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화 (137/200)

"신첩도 전하를 기쁘게 하여 드리고 싶었고,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습니다. 헌데 신첩이 잘하는 것

이 잘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사오니 부끄럽고 속이 상하였나이다."

"어찌 그런 말을 하오? 중전 이 모습 이대로가 다 마음에 들고 고맙고 어여쁘답니다. 

말 타기야 짐이 이 날서부터 배워 주면은 될 것이며, 활쏘기 못하여도 중전 못났다 괄시 아니할

것이오. 대신 중전은 침선도 장하고 글씨도 잘 쓰시고 어린 짐승을 잘 기르지 않소? 아이고,

그러고 보니 복동이가 궁금하구먼. 그놈이 중전을 그리 잘 따르더니 말야. 궐을 떠나신 후

영 기운이 없습니다. 중전이 어디 가셨나 심히 궁금해 하고 있는 모양이야."

복동이를 떠올리는지 중전 입가에 꽃망울 같은 미소가 맺혔다. 왕은 부드럽게 고운 손을 잡았다.

사분사분 토닥여 주면서 마음속에 아직도 박혀있을 얼음 기둥을 녹여주기 위해 애를 썼다.

"짐이 비로소 말을 하거니..... 그이에 대하여 아직도 섭섭하지요? 짐이 생각하여도 월성궁누이가

하여서는 아니되는 일을 너무 많이 하였소. 더더구나 중전에게 고약한 짓을 많이 하였으니 그이에

대한 중전의 억울하고 분한 심사, 이해하오."

"망극하옵니다. 신첩이 투기 많은 계집이라 그러합니다."

"누가 그렇다는 말을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전께서 그이를 잘 보아주고 어질게 대하여 주어

고맙다 하려는 터인데."

그 즈음 하여 말이 월탄정에 다다랐다. 왕이 먼저 훌쩍 뛰어내려 중전을 안아 바닥에 내려주었다.

두 분은 옥보를 옮겨 달빛 부서지는 누루에 올랐다. 달기둥이 강물에 뻗어 마치 선경인듯

황홀하였다. 적막한 밤. 밤사는 울며 날아가고, 강둑의 나무에서는 향기가 흘러온다.

인적은 끊기고 호젓하니 달빛 아래 오직 두분뿐. 심중에 가라앉혀둔 말을 쏟아내기 좋은 시각이다.

왕은 아까 미처 말하지 못한 속의 말을 기어코 끝내려 하였다.

"중전, 짐이 이 날 이 말은 꼭 하고 싶구려."

"말씀하십시오, 마마. 어떤 말이든지 신첩은 좋이 가납할 것입니다."

"...... 민망하여 말로 차마 하지 못할 것이되... 어쩔 수 없구려. 월성궁 누이의 방자한 실덕,

실상 그것은 다 못난 짐의 책임이오. 사춘기 어린 날 흠빡 빠진 정해라, 무슨 짓을 하여도 그저

천지분간 못하고 모다 다 주고, 무작정 오냐오냐 하였거든. 그이가 그리 방자하여지고 고약해진

버릇을 짐이 가르친게요. 그러니 못나고 방탕한 짐을 원망하오."

"전하. 어찌 그런 천부당만부당 한 말씀을 하십니까? 아니옵니다. 신첩이 감히 어찌 그리 무엄한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저 신첩이 잠시간 쓸쓸하였기로..... 쓸데 없는 말을 하여 전하 심기를

어지럽혔습니다. 여인 마음이라 다 한가지이니 그리 성총 장하던 그 여인이 전하의 발길이 끊어지고

나서 실로 가슴 아플 참이라 신첩이 그 여인을 좋아하지는 않되 어찌그 심사에 돌을 던질 것입니까

실은 전하께서도 그 여인 생각을 가끔은 하실 것이라 이리 저는 짐작합니다."

중전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못내 미안해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차마 눈을 바로 떠 그녀를

바라보지 못하는 지아비를 위로하였다.

"신첩이 왕대비마마께 그 여인에 대한 말을 잠시 들었습니다. 어린 날 전하와 함께 자랐고, 

또한 외로운 마마의 좋은 위로가 되었으며 즐거움이 된 여인이었다구요. 신첩은 그 점 하나로도

그 여인을 용서합니다. 감히 신첩이 투기한다 말을 마십시오. 비록 그 여인이 저에게 저지른

허물이 다소 있다 하나, 좁은 소견머리 투기심으로 저지른 일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신첩이 그이를 보아 잘 가려 돌릴 것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짐이, 짐이..... 그대에게 가장 미안한 일이오. 중전, 입을 벌려 말하기조차 어려우나....

