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200)

호언장담,상감마마 무조건 틀림없이 원자라고 깡고집이시다.

날이 밝아 참레 나가시어는 조하는 아니 돌보고 중전이 회임하였다 자랑질만 내내 늘어놓았다.으쓱으쓱,의기양양,아니 먹어도

배부른 용안이라.

"필시 원자마마이실 게야.상감마마께서 꾸신꿈도 기가 막히나 현성부원군께서도 달포 전 꿈에 글쎄,하늘에서 떨어진 어린용

한마리를 잡아 우물에 가두었다지.주상전하 씩씩하고 영명하신 기상받고 태어나시어,중전마마 야무지고 어진 덕 내림으로 자

라실 터이니 으뜸가는 명군이 되실분이 탄생하실 것이네.실로 사직의 홍복이야."

여간해서는 입을 열지 않고 과묵한 터인 영의정 한영회가 한마디 할정도였다.곁에 앉은 대제학도 예판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

였다.한영회의 예측이 정확하였다.열 달후에 탄생하신 그아기씨.바로 단국 역사상 불세출의 명군이라 일컬음받으시는 익종대

왕,범이 도령이시다.어질고 현명한 인품에다 능란한 국정 운영으로 이 나라를 대강국으로 만드신 분이다.위대한 임금의 탄생

은 태몽부터 그렇게 범상치 않았던 것이다.

온나라가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던 일이었다.더없이 감축할만한 일이며 반가운 소식이다.금세 도성 전체에 중전마마 회임

소식이 소문나고야 말았다.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감축하고 즐거워하는 일이라.중전마마께서 덩실하니 단박에 씩씩하고

영명한 원자마마를 낳아지시면 좋으련만.

자,이렇게 하여 중전 마마께서 온 나라가 그토록 바라던 회임을 하시었는데............

이 일은 당장 조정에 큰 소용돌이를 가져오게 되었다.중전마마께서 원자를 낳아지시면 곧바로 적장자라.보위를 책임질 세자

마마이다.허면은 희란마마 소생인 혁이 놈의 운명은 어쩌란 말이냐?

비록 지금은 그 모자.죄를 받아 서인 처지로 갇혀 사는 신세이되,안즉은 뿌리 깊은 세력이다.알게 모르게 그놈을 왕자로 인

정시켜 조정 대세를 이룬 저들 뒷곁으로 밀어 동궁 세우자 나섰던 벽파의 입지가 답답하게 된 터가 아니냐?천만대 저들이 잡

은 권세를 죽어도 놓기 싫은 터라  어찌 하든지 앞날을 기약해 볼 것이다 싶은 흉심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인데......

물론 그들 뒤에는 재성에 도사리고 앉아 중전과 왕에게 저주의 원독을 쏘아 날리고 있는 희란마님이 있음은 불문가지.

사람 눈들 피하여 살그머니 스며들어 온 교인당의 말로 중전이 회임하였다는 기별을 받은 희란마님.무릎 세우고 도성이 있는

방향인 북창을 노려보았다.시퍼런 독이 타올라 그 눈빛이 칼날이다.그눈독에 치일라치면 사람하나 죽이기 여반장으로 보였다.

'중전 고년이 회임을 하여?뉘가 그저 순산하게 내버려 둔다하더냐?내가 주상의 성총을 잡으려 심지어 천하의 탕부라 하는 오

욕까지 받고도 참았다.이렇게 어이없이 몰락하라고?어림없다!죽어도 고년하고 같이 죽지 혼자는 못죽는다.'

희란마마님,앞에 앉은 교인당을 가까이 다가앉게 하였다.귀에다 대고 무어라 한참 속삭였다.악독한 성정에 간교한 수단 한번

끝내주는 희란마님이 죽을 작심을 하였다.여하튼 둥 중전을 해칠 꿍속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두렵구나.성덕궁 교태전 안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한 주상전하와 중전마마 앞날이 심히 걱정이로다.

이차저차 세월이 흐른다.

