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42/200)

대체 무슨 말씀을 하려고 이러하시나 왕이 길에 말끝을 뺐다. 이미 마음에 그득 기쁨.

내가 더 바랄 것이 없도다. 중전은 전하의 말씀만으로도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하였다.

헌데 좋아할 선물이 하나 더 있다 하니 의아하여 용안만 올려다보았다. 왕은 빙긋이 웃으며 문 

쪽으로 고개 돌리었다.

"중전께서 기대리시느니, 들라."

전하의 분부 받잡고 아래쪽 사이문이 스르르 열리었다. 읍하여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이가 누구냐?

아이고, 천만 뜻밖에도 조용한 미소를 한 가득 머금은 강두수가 아닌가?

"스, 스승께서 이곳에 어찌?..... 마, 마마! 이제 대체 어쩐 일인지요?"

중전은 너무 놀라고도 반가워 말을 차마 잇지를 못하였다. 강두수는 무릎 꿇고 엎드리어 두분

마마께 깊은 절을 올리었다.

"중전마마, 신 학사 강두수. 하해와 같은 성총을 입자와 위리안치 풀리어 며칠 전에 환도하였나이다.

신의 죄를 풀어주시고 또 다시 성균관에 입시하라 망극한 하명을 하시니 오직 무상지덕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미거한 신에게 위로하시기를, 중전을 잘 보필하여 많은 가르침을 준 것을 상급주지는

못할망정 애먼 누명으로 고생을 시킨 터이니 미안타, 금일 중궁에 들어 어진 옥안을 알현하라 

윤허하시었나이다. 신이 감읍하여 그저 가슴이 막히고 눈물만 떨어지옵니다. 마마, 그동안 강녕

하셨는지요?"

"아앙, 실로 이토록 기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스승께서 애꿎이 고생하시는 생각을 할적에 속이

끊어지듯이 아팠습니다. 돌아오시어 강건하신 모습 뵙자하니 그저 기쁘고 반갑나이다."

중전의 목청이 물기어려 흔들렸다. 왕을 바라보는 얼굴에 감격이 가득 묻어있었다.

"전하, 신첩이 무엇으로 이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리까? 실로 스승의 일이 이 신첩 가슴에

못이었습니다. 대어놓고 말은 못하였으나 제발 스승께서 빨리 환도하였으면 하였습니다.

이제 제 소원이 다 이루어졌으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하는 것일까요? 마마, 참말 너무 좋아서

말이 아니 나옵니다."

중전은 너무 기쁘고 감사하여 고운 눈에 눈물까지 글썽하였다. 학사의 얼굴과 지아비 전하의 용안

을 번갈아 바라보며 좋아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두 사내 모다 벙긋이 웃었다.

중전의 마음속에 박힌 못. 바로 강두수의 일이었다. 허나 윤상궁의 매서운 충고가 중전을 일깨웠다.

"섣불리 학사를 옹호하여 죄를 풀어 달라 하였다가는 자칫 잘못되면 다시 한번 애먼 하물을 뒤집어

쓰기 딱 알맞사옵니다. 그저 중전마마 흠을 잡아 위해하려 안달일 텐데, 간악한 월성궁 계집을

호가호위하는 무리들에 의해 음해할 흉꺼리가 되기 십상이 아닙니까? 그만두십시오. 마마.

조금만 더 시일을 두고 풀어 가십시오."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하여 중전은 마음은 있되 차마 입을 벌려 말은 못하였다.

속이 문드러져 까맣게 탔을 안해 문씨에게 친히 서간 보내어 때가 되면 죄가 풀릴 것이니 그저

이 중전의 허물을 용서하고 참아 주시오 위로하시었다. 드디어 이 날. 왕께서 학사를 환도시켜

주시고 다시 성균관 진감으로 입시하라 하셨다 하니 중전마마, 내 소원은 오늘로써 다 이루어

졌다 싶었다.

