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간 부원군은 중전마마 귓속에 자신이 꾼 태몽을 이야기하여 주고 있는 참이었다.
"아마 금세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옥체 정히 간수하시고 조심 하옵시오 마마. 한 이레
후에 저가 입궐할 것입니다."
중전마마, 필시 사친이 꾼 꿈이 태몽이려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말은 아니 하였으되 중
전 역시 꿈을 꾼 것이 있는 참이니 필시 내가 금방 회임을 할 것이다 싶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들뜬 가슴 억지로 가라앉히며 가마를 타시는구나. 전하께서는
부녀지간 무슨 이야기를 나눈 줄은 모른다. 그저 작별이 섭섭한 줄로만 알아 아시니
부원군께서는 며칠 내로 한번 입궐하여 중전을 뵈오, 하고 다정한 하명을 하셨다.
이미 윤재관이 몰래 기별을 한 고로 정일성등이 미복하고 옥동으로 미리 와 있었던 터이
다. 전하의 말과 중전마마 가마를 사방으로 호위하여 궐에 들어가니 딱 저물 녘, 밤 수라
시간이로구나.
<제7화> 중전마마 회임하시다
대보름 지난 열 엿새 달이 요염한 빛을 흘리며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표표히 창공을 흘러가고 있다.
삼경이 다 되어 가는 늦은 시각. 석강을 마치고는 급히 올라온 남해안의 해적 침입에
대한 장궤를 읽으신 전하. 이리 하라 저리 하라 하명하신 연후에 서온돌 들어가신다.
중전은 자리옷 차림으로 귀밑머리 내린 채 수틀을 앞에 놓고 있었다. 용포에 달 용보
수놓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치마 자락 앞에는 며칠 연해 수북하니 하귤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있었다.
"맛나오? 짐도 좀 주소."
짐짓 농을 걸며 펼쳐진 금침에 한 다리 밀어 넣었다. 아, 곤타. 은근슬쩍 중전의 무릎에
누워버렸다. 배싯 웃는 얼굴이 마냥 곱다. 보드라운 손으로 단단한 용안을 살짝 어루만
져 주고는, 뉘가 볼세라 둘레둘레. 지아비 입술에 쪽 하니 입도 맞춰준다. 하귤 먹던
뒤끝이라 새콤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한 맛이었다.
"그 입술 한번 장히 맛나구먼. 짐도 좀 주어."
허나 중전이 까서 주는 것을 한 입 받았다가 왕은 벌떡 일어났다. 용안을 찡그리며 으,
퉷퉷! 하고 타구에 급히 뱉어냈다.
"이걸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거요? 도무지 시금털털하고 그저 풋내만 나는데 말야.
중전은 어찌 그리 잘도 젓수는 거요?"
어리둥절한 얼굴이 왕을 향하였다. 오히려 이상타 하는 빛이었다.
"마마, 상쾌하지 않사옵니까? 신첩은 참으로 맛나옵니다. 오늘만도 딱 하나만 하다가 벌
써 세 개나 먹었지요, 놀림을 당하였답니다."
"이런 것을 맛나다 하니 참으로 이상하구먼. 그저 시금털털. 특별한 맛은 하나도 없는데?
진짜 맛난 것을 좀 보여 줄까요? 게 뉘 있느냐?"
장지문 바깥에서 윤상궁이 대령하였다. 왕이 호기롭게 명하였다. 짐짓 꾸짖는 빛까지
서려있었다.
"생과방 나가서 대국에서 들어온 파초 실과며 밀다수 얼린 것들을 찾아오너라. 맛이라
하나 없는 하귤만 냅다 드시게 하다니. 윗전 뫼시기 어찌 이리 소홀한 게냐?"
"황공하옵니다 전하. 당장에 분부 받자와 소반과 올릴 것입니다,"
전하의 분부를 받잡고 나인더러 하명하기 위하여 마루에 내려섰다. 나가기는 하는데
은근히 박상궁을 눈짓하였다. 박상궁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전마마 옥체가 다소간 기이한 것은 확실하지?"
