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렸다하는 공적이라.부덕의 절정이며 여인의 귀감이라 칭송받으신다.감히 부인하고 반발할 것이던가?
전하의 성총은 이미 오래전에 이왕지사 중전마마에게 고정된참이었다.하물며 이번은 중전마마 생명 던져 주상전하를 구하신
공적이라.대체 어떤사람이 감히 중전마마 향해 희란마마의 처지 가리며 변명하여 줄 것이냐?
간신히 정신 차린 전하께서 오늘 아침,진성대군께 혁이 놈 소문을 듣자오셨다.그놈을 양자 삼아 보의 잇자는 논의가 대청서
있었다는 말에 냅다 노염을 벌컥 터뜨리신다.심히 괘씸하고 불쾌하시다.짐이 그 이야기 다시 꺼내면은 역모로 다스린다하였거
늘 아직 그런 무리가 또 있단 말이오?하고 울컥울컥 노염질이다.옆에 계신 중전마마께 그대가 나가서 엄히 경고하오 하명하시
었다.중전마마,새파랗게 날이 선 눈초리로 딱하고 힘차게 서안을 내려쳤다.정안로 귀에는 너 이놈,정녕 네가 죽고잡으냐?
호령하는 일갈로 들리었다.
"이제 전하께서 회복하시니 정사는 걱정 마시고 일들이나 잘하시오.쓸데없는논의로 성상의 심기 어지럽히지 마시고요.이런
논의 다시 있으면 훗날 필시 피바람 장할 것이다!안즉 주상께서 연소하시고 정궁인 이 중전 어려 회임할 시일 많은데,감히
어디서 근본도 모르는 아이 올려 보위대통 잇자 주장하는가?지금역모하시오들? 그 주장 낸 입들 부대 목들 조심하오!"
다부지게 일갈하시었다.그말씀을 끝으로 중전마마께서 자리차고 나가 버리시었다.대전에 죄정한 조하 중신들 모다 한동안
꿀먹는 벙어리들이었다.
어질다,부드럽다,여리다소문난 분이었다.헌데 오늘 보자 하니 실은 발톱 감춘 암호랑이가 따로없다.중전마마 그 발톱 처음
으로 슬며시 드러내신 터인데 여간만 매섭고 날카로운것이 아니었다.좌위정,저절로 켕겨 뒷목을 만져 보는 참이었다.
영리하다 소문난 저분이 만약 독한 마음 품고 작정하여 제 딸년 상대로 칼을 빼 드신다 하면은......
그는 그저 다가올 앞날이 두렵고 무섭다.눈앞으로 시퍼런 칼날이 왔다갔다 하는것 같고 아리수 위에핏물이 벌겋게 흐르는
것 같아 눈을 꾹 감아버리고만 만다.
대전을 나오신 중전마마,회랑을 거쳐 우원전으로 돌아가며 홀로 빙긋이 웃고 있다.십년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가는 시원한
기분이었다.쌓이고 쌓인 한이 드디어 풀렸다.어찌 속이 뻥 뚫려지지 않으랴.
'이렇게 한번 돌려치고 강하게 눌러두면 되는게지.앞으로는 감히 그 저들 마음대로 예전마냥 정사 농단은 못할 것이며 방자
하고 간악한 계집을 대어놓고 비호하지는 못할 것이야.'
중전마마 슬며시 고개 돌려 돌아보는 족이 월성궁이 있는동남쪽이었다.
'내가 받은 그대로 십 배 백 배 네게 돌려줄 것이니라.전하는 이미 이 중전의 사내이시다.간교한 그물에 걸린 것을 부끄러워
하고 수치스러워하시는 분인줄 아는데,네가 아무리 수단 부린다고 하여도 전하 성총 다시 회복 될줄 아느냐?내가 우는 것이
가엾고 싫어서 저승에 가지 못한다 하신 분이시다.평생 이 몸만의 사내가 되시었다.너같은 천한 것에게 귀한 그분을 다시
빼앗길줄 아느냐?'
