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마 것 아니어요 무어."
"크흠.이리 큰 버선이라,중전 것은 아닐진대 짐 것도 아니라면 누구 주려 만들었니?"
당신 것이려니 기대하였다.아니라 하니 좋아라 기쁜마음이 피식 꺼졌다.
어린애 같은 투기이다.입이 만발은 튀어나온 상감마마.울컥 삐죽 골을 낸다. 중전이 살포시 눈을 흘겼다.바느질 바구니 깊이
든 버선을꺼내 어루 만지며 옆눈하여 종알거렸다.
"마마 것은 안즉 덜 되었단 말여요.벽사라,호랑이 수까정 놓아 만들어 드리려고 하는중이어요 뭐.내일 신겨 드리께.
요건 아니어요."
만발 튀어나왔던 왕의 입술이 저절로 쑥 들어갔다.당장 살아 움직일 듯,호랑이 머리가 수놓아진 비단버선.그저 마름질만
한 무명버선이 아니라 정성스럽고 더 정갈한 요것이 짐 것이라고?훗훗 웃음소리를내었다.중전이 치맛자락 안에 숨겼던
ㅓ버선을 다시 바구니 안에 넣었다.
"하면은 이건 뉘 것이야?사내 몫이 분명 하거늘."
대답 대신 중전이 고개를 돌렸다.왕도 중전의 시선을 따라갔다.하루 열두시진 내내 주상을 호위하는 정일성과 윤재관
두 무장이 나지막한 담벼락 바깥 별채 마루에 돌아 앉아 있었다.나가 쉬거라 하는 하명없으니 땡볕에 벌거니 익은 얼굴을
하고 축 늘어져 있다.
"저이들 주려고?"
"항시 고생하여서요.마마 뫼시고 허구한 날 땡볕에다 빗줄기에 눈보라 가리지 않고 성심이잖아요.의대는 지어주지 못하나
버선이나마 한켤레 말라주려고요.그러면 저이들이 전하께 더 충심이 되겠지요?"
"여하튼 어여븐 심덕이로고!그대는 어찌 이리 남 사정도 잘 가려주고 차분차분 사정도 잘 보아주는것이냐?
짐은 참말로 어진 어처를 얻었거든."
민망하고 수줍어 하는 빛을 감추지 못하는 중전 얼굴을 바라보며 전하.가슴이 버근하였다.작디작은 하나마저도 어질고 고운
지어미가 마냥 고맙고도 어여쁘다.실로 비단결 같이 곱디고운 심성이며 부덕이 높은 사람이라.짐이 그저 중전 한 사람은
기가 막힌 이로 골랐거든?이러니 짐이 어찌 사모하고 아끼지 않을것이더냐?
말없는 가운데 오가는 눈빛.정해는 출렁이고 마음은 두근거린다. 미적미적 다가가는왕의 손에 함뿍 잡힌 작은손.
나누는 온기따라 한 가지로 묶인 마음은 더욱더 깊어지고....나란히 마루끝에 앉아 내려다 보는 송양부중의 정취는
그윽하기만 하다.
번잡하고 급한일은 대강 끝이났다.남은 이틀동안은 왕실 식구들은 강물에 배를 띄우고 선유락도 하시고 물리도록 온천욕도
하시며 한가로이 보냈다.그리고 행궁을 떠날 시간이 돌아왔다.
아침 일찍 상감마마 일행은 환궁하기 위하여 차비를 서둘렀다.
왕대비전하와 중전이 내전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며 왕은 대전인 유여택에서 마지막 순서로 지방 수령들의 하례를 받고자
좌정한 터였다.긴 인사가 끝이 나고 송양 부윤이 전하를 알현하고자 끝물들이 들었다.
지존께서 떠나시는 참이다 .일가 친척 다 모여 마지막 하직인사를 드러러 왔다.
두어 달포 중전을 뫼시고 소임을 다하였으며 청백리로 이름난 관리라.상감마마 용안에 미소를 띠고 알현하사 좋이큰 칭찬
하시었다.
"부윤 너가 일을 잘하고 염직하다 이미 칭찬이 잦았다.짐이 보자하니 부중의 살림 윤택하고 기름지니 흡족하다.다 부윤이
일을 규모있게 처리한 덕분이겠지.조만간 도성으로 올리리라.짐의 이뜻을 알고 견마지로하라."
