이라니...."

"돌팔이 의원이 보기엔 어떠냐? 죽겠냐? 살겠냐?"

몸집이 큰 괴인의 물음에, 다 떨어지긴 했지만 의원복처럼 보이는 옷을 입은 염소수염이 대답했다.

"돌대가리야. 이 계집은 살아 있는 게 신기해 보일 정도인데 살았으면 뭐하겠냐. 말도 할 수 없고, 다리도 못쓰고, 팔도 못쓴다. 거기다 얼굴하고 거기(?)를 알아 볼 수도 없이 칼로 그어 놨다. 그야말로 완벽한 병신이다. 제기랄!"

염소수염의 말에 한쪽에서 쪼그리고 앉아 눈을 빛내던 빼빼 마른 자가 침을 내뱉으며 말했다. 

"퉤! 씨불, 일도 시킬 수 없게 잘도 부숴놨구만. 어떤 놈인지 몰라도 그저 그것(?)대가리를 망치로 짓이겨 버려야 돼."

머리카락하나 없는 돌대가리가 인상을 잔뜩 쓰며 빼빼 마른 자를 쳐다봤다.

"빼빼야, 그럼 지금 죽일까?"

빼빼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지금 죽이는 게....."

그 때였다.

"어?"

염소수염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놀라 소리쳤다.

돌대가리와 빼빼가 동시에 염소수염을 쳐다봤다.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그러자 염소수염이 멍한 눈빛으로 말했다.

"있다!"

뭐가?

"뱃속에 있어."

글쎄, 뭐가?

두 사람의 눈이 잡아먹을 듯이 염소수염을 쏘아 본다. 그제야 염소수염이 사태를 눈치채고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아는 바를 털어놨다.

"이 계집은 임신을 한 계집이다. 뱃속에 아기가 있어."

멍청하니 염소수염을 바라보던 돌대가리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돌팔이 말이 정말일까?"

그의 말에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인 빼빼가 말했다.

"돌팔이가 여기에 잡혀 온 이유가 뭣 때문이냐? 임신해서는 안될 년이 임신 했다는 것을 알아서 아니냐고?"

"그럼?"

돌대가리의 눈이 홱 돌아가 아무렇게나 놓인 채 널브러져 있는 여인에게로 향했다.

"정말이면 죽이지 말자!"

빼빼가 묻는다.

"왜?"

"....그냥. 심심하잖아....."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다. 아기가 어떻게 나오는지...

             *          *           *

얼마나 지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충 칠 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어둠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축복? 있었다.

염소수염의 돌팔이 의원이 인상을 쓰며 아기를 받아 내다가 아기가 제 어미의 자궁을 뚫고 나오자 만세를 불렀다.

돌대가리 길거리 차력사가 헤벌쭉 웃으며 벽을 들이 받았다. 신기하다는 이유로. 쿵쿵쿵.....

빼빼마른 삼류무사가 처음으로 따뜻한 눈빛을 보이며 축복했다. 그리고 자신있게 말했다. 

"너는 이제부터 내 아들이다!"

그말에 돌팔이 의원의 염소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돌대가리의 이마가 번쩍 번쩍 빛났다.

어쩔 수 없이 빼빼는 자신의 뜻을 굽혀야만 했다.

".....우리들의 아들이다."

"진작....."

"그럴 것이지."

우하하하!!! 우리들에게 아들이 생겼다!

세 사람이 춤을 추며 아기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세상이 어떻게 생각해도 좋았다. 

천하가 어떻게 돌아가도 상관이 없었다. 

그들에겐 오직 오늘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그들의 고생이 시작됐다.

크흑! 젠장! 제기랄! 뭐가 이래? 아기 키우는 것이 뭐이리 힘든 거야?

동굴의 깊숙한 곳에는 거대한 지하호수가 있었다. 모든 죄수들의 식수원이자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다리를 못쓰는 죄수들이 그 곳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멀었다. 단지 물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기에 갈 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그 곳을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기의 아비되기를 자청한 세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똥을 쌌을 때 그대로 놔두었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동굴은 아이의 울음소리만이 존재하는 괴로움의 대지가 되어 버렸다. 

세 사람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별 짓을 다해봤다. 심지어 돌대가리는 아이가 심심해서 그럴지 모른다고 다리를 잡고 뺑뺑이를 돌려 댔다. 그러다 하마터면 아이를 죽일 뻔 했다. 미친 놈!

다행히 염소수염이 그 원인을 밝혀 냈다. 그래도 의원이랍시고. 

원인은 다름이 아니었다. 아이의 연약한 피부가 똥독을 견디지 못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다. 

세 사람은 그 때부터 아이가 똥을 쌀 때마다 지하호수까지 들고 가서 씻겨 줘야만 했다. 적어도 하루에 열 번은 지하호수를 들락거려야 했다. 싸기도 많이 싼다. 지어미 젖 밖에 먹지도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세 사람의 입가에선 웃음이 가실 줄을 몰랐다. 힘이 들다가도 아기가 방긋 웃는 모습을 보면 힘들었던 모든 것이 녹아 내리는 것이다.