마치 월성궁 계집이 눈앞에 있듯이 속으로 치열하게 퍼붓는 말씀이 야무지고 당당하였다.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중전마마,이제
회란마마를 완전히 잘라 버리고야 말겠다고 단단히 결심하였다.
'이제 절대로 놓지 않으리라.일편단심 사모하고 은애하는 그분을 너 같은 천한 잉첩 따위에게 뺏기지 않을테다'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여린 중전마마,실은 속으로 타오르는 불이다.전하께 바치는 그 순결한 사모지정만큼이나 지아비 전하에
대한 독점욕이 무섭도록 자라가고 있었다.왕의 병환이 위급하실 적에 갖은 정성 다 쏟아 간호하면서 중전은 그에 대한 정이
더 깊어지고 살뜰하여졌다.
평상시 강건하고 당당하시던 때와는 달리 매사 허약하여지고 심약하여져 있었다.몸만 컸지 세 살 먹은 어린애라.아니나 다를
까?심지어 죽 드시는 것조차 입만 아~벌리고 능청맞게 누워 계신다.수저질까지 하여 입에 넣어드려야만 하였다.병환중이시니
마음까지 약하여지신 것이라 중전이 잠시라도 눈앞에 없으면 참지 못하였다.어디 갔느냐고,짐을 혼자 두지 말라 골을 내며
항시 찾아 보채시었다.어린애가 어미에게 하듯이 매사 어리광 피우고 보채는것이 웃음이 나올 정도이니 실로 전하께 중전만이
그리도 의지가 되고 귀하다 하는듯이 아니랴?
그 언젠가 간곡하게 고백하신 것처럼,중전은 왕에게 사랑하는 지어미이요,어린누이요,전부 다 내어주는 벗이요,잃어버린 생모
마마 대신이라.전하를 혼몽한 병마의 무의식에서 이끌고 나온 것은 중전마마 지극한 정성이었다.
진정 그리하여 왕은 그녀만의 사내.그녀만의 정인이 되시었다.
이세상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게 단단히 마음이 묶이었다.중전은 인제 그 누구에게도 사모하는 그분을 양보하지 않을 작정
이었다.비단치마 자락 살며시 여미고 우원전 마루에 올랐다.중전마마,영민한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돌렸다.여전히 시선은
동남쪽이었다.
'그 계집 단속은 이만하면 되었으니,인제 그어린놈을 어찌할까?두고두고 우환이라.상감마마 보위 위협하는 적수가아닌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되 중전마마 입술이 야무지게 앙다물어졌다.
=====제7장 일광(日光)========
상감마마 병중 이기느라 궐 안 사람들 전부 술렁술렁 둥당거리는 사이,길고 긴 복중 더위가 가시었다.칠월 칠석 지나 슬슬
선들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기 시작하였다.
중전마마의 지극정성으로 무사히 혹독한 마진귀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신 전하,고비이후 조섭 잘하시고 좋은 약제를 정성껏 써
서 환후 계속 다스리었다.한 열흘이 지나가자 용안이며 용체에 앉은 꽃딱지도 아물어 다 떨어지고 기력도 한결 회복되시었다.
하여 왕은 그날부터 금침에 기대어 임시방편으로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조하일을 보시기 시작하였다.
주상 당신이 아파 드러누었다하여도 일들이 없어진 것도 아니니 첩첩히 쌓인 조하 일들이 만 가지.너무 무리하신다 전의들이
만류하였으나 왕은 단호하게 뿌리쳤다.
"짐이 해야 할 일을 짐이 아니면 뉘가 대신하여 줄 것이냐?되었다 급한 것만 처리할 참이다."
깨어나신 후에 완전히 사람이 달라지신 것같이 조하 일을 열심이시다.전하의 그 모습 모아지며 삼정승 이하 중신들이 고두하
여 실로 전하께서 이토록 나랏일에 성심으로 암하시고 열정이시니 이 나라 홍복입니다.한 목청으로 칭송 하는구나.
