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5/200)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고 하여 백종이라 하고 망혼일(亡魂日)이라 하는 까닭은 망침(亡親)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음식, 과일을 차려 놓고 천신(薦新)을 드린데에서 비롯되었다.

중전마마 역시 아침부터 옥안에 미소를 머금고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 이유인즉슨,

주상 전하의 윤허를 받고 궐에 들어온 이후 처음 당당하게 원찰인 봉은사에 나가 할머니와 

생모의 제사를 드리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존의 안곁이시며 또한 국모이시므로 사사로운 인연은 다 끊어졌다 다짐하였다.

망모(亡母)의 제사에도 사람을 보내어 멀게 참여하였을 뿐 한번도 두 분을 위하여 향촉(香燭)을

사르지 못한 터로 늘 가슴에 박힌 못이었다. 헌데 백중날을 맞이하여 상감마마. 슬쩍 허락하시었다.

"속가의 풍습이라. 호미씻기 날이 아니오. 다들 아랫것들을 몰고 나와 놀고 마시며 구경하고 

잔칫상 차려준다 하더라. 중전도 내전의 아이들을 끌고 나가 원찰에나 가서 그 아이들 더러 

향촉 사르게 하고 절밥이나 자시고 오시오?"

유가의 세력이 극성이라 상감마마 당신은 불가의 행사에 아니 나가시되, 몰래 중전마마더러 

궁녀들을 다리고 바깥 나들이 한번 하라 하시었다. 싱긋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 사리에 맞고

온당하였다.

원래 백중이 낀 7월은 입하로부터 시작되는 여름이다. '녀름짓다'라는 말처럼 밭매기와 논매기 등 농사일이

한창인 계절이다. 그러나 '어정 7월,동동 8월'이라는 말이 있듯이 또한 7월은 바쁜 농번기를 보낸 뒤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을 추수를 앞둔 달이어서 잠시 일군들이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백중이라는 속절을 두어 농사일을 멈추고 천신의례 및 잔치와 놀이판을 벌여 노동의

지루함을 달래고 더위로 인해 쇠약해지는 건강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불가에서는 그 날은 우란분절이라 하여 오미백과를 갖추어 분 안에 넣어 시방대덕에 공양하며

부처님과 조상들의영전에 바치었다. 중전마마 이하 궁녀들이 참여하려 한 행사는 바로 이 행사였다.

대부분의 궁녀들이 궐에 들어와서는 사가의 인연이 끊어진 형편이니 어디 한번 마음 놓고 돌아가신

조상들과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한 제사에 참여나 하였겠는가? 이 날 한꺼번에 절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백중날

즐거운 행사에 참여하자구나 중전마마 말씀에 다들 환호성을 올렸다. 오죽하였으면 나이 지긋하여

점잖은 윤상궁조차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을까?

"참으로 황읍할 사 이날 궐의 모든 아이들이 원을 풀었나이다, 중전마마."

"어디 내 덕인가? 대전마마께서 어진 분부를 내려 주시었으니 가능한 게지."

박상궁 역시 싱글벙글. 중전마마 머리를 곱게 빗기어 사가의 여인네인 양 쪽진 머리로 하였다.

푸른 비취가락지 하나에 옥 노리개 수수한 옥매화잠을 골라 꽂아드리었다.

의대도 여염집 아낙네모양 남빛 치마에 하얀 세모시 저고리를 찾아 입혀 드리고 치자 물들인 깃부리에

창포꽃 수놓은 장옷을 찾아 활대에 걸어놓았다.

"백중날에는 머슴들과 일꾼들에게 돈과 여가를 주어 즐겁게 놀도록 한다는데 실상 오늘이 소인들

에게도 즐거운 날이랍니다."

"허기는 맞는 말이야. 이 날이면 머슴들과 일꾼들이 특별히 장만한 아침상과 새옷과 돈을 받는데 

자네들도 나에게 백중돈을 타야지 않겠나? 김상궁 있는가?"

중전마마 즐거운 마음에 벙싯 웃었다. 아랫방에 앉은 김상궁을 바라보았다.

"김상궁. 중궁의 아이들에게 생각시 하나까정 빠뜨리지 말고 백중돈 두어 냥씩 보내주시게.

모처럼 여가를 받아 궐 밖으로 나가 노는 날 아니오? 장터에 나가 참빗 하나라도 사야지 않겠나? 

'백중장'이 크게 벌어진다 하니 구경거리가 많을 것이야."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작년에 소인이 잠시 나가 구경을 하였는데요, 장하게 풍장이 울리고 씨름판이 

벌어지고..... 여하튼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호미씻이'한다고 큰 소에 머슴을 태워 돌아가는데

아주 늠름하였사와요. 호호호."

