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27/200)

그런데 날벼락은 도성의 궐 안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성의 희란마님.말 달려온 전령의 추상같은 어명 앞에서 퍼들퍼들 사지를 떨고 있는 참이다.

어명을 전하러 온 승지가 왔다 한다.혹시 전하께서 이 몸을 도성으로 환도시켜 주시려나 희망에 젖어 버선발로 뛰쳐나갔다.

허나 그녀에게로 날아온 전교는 무정하고 엉뚱한 날벼락이었으니!아이고,꼬셔라!!!

"재성 여인에게 하명하노니 오륙 전에 전하께서 월성궁 가용으로 하사하신 장해도를 반환하라 하시오!"

전하께서 한참 희란마님 저에게 미쳐 천지분간 못하고 모다 펴주실 때였었다.한철 수만 냥 내탕금으로 모자라다 저가 앙탈하

니 짐이 고운 누이 패물 값 하나 못 줄것이야?호기 부리신다.가용으로 쓰오 기분껏 하사하신 것이 바로 남도 해안 풍성한

섬 하나였다.게서 나는 모든 산물이며 세며 노역이 국고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부 월성궁으로 들어오게 한참이니 그 얼

마나 큰 재물이냐?

그런데 갑자기 이날 그섬의 민폐가 극심하고 수탈이 가혹한지라 도무지그대로 놓아둘 수가 없으니 도로 반환하여야 하겠노라

하는 무정한 하교이셨다.

"이미 쌓아둔 재물 충분하고 하사하시는 내탕금도 부족함이 없을지니 굳이 그 섬세물이 필요없음이오.어명이 지엄하니 추호도

어김없이 봉행하여야 할것이오!"

뽀글뽀글 거품을 물었으되 도무지 방도가 없다.무심한 전령은 말을 타고 가버리고,남은것은 날벼락맞아 사지 퍼들거리며 기절

한 희란마님뿐이었다.교인당이 아랫것들 재촉하여 방안에 업고 들어와서 찬물 뿜어낸다.탕제 올린다 수선 피운끝에 눈을 뜬

희란마님.이날 일이 꿈이냐 생시이더냐? 제 생살을 꼬집어보고 싶었다.

"전하,이 누이를 아예 죽이시오!흑흑흑.온갖 수모 박대 참아 내며 주상 위엄 더럽히지 말아라 호령하시어,설움 참아내며 여기

까정 아모 말도 못하고 밀려 내려온 터입니다.이 누이 무엇으로 낙을 삼고 살라고 이제는 돈줄마저 끊으시는 것입니까?참으로

이러실 수는 없는 것이니다.전하.전하ㅡ!으흑흑흑흑!"

희란마님 서러운 울음소리가 오래도록 끊이지가 않았다.단 한해 사이에 이토록 이 희란의 신세가 팍팍하여지고 구차스럽게 되

었노?그나마 내가 훗날을 기약하며 사람들을 부리고 도성이며 궐 안팎 사정 살피는 눈과 귀를 움직이는 것은 돈줄 하나 가지

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날서는  그도 못하게 되었으니 이제 내가 어찌 살라 이 말이더냐?

물에 빠진 이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기분으로 교인당의 손을 부여잡았다.

"이 희란에게 미쳐 그저 다 줄것이니 한번만 누이가 짐을 보아주오 하며 온갖 감언이설에 애원을 하여 내가 내팔자 쥐어뜯으

며 잉첩자리 앉았더니 지금서는 단물이란 단물을 다 빨아먹고 싫증이 나니 마치 못쓰는 물건인 양 내다 버린 주상께 반드시

복수를 하고 말 것이야!내 눈에서 피눈물 흐르게 한 터이니 당신 눈에도 피눈물이 나야지.그것이 사리에 맞는것이지!여보게

교인당.내가 한 십만냥 남은것이 있네그려.이 참에 다 털것이니 어찌하든지 일을 하여보게나.응?중전 고년을 태중 어린놈과

함께 잡을 방도가 진정 없겠나?"

교인당이 십만 냥이라는 엄청난 재물에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자자손손 십녀 대를 써도 줄지 않을 재물이다.

그것을 제게 다 안겨준다 나서니 어찌 욕심 많은 그녀가 회가 동하지 않을 것인가?한참동안 이맛살에 주름을 지으며 생각에

잠긴 터로 마침내 교인당이 입을 열었다.

