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야심하옵니다, 우원전으로 모실 것입니다."
왕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삐죽 원망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몽 상궁 너도 참 무정타.중전께서 피접 나가실 참이라 오래도록 뵙지 못할 참인데 지금부터 떨어져 지내란 말이니?
중전 곁에 기수 배설하여라. 허고 상선 있느냐?"
"예.전하."
"공조에 나가서 중전마마 타고 가실 수레가 제대로 차비 끝났는지 알아보렴. 불편함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아니 될 것이야.
옥체 섬약하신 분이다. 매사 조심함이라. 너 다시 나가서 확인하여라."
박 상궁이 중전의 머리를 내려 곱게 빗어주었다.
양치와 소세를 끝낸 구정물이 나인에 들려 나가고, 금침 펴는 선이가 들어왔다.
중전은 고개를 들었다.
"전하께서는?"
"중전마마 곁에다가 기수 배설하라 하명하시었습니다."
"지존께서 좁은 곳에 어찌 주무신다고...."
그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이 문을 손수 열고 들어왔다.
중궁 아랫것들이 서둘러 금침을 배설하고 황황히 뒷발길로 문을 나갔다.
마지막으로 김 상궁이 문 앞에 병풍을 치고 물러났다.
"곤치 않소? 오늘은 수라를 잘하시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니 짐이 반갑고 고맙구려."
"석수라를 잘하셨는지요.중궁의 소주방이 그럭저럭 그만합니다."
"아,짐은 중궁의 맛을 좋아하오이다. 비가 인제 피접 나가시면 짐이 이 맛을 오래도록 못 볼 참이니 섭섭하구려."
먼저 왕이 금침 자락을 걷었다.
주무시기를 재촉하였다.
"몸조심하오, 주무십시다. 산보 오래 하셧다 하니 곤하실 것이오."
"....명일 참례있으신 터로 우원전에서 침수하시지.예서 일찌 감치 나가시려면은 힘드실 것입니다. 게다가 이방은
협소하여 마마가 편치 않을까 저어합니다."
한 무릎 돌아앉아 욧깃의 주름을 펴며 중전이 자그마한 소리로 속삭였다.
"어차피 교자 타고 가는 길인걸, 한식경 더 빨리 짐을 때워라 하명하였소이다. 좁기는? 짐에게는 만장같이 넓은 방이야.
불편하지 않소. 중전과 함께인걸. 짐은 중전옆이면은 칼잠을 자도 좋더라. 어디든지 그대 곁이 짐의 자리야. 짐은
그리 알고 사오."
그녀 곁이 왕 자신의 자리라. 중전의 입가에 스르르 아픈 미소가 그러지다 말았다.
조금만 더 일찍 그런 말씀을 말해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랬다면 무정한 마마의 마음을 바라 신첩이 내내 아파하지는 않았을 것을. 알콩달콩 정분이어 행복하였을 것을.
우리 아기도 잃지 않았을것을.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하여도 늦다 하였던가.
중전의 침묵이 마음에 쓰인 듯 왕이 약간은 초조한음성으로 덧붙였다.
"참말 짐은 그리 생각 하고 사오.응? 중전께서 어데를 가시든지 그대곁이 짐의 마음자리야. 허니 중전도 짐을
그리 묻어주오.
짐이 그대의 집이니. 피접 나가시지만은 이내 돌아오시오?응? 짐이 중전 옥체 생각하여 온천으로 보내드리되
꼭 돌아오시오?응?"
왕의 눈빛이 간절하다 못해아프기까지 하였다.
왕비의 두 손을 겹쳐 잡아 자신의 가슴 쪽, 심장이 두근거리는 바로 그자리에 가져다 대었다.
중전의 시선이 방바닥으로 적막하게 떨어졌다.
도망치듯이 그의 시선을 외면하는 왕비를 바라보는 왕의 표정. 강렬한괴로룸이요. 자책만이 그늘처럼 깔렸다.
"짐의 마음 몰라주는 그대를 원망하지는 않아.허긴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거니. 자업자득. 짐은 스스로를 미워할 뿐이야.
