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마마께 선사합니다 하시면서 바구니에 든 큰 알을 주시는 것이야?
얼마나 큰 알인지 두 손에도 넘치어 마루에 놓아두었기로 어진 이가 빙그레 웃으시며
어마마마 소원을 풀어드릴 것입니다 하시었지. 그러다 꿈에서 깬 것이야. 생생하고
기이하니 필시 중전께서 회임하실 꿈이라오. 두고 보시오."
중전마마 회임이라 하늘의 일이니 태몽으로 그 소식을 미리 알리는 것이라.
"실은 이 근래 저가 다소 몸이 이상한 고로, 지난달 손님을 아니 하였습니다.
이 달서도 아니 오시니 벌써 닷새라, 저가 그 소식이 아닌가 기대리고 있는 중입니다,
할마마마."
발갛게 얼굴을 붉히며 중전은 아뢰었다. 그 말씀을 왕대비전에 먼저 알리고자 나온 걸
음이다. 왕대비마마 후덕한 옥안에 그만 함박웃음이 머금어졌다.
"아이고, 필시 회임한 것이오! 아마 속이 메슥거리고 신 것이 먹고 잡을 것이다? 그런
기색이 없소?"
"오직 시큼한 하귤만 먹고 잡아서 며칠 연하여 그것만 까먹고 있는 중입니다.
전하께서는 그저 시고 맛이 없는 것을 무슨 재미로 그리 까고 있느냐 타박하시었는데,
짐자기에 그것이 그 이유인 듯 싶습니다."
"맞소이다. 회임을 하셨소! 아이고, 부처님. 참말 감축할 일이다. 주상은 알고 계시오?"
"아직은.... 부끄럽기도 하고요. 확실치도 않는데 미리 말씀 드리었다가 아니면은 실망
하실까 봐 입을 뗄 수 없었나이다. 좀 더 자세하여진 후에 저가 말씀 드리려고요.
실상 회임이라 제일 기다리시는 분이 할마마마이시니 먼저 알려드리고 싶어 왔나이다."
"전의태감을 부를 것이다. 확인을 하여야지. 필시 회임하신 것이야! 내 말이 분명하오.
게 뉘 있느냐? 당장에 홍준이를 들라 하여라."
전의태감을 찾는 왕대비의 목소리가 흥분에 떨리었다. 어느새 그 목청에 물기마저 끼였다.
실로 경사라. 정궁이 회임을 하였다. 이제야 비로소 사직이 반석이며 상감이 열성조 앞에
낯을 들 것이다 싶으시다.
주상의 보령 스물 넷. 월성궁 고 간교한 계집에 미쳐 천지분간 못하던 이후에 강건하고
기력 넘치는 분이라. 제법 여인네 재미를 알게 되었다.
조모이시다. 왕대비마마는 방탕하다 남들이 전부 비난하는 주상의 그 속내를 홀로 짐작
하였다. 사내의 욕정을 채우려는 것만 아니라 천지간 외로운 터이니, 포근한 여인네들
품안에서 잠시간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려 함이겠지. 이리저리 안타깝고 짠하여 마음이
아팠다. 헌데 승은 받은 계집아이들이 많다 하는데 한번 회임하였다 하는 소식이 없구나.
은근히 근심하였다. 설마 월성궁 계집이 제 소생 후사 노리며 승은 입은 계집들에게 수를
쓰고 있는 줄은 짐작 못하였다. 혹여 주상이 겉보기 강건한 것과는 달리 후사를 둘 힘이
없는 것이 아닌가. 깊은 근심으로 밤마다 홀로 한숨이셨다.
그런데 작년에 중전이 후원을 거닐다가 연못에 빠진 터로 얼떨결에 회임한 아기씨 낙태
하였다는 기함할 소식을 전하여 들었다. 비록 아기씨를 잃은 것은 안타깝고 통분할 일이
었으되 중전이 회임하였다 함은 주상이 후사를 둘 힘이 있다 함의 증명이 아니냐.
그나마 주상의 용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니 다행이로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헌데 어째서 그 동안 다른 계집에게는 회임 소식이 없었을까? 실로 이상하다.