"성은이 망극하나이다.전하."
부윤의 등 뒤에 부복한 늙은 아비.그옆에 두어돌박이 아들이 따라왔다.
앙증맞게 어른들 하는 모양대로 고개를조아려 절을하였다.
사규삼에 복건 쓰고 엉덩이를 한껏 하늘로 치켜든 채 고사리 손모으고 절하는 고 모양새가 심히 귀여운지라.왕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팔을벌렸다.
"어,고놈!귀엽기도 하구나.이리오너라 한번 안아보자꾸나."
아이고.망극하여라.어른들 같으면 사양하고 뒤 물러설 것이나,철없는 어린애인지라 팔을 벌려 웃어주는 어른을 향하여 아장
아장 걸어왔다.황공하셔라.왕은 아이를 번쩍 안아 허공중으로 한번 던져 받아주었다.
"호,요놈.똥집 한번 장하도다. 요것도 인연이라,절 값 주련다.금돈 한푼 주어야겠다."
상감마마.모처럼 아기의 귀여움에 흠뻑 젖었다.줌치 끌러 아기손에 번쩍번쩍 빛나는 금돈 한 푼 쥐어주시었다.
몇번이고 방긋방긋 웃으며 절하는 아기 볼에 다시 한번 용안을 대이시고 얼러주시었다.
허나 이러지 말으셔야 하였거늘!
안즉은 표가 나지 않되 그아기 어젯밤서부터 마진에 걸려 골골한터였다. 마진은 한번 걸리면 평생 아니 걸리되 안즉 아니
하신 분은 반드시 옮아서 앓게 되는 것이다.
보령 스물셋.늠름하고 장성한 사내이신 상감마마.문제는 어린날 한 번도 앓지를 않았다.
어린 아기들이 한 번은 다 하는 그마진조차 아니하신 터이다. 이것 심히 걱정이구나.
====제6장 병마(炳魔)========
지존께서 도성으로 환도를 하신것은 유월 열이레 날이었다.
도중에 재성 들러 무과 실험 부시었고,중전마마 특별한 청으로 전하의 생모 희빈마마 유택인 제헌원에도 들렀다.
그런 고로 예정보다 사흘이 늦어 성덕궁 듭시었다.
근 석 달 만에 돌아오신 교태전.허나 알뜰한 주인 닮아 바지런하고 착한 중궁전 나인들이 얼마나 쓸고 닦고 가꾸었는지
반들반들.반짝반짝. 그동안 비웠던 티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중전마마 손때 묻은 기물세간 일일이 쓰다듬어 보시고 말없이 중궁을 지킨 충직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미소지으며 치하
하였다.
중전도 그러하나.교태전에 중전이 돌아와 내전을 채우시거니 싶으니 우원전의 왕 역시 마음이 그득하고 그저 좋기만 하였다.
창희궁의 왕대비마마 역시 즐거우시다. 환궁하신 인사를 드리러 입궐한 진성대군과 효성군 앞에 앉히고 만족하여 말씀하셨다
"주상이 온천행을 한 보람이 있나니.송양서 단 한시도 떨어져 있지를 않는 것이야.글쎄 뱃놀이를 하는데 한시도 손을 잡고
놓지를 못하시더군!허허허,이제 주상과 중전은 절대로 멀어질 일이 없을 것이네."
밤에 중전마마,오랜만에 보아지는 사친과 함께 내전서 수라를 받으시었다.앞에 앉은 김익현 또한 마냥 기쁘고 행복하다.
가례 이후 처음뵙는 모습이었다.그늘 한점 없이 즐겁고도 행복한 중전마마 옥안앞에서 늙은 아비는 가슴이 그득하였다.
말씀하지 않으면 모를 것이더냐?마침내 주상전하와 더불어아름다운 정해를 회복하시어 정분이 첩첩하여진 증명이로다.
이제 내가 죽어도 여한이없고 근심이 없다 홀로 생각하여 벙긋이 미소 짓는다.
그런 사친의 모습을 보아하며 중전 역시 웃음빛이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 거서이라 두분 마마 후원 서경당으로 피서를 나가셨다.옥류천 시원한 게곡에 내려가서 세족도
하시고 담가 놓은 수박도 쪼개어 드시는구나.