"보아? 역시 이 일이 제일 기쁜 것이라 하였지? 중전께서 스승인 그대를 이토록 귀하게 여기고 

있다 함을 학사는 이로써 알 것이야. 핫하. 중전, 술 한 잔 아니 줄 것이야? 잔치집에 선물

장하게 안고 왔거늘 술상도 아니 준다니 인심 한번 야박한지고!"

왕이 실쭉 농하였다. 인제 중전의 마음에 자신이 생긴 터다. 학사와 중전 사이 오가는 친밀한

눈빛이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기뻐하는 양에 그가 더 흥그러웠다.

중전은 급히 상궁 나인 재촉하여 정갈한 주안상을 올리게 하였다. 손수 다가앉아 접대하였다.

그날 밤 강두수는 중궁전 모든 사람들에게 장한 환대를 받고 중전 마마께서 내린 주안상 받아

과분하게 두 분 마마께서 내린 주안상 받아 과분하게 두 분 마마와 겸상을 하는 광영을 누렸다.

그사이 다소 미안한 감정이 없다 말 못한다. 이 술잔 받고 지난 일을 잊어버리오 하며 어주

한잔을 내리었다.

강두수 눈에 비친 중전마마와 왕의 다정하신 그 모습. 아름다웠다. 천생연분이라 하더니 하늘이

내리신 짝이었다. 늠름하고 훤칠한 미장부라, 상감마마와 얌전하고 총명하며 온유한 중전마마께서

함께 하신 모습은 바로 그림이었다. 잠시도 놓지 못하겠다는 듯이 왕은 내내 중전마마 손을 잡고 

있었다. 보란듯이 억지로 꾸민 것도 아니었다. 무의식 중에 자연스럽게 잡은 손이다. 수줍고 법도

어김없는 중전마마도 전하의 손에 잡힌 작은 손 빼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앉아있을 뿐이다.

두분 마마 사이가 비길 데 없이 다정하다 함의 증명이었다. 

그가 현산 땅에서 유배 생활하고 있을적에 도승지 황이가 잠시 말달려 찾아왔다.

두 사람은 호형호제하는 절친한 사이였던 것이다. 옥체 허약하신 중전마마께서 온천 피접을

나오셨는데 상감께서 왕비를 뫼셔가려 원행을 나오셨기로, 나는 배행하여 예로 내려왔거니,

잠시 고생하는 아우님의 얼굴이나 보고지고 하며 찾아왔다. 그 곁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이미 강두수는 짐작하였다. 전하께서 드디어 중전마마 아름다운 덕성에 눈을 뜨고

그고운 모습 아시어 두분 사이 아름다운 정해를 회복하셨고나. 천 마디 말보다 확실한 증명.

앞에 앉으신 두 분 마마의 그 정다운 손잡음을 보아지며 그저 좋아서 죽고 못산다 딱 알아

차렸다. 앞에 앉은 저는 안중에도 없구나. 자주 서로 맞부딪치는 눈빛이 뜨겁고 진진하니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두 분 만의 세계가 있음이었다. 강두수는 반듯하고 어진 얼굴에

미소 머금고 두 분 마마 행복하신 터이니 신은 그저 반갑고 다행이며 기쁘옵니다 치하하였다.

밤이 이슥하여졌다. 중전마마께서 고생하신 안해께 가져다 주오, 하시며 고운 비단필을 하사

하시었다. 가득한 선물 품에 안고 월동문을 나서는구나. 담담한 얼굴에 착잡한 안개가 스민 것은

그때였다. 이제 다시는 구중심처 이곳에 들어올 일도, 중전마마 뵈올 일도 없구나. 명경지수같이

담담하고 맑던 선비의 가슴에 파랑이 일었다. 마냥 섭섭하고 가슴이 아렸다. 감히 언감생심

올려 보아서도 아니 되는 지엄한 분이셨지만, 아름다운 그 분께 매혹 당한 것은 강직한 강두수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은밀하고 애틋한 사모지정은 퍼내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

이었다. 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말 못하고 묻어둔 속에 담겨있는 비밀은 깊고도 첩첩하

였다.

