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200)

연치 비슷한 사촌 시누이 되시는 분도 두분이며 의륭위와 공주마마 슬하로 이미 성가한 아드님 많으시니 며느님만도 여러분

있다.같이 담소하며 장난질 칠 동무가 많고 비슷한 또래라 할말이 많은 고로 중전마마 성동 나오신 이후로 수다가 부쩍 

늘었다.게다가 중전마마와 비슷하게 출산할 며느님이 있으니 동무가 되었다.

서로 둥실하게 부른 배를 잘난 척 내놓고 아기씨가 얼마나 움직이느냐.회임한 터로 몸이 어떻게 달라졌더라 서로 자랑질에

은근히 경쟁이었다.

"내가 그리 쳇기가 아니가셔 고생을 하였그늘!성동 내려오자마자 쑥 내려가는 것좀 보소?이는 필시 답답한 정심각에서 너무

움직이지 아니하고 앉아만 있어서 그러하였던 것이야.어지럼증도 하나 없구려.그러고 보면 사람은 적당하게 움직여야 사는

것이오."

몸을 많이 움직이시니 저분질이 한결 나으시다.게다가 잠도 편안하니 당장에 그 미간에 어린 어둔 기운 다 사라지고 달덩이

같이 고운 옥안이 빛이 나는구나.끼니마다 싫다,비리다 하시던 어육반찬 냠냠 달게 젓수시고 저녁때는 동무들과 함께 골계

담 소설책을 허리 부러지게 웃으며 읽으시더니 지금껏 먼저 찾지는 않던 야다소반과를 하자고까지 하시었다.

중전께서 편안하게 잘 노신다는 기별 받으신 상감마마,한결 안심이었다.

그러니 차마 냉큼 이만하면 궐로 돌아오소서 하는 말씀을 못하시었다.대신 그립다는 말만 쓴 어찰만 내려 보내시었다.

마냥 보고잡소이다. 내쳐 돌아오소서 하는 뜻이었다.

<....대엿새 더 노시다가 짐이 모시러 갈 참이오.근신하여 편안하소서.주변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 터로 경솔히 움직이지

마시고 그저 집 안에서만 노시옵소서.태중 원자는 잘 계신고?모후께서 힘드시니 너무 설치지 말고 조용히 잘 놀다 때 되면

은 나오너라.비께서 아니 계시니 성동이 지척이되 짐이 그립구려.이밤에 곤전께서도 짐을 생각하오?>

얼마나 다정하신지,얼마나 부드러우신지.중전마마,아기씨에게 부왕전하 서간을 큰 소리내어 읽어주며 볼을 붉히었다.

"참말 우리 모자를 생각하여 주시는 뜻은 넓고 깊은 게다.우리 원자도 아바마마 가르침을 잘 배워서 훗날 성군이 되셔야지."

그리운 정은 달빛을 타고 흐르고.같은 하늘 아래 궐 담 사이 두고 중전마마와 상감마마,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며 서로를

생각하며 미소 짓는다.

허나 걱정스러운 일은 중전께서 의륭저로 나갈 적에 배행한 나인 중에 선이 년이 끼어 있는 것이로다!

흉악하고 고약한 이년이 눈치보아 바깥의 거복이 놈에게 냉큼기별을 하는 눈치구나.중전이 궐담을 넘어 허술한 사가로 나와

있음이라.교인당이 악살쓰고 희란마마 밤낮으로 쉬임없이 저주 펴부어 마침내 유인해 낸터,기회 모아 중전마마 습격하여 

태중아기와 중전마마 목숨을 해치려 작정한 그놈이 어떤 짓을 할까 심히 두렵고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밤낮으로 호위하사,충심으로 중전마마를 뫼시는 정일성이 곁에 있으니 안심이라 할까?정위사여,정위사여

중전마마의 안위와 태중 아기씨의 목숨은 그대에게 달려 있소이다.잠시의 틈도 놓지 말고 두분을 지켜주시오.

오직 그대만 믿소이다.

명온공주와 자운궁 대부인 마님이 신기 빼어나다 하는 강선달을 데리고 입궐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상감마맘의 윤허를 받아 소격전의 태사와 더불어 귀신을 쫓는 복숭아 가지를 들고 서경당 안팎을 낱낱이 털었다.

그사이에 명온공주와 대부인은 나인들을 데리고 정심각의 모든 기물세간을 뒤집어 엎었다.