마지막으로 왕은 두 숙부와 빙장이신 김익현을 알현하사 인사를 받고 사람들을 물렸다.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신 것이 아니어서 몇 사람 만나고 두루마리 몇 장 넘기시는 그 일도 힘에 겨웠다.왕은 잠시 어수를
이마에 대고 용안을 찡그렸다.
때맞추어 죽상이 들었다.또 올라온 죽 대접에 왕은 이맛살을 찌푸렸다.기미 상궁이 드옵사이다 몇 번이고 권하니 마지못해
수저를 드시었다.허나 맛나게 쑨 전복죽도 두어 수저,이내 숟가락을 탁 놓아버렸다.
"어지간히 회복이 되었는데 여전히 이리 희멀건한 죽물만 준다더냐?잘먹어야 회복이 빠르다 하는데 이깟 죽물 한 대접에 무
슨 기운이 날 것이냐?아니 먹을란다."
전의가 이르기를 안즉은 용체 회복이 덜 되었을 것이니 아무래도 죽이 니으리라 하였다 시키는대로 소주방에서 죽을 올리었
느데 인제 상감께서 못마땅하다 치받았다.아침만 하더라도 아무 말씀 없이 잘 드시더니 왜 이러시노?익숙한 심술기며 괜한
트집질에 배행한 엄 상궁,슬슬 주상께서 기운이 나시는고나 짐작하였다.허긴 자리보전하신 지 근 보름인데 날마다 죽만 드
셨으니 웬만한 사람도 어지간히 싫증이 날 듯하였다.
"허면은 밤서는 옳은 수라상 올릴 것입니다."
"그리하라.잘 먹어야 기운을 차리고 짐이 조하 일을 볼 것이 아니니.그보다 비께서는 어떠하니?인제좀 나아지셨더냐?"
"예,전하.많이 기운 차리셨나이다.워낙 심한 몸살이라 회복이 더디신 것이라 하옵니다만은 그래도 벌써 자리보전하신 것이
나흘째이니 이날서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신 듯하옵니다."
전하께서 정신을 차리시자 말자 이제 쓰러지신 분이 중전마마이시다.제대로 수라상도 아니 받으시고 밤낮으로 왕을 간병한
터였다.하물며 차가운 얼음물에 수시로 들어가 몸을 얼려 전하를 안아드리었으니 여린 옥체가 망가지지않으면은 그것이 이
상한 일이지.왕의 위급한 고비가 넘어가자 인제 왕비가 심한 몸살에 자리보전을 하고 말았다.
한없이 약하여진 상감께 고뿔이라도 옮기면은 아니 된다하여 전의들이 중전마마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막지 아니하였다 하여도 이 며칠 중전마마 많이 쇠약해진 터로 헛소리를 하시며 열이 펄펄 끓어넘쳐 전하를 뵈러올 힘이
없었다.그런 사정을 다 전하여 들으신 왕의 마음이야말로 찢어질 정도로 아프고 근심되고 심란하였다.왕은 엄 상궁을 바라
보며 울적하게 말씀하시었다.
"중전께서 그렇게 된것은 오직 짐 탓이로다.아무리 짐의 신열을 식혀준다 하여도 저가 그리 몸을 망가뜨리면은 어찌하라고?
너는 교태전 건너가서 짐을 뵈올 수있는지 여쭈어보아라.곤전의 옥안을 뵙지 못한 지가 벌써 여러날이니 짐이 무척 그립
구나."
엄 상궁이 뒷발걸음으로 나가고 왕은 장 내관을 손짓하였다.
"너 지금 월성궁 나가서 혁이 놈 궐로 안고 오너라."
"네에?"
뜻밖의 분부 말씀에 장 내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상감께서 병마에 시달릴때 왕자이니,다음 보위를 잇게 하라 공론하였던 아
이를 안고 궐로 들어오라니.이것 정말 후사를 걱정하시게 된 상감께서 혁을 왕자로 인정 하실참인가?늙은 내관,순간적으로
간이 철퍼덕 내려앉았다.