미안하오. 평생 동안 그대가 참아주어야 할 일이 바로 월성궁 누이 일이오."

왕은 나오지 않는 목청을 억지로 가다듬었다. 염치없고 면구하여 낯이 저절로 벌게졌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알고 그의 허물마저도 가려주는 어진 안해 앞에서 진솔하게 고백했다.

"후회하고 있습니다. 많이 후회하고 있어요. 천지분간 하지 못하던 광증이 사라지고 난 후,

중전을 맞이하기 전부터 은근히 짐은 그이의 일을 후회하였소이다. 하지만 사내대장부가 되어

한번 저지른 일에 대하여 도망치고 면피하려 함도 민망한 일이구려. 비록 발길을 못한다 하여도

짐은 그이의 일생을 책임지고 안락하게 살려줄 책임이 있습니다. 참아주시오. 이럴 수밖에 없는

짐을 이해하여 주시구려."

"이해합니다. 지아비 하시는 일에 감히 무어라 입질을 할 것입니까? 전하께서 이 중전을 존중하여

주시고 이리 귀하게 대접하여 주심에 그저 신첩은 황읍할 따름입니다. 월성궁 여인의 일에 대하여

신첩은 한점의 저어함 없이 마음을 다스릴 것입니다."

하지만 왕인들 눈이 있는데 중전의 그 어두운 기색을 읽지 못할 것이냐? 향기로운 머리타래에

얼굴을 대고서서 왕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무거운 족쇄가 발에 걸린 기분. 뺄 수 없는 질척하고 깊은 늪에 한 발이 빠져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왕은 중전의 어깨를 꼭 끌어안고 다시금 깊이 후회하였다. 이 고운 여인만을 사랑하였고, 앞으로도

그리 하겠다 당당하게 맹세할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나간 세월의 부끄러운 정해를

씻은 듯이 없앨 수만 있다면 짐은 무슨 일이든 다할 것이다.

'아니 중전이 짐 곁에 있었다면 그런 부끄러운 정해에 휘말리지도 않았을 게야.'

늠름한 팔에 어깨를 내준 채 중전도 왕과 더불어 달이 뜬 강물을 바라보고 서 있다.

감추지 못한 왕의 한숨 소리를 들었다. 당당하고 호기로운 사내가 가진 씻어내지 못한 죄책감과

송구함을 느꼈다. 중전은 몸을 돌이켰다.

"전하, 신첩은 생각합니다. 옛일을 더듬어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라구요. 가례를 치른 후에 

미거하고 부덕하여 전하 눈에 들지 못했던 터인지라 아름다운 성총을 감히 욕심내지 못했습니다.

허나 오늘날에 이르러, 천지신명이 도우시사 다정하게 아껴 주시고 사모하여 주시니 인제 신첩은

여한이 없습니다. 전하 곁에서 오직 좋은 날만을 생각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빨리 다시 회임도

하여 은덕에 감사드릴 것이구요,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많이 배우고 익혀서 항시 기쁨이

되고 싶습니다. 마마, 시, 신첩을 안아주십시오."

수줍음에 떨리는 목소리가 아련하였다. 살포시 고개 숙인 채 억센 품에 난짝 안겨드는 보드라운

몸을 왕은 함뿍 안아버렸다. 늘 수줍고 부끄러움 많은 터라, 그가 손목만 잡자 하여도 도망부터

치던 사람이 아닌가? 인제는 우리가 이렇게 정다워져 이 수줍은 이가 먼저 안아 달라 애교도

부리는고나. 그런 중전이 왕은 너무 기쁘고 어여쁘다.

"고맙소이다, 중전. 짐을 용서하고 짐에게 돌아와 주어서 정말 감사해요. 평생 아끼고 은애할 

것이야. 짐에게는 중전뿐이라오."

"신첩은, 마마..... 신첩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간신히 들어 왕의 눈을 바라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똑똑하게 말하였다.

"항시 마마만 사모합니다. 마마께서 신첩만 사모하여 주시기를 비옵는 소견 좁은 여인네이고

싶습니다."