심지어 찬간과 아궁이 속,섬돌아래.기둥 속까지 다 파보고 헤집어 보고 샅샅이 뒤졌다.행여나 중전마마를 향한 악살의 기운을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허나 의심 가는 데라든지 불길하다 싶은 것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명온공주와 대부인은 난감하여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상감께 장담하였는데,이렇듯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무엇인가 산실을 뒤집어엎은 터라 만에 하나 이대로 끝이 나면 하나 

보람도 없거니와 경솔하고 방정맞다 비난을 사게 될 것이 뻔하였다.

두 귀부인은 낙심하고 난처하여 코가 석 자나 빠져 앉아 있기만 하였다.

푸른 복숭아 가지를 들고 강선달이 안채로 건너왔다.명온공주가 탄식하였다.

"참으로 이상하구먼.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중전마마께서 악독한 살에 쓰인 것은 분명하되 그 증거를 찾을 수가 없어.

바깥은 샅샅이 살펴보았는가?"

"대강은 다 방비한 듯합니다. 특별한 것은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안에서도 별다른 것은 찾지 못하셨는지요?"

"그러게 말이야.분명 기운은 불길한데 눈에 보이는 것을 찾지 못함이라,상감께 어찌 고변해야 할지 막막하네그려."

강선달의 눈길이 이리저리 날카로운 빛을 번쩍이며 안방을 훑었다. 나지막한 소리로 공주께 아뢰었다.

"중전마마께서 산실에 들어오시어 중간에 내입된 물건들을 찾아보시지요.처음에는 괜찮으셨지만은, 중간에 괴로움이 시작되시

었다 하지 않았습니까? 분명 도중에 악기가 스며들었습니다."

"산실이니 무엇을 외인이 내입하자 하여도 어디 들여나 주었으면? 심중에 딱 그것이다 싶은 것은 오직 하나, 좌상 부인이 들

여온 재성 계집의 봉물짐이되, 그는 중전마마께서 손가락 끝 하나만 대고 당장 내가라 하시어서 불을 태웠다 하였네."

문득 강선달의 시선이 문이 열린 곁방의 금침 더미로 다가갔다. 이리저리 뜯어놓아 다 헤뜨려진 이부자리이되 오직 하나 온전 

한 것은 수놓은 한 채뿐이었다. 상감마마께서 직접 하사하신 바로 그 금침이다. 다른 것은 다 뜯기어 흉하게 솜들이 튀어나

오고 어지러운데 그것만이 온전하고 정갈하여 눈에 뜨이었다.

"마마, 저 금침도 살펴보셨습니까?"

"상감께서 중전마마께 직접 하사하신 금침이네. 감히 누가 손을 대겠나, 무슨 일이 있으려고?"

공주께서 예사롭게 넘기었다. 며칠 전까지만 하여도 옥체에 직접 닿았던 터이며 상감께서 하사하신 금침이다. 감히 어떤 인

간이 야료를 부릴 수 있으랴? 애당초 옆으로 제쳐 두었다. 강선달이 고개를 저었다. 

"등잔밑이 어둡다 하였습지요. 직접 옥체에 닿는 것이니 더없이 술수 부리기 좋을 참입니다. 상감께서 하사하신 터이니 감히

누가 헤쳐 보고 뜯어서 살필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가 만약 방술을 부린다 치면 제에다 딱 맞춤입니다. 뜯으십시오!"

"올커니!"

강선달의 말이 사리에 맞고 명확하였다. 명온공주마마, 소리쳤다. 누가 말릴사이도 없이 다다다 달려 들었다. 상감께서 하사

하신 금침이라 훼손하시면 아니됩니다, 박 상궁이 대경실색하여 소리치는 것도 아랑곳 ?고 냅다 가위 들어 이불을 뜯기 시

작하였다.

"에구머니!"

"아이고, 독하여라! 저, 저고약한!"

둘러선 상궁, 나인들 입에서 놀람의 비명 소리가 터졌다. 진성대군 댁 부인과 명온공주뿐 아니라, 심지어 불길하고 악한 것

들을 어지간히 보아온 강선달조차도 너무 사위스럽고 불길하여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 이, 이런 요사한! 이런 독악한 것이 금침 안에 들어 있었으니 어찌 우리 중전께서 잠자리가 편안하셨으랴!"

