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200)

듭시시요,마마."

헌데 그날,서경당 듭시었던 왕대비전하 이하 왕실 여인들은 중전마마를 보자마자 대경실색하였다.

며칠 전만 해도 달덩이같이 환하던 옥안이 어쩐지 초췌하고 어둔 빛이 져 있었기 때문이다.눈아래 그늘이 거뭇거뭇.

만삭이니 숨차다 하여도 힘겨이 어깨 너머로 들이쉬는 숨소리가 영 어지럽고 불안하였다.

"어찌 이리 힘들어 보이오?내가 닷새 전에 뵈온 고로 그때는 이 모습이 아니었소.산달이 다 되어가니 이러는 것인가?"

"그런 모양입니다.나날이 배가부풀어 오르니 속이 치받쳐 오르는 고로 도무지 입맛이 돌지 않습니다.잠이 들자 하여도 아기

가 태동 심하고 돌아눕기도 불편하니 깊은잠도 자지 못하구요.그래서 이런 모양입니다.이는 다 아는병이고 나아질게 아니라

할수 없답니다.할마마마."

"만삭의 일이야,나도 여인네이니 아는 바이지만....어쩐지 이상하니 그러지요.알기로 중전께서 산달 내내 잘 젓숩고 잘 주

무시고 놀상 순조롭다 하였는데, 이 며칠 상관으로 갑자기 기색이 달라졌으니 말이오."

"갑자기는 아닙니다.아기가 태어날 날이 멀지 않은 고로 모체인 저가 곤고해지는 것이 자연스럽겠지요."

생긋 웃으며 중전마마 예사로이 대답하였다.듣고 계시는 왕대비전하 무엇인가 찜찜하고 불안타.

허나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데 무엇을 어쩌랴.또 만삭이 되면 여인네들이 힘들어지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의심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헌데 어째서 이리 불안하고 불길한 마음이 들까.

"옥체 부대 조심하오.어디 중전 몸이 보통 몸인가?사직을 이어받을 어린 용을 담고 계신 옥체이외다.아주 작은 사이함도

침범해서는 안될 것이며 그 어떤 악기도 가까이 해서는 아니됩니다.명심하세요."

"각골명심하와 태교에 더 힘쓰겠나이다."

옥체 조심하라 몇 번이고 당부하던 왕대비전하를 배웅하고 돌아서던 중전마마.

미소 머금어 있던 어진 옥안에 어둔 그늘이 다시 졌다. 어른들 앞이라 태연한 척하였으되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금세 어지럽다

하시며 기우뚱하시었다.마마!하며 윤 상궁이 부축하였다.

"또 어지럼증이 돋으십니까?"

".....소란 피울것 없네.내 잠시 힘들었던 게지.금침 펴소.잠시 누울 것이네."

선이 년이 들어와 중전마마 침장을 준비하여 드렸다.상감마마께서 하사하신 바로 그 요 이부자리다.

중전마마,반듯이 누워 눈을 감으시는데....갑자기 번쩍 눈을 뜨시어 윤 상궁을 불렀다.

"그것말야.사흘 전에 재성서 들어온 봉물 말야.어떻게 하였소?"

"마마께서 사위스럽다 하시어서 저가 당장 궐 밖으로 다시내가라 하였지요.나인더러 당장 태워라 하였으니 이미 불티가 되어

날아갔을 것입니다."

참으로 웃기지도 않고 가당찮은 짓거리였다.허구한 날 중전마마 상대로 방자한 짓거리에 독한 악설 씹던 재성 계집이 아니냐.

주상 성총 잃은것이 전부 중전마마 탓인 양 하여 보나마나 중전마마 상대로 악독한 저주 퍼붓고 있을 계집이다.

헌데 사흘 전,곤전께서 출산하시기 전에 상례적으로 치르는 일이라.승록대부 안곁인 정경부인들이 듭시어 곤전마마께 하례

인사를 드리었다.당연히 좌상 대감의  안해이자 희란마님의 어미인 홍씨도 들어왔다.

뜻밖에 노인이 내놓은 것은 아기씨 기저귀와 포대기였다.

"좋이 가납하여 주옵소서.재성의 여인이 순후하게 반성하며 마마와 아기씨의 강건함을 축원하며 지은 것입니다.이 포대기는

인근에 가정 복록이 높은 노인의 의대를 구하여 만들었다 합니다."