섣달 지나 정월,새해가 시작되고 다시 돌아 이월.추적추적 비가 내리었다.얼어붙은 땅을 해동하는 단비이다.

처마 끝에서 똑똑 낙수가 떨어지니 밤 잠 오지 않는 사람의 심회를 유난히 건드리는구나.

전전반측,왕은 우원전 넓은 침전에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아무리 뒤척여도 잠이 들지 않아 결국 금침에서 벌떡 일어나 

앉고 말았다.그동안에 익숙하여진 버릇이라.왕비와 한 베게 베고서 별의별 희롱 다 하다가 다정하게 안고서 침수하시 던 터.

어여쁜 이를 떼어놓고서 홀로 주무시려 하니 도무지 허전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

중전이 회임을 한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호랑이같이 법도에 엄하신 왕대비전하, 잉태한 터로 상감께서 중전을 가까이

하시면은 곁에 가시면 아니되오!하고 딱 잡아 누르셨다.잠시라도 떼놓을 수 없을 만큼 좋아죽는 사람을 지척에 놓아두고 

열달이나 손도 대지 말라니.아니,이런 변고가 있나!

"법도가 그러합니다.곤전께서 회임하사 매사 조심함이라,지아비이신 주상께서도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지셔야지요.당연 동침

함도 피하셔야 합니다.인제부텀 주상은 교태전 듭시지 말고 우원전서 침수하세요!기별하실 일이 있으면 서간으로 하시고요.

임산부는 어지러운 바깥세상과 소식을 끊고 태교에 전념하셔야 합니다."

"아니,그러하여도 그렇지.할마마마,그것이 저기...그래도,음음음,중전하고 소손은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하거늘...."

어찌하든 그 일만은 피해보려 무진장 용을 썼다.허나 소용이 없었다.법도라는 데야 어쩔 거이냐.법도라는데!!!!

"?,참말로 환장하겠구나.그놈의 법도가 다 무어냐?마음이 편안하여야 그것이 진정한 태교인 게지.우리 서로 그리워서 전전

반측,이게 더 비에게 좋지않지,흥.'

아무래도 심란하여 이대로 잠들기는 틀렸다.왕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교자 대령하여라.짐이 서경당 갈 것이다."

마침 그밤의 숙직내관이 늙은 장 내관이었다.지존께서 교자대령하라 하시니 교군 깨워 대령하고,발 내미시는 전하 태사혜를

신겨 드리었다.

"비도 오시는데 미끄러운 길로 후원 밤길 행차하시니까?용체 젖어 아니 좋으실 것입니다?"

"음,음.짐이 도통 잠이 오지 않아서 말이야.서경당 가면 다소간 잠이 올까 싶어서 그러하느니라.짐이 이밤에 어쩐지 울적하

니 밤 산보라 하면 나을까 싶어서 그런걸."

어름어름 대답하시는 품이 궁색하였다.후원 나가신다 하는 왕이 교태전 쪽만 바라보는구나.눈치라 척인 장 내관이 지존이라

하여도 젊은 사내인 주인의 그 눈치를 못 챌 것이더냐?

"전하,서경당에 납시옵소서.쇤네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불감청이인정 고소원,서경당 가 있으면 중전마마 모셔온다 하는말로 재빨리 알아들었다.늙은 생각이 맵다고 눈치가 귀신인

터다.전하.싱긋 웃으시며 모르는 척 대답하였다.

"어이,상선 너가 참말로 신통하다.알아서 잘하여라!"

밝은 불이 켜진 서온돌.

지금 중전마마께서는 단정하게 앉아 옥돌같이 야문 글씨로 전하께 서간을 쓰고 있었다.법도 따라 자수정으로 만든 반지와 목

걸이,팔찌를 차고 성현의 교훈을 새긴 옥판을 곁에 두고 계시다.회임한 이후 그녀의 아침은 늘 옥판에 새긴 성현의 말씀을 

소리내어 외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십장생도 병풍이 쳐진 방안에서 바느질 바구니 곁에두고 훗날 아기씨가 입을 누비옷 마르는 것도 태교의 방법 중 하나였다.