"이미 한번 달거리 거르셨나이다. 이번도 벌써 닷새째나 아니 오십니다. 그 일 같으니
당장 전의감 진맥을 하여 보아야 할 것입니다. 소인은 이 며칠 하귤만 찾으실 적에
눈치를 채었답니다. 홋호호."
두 상궁 마음이 똑같이 두근두근하였다. 허니 혹여 잡귀 탈까, 부정 탈까 두려워 입을
꼭 봉하고 모르는 척 걸어간다. 당장에 중전마마께서 회임을 하신 듯 하옵니다 하고
소리치고 싶으나 혹여 사기가 덮칠까봐, 천연덕스럽게 모르는 척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아이고, 좀이 쑤셔서 못 살겠구나아아~~!
소반과가 들어오자 왕은 귀한 파초 실과며 단물 뚝뚝 떨어지는 먹골배며 손수 집어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나 왕비는 그 맛난 것도 싫다. 한입 젓수는 척 하다가 이내 슬며시
상에 놓아 버리었다. 또 찾아 까먹는 것이 시금털털한 하귤이다. 왕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허아, 참! 중전께서 항시 즐기시던 것을 싫다 하오? 아무래도 그대가 탈이 났소! 한참
전서부터 이쪽저쪽이 다 아프다 하고 수저질 하시는 것도 영 시원찮고 말야. 진맥 좀
하라 하였거늘!"
슬며시 걱정이 되니 한마디 불퉁 걱정을 하였다. 중전이 배싯 웃었다.
"그러할 것입니다. 창희궁 문안인사를 나가는데 할마마마께서 신임하는 전의태감을 부
르신다 합니다. 그이가 들어온다 하니 진맥을 하렵니다. 큰 병은 아닐 것이니 너무
걱정 마옵소서."
"제발 몸조심하오. 그대는 생명이오. 그대가 없으면 짐도 없는 것이야. 부대 짐을 위해
서라도 옥체 잘 간수하오.응?"
그 밤이다. 깊이 주무시던 전하께서 갑자기 헉! 하고 신음하였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이마에 진땀이 가득하였다.
그 전에는 전하께서 조금만 뒤척이셔도 같이 깨어 일어나던 중전이다.
헌데 이 근래는 죽은 듯이 잠이 들어, 옆에 누운 지아비께서 깨신 줄도 모르고 그저
색색 곤히 잠들었다. 왕은 얇은 어깨에다 이불을 끌어서 덮어주며 싱긋 웃었다.
"이이가 실로 잠꾸러기가 된 것이야? 언제서부터 잠이 들면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를
않아요. 게으름뱅이가 다 되었다 놀림 한번 하여야지."
허긴 이이만큼 분주한 이도 궐 안에서 없을 것이니 이해하여야지. 왕은 대견하고 안타깝
고 미안하여 중얼거렸다.
"날마다 궁녀들 모아놓고 가난한 이들 의대 짓는다 하지, 또 강학 해야지, 짐 옆에서
조하 일 들어주어야지. 또한 이 며칠 동안은 할마마마 의대 짓는다 몇 날 며칠을 앉아만
있잖어. 어찌 이 여린 옥체가 견디겠어? 휴우~ 헌데 실로 짐이 기이한 꿈을 꾸었도다.
숨이 막혀 죽는 줄만 알았어.'
자리끼 대접을 찾아 마른 입술을 적시었다. 진땀을 훔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전 꾼 꿈의 무서운 흔적을 지우려는 듯이.
어둔 밤 숲 속이었다. 수하도 없이 사냥을 나갔는데 호랑이 한 마리를 맞대면하고 말았
다. 이마에 왕(王)자가 선명한 백호였다.
퉁방울 같은 눈에 불을 담고 덤비는구나. 얼떨결에 맨손으로 뒤엉켜 싸우다가 담박
그놈 발톱아래 깔리고 말았다. 영물스런 백범이 허연 이를 들이대고 목줄을 물랴 위협
하는 순간, 잠에서 깨시었다,
그렇게 생생할 수 없는 꿈이다. 다시 떠올려도 두려웠다. 맹호가 이빨을 들이대고 으르
렁거리는 모습이 떠올라 몸이 오싹하였다.