즉 희란마님이 중전마마와 아기씨를 위해 기저귀와 의대를 지었다는 것이다.

"죄인 신분이니,마마를 찾아뵈고 하례를 드리지는 못하나 오직 순산하시기만을 기원한다 전하여 달라 눈물로 부탁하였습니다

가납하여 주옵소서."

그 계집 참으로 같잖고 묘하구나.말하지 않았으나 중전을 속으로 그리 생각하였다.원자가 태어나면 제 아들놈 목숨이며 팔자

가 더 답답해질 것이 뻔한 일.그런데도 살살거리며 아기씨 포대기를 해 바친다고?무엇인가 그것에 야료를 부리지 않았을 것

인가?계집의 간특함과 악독함으로 미루어볼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일이었다.

하여 중전은 겉으로만 미소 지으며 받았다.

예의상 그것에 손 한번 대시고는 이내 윤 상궁더러 불러 이것을 산실 바깥으로 내가라 분부하시었다.

기저귀면 포대기가 무슨 죄가 있으랴마는 일단 악한 그 계집의 손이 닿았다 싶으니 어쩐지 등골이 써늘하고 불길하였다.

이것을 만들며 얼마나 우리 아기더러 저주를 퍼부었을까 싶으니 저절로 몸서리 쳐졌던 것이다.

"그 계집의 흔적이 궐 담 안에 있는 것도 싫으이.궐 바깥으로 내가서  당장 불태우라 하소."

차마 누구에게고 말은 못하였으되 그날부터였던 듯 싶었다.참으로 두렵고도 이상하였다.

꿈만 꾸면 헛것이 보이고 무섭고 기괴한 악몽이 덮쳤다.목이 잘린 귀신들이 보이지를 않나.수천 개의 손이 날아와 중전마마

목을 조르지를 않나.나찰 같은 것들이 울긋불긋 너풀거리는  색옷을 입고 나타나 둥둥 북을 울려대며 아기씨 놀고 있는

중전마마 아랫배를 걷어차려고 하지 않나.분명 재성 계집의 소생이렷다?

무엄한 것이 용상에 앉아 하얀 옷 입은 중전마마를 손가락질하여 호렬하기를 저년 목을 베어 남문 앞에 효시하라 조롱질이다.

잠시잠깐 조는 동안도 그런 더럽고 잔혹한 악목이 덤벼드니 어찌 눈을 감을 것인가?그전에는 더없이 편안하고 안온하던 

정심각의 기운이 아니었다.

써늘하고 불길하고 어둡고 칙칙하였다.음울하고 비릿한 그 무엇인가 분명 스며들었다.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이상한 사이

함과 독악한 기운.앉아도 누워도 중전의 골수에 침범하였다.예민함은 태아가 더 하였다.흠칫흠칫 놀랄 정도로 태동을 하던

아이가 이 며칠 사이로 훨씬 둔하다.모체의 불안함과 편안치 않음을 느낀 듯 하였다.

".........내가 심기가 허약해진 게지."

"마마,오데가 불편하십니까?말씀하여 보십시오.소인이 보기에도 옥안이 어둡사옵니다.더없이 힘겨워 보이십니다.어제가 다르

고 오늘이 다르십니다."

"이상하네.참으로 이상한 일이야.예전에는 아니  그러하더니 이 며칠 상관으로,그 계집이 봉물을 보낸  날부터인 것 같으이.

눈만 감으면 악몽이 보이고 헛것이 나를 해하려 덤벼드는 것일세.먹어도 신물만 나고 골치가 아프며 온몸이 써늘하니 태중

아기도 편안치 않은 듯이 노는 모양이 다르네.어찌 이럴까?그것 내보내서 태웠다 하는데도 어째  내 몸이 이럴까?"

회임 중에  누구를 욕하고 의심하며 궂은 소리 한마디를 하는 법도 아니라는데,어쩐지 그 계집이 의심스럽다.혹여 내를 저주

하여 방술을 부린 것은 아니냐 하소연하는 중전마마,신임하는 윤 상궁을 앞에 두고 사뭇 울상이었다.

한편 창의궁으로 나간 여인네들 역시 예사롭지 않은 중전마마 때문에 대근심이었다.

극구 아무 일도 없다 하는 중전마마의 말을 들었으되 찜찜하였다.

명온공주께서도 믿지 않았다.