'아마 이 무엄한 심사 전하께서 아시면 나는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야.'

강두수는 궐문을 나서며 쓸쓸히 웃었다, 아득히 바라보이는 중궁전 처마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서 있었다. 그의 낯빛은 애틋하고 쓸쓸하고 적요로운 것이었다.

'중전마마. 부대 행복하옵시오. 실로 주상 전하와 마마께서는 천생 연분이옵니다. 이 학사, 

무엄하게 아름답고 어진 옥안 가슴에 담고 잠시간 헛된 꿈을 꾸었습니다. 마마를 뫼시고 강학

하던 그때 일은 이 학사의 평생 가장 즐거운 추억이라 하겠지요. 평생 가슴에 담고 살겠나이다.'

어찌 그리도 명민하시고 야무지셨던가? 정곡을 찌르는 그 매서운 하문이며 한 줄 글귀 읽어

드리면은 그 뜻 깊이 생각하시고는 빙그레 웃으시던 그 모습이 피어 오르는 연화같았지.

그때 감히 그 분의 옥안을 바라보면서 가슴 설레었기로 아마 이 무엄한 심사를 그 분께서는 

꿈에도 모르시겠지. 깊은 한숨에 배인 슬픈 진심. 강두수는 쓸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스스로를 꾸짖어 뇌까렸다.

"석전. 석전, 그대는 선비의 이름을 달 자격도 없는 어리석은 사내일세 그려. 중전마마의 단심은

이미 전하의 몫이었으니 실로 두분 마마 사이의 정은 뉘도 못 끊을지라. 불측한 이 몸의 헛된 

심사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하답 받지 못할 것인줄 알고 있었거늘.... 중점마마.

늘 일편단심 전하만을 바라보시었던 고운 마음을 전하께서 또한 어찌 몰랐겠습니까? 

사필귀정이라 다 일이 그리 돌아가게 되어 있었나이다. 이제 다시는 뵙지 못할 것이나 평생

흘리실 눈물은 이미 지나간 터이니 이제 행복만 남으셨습니다. 주상전하께서 마마를 깊이 사모

하시고 은애하심이 한결같으니 그 사랑은 평생 갈 것이라. 차마 그 아름다우신 옥안,다른 이가

보는 것조차 아까워하실 참이었지요. 그토록이나 깊은 사랑은 오직 중전마마 한 분만이 받으시는

순정입니다. 부대 어진 국모되시어 평생 전하의 좋은 곁이 되시고 그저 행복하옵소서.'

이제 평생 그 분의 어질고 고운 옥안은 뵙지 못할 것이다. 가슴에 은밀한 상처를 안고 돌아간다.

이리하여 학사 강두수, 중전마마를 사이에 두고 왕과 대적한 그 마음의 비밀은그렇게 끝났다.

천지간 누구도 학사 강두수의 진실한 마음은 아무도 모를지니, 순결한 사모지정 깨끗하게

자르고 돌아가는 그의 등 뒤로 달빛이 맑고 차다.

그러나 이십 오 년 후. 강두수와 중전마마 두 사람이 사돈의 인연으로 다시 만날 줄은 아직 아

무도 모르는 운명이다.

그밤에 가슴에 응어리 진 모든 것이 다 풀리었다. 중전은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이렇게 행복

하려고 그동안 내가 눈물을 흘렸구나 싶었다. 그 전에는 내가 왜 궐에 들어와 이런 괴로움과 

수모를 겪으며 살아야 하는가? 하고 느꼈던 후회와 서러움이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마음 바닥에

앙금으로 남았던 섭섭함이며 서러움이 다 지워지고 마냥 고맙고 즐거웠다. 

든든하고 다정하신 지아비 품에 안기어 잠을 청하는데,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보아도 그저 좋았다.