대부인께서 탄식하였다. 더없이 징그럽고 끔찍하였다. 상궁, 나인들도 금침 안에서 나온 것을 보며 저절로 얼굴을 찡그리고

침을 뱉으며 욕을 퍼부었다. 보기만 하여도 몸서리가 쳐지고 덜덜 떨리며 등골로 써늘한 기운이 딱 끼치는 듯하였다. 아아,

무엄하고 참람하도다. 분명 중전마마 속살이 닿는 속곳이 분명할지니! 갈가리 찢어지고 더러운 피칠갑이 된 그것에는 요사스

러운 부적이 몇 개나 붙어 있었다. 터진 가랑이 사이로 분명 태중 아가씨를 상징하는 것이겠다? 납작하고 작은 짚 인형이 나

왔는데 정수리에는 바늘이 꽂혀 있었고, 인형이 입은 옷자락은 온통 불탄자국, 숭숭 구멍도 뚫리었다. 송곳 자국이 분명하였

다. 중전마마와 아가씨를 저주하여 가장 독하디독한 악살 주문을 외운 모양이었다.

금침 안에서 나온 물건을 보며 강선달이 고개를 저었다. 탄식하였다.

"저가 어지간한 방술을 다 해보았습니다만, 차마 이토록 악하고 독한 꼴은 처음입니다. 이 방술을 치른 자가 누구인지는 모

르되, 아마 이것에 목숨을 걸었을 것입니다. 남에게 저주를 쏘면 그만큼의 독한 기운이 스스로에게도 반탄되는 법이지요.하

물며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에게 하는 악살 저주는 가장 큰 죄이니, 이일을 저지른 인간들은 그 명이 결코 온전치 못할 것입

니다"

"기,김내관, 그놈 짓입니다요!"

상감마마 하명으로 산실을 정결케 하는 의식을 지켜보고 있던 장 내관이 기함하여 고함을 질렀다. 늙은 내관은 분노로 불 뿜

는 얼굴을 하고 공주께 아뢰었다.

"아이고, 인제서야 이해가 되는고나! 지난날, 재성 계집하고 딱달라붙어 알랑거리던 놈이 어찌하여 중전마마를 위하여 금침

을 하사하십시오 하고 고변드리었는지 그 이유를 몰랐거니!"

"상선, 이금침을 하사라하 주청한 이가 애초 김 내관 놈이더냐?"

"예예,마마.그러하였나이다. 듣자오신 성상께서 기특하다 하시며 그 일을 전부 김 내관 놈에게 일임하였나이다. 이곳으로 금

침을 지고 들어온 놈도 그놈입니다요!"

"이 금침을 만든 계집과 김 내관 놈을 당장 잡아다가 치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제 생각에는 금침을 갈무리하는 년도 수상

합니다. 아마 같은 통속일 가능성이 큽니다."

"당연히 그 배후에는 재성 계집이 있겠지! 흥, 간특한 고년. 인제야 빼도 박도 못할 증거 있으니 이 공주가 반드시 고년 목

을 베고야 말리라!"

장 내관, 덜덜 떨며 금침에서 나온 더럽고 요사스러운 증거물을 들고 편전으로 나아갔다. 강선달과 공주마마, 대부인도 그 

뒤를 따랐다. 중궁전 상궁, 나인들. 너무 엄청난 일에 넋이 빠져 삼삼오오 모여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였다. 기도 막히고 경

악스럽기도 하며 아직도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희란마님을 욕하며 수군거리었다. 어이도 없고, 놀랍기도 하고 분통이 

터져 끝까지 중전마마를 해치려 드는 악독한 재성 계집을 이번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주먹질에 욕질하였다.

"아니, 가만,,,,,?"

돌아앉아 엉망이 된 정심각을 치우라 나인을 부르던 박 상궁이 흠칫 손을 놓았다. 김 상궁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박 상궁, 어찌하여 그런 얼굴이오?"

"선이, 선이 년!"

"네에?"

"중전마마 따라 나간 년이 선이 아니오? 아까 선다님이 무어라 하셨지요? 금침 간수하는 년도 한통속일 것이니 잡아들이라 

하였지 않습니까?"

"그,그랬습지요."

박 상궁이 아연 부르짖었다. 얼굴에는 근심이 첩첩하였다.

"고 앙큼한 것이 중전마마 신임을 얻자와 피접 나간 곳에도 따라 나갔소이다. 만에 하나 그년이 정말 재성 계집과 한통속

이면 중전마마 바로 곁에 검은 손이 붙어 있는 것 아닙니까?"