차마 산모 앞에서 사위스러운 말은 하지 못하나 곰곰이 생각에 잠긴 분의 얼굴에 깊은 근심과 노염이 어려 있었다.

"어마마마,아무래도 소녀가 생각하기로 중전마마 안위가 보통이 아니옵니다."

"그것이 무슨 불길한 소리냐?"

왕대비전하 깜짝 놀라시어 소리쳤다.공주께서는 왕대비전 곁으로 한 무릎 더 다가섰다.

"이런 말씀 드리옵기 참으로 참람하되,어마마마,중전께서 옥안에 어둔 그늘이 덮쳤사옵니다.갑자기 저럴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마음에 짚이는 일이라도 있느냐?"

"......재성 게집의 소행이 아무래도 불길하옵니다."

"재성 계집이 갑자기 왜?"

"고약한 계집입니다.중전마마를 해치지 못하여 안달하는 계집아니옵니까?죄인 신분이라,그런 계집이 제가 나락에 빠진 것을 

오직 중전마마 탓으로 여겨 온갖 악설에 고약한 짓을 한다 들었나이다.헌데 그 게집이 아기씨와 중전마마를 위하여 기저귀를

마르고 포대기를 만들어 봉물 올려요?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왕대비전하 옥안을 징그리시며 혀를 찼다.

"하지만 중전도 사위스러워 그것을 가납치 않고 곧바로 손에 들었다가 말고는 밖으로 내다 버렸다 하였지 않니."

"그 계집이 오죽 악독하여야지요.사람 입을 따라 악살이 들어오고 물건따라 귀신이 스며든다 합니다.아무리 내다 버렸다 

하여도 이미 고약한 계집의 사특한 기운이 산실에 스며들었음에랴.저가 전하께 주청하여 자운궁에 있는 강선달을 데리고 

올랍니다."

"음,신기 보통 아니라 너가 칭찬하던 그이 말이더냐?"

"예,그이가 그 예전에도 진성을 따라 갓난 중전마마를 보고 내미지상의 여아이며 일월성신의 기운을 갖춘 기이한 사주라.

반드시 곤위에 앉으실 것입니다 예언하였다 하지 않습니까?불길하옵니다.저가 상감마마 윤허를 얻어 그이를 궐로 데리고 

들어와 정심각에 방술 한번 하렵니다.악귀를 쫓고 정결한 기운을 다시 모셔옴이라.중전마마 이번 모습은 정상이 아니니 필시

아주 독한 악살을 쏘인 듯 보입니다."

왕대비전하,나지막이 침음성을 흘렸다.흘깃 성덕궁 쪽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공주마마의 말 몇 마디로 왕대비전하 역시 중전

이 겪는 이번 불길한 기색이 희란마님의 짓이라는 데에 거의 동의한 셈이었다.

"허나 만삭인 중전을 산실 바깥으로 모셔내 오면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어차피 산실에서 좌정하신 분이라 누가 그분 종적을 알 것입니까?남모래 저가 뒷문으로 가마 대령하여 몇 날 의륭저로 모시

어 있을랍니다.저가 보기에 한시라도 빨리 그곳에서 뫼서 나와야 살지 저리는 안됩니다.중전마마 옥안에 맺힌 음울한 기운이

벌써 골수에 사무친 듯합니다.당장에 아기씨 노는 꼴이 다르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여하튼 재성의 그 계집이 문제로다!어찌 상감은 그 사갈같은 것을 대처분하지 않고 놓아두어 또 이런일을 당하게 하는고?

쯧쯧쯧."

"비록 그것이 악하고 교만하여 주상의 성총을 잃었다 하나 첫정이 아니옵니까?그래도 살게는 해주어야한다.평생을 책임지마 

하신 듯도 장부답지요.나무라시지 마십시오,저희가 더 조심을 하면 될 것입니다."

".....흐음.난감한 일.산실의 중전거처를 옮기는 일은 쉬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중전의 상태가 계속 그리하면 참말 걱정

이거니.그 계집이 봉물에다 야료를 부려 그리된 것이다.네 말대로 방술 한번 하여야 할 게다.여하튼 나도 유념하니 입 다물

고 며칠만 더 지켜보자꾸나."

아이고,어찌할거나!답답타,답답타!

야료는 게에 부린 것 아닙니다요,마마!지금 중전마마께서 날마다 덮고 주무시는 이부자리에 부렸답니다.