배시시 웃음이 물리는 붉은 입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형용이라니! 정인의 그 모습을 보시는

왕도 따라 함께 기쁘다. 중전의 순결한 마음에 담겨 있는 이가 오직주상 당신 한 분 뿐인줄

알고 있었다. 하여 예전에 느꼈던 터무니없는 투기며 분심은 씻은 듯 사라졌다. 중전이 즐거워하는

그 모습이 당신에게도 커다란 기쁨으로 다가왔다. 은근히 야들탱탱한 볼을 어루만지며 행복하오?

묻자오셨다. 중전은 몸을 돌이켜 지아비의 까슬한 볼에 보드라운 제 뺨을 대이고 진정으로 속삭

였다. 

"예,마마. 실로 행복합니다. 참으로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 못난 것이 정궁에 앉아 하나의 

보람도 즐거움도 없이 그저 목숨만 이어가는 밥벌레인 줄로만 알았거늘, 이리 전하께서 저에게 

큰 행복과 즐거움을 내려주시니 대체 어찌하여야 이 은혜를 갚을줄을 모르겠나이다. 

아, 신첩이 너무 좋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빨리 전하께 덩실하니 튼튼한 원자아기씨

안겨드려 이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인데...."

"그리 하실 것입니다. 금세 회임하시어 짐에에 튼튼한 아기씨를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대는

짐에게 기쁨만 주는 사람이니."

그의 품에 잠긴 중전의 몸은 투명한 옥처럼 선르하고 향기로운 꽃이다. 어여쁜 입술에 자국을

남기고 왕은 진정으로 말하였다. 거짓하나 없는 마음이었다. 중전과 함께이면 어떤 여인과 있을 

때와도 다르다. 흔쾌하고 충족되며 짙은 외로움이 전부 가시는 것이었다. 사내로서 충족하는

육신의 욕망도 그러하거니와 중전과 함께일 때면 왕은 자신이 반드시 돌아와야 할 곳에 와 있는

그런 편안함과 만족함을 느끼는 것이다. 

중전 앞에서 왕은 왕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젊은 사내이면 되었다. 억지로 감추지

않아도 일부러 위엄을 내비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알고 감싸주고 전부 자신을 내어주는 이

아름다운 지어미 앞에서 왕은 다만 성실하고 사랑에 빠진 한 지아비이면 되었다.

청신하고 순결한 향기가 두 분 누우신 방에 가득 찼다. 살풋 흘러 드는 향기는 머리맡의 매화

꽃망울에서 풍기는 것이다. 왕은 그새 툭툭 꽃망울을 많이 틔운 매화꽃을 바라보았다.

"이 매화 향기가 꼭 그대 같아."

"저 같은 촌 것 박색을 저리 고운 매화라 하시니 부끄럽나이다."

"짐 눈에는 매화보다 더 고운걸? 그대의 옥체서 기이한 향기가 흐르는 고로 짐이 그대를 일러

향비라 부르는 줄 잘 알면서? 핫하하. 은근히 짐에게 타박을 하는참이니 필시 예전에 짐이 

그대더러 못났다 한 것이 가슴에 박힌 못이었다 이 말이라?"

"흥, 소첩은 계집 아닌가? 길가는 여인더러 아무나 잡고 하문하여 보십시오. 박색이라 놀림 

하면 천에 천, 다 싫다 합니다."

새삼 애교 반 앙탈질이었다. 왕은 슬슬웃으며 중전을 놀림 하였다.

"말을 하자면야 짐 또한 할 말이 없는 줄 아니? 흥. 가례 초입 그땐 중전이 너무 어리고 여위었

으며 가맣게 탄 터에다가 키도 반토막이었지. 촌티도 못 벗은 고로 못났다 소리를 들을만

하였다, 뭐?"

"지금은요? 마마."

생긋 웃으며 중전은 애태우듯이 왕에게 재우쳐 물음하였다. 면경을 보면 이미 꽃보다 더 곱게 

피어 오른 매혹인 줄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은애하는 지아비 입으로 그대가 제일 

어여쁘고 곱다 하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은 이 세상 여인들과 마찬가지 심사이다. 