이미 중전은 지아비이시자 부왕이 되실 상감마마 헌 속의대로 아기의 배냇저고리를 너덧 개나 말라놓았다.

아기의 의대를 부왕의 헌의대로 짓는것은 검소함을 왕실에서 솔선수범하여 실천하는 뜻도 있으되,아바마마처럼 강건하고 아름

다우렴 하는 뜻이 담긴 것이기도 하였다.곁방에서는 중전마마 마음의 평온함을 위하여 궁중 악사가 잔잔하고조용하게거문고를

뜯고 있었다.깊은밤 봄비 내리는 소리.그 속에 묻힌 거문고 선율이구슬조각처럼 영롱하게 아로새겨졌다.

은애하는이.그리운 정은 어디 왕 혼자만의 마음이냐?

두툼한 금침 안에서날마다 팔베개하여주시고 희롱하여 귀엽게 사랑하여주시던 지아비 아니 계시는 방.유난히 쓸쓸하고 허전

하다.잠이 오지 않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사모하는 정이야 여심이 더 애틋하고 절절한것.그리운 심회를 낱낱이 적어 내려가

는데 벌써 간서지가 두 장을 헤아린다.그때에 흠흠 하는 기침소리가 들리고 윤 상궁이 살며시 들어왔다.

"마마,잠시 서경당 산보나 하시지요.밤비가 처량맞게 나리니 진한 꿀차나 한 잔 하옵시지요?"

중전은 함박 눈웃음을 머금었다.보스스 얼굴 붉히며 작은  목청으로 확인을 하였다.

"전하께서 게에 나가 계시는구먼.그렇지?"

"쇤네는 아무 말도 아니하였습니다."

윤 상궁,모르는 척 허공만 바라보는구나.늙은 그이 얼굴에도 함박웃음이 머금어졌다.중전마마,마음이 바빠지니 냉큼 고운 

초록모본단 치마에 다홍빛 저고리 받쳐입었다.당의도 아니 걸치시고 두툼한 장옷만 푹 둘러쓰고는 가마를 타고 몰래몰래

서경당으로 나갔다.물론 전하께 받쳐 올릴다구 챙기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서경당 사랑채에 이미 불이 밝다.정자관 쓰고 앉아 있는 그림자가 늠름하고 단정하였다.중전이 가마에서 내려서니 전하께서

인기척을 듣고는 방문을 활짝 열어제친다.중전마마 마루에 나붓이 올라서 전하께서 손을 내밀었다.이내 두개의그림자가 하나

로 합쳐졌다.이미 아랫목에 금침 펼쳐져 있고 베개가 둘이다.그 모양으로 심중에 있는 뜻 드러내시었다.왕은 장옷 벗어 던진

어여뿐 지어미 껴안고 한참 동안 그 고운 얼굴 들여다 보고 마음껏 어루만졌다.깨물고 입술 탐하며 오랜만에 뜨겁게 희롱

하였다."짐이 보고 잡았지?"         대답을 채근하니 방긋 웃는 웃음이 날아왔다.

"신첩이 그리우셨지요?"          대답 아니하면 모르나.

그리운 정은 만 리이며 급하고 갈구하는 뜻은 똑같이 장한데....나란히 금침에 누우니 하지 말라는 짓을 함께하는 참이라

꼭 무슨 죄를 짓는 기분이다.하지만 금단의열매가 더 맛이 있듯이 두분 마마 마음일랑 한층 더 세차게 뛰놀고 두근두근

하였다.급하도다,왕의 손은 옷고름을 풀기 바쁘고 입술은 한결 풍만해진 왕비의 젖꼭지를 애타게 물어 삼킨다.

영사 같은 중전의 팔이 듬직한 지아비 목을 꼭 끌어 안았다.

회임한 지가 벌써 넉 달째로 접어들 참이다.중전마마 가녀리고 날씬하던 옥체가 한결 풍만하여지고 아랫배 부근이 제법 동그

랗다.상감마마,오랜만에 중전마마 속치마를 홀라당 걷어 올리고서 살살 희롱하며 내내 하고 잡았던 일을 해치웠다.

