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2/200)

묶여졌다. 헌데 이상한 일이다. 만조백관 등 뒤로 천여명의 내금의 위사들이 창검을 빼어 들고 겹겹이 둘러서 있지 않느냐? 

대전 문 안쪽 만이 아니라 바깥쪽으로도 재성서 올라온 상감마마 직속 신위영의 군사들이 완전무장한 채 도열해 있었다. 

어찌 이러하실까, 무엇을 하려고 군졸들을 백관 뒤에다가 배치하셨을까? 웅성웅성 수군수군. 두런두런 삼삼오오 모여 

힐끔힐끔 분위기를 가늠하려는 중신들이 얼굴이 한결같이 불안하고 목이 타는 빛이다.

"주상전하 납시오-!"

한 식격 후쯤, 상께서 듭시오 하는 장고가 들려왔다. 용포에 익선관.어수에는 등채를 잡은 전하께서 줄줄이 수십 명의 내

관 상궁을 뒤에 딸리고 도승지, 호위밀들을 좌우로 곁에 둔 채 어도를 걸어 월대에 오르시었다. 턱 하니 용상에 앉으셨다.

바로 옆 한 단 아래에는 영의정 한영회가 섰고 그 옆은 병조판서 남준이 차지하였다. 

숨죽인 대전 앞 너른 마당. 상감마마 옥음이 울렸다.

"죄인을 친국하련다. 저 오른쪽 놈이 중전의 가마를 습격한 바로 그 흉적이 분명한가?"

저 괘씸한 놈이 감히 가마를 습격하여 태중 아기를 죽이고 중전을 해치려한 놈이렷다? 격하고 급한 성질머리로 치자면야 당

장 뎅겅 목을 잘라 버렸으면. 왕의 어수가 용상의 팔걸이를 단단하게 잡았다. 

왕의 하문에 읍하여 형조판서 김승로가 아뢰었다. 

"그런 줄 아옵니다. 신이 심문한 결과 그렇다 자복하였나이다."

왕의 짙은 눈썹이 찡그려졌다.

"짐이 궁금하다. 중전께서 잠시 사가로 나가셨을 때 미복하시고, 그저 사가의 여염집 부녀인 양 하시었다. 헌데 어찌 저것

들이 중전의 가마인 줄 알고 감히 습격하였는가? 짐이 듣기로 산골 깊은 곳에서 종종 화적들이 출몰한다 하는데 저들도 단

지 행인의 전낭 털자고 나왔다가 중전가마와 맞닥뜨린 것은 아닌가?"

거복이 놈 이미 몇 날 며칠 계속된 모진 악형에 살 뜻을 잃었다. 저가 아니라 하여도 이미 중전더러 원자를 회임한 것이 

죄라, 죽어주어야겠다 말꼬리가 있었으니 부인한다 하여도 소용없으리라. 

한시라도 빨리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목이 베이든 사지가 찢어지든 끝이 났으면 싶었다. 그저 편안하게 죽고 싶었다. 

성상의 하문에 대답하라 호령하는 형리의 재촉에 입을 열었다. 

"이미.......중전마마........가마인 줄 알았나이다."

"어찌 중전께서 계산골로 나가시는 것을 알았느냐?"

"산실에.....악한 방술질하여....중전마마 골병 들게 한 다음에.....허술한 곳으로 나오시........면 중궁의 내통한......

계집이 기별을 한다.........하였습니다. 쿨럭!"

말을 제법 많이 하자 쿨럭 입에서 피가 터졌다. 악형에 못 이긴 육신이 쇠하여져 그것조차도 힘에 겨운 것이다.

"내통한 계집이 바로 저 나인이냐?"

성상께서 어수에 잡고 있던 등채로 선이 년을 가리켰다. 벌써 반죽음이라, 주인을 배반하고 악행을 일삼은 간특한 년의 말

로가 볼 만하였다. 모진 고문에 축 늘어져 경련만 하는 선이 년을 향하여 거복이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감히 사지의 안지존을 향하여 행악한 이런 흉계는 하찮은 네놈이 시작하였을 리는 없는 법. 

누가 뒤에 있느냐? 누가 너들더러 중전을 해쳐라 하였느냐?"