'호랑이 꿈을 꾼 것은 처음인데, 꿈의 일이 이토록 생생한 것도 처음이다. 참으로 기이하
니 꿈 풀이를 해보라 하여야겠다. 혹여 이것이 중전이 아기씨 회임한 태몽은 아닐까?
범이라 용맹한 사내아이의 징조이니 말야. 짐을 능가하는 성군이 될 어린 놈이 중전 태서
나올 징조라 할 것이야? 보아하니 이 근래서, 중전 몸이 예전만 달라진 점이 많으니 어
쩌면은 중전이 이미 아기씨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필시 중전 몸이 달라졌어.
내일서 진맥을 한다 하였으니 분명한 것을 알 수가 있겠지. 허어, 그참. 백호라? 짐을
물어뜯는 영물 호랑이 꿈을 꾸다니'
그 다음날, 이른 아침. 초조반상 받으시는 전하, 꿈 생각하며 중전마마를 유심히 살피었
다. 혹여 아기씨 가진 여인들이 그러하듯이 헛구역질이나 아니 하는지. 그러나 중전은
아무런 기색 없이 상에 올라온 전복죽, 시큼한 물김치를 반찬하여 반 넘어 잘도 뜨시는
구나. 지어미 얼굴만 유심히 바라보시는 눈길에 민망하였다. 마주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었다.
"어찌 그러하셔요? 계속하여 신첩 얼굴만 바라보고 있으시니.... 무엇이 묻었나이까?
창피하여요."
"아, 아무 것도 아니오. 짐이 잠시 딴 생각을 하였소이다. 드시오. 아무 일도 아니오.
어서 드시오."
전하, 어쩐지 면구하여 시치미를 떼었다. 그러나 지난밤 꾼 꿈 풀이가 너무도 궁금하였
다. 빨리 대전 나가 태사를 불러야지. 급한 마음에 시각이 더디다.
"다소 일이 많거든. 갔다 오께."
다른 날 같으면 중전마마께서 끓여드리는 차 한잔 느긋하게 받으실 터다. 그리한 다음에
중전이 손수 시중들어 용포 옥대 갈아 입혀드리면은 마지못하여 천천히 대전으로 나가시
는 분이었다. 헌데 이날따라 급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무리죽 상을 물리자마자 이내
의대 갈으시더니 단걸음으로 편전으로 나가 버리셨다. 왜 저리 급하게 서두시나? 궁금
하지만 조하 일이 있다 하니 그런가 보다. 중전은 한번 고개를 갸웃하다 말았다.
'참 이상하다. 무엇이 그리 급하실까? 아까도 내 얼굴만 늘 바라보고 계시더니 꼭 쫓겨
나는 분마냥 급히 나가버리시는구나. 연유가 심히 궁금하니 다시 내가 난중에 찬찬히
여쭈어 볼 것이다.'
중전마마 의대단장하고는 문 밖의 윤상궁을 불렀다.
"수라 후에 창희궁에 갈 것이오. 가마 차비하오. 허고 내가 할마마마께 올리려 말라둔
의대 보자기에 싸서 두라 하였거늘."
"쇤네가 다 챙겼습니다, 마마."
"잘하였군. 음음. 윤상궁. 나. 하귤 하나만 더 먹소. 속이 또 메슥거리니 시원하게 먹
을 것이야. 눈만 뜨면 새콤한 요것이 생각나니 내가 이렇게 까다로이 굴어도 되는가
모르겠소."
"당기시면은 드옵시면 되지요. 무엇을 근심하십니까? 많이 젓수셔야 옥체가 튼실하여
지십니다."
하귤이 수북이 담긴 소쿠리가 올려진 소반을 끌어다 놓았다. 윤상궁은 신이 난 목청으
로 대꾸하였다. 섬섬옥수 뻗쳐 탐스럽게 익은 노란 귤 하나 까면서 중전이 눈을 흘겼다.
"어제 전하께서 놀림 하시는 것을 못 들었는가? 그저 풋내만 나고 시금털털한 맛을 좋
아하니 실로 이상하다고 하셨잖어."