인제 제법 불룩 튀어나온 배를 어루만지는 어수를 살며시 가로막으며 중전이 낯을 붉혔다.

"그만 하옵시오,마마.저가 부끄러워 죽을 것이다."

"부끄럽기는 무에가 부끄러워?짐의 아기씨까정 태중에 담고 있으면서도 수줍어하는 것이니?지아비인 짐이 지어미 어루만지는

것인데 무에가 흉이오?치워보소,얼마나 더 부풀었는지 한 번 더 볼것이야."

만류하는 그것조차도 섭섭하다 하여 불퉁하니 입이 한 길은 튀어나온 상감마마.들은 척 깨끗하고 보드라운 아랫배를 뜨거운 

혀로 슬슬 애무하여 주었다.그러다가 갑자기 중전이나 왕이나 깜짝 놀랐다.그날 처음으로 아기씨가 슬그머니 뱃속에서 움직

인 것이다!태동이다.날수가 채워지니 아기씨가 태중에서 제법 자랐다 이말이었다.흥분하신 두분이 한번만 더 하여봐,하시며

하시며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아기씨,이번서는 제법 세게발길질을 하고는 잠잠이다.저 여기 얌전하게 잘 들어 있사와요,하는

신호였다.왕은 얼이 빠질만큼 좋아서 헛헛허 그저 웃음만 실없이 흘리었다.

"참말 신기하다.응?참으로 예에 아기가 들어 있긴 하구나?이놈이 발길질이 제법이니 탄생하면은 꽤나 개구쟁이일 것이야.

핫핫하.거참,신기하다.거참,신기하여!"

전하,너무 대견하고 좋아서 중전마마 그 깨끗한 아랫배에 입술을 부비며 어쩔 줄을 모르신다.또다시 궁금하였다.다시 둥근 

아랫배로 전하의 어수가 내려간다.모체가 편안하니 아기씨가 다시금슬며시움직이고 있었다.그 형용손으로 어루만지어 확인

하며 중전마마 전하의 입가에 함박 웃음꽃이 피는구나.

그렇게 달게달게 한밤을 보내었다.아무도 모르게 같이 지내신 일이 구설날까 겁이난다.장 내관이 안즉 어두운 새벽에 흠흠 

헛기침을 하였다.모르는 척 말끔하게 의관 정제하시니 교자 타고 두분 마마 시침 똑 따고 돌아가시는구나.

흥,소문은 다 났다네.모르는 척하는 것이지.흠흠흠..

비가 그쳐 청량한 개울물이 넘쳐나고 이른 새벽 별이 파랗게 떴다.

"짐이 중궁전까정 데려다 줄 것이다."

채워도 아쉽고 같이 있어도 보고싶은 마음이다.조금이나마 같이 더 있고 싶은터로 왕은 교자에서 내려 교태전 앞까지 중전

마마 작은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음을 옮겼다.금원에서 중궁으로 통하는 월동문을 넘어가던 순간이다.왕이 갑자기 헉!하고 

기이한 신음을 내질렀다.아무 말 않고 돌아섰다.뒤따라오던 중전의 어깨를 잡아 뒤돌려 세웠다.

"우원전으로 가십시다.게서 짐이랑 무리죽 같이 받고 차나 하십시다.이날은 조하 일이 다소 한가하니 분주하지 않소.같이

갑시다."   말씀하시는 목청은 예사로우시다.헌데 왜 갑자기 중궁 문을 들어서다 돌아서시어 이러하시는 걸까?

"사람 눈들이...할마마마께서도 신첩이 마마 곁에서 밤을 세웠다 하면 걱정하실 것입니다."

"보고 잡은 정이야 채워야지 편안한 것,그것이 바로 좋은 태교라 합디다.윤 상궁은 중전을 뫼시어라."