김 상궁의 얼굴도 따라 하얗게 질렸다. 박 상궁이 벌떡 일어났다. 버선발로 내달았다. 서경당 밖에서 산실을 경비하는 

금부도사에게 달려갔다.

"종사관 나으리, 급하오! 당장 병정을 끌고 말달려 성동 의륭저로 나가주십시오.거기에 중전마마께서 피접 나가 계시거니,  

중전마마 곁에 붙어 있는 선이 년을 잡아오시오! 그년이 중전마마와 아가씨를 음해하려 드는 일당인 듯 합니다. 당장 잡아오

십시오! 한시도 중전마마 곁에 두면 아니 될 악독한 계집입니다."

금부도사 강희명, 듣자하니 보통 일은 아니다. 사리 분별은 나중에 하고 일단 의심가는 고 계집을 잡아와야 할 듯싶었다. 

당장 말등에 훌쩍 올라타 병정을 끌고 질풍처럼 달려나가는 구나!

"이,이 고, 고약한!"

차마 말을 잇지 못하시는데 서안에 놓인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중전에 대한 것도 그러하거니와 아가씨를 상징하는 인형

정수리에 바늘이 꽂힌 것 하며 숭숭 뚫린 송곳 자국이라.아무죄도 없는 아기를 저주하여 원독을 쏘는 무서운 짓을 하다니!

이런 더럽고 불길한 것이 금침 안에 있어 날이며 맨살에 닿았을 터이니 어찌 중전의 잠자리가 편안하랴?

"김 내관 놈하고 상침 허씨를 당장 잡아들여라!짐이 박살을 내리라!"

궐 안에서 이런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러나 상감마마 이하 궐 안 사람들은 아직도 모르신다.

지금 이순간 중전마마 일생 중 가장 커다란 위기를 겪고 있었다.

"마마,차라리,행신당 마님더러 의륭저로 들어오라 하시지요?무거운 옥체를 하시고 바깥으로 사사로이 나가심은 불가하온 줄

아옵니다."

장옷을 들고 일어서려는 앞을 가로막으며 윤 상궁은 다시 한번 사정하였다.

중전은 의연한 기색으로 명랑하니 대꾸하였다.윤 상궁의 걱정이 오히려 우습다는 얼굴이었다.

"그만 하소.무엇 별일있으려고?내가 사실은 동무도 보고잡지만은 계산골에 한번 가보고 싶어 그러하오.옛날 집이 얼마나 

변하였을까 궁금도 하구.잠시 나갔다 온다니깐.가마 타고 살그머니 댕겨옵시다그려."

"조심 또 조심하심은 가한 줄 아옵니다."

"밝은 날 잠시  다녀옴이 무엇 그리 큰일이라고 그리하노?다시 궐에 돌아가면 나오지 못할 참이니,얼마나 좋은 기회야?

다녀올라오.윤 상궁이 앞장서시오.일당백이라.정위사가 따를 것인데 무엇이 걱정이오."

상전께서 고집을 피우시니 윤 상궁도 인제는 어쩔 수가 없다.

마루 끝에 서서  발을 내미는 중전마마 버선발로 꽃신을 신겨 드리었다.

공주마마께서 계시었으면 틀림없이 막았을 것이다.절대로 바깥에 귀한 분을 내보내지 않았다. 허나 공주마마와 의륭위께서는

산실을 뒤집는 일  때문에 궐에 들어가신 참이다.일은 그렇게 꼬였다.

별다른 저지도 받지 않고 의륭저 별당을 빠져 나온 가마는 천천히 께산골을 향하기 시작하였다.가마잡이 넷이 멘 가마따라

윤 상궁과 정일성만 배행하였다.조촐한 여염집 마나님의 외출이라.

누구도 원자아기씨 잉태하신 중전마마께서 앉아 계시리라고는 짐작도 못하였다.단 한사람만 빼고......

모퉁이에 숨어 이제나저제나 중전 해칠 기회만 노리고 있던 거복이 놈.

가마 안에 누가 탔는지 선이 년에게 이미 귀띔을 받은 터다.순진한 중전마마,선이 년 저를 몹시도 신임하여 사가까정 데리고

나오셨다.동무이신 보아 아씨더러 한번 낯이나 봅시다 심부름을 보내었다.