달달 떨리는 목소리가 끝내 잦아들었다. 난생 처음 사내에게 사모하오 고백을 하는 중전이다. 

채 다하지 못하고 불고추 먹은 듯이 확확 달아오르는 얼굴을 지아비 든든한 가슴에 묻어버리는고나.

아이고, 부끄러워라. 아리달금, 달큰하고 뜨거운 연정 앞에서 달조차 훔쳐보기 민망한가보다.

슬그머니 구름 속에 숨어버린다.

솔향기 날아오는 누루 기둥 그늘에 숨어, 두 분 마마 한 몸이 되어 열정적인 입술을 나누는구나.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그 사연은 두분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첩첩한 정분 되찾아 서로의

다정한 마음을 드러낸 터이니 훗날에도 이 밤만 생각하면 마냥 행복하리라.

이곳 솔향기 젖은 달밤의 정취는 절대로 잊지 못할 테지.

한참토록 서로에게 담뿍 빠져 시간이 어찌 간 줄 모른다. 자꾸만 속이 울렁거리는 야릇한 달빛에

취하였다. 어지럽고 가슴이 울렁울렁. 묘한 달 병에 취하여 행궁으로 돌아오시었다.

밤마다 그리하였듯이 시원하게 온천에서 욕간하였다. 물론 물속에서 노니는 한 쌍의 금린어처럼

찰박거리며 물장난이었음은 불문가지.

시각은 벌써 자정을 넘어 새벽. 향기로운 방장을 치켜들어 용체를 모시면서 문득 중전이 아쉬운

듯 섭섭한 듯 말하였다.

"이곳에 사친도 함께 오셨으면 참 좋았을 터인데 말여요. 도성을 지키느라 오시지 못한 것이

섭섭합니다."

군주께서 도성을 비우는 거동을 하실 적이면 주인 없는 텅 빈 집이 되고 마는 도성과 궁궐의

수비가 문제가 되게 된다. 하여 겹겹의 수비책을 세워놓고 책임자를 궐에 상주시켜 방비를

하는데, 통상적으로 지존이 아니 계신 궁궐의 방비를 책임지는 사람은 대개 가장 믿을만한

분인 부원군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중수영 보러오시면서 왕대비전하와 상감마마께서

다 내려오신 터라, 도성과 궐의 수비를 맡은 책임자로서 도성의 수비 병부를 건네받은 사람은

병판 남준이요, 궐의 병부를 받은 이는 부원군 김익현이었다.

"그러게 말야. 부원군께서도 병약하신 분이니 여기 온천이 좋을 것이야. 담에 한번 뫼시고 

오십시다. 중전, 아비가 보고 싶은 게요? 응?"

"벌써 너덧 달을 뵙지 못한 터라, 저가 궁금하여서요. 매일 서찰은 보내주시나 어진 낯을 뵈온

지가 한참 되거든요."

"겉으로는 마르고 병약하시되, 은근히 부원군께서도 강골이시지. 눈빛이 형형하시고 한결 기운을

차리셨소이다. 도성으로 올라가면 뵈올 수 있을 게야."

삽상한 모시로 지은 요 이부자리. 긴 베개 한쪽에 머리를 고이고 왕은 어서 곁으로 중전을 

재촉하였다. 귀밑머리 한타래로 풀어 내리고, 잠자리 날개 같이 얄쌍한 자리옷 차림의 중전이

다가왔다.

"난중에 도성 올라가면 잠시 사가로 피접 나갔다 오시면 되잖어, 허니 너무 섭섭지 마오."

중전이 생긋 웃었다. 반가운 말씀에 감격하였다. 허나 몸을 돌이켜 왕의 품에 안겨들며

짐짓 토라진 채 하였다.

"원자 낳기 전에는 피접 못 나가리라 호령하셔놓고서?"

"어, 어. 지, 짐이 그랬니?"

"아이고, 다 잊으신 척 하시는 것 좀 보라지? 신첩더러 잠시 하거하시오 한 그 다음 날로, 

손바닥 뒤집듯이 말씀을 없던 것으로 하시더라? 경망되이 궐문 나서기만 하여봐, 하고 억지

호령하신 분이 누구신가?'

"짐은 기, 기억이 나지 않는구먼. 흠흠흠. 첵, 안즉도 그런 것을 다 기억하고 있는 게야?