"......월성궁마마께서.....지금껏.....여러일을 다 꾀하였되, 뜻을 이루지 못하시고.......지금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전부.....중전마마 탓이라 원망이 극하시니.....이놈더러........중전마마 가마 습격하여.......중전의 아랫배를 걷어

차 주어라...이리...........하명......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격분한 왕이 벌떡 용상에서 일어났다. 

감히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호위밀이 들고 있는 장검을 뺏어 들었다. 

단 아래로 한달음에 달려 내려가 거복이 놈을 향하여 망설이지 않고 시퍼런 검을 휘둘렀다. 

으아악! 철퍼덕. 

거복이 놈의 허리가 단번에 베어져 나가 피보라가 허공에 확 튀었다. 아아, 망극하여라! 상감마마 용포에도 용안에도 

붉은 악인의 피가 확 튀었다. 땅바닥에 펄떡펄떡 뛰는 놈의 반쪽을 냉정하게 노려보더니 지그시 태사혜로 악인의 

가증스러운 얼굴을 짓눌러 뭉개 버렸다. 붉은 피가 아직도 검날에 묻은 장검을 바닥에 탁 박았다. 거복이 놈의 붉은 피가 

선연히 묻은 용안을 돌려 좌우로 부복한 중신들을 노려보았다. 

칼날 같은 눈은 어찌할 바를 몰라 희번득한 눈을 굴리고만 있는 정안로에게로 박혀 있었다. 

"죄상은 명명백백. 흉수는 재성의 계집이며 좌성 너도 그 죄를 면치 못하리라. 그 계집의 위세를 등에 업고 떼로 몰려들어

와 나라를 어지럽히고 짐을 기만한 인간들이 여기 많이 모여 있구나. 어린 짐을 능멸하여 인의 장막을 치고 사직을 농단하

였으며 태중원자를 가진 중전을 모해하려 하였다. 감히 국벅이 금한 사병을 사사로이 기르고 무구를 빼내어 역모를 꾀함이

라. 너들 단 한 사람도 살아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리라."

왕은 다시 용상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넓은 등 뒤로 아직도 뜨거운 가을 햇살이 올라앉았다. 지엄하고 강건한 왕의 뒷모

습은 하나 흔들림이 없었다. 용상에 앉은 왕은 나지막이 하명하였다.

"영상은 명을 받들라."

"신 등대하였나이다."

"지금 도승지가 건네주는 두루마리에 적힌 인간들은 전부 다 역모에 가담한 역적이다! 군사를 움직여 한 놈도 빠뜨리지 말

고 하옥하라. 허고 좌상 저 늙은 놈! 오랏줄로 묶어라."

뒤에선 군사들이 달려들어 정안로를 오랏줄로 묶어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제발 살려달라 아우성을 치는 입을 칼등으로 내

려쳐버린 빠진 이빨이 우두두 튀었다.

"저 노물은 십악의 으뜸이라. 대역죄의 우두머리이다. 당장 끌고 나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사지분시하라. 저의 삼족을 멸

할 것이며 집 안에 살아 있는 것은 전부 죽여라! 저 노물이 살던 집터도 더없이 더럽고 음흉하다. 건물은 불태우고 그 자리

를 파서 연못을 만들라."

"존명."

"그리고 저 천악한 것들은....."

왕의 시선이 월대 아래 죄인들에게로 가 박혔다. 등채로 허공을 내려쳤다.

"저것들 역시 살려둘 가치가 없다. 시신도 보존케 하지 않으리라. 저것들 삼족 전부를 찢어 죽인 다음 전부 불태워 재로 날

려 버려라. 허고 재성의 계집 역시 절대로 살려주지 못하리라!"

이렇게 하여 단국의 여황 노릇을 하며 의기양양 세월을 풍미하던 월성궁 큰마마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 계집은 성총받는 자의 덕을 잃었으며 감히 간부 놈과 통정하여 짐을 능멸하였다. 그도 모자라 역모까지 꾀하였다. 그 

수단이 무위로 돌아가자 인제는 원자를 회임하신 중전을 제 팔자 몰아간 원수로 모해하여 해치고자 한 터로 어찌 살기를 바

랄 것이냐? 당장 금부도사는 재성으로 내려가 간악한 계십과 그 수하인 무녀, 계집의 어린 소생을 잡아로라. 반드시 그것들

을 효수하고 난 후, 젓을 담아 팔도에 내려 보내 두고두고 시신마저도 조롱받게 할 것이다."

홍희13년. 팔월 초하루 날. 