"마을 사람들이 장원한 집의 머슴 얼굴에 검정칠을 하고 도롱이를 입히고 머리에 삿갓을 씌워

우습게 꾸며서는요, 지게나 사다리에 태우지요. 아니면 황소 등에 태워 집집마다 돌아다니면 

그 집주인은 이들에게 술과 안주를 잔뜩대접하니, 이날을 일러 과연 머슴날이라 할 만 하였사와요"

"아이고, 그 일만 있을까봐? 마을 어른들이 모여 머슴이 노총각이나 홀아비면 마땅한 처녀나 과부를

골라 장가를 들여주고 살림도 장만 해주는데, 옛말에 '백중날 머슴 장가간다'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합니다."

"저가 잠시 지냈던 저 아래 탐라에도 재미난 일이 많답니다. 백중날에 살찐 해산물들이 많이

잡히지요. 쉬지 않고 밤늦도록 해산물을 채취하기도 하고, 또 삼백산에 '백중와살'이라는

산신이 있다 하여요. 백중 이 날을 고비로 익은 오곡과 산과를 사람들이 따가면 허전하여 샘을

낸다고 하여 산신제를 지낸답니다."

중전마마를 둘러앉은 상궁, 나인들 모두가 질세라 한마디씩 거들었다. 모두들 오늘 궐을 나가

구경하고 놀 것이 기대하여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백중날 우란분절 행사에 참가하고, 

달구경 핑계를 내어 친정 집 사람들을 보아지고 안부 묻을 작정이다. 중전마마께서도 이미

기별하여 부원군 이하 친정집 일가들을 봉은사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궁녀들도 예외가

아니니 일년에 한두 차례도 만나기 힘든 사가 식구들 얼굴을 보아지기로 약조가 다 되어있으니

이런 반갑고 즐거운 날이 어디 있을 것인가?

막 출발하자구나 이러는데 상감마마께서 듭시었다. 백중이라 종묘에 이른 벼를 베어 천신을 올리고

난 후 돌아오신것이다.

"인제 떠나실 참이오?"

"예, 전하. 제를 올릴 시각 맞춤하여 지금 떠날 참이었나이다."

"짐이 엽전 몇 냥 줄 것이니 달떡 사다 주오. 사가의 달떡이 맛나다 하더구먼."

혼인한 후 구중심처에 계시던 중전마마께서 처음으로 나들이 가는 것이 아니냐. 짐이 배웅하여야지

싶어서 들어오신 것이다. 싱긋 웃으며 젊은 지아비 상감마마, 소매춤에서 작은 전낭을 하나 꺼내었다.

중전마마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잘 댕겨 오시오. 달구경도 잘하고 유등놀이도 하고요. 오랜만에 부원군도 뵙고 올 것이니 중전이

기쁠 것이야? 밤이 깊어도 짐이 동온돌에서 기다릴 것이니 반드시 달떡 사오시오? 핫핫하."

말씀은 달떡 사오기를 기다린다 하는 말씀이되 궐 문 나서는 어린 지어미를 그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빨리 빨리 들어오시오 하는 속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모처럼의 나들이 아니오? 즐겁게 다녀오시구려."

그리고 왕은 문 바깥에 선 지밀위사 정일성더러 들어오너라 분부하였다.

"짐이 중전을 궐 바깥에 내 보내주기는 하되 마음이 놓아지를 않는구나. 멀찍하개 내금위들이 모실 

것이나 그래도 불시에 위해가 닥치면 어찌할 것이더냐? 너가 중전 곁에 항상 붙어 모시거라. 

옥체에 털끝만한 불편함이 없어야 할 것이야."

"분부 명심하와 신이 힘을 다하겠나이다."

그로도 미덥지 못함인가? 심지어 마당 앞에까지 들어온 연의 문을 손수 닫아주시기까지 하였다.

중전마마 작은 가슴이 저절로 두근두근하였다. 지아비 잘난 용안이며 그 훤한 웃음을 마음껏

본 것이니 수줍은 여린 방심이 마구 흔들렸다. 금세 다녀 올 것입니다. 가마속에서 흔들리며

마음속으로 못다한 인삿말을 되씹는데 왜 전하께 직접 말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들었다. 

돌아오면 감사한 인사를 꼭 들여야지. 새삼 다짐하였다.

궐 문 바깥에서 기다리던 강두수가 읍을 하여 중전마마 가마를 맞이하였다.

어진 얼굴에 벙싯 웃음을 머금고 하루의 행보를 아뢰었다.