상감께서 딱 잘라 발을 막고 무조건 우원전으로 가자 주장하니,영문을 알수 없었지만 여하튼 중전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허나 심상찮음이다.서둘러 중전을 가마 태워 내보내는 왕의 훤칠한 이마에 새파란 노염이 어리었다.

중전의 가마가 모퉁이를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왕이 돌아섰다.가만히 장 내관을 손짓하여 문 안을 들여다보게 하였다.

"아이쿠!참말 망측하옵니다!"

늙은 장 내관이 깜짝 놀라 한발 뒤물러섰다.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읍하였다.

세상에 이런 흉악하고 참혹한 광경도 어디 있으랴?머리가 뜯기고 몸뚱어리 갈라져서 내장이 다 튀어나오고 피칠갑이 된 쥐들

이 십여 마리 중궁전 마당에 죽어 나자빠져 있었다.만약 중전마마께서 가마에서 내려 이문을 넘으셨으면 참혹하게 죽은 쥐들

을 보는 것은 물론.심지어 발로 밟을 만큼 딱 그자리였다.

회임 중이신데,만약 충격을 받으시어 뒤로 넘어지기라도 하시었다면....아이고,맙소사!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것뿐이면 말을 아니한다.중전마마께서 서온돌 창을 열면 정통으로 눈길이 갈 만한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흉측한 모양의 

인형까지 매달려 있었다.얼핏 보아하면은 딱 사람이 목을 맨 형상같이 흉악한것이다.

회임하신 터로 예민하시니 중전마마께서 이를 보았으면 얼마나 충격이 크고 놀라셨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일.

"저토록 고약하고 흉악한 일이 있나?천하에 발칙하고 더러운 것들!당장 끌어 내려라!"

대로하시어 추상같이 소리치는 상감마마의 하명에 따라 내관들이 죽을둥 살둥 급하게 죽은 쥐를 치우고 흉악한 인형을 끌어

내렸다.

아아,세상에 이리도 악독하고 통분스러울 수가 있을까?그 인형은 바로 중전마마 형상이었다.온갖 추잡스럽고 더러운 악설이

가득 적힌 주사에다 피칠갑된 옷을 걸친 인형이 목에 줄을 감고 매달려 있지 않는가.중전마마께서 그런 꼴을 당하라 저주하

는 것이 분명하였다.

"이 짓거리를 한 손모가지들을 그냥!당장에 저 잡스럽고 요망한 것을 불에 태워 버려라!허고 도끼를 내오너라!짐이 이 흉잡

한 것이 걸린 나무를 빠개 버릴 것이다!"

상감마마 불같은 성미에 얼마나 노하였을까?이사이로 갈리는 음성이 나직하게 새어 나왔다.평소 성품대로라면야 대난리에 날

벼락이 떨어졌을 것이다,허나 왕은 주먹을 움켜쥐고 꾹 참아냈다.행여나 이일을 중전이 알게 해서는 아니 된다는 본능 때문

이었다.

"중전이 충격받으실 것이다.입 꾹 봉하고 조금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냉큼 치워라.어서!"

시퍼런 노염이 어린 주상의 용안을 너무 두려워,감히 아무도 바로 보지 못하였다.내관이 도끼를 건네주자마자 왕은 냅다 인형

이 걸려 있던 나무를 쾅쾅 베어 넘겼다.상감마마 분노와 억누른 힘이 실린 도끼질에 죄없고 애꿎은 나무 한 그루가 맥없이

넘어갔다.내려치는 그 손길은 정체를 알수 없는 흉적,중전마마와 태중 아기를 해치려는 검은 그림자에 대한 왕의분노와 증오

심이었다.빠각빠각 생나무를 톱밥처럼 산산처럼으로 내어놓고야 간신히 진정이되었다. 왕은 아무렇게나 도끼를 바닥에 던져

버리고 장 내관을 돌아 보았다.