"사람마다 다 입맛이 다른 것인데 그를 어찌 타박할 것입니까? 게다가 하귤은 여인네에
게 좋으니 많이 젓수시옵소서. 홋호호. 마마 아무래도 이날 궐에 큰 경사가 있을 것 같
습니다?"
중전마마, 속으로 짐작하는 일이 있으니 빙그레 웃었다. 윤상궁에게 웃음기 머금은 눈을
살포시 흘겼다.
"아이고, 몰라. 또 나를 놀린다? 창희궁 가서 진맥한 연후에나 그리 말하오? 아니면은
내가 참말 망신이다."
"척 보면 모를 일입니까? 실로 감축할 일이니 전하께 말씀을 하시지요. 어찌 그리 꽁꽁
싸고 계셨습니까?"
"확실하지도 않고.... 또 이 소식이 참일진데 제일 먼저 할마마마께 알려드리고 싶어서
말야. 대전마마께서도 기다리시지만 할마마마께서 제일 기다리시는 일이 아니겠는가?
노인께서 항시 그 소식에 목말라 하시어 노심초사하심인데, 제일 처음 알려드려야 그것
이 도리라 생각되었거든. 윤상궁, 말해보소. 자네가 보기에도 정말같이 보이는가?"
중전은 두 손으로 살며시 아랫배를 감싸며 윤상궁을 바라보았다. 동티날까 입은 봉하고
윤상궁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질고 고운 옥안에 꽃잎같이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벅찬 감격을 누르기 힘이 들어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
벌거벗은 느티나무 가지 위에 까치가 유난히 소란스럽게 앉아 우는 날이다.
창휘궁. 휘강전 석계 앞에 중전마마 타신 덩이 조용히 닿았다. 대 보름날 달구경 하자
시며 전하께서 모다 종실 어른들을 궁으로 부르시었다. 부원군이며 진성 대군, 효성군
마마, 명온 공주마마 내외분이 어린것들 다 데리고 들어오시어 왕대비 마마까정 하여
보진재에서 즐겁게 한 때 잘 보내신 터였다. 그 밤에 작별 인사를 하시기를 한 대엿새
후에나 다시 보오 하시었다. 겨우 이틀 지난 후 중전마마의 문안인사였다.
상궁이 벙싯 웃으며 중전마마를 맞이하였다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잠시간 오수를 즐기시는
왕대비 마마를 흔들어 깨웠다.
"마마, 중전마마께서 문후 인사 여쭈오러 납시셨나이다."
"어서 뫼시어라. 날이 찬데 그리 늘 바깥에 계시게 하면은 어찌할 것이냐? 옥체 탈날
것이다."
중전이 들어서자마자 먼저 아랫목에 손을 이끌어 앉히신다. 인자하신 두 손으로 보드라
운 볼 쓰다듬으며 한 말씀 걱정이었다.
"샘바람 춥다하는 것이 칼날보다 더 하다 하였는데! 날이 추운 고로 오지 말라 하였지
않소? 중전은 이 할미 말을 도통 듣지 않는 것이야? 이틀 전에 이 고운 얼굴 잘 보았기
로 이리 나다니시다가 허약한 용체에 탈이나 나시면은 어찌할 것인가? 내가 상감께 걱정
듣게 할 것이오? 보시오, 이리 손도 다 얼고 볼이 빨갛게 얼었도다."
"의대 두툼하게 입고 가마 타고 온 길인데 근심 마옵소서. 저가 뵙고 싶어 견딜 수가 있
어야지요? 할마마마께서는 이 중전이 보고 싶지 않으셨나 보옵니다? 섭섭하여라."
생긋 웃으며 노인의 걱정에 다정하게 말을 받았다. 중전은 김상궁더러 들어오너라 분부
하였다. 안고 온 보자기를 내려놓으니 왕대비 마마 앞에 밀어 놓았다.