"신이 미거하나 이 날 마마를 뫼시렵니다. 먼저 봉은사로 가시어서 행사에 참가하시고 압록정

나가시어 유등놀이를 보옵시지요. 그 다음에 저자거리 잠시 나간 다음에 달구경을 모시렵니다.

부원군께서는 압록정으로 바로 나오시기로 되어 있사옵니다."

삼삼오오 짝을 진 궁녀들이 중전마마 가마를 옹위하여 궐 가까이 있는 원찰 봉은사로 모시었다.

우란분절 제를 끝내고 우르르 몰려나와 저자거리를 구경하고 까치발을 한 채 기둘리던 식구들을

만났다. 경치 좋기로 이름난 압록정에 유등놀이를 구경하기 위하여 도성 사람들이 개미떼 같이 

모였다. 부원군께서도 중전마마 집안 일가를 딸리고 이미 나와서 이제나저제나 나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친의노안에 저절로 웃음이 훤하게 머금어졌다.

궁녀들이 병풍을 두르고 비단방석을 깔고 중전마마를 모시었다. 합에 담아 온 음식을 상에 차려

중전마마와 부원군 대감, 일가친적과 글스승 강두수까정 대접하였다.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그동안 알지 못하였던 안부도 두루두루 물었다.

강두수의 부인 문씨가 음식이 든 고리짝을 인 어멈을 딸리고 아기들을 끌고 안고 언덕배기에 

올라온 것은 그때였다.

지엄한 중전마마 옥안을 뵈옵는 일이었다. 지존의 옥안을 뵙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이되 맞춤하여

궐에서 나오신 분이다. 항시 은혜를 입고 사니 저가 얌전하게 음식이나 하여 찾아가렵니다 이러

하였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것인데 강두수 또한 어찌 마다할 것이냐? 그리 하시오 하였다.

중전마마께서 선시하신 의대로 단장한 아들을 품에 안고 정자에 오른 문씨, 치마꼬리 부여잡고

중전마마께 나붓이 절을 하였다. 어린 중전마마 미소 지으며 의젓하게 그 인사를 받으시었다.

강두수의 아내 문씨는 지금 속으로 깜짝 놀란 터였다. 항시 중전마마께서 못났다 하는 소문만

들은 지라 정말로 오늘 뵈올 그분이 눈을 뜨고는 보지 못할 천하박색이라 생각하였다. 

헌데 곱게 쪽머리하고 소박한 모시 의대에 옥잠 찌른 어린 중전마마. 그 옥안은 비록 눈에 탁

뜨이는 절세미인은 아니라 할 것이되 기품 도도하시고 고귀한 윗전의 품위와 위엄이 드러난

분이었다. 박색은 커녕 오히려 여늬 여염집 처자와는 도통 견줄 수조차 없이 고왔다. 

민감한 여인의 눈이니 강두수의 부인 문씨, 속으로 훗날 중전마마께서 정작 여인으로 필것이면

꽃보다 더 아릿다운 경국지색, 화용월태가 될 것이다 미루어 짐작을 하였다.

'황후지상이라 봉안이시로다. 콧날도 마늘쪽같이 어여쁘시구나. 무엇보다 자태가 요요하고 위엄이

있으니 어떤 처자가 대어도 그 타고난 아름다움을 비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물며 중궁전서 갈고

닦은 덕성이며 품위가 여염집 처자와는 아예 틀리니 우리 집 나으리께서 중전마마가 실로 인세에

찾아보기 어려울만치 귀한 분이시다 감탄하는 이유가 있음이야. 그러고 보면 중전마마께서 감히

못났다 입질하는 것은 모다 헛소문이구먼. 요즈음 주상 전하께서 모란꽃같이 곱다하던 월성궁 

마마를 두고서도 중전마마 바라보시기 나날이 은근하여진다 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구나.'

은근히 중전마마 앞에서 그 지엄한 신분 때문이 아니라 여인으로 기가 죽는 문씨, 남편이 중전

마마 옆에 벙싯 웃고 앉은 그 모습에 기분이 자꾸만 이상하여 지는 것이다. 

위엄있고 아름다운 모습이며 깊은 지혜와 덕성이 한짝이라, 항시 지아비를 존경하고 어려워하였던 

문씨는 그순간, 중전마마와 자신의 남편이 나란히 앉은 그 모습에 천생연분 한 동류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아기가 지난번 돌을 맞았다 하는 그 아기구먼? 한번 안아보아도 될 것입니까? 이름이 무엇이오?"

"위겸이라 하나이다. 조부께서 뜻을 생각하시어 붙여주신 이름입니다."