"장 내관,너는 지금 당장소격정  태사를 불러 중궁전에 쌓인 악한 기운을 태우는 비방을 하라.허고 재관이는 중궁전 경비하는

인간들을 모다 대전에 꿇어앉혀라!짐이 이날 일어난 고약하고 더러운 일을 친히 탐문할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다.아무리 탐문하여도 뉘가 저지른 일인지 알아 낼수가 있어야지.대궐에서도 가장 심처 중궁에서 버젓이 이런

짓을 자행하는 그림자가 쉬이 꼬리를 드러낼 정도로 허술하지는 않을 터.흉적을 찾아내는 일은 결국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왕은 중궁을 경비하는 무장들의 수를 두 배로 늘리는 처분으로 심기를 안정하고 만족해야만 했다.

대궐을 발칵 뒤집고,멍청하니 번을 선 금부의 병정들을 다 때려잡고도 싶었지만 그럴수도 없다.아무것도 모르는 중전이 충격

받을까 저어하였기 때문이다.쉬쉬하자니 소리 내어 일을 처리할 수도 없다.겉으로야 아무일 없던 듯 덮어버릴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치죄하여 벌을 주고 상하게 하면 태중 아기에게 아니 좋을까 근심스러웠다.집안에 임산부가 있으면 비린 것도 피하고

피 흐르는 육고기도 잘 먹지 않는다 하는데,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위하여 사람 목숨 후려잡고 피바람을 일으키면 원자의 

팔자에 좋지 않으리라.소격전의 태사와 부원군,영의정까지 간청하여 이번일은 없던 일로 하라 꾹 덮었다.

허나 도무지 마음이 편안치 않고 안정되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로고!

왕은 며칠 내내 밤늦다이 편전에 앉아 생각에 잠기었다.주먹을 움켜쥐고 몇 번이고 곱씹었다.

'뉠까?과연 뉠까?감히 중궁에 침입하여 그런 짓을 자행하고 중전과 태중 아기를 해치려는 그 검은손은 대체 뉠까?'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얼굴 하나.재성의 희란마님의 강팍한 표정이 제일 먼저 눈에 잡혔다.그러나 왕은 세차게 고개 흔들어

억지로 그생각을 떨쳐 버리었다.

아무리 방자하고 교만하며 성정이 악독하다 하여도,이렇게 대담하게 굴지는 못할 테지.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였다.재성 집

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죄인 신분이다.권세 장할 적에 박아둔 눈과 귀는 이미 주상 당신이 다 잘라 버리지 않았던가.

어떻게 몰래 사람을 부릴 것이며 발각되면 단번에 목이 잘릴 일을 겁없이 자행하겠는가?아무리 성총 잃어 강새암에 분함

악심이 표독하다 하여도 이런일을 자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싶었다.

'아무리 그러하여도 희란누이가 짐을 은애한 마음은 진실일진대 짐의 피와 살을 이어받은 아기씨를 해치자 함은 바로 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음이야.차마누이가 그러지는 못할게다.'

명확한 이성은 그렇다 하는데 섬약한 마음은 아니다 부인하였다.지난날,주상 당신 그녀를 대할 적 그때는 거짓 하나 없는 

순정이었다.상대 역시 그러할 것이다 굳게 믿은 때문이었다.

'암,아닐 게야.고적하고 외로운 짐에게 이 아기가 어떤 존재인줄 뉘보다 잘 아는 이가 누이일 것이야.지금은 궁지에 몰려

무도하고 강팍함이 드러났다 하여도,짐의 성총을 빼앗아간 중전을 미워하고 투기한다 하되 짐을 진심으로 사모한 것은 참

일지니.그런짓은 못해.절대로 그리는 못할 사람이다.'

억지로라도 희란마님의 마음이 순정이라 믿고 싶어하는 마음.그것은 왕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만약 왕을 대하여 애련해하고 미소 지으며 좋아라 하던 그녀의 모든 것이 단지 그가<왕이기에>보여준 교태라면.왕의 권세에

호가호위하기 위하여 보여준 겉꾸밈만의 유혹이라면?

그런 하잘것없는 계집에게 미쳐 정사를 어지럽히고 강상을 버렸으며 어진 지어미를 박대하고 태중 아기까지 잃게 한것이라면?