오물거리는 입으로 말 못하는 제 어미의 젖가슴을 빠는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캬아! 이게.... 아버지가 된 즐거움이구나!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아이를 낳은 후, 점점 약해져만 가던 이름 모를 여인이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남은 것이라고 차디찬 시신과 피로 물든 헝겊같은 옷자락 뿐이었다. 세 사람은 침울한 표정으로 여인을 위해 돌무덤을 만들어 줬다. 하지만 여인을 위해 울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아름답고 밝게 살라는 뜻으로 휘(徽)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전보다 더 정성을 다해 아이를 키웠다. 

성은..... 없다.

안 지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문제는....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진휘가 그래도 제일 품위가 있잖냐!"

"뭔 소리! 조휘가 제일 멋진 이름이야!"

"어.... 여휘는 어때?" 

칼만 안 들었지 전쟁이었다. 세 사람의 전쟁. 소리없는 전쟁.

세 사람은 사흘간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결국은 나중에 휘아에게 맡기자는 결정을 하고 서야 무언의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그들은 결코 입 닫고 살 수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전쟁을 끝낸 그 날, 그들이 어찌나 입이 닳도록 떠들어댔는지 뇌옥의 죄수들은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어둠만이 있는 세상도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었다. 

겨우 걸음마를 할 줄 알던 아이가 어느새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고개만 돌리고 나면 변한 아이의 모습에, 세 사람은 세월이 흐르는 것도 잊을 지경이었다.   

                 *              *                   *

본래 무저뇌옥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든 힘을 금제 당한다. 그러다 보니 무공이 강한 자일 수록 더 심한 금제가 가해진다.

단전이 부숴지는 것은 기본이다. 그럼 내공이 강했던 사람일 수록 더 극심한 타격을 받는다. 

그 다음 두 다리의 근맥을 절단하고 회음혈을 건드려 불구를 만든다. 말 그대로 앉은뱅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럼 강한 무공을 익혔던 사람일 수록 절망감이 더 심해진다.

그러나 대부분은 절망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왜냐고? 뇌호혈에 침이 박힌 자는 거의 모두가 백치 바보가 되기 때문이었다. 멀쩡한 것은 오직 손 뿐이었다.

손의 근맥을 자르지 않는 것은 별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무저동에서 발견된 철광석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손 마저 못 써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철광석이 발견되자 철혈성의 조사관이 내려왔었다. 광석에 대한 전문가를 데리고. 

그 전문가 왈. 

‘일꾼을 시켜 봐야 돈도 안될 정도로 적은 양이오.’

그 때부터 철광석을 캐는 일은 죄수들의 몫이 되어 버렸다. 

대신 철광석을 캐서 바구니에 담아 올려 주면 먹을 것을 더 내려 보내 주기로 했다. 

죄수 중 이십 육 명은 강호에서 일류 이상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런 저런 죄로 무저뇌옥에 갇혔다. 철저한 금제를 받고. 

그러나 세 사람만큼은 철저한 금제에서 조금 제외된 경우였다. 

그들의 무공이 삼류도 못 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철혈성으로서도 조금은 미안한 감이 들었는지, 그들의 뇌호혈만큼은 금제를 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셋 중 제일 먼저 무저뇌옥에 갇힌 빼빼는 실수로 잡혀 온 전형이었다. 재수 없으면 앞으로 넘어지고도 뒤통수가 깨진다고, 그는 일류고수들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가 그만 그들과 한 묶음으로 무저뇌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항상 그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다. 

"조또! 쌈구경 좋아하다 신세 더럽게 꼬였네."

그는 삼류무사였고, 내공도 일천하기 짝이 없었다. 

단전이 파괴되고 다리의 근맥이 잘리자 그는 절망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었다. 그래서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 갇힌 무저뇌옥에서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며 싸움을 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그는 새로운 삶에 적응을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무저뇌옥의 죄수들 중 그를 이길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염소수염과 돌대가리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 일이 있은 지 일 년 후, 염소수염이 들어왔다. 그가 의술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빼빼는 그를 어찌 하지 않았다. 나중에 언제 아플지 모르는 게 인생사니까.

염소수염은 본래 제법 이름을 날린 의원이었다고 한다. 아무도 믿는 사람은 없지만.

그는 알아서는 안 될 사실을 안 죄로 무저뇌옥에 갇혔다. 

그는 본래가 의원인데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기에 단전이 부숴지고도 다른 사람보다 타격을 덜 받았다. 그렇다고 다리의 근맥이 잘리는 고통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틀 밤낮을 고통에 시달리다가 나중에 들어 온 돌대가리의 박치기에 얻어 맞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이틀의 간격을 두고 돌대가리가 들어왔다. 대장 자리를 놓고 그와 한바탕 싸움을 벌려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에게는 잔머리가 없었다. 돌대가리는 있어도. 

“이 곳에선 머리 쓰면 반칙이다!”

그 덕분에 겨우 무승부를 이룰 수 있었다.