"총명하고 고운 아기로다. 훗날 자라면은 이 나라 사직을 호위할 인재가 될 것이오. 부인께서

어지시고 스승께서 강직하시니 그 가르침 받고 자랄 아기라, 훗날 이 아기의 관명이 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중전마마 살풋이 웃으며 아기를 안고 덕담을 하시었다. 항시 스승께 덕을 입고 산다 치하하시고,

문씨에게 고생한다 인사를 차렸다. 황감하여라, 문씨가 들고 온 고리짝에서 나온 엿가락을 

망신이다 하지 않고 반갑게 웃음으로 칭찬하였다.

"아이고, 엿 맛이 실로 탈콤하니 이것, 저가 전하께 꼭 한가락 가져다 드릴 것입니다."

손수건에 엿가락을 하나 집어 알뜰히 싸는 중전마마의 옥안을 감히 곁눈으로 바라보는 강두수의

얼굴에 어두운 갈등이 서렸다. 아뜩하고 슬픈 눈으로 문씨는 그런 남편의 옆얼굴을 바라만 보고.....

'신은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윽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무연히 미소를 머금고 강을 향해 돌아선 강두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인제 달이 떠올라 사방이 환해지지만 그의 마음은 오직 쓸쓸하고 캄캄한

암흑이다.

'오직 해바라기라 할 것입니다. 순결한 사모지정을 간직하신 마마의 아름다운 마음을 곁에서

도와드리지 못할 망정, 용서받지 못할 헛된 욕심을 간직하고 있음에랴, 이 학사는 나중에 필시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강두수도 그러하거니와 중전마마 또한 꿈에도 짐작하지 못하였다. 

중궁전 일행을 멀리서 바라보는 가마 한 채가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교인당과 희란마마가 탄

가마였다. 강두수가 중전마마를 모시고 달구경을 나왔다길래 강가 학사 놈이 대체 어떤 놈인지

보아야겠다고 작정을 하였다. 두 년 놈이 정분이 났다 하여도 비슷하니 견줄 만하여야 그 소문이

사실이라 할 것이다. 말라비틀어진 찬밥 같은 중늙은이를 두고서 중전과 배가 맞았느니, 정분이

진진하더라니 할 것이면 뉘든 그것을 사실이라 하지 않고 헛소문이라 하지 않겠냔 말이다.

희란마마, 소리 없이 붉은 웃음을 물었다. 강두수를 바라보는 눈빛이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곁에 붙어앉은 교인당을 돌아보며 나불거리는 입질이 묘하였다.

"저 학사 놈, 생김도 계집년 아랫도리 꼬이게 생겼다? 실로 잘난 사내라 할 것이야. 늠름하고

아름답기로 전하를 견줄 이가 없다 싶었는데 저 놈도 잘나고 훤칠하기 만만찮으니 두 년놈이

정분났다 소문 만들기 딱 맞춤이다. 이미 저 놈이 감히 상감마마를 상대로 꾸짖어 가로되 그 일로

비위가 상하여 한번 중궁전 기둥까정 발로 걷어찼다 하였어.주상의 심중이라 조놈에 대하여 

비비꼬여 있을 것이니, 옆에서 이간질 한마디면 당장에 불이 확 붙을 것이다! 가자! 더 이상 

볼 것이 없음이다!"

희란마마 가마가 사라졌다. 밤이 이슥하여 부원군이 재촉하는대로, 정일성이 서두르는 대로 가마

타고 궐로 돌아가는 중전마마. 그 일을 어찌 알랴? 가슴의 묘한 투기심이 배배 꼬여 무겁게 돌아

가는 문씨의 마음 또한 옆에 같이 걸어가는 강두수 역시 알지 못하였다.

밤 늦다이 동온돌에 앉아 행여 아니 돌아오시나 안절부절. 마냥 어린 지어미를 기다리던 상감마마

야 더더구나 그 음모를 알 리는 없는 것이다.

"사가의 달떡 맛이 실로 기이하니 역시나 궐 안 숙수들을 예로 보내어서 배워 오라고 하여야 해."

벙싯 웃으며 전하, 윤상궁이 내놓는 보따리 속을 기웃거리며 한마디 참견이었다. 주저주저하다가

중전은 손수건에 싼 엿가락을 슬며시 상에 올려놓았다.

"어이구, 이것이 무엇이냐? 중전이 짐 주러 가져온 것이야? 어인 엿가락이야?"

왕은 꼬깃꼬깃한 손수건에 싼 엿가락이 나오자 벙싯 웃었다. 중전을 다정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한낱 엿가락에 하찮다 하지 않고 반가운 빛을 보이시니 용기를 얻었다. 중전은 수줍어 볼을 붉히며

자그만 목청으로 사정을 설명하였다.