혹여 월성궁 요 계집이 제 소생더러 보위 넘보는 수작을 하고자 승은 받은 여아들에게
요상한 수단을 부렸던 것은 아닐까. 맞춤하여 진성대군께서 조목조목 짚어내는 이야기
가 왕대비마마께서 의심하시던 것과 딱 맞춤이었다. 괘씸하고 통분하시었다.
간악한 월성궁 고 계집을 당장에 잡아다가 꿇어앉히고 네 년이 무슨 수단을 부리었는지
말하여라! 하고 대 호령질을 하고 싶으셨다. 허나 증거가 없으니 어찌할 것이더냐?
간교한 것이 수단은 능하여 일을 처리하는 솜씨가 미꾸라지처럼 교활하니 심증은 가되
물증을 잡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천운이었다. 중전이 비록 용체 상한
터이나 앞으로 다시 회임 하는 데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였다. 주상이 중궁전 어진
덕과 고운 정성에 마음을 돌이키어 그 정분이 실로 첩첩하며 한마음이라.
전화위복이로구나. 왕대비께서 신임하시는 전의감 홍준이 한 날 조용히 말하였다.
"한번 회임하신 터이니 옥체가 편안하여지면은 금세 아기씨께서 다시 들어설 것입니다.
허니 인제는 기다리면은 되시는 것입니다."
달마다 좋은 약제 골라서 중궁전에 보내었다. 몸에 좋다 하는 음식이 있으면 붉은 보
씌워 교태전부터 보내신 참이라. 왕대비전 당신은 궐에 들어오시어 당당히 두 아드님과
한 따님 생산하시었다. 정궁으로서의 직무를 다한 것이며 또한 그 첫 아드님으로 대통을
이으셨다. 헌데 어질고 총명하며 그토록 효심 지극하고 현명하시던 아드님 선대왕은 실로
인생으로 치면은 박복하였다. 두 분 얻은 정궁마마 모다 생산 한번 못하고 요절하였다.
두 후궁에게 겨우 소생을 보았으되 따님인 의완 옹주는 일곱 살에 잃어버리는 참척을
당하였다. 오직 한 분 아드님 금상을 얻어 귀애하고 다정하게 쓰다듬으시었으나 금세
큰 병 들어 일어나지도 못할만큼 기력이 쇠하여졌구나. 그 병도 대가뭄이 들어 비오기를
기원하며 고생하시다가 들은 큰 병이었다. 그 꼴을 바라보며 어미 된 왕대비마마.
간담이 얼마나 끊어졌을 것이더냐? 그 와중에서도 금침에 누워 정사를 보신다고 피를
토하면서도 상소를 읽으신 이였다. 어린 금상 남겨두고 훙하실 때에도 차마 눈을 감지
못하였다.
"어마마마. 어린 저것 하나 두고 가지 못합니다. 제발 짐을 살려주십시오."
피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차마 눈도 감지 못하고 돌아가셨지. 그리고 보위에 오른 금상
나이 겨우 열한살이 아니었던가? 궐에서 태어난 아기씨 남은 분이 오직 주상 한 분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끊어진 지 벌써 이십여 년이었다.
그런데 이제 정궁 몸서 이기씨 있다 하는 소리 들으셨다. 어찌 가슴이 아니 설레고 어찌
흥분이 아니 될 것이더냐? 전의태감 홍준이 당장에 불려와 윗목에 좌정하였다.
중전마마 팔목에 실이 묶여 윗목으로 넘어간다. 홍준이 숨을 가다듬고 진맥을 하기 시작
하였다. 왕대비마마께서도 중전마마도 옆에 앉은 아랫것들도 모다 두근두근 하는 것이라.
한참 동안 눈을 감고 태맥을 살피던 홍준이 환하게 웃으며 고두하였다.
"실로 감축 드리옵니다, 마마. 회임하셨나이다. 이제 석 달이 넘어가는 고로 팔월 초면은
아기씨마마께서 탄생하실 것입니다. 감축, 또 감축 드리옵니다."
"일어나시오! 당장에 내가 대궐로 들 것이다! 주상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여야 하지
않소! 어서 가마 대령하여라. 중전과 내가 대궐 들 것이다."
당장에 자리 차고 일어나시며 가마 대령하라 하시는 왕대비마마,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눈물이다. 중전마마 고개 숙이고 상궁 부액을 받으며 살며시 일어서시었다. 숙인 볼이
복사빛이었다.