왕의 입고리가 힐죽 심술맞게 휘말려 올라갔다.
"짐이 정신이 오락가락한 사이 곤좀 시켜 보위대통 이어라 난리가 났다면서?아니그러하니?"
"....불측한 일이 그리 일어났나이다."
"짐이 다 들었단다?흠,왕자라?나가서 고놈 끌고 오너라.어디 한번 짐도 고놈이 참말 짐의 생자인지 살펴볼란다?고놈하는 꼴
이 진짜 그들 주장대로 왕자의 재목인지 살펴보아야 할것이 아니니."
꼬여진 말태가 심히 거칠었다.아이를 두고 곱다 하는게 아니라 깐죽깐죽 씹어가며 불쾌하다는 뜻을 역력하게 드러내시었다.
"중전은 어질어서 그아이 놈 데려다가 교육 제대로 시키어서 쓸 만하게 만들자 하였다만.짐이야 그놈 두고 떼거리로 결집
하여 보의 문제 들먹이는 것이 귀찮타!어디 한번 그놈 꼬라지나 제대로 보아보자.그리되면 꼴같잖은 인간들 흉중이 말짱
하게 드러나겠지."
방정맞게 나서서는 혁이 놈 왕자 올려라 하였던 월성궁 일파들!
아이쿠,일났다!
상감마마 병환중에 또다시 혁이 놈 올려 보위 대통 잇자는 논의가 나왔다는 기별 이후,인제 왕에게 혁이는 단순히 누이가
낳은 어린놈이 아니다.주상 당신의 보위를 위협하는 대적이 된 셈.궐 담 안에 데려나 놓고 애시당초 싹수 자를 팽계를 찾아
보겠다는 뜻이다.볼로로 잡아두고 희란마마 일파들 동정을 살펴어쩌하든 역모로 얽어맬 핑계를 잡겠단 뜻이 아닌가?아아,
잔인하심이여.왕 된 자의 심기여.
한편 중궁전.
오래도록 자리보전하시던 중전마마.그날 간신히 어느 정도 정신이 듭시었다.그리운 지아비께서 보잔다 하시니 억지로 자리에
서 일어나고 있었다.박 상궁더러 욕간 준비하여라 분부 하셨다.
"이런 꼴로는 전하를 못 뵈올 것이다.머리라도 감아야지.그보다 오늘이 며칠이더냐?자리보전하고 누운 지가 오래이니 날짜가
가는 것도 모른 터이야."
"칠월 초아흐레가 아닙니까?병환중이라 칠석 날을 그냥 지나치셨으니 어찌합니까요?"
"칠석이 별스러운 날인가?해마다 돌아오는 명절인걸.헌데 전하께서는 어떠하신고?기운이 다소 나신다 하오?"
"한결 힘이 나시어 금일부터는 중신들을 배알하시고 도승지가 가져온 장궤 두루마리도 펴신 줄 아옵니다.낮서는 죽사발을 다
비우시고 주반과 받으시어,오랜만에 즐기시는 별잡탕 한 그릇도 다 드셨다 하였습니다."
"실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야.전하께서 강건하심은 이 나라 사직이 바로 서는 것이 아니겠나.오래 앓으시고 기운이 없으신
터인데 그리 자꾸 듭시고 힘을 내셔야지.하지만 제발 무리는 마셔야 할 것인데.앓고 난뒤끝이라 잘못하면 다시 탈이 나실
것이야."
차비를 마친 박 상궁이 부액하여 중전마마 욕간을 모시었다.형편없이 초췌하신 터이나 어느새 볼이 도홧빛으로 물이 들고
온몸에서 향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하였다.박 상궁이 중전마마 고운 옥체를 정성껏 씻겨 드린 다음서 머리타래 조근조근
빗기어 어여머리 떨잠으로 단장하고 새 의대로 갈아입혀 드리었다.