"아주 독한 악살을 쏘아 산실서 더 이상 있지 못하게 만들면은 될것입니다.잘못되면 쇤네가 오히려 피 토하고 죽을 것이나

감히 시행할 염두를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그러나 이제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 방도뿐이라.쇤네 목숨을 걸고 큰마마의 소원

을 이루어 드릴 것입니다!마마,당장에 중전의 속의대를 하나 구하십시오!반드시 속살이 닿는 속고의 여야 할것이며 지금껏 

쓰고 있는 것이어야 할것입니다."

"선이 년이 있으니 그깐 것이야 구하기 여반장이지만,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이누?"

"제가 아는 비방이 영험하니 달포 동안 정성 들여 악살을 쏘아 중전이 덮는 이불에 몰래 넣어놓으면은 백이면 백 그 이불 

덮는 이와 아기가 몸이 상하고 피를 토합니다.또한 산모의 정수리에 살이 침범하여 잠을 편안하게 자지 못하게 하며 도통

저분질도 못하게 말려놓는 것이니 저가 몸이 괴롭다 하여 살고 싶으면 산실을 벗어나게 될것이라.세상서 가장 큰 죄가 태중 

아기 해치는 것이니 이런 비방이 있되 이것이 잘못되면 오히려 살을 쏜 저가 죽어 나자빠지니 감히 하지를 못하는 터입니다.

허나 큰마마 사정이 하도 절실하니 저가 어찌 목숨이 아깝다하여 망설이랴?당장에 일을 할것이니 당장 중전의 속고의

하나만 얻어주십시오."

"자네 말을 알아는 듣겠는데 그런 모진 살이 쏘아질 것이면 발각이 나지않을 것인가?중전이 몸이 편안치 아니하다 할것이면

당장에 산실을 뒤집을 것이고 소격정의 태사가 신기가 뛰어난 터인데 살의 기운을 눈치 채지 못할 것인가?산실 가까이 의심

스러운 것이 조금만 있달지면 무작정 우리 쪽을 의심하여 대처분을 할 것이라 사친에게 주상이 경고를 하였다 해.발각나면

다 죽는 것이야."

"들키지 않게 하여야지요.저가 기막힌 계교가 하나 있으니 이리 잠시만  귀를......"

교인당이 희란마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인다.그 말을 듣고 있는 희란마님 입술에 슬며시 잔인한 미소가 떠오른다.

"홋호호.절묘하네그려!그야말로 그렇게하면 감쪽같을 것이니 일이 이미 반성사일 것이네!홋호호.주상,두고 보시오!이 희란

과 우리 혁이 눈에 흐르던 피눈물만큼 반드시 흘리게 될것입니다!오늘날 이리도 무참하게 나를 버리신 대가는 받으셔야지요!

두고보십시오.반드시 원수를 갚고야 말 것입니다!"

같은 시간.서경당의 정심각.

중전은 호조좌랑 하용지로부터 재성의 계집에 대한 처분을 듣잡고 계셨다.

"그리하여 재성 여인에게 하사하신 섬을 도로 물려라 하신참입니다.작년서 편액을 쪼개시고 난 연후에 그 여인에게 하사하신

전답이며 아랫것이며 모다 환수하라 분부하셨는데,그 섬만이 빠뜨려진 것입니다.그것이 어찌  된 영문인가 하면은 원래 그 

섬이 내수사에 속해 있었삽지요.그래서 호조의 문서에 없던것이라 그만 잊혀져 버린 터였습니다.헌데 어사께서 그섬의 사정

을 보고 돌아오시어 수탈이 극심하여 백성 곤고함이 심하옵니다 고변하니,성상께서 심히 놀라시고는 그는 짐의 실책이다 하시

었나이다. 이날서 승지가 교서를 가지고 내려갔다 돌아왔습니다."

"그이가 내탕금도 많이 깎이고 살림이 곤궁하다 들었소이다.그것까지 환수하면 다소 사는 것이 힘들지는 아니한가요?아무리

성총 떨어졌다 하나 주상전하의 첫여인이고 용체를 모신 계집이오.사는 것이 빈약하고 초라하여 전하의 위엄을 떨어지게 한다

할 것이면 그것도 도리가 아니오.내가 그말을 들으니 다소 안쓰럽구려."

"그런 말씀은 마옵소서.지금 전하께서 하사하시는 내탕금으로도 부족함이 없습니다.첩지도 없는 잉첩이 그만하면 족하다 못해

넘치는 것이지요!전하께서 대장부의 도리를 다하시사,그여인에게 과분하십니다.중전마마께서 근심하실 일이 아니라 보옵니다"

중전은 호조좌랑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나지막한 목청으로 치하하였다.