"발길 조심하여라. 옥체에 탈이라도 나시면 아니 되느니라. 늦어도 좋으니 그저 조심하여
살살 움직이거라!"
당부 당부하시었다. 가마 안의 왕대비마마, 그저 감사하오, 고름으로 눈물을 훔치었다.
'홀로 두고 떠난 어린 금상 못 잊어 저승에서까지 이리 마음을 써주신 것이오?"
꿈에서 본 아드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흐르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였다. 저가 어마마마
소원을 이루어 드릴 것입니다 하였던 목소리에 왕대비마마 자꾸만 눈물이 난다.
뒤의 연에 타신 중전마마 자꾸만 입가에 매화꽃 같은 미소가 머금어진다. 얼마나 전하께서
좋아하실까? 가슴이 절로 두근대고 설렜다. 어젯밤도 주무시며 아직은 납작한 중전의
아랫배를 살살 어수로 만지작거리신다. 예에 우리 아기씨가 들어 있으면은 참말 좋겠다
소원하였다.
"짐과 중전 닮은 아기씨이니 잘나고 영리할 게야. 아기씨가 태어나면은 음, 중전, 직접
젖 먹여 키우소? 짐은 생모마마 젖 한번 먹지 못한 고로 그것이 늘 슬퍼. 우리 아기씨는
어진 어마마마 품 안에서 행복하게 구김살 없게 자라도록 하십시다. 응?"
이미 회임한듯 하옵니다. 목까지 올라온 그 말을 전하께는 못하였다. 짐작은 하였지만은
아직 확실치 않으니 그저 웃고 말았을 뿐이다.
그때 전하께서는 편전에 앉아 조참을 보시고 있었다. 중신들이 들며 나며 교서 받잡고
일들이 되어 가는 추이를 보고하고 하명 받아 나가는데 어쩐지 용안이 봄바람이다.
싱글벙글. 어찌 저리 전하께서 기분이 좋으신가? 전부다 궁금해 하는구나. 오직 한 사람
전하의 속을 짐작하는 이는 도승지 황이뿐이다.
아침에 나가자말자 왕은 소격전의 태사를 불러냈다. 물론 전날 밤 백호 꿈의 해몽을 듣고
자 하심이었다.
"맞사옵니다. 중전마마께서 회임하실 태몽이 분명하옵니다. 호랑이라 함은 백수의 제왕
이니 분명 귀한 아드님이실 것이며 게다가 백호는 영물입니다. 그 아기씨마마는 필시
천하를 호령할 기상과 용체를 가진 분이라 짐작되옵니다. 게다가 감히 전하의 용체를
타고 올랐다 하니 전하의 영명한 기상과 덕을 뛰어넘을 명군이 되실 분이라 사료되옵
니다. 감축드리옵니다. 전하."
이런 말을 들었는데 어찌 기분이 붕 뜨지 않을 것이냐? 참으려 하여도 자꾸만 실쭉
웃음이 스며 나오는구나.
"윤대관을 만날 것이다. 병조좌랑을 들게 하라."
내관에게 하명하는 목청이 밝고 맑다. 성상의 옥음을 들으면서 도승지는 빙그레 미소만
짓고.....
점심 끝내고 주강시각. 기오헌에 앉아 대제학과 영의정으로부터 학강을 들으시던 전하,
갑자기 바깥이 떠들썩하여 이맛살을 찌푸렸다. 공부 중에 어인 소란이냐? 버럭 한마디
하시었다. 문밖에 있던 장내관이 흥분한 목청으로 아뢰었다. 그는 이미 윤상궁에게
중전마마 회임소식을 귀띔 받은 후였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왕대비전하께서 중전마마와 더불어 잠시 알현을 청하시옵니다."
"할마마마께서 편전까정 나오셨다고? 무슨일이 있으신가? 어서 뵈시어라."
왕뿐만 아니라 대제학이며 영의정까지도 해연히 놀랐다. 왕대비께서 수렴청정을 거두신
이후에 정사와 관계된 곳을 일체 피하셨다. 궐 안의 행사가 아닌 다음에야 성덕궁에
듭시는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으되, 하물며 편전에 나오신 것은 더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중전까지 같이 나왔다 한다. 필시 내전에 무슨 큰 사단이 생긴 것이라 짐작하
였다. 왕은 급한 목청으로 뫼시어라!하고 소리쳤다.