연지분 단장 하시고 고운 의대 갖추어 입으시고 살며시 방문 나서는 중전마마 마습이여,박색이라 하여 하냥 전하께 능멸당하
고 아랫것들에게 비웃음 산 분이 이토록 고운 용색을 그 수수한 껍질에 숨기고 있을 줄이야 뉘가 알았을 것인가?나날이 피어
나기 고우신 염태로다!활홀한 내미지상 감추어진 아름다움이 드디어 꽃잎을 벌렸다.여인네들인 저들이 보아도 참으로 어여쁜
자태로구나.
우원전의 상감마마. 가슴 설레며 이제나저제나 고운 지어미 들어오기 기다리시누나.
어서오시오!함박웃음이시다.남눈 가리지 않고 두 팔을 활짝 벌리었다.중전 역시 그리운 지아비를 모처럼 뵈온 것이니 베싯
웃음 지었다.수줍음도 지엄한 체면도 다 잊고 작은 새처럼 포르르 날아가 든든한 님의 품에 담쑥 안겨 버렸다.
서로간 너무 좋아 어쩔줄 모르는 눈빛이 하나 되이 얽히었다.
배행한 아랫것들 눈치가 있으니 더 이상은 못하되 앙앙불락.저것들은 눈치가 없나?어서 빨리 안 나가노?마냥 급하고 안타까
운 왕은 얄미워서 미욱 부리는 상궁,나인들을 째려보았다.눈치를 챈 몽 상궁 이하 아랫것들이 슬밋 미소 지으며 방을 나가자
마자 기어코 덤벼들어 어여쁜 지어미 고운 입술맛을 물리도록 보고야마는 것이다
"짐 때문에 고뿔이 든 것이니 이번서는 짐이그대 병간호를 해야 할 참이야.얼음물에 들어가서 열을 식혀줄까?"
곱고 투명한 얼굴이 심한 몸살 뒤끝이라 초췌하고 창백하였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나아 보여 다소간 안심이다.싱긋 웃으며 중전마마 단아한 이마에 어수를 대고 열이 있나 없나 그것부터
확인하였다.그리고서 짓궂은 농담이다.큼큼 웃으시며 귓속말을 하였다.
"아니야.오한이 들어 덜덜 떨었다 하니 짐이 아랫목서 데굴데굴 굴러 열을 좀 낸 다음 그대를 덥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저 고뿔엔 땀 빼는 것이 최고인데,기가 막힌 비방이 하나 있어.그리하여 줄까?"
은근히 놀림하시는 말씀이다.중전마마,왕의 단단한 용안을 감히 쓰다듬으면서 그리웠던 정을 잠시 나누었다.함초롬이눈을
흘겼다.
"신첩이 고뿔로 고생하였거늘,보자마자 놀리시기부터 하시고?못살것이다.무슨 기막힌 처방이있다고 이러하실까요?"
"응,그대 처방하고 똑같은 게야.이번서는 짐이 알몸으로 안아주면 되는 것이야.교접하여 실컷 땀을 빼면은 웬만한 고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하니 우리가 한번 실험하여 보십시다."
천연덕스럽게 용안 하나 변치 않으시고 방탕한 말씀을 잘도하신다.중전은 그만 에구머니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피식 웃으며 왕이 두손으로 빨개진 중전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미루알처럼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눈빛에 출렁이는 정해가 마냥 달금금하고,한뿍 붉은 물로 드는 그리움이 겹겹이다.서로의 입술 사이로 넘어가는 타액을 향기
로운 감로인 양 삼키며 젊은 지존 두분 마마 그동안 첩첩하게 쌓인 갈증을 풀었다.아무리 어루만지고 입술 나누고 눈빛을
들여다보아도 그저 미진하고 아쉬운 이 마음이여!
윤 상궁더러 들은 우스개라,왕이 죽만 준다고트집 잡았다지.중전은 소반과 올려진 약차를 입에 대어드리며 화사하게 지아비를
놀림하였다.
"어린아이신가?음식상 앞에놓고 투정을 하시다니요!주상된 위엄이라 하나 없으시다 아랫것들이 흉을봅니다."