누루에서는 중전마마와 상감마마 정분 진진하고,기둥 아래서는 번을 서는 내금위 젊은 무장들과 생각시,나인들의 오가는
웃음,눈직이 장하고.....여하튼둥 좋구나!
이슬처럼 청량한 밤이 내렸다. 서경당 누마루에 앉아 부채를 부치면서 아랫것들이 피운 모깃불을 바라보고 있는데.
저 먼 하늘에서도 별똥별이 하얀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여름 치레이니 중전은 지아비 전하께 정갈한 모시 의대 한벌을 곱게 말라 드리었다. 귀한 의대 선물을 받은 전하께서는
답례로 사람 키만한 얼음 인형을 보내주시었다.궐에 들어와 이런 호사는 처음이다.
삼복더위에 한 조각 먹기도 힘든 얼음덩이로 만든 인형을 선사 받은것이니 고맙기도 하지만은 너무 과분하였다,
한동안 바라보고만 있으시다 갑자기 서두르신다.
"이것을 쪼개어 수박을 썰고 사탕 넣어 화채를 만들어라,전하께서 보내주신것이지만 얼음은 녹는 것이니 빨리 치워야
쓸모가 있을게야. 궐 안팎 지키는 내외금부 군졸들에게 한바가지씩 나누어 줄것이야! 더운 철에 궐 안 방비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을터이니?"
서둘러 그얼음 인형을 깨어 화채를 만들라 하시었다.동이동이 그득하게 담아 외청으로 내어갔다.
상감마마,중전마마 덕분에 군졸들이 시원하게 호사를 하였다.하는 말씀을 전하여 들었다.여하튼 알뜰하고 남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이거든 싶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섭섭하다.짐짓 짐이준 선물을 냉큼 먹어버렸어야?하고 화를 내시는 척하였다.
유두절 즈음하여 더위가 장하니 그날은 조하 중신들에게 골고루 빙고의 얼음표를 나누어 주고 시절 과일들과 부채 하나씩
그리고,노신들에게는 제호탕이며 경고환 같은 약제 한첩씩 하사하신 터이다.
도성 사대문 앞에는 큰 국솥을 수십 걸어놓고 황구수백여 마리를 잡아 국을 끓였다,
도성 안 노인들과 기민들에게 보신탕 한 그릇씩을 대접하라 하명하셨다.전국 각도마다 하교가 내려간 일이다.실로 어질고
따스하신 처분이었다.
"짐이 반성하노라.작년 대가뭄 중에 철없이 연락을 즐기고 물놀이 다녀온 과실이 있거니.이날서는 그러한 부끄러움을 다소
씻기 위함이다,더운 철에 든든히 방비하여 앞으로 있을 혹서를 대비함과 동시에 이어질 농사일에 대비하여 체력을 비축케
함이니 신민들은 짐의 뜻을 헤아려 주기를 바라노라!"
이런 망극하고도 황감한 교서를 내리시었으며,또한 그비용을 전부 다 내수사에서 따로 내려 보내시었다. 참으로 만백성의
어버이시라!전하께서 백성 사정 가리시고 헤아리심이 이토록 어지시도다.
좌의정 정안로 이하 벽파 신료들이 보기 좋게 한 방 먹은셈이다.
주상 당신이 물놀이 다녀온 일을 스스로 과실이라 하시니 그잔치 먼저 나서서 가옵사이다 한 저들의 꼴이 무엇이 되랴?
정안로,솔선수범하는 척 개장국 끓이는 도성 문 앞에 나가 지켜보는 시늉을 하여 보지만은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아무래도 내가 운이 다한 듯하니 미리 물러나 근신하며 훗날을 도모하여야 하는것은 아닐까'
정안로,주상전하 만만세를 외치며 뜨건 국그릇 안고 가는 노인들을 멀거니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였다.
이제 주상 전하,말 그래도 보령 스물셋 보위에 오른 지도 어느덧 열두 해이다.장성한 사내가 되셨고 십여 년 주상 자리
감당하며 보고 들으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이제는 신료들이 어떤문제를 올려 받쳐도 당신 혼자 감당하고 판단
하시며 하명하시는 것이 사리에 맞고 당당 하셨다.
방탕한 양 싶어도 학문에는 열심이었다.
깐깐한 시강학사들만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학문을 익히는데도 적극적이었다.