이년이 심부름 가는 척하며 냉큼 주변에서 호시탐참 기회를 노리고 있는 거복이 놈에게 내일 중전마마께서 계산골  소녀 시절

사시던 초당을 간다고 꼬아바치었다.이런 죽일 년이 있나!

쾌재라!거복이 놈,맞춤이라 하여도 이런 좋은 기회를 찾을 수는 없다. 희희낙락.

희란마님 그 기별에 중전 아랫배를 걷어차 주어라 독하게 확언하였다.

"이판사판!그년 목을 베어주면 딱 좋으련만.그가 힘들다면 태중 아기라도 반드시 없애야 할 일,아기가 잘못되면 그년도 면목

이 없어  목을 맬 것이다.대차게 그년 아랫배를 걷어차 주어라!흥."

검을 등에 지고 빠른 발로 가마를 지키며 따라가는 무장이 다소간 걸리었으되.저들이 습격할 일당은 열너덧 명.무장 한놈쯤

당하지 못하랴.오늘 중전 저년이 뒈지는 날이다.

큰마마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지는 날이로다.

음흉하고 지이그러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거복이놈 눈치 채이지 않게 슬슬 중전마마 가마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계산골.

중산마마께서 소녀 시절까지 거처하시던 초옥은 열다섯 나이로 집을 떠난 이후로,하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부원군 일가가 성동 집으로 떠난 후 그집은 가솔중 한사람이 맡아 살며 보살피고 있었다.사직의 안지존께서 태어나고 자라신

곳이니 늘 정결하게 가꾸어라 부원군께서 하명하시었기 때문이다.

"아이고 중전마마,강녕하시온지요?"

"오랜만이지요? 그만합니다.동무는 그동안 잘 지내셨소?"

계산골 안채에는 미리 기별을 한 터로 중전마마께서 동무라 여기는 보아 아씨,인제는 혼인하여 행선당 마님이라고 불리는 심

씨가 아장아장 걷는 따님을 곁에 딸리고 기대리고 있었다. 가마에서 내리는 중전마마 앞에 내달아 읍하여 반갑게 맞이 하였

다. 중전마마, 함뿍 미소 지으며 동무의 손을 잡고 반가이 응대하였다.

"이곳은 사사로운 곳이니 너무 동무께서는 예에 얽매이지 마시구려.내가 다 민망하오. 잘 지내셨다는 이야기는 스승께 들었

기로, 참말로 반갑구려."

꼬박 사 년 만에 다시 만난 중전마마와 보아 아씨. 서로 웃음꽃을 피우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흘러간 지난 세월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이야기 보따리는 끝이 없고, 서로 격려하고 치하하며 나누는 웃음타래들도 역시 장강 물처럼 길었다.

행선당 마님의 딸, 이름이 윤이인데 머루알 같은 눈 동그랗게 뜨고 귀한 어른 바라보는구나. 재롱 떠는 모습이 귀엽다 하시

며 중전마마 망극하게도 옷고름에 달고 있던 백옥화문 노리개를 빼어 아기 옷고름에 걸어주었다. 중전마마, 오랜만에 반갑던

친구를 보기도 하였거니와 궁금하였던 일가식솔들 소식도 다 듣자오시니 그저 흔쾌하시다. 미리 아침나절 나와 있던 유모가 

정성스레 낮것 상 차려 대접을 하였다. 맛나게 잘 자시고 소녀 시절 보내던 초옥으로 아기작아기작 걸어가신다. 작은 쪽마루

에 앉아 전에 가꾸던 작은 뜨락을 바라보며 그저 감개무량하시었다. 

"이 중전이 간택의 그날 당장 나올 줄 알고 녹두를 담가 놓으라고 부탁하고 떠났거니, 그날 이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줄 뉘 알았던가? 그 녹두 불어 터져 먹지도 못하였을 것이야? 훗호호."

화사하니 웃으시던 중전마마 문득 눈을 반짝였다. 좁은 뜨락 담옆에 선 오얏나무 열매가 노르께하며 불그스럼하게 익은 것을

보고 손뼉을 쳤다. 

"윤상궁, 저 오얏 열매 좀 따보게.맛이 심히 달고 향기롭다네. 전하께 가져다 드려야지."

윤 상궁이나 행선당 마님이 다 놀라 담 옆 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아니, 저것이 오얏이옵니까? 속가의 것하고는 모양이 심히 다르고 열매가 달라 다른 것인 줄 알았나이다."