"소인이 전하와 잠시 저잣거리 구경 나갔습니다. 비단전에 들렀는데, 그때 저가 전하
의대 하려고 옥색 비단도 사고 할마마마 치마감도 하여 주시오, 청하였삽기로, 전하께서
망극하게 직접 할마마마 옷감은 짐이 고를 것이다 하여 고운 빛으로 골라 주셨습니다.
그동안 솜씨는 없으나 마마 의대 한 벌 정성으로 지었기에, 이로써 정초 선물을 대신하
고자 하옵니다. 부대 가납하시옵소서."
왕대비전하, 실로 뜻하지 아니한 선물이었다.
"아이고, 고마우셔라!"
치하하신 연후에 벙싯 웃으며 손수 보자기를 푸시었다. 나오느니 곱디고운 의대 한 벌
이었다. 진주빛 비단 바탕에 얌전하니 자주빛 배래와 고름을 단 삼회장저고리.
옥빛 누비 겹치마였다. 저고리 섶이며 깃을 공글린 솜씨가 얌전하니 곱다.
그 위에 깨알만한 꽃수를 놓았는데 한 뜸 한 뜸이 바로 신기였다. 늘 앉으시어 두고두고
수 놓아 지은 초봄 나들이 의대였다.
큰 정성이 그 바늘땀마다 스미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왕대비마마께서 기가 막히시다.
"아아. 이것을 가까워 어찌 입노?"
옆에서 지켜보는 아랫것들도 이구동성 감탄 칭찬. 중전마마 손끝이 야무지다 하더니
이토록 기막힐 줄은 몰랐도다. 다투어 수군거렸다.
그뿐만이냐? 게다가 아적은 매서운 샘바람이 추운 동절기이다. 귀한 담비 털을 단
고운 토시며, 겹비단으로 지어 토끼털을 두른 조바위며 왕대비마마께서 좋아하시는
국화꽃 수를 놓은 겹버선까정 들어 있었다. 그야말로 볼품어린 치레라.
단단히 갖춘 일습 의대였다.
"소인이 박복하여 생모께서 생후 이레 만에 돌아가시고 할머니께서 키워주셨기로
그분마저 열 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촌것이 의지할 데도 없고 어리광 피울
데도 없었지요. 헌데 궐에 들어와 인자하신 할마마마를 얻게 된 터이며 분에 넘치게
귀여움 받았기로 어찌 이 은혜를 모를 것인가? 윗전에게 사랑받고 살 것이다 싶었던
꿈이 마마를 뵈옴으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 동안의 은혜를 이 보잘것없는 의대로
대신하나이다."
"참말 감사하고 고맙구려! 아까워서 감히 입지를 못할 참이로다. 이 할미가 복도 많아
이토록 어지시고 영명하시며 고우신 분 중궁전으로 얻어 호사가 가득하니. 헛허허.
내 복이 천복이구려. 허허허. 예. 참으로 감사하게 받아서 잘도 입을 것이다.
이 의대 자랑하러 내가 한번 나들이를 가야 할 것인데 어디로 나가보지?"
"금일 문후인사 여쭈러 간다 하였더니 전하께서 말씀하시기를 할마마마께서 항시 궐내
만 계시니 답답하실 터, 요 근래 한가하니 잠시간 대군 대감댁이나 의륭저 사가로 며칠
나들이 다녀오시라 전하셨나이다."
"실로 감사하고 망극합니다, 중전. 주상께서 골라주시고 중전께서 말라주신 의대이니
어찌 자랑을 아니 할 것인가? 예, 반드시 이 의대 입고 한번 자랑하러 내가 의륭저며
진성의 집으로 나들이 갈 것이야."
흐뭇한 웃음소리. 오랜만에 휘강전 내실에 여인들의 커단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세 들어온 다담상을 앞에 놓고서 좋아하는 음식 권하시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묻자
오신 눈빛이 기대에 차 있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중전을 재촉하는것 같아 부담이 되실 터이라 입을 봉할까
하였지만은..... 혹시 옥체에 좋은 소식이 없소? 실은 내가 요 근래 기이한 꿈을 꾸었
기로 필시 태몽인 게야. 아, 글쎄. 내가 돌아가신 선대왕을 며칠 전 꿈서 만났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