귀하고 소중하며 고운 그대. 하찮게 대하고 아낄줄 모르고 능멸한 이가 바로 짐이므로. 짐은 평생 이런 벌릉 받아야
하겠지?"
내내 대답이 없다, 다만 두려워하고 슬픈눈빛을 하고 펄럭이는 촛불만 바라보고 있을뿐.
왕은왕비의 쓸쓸한 옆얼굴만 바라보고있고.
"허긴 짐은 벌을 받아야 해. 당연한걸."
왕은 항상 그에게 무정하고 멀기만 한 어린 왕비를 바라다보며 자조하듯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평상시 왕답지 않은 목소리가 한없이 처연하고 쓸쓸하였다.
"곱고 어진 그대. 지금껏 능멸하고 가슴 아프게 한 죄를 받아야해. 짐을 그저 싫다 하는이. 희망도 없이 홀로 사모하는
벌이라. 대체 언제야 짐은 이 유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애초부터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체념부터 하는 왕의 말에 중전의 눈에서 문득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촛불 아래 희디흰 목덜미가 서럽도록 가녀리다. 주저주저 고개를 든 중전이 가만히 속삭였다.
"오직 하나 마음대로 되지 못하는 것이 신첩의 마음일진대 마마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부덕한 신첩을 탓함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천첩은 대역모도한 죄인이옵니다. 다만 허수아비이며 전하의 우세만 되는 어리석은
계집일 것인데 이 못난 것을 어찌 전하께서는 귀하다 하시며 지극하게 보아주십니까?
하해 같은 성은은 입자와 중궁전에 앉은 터이나 도통 신첩이 전하께 즐거움도. 보람도 드리지 못한 터이옵니다.
헌데 모자라고 못나기만 한 신첩을 두고 전하께서 이리 망극한 말씀을 하시니 어찌 황읍하지 않으리요?
허나 이미 신첩의 마음이 얼어붙어 도무지 움직이지 않으니 어찌할 것입니까?"
침묵한 채 중전의 말을 듣고만 있는 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열이 반인 중전의 말이 그의 귀에는 단호한 거절로 느껴졌다.
신첩은 마마를 이미 버린것이니 저를 놓아줍시오. 평생 가야 당신을 돌아보지 않을것이오!그리도 저를 아프게 하고
모멸하신 분이 새삼스레 어찌 이리하시는고?하는 원망으로 들리었다.
중전의 그 눈물 속에는 한번 기회가 닿으면 신첩은 다시 목을 맬 것이오!하는 그런뜻이 들어 있다 여기었다.
가슴이 서늘하게 식어내리었다.
"싫어!"
왕은 세차게 소리지르며 품 안의 여인을 힘주어 꽉 글어 안았다.
억센 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품안의 사람이 스르르 안개처럼 사라질 것만 같은 절박함이었다.
"제발 짐에게 그리 차가운 말일랑 하지 마오. 다 줄 것이야. 소원일랑 다 이루어주께..응? 허니 이러지 마오! 짐은
절대로 그대를 잃지 않을 것이야."
어느새 자존심 같은 것은 다버렸다.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어보지 않았던 왕이 지금 어린 지어미에게 자신을 버리지 말라 애원을 하고 있는 참이었다.
참자 하였다.
덤덤하게 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말을 하다 보니 저절로 격앙되었다.
왕은 통곡처럼 소리쳤다.
"신물이 나!짐 곁에 계시던 사모하던 분들이 모다 짐을 버리고 떠나 버리는 것이 이젠 정말 싫소이다! 슬프고 힘들어,
짐역시도 죽도록 외롭고 쓸쓸하다구요!중전은 어찌 그것을 몰라주시오? 짐도 무정하여 하냥 기다리고 바라는 짐의
마음을 외면하는가?"
새어 들어 달빛 아래 하얗게 빛나는 눈물이 왕의 볼을 비되어 적시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중전은 떨리는 손으로 왕의 굵은 눈물을 닦아주고있었다.,
그녀를 마냥 아프게 하고 스스로 목을 매게까지 만든분인데. 가엾은 태중 아기씨를 잃게 만들고 갈기 갈기 속을
찢어지게 만든 분인데.... 더없이 미운데. 원망 하는데 왜 그녀의 가슴이 베이도록 아플까? 저절로 눈물이 날까?