신당 펼쳐 놓고 날이면 날마다 중전마마 화상에다 화살 쏘아 박고 태중아기씨를 상징 하는짚 인형에다가 송곳 쿡쿡 박는

희란마마.사이하게 웃으며 악살을 쏘고 있는데.독하구나,독하도다.허나 안즉 심중으로 짐작만 할뿐 증거를 찾지 못하였으니

어찌리오.

그 며칠 후이다.

예전마냥 밤수라 받으시던 중전마마.

몇 저분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허리를 꺾으며 울컥 쓴물을 토하여냈다.

헛구역질 하시며 고통스러워하였다.몸이 예전만 못하다.힘들구나.

속으로만 생각하며 근심하시었는데 인제는 골수에 사무친 악한 기운이 겉의 병증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토하다 토하다 못하여 나중에는 기진맥진,입 안에서 하얀 거품이 나올 정도였다.

그 이후에는 머리가 빠재질 듯이 아프다 동동 발을 굴렀다.

정심각에 비상이 걸렸다.더없이 순조롭던 왕비의 상태가 갑자기 이유도 없이 나빠진 터라 전의들은 수군수군.

약방 상궁들은 종종걸음.두서없이 오가는 아랫것들도 근심으로 우왕좌왕.

그런 기별이 대전으로 당장 아뢰어졌다.기별을 듣자오신 상감마마 대경실색.당장 서경당으로 달려들어 오시었다.

마침 그때도 중전마마 잠시의 쪽잠이라.또다시 달려든 악몽에 진땀 젖어 어찌 할 바를 모르며 신음하고 있던 차였다.

"중전,정신 차리오!어찌 이러시오?왜 이러시오?비가 왜 이러시냐?!"

왕은 정말 놀란 참이었다.이 며칠 상관으로 달덩이처럼 훤하던 옥안이 반쪽이라,눈 아래는 그늘이 가득하고 볼은 기미로 

새카맣게 덮였다.침착하고 총명하던 눈동자에는 겁먹은 기가 뚜렸하였으며 안절부절,아연불안,자리에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

워하는 모습이라.진땀에 젖어 괴로워 골수가 반으로 갈라지는 듯.아픈머리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를 정도였다.

믿음직한 지아비 들어오시었으니,마음이 더 풀어졌다.중전은 왕의 어수를 꽉 잡았다.

가녀린 손에서 어디 그런 무서운 힘이 날까?왕의 팔목을 꽉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마마,마마.신첩이 두렵사옵니다.눈만 감으면 독한 것들이 보이고 신첩과 아기를 해치려는 꿈만 꾸어집니다.먹어도 금세

체기이며 속에서 치받아 차마 견딜 수가 없음입니다.어찌하면 좋을까요?너무 괴롭습니다.참아보려고 노력하였으되 정말 견디

기가 힘이 드옵니다.신첩을 좀 도와주십시오.우리 아기씨 지켜주십시오.네,마마."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자신을 좀 어찌하여 달라 구원을 요청하는 중전앞에서 왕인들 어찌할까?

뽀족한 방도가 없다.대체 왜 곤전께서 저리하시냐 아랫것들만 호령질할 뿐, 이유를 알수 없다.

무한정 답답하고 걱정도 되고 불안하여 미칠 지경이었다.

사고인 명온공주께서 알현을 요청한 것은 그 이튿날이었다.

신임하여 마음을 풀수 있는 분이 오시었으니 왕은 솔직하게 심중의 근심을 드러냈다.

"휴우,산실의 중전이 상태가 좋지 못합니다.몹시 괴로워합니다.대체 어찌하면 좋을지.방도를 찾습니다만은 갑자기 저리하시는

이유를 모르니 답답하여 환장할 지경입니다."

"상감마마,저가 중전마마를 잠시 의륭저로 피접 모시고 나갈랍니다."

뜻밖의 말에 왕은 고개를 들었다.멍하니 고모인 명온공주를 바라보았다.공주는 그러거나 말거나 강하게 주장하였다.

"믿지 않으실 터이되 이 사람이 보기에 중전마마께서 좌정하신 정심각에 불길하고 악한 기운이 스며들었습니다.순조로이 잘

넘기시던 중전마마 모습이 저렇게 돌변하여 괴로워하시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음에랴."