산림에 묻혀 실학인지 사학인지 기우뚱,새로운 기풍을 연구하는 정호 이익이니 수홍 남은이니 하는 학자들까지 불러들여라
하셨다.정안로 이하 벽파들 일이라면 쌍수 짚고 나서서 반대부터하는 그 반골 들을 턱하니 성균관 진감으로 앉혀놓고 스승
이라 이리 칭하며 불러들여 학문을 배우신다.
망극하여라.적서차별 지엄한데 지존께서 먼저 나서 불한당 서얼출신,허랑방탕 이나라 저나라 싸돌아다니며 해괴한 학문을
배우고 기묘한 물건에나 손대기 좋아하는 젊은 거사들까지 불러들인다.
명목은 상감마마 개인 서재인 선왕재의 서관으로 쓴다하지만은 그런 이들이 슬금슬금 조하에 발을 들이다니..
저가 무어라 한마디 하자마자 힐끗 노려보고는 숨돌릴 틈도 없이 딱 부러지게 무안을 주었다.
"성호선생이나 수봉 선생이 연구하시는 학문을 일러 실학이라 이리합디다.국태민안 하자하는 실용적인 학문이니 이것
참 좋은 것 아니오?만날 책상다리하고 앉아 성이 무엇이요.경이 무엇이요.하고 공이공론 좌층우돌하고 있으면 배가
부릅니까?그들이 주장하는바대로 당장에 백성들 입에 들어가는 곡식을 키으는 법이나 튼튼한 수레를 만드는 법이나 단단한
성?을 쌓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오. 군주가 앞장서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튼튼하게 하는 학문을 익히지 않고 외면
한다면은 뉘가 나서서 그일을 할 것이오?좌상도 이제 그실학이라 하는것을 좀 배워 보시오?"
정안로,원망스런 눈초리로 거뭇거뭇 솟아오른 성덕궁 기와지붕을 바라보았다
중전마마 뫼시어 내려가 성심으로 보살펴 드린것은 어찌 인정 안 하여 주시나. 풀리그는 커녕 더 꼬여만 가는 상감마마
트집질을 도무지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멀거니 차일 아래 앉아 멍하니 한숨을 쉬고 또 쉬고 있다.성총 딱 떨어진 이후
월성궁 희란마마 사정이야 더할 것이고.
그렇게 심란한 사람도 있느느가 하면은 그저 정답고 행복한분도 있다.알콩달콩 아리달금. 한참 정분 돋아 좋아죽는 두분
지존마마.주변의 공기까지 무덥고 향기롭다.
화문석 깔린 서경당 누마루에 목침 베고 누우시어 별이 떨어지던 것을 보고 계시던 전하,부채질하여 드리는 중전마마 손을
붙잡고 다정하게 말씀하시었따.
"낼모레로 며칠.사가로 피접 나갔다 오실테야?얼음표 나누어 주는날이니 문득 부원군이 생각나더군."
야리한 속살 비치는 생모시 속잠삼에 속치마 입으신중전마마,지아비께 부채질을 하여주고 있었다. 아이고,고마우셔라.
전하께서 갑자기 하시는 말씀이 참말 즐거운 분부였다. 얌전하고 조용하던 중전도 저절로 흥분이 되었다.
"마마,마마!그말씀이 참이십니까?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실로 신첩이 바라옵기 오직 그것 하나였으니 너무 황읍하여 말이
아니 나올 지경입니다!"
"아,보내 드린다니까요!짐이 어찌 비에게 허언하리오?윤허할 것이니 나가시어 사친 뫼시고 몇날 지내다 오시구려.하지만
약조하오?짐이 오시오 하는날에 금세 환궁하셔야 합니다?"
"암만요!여부가 있겠나이까?신첩이 어디를 가리오.도망간다 하여도 마마의 천하 안이옵니다.신첩은 전하의 안곁이거늘,딱
달라붙어 평생 살것이라 작정하였나이다."
"흥,누가 도망가게 내버려둔다나?요 방정맞은 입이 벌을 받아야 할것이다."
껄껄 웃으시며 상감마마.중전의 팔을 잡아당겨 가슴 안에 눌렀다.짐짓 입술을 물어뜯어 놓겠다 협박하였다.