왕은 스스로의 미욱함과 어리석음을 어찌하지 못하였다.민망하고 부인하고 싶은 부끄러움 때문에라도 왕은 더욱더 희란마님을

믿고 싶다.마지막까지 가는 악독함이나 몰염치한 발악을 아니라 손사래 치고 싶다.

하지만 하늘은 두 손으로 가릴 수는 없는일.절대로 아니다.아닐 게다 부인한 그 인간들이 바로 간특한 이번 일의 흉적이올

씨다!어리석고 답답한 주상이시여!

그리 오래지 않아 이날의 자비를 뼈저리게 후회하실 터인데 어찌하면 좋노?아아,악인에게는 진정 어진 덕이 필요없음이련가!

지금 재성의 골방에 마주 앉은 교인당과 희란마님,거복이 놈.

마지막 심보 하나까지 먹물처럼 시커멓고 잔인한 이 인간들.독사물에 반죽하여 만들어진 듯한 이 천인공노할 인간들이

무슨 흉계를 또 꾸미고 있는 것이냐?악독한 눈빛이 번들번들.희번득하게 눈알을 굴리고 있다.두런두런 귓속말 전해가며 비소

를 씹고 있는데......

"천하의 흉악한 도둑 년.감히 이 희란의 것이던 주상의 성총 홀라당 빼앗아 호시부귀 누리면서 살고 있을것이나 내가 어디 

그냥둘줄 알고?지금 태중에 아기 담고 별별 즐거움 누리고 있되 그시절이 어디 평생 갈줄 알고?흥."

희란마마 교인당을 바라보았다.미덥지 않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선이 고년이 설마 배신하지는 않겠지?"

"제 어미,아비가 다 우리 수중이올시다.제년이 저지른 일이 많으니 고년이 딴마음 먹어 우리를 찌르면은 제년 잘못을 우리

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하였다 하면 그만입니다."

"선이 년이 화약을 뿌리기로 한 곁방이 철지난 금침이며 타기 쉬운것만 놓아두는 곳이니 금세 일이 나면 화광이 충천할 것

입니다.제발 귀신들이 도우사 일이 잘되면은 얼마나 좋을까요,마마."

천인공노할 악한 짓을 계획하면서 천지신명을 부르는고나.그낯짝 한번 두껍고 양심없는 계집이 바로 희란마님이요.교인당이

라.눈밝은 신명께서 어찌 이것들을 가만두고 계시나"쯧쯧쯧.

한편 같은 시각 교태전.희란마님의 지령을 받아 선이 년이 또 다시 은밀한 행악을 꾸미는고나.교활하고 악독한 고것이 중전

마마 침전 벽 하나 사이 둔 곁방에 몰래 스며들어 가 있다.

전전날서 은밀히 기별이 와 사가로 나갔었더니 교인당이 와있었다.평상시 세곱절이나 되는 두둑한 금전과 주머니를 하나 

주었다.

"무엇을 어찌하자는 것도 아니란다.벌레를 물리치는 약이니 금침 방에 뿌려만 놓으렴."

눈치가 없을까?말 아니하여도 선이년,속으로 짐작하기 희란마님이 중전 노리어 계교를 꾸미는 것이구나 딱 알아차렸다.

물론 그전에 피칠갑된 사특한 인형이며 껍질 벗긴 쥐 소동도 다 이 년이 한 소행이다.새 금침 장만한다며 솜을 들이는 수레

안에 저 주악살 방술친 인형을 숨겨 들어와 남몰래 달아놓았던 것이다.저도 이미 한통속이며 빠져나갈 길이 없음이다.

잠잠이 고개를 끄덕였다.여적까지 제년이 희란마님 시키는 대로 눈과 귀가 되어서 중전의 동정 살펴다 주고 받아쓴 금전이

얼마더냐?이제 싫다 하여도 할수 없는 일.게다가 지난번 인형 소동때 대난리가 날줄 알고 납작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었거늘.

의외로 잠잠함이라.이년 배포도 상당히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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