"짐이 이 강토 주인이거늘,먹새 하나 마음에 드는것을 받지 못한단 말이야?듣기 싫여,잔말 말고 복숭아나 주어."
순진한 중전.생긋 미소 지으며 상위의 천도 하나를 집어 들다.허나 응큼한 손이 냅다 저고리 사이로 불쑥 들어왔다.
"흥,뉘가 그 복숭아 달라 하였니?무르녹은 수밀도라 바로 요것이지.이것주오."
"아이고,전하!제발 마옵시오,아직 용체 회복이 덜 되시었는데 어찌 신첩 가까이 오시려 하시옵니까?절대로 아니되니 제발
마옵소서!"
민망하여 숨죽인 비명을 지르는 도톰한 입술이 막혀 버렸다.가슴 위에 얹힌 묵직한 힘을 토닥토닥 두들기고 가녀린 팔로
밀어내어 보지만은 굶주린 맹수같이 덤벼드는 지아비 그힘을 어디 이길수 있다더냐?기어코 비단 저고리 고름이 풀리고
말았는데.....
"그 복숭아 실로 장히 맛나다!흠흠흠,변함없이 향그럽고 달콤하거든.응?"
말간 양지옥 같은 안해의 속살위에서 마침내 왕이 고개를 들었다.꿀단지 차고앉아 내쳐 냠냠거린 곰처럼 배불러 트림이라도
하고픈 용안이다.적이 만족한 표정으로 허공 바라보며 실쭉웃었다.소반위 복숭아는 손 하나 대지 않았는데,거참 기이하구나!
장히 맛나다 하신 수밀도는 대체 무엇인고?크흠.
단물 뚝뚝 떨어지는 수밀도는 상감마마 ?이라쳐도, 앵돌아 앉은 중전마마는 매운 불고추만 드시었나?괜시리 고쳐 맨 옷고름
만 만지작 거리는 옥안이 마냥 화끈거린다.밤수라 올라올 적까지 두 분 마마,방안에서 무엇을 어찌하는지는 모르되 끈적달콤
열풍이라.장지문 바깥까지 무덥고 뜨겁다.왕대비전하께서 우원전에 듭신 것은 그때였다.주상께서 이제 죽상을 물리고 바른
수라상을 받으신다 하는 반가운 소식에 그분 젓수시는 것을 볼 것이면 용체가 어떠한지 알 것이다 하시면서 확인하러 오신
터이다.
"아이고,반가워라!주상께서 회복이 다되시어 이리 수라를 하시는구먼요.예,젓숩고 기운을 차리셔야 합니다.강건하셔야지요!
그래야 이 나라 사직이 바로 서고 만백성이 편안하게 되는것입니다.주상,부대 옥체를 보중하셔야 합니다."
"소손이 불민하와 할마마마께 괜한 심려를 끼져 드리었나이다.마진은 한 번 겪어내면 평생 아니 오는것이라 하였으니 인제는
근심을 마옵소서,소손이 기운을 차렸으니 다시는 할마마마 근심을 끼쳐 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왕대비마마, 다정하신 전하의 말씀에 눈물을 글썽이었다.성큼 전하의 어수를 잡아 토닥였다.
"암요,그러하셔야지요.그러하셔야 합니다.주상께서 환후 심하실 적에 이 할미 가슴이 꺼멓게 녹아버렸소이다.인제 다시는 이
할미에게 근심 끼치지 마시오,주상?"
왕대비 전하께서는 중전마마 작은 손도 잡아 올리었다.전하의 어수에 꼭 겹쳐 주신 후,함께 어루만지며 당부하시었다.
"인제 내가 주상을 오직 중전에게 부탁합니다.두 분의 연분은 하늘이 맺어준 것이에요.뉘도 갈라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중전이 만고의열녀라,제 몸 아끼지않고 우리 주상을 위하여 그리 지극정성을 바친 것이라 어찌 환후가 순조롭지 안을
것인가?이 할미는 두분께서 다정하사 화기 애애한 이 모습을 보니 여한이 없소이다.정말 감사하오,주상.그리고 중전!"