웃음기 반,열정이반.서로를 ㄷ글여다 보며 별같은 눈동자 속에 담긴 뜨거운 사모지정을 다시 한번 맹세하는데 초롱한 하늘
위로 별하나가 길게 선을 그으며 또다시 멀리 떨어진다.
무엇을 어찌하고 계신지는 모르나 두분마마,그 다음날 아침해가 돋았는데도 침전 문을 아니 여신다.
속닥속닥 무어라 말씀하시는 소리며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기는 하는데 아랫것들을 찾지 않으시니 들어갈 수가 있나
말이다.몇 번이고 지밀 상궁이 발을 동동 굴렀다.무리죽을 올립니다,탕약 올립니다.하여도 그만두어라 하시었다.몇 번째나
고변하자 겨우 방문이 반쯤 열리었따.장 내관을 찾으시는 전하,날이 그토록 밝은데 아직도 여전히 날가슴 그대로이시다.
"상궁 불러 비의 몸단장 준비를 하여라.허고 짐도 욕간을 할것이니 차비하여라.허고 상선 너는 도승지를 불러오렴.짐이 하명
할것이 있느니라.금일 짐이 다소 몸이 미령하다.조참 아니할것이다 대전에 그리 알려라."
달달달 당신 하고 잡은 말씀만 하시고는 다시 문을 탁 닫았다.
장 내과,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중문을 나섰다.말씀으로야 용체 미령하다 하시지만 그것이 핑계임을 누가 모를까?
중전마마곁에서 떨어지기 싫으니 저리 돌려치어 아픈 몸 핑계를 대시는 것이지.
전갈을 받은 도승지 황이가 서경당으로 나왔다.
옥체 미령하시어 조하를 작파한다 하였다.도승지,감히 용안을 우러르니 이날 참으로 창백하신것 같아 근심되었다.
고두하고 아뢰었다."전하,옥체가 많이 편찮으시면은 탕제를 올릴 것입니다.많이 편찮으십니까?
"이미 마셨소,복중 더위라 의디를 다소간 소홀히 하였기로 복중 고뿔이 가볍게 든듯하오,지금서는 훨씬 나으니 별것 아니오.
명일에는 조하에 예전대로 나갈것이니 너무 근심하지 마오."
사이문 하나두고 곁방에 앉으신 중전마마.은근히 혼자볼을 붉히었다.주상꺼ㅔ서 복중 고뿔이 드셨다 함은 거짓이 아니었다.
밤 내내 두분마마.하나 가림없는 알몸으로 별의별 치대.온갖 희롱 다 부린 끝에 날가슴 그대로 지쳐 엉켜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서늘함에 눈을 뜨신 주상전하 새벽에 다소간 쌀쌀하니 이마에 열이 오른다,탈이 약간났다 하였다.허나 품속에
향기나는 아릿다운 여체가 담쑥 안겨 있으니 새삼 불끈 돋는 욕정이라.
짐이 아니 참을 것이야!기어코 동트는 새벽참에 아랫것들이 수런거리거나 말거나 중전마마 고 귀여운 옥체 다시 타고 오르
시는구나.욱일하는 기세가 성난 맹수를 비할 건가.약간은 앙탈하다가 중전도 차마 달려드는 지아비를 밀어내지 못한것이다.
다시 한 번 부끄럼도 잊고 늠름하고 강건하며 기막히게 능하신 지아비 품에서 꿀물을 실컷 맛보았다.
물리도록 즐기시고 파정한 연후에 무척 곤하다.중전마마 안고 땀 밴 용체 그대로 다시 잠이 드신터다.
그러더니 다시 깨신 이아침에 재치기를 몇 번 하였다.
곤전 때문에 짐이 탈이 났다 하시며 강건하신 분이 딱 드러누워 엄살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기가 막힐 정도였다.
오늘서는 조하 아니 나갈 것이야.깡고집이다.중전과 함께 게으름 피우련다 하시더니 심지어 조수라 상 앞에서는 중전 때문에
짐이 약해진것이니 입에 넣어주어,요런 민망한 어리광까지조르시었다.
'예전에 할마마마께서 말씀하시기를,전하께서는 덩치만 컸지 만날 어린애라 하더니 그말이 딱 맞도다. 아이고,우세스러워라.
도승지가 얼마나 우스울까?분명 전하께서 직접 부채질하여 정성껏 다린 약차이다.괜히 아픈 척 이마에 손을 대보는 지아비
에게 살짝 눈 흘겼다.