이런 자신이 어린왕비는 이상하다.
하지만 손길과 마음은 따로 노는것. 몇번이고 명번이고 중전은 지금껏 보지 못하였던 지아비 사무친 외로움과 괴로움을.
아뜩한 고독을 지워주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힘으로 밀려 하여도 열리지 않던 문이 단 한번의 부드러운 손길로 열리기도 한다.
그처럼 오직 진실뿐인 왕의 고백이 깊은 진심이 꽁꽁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 중전의 차가운 빙심을 두터운 문을
열고 말았다.
망극한 용루의 힘이었다.
왕이 중전의 손을 잡아 당신의 젖은 볼에 가져다 댔다,
바라보는 눈빛이 더없이 간절하고 진정이었다.
"짐이 전에 그대에게 한말은 다 거짓이고 억지였어. 짐은 속에 있는말을 잘 못해. 해보지 않아서 말을 못해.
짐이 겉으로 그대를 모질게 구박주고 퉁명스레 억지 부린 것은., 그거은.... 비뚤어진 투기거니 사모할 자격도 없는
지아비지만은 어어어, 그, 그러나 어진 그대가 한 번 고개들어 짐을 보아주고 사모하여 주기 바란 억지였거늘...
짐의 이마음도 모르고, 보아주지도 않고 .... 허구한 날 궐 밖으로 나간다는 말만 하고...고개 들어 한 번도 짐을
보아주지 않던 그대가 이 무너진 속을 어찌 알 것인가?"
실로 처음이다. 전하께서 비로소 깊은 속내와 진심을 드러내시었는데 놀랍고도 가슴 아팠다.
중전에게 하신 당신의 그 모진 구박, 주롱이며 심술 전부가 다 자존심 강한 전하의 삐뚤어진 고백이었다니!
어느새 후드득 굵은 눈물이 용안을 적시고 목을 타고 흘렀다.
목이 메어 차마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면서도 왕은 수줍고 미안하여 꼭꼭 숨겨 두었던 속을 마침내 슬밋 드러내고야 말았다.
"짐은 중전, 이렇게 옆에 있어도 그대가그리워. 사무치게 그리워. 짐을 외면하는 그대를 보고 있으면 쓸쓸하나.
잠시라도 보지 않으면은 가슴이 에일 정도로 보고 자아 마음을 가눌 수 없어. 병이지. 골수까지 침입한 병.
언제면 짐은 이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백약이 무효라.그대는 짐의 이런 심사를 조금도 모르겠지?"
아아, 망극하여라. 단 한 번도 굽혀지지 않았던 왕의 무릎이 난생처음 굽혀졌다.
왕은 엄숙하게 간절하게 어린 왕비에게 약조하였다.
두손을 잡고 건청하였다.
"이렇게 무릎 꿇고 부탁할께. 웃지 않아도 좋으니 우지만 말고.응? 세월이 흘러가면 이내 옥체도 편안하여 지실 터이고
아기씨도 다시 생길 게야.그러면 우리도 이렁저렁 부부지간답게 살 수 있을게야. 짐이 발아여보께.
열심히 하여 성군 되려고 노력해 보께. 고이고이 소중하게 아낄 터이니 비가 어진 마음으로 한 번만 짐을 더 용서하고
보아주소. 인제부텀 짐이 참말 잘할 참이야.응?"
물기 젖어 축축한 그늘.그럼에도 진실로 빛나는 눈동자가 중전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낱낱이 진심이었다.
사모한다 간절한 고백이었다.거짓없는 단심이었다.
왕이 살며시 중전의 손을 잡아 뜨거운 입술을 비볐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도한 껍질 속에 깊이 감춘 바닥의 진실을
말짱하게 드러냈다.얼마나 왕비를 소중하게 사모하고 은애하는지 마침내 가림없이 고백하였다,
"그대가 짐의 유일한 마음곁이거든. 심장의주인이거든.인제야 말을 할 참이니....그대는 짐에게 어마마마 대신이야.
지어미이고. 어린 누이이고, 벗이고, 또 오직 한 분 사모하는 여인이야.잠이 이 마음을 부대 외면하지 마오.중전.