"그리하셔야지요.아무리 성총이 옅어졌다 하여도 그동안 정분이라 좋으셨고 옛적 당신의 즐거움이 되었던 여인이니 끝까지 

돌보아주심이 당연합니다.사람은 물건이 아니니 쓰다 버릴 수는 없는 것이요,달면 삼키고 쓰면 버리는 것도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요,분주하시니 나가보시어요.며칠 내로 겨울 의대가 다 지어질 참인지라 기별하면 다시 한번 수고하여 주시고요.이번

서는 이 중전이 몸이 무겁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워 의대 지은것이 예전만 못하답니다."

"망극하고 황공하옵니다.옥체가 무거우신 터로 하냥 힘들게 앉으시어  바느질을 하신 것이라 실로 이번 의대들은 비길 데

없이 귀하고 아름다운 터입니다.허면은 이만 신은 물러가렵니다."

호조좌랑이 나가고 홀로 앉으신 중전마마 문득 고개들어 남쪽을 향하였다.빙긋이 웃었다.조용한 안색에 퍼진 웃음이 어질

다기 보다는 어쩐지 고소하다 이런 색이다.아까의 말씀으로는 희란마님의 사정에 동정을 하는 것처럼 하셨으되 심중의 뜻은

그렇지 않았다 이 말 이련가?

'그 게집의 목줄을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 이말이다.쌓아둔 재물 믿고서 그 금전으로 제 흉악한 계교 해치우는 심복을 부릴

참이니 그 계집에게 들어가는 돈줄을 끊어버려야 그것이 훗날에도 힘을 쓰지 못함이라.흥,내가 너를 언제고 목을 아니 벨 줄

아느냐?지금은 이 태중에 우리 아기씨 있는터이라 혹여 해가 될까봐 참고 있을뿐이다.이 나라 사직을 십여 년 요망하게 

어지럽혔으며.주상전하의 순정을 이용하여 네 호사 누린 터이니 간특하고 방자한 너는 제명대로 살 자격이 없어.'

전하께서 어사 이규광의 고변을 듣자와 그 가혹한 수탈의 결과를 낱낱이 보고 들으시었다.기가 막힌 터로 하사하신 섬을 냉

큼 물려라 분부하셨다는 것이 틀린 일이 아니었다.헌데 어사가 그섬으로 발길을 돌린것은 바로 중전마마의 영리한 수단이었으

니,어사가 그섬으로 굳이 배를 타고 찾아간 것은 한 노복의 비분강개 때문이었다.부원군께서 데리고 있던 수하였다.이규광이

영라도 어사로 가게 되었다 도승지로부터 은밀히 귀띔을 받으신 중전마마.

부원군께 서찰을 쓰기 신임하는 노복을 어사에게 천거하십시오 하였다.

"월성궁 계집에게 남도 섬하나 하사하셨지요.그섬에서 올라오는 재물이 일 년에 십만 냥이 넘는답니다."

엄 상궁에게서 들은 바였다.이 나라 강토의 주인이신 주상전하의 성총을 독점하는 위세당당한 계집의 소유이니 감히 어떤 

관속이 그 섬에 함부로 발길을 할 것이더냐?허니 그섬의 백성들 고생과 수탈은 눈을 뜨고는 보지 못할 참이요,얼마나 백성들

그 원망과 한이 쌓였을 것인가?어사가 가서 눈으로 보면은 내가 말 한마디 아니하여도 전하께 비분강개하여 고변할 것이고

그 말씀 들으신 전하께서는 당장에 노화 내실 것이다 생각하였다.

오늘날 역시나 돌아가는 일이 한치도 어긋남없이 중전마마 짐작대로라.중전은 바느질 바구니 끌어다가 아까 짓던 아기의 

배냇저고리 감칠질을 다시 시작하였다.홀로 엷게 미소 지었다.은밀하고 차분하되 더없이 싸늘하였다.