문이 열리고 왕대비께서 듭시었다. 인사를 하는 대제학과 영의정조차 본듯 만듯 지나치
시었다. 그만큼 흥분하신 것이다.
"할마마마, 어찌 옥보를 하셨는지요? 내전에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걱정이 되어 성급히 묻는 왕 앞에서 함박웃음. 자리에 좌정하신 노인께서 상감의 어수를
꽉 움켜잡았다.
"주상, 이 할미가 너무 즐거워서 한달음에 달려 나왔소. 중전께서 회임을 하시었어요.
달거리 거르시고 자꾸만 시큼한 하귤만 먹고잡다하시니 내가 듣기 딱 회임이라, 진맥을
한 것인데 두 달 꽉 차, 인제 석 달로 넘어간다 합니다. 팔월이면은 덩실하니 아기씨 생
산하실 것이라 하오. 어찌 즐겁지 않을 것인가? 사직의 대통이 이어질 참이니 이 할미가
너무 기뻐 눈물이 납니다."
왕은 너무 놀라서 잠시간 입이 막히었다. 너무 기쁨이 격하면은 사람이 순간적으로 멍
청하여지는 법이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정궁의 회임 소식 앞에서 딱 말문이 막히고 말
았다. 왕대비마마와 중전의 얼굴만 번갈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어젯밤 꾼 꿈이 태몽이라. 밤에 중전에게 이 이야기를 하여 주어야지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금세 회임 소식을 듣게 될 줄은 짐작하지 못하였다. 요 며칠간 시금털털
맛 하나 없는 하귤만 늘 까고 있기로, 그것이 회임한 징조였구나!
"아이고, 중전!"
체통이고 위엄이고 다 벗어 던졌다. 단번에 환호작약하였다. 옆에 앉았던 대제학과 여의
정도 너무 반갑고 즐거운 소식이라 벙싯 웃으며 감축 드리옵니다! 하고 한 목청으로 치
하하였다. 다만 너무 기쁘고 행복할 뿐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즐거운 소식을 마침내
들었다. 가슴이 설레고 눈앞에 다 환하였다. 체면 따윈 다 내던지고 정준마마 앞으로
한무릎 다가앉았다. 작은 손 꽉 부여잡고 다시 한번 재촉하였다.
"할마마마 말씀이 참입니까? 다시 한번 말씀하여 보세요. 정말 중전께서 아기씨를 가진
게요?"
"전의태감이 그러하다 하였습니다 마마, 드디어 신첩이 전하의 지극한 성총에 감은하게
되었나 보옵니다. 지엄한 중궁을 차고앉아 만날 밥벌레 노릇만 하였거늘 이 날서 사람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줍어 고개 숙인 채 마냥 볼만 붉히었다. 모깃소리만 하게 한마디. 어젯밤도 상감께서
아기씨가 있었으면 하고 채근하신 말에 살그머니 되받아친 응석이었다. 앙큼한 고 애교
를 왕인들 모르랴? 핫하하 웃으며 작은 손을 꼭 부여잡았다. 감사하고 애틋한 마음 담아
토닥토닥하였다.
"참으로 고맙구려. 더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할마마마, 소손이 이제야 겨우 사직에
낯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모다 할마마마께서 중전을 잘 보살펴주신 덕입
니다. 중전을 모시고 내전에 들어가십시오. 소손이 일을 끝내고서 금세 들 것입니다.
아,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알려야 할 것이다. 거기 엄상궁 있느냐?"
"예, 전하. 등대하였나이다."
"차지내궁을 보내어 부원군이며 자운궁이며 효성 숙부께도 빨리 알려라. 중전! 나가실때
조심하오. 길이 미끄러우니 혹여 서두르시면 낙상할지도 모릅니다. 그저 조심하오. 금세
짐이 내전 들어갈 것이오."
일단 두 분 내전마마를 아랫것들 시켜 부축하게 하여 내보냈다. 너무 좋아서 싱끗싱끗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세상 전부를 가진 듯, 그리도 고대하던 아기씨 소식을 듣자오신
것이라 그 어찌 아니 기쁠 것인가? 중전이 회임을 하였도다! 우리 아기씨가 탄생하는
것이야. 드디어 후사가 이어질 것이니 비로소 열성조 앞에서 낯을 들 수 있게 되었구나
어이구, 좋을시고! 고운 이가 참말 고운 일만 골라서 하는구나.