짐은 늘 이 자리에 서서 그대를 기대리니. 그대의 돌아올 집은 짐이야, 그것만은 잊지 말아주오."
송소 서훌고라 떨어진 송양 행군
빗줄기 아래 몸이 젖는 초목의 푸른 향기는 더 진하고 함초롬이 피어난 온갖 기화요초는 물방울을 여린 잎에 맺히며
서로 다투어 아름다운 용색을 뽐내고 있다.
우주 안개가 저 멀리 산허리를 둘러 지나치고 우장을 뒤집어쓴 농부들이 논에 나가 물꼬를 터주기 바쁘다.
강가에 우뚝 선 월탄정이 내려다 보이는 강가에서는 한가하게 나낏대를 드리운 오닝들이 두서넛.그야말로 그림처럼
한가하고 적요한 날이다.
"참으로 고마운 비가 오십니다. 곡식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비라 할 것이니 감로라. 훗호호,이런 날은 풋고추나
쫑쫑 썰어 넣고 밀전병이나, 하여 드시는 것이 딱 맞춤이 아니겠는지요?"
찻상을 들고 윤 상궁이 벙싯 웃으며 정자를 올라온다.
중전은 수선스런 말에 설풋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돌렸다.
"비가 오니 이곳 풍경이 더 운치가 있구먼. 그렇지 아니하여도 은덕이가 입이 심심하다 종알 거리는 것을 들었다네."
정자 기둥 아래서 조잘 조잘 수다를 떨어대는 어린 나인들.
빙긋 웃는 웃음 한마디로 흘리며중전은 향기로운 차를 마신다.
"비가오니 날은 한적하고 이런 날 마시는 차의 맛이 유난히 향기롭구먼, 전하께서도 풍류를 아시는 분이니 필시 비
오는 이런 날에는 먼저 차 한 잔 주어 청하실 것이다. 보잘것없는 솜씨이되 정성껏 받쳐 드리면 참 좋다 하시며
음미 하실 것인데"
문득 혼잣말 같은 중전의 말에 윤 상궁이 후덕하게 미소 지으며 고두하였다,
"아마 전하께서도 중전마마 생각을 하시면서 지금쯤 차 한 잔을 드시고 계실 것입니다,마마. 하물며 이 차 단지도
전하께서 직접 봉을 하시어 보내 주신것이 아닙니까? 돌 단지에 들어 있는 차를 우려내니 얼마나 향기로운지
말입니다. 저 십 리 바깥에서 이불을 개다가 선이 년도 뛰어와 차를 끓이십니까요. 묻더라니까요?"
"성상의 은덕이 스며 있어 차 맛이 각별하구먼.이곳의 물이 좋은 덕분일 게야. 전하의 은혜를 무상으로 입고사는
내가 내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이곳에 와 있는것이 부끄럽기 그지없네."
왕비는 자신도 모르게 남들 앞에서 왕에 대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 되어 다소는 얼굴을 붉힌다.
점잖게 얼버무리는 말이 법도에 맞되 그속에 들어 있는것은 여인으로서 지아비 전하를 그리워 하는 연모의 정임에랴.
왕비가 송양 해궁으로 내려온 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다.
정월 스무 날 깨에 내려온 것이니 단오가 지난 지금까지 치자면 꽉 채운 넉 달이다.
심신 모두가 괴롭고 쇠약해진 지어미를 멀리 떼어보내 놓고는 주상 당신의 그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고 허전하였을까?
중전이 행궁에 내려온 이래로 왕은 사흘이 멀다 하고 먼 길을 아랑곳 않고서 전령을 내려 보내었따.
핑계는 중전마마께 하사하시는 공물을 가져오는 것이되 직접 너가 가서 중전의 옥체가 얼마나 회복이 되었는지
보고 오라 채근하는 뜻이었다.
내려 보내는 공물이래야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향기로운 차단지, 혹은 중전마마께서 수놓으실 적에 써라 하듯이 고운 색실들이거나 잠자리 날개처럼 삽삽한 모시필
같은것이다.
때때로 서책도 보내셨다.
당신의 서재에서 직접 고르신 듯 욱재라 하는 주상의 자가 적혀진 책이 대부분이다.