유난히 푸른 하늘이었다. 고추잠자리가 청명한 허공 위로 부산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궐 담 바깥에서는 올벼를 거둬 드리는 농부들의 노랫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날이었다. 

단국 역사상 가장 참혹한 변란인 을사의 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백관 중에서 정안로 일파로 지목되어 화를 당한 자가 무려 삼백여 명. 줄줄이 지방관속와 궁 곳곳에 박힌 상궁, 

내관들, 끈 닿은 병정들, 정안로 일파와 연루되었다 하여 장살되거나 귀양 가거나 하옥당한 형을 받은 이가 무려 천여 명. 

새남터의 망나니가 휘두른 칼에 목이 떨어져 피가 흐르고, 아리수 물이 벌겋게 변하였다.

그날 밤,교태전에 듭신 상감마마.

동온돌에 앉아 원자에게 젖을 먹이는 중전을 한참 동안 묵묵히 바라본다.아무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젖을 다 먹은 원자를 받아 한첨 동안 작은 얼굴을 들여다보시며 얼러주시는 용안이 편치 않았다.

훤칠한 이마에 수시로 퍼런 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윽고 왕은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유모는 들라.원자를 데리고 나가라!"

왕은 강보에 싸인 원자를 들어온 유모의 품에 안겨 주었다.

"원자를 경훈각으로 데리고 나가서 귀를 솜으로 막아라.아무것도 듣지 못하게하라."

"예,전하."

어찌하여 아기 귀를 솜으로 막아라 하시는고?옆에 앉아 분부를 듣고 있는 중전마마, 아무것도 미리 듣지 못한 터이지만은

본능적으로 가슴이 두근두근,불안하였다.

동그란 눈을 뜨고 상감마마 입만 바라보았다.

왕은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내려다보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고갤를 번쩍 들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거니,짐이 이 일을 어찌해야 할까?꼭 이래야 할까 많이 고민 하였소이다.우리 원자가 태어난 후로

죄수들을 방면하고 상급을 내리며 경사라,각도가 즐거움으로 뛰노는데 지금 피바람을 꼭 일으켜야 하는가.또 짐 역시

왕이기 전에 인간이거니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 그 원귀가 어찌 달려들지 않을 것인가,생각이 많았소.허나....."

"저,전하,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러하셔요?용안이 심히 굳으시고 노화 가득하시니,신첩은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

습니다."

그러나 왕은 중전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였다.

"허나 시일을 끌수록 더 뿌리가 깊어지며 적들이 어둠 속으로 묻혀들어 갈 터이니,차라리 모든 것이 드러난 지금 척결

하여야 함이 옳다 싶었소.오히려 우리 원자가 안즉 어릴 적에 짐이 이 일을 끝장을 보아야지 저 아이 앞날에 누가 끼이지

않을 듯싶었거니.어차피 어리석은 짐이라,폭군 소리를 또 한번 듣는것이 무엇 어떠랴?더러운 일은 원자보다는 짐이 하는

것이 나으리라 싶었어."

"마마,무슨 일이옵니까?바깥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무서운 말씀을 하시는 지요?"

"중전,지난번에 가마를 습격하고 원자와 그대를 해치려 한 흉적의 배후가 누구인지 알지 않소?"

왕비는 대답을 못하였다. 그 한마디로 왕이 어떤 일을 해치웠을지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짐작하였을 것이오.중전의 가마를 습격한 놈을 마침내 잡았기로 문초하였거니 단순히 비와 원자를 해치려 한일만

아니었소이다.사사로이 병사를 기르고 나라의 무기고에서 무구를 빼내가고 서로 떼로 얽혀 혁이란 놈을 중심으로 하여 

후사를 도모함이라.바로 역모입디다.그 깊고 넓은 뿌리가 뉘일까?바로 번동 좌상과 재성의 계집이라.도저히 인제는 더

이상 두고 볼수 없음이라.짐이 그리하여 결단을 내렸거니,금일 아침 정가를 잡아 들이고 그 일파를 전부 다 굴비 두름 

하였기로,오체분시하고 그 집터는 연못으로 만들어 버렸소."

에구머니.중전은 하도 기가 막히고 두려워 멍하니 왕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아무리 그러하여도 그렇지 이토록 독하고 무서운 일을 이처럼 전광석화처럼 밝혀내어 처결을 할 줄이야!