'네 이년,너가 내눈에 피눈물 흐르게 한 죄도 크지만은 더 용서할수 없는 것은 바로 네년이 전하의 마음을 농락한 것이다.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분이시나 또한 가장 외롭고 불쌍하신 분이셨다.그런분이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사모지정 

느껴 모든것을 버리고 척을 지면서까정 얻은 계집이 너일진대.그런분의 넘치는 사랑을 받아졌으면 너 또한 최선을 다하여

전하를 기쁘게 하여드리고 사모함으로 보답하여야 그것이 도리이지.헌데 감히 천한 네년의 간악한 치마폭 안에 순진한 그분

휘감아 두고서 허수아비 만들어 온갖 욕을 먹게 하는 것도 모자라 네년이 감히 호가호위하여 전하보다 윗길인 여황 노릇을 

하였다더냐?절대로 이 중전,그것만은 용서하지 못하니 천한 네년 때문에 전하께서 저지른 실책으로 인하여 우리 아기가 훗날 

부왕마마를 존경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전하의 가장 큰 부끄러움인 네년을 내가 반드시 대처분하고야 말 것이니라!'

중전마마 고운 아미 찡그리고서 다시 한번 단단한 결심을 다짐하였다.태중 아기를 위해서라도,아기씨에게 비칠 부왕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간악한 계집과 그 소생을 조만간 대처분하여 싹을 없애리라.중전마마, 붉은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그날 저녁,우원전에서 밤수라를 받으시는 상감마마께 고변이 들었다.

"전하,상침이 알현키를 청하옵니다."

전하의 용포를 수놓는 일급상침 허씨.무릎걸음으로 들어오는데 등 뒤로 김 내관이 보따리를 낑낑 짊어지고 따라들었다.

"전하 일전에 하명하시기 아기씨 이부자리와 중전마마 산실서 정히 덮어라 하여 금침 장만을 다 하였습니다.보시옵고 마음에

드시면은 산실로 보내 드릴 것입니다."

한 보름 전이다.한날 김 내관 놈이 ?에서 귀띔하기로 산달도 되어 오는데 태몽을 꾸셨다 하니 호랑이를 수놓아 아기씨 금침

이며 중전마마 새 이부자리를 만들어 중전마마께 하사하시지요 권하였다.

"게다가 호랑이는 벽사의 의미도 있으니 수놓아 금침 만들어 이부자리 하여 덮도록 하시면은 잡귀도 덤비지 못할 것입니다.

계절이 더워지니 중전마마께도 새로이 까슬한 모시 이부자리 한벌 하사하시면은 얼마나 감격하시겠나이까?"

듣자하니 오랜만에 참으로 기특한 궁리였다.이놈이 제법 머리쓰는 바가 신묘하다 한마디 칭찬하시고는 당장에 상침을 불렀다.

중전에게 보낼 것이니 아기씨 이부자리와 중전께서 산후 조리후 덮으실 금침을 만들라 분부하셨다.

그런데 이날 그것이 다 완성되었다 아뢰었다.

"오냐,수고하였다.정성으로 지은 줄을 짐이 아는니 따로이 볼것은 없느니라.김 내관 너는 당장에 지고 짐을 따르라.짐이 

직접 중전께 이고운 금침 덮고서 좋은 꿈꾸소서!전하리라!"

어찌하든 중전 곁으로만 갈 핑계를 찾고 있던 상감마마.

수라상 반도 아니하시고는 벌떡 일어나셨다.

김 내관이 이불 보따리를 짊어지고 대전마마 따라 금원 정심각으로 나아간다.

아름답게 지어진 이부자리 앞에 두고 중전마마 감격하여 눈이 별처럼 빛났다.

전하께서 중전마마와 태중아기씨 생각하는 마음이 그 얼마나 지극하고 다정하신 것이냐.감격하여 지아비 전하를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는데 아름다운 옥안에 미소가 함박 물렸다.

"매사 신첩을 어여삐 여기시니 마냥 황감하옵니다."

"짐이 요기 태몽따라 우리 아기씨 이부자리에다 호랑이를 수놓아라 하였거든.색도 쪽물 들여 푸른색으로 하였거니.사내아이

몫이야.꼭 원자 낳으소?응?"

중전은 금침 갈무리 하는 나인 선이를 불러 보따리를 내가라고 분부시키었다.

"내가 명일서부텀 당장에 이 이불을 덮을 것이야.내일 이것으로 침수 차비 하거라."

그런데 선이 년 보소. 김내관에게서 이불 보따리를 받아 들고 옆방 들어가는데 은밀하게 김 내관 놈하고 눈을 마주치는구나.

서로가 무엇인가 신호를 보내는 터인데,필시 어떤 해괴한 사단이 이 금침 안에 있는게 아닐까? 어허,불길하구나!

그것도 모르고 중전마마,화사하게 웃고만 계신다.원자 낳아져라 하는 말씀에 살며시 눈을 흘기었다.

"아이,공주면 어찌하시려고? 듣는 아기가 섭섭하다 하겠습니다."