한 번은 명국 사신들 편에 들어온 것이라 하며 좋은향도 한 근 보내셨다.
지난달에는 오뉴월 삼복더위가 오는 고로 비단 부채도 보내주셧다,당신의 그린 난초그림 아래 어제시가 그려진
귀한 부채이다.
작지만 귀한 것들이었다.
모다 중전마마께서 좋아 하시고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당신의 체취가 담긴 정다운 물건들이었다. 하시때때 이렇게 그대를 생각하오 하는뜻이 담긴 따뜻한 선물이었다.
차를 보내신 그때에는 차단지 외에도 어찰까지 보내셨다.
당신의 활달한 기상이그대로 드러난 듯 예기가 가득 찬 필체로 친히 쓰신 서찰이었다.
곤전께서 궐을 떠난 지 이미 넉 달이라, 밤마다 전전반측.교태전이 너무 넓소이다. 부대 육체를 보전하사훗날
다시 뵈올 그날을 기다리오, 짐도 비를 생각하여 차를 마실 것입니다,
짤막한 글이되 그뜻은 깊었다,
무뚝뚝하고 도도하신 분이니 대놓고 보고 싶다 그말씀은 차마 쓰지 못하셨다.
그러나 전전반측 하신다는 그 한마디로 당신의 심중을 슬며시 드러내시었다.
그대를 그리워하며 보내는 이 밤이 너무 적막하고 외롭소이다,참으로 그립구려하는 속내였다,
우원전 침전이 너무 넓다는 그 구절 또한 무슨뜻이랴?
그대가아니 계시니 너무 허전하고 쓸쓸하오,깊이감춘 심중이 외로움을 나타내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중전은 왕이 보내준 연록빛향기로운 차의 향기를 음미하며 그향기만큼 진한 그리움과 행복감으로 가슴이 사무친다
'아아. 그분은 나를 사모하신다. 진정으로 나를 사모하신다.'
"신첩을 사모하시는지요?"
그는 무엇이라말하였던가?원망이 가득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왕이다.
"아직도 몰랐소.?"
너무 사모하여서, 자신을 잃어버릴 만큼 그렇게 깊이깊이 사모하여서,여린 몸에 상처를 내고 이로 물어뜯어 자국을
남기던 그마음을 아직도 몰라주오,
이렇게라도 하면 그대는 짐을 미워할 것이되 기억하기는 할 것이다 여기던 그 마음을 아직도 몰라주오?그런얼굴.
사랑받지 못하는 소박데기라는 자격지심은 길고 질겼다.
하여 그분이 허구한 날 보내는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오직 전하께서는 나를 못마땅하게여기어 능욕을 하시는구나. 혹은 오직 하나 원자를 얻기 위한 도구로써 이몸을
거두시는구나 싶은 절망이었다.그리하여 그에게 깊은 진정을 줄 수가 없었다. 차디찬 육신만으로.
시신마냥 누워 그의 손길을 견뎌냈을뿐이다.
그런 그녀앞에서 왕 또한 얼마나 더 참혹하고 절망스러웠을까?
그대만은 짐을 버리지 마오, 제발 짐을 버리지 마오,하고 애원하던 모습에서 비로소 알게 된 지아비의 진심이었다.
해일처럼 밀려들던 기쁨과 슬픔.혹은 안타까움과 행복함.
도도하고 자존심이 강한터이며 또한 짐은 왕이다 하는 자의식이 남달리 강한 분이시다.
태교 부리며 유혹하는 계집들이 흩뿌리는 방향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으시다.
월성궁 계집이 먼저 내비추어 유혹한 육락의 애욕 앞에 무너져서 미혹한 채 한 시절을 보내시기는 하였지만
주는 것보다는 그저 받는것에만 익숙하였던 분이시다.
진심을 준 사랑 앞에서만은 서투르고 섬약한 분이셨다.
그 진실한 마음을 전부 중전에게 주었으니 언제나 그녀앞에서 왕은 격렬하고 뜨거웠던 것이다.
외사랑에 빠진 사람은 늘 서투르고 수줍어 지는 법
짐이 중전에게 말하여다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앞선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당신의 그 마음을 차마 털어놓지
못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