"이유가 있다네. 이는 사친께서 이십여 년 전에 심으신 나무거든. 멀리 명국서 오얏 품종이 새로 들어온 것을 선대왕전하께

서 도승지로 입시하시었던 아버님께 한 뿌리를 주시면서 살려보라 하시었다는군. 그토록 커다란 성은을 받으신 아버님, 그 

나무 한 가지를 소매에 품고 나와 잘 키우시니 이렇게 큰 나무로 자랐다네. 마침 알맞게 익었으니 따다가 전하께 보내 드려

야 겠다.우리 아가씨에게도 난중에 예로 와서 조부께서 하사하시고 외조부께서 키우신 나무라 알려 드려야지. 다람쥐처럼 쪼

르르 올라 열매 따먹어라 할 것이다."

암만요, 어마마마.저가 나와서 요 달다단 오얏을 다 따먹을 것입니다. 대답이라도 하듯이 태중 아가씨 부른 배안에서 굼실굼

실 발로 걷어찼다. 중전마마, 또 아프게 걷어차는 작은 발을 매섭게 한 대 톡 때려 주었다. 

"얌전히 못 있겠니? 아바마마께서 너더러 꼼질꼼질 이쁘게 있어라 분부하였거늘! 너는 몹시 개구쟁이라, 이리 시와 때도 없

이 이 모후를 걷어차고 잠도 못 이루게 움직이니 고약하도다!"

말씀으로는 훈계하시는 것이지만 우리 아기가 강건하다 자랑질이 아니고 무엇이랴? 곁에 시립하여 있던 행선당 마님, 미소

지으며 읍을 하였다.

"태중서 잘 움직이시는 아기가 나오셔도 강건하다 합니다. 너무 고약하다 그러지 마십시오, 마마.홋호호."

여인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정일성이 중전마마 하명을 받자와 자두나무 옆에 사다리를 대고 올라갔다. 무르익은 열매를 정성

스레 하나하나 바구니에 따 담았다. 누른빛이 나는 붉은색 열매가 흡사 호박구슬을 붉은 물에 담가놓은 듯하다. 시중서 구하

는 오얏보다 더 알이 굵고 향기로운 맛난 열매였다. 코에 대고 가까이 하기만 하여도 단물이 뚝뚝 떨어질 듯 농밀한 꿀 냄새

가 진동하였다. 중전은 제일 먼저 상감마마께 보내 드릴 것을 골라 따로이 챙겼다. 다시 한 바구니 가득 딴 열매를 행선당 

마님에게 건네주었다.

"가지고 가서 시부모님께 올리시오. 한 포기 작은 뿌리가 커다란 나무가 되었듯이 동무하고 나도 인연이 아주 짧았으되 긴 

인연이 되었구려. 두고두고 왕래하십시다. 이몸이 구중천안에 갇혀 사는 몸이라, 시정 사정이 어둡소. 동무께서 아기 안고 

종종 들어와 세상 돌아가는 사정이며 살아가는 이치도 좀 알려주고 그러시오."

"하해와 같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중전마마.소인을 귀한 동무라 여기시사 흔쾌히 대하여 주시고 이렇게 황공한 부탁을 하여

주시니 어찌 봉명하지 않으리이까? 성심을 다하여 작은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문옆에 옆얼굴로 석상처럼 서 있던 정일성이 다가왔다.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마마, 시각이 늦어지는 참입니다. 인제 출발하셔야 합니다. 계산골에서 성동까정은 근 반나절이라, 날이 어두워지면 가마군

들이 발을 헛디딜 참입니다. 태중 아기씨에게 아니 좋을 것이라 금세 떠나시지요."

중전마마,정일설의 말에 화사하게 웃었다. 감회에 젖은 얼굴로 윤상궁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사 년 전 그때와 똑같으이. 간택의 그날, 내가 이 집을 떠나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기로 억지로 어른들께서 시키는 

대로 가마 타고 끌려갔거든. 오늘도 그러하구먼. 빨리 가자 재촉하는 터라. 가마 대령하게, 동무께서도 돌아가야 하실것이

야."

중전마마, 행선당 마님과 작별 인사를 하였다. 훗날 몸이 편안하여지면 궐로 부르마. 다시 보자 약조하였다. 

전하꼐 드릴 맛난 오얏 열매 담긴 바구니를 꼭 안고 가마에 오르시었다. 금세 정일성이 따르고 윤 상궁이 배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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