앙큼한 욕심쟁이. 왕은 히죽 웃으며 복사빛 볼을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수줍은 중전이 지아비

이신 왕께 부리는 어린양이라 귀엽고 또한 재미도 있었다. 이이도 여인이라 짐 입으로 제일

곱다 하는 칭찬을 듣고 싶은 것이로다?

"타고난 박색이 어디 가는가? 천하제일 못난이가 바로 여기 누워 있구먼."

짐짓 놀림하시었다. 살며시 눈을 흘기는 중전의 탐스런 옥체 위에 냉큼 올라타고 내려다보며

왕은 실로 곱소!하고 단언하였다. 고운 젖무덤 어루만지며 투명한 얼굴에 용안을 비비며 왕은

진정으로 속삭였다.

"꽃도 이런 고운 꽃이 없을걸? 여인은 때가 되면 꽃망울이 터진다 하거늘 실로 그대가 그렇지

않소? 우리중전이 이리 염태고운 처자인 줄 누가 알았을까? 피어나는 꽃도 이리는 곱지 못할

것이다. 참말 짐에게는 다행이거든. 그대가 사가에 있을 적에 어여쁜 자태였다면 아마 짐의

간택 받기 전에 벌써 정혼을 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냐? 그러면은 우린는 만나지도 못하였을

것이라. 진성 숙부가 간택 때, 어리디 어린 그대를 궐에 데려온 것은 아마 이런 뜻이었을 거야.

남 눈에 띄기 전에 그대를 빨리 짐의 지어미로 감춰두라고."

작은 얼굴 어루만지며 말하는데 하나 거짓없는 진정이었다. 지아비의 눈동자에 비추인 자신의

모습이 그리도 어여쁘게 피어났음을 스스로도 알고 있는 중전이다. 배싯 웃으며 훤칠한 용안을

보드라운 그 손으로 마주 어루만졌다. 대담하게 맞받았다.

"실로 이 중전에게도 다행이고 천복이랍니다. 전하께서 구중심처 궐에 계신 분이기에 망전이지

말야요. 만약 사가의 남정네였다면은 저는 그 모습 한번 뵈올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이리 훤칠

하시고 아름다우시니 아마 도성 안 처녀들이 모다 상사병 났을 것이야. 저는 참말 복도 많이

훌륭하고 아름다우시고 또 사내다운 기상 씩씩하신 지아비께 혼인하였으니 어찌 즐겁지 않을까요

혹여 사가로 미행하시다 이 잘난 용안 돌리시면은 처녀들 여럿 죽을 것이다?"

"음, 음. 정말 짐이 그리잘났소이까?"

설풋 용안이 붉었다. 수줍은 중전이 처음 하는 전하에 대한 칭찬이며 감정의 표현이었다. 

조금은 어색하나 기분이 좋았다. 흐뭇한 미소가 입술 위로 피었다.

"저는 아직도 용안 우러르면 가슴이 막 뛰옵니다. 저가 대례 올린 그 날 부텀 첫눈에 사모하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면서? 너무 잘나시어 이 중전이 불안하기까지 하니 이 병을 어찌할 것인가?

용안을 한번이라도 보는 계집들은 모다 반하니 신첩이 투기가 나서 못살 것이야!"

사내는 항시 다 큰 어린애다. 중전은 생긋 웃으며 전하의 기를 막 세워주었다.

왕이 그리 잘난 사내인 것은 사실이니 뭐 딱히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짐더러 잘났다 칭찬하여 주었으니 답례를 하여야지? 꽃을 줄까?"

왕은 손을 뻗쳐 막 피어난 매화꽃 한 송이를 땄다. 꽃을 물고 왕은 중전의 고운 입 속에 살며시

놓아주었다. 향기롭고 여린 꽃잎을 사이 두고 달콤한 설육이 얼키었다. 맞부딪친 두 입술 사이로

매화꽃 한 송이가 왔다 갔다. 어느 새 천연의 나신이 하나로 합쳐졌다. 빈틈 하나 없이 꽉 물린

두 옥체가 말 그대로 일체. 지아비 강건한 힘을 남김없이 받아들이는 지어미 얼굴은 땀에 젖고

그 지어미 고운 꿀물 탐하는 지아비 등에도 진득한 땀방울이 구른다.