중전이 두손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왕이 껄껄 웃었다.

"첫 공주면 요것 이불 덮고 아들 터를 팔 것이다.하지만 짐은 꼭 이놈이 원자 같거든.태중서 노는 꼴도 그러하고,꿈도 그러

하고,또 중전 배가 둥실하니 원자 낳을 배란 말이지.짐이 다 물어 보지 않았겠어?"

"아이고,망측스러워라.누구에게 무엇을 어찌 하문하셨습니까?설마 신하를 옆에 두고 신첩의 아랫배 모양이 어떻더라 이런

부끄러운 말씀까정 하신 것은 아니지요?"

"하였지.하였으니 들은 것이고 아들 배인줄 아는 것 아니겠니?"

민망한 중전이 눈을 흘기거나 말거나 왕은 흐뭇하여 주절주절 자신이 한 일.들은 말을 다 자랑질하였다.

"아,도승지더러 짐이 물었거니,대답을 해주더라고.그이가 참 소탈하니 속시원하게 말을 잘하여주거든.그래서 짐이 종종 하문

하는데 말이지.회임하신 중전께서 참외처럼 배꼽이 튀어나오고 달덩이처럼 아랫배가 둥글고,또 냠냠 잘 젓수시고 속살이 

나날이 만월처럼 풍만해지신다 이랬거든."

"아이고,마마.참말 못할 말이 없으시다!"

중전이 새빨갛게 변하여 비명을 질렀다.사정없이 상감마마 옆구리를 꼬집기 시작하였다.참말로 만고에도 없는 망신이 아니냐.

앞으로 도승지 얼굴을 어찌 보나.그이가 나를 볼 적마다 중전마마 배꼽이 튀어 나왔고 속살이 만월처럼 허옇다 생각할 것이

아니냐.지어미를 이리 망신시킨 상감마마.잘못한 줄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계속하여 떠벌떠벌 잘도 떠들었다.

"그랬더니 그이가 딱 듣고는 아이고,상감마마 원자 아기씨옵니다 이러잖어.그이가 복이 많아 아들만 셋이거든.집의 안해가

아들 낳을 적에 딱 중전과 같았다는 게야.원자 맞다니까!"

"...........참이야요?진정 그리 들으셨어요?"

부끄럽고 민망하였지만 아들을 낳은 이가 말하였다는 대목에서 슬금슬금 중전도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왕이 맞다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마!아들 가진 이가 딱 중전처럼 요렇게 참외배꼽이라는구먼.흠흠.태중에서 노는 꼴도 아들이면 모후가 괴로울 정도로 활발

하고 씩씩하다는 게야.중전도 그렇잖어."

"태동이 어찌나 장한지.자다가도 깜짝 놀라 깰 정도여요.보시어요.이렇게 앉아만 있어도 치맛자락이 움직일 정도로 세차게 

놀으시니 아랫배가 움찔움찔한답니다."

"원자 맞다니깐!태어나면 발이 빠를 모양이오.발길질을 잘하는 것 보면 말야."

"참말 전하께서 바라시는 대로 원자면은 얼마나 좋을까요?딱 첫 참에 마마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 싶은데...."

중전이 두 손으로 아랫배를 감싸 안으며 진정으로 말하였다.왕도 아랫배를 감싼 중전의 손 위에 가만히 어수를 올려놓앗다.

두분 마마의 손 아래 태중 아기씨는 이리저리 모후마마 배를 걷어차며 잘도 놀고 계시고,중전의 눈을 바라보며 왕은 나지막한

목청으로 속삭였다.진심이었고 진정이었다.

"하여주실 것이야.중전은 짐에게 기쁨만 주시는 분인 고로 첫 참에 덩실하니 원자를 주실 게야.짐은 그리 믿고 사오이다."

"범처럼 씩씩한 원자가 태어나서 마마의 아름다운 기상 내림받고 자라시어,덩실하니 보위대통을 잇는다면 신첩은 얼마나

자랑스럽고 보람찰까요?신첩도 날마다 천지신명님께 기원합니다."

흐뭇하여 씩 웃던 상감마마.슬며시 입술을 중전의 귓불 옆으로 가져다 댔다.짓궂은 용안이시다.

아무도 듣지 못하게 둘만 아는 이야기를 소곤거리었다.

"중전,짐이 말야.도승지 더러 한가지 더 배워 왔다?"

"무엇을요?"

"음음음.만삭이신 비와 함께 잠자리 하는 법이지 무어."

"전핫!"