어찌 그대는 이리 모질고 찬찬하여 잊어버릴 것도 다 속에 담고 있니? 그딴 말 다 억지인줄

알면 그냥 없던 것으로 하고 흘려버릴 일이지."

새초롬이 섭섭하다 눈을 흘기는 중전 앞에서 왕은 서투른 변명을 하였다.

"그때에 짐이 억지를 부렸거니, 그대가 많이 섭섭하였던 것을 알아. 이제야 말을 하는데....

중전, 실은 짐이 그때에 중전을 보내주고 싶지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야, 겁이 나고 두려워서

그랬어. 그때 중전 마음이 너무 멀었거든. 그대가 짐을 싫어하고 항시 도망가려고 하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기로.... 중전이 짐을 피해 달아나면은 어찌 살까 겁이 나서 곁에서 떼놓을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그랬던 것이니 너무 섭섭해 하지 마소.응?"

지금은 두 분 마음이 하나이며 뉘가 와도 떼놓을 수 없는 정분이라. 자신만만이다 이말이다.

그만큼 이제는 지어미의 순결한 마음에 자신이 생기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전은 지아비 그 말

씀에 홀로 외사랑하여 온 가난한 불안의 그늘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읽어낸다.

몸을 돌이킨 왕비는 지아비의 두툼한 손을 잡아 두근거리는 제 가슴에 대었다.

"마마, 신첩은 전하를 하늘처럼, 제 생명처럼 가모하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마마를

상심케 하는 일은 못하는 계집이올시다. 허니 그런 말씀을 마옵시오. 신첩이 쓸쓸하고 슬퍼집니다.

이 마음을 믿어 주십시오."

맑은눈에 벌써 눈물이 찰랑하였다. 가슴에 와서 바로 꽂히는 사무치는 고백이었다. 

진심을 다한 고백 앞에서 왕은 세상 전부를 얻은듯이 행복하고 그득하였다.

"믿어요 믿습니다. 중전께서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깊이 은애하는지 알아요. 짐에게도

중전은 생명이고 전부이니 뉘도 우리 사이 정분을 갈라놓지 못할 것이라! 중전, 이리 와 보시오."

왕은 든든한 팔 안에 안겨오는 지어미의 향기로운 머리타래에 깊이 용안을 묻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맞붙어 그 수줍으면서도 열렬한 사모지정을 서로 전하여 주는구나.

오가는 체온이 따스하고 든든하였다. 왕은 중전의 등을 쓸어 내리면서 다정하게 속삭였다.

"짐이 왕 노릇 잘할 것이니까! 지아비로 그대만 은애하고 사모하는 것이니까 중전도 짐을

마음에 담아주시오. 짐이 전에 한번 말하였지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다 합쳐도 짐이 그대를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에는 못 미칠 것입니다. 짐이 앞으로 잘할 것이오! 지난 세월동안 짐이

그대를 아프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하고 서럽게 한 것 다 씻어줄 것이오. 다시는 그대 눈에 눈물

나게 하지 않을 것이야! 그대가 울면 억장이 무너지는걸! 옛적서도 그대에게 심술궂게 대하고

돌아서면은 후회를 하였으니, 그대가 우는 꼴은 짐에게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픔이었어.

그런 짐의 마음을 알아주시오. 응? 중전이 원하는 것이라 하면은 짐은 다 줄 참이오! 

허니 짐 곁에 있어 주시오! 평생 짐에게 그 마음을 주오."

"예, 전하. 그리할 것입니다. 신첩은 마마에게 딸린 운명이니 전하께서 즐거우시면은 신첩도

즐거운 것이며 전하께서 상심하시는 일은 신첩에게도 가슴 에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 살리신 신첩의 목숨이니 신첩 생명의 주인은 전하시라! 평생 마마 곁에서 마마의

기쁨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한 금침 안 다정한 그 이야기. 침수는 아니하고 내내 입술 나누고 아름다운 옥체를 쓰다듬으며

짜릿한 희롱질이라. 은애하는 지아비 품 안에서 중전도 사뭇 대답하여졌다. 넓은 지아비 가슴에

푹 쓰러져서는 수줍게, 그러나 사뭇 당돌하게 속삭였다.

"이 밤에 마마를 즐겁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어요."