"실로 신첩이 창피하여요.이 복중에 고뿔이라니 도승지께서 어찌 생각 하였을까? 애고,아무렇지도 않은데 또 이리하신다?"
"정말 아퍼!꾀병 아니야.짐 말을 어찌 못믿는 것이야?허고 짐이 도승지한테 무엇을 어찌하였다고 옆구리를 비틀어 고집는
것이니?흥,그보다 이뜨거운 복중에 짐더러 이 펄펄 끓는것을 마시라고?아예 짐을 튀여 죽이소,응?"
전하,달콤한 약차 대접을 마치 소태라도 되는 듯이 불퉁하게 노려보며 팅얼거렸다.격하고 급한성정이니 왕은 뜨거운 것을
도통 잘 젓숩지 못하는 버릇이 있었다.중전은 살살 달래었다.
"이열치열이라 하였나이다.쓴 탕제보다 달콤한 약차가 더 나을 것이니 남기지 마시고 다 드시옵소서.퇴란서 신첩이 팔이
빠져라 손수 다린 것을 잘 아시면서?"
사모하는 지어미가 정성껏 다린 차라 하니 거절도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마지 못해 왕은 대접을 들고 후후 불며 억지로
뜨거운 약차를 다 마셨다.그렇게 하루 잘 즐기시고 두분 마마.다시 또 교태전으로 돌아오시었다.
헌제 그 밤에 상감마마,은근히 옥체에 돋은 미열이 가라앉지 않음을 느끼었다.묵지근한 뒷골도 아침보다 더 땅기는 듯하였
고 가라앉는 듯하던 오한이 밤 되니 다시 돋았다.유난히 입이 마르고 선뜻한 기운이 골수에 침입한 듯하였다.
허나 섣부르게 말을 하였다가 온 아랫것들이며 중전 까지 놀라 난리가 날것이다 싶어 왕은 자신만 알고 입을 봉하였다.
지존의 귀한 옥체라 골치 아프다 한마디만 하여도 온 궐이 뒤집어지는 것이 귀찮았다.
하물며 내일로 하거를 할 것이다 부풀어 들떠 있는 중전의 얼굴을 보며 차마 말을 못하리라 싶었다.
다소간 미령하오,하면은 안사람이어찌 아픈 지아비를 두고 나갈 것이냐?제가 먼저 아니 나갈 것입니다,할 사람인줄 알고
있으니 모처럼 즐거워하는 고운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않았던 것이다.
기침한번 잘못하여도 전의감들이 약 대접 들고 왔다갔다.진맥한답시고 난리를 피우던 터가 하도 번잡스러우니 왕은 금세
가라앉겠지 하며 덮어버리었다.워낙 강건하신 분이니중전을 내보낸 그 다음날은 무관들과 함께 격구를 하시고 냉수욕까지
하였다.그러나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미열이 전하께 맞이하신 마진의 이른 기미였다.
마진은 원래 세 이레에서 한달여 숨어 있다가 비로소 발작을 시작하는 터다.송양부윤의 어린 아들을 안으시며 그 고약한
병증이 왕의 용체에 옮아온 것이다. 그저 짐이 여름 고뿔이 단단히 들었구먼 이리만 생각하고 무심코 넘기시는데,
아!앞일이 걱정이구나.
그렇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중전마마께 하거하여 나가신 나흘만의 일이다.
주상전하께서 석강을 마치고 대전에서 나오시다가 그만 자리에 쓰러져 혼절을 하시고 만 것이다!
며칠동안 계속 미열이 가라앉지 않고 기침이 간간이 나시며 다소간 어지럽다 하시었다. 허나 당신이 무심하게 넘기어서
전의감들도 다만 전하께 여름 고뿔이 드셨다 이리만 알았다.
헌데 그것이 큰 잘못이었다. 무서운 마진이 마침내 발작을 시작한 것이다. 삽시간에 펄펄 열이 끓어오르고 온 용체며
용안에 붉은 반점이 돋기 시작하였다.눈에도 진물이 흘러 굳어 눈을 못뜨시고 마냥 정신이 혼미하여 앞에 앉은 사람
얼굴도 못 알아보실 정도가 되고 말았다.
그밤으로 하여 손도 못 댈 만큼 환후가 악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