왕대비 전하의 어진 노안에 망극하게 눈물이 설풋 어리었다.상감께서 후사도 두지 못하고 아무 방비도 없이 사지를 넘나든
터라 노인의 속이 얼마나 상하고 대경하신 것이냐?언제나 엄하고 단정하신 할마마마께서 눈물을 보이시니 울컥 짠하였다.
"좋은날 어찌 옥루를 보이십니까?고정하옵소서,인제 소손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할마마마께서 항시 가르침 주신대로 성군이
될 것이며 아바마마 유훈을 명심하여 국태미안할 것입니다 .지켜보아 주시옵소서."
아름다워라,성군의 가상이여!믿음직하여라.씩씩한 장부의 호연지기여!왕대비전하,흐뭇한 눈물을 닦으며 좋은 웃음을 지으셨다
"예,그러하셔야지요.반드시 성군이 되셔야지요.그리하여야 이할미가 훗 날 저승가서 선대왕을 뵈올 면목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할미가 당장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는 것이에요."
"당장에 눈을 감으신다니요.어찌 그리 망극한 말씀을 하십니까?오래오래 만수무강하시어 짐과 비가 화락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셔야 하구요,또 곤전이 금세 원자 아기를 낳아드릴 것이니 품에 안으시고 어진 가르침을 주셔야지요.오직 한분,짐에게
남은 혈육이시니 마마께서 아니 계시면 짐은 쓸쓸하여 견딜 수가 없나이다."
왕은 몸가짐을 단정히 하여 낭랑한 목청으로 할마마마께 약조 하였다.
"엄하고 단정한 가르침은 오직 소손을 성군으로 만들자 하는 같은 사랑이었나이다.짐이 비로소 눈을 뜬 것입니다.할마마마
께 소손이 잘못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옵니다.짐이 일어나서 조하에 나갈 것이면 그 잘못된 모든것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허니 소손의 지난날 과실을 용서하여주십시오.할마마마 가르침 따라 반드시 만백성이 우러러 보는 성군이 될 것입니다.소손
이 지금껏 그저 주시시기만 한 할마마마 은혜를 갚아야지요."
하염없이 왕대비전하의 옥안에 눈물이 흘렀다.긴 세월 척이 져 콱 박혀 있던 얼음기둥이 마침내 녹아 빠졌다.전하께서
완전히 회복하시어 대전에 조하를 보시러 나가신 것은 팔월부터였다.오일참례시 만조백관의 하례를 받으시는데 편안하게 잘
쉬시고 조섭을 잘하신 후라 오히려 앓으시기 전보다 더 힘이 나시는 용안이다.
그동안 전하 일을 거의 못 보신 것이니 쌓인 일이 첩첩이다.그날서부터 삼경 까지 도통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신다.
헌데 왕께서 확연히 달라지시었다.그전서는 웬만하면 정승들 말이라면 그대로 처분하시고,조하 의견이 그러하다면은 당신의
심기에 딱 맞지는 않아도 들여다 보시지도 않고 옥새 눌러주시던 분이 아니냐.
돌아오신 지금은 그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깐깐하였다.두세 번이나 설명 하라 이러시고 조금이라도 의문이 나시면은 그냥
돌려 보내신다. 조목조목 따지고 들다가 어리바리 시원찮게 구는 것들이 있으면 냅다 그얼굴 위로 두루마리든 붓이든 연적
이든 집어 던져 버리었다.늘 하던 대로, 구태의언하게 방만하니 일들하고 그저 떼거리 모아 입만 맞추던 인간들은 실로 미칠
노릇이었다.들며 나며 내리시는 교서가 한짐인데 일이 치인 도승지도 죽어난다.
깊이 들으시고 생각에 잠기시어 무엇인가 판단하시는데,아침이면 백에 구십은 그사안 다시 불러 이것이 잘못되었다 저것이
잘못 되었다 호령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