"비가 짐의 위로 올라오소.그러면 무사하게 즐긴다는구먼.흥.왜 눈을 흘기고 그러는 것이니?짐더러 생짜 홀아비 신세를

만들어 놓고 그대는 마음이 편안하니?야아,짐도 죽을 맛이다 무어."

그날 밤 상감마마,옆구리 살점이 톡톡히 떨어져 나갔다.맹랑타고,망신이라고,체통지키시라고 하도 꼬집어서 그리된것이다.

응?무어라고요?죽고 못사는 그 정분.그 밤에 이으셨느냐고?

정말 중전마마께서 감히 전하의 용체 올라타고 하여서는 아니되는 교접하시며 방탕하게 즐기시었느냐고?음음.모르오.

님네들이 알아서 상상하시오.다만 한 가지. 비단 방장 안에서 주무시는 두분.날가슴입디다그려.흠흠흠...

=====제12장          위기(危機)========

"아이,편전 나가시어 조수라 받으시지 꼭 이리하시더라?장성하신 분이 어린 아기처럼 입만 벌리고 있으시면 신첩더러 어찌

하란 말씀이셔요?"

"어찌하긴 무엇을 어찌하여?그대가 짐 입에 넣어주어야지!아!이번서는 김쌈을 주어."

서경당 깊은 안방.

아침부터 토닥토닥 수라상 받으신 두 분 마마. 입씨름이었다.

사흘을 못 참고 지난밤 삼경 넘어 또 상감마마.몰래 다른 사람 눈을 피하여 산실 들어오시었다.

그 밤을 중전과 함께 지내고는 빨리 대전 나가셔요 아무리 구슬려도 싫어.안 가!하고 쇠고집이시다.

결국 아침 수라상이 나란히 올랐는데.이분 하는 양 좀 보소?

멍뚱멍뚱 손 내려놓고 중전마마 앞에서 입만 벌리고 앉아 계시는구나.

중전마마 흉하다 눈을 흘기면서도 정성스레 김쌈하여 전하 입에 넣어드린다. 목이 메일까 두려워 좋아하시는 시원한 김치국

물까지 은수저로 떠서 입에 넣어드리니 냠냠 맛있게 드시는구나.

모처럼 중전마마께서 끓여 드린 차 한잔 받으셨다.오늘서는 짐이 대전 나가지 말까 보다,마냥 게으름을 피는 즈음.

갑자기 왕대비전하께서 별찬하여 서경당 오신다는 기별이 들었다.

"이크,난리났다. 할마마마께서 짐이 예 있는것을 보시면 또 애꿎은 중전만 나무랄 것이다.짐은 가오.밤서 또 오께."

상감마마,제 발이 저리었다.들지 말라는 산실에 또 침입하여 밤까지 지새운 터.

이를 아시면 왕대비께 경을 치실 것이 분명하였다.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부리나케 도망 나갔다.

재수도 없지.전하께서 타신 교자가 딱 그만 부용정 앞에서 왕대비마마께서 타신 덩과 마주칠 것은 무엇이냐?

어름어름 인사하고 누가 물어나 보았나?짐이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길입니다.절대로 밤을 샌 것은 아닙니다 하고는 냅다 

달아났다.꽁지말은 강아지처럼 훵하니 사라졌다.무어라 더 말씀이 있기전에 도망을 가는 것이다.

그모습 바라보시던 왕대비마마 혀를 쯧쯧 찼다.

"이른 시각인데 주상이 서경당서 나오는 것은 필시 지난밤부터 게에 머무르셨다 함이다.도통 저 철없는 이를 어찌하노?

만삭이라 그저 조심하여야 할 중전을 가까이 하지 못하여 그저 안달을 하시니.원!"

"인력으로 뗄 수가 없는 정분입니다.이해를 하여 주십시오.얼마나 대견하고 그리웁겠나이까?중전마마께서도 대전마마가 

곁에 계셔야 심사가 편안하다 하시니 오히려 태교에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무엇보다 모체의 편안함이 태교의 근본이 아니겠

는지요?"

곁에 따르던 명온 공주마마께서 아뢰었다.왕대비마마 후덕한 그 옥안에 미소를 머금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허긴 그 말씀도 일리가 있구나.주상이 중전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디 견줄 데가 있어야지.그렇게 정분이 좋아 못사는 터로

예전에는 왜 그리 밉다 하였을꼬?"

"무엇이든 다 때가 있음이라,그때는 주상전하께서 중전마마 향한 연심이 안즉 피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옵소서.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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