"사고께서 그리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다 싶습니다.굳이 중전을 피접 데리고 나가겠다는 말씀 하심을 들어도 되겠습니까?"

재성의 계집이 중전께 봉물을 보내온 후 중전께서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는 말에 왕의 안색이 급격히 변하였다.

반신반의,믿지 못하겠다는 기색이 뚜렷하였다.어리석은 주상.명온공주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 계집은 주상 당신의 순정과 다르답니다.어찌 그리 눈이 어두우시오?

"상감마마께서 저의 말에 찬동 아니하셔도 어쩔수 없습니다.허나 중전마마께서 당장 저리 괴로우신 것도 사실이며 재성의

계집이 보낸 짐에 손을 댄 이후 그리하시다는 말을 몰래 창빈마마더러 털어놓았다고 합니다.그 예감이 사실이든 아니든 

여하튼 산모가 불편하고 힘들어합니다.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어떤 방도를 취해야지요."

"....중전께서 몹시도 괴로워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어찌하든 편안하게 하여드려야지요.허나 몸이 무거운 사람이

산실을 나서도 되겠습니까?"

미적거리는 왕의 기색을 명온공주는 단호하게 눌렀다.지금은 비상시국이 아닌가?

태중에 귀한 원자를 담고 게신 중전께서 악살에 씌여 대굴대굴 구르며 죽네 사네 하는 판국에 무슨 법도?

"당장 중전마마 안위를 살피셔야지요.정심각의 기운을 맑게 씻어주는 동안만 피접 보내주십시오.저가 다 알아서 할랍니다.

전하께서는 모르는 척하여 주십시오.어마마마께서도 근심 대단하시되 법도가 있으니 차마 말씀은 못하시되 몹시도 안타까워 

하십니다.소격전의 태사를 시켜 저가 정심각의 기운을 정리하는 동안 가능한 한 멀리 중전마마를 그곳에서 떼어놓아야 할

듯 합니다."

"사고의 말씀이 맞습니다만,효과가 있을지요?"

"일단 하여봄이 무방합니다.저가 중전마마를 뫼시고 나가 며칠 지내시게 하여보겠나이다.제 집에서 기운이 좋아지 면은 

이사고의 걱정이 맞는 것입니다.윤허하여주십시오.아무도 모르게 뒷문에 작은 가마 대령하여 중전마마 모시고 나갈랍니다."

정심각 안에서 마냥괴롭다 한다.잠시라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두렵다 하였다.악한 것이 꿈에서마다 덮치고 아기를 해하려 

달려든다.먹자하여도 치받아 쓴물만 토하고 혼절하여 까무라치기 여러 번.이대로 놓아두었다간 정말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불안함이었다.그토록 중전의 안색은 좋지 않았고 상태는 나빴다.마지못하여,반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왕은

그렇게 하십시오하고 한발 물러났다.

"허면은 며칠 의륭저에 중전을 보내겠습니다.중전이 떠나신 후 사고께서 소격전의 도사와 더불어 정심각을 한번 새로 치워

주십시오.겹겹이 둘러싸고 사기가 침범하지 못하게 막은 곳에서 무슨 괴이쩍은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듯이 방비함이 안전할 것입니다."

명온공주가 절을 하고 물러났다.중전이 악살을 씌여?하도 뜻밖이며 더없이 노여웠다.

감히 누가?하지만 당장에 보고 들은 바라 부인도 못할 지경이었다.중전이 푸른 쓴물 토해내며 괴롭다 구원해 달라 사정하는

것을 듣고 온 터가 아니냐,왕은 멀거니 허공을 응시하였다.

만약,왕은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용포위에 놓인 어수가 꽉 움켜줘어졌다.

'그러지 않기를 비오,누이.제발 중전에게 닥친 악살이 누이와 무관하기를 비오.짐은 믿고 있거니,아무리 무도하고 악하다

하여도 짐의 피와 살을 이어받은 아기를 누이가 해치리라 믿지는 않소.짐을 더 이상 잔인하게 만들지 마오,누이.제발 

이번일과 무관하기를 비오.'

교태전 마당에 흩어져 있던 껍질을 벗긴 쥐 소동에서부터 불이 난것이며 이번 중전의 의문스러운 병증까지.그때마다 뇌리속

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

아니다,아닐것이댜.강하게 부인하고,또 부인하고 싶은 마음이다.허나 왕역시도 반은 이미 알고  있다.