"마마,아무리 흉적이되 원자가 태어난 후 이레밖에 되지 않았나이다.이토록 가혹한 피바람은 좋지 않을 것입니다.처분하시되

쓸만하고 단순히 얽힌 자라 하면 옥석을 구분하시어 잘 처결하십시오."

"그는 중전이 걱정할 일이 아니오.짐이 알아서 할 짐의 일이지."

"허면 이미 결단하시고 처분하신 일을 신첩에게 새삼스레 의논하심은 무슨 뜻입니까?달라질 일도 없지 않습니까?"

"안즉 남았소.재성의 계집이 있지 않소?그 계집과 아들의 목숨은 안즉 붙어 있소.내일 결정할 것이오."

중전은 잠시 망설였다.한숨 한번 내쉬고 속닥였다.

"그 혁이란 아이가 진정 왕자라 하면 어찌합니까?아들 죽이는 아비 없나이다."

"그놈은 짐의 생자 아니오.이미 아니라 하였소이다.짐의 아들은 원자 하나뿐이오!허고 설사 그놈이 왕자라 하여도 짐은 그를

인정하지 못하오.우리 원자에게 그처럼 독한 태생의 형이 있음이 싫고 꺼려지오.하물며 그놈이 중전 사슴을 쏘아 죽이는 

것으로 보아도 알 조이니 그 성정이 독하고 포악하오.살려두어 우리 원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 하나도 없소.짐은 그놈을 

반드시 죽여야겠소이다."

"허면은 재성의 여인은 어찌 처분하실 것입니까?"

"그 계집 역시 온전히 살려둘 죄가 아니오.오체분시할 것이오."

중전은 단언하는 왕의 목소리에서 지독한 배신감을 읽었다.

왕은 한때 은애하였던 여인의 행악에 분노함과 동시에 배신당한  자신의 순정을  슬퍼하고 있었다.그런 계집에 미쳐 날뛴

지난 세월의 허물에 대하여 더없이 허무해하며 왕은 이를 갈았다.

"짐이 다 주었거늘!진정으로 생각하여 제 살길을 열어주고 어리석은 폭군이라는 망신을 당하면서도 저를 은애했었거니,

그가 한짓이라고는 고약하고 무도한 행악뿐이더군.제 아들놈을 보위올려라 명국과 내통하여 무구를 사들이고,군사를 조직

하였으며 여차하면 궐로 침입하여 짐을 내쫓아 죽일 생각까정 의논하였다합니다.이를 용서할 수 있소?"

용포 위에 꾹 움켜쥔 왕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눈을 치켜뜨고 왕은 딱 부러지게 오금을 박았다.

더없이 잔인한 눈빛을 들어 허공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죽일 것이오.중전이 반대하여도 소용없소."

"..........한때 성총받은 자입니다.시신이라도 온전하게 보존하게 하여주십시오.악을 덕으로 보답하는 것이 진정 성상의

도리라 보여집니다.허고,마마.그 아들놈의 목숨은 신첩에게 주십시오.아무리 그러하여도 어린놈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은

흔쾌하지 않습니다.안즉은 어린 터로 훈육하기에 따라 그 성정을 변할 것입니다.한 아들을 얻었다 하여 한 아들을 버릴수는

없지요.그 아이 목숨은 살리어,차라리 승려로 만드십시오.평생 불도를 닦으며 제 어미의 행악을 씻게 하는것은 어떻습니까?"

홍희13년8월 팔월 초나흘.

희대의 요녀 궁인 정씨는 형장에서 사지분시되어 한줌 이슬로 사라졌다.

어진 중전마마께서 시신이라도 온전히 보존케 하여 달라 주청하였으나 왕은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왕은 역모의 주범인 

그녀와  정안로,이훈의 시신을 갈기갈기 찢어 소금 뿌려 젓을 담근 다음 팔도로 내려 보냈다.

그 단지를 사람들이 오가는 길 한가운데에 묻어라 명령하였다.대대손손 그시신이 사람들의 발에 밟혀 욕을 보이게 만든 

것이다.

단 한사람  혁이는 목숨을 건졌다.

중전마마의 은덕이 미친 것이다.

그는 머리털을 잘려 영강산의 절에 사미로 감금되었다.

허나 아들놈을 살려준다는 말에 희란마님,감사해하지 않았다.

쓰디쓴 미소를 머금으며 <중전이 끝내 나를 능멸하는구나> 뇌까렸을 뿐이다.