한영회와 대제학 심우정 또한 감격하고 반가웠다. 젊은 왕 앞에서 진심으로 축하인사를
전하였다.
"감축 드리옵니다, 전하. 한가위 전에 덩실하니 원자 아기씨를 안고 계실 참이니 어찌
경사가 아니리까? 신들이 그저 기뻐 눈물만 나옵니다."
"핫하하. 짐도 기쁘구려. 인제야 말을 하는데 말야, 어젯밤 영물인 백호가 짐을 타고
누르는 꿈을 꾸었지 무어야? 아침서 소격전 태사를 불러 하문하였더니, 귀한 아드님을
회임할 태몽이다 하였소. 실로 그 꿈이 기막히게 절묘한 것이야? 음, 경들은 들으시오.
짐이 이 기쁜 소식을 듣잡고 마음이 설레어 강학이 눈에 아니 들어 올 것 같구려. 할마
마마께서도 내전 들어 계시니 오늘서는 주강을 이만 할까 하오."
"여부가 있겠나이까? 어서 듭시지요. 신등도 행각 나가서 이 기쁜 소식을 모두에게 전할
까 하옵니다."
들뜨고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책 보따리 싸 들고 두 사람이 나가는 뒤를 따라 왕도
서재를 나갔다. 그들보다 먼저 섬돌을 내려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교자 타고
중궁전으로 사라지는구나. 두 사람은 성상의 성급한 모습을 바라보며 싱긋이 웃음을
나누었다.
"필시 왕자마마이실 게야. 주상전하 씩씩하고 영명하신 기상 받고 나시어 중전마마 야무
지고 어진 덕 내림으로 자라실 테지. 이 나라 으뜸가는 명군이 되실 분이 탄생하실 것이
네. 실로 사직의 홍복이야."
과묵한 영의정이 모처럼 한마디 하였다. 대제학도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한영회의 예측이 정확하였다. 탄생하신 그 아기씨, 바로 단국 역사상 불세출의 명군
익종대왕이 되시었다. 어진 인품과 능란한 국정운영으로 이 나라를 대강국으로 만드신
분이다. 위대한 분의 탄생은 태몽부터 그렇게 범상치 않았다.
두 중신은 대청으로 나아가 중전마마 회임소식을 전하였다. 궐 안팎이 물 끓듯이 난리가
났구나. 온 나라가 기다리던 일이 아니냐. 감축하고 반가운 소식 앞에서 겉으로는 웃되
가슴은 천근만근. 정안로 이하 벽파들의 얼굴은 가면처럼 굳어버렸다.
한편 교태전.
어쩐지 기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였다. 우리 중전마마, 고개 숙인채
방싯 웃고 계시는구나. 대견한 손을 부여잡고 차마 왕은 놓지를 못하였다. 헌데 이게 웬
날벼락? 아뿔싸, 큰일 났다.
"주상, 회임하신 중궁전을 귀애하는 마음은 잘 알지만은 이 말은 하여야겠소. 인제부터
두 분 잠자리를 따로 하셔야 합니다."
어여쁘고 고운 이 사람. 좋아서 죽을 참이다. 그 위로 찬물을 끼얹으시었다. 왕대비전하
께서 정색하시고 엄한 경계의 하교 말씀을 하시었다. 두 분께서는 반드시 이 밤부터 따로
떨어져 지내시라 엄히 하명하신다. 왕은 기가 막혀, 예엣? 하고 되물었다. 무어라? 아이
쿠, 원망스러워라.
"회임하신 터에 부부지간이 같이 하면 여인에게 좋지 않다 하였소이다. 금방 조용한 곳에
산실을 차려야 합니다. 다소 몸이 나시면은 중전께선 그리로 거철르 옮기시어 옥체를
간수하시고 정결하게 마음을 닦으시어 태교하셔야 하구요. 당장에 이 밤부터 주상께서는
우원전에서 거처 옮기세요."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못 견딜 것 같다. 짬만 있으면 중궁전부터 뛰어 들어오는 정분이
아니냐. 그렇게 다정한 분더러, 팔자에도 없는 독수공방을 분부하시다니. 군내 나는 생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