중전을 저주하고 제목숨 떼놓고서라도 해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하늘 아래 누구인가?

희란마님 말고는 없다.주상 당신을 두고 대적한 연적도.이들 두고 훗날 기약하다 중전이 가진 원자때문에 기회를 잃은 터,

분하겠지.억울하고 원통하겠지.첩첩산중.원한 천리.그악심 그 원망이 얼마나 장할까?

'그런 계집을 은애하고 방자하게 만들고 온갖 행악을 하게 만든이는 짐이다.우리 아기가 받는가?만에 하나 재성 누이가 

개입하여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라면.......'

제대로 죽지도 못하게 만들어줄 것이다.왕은 칼날 같은 시선을 들어 재성 쪽을 노려보았다.

'능지처참을 하고야 말리라!구천에 혼백이 떠돌지도 못하게 가루로 만들어주리라.사직의 안주인을 해하려 한죄.태중의 아기

를 모해한 죄.그리고 짐의 순정을 배반한 죄를 반드시 물을 것이다!'

일이 그지경이 악화된 후 무엇을 망성이랴.

아무도 모르게 그 밤으로 하여 중전은 은밀히 낮은 가마 타고 성동의  의륭위 잠저로 출궁을 하시었다.

윤 상궁과 나인 두엇만 딸리고 왕이 보내신 호위밀 정일성만 가마를 옹위한 채 명온공주마마를 따라 나갔다.

전하께서도 미복하시고 한 삼사여 리나 말을 타고 중전의 가마를 따라 나갔다.귀한 지어미를 배웅한 터였다.

"부대 기분 전환하고 잘 놀다가 돌아오시오.우리 귀한 중전?사정 보아서 한 너덧 새 지내시되 옥체 환후가 나아질것이다 

하면은 며칠 더 지내셔도 좋을 것이오.그저 짐은 비께서 편안하고 즐겁기만을 바랄 뿐이오."

"정심각이 정결하여질 동안만요.마마.소첩이 뵙지 못하는 동안 강녕하셔야 합니다."

가마 안에서 중전마마,보스스 미소 지었다.가마 창문이 내려지고 일행은 어둠 속에 사라졌다.

그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전하.

어찌 그리 허전하고 쓸쓸하신가?마치 손안의 귀중한 보물을 잃은 듯 텅빈 마음.섭섭하고 외로웠다.

이미 중전이 타신 가마가 멀어진 지 오래.헌데 쉽사리 말머리를 돌리지 못하였다.

'길어보았자 겨우 한 여흘 계시다가 돌아오실 터인데도 짐의 마음이 이토록 울적하고 쓸쓸할 줄은 몰랐도다.은애함의 깊이는

떨어져 봐야 안다 하더니 짐의 마음이 바로 그러한 것이 아닐 것이냐?잘 다녀오시어야 할 것인데...조금이라도 옥체가 편안

하셔야 할 것인데....돌아와서도 예전처럼 그리 힘들고 쓴물 토해내며 괴로워할 것이라 한다면은 실로 근심이라.만삭이니

그러다가 행여 만에 하나 아기나 그이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은 짐은 못살 것이다.'

돌아서 홀로 궐로 돌아가시는 상감마마 뒷모습이 축 처졌다.쓸쓸하고 처연한 달빛이 넓은 어깨에 어렸다.

이렇게 하여 궐내 아는 이 거의 없이,몰래 중전마마께서 의륭저로 내려가신 지가 벌써 이레째.

중전은 의륭저에서 퍽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첫 밤에는 자리가 바뀌어 다소간 익숙하지 않은 고로 잠을 설친 것은 사실이었다.그러나 그 다음날부터는 아무 거리낌없이

퍽이나 유쾌하고 편안하시니 그 며칠 사이로 단번에 용색이 화사하게 회복되었다.

'그럼 그렇지.그곳에서 나오자마자 단 하루만에 이토록이나 용색이 안온하게 피심이랴.분명 그곳에 어떤 몹쓸것들이 더러운

짓거리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명온공주께서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는줄도 모르는 중전마마.

모처럼 편안하고 태평하시었다.시원한 정자 올라 바깥 공기 쏘이며 동무들과 우스갯소리,투호놀이며 이리저리 산책도 하시니

그렇게 심하던 체증도 쑥 가신 듯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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