수줍고 부끄럼 많은 여인이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왕은 싱긋 웃으며 매끄러운 등을 쓰다듬었다. 사탕으로 만들어진 듯 달콤한 귓불을 슬근히

깨물어 보았다. 느른하게 속삭였다.

"우리 둘이 어울려 놀음질 하는 데에 무슨 법도가 있을까?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야.

제일 무엇을 하고 싶어?'

고개를 들어 지아비를 바라보던 중전이 생긋 웃었다. 눈빛을 빛내며 뜻밖에 야무지게 대답하였다.

"전하께서 신첩을 깨물어 흔적을 내셨으니, 신첩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흠, 고약한 사람 같으니라고. 딴 계집은 절대로 손대지 못하는 내 사내다 흔적을 찍고야 말겠다는

것이구먼? 좋소! 허락할 것이니 깨물어 보시오"

아주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중전은 잠시 망설이다가 튼튼한 목덜미에 살며시 하얀 치아를 들이댔다.

아주 잠시, 잔지러울 정도로 작은 깨물림이었다. 그러나 격한 쾌락이었다. 왕은 신음했다.

어린 지어미가 그에게 내 사내다 낙인을 찍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단 한번도 지존인 그가 어떤 계집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일이다. 한 여인이 그를 향히 이토록

당돌하고 똑똑하게 소유권을 주장한 것은 일찌기 없던 일이었다.

왕비는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다시 왕의 팔뚝을 깨물었다. 이 팔로 다른 계집을 안지

마옵시오! 하는 뜻이다. 고개 들어 왕의 선명한 입술도 물어뜯었다. 이 입술로 다른 계집을

탐하지 마십시오! 하는 경고이다. 왕의 단단한 날가슴 한쪽도 움푹한 배꼽에도 중전은 자신의

작은 치아자국을 남긴다.예는 이 몸의 영역이니 절대로 다른 계집의 흔적을 남기지 마십시오

하는 깜찍한 분부이다.

"아직 더 남았구먼?"

왕이 중얼거렸다. 중전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지아비의 이글거리는 시선을 잠시 받았다.

어수는 단단히 평상의 난간을 잡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용체에 감히 소유권을 주장하며 

치아자국을 남길 때마다 느껴지던 온몸이 뒤틀어지는 격한 흥분과 쾌감을 참으려는 사내의 

안간힘이다. 모닥불에 익은 듯 새빨개진 중전의 얼굴이 파들거렸다.

잠시 망서이다가, 그의 눈빛이 재촉하는 뜻을 읽었다. 홍시처럼 붉게 타는 중전의 작은

얼굴이 서서히 아래로 숙여졌다.

'전하의 용체 전부가 신첩의 것입니다. 다시는 신첩 곁을 떠나지 마십시오. 오직 신첩만의

사내가 되어 주십시오."

고개를 든 중전의 눈빛이 전하는 말. 비로소 지아비의 사랑을 주장하는 당당한 선언이요 확인이다.

왕은 이제 평생 자신이 이 여인만의 사내라 함을 맹세하였다.

"비가 낙인을 찍었으니 짐은 이제 그대 그물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리라. 만족하오?"

"과하옵니다! 전하처럼 아름다우시고 높으신 분을 신첩이 독점하게 되었으니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마마, 가르쳐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전하를 기쁘게 할 수 있는지 신첩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오직 전하께서 가르쳐 주실 수 있는 것이니 신첩은 기꺼이 배울 것입니다."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달라 말하는 저 여인이 저토록 대담하였던가? 왕은 순간 놀란다.

그러나 그의 운 동체 위에 겹쳐졌다.

<제4화> 제헌원의 백목단

송양을 떠난 지존들의 거동이 도성에 가까워졌다.

왕의 일전에는 이미 재성에서의 무과시험과 신위영의 군사들 격려하시는 뜻으로 잔치를

베풀어 주신다 하는 일이 정해져 있었다. 하여 재성의 행궁에서 사흘을 더 머물렀다.

유월 열 엿새 날 새벽. 왕을 위시한 왕실가족들은 재성 행궁을 떠났다. 

내전마마들께서는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시고 융복차림의 전하께서는 거의 말을

타신 채 주안, 연성부를 거쳐 노들목 행궁에 도착하였다. 그 다음 날에 이미 아리수에

건설된 가교를 이용하여 도성으로 접어들 예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