"궐 안 사람들 먹어 보라 스승의 집안에서 무리를 하셨지 무엇입니까? 그 분 안해께서 아기들을

다리고 달구경을 나왔는데 아, 글쎄 우리 중궁전 식구들 생각하여 엿 곤 것이랑 당과자랑 약과랑

전냐랑 하여 한아름 내놓았답니다. 엿 맛이 궐서도 보기 힘들만큼 기이하여 저가 전하께 드리려고

한가락 몰래 손수건에 싸 왔지요. 마마께서 생강이 든 엿을 좋아하지 않사옵니까? 드셔 보십시요."

"짐 생각을 하여 주는 사람은 천지간 중전뿐이구나! 핫하하. 고맙구려."

평상시 단 것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되 살뜰한 지어미 마음이 고마웠다. 왕은 벙싯 웃으며 치하를 

하였다. 엿가락을 부러뜨려 한 조각을 입에 넣고는 다시 싱긋 웃었다.

"참, 오랜만에 먹어보는 것이구먼. 그 엿맛, 참 달콤하다. 중전도 한 조각 주어 보까?"

"신첩은 이미 많이 먹었나이다. 드옵소서."

"한 조각 줄것이다. 자셔 보시오!"

왕이 엿조각 하나를 중전의 입 앞에 내밀었다. 마지못하여 중전은 작은 입을 벌렸다.

오물거리는 양을 바라보며 왕이 흐뭇하게 웃었다.

"참말 달콤하구려. 맛난 엿이야. 짐이 단것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되 오직 하나 생강엿을 

좋아하는데 비가 어찌 짐의 입맛을 이렇게 잘 아는 것이야?"

"그 전에 신첩 앞에서 소반과 받으실 적에 짐은 생강엿이 좋다 하였지 않사옵니까? 윤상궁이

또한 마마의 아지였기로 가끔씩 전하의 성정에 대하여 신첩에게 알려주는 고로 마마께서 새앙이

든 강엿을 좋아하신다 들었나이다. 어린 날, 새앙이 든 엿을 물고서 낮것도 받지 않으시고 장난감

배를 가지고 영회루에서 늘 노셨다 들었나이다."

"윤상궁이 짐의 비밀을 중전에게 고렇게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 바쳤다는 게야? 이거 아지가 입이

무거운 줄 알았더니 하는 짓이 아니 되겠다. 핫하하. 그보다 궁금하구려. 말씀하여 보시오. 불사며

달구경은 좋았소이까?"

"예, 너무 좋았나이다! 글쎄, 유등 놀이를 하는데 별별 기묘한 모양을 만들어 강물에 띄우니

마치 강에 꽃이 핀 듯이 보였지요. 마치 선경에 온 듯 하였습니다."

"곤하시옵니다. 인제 그만 침수를 드옵시지요. 마마, 서온돌에 기수 배설하였나이다."

문 바깥에서 몽상궁이 고변하였다. 두 분 마마, 나란히 다정하게 금침 안에 드셨는데...

지아비 넓은 가슴에 팔베개를 하고 누운 중전은 한참동안 재잘재잘 구경한 것을 종알거렸다.

마냥 즐거워하는 안해에게 팔베개를 해준채 미소짓는 젊은 상감마마,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짓고...

이토록 다정한 두 분 마마 사이가, 슬프다. 며칠도 채 되지 않아 들불처럼 퍼져나갈 악의 서린

헛소문에 얼음처럼 싸늘한 사이로 돌변하리라고는 과연 누가 짐작이라도 하였을 것인가?

<제3화> 송양 행궁의 운치

"아이, 이러지 마옵사이다! 어찌 이리 항시 이기시느뇨? 저가 약이 올라 못살 것이다!"

"허어, 실력이 없다 인정을 할 것이지 말야, 괜스리 짐만 두고 투정이더라? 어쨌거나 짐이 이겼어.

허니 비단필은 짐 것이야!"

"다시 하셔요."

"아 좋아. 다시 하자고. 이 번에는 옥 노리개를 걸 것이야."

"흥, 신첩에 겁을 낼 줄 알고요? 신첩이 지면은 마마 태사혜를 직접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허나

이번서는 저가 반드시 이길 터이니 옥 노리개는 신첩 것이야요."

한적한 송양 행궁. 그 중에서도 가장 심처인 복내당의 후원.

지금 두 분 마마께서는 즐거운 입씨름이다.

낮것 후에 잠시간 나무그늘에 내려서시었다. 잠시간의 소일거리라, 투호 놀이를 하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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