돌대가리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자를 머리로 받아 버리는 바람에 잡혀 왔다. 뒤통수를 받힌 그자는 현장에서 즉사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철혈궁의 당주라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한 짓이 있는지라 죽이지는 않고 무저뇌옥에 내려 보낸 것이다. 

돌대가리는 차력술을 익혔지만 내공을 익히지 않았다.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서. 그래서인지 금제를 받고도 앉은뱅이가 되었을 뿐 힘은 죄수 중 누구보다도 셌다.

결국 셋은 의기투합 해서 무저뇌옥을 지배하기로 암중합의를 보았다.

염소수염은 의술을 배워서인지 잔대가리를 잘 굴렸고, 돌대가리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빼빼는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무저뇌옥의 지배자가 되었다. 

누구도 그들에게 대들 수 없었다. 십 수년이 흐르는 사이에 열 명이 죽어 묻혔다. 그래도 대장은 여전히 그들 세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 위에 한 사람이 더 올라섰다. 그는... (사실 그라고 하기도 뭐 하지만) 세살박이, 그들의 아들 휘아였다.      

말을 배우기 시작한 휘아의 행동은 예측불허였다.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세 사람은 한시도 휘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저뇌옥의 유일한 입구, 천공(天空)에서 빛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시간만 되면 항상 한자리에서 빛이 사라질 때까지 지낸 다는 점이었다. 

그 때가 세 사람이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한쪽 구석에서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아마 휘아에 대한 문제 때문일 것이다.

세살이 되고 제법 또렷하게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것 저것 묻기 시작하더니, 네 살이 되니 대답이 궁한 물음이 많아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했었다.

"빼빼 아부지. 왜 돌을 파는 거야?"

"그래야 먹을 걸 주거든."

"아부지. 그럼 나는 돌도 안 파는데 왜 먹을걸 주는 거야?"

"휘아 것은 아부지들이 대신 파거든."

그 날부터 휘아는 철광석을 나르는 일을 했다.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기특한 아이였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세 살짜리 아이가 생각할 수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때부터 웬지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래도 워낙 똑똑해서 그러려니 했었다.

그러나 하루 하루가 지날 수록 휘아의 말과 행동이 틀려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석두아부지. 엄마는 왜 죽었어?"

"어.... 그건.... 아퍼서." 

"염소아부지. 왜 나는 여기 사는 거야?"

"응? 어, 그건..... 네가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이빨 아저씨가 그러는데 여기 말고 바깥 세상이 있다고 하던데. 거긴 어디야? 여기보다 이만큼 넓다는데...."

자그마한 팔을 있는 대로 벌리는 휘아를 바라보며 염소수염은 그 말을 한 놈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작심했다. 어린 가슴에 불씨를 던지다니.... 나중에 자신들이 가르쳐 줄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날, 죄수들 중 가운데 이빨이 빠져 이빨아저씨라 불리며, 그나마 제 정신을 조금이나마 유지하고 있던 이진생은 마침내 어금니까지 빠지는 수모를 당하고야 말았다. 염소수염의 지시를 받은 돌대가리에 받혀서.   

그리고 그 때부터 휘아의 질문은 바깥 세상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끙끙거리던 세 사람 중 제일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역시나 염소수염 돌팔이 조동인이었다.

"조금 빠르긴 하지만 휘아가 영리하니까 우리가 아는 것을 가르치자구."    

그 말에 눈만 껌벅이던 돌대가리 차력사 여강두가 말했다.

"아는 게 뭔데?"

"......."

"험. 험.... 나는 무공을 가르칠까 하네만. 자네들은?"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은 빼빼 삼류무사 진형구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러자 뒤질세라 조동인이 말을 잇는다.

"나는 의술을 가르치겠네."

순간 자신있게 튀어나오는 여강두의 큰소리.

"그럼 나는.... 박치기를 가르치지."

"....."

지지 않겠다는 듯 자신있게 소리치는 여강두의 말에 어이가 없는지 두 사람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다....

"휘아 머리 부술 일 있냐?!!"

진형구의 핀잔에 여강두는 웅얼거리는 한 마디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내가 아는 것은 박치기 밖에 없는데...."

"그러지 말고 휘아 체력훈련을 네가 담당해라. 그래도 차력사 아니냐. 너 배울 때처럼 가르쳐."

진형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조동인, 그가 생각해봐도 여강두의 역할은 그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좋아할 줄 알았던 여강두가 창백한 안색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 왜?

'세상에.... 이제 네 살짜리 아이를 어떻게 죽기 직전까지 굴리라고..... 지독한 놈들.'

"에라이! 나쁜 놈들!"

".....?"

어쨌든 각자가 할 일이 정해지자 조동인이 휘아를 불렀다.

불려 온 휘아는 세 아버지가 신중한 표정으로 자기를 바라만 보고 있자 의아한 얼굴로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염소아버지, 빼빼아버지, 석두아버지, 왜 불렀어?"

"음.... 어험! 휘아야."

조동인의 부름에 휘아가 눈을 또랑또랑 빛내며 빤히 바라본다.

"응."

"우리 휘아는 똑똑하니 아버지들 말을 잘 들을 거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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