"어린아이더러 평생 살아남아 역적의 씨앗으로 조롱받으며 살게 만들었으니 차라리 지금 죽이느니만보다 더 독하구나.

우리 아기가 세자 되어 보위 올라 천하를 호령할 것이되 중전의 소생으로  용상 빼앗기었으니,우리 아기의 속이 어떨 

것이냐?참으로 중전은 독하구나.어진듯 하면서도 끝내 독하구나."

그 혁이란놈,끝내 앙앙불락,제 어미와 외조부를 죽인 상감마마와 중전에게 증오심을 품어 삭히지 못하고 훗날 절에서

탈출한다.

화적 패거리 두목이 되어 나라를 소란케 하였으되 그 당시 세자이던 익종대황에게 토벌당하게 된다.

허나 그 일은 이십년 후의 일이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왕은 청사에 이 모든 일을 한점 감추지 말고 기록하라 하명하셨다.

명종은 을사의화  이후 종묘 앞에서 자경문을 지어 읽었다.

즉열성조 앞으로 반성문을 쓴 것이다.실록은 이렇게 기록한다.

(선대왕께서 경계하시기를 임금 된 위엄을 버리지 말며 항상 근신하고 조심하라 명하셨다.간언하는 자의 고언을 바르게

들을 일이며 아첨하는 말의 독을 내쳐라 하시었다.색(色)을 삼가고 몸가짐을 진중하게 하라 흥하시는 그 순간까지도

당부하시었다.

허나 규는 어리석은 터로 총명을 일었다.방탄한 한때의 실책으로 말미암아 위로는 왕대비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근심케

하였으며 사직을 위험에 빠뜨렸고,원자와 중전의 목숨까지도 잃을 뻔한 실책을 저질렀다.많은 피가 흐르고 조정이 뒤집혀

졌다.이 모든 것의 사단은 사특하고 천한 잉첩에 홀려 사리분별을 잃은 규의 과실이다.

이날 규는 모든일의  전말을 적어 청사에 기록케 하였다.규의 후손은 반드시 이날의 일을 경계 삼아 스스로를 조심함이 

옳으리라.>

상감마마,그날 이후 일거에 썩은 가지 다 쳐내시고 곧고 바른 선비들로 그 자리 채우시니,아름답도다.

성군의 덕이여!밝은 정사 널리 펼치시네.그야말로 요순의 덕이로다,가가호호 태평가일세.

가정사로 일러 말할라치면 중전마마와 더없이 금술 깊어 백년 해로 하시었다.

을사년에 태어난 원자 아기씨,그야말로 신동이며 효심 갸륵하시다.

다섯살때 세자로 책봉하시었다.

연해 두해 상관으로 중전마마,잉태하시어 쑥쑥 아기씨를 생산하시니 슬하에 네왕자와 두 공주 두시었다.

때 맞추어 성가시키고 손자손녀 무릎에 앉히시니 그 아니 좋을시고!인생의 복력은 오직 상감마마 것이라.

두분 마마 은애하는 그 마음은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더 깊어지고 아름다워질 뿐 그야말로 천생연분.

연리지에 비익조라,마침내 때가 되어 세상을 버리시니 생과 사를 함께 하자 약조한 대로 같은 날 같이 가셨다.

익종대왕 즉위 하시니,울며울며 합장하여 두분을 장사 지냈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닌데 두분의 유택인 영건릉에 자귀나무가 하룻밤 새에 무성하구나!

후세 사람들이 이르기를 <저것 보아,두분 마마께서 저승에서도 금슬 첩첩하시니 저렇게 분솔처럼 고운 꽃이 피었구나>칭송

하였다.

   

 화홍외전.txt (242KB)  

<제1화> 눈물 젖은 손수건

서경당.

서글프게 밤비 나리는 소리는 이곳에도 스며들었다.

"마마, 이제 그만 주무시옵소서."

윤상궁이 몇 번이고 강권하였다. 중전은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투명한 손가락을 잽싸게 움직여 저고리를 마르면서 문득 물었다.

"금일이 며칠이지?"

"4월 열 이레가 아니옵니까?"

"열 이레라......"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던 쓸쓸한 얼굴에 갑자기 서러운 웃음기가 살며시 배었다.

민망하고 염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바느질 그릇 안에 저고리를 던져놓고 서안과 지필묵을 대령하여라 분부하시었다.

"거기 김상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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