늘 그렇듯이 변함없이 듬뿍 사랑의 비를 내려준 이후에 왕은 발갛게 달아올라 땀에 젖은 중전의

머리카락 귀에 넘겨주었다. 달금한 사랑질에 지친 두 분 마마, 꼭 부둥켜안고 한 베개 나란히 베고

편안한 잠에 빠지시누나. 아이고, 부럽도다. 천하에서 가장 행복한 두분이로고!

참으로 두 사람. 어렵고 힘든 길을 돌아와 만난 마음이며 서로의 존재인데 어찌 살갑고 귀하고

다정하지 않으랴? 꽃같은 두 분 마마의 아름다운 모습을 문갑 위의 고운 매화분이 조용히 지켜

보고 있다. 향기로운 꽃잎을 투둑, 하고 피워낸다. 

두 분께서 몰래 시장 저잣거리 나가신 것은 그 며칠 후였다.

조하도 휴일이고 궐 안 일도 서두를 것이 없는지라 짐이 오늘은 조용히 쉴 것이니 찾지 말라

하셨다. 미리 따져보니 그날이 제일 한가하신 터였다. 함께 저잣거리 나갑시다 손가락 걸어두고

기다렸던 날이다. 전하께서 헌 갓 쓰시고 무명누비 도포 입으시었다. 중전마마는 소박한 낭자

머리에 은비녀 찌르고 담담한 옥빛 장옷으로 얼굴 둘셨다. 그저 말고삐 잡은 구종 놈 하나에다

호위지밀 윤재관만이 품에 헝겊으로 싼 장검 안아들고 따랐다. 가마꾼 넷이 매는 외가마 타신

중전마마. 윤상궁만이 배행하였다. 사가의 오붓한 젊은 부부가 명절 장 보러 나오신 양 하여

거리로 나가신 것이다.

"육의전 들러서 구경하고요, 국밥도 사줄 것이다. 허고 옥동도 몰래 다녀옵시다. 부원군께서

필시 놀라 뒤로 넘어지실 게야. 핫하하."

유쾌하게 웃으며 말고삐를 당기어 저잣거리 입구에 다다랐다. 훌쩍 말 등에서 뛰어내려 가마

문을 열어주었다. 중전은 장옷 깊이 얼굴을 묻고 왕을 뒤 따라 걸었다. 남의 눈만 없었다면

항시 궐 안에서 그러하듯이 중전의 손을 잡고 나란히 가고 싶다. 허나 내외하는 법도라 차마

그리는 못하였다. 한발 뒤에 딸린 지어미가 자꾸만 걱정이 되어 왕은 한 걸음마다 뒤돌아

보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두 분이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은 신기료 집이었다.

아침에 나오면서 반드시 예쁜 신을 사 줄 것이다 약조하시었다. 고운 당혜에 태사혜.

나막신이며 사냥화이며 요란국에서 들어온 수피화. 신기료전 좌판에 가득한 신들.

그 중에 자주 빛 비단 바탕에 백피 가죽바닥을 두르고 고운 모란꽃을 수놓은 당혜 한

켤레가 눈에 냉큼 뜨였다. 제일 고운 그 신을 골라 들고 왕은 망극하게 허리를 굽히었다.

중전의 작은 버선발에 직접 신겨주니 맞춘 듯이 쏘옥 들어간다.

"실로 그대는 발도 작아. 어찌 이리 작은 발도 있을까?"

"그래도 갈데 아니 갈데 잘 아는 발이옵니다. 아이고, 부끄러우니 그만 하소서. 나리, 저가

이것이 고우니 그만하시고 이 신을 사 주시옵소서."

중전마마 얼굴을 발갛게 붉히었다. 고개 돌려 외면하며 수줍게 말하신다. 어젯밤, 작고 고운

고 발을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으며 핥으며 온갖 희롱에 농탕을 치시었다. 중전은 전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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