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1/200)

피다.,

간신히 눈을 뜬 중전마마 하염없이 울고만 계신다.

사직의 대통을 이어갈 귀한 아기씨 태중에 담은 몸을 하고,어리석어 하여서는 아니 될 모질고  경망스런 짓을 하였다.

금쪽 같은 아기씨를 잃게 되었으니 어찌하니.내가 참말 큰 죄인이니라.

주상전하 귀한 핏줄 이은 아기를 죽게 한 어미가 살기를 바라는 것이 민망한 일인게지 하며 그때부터 곡기를 끊어버린것이다.

온 궐이 난리가 나고 주상께서조차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오직 간특한 짓 저지른 선이 이년만 혼자 즐거워하고 

있구나.사람 여럿 상하게 하고 지엄하신 국모마마 명줄을 간당간당하게 만든 악독한 짓 저질러 놓고도 모질기 한량없어라.

선이 이년,뒷배 보아주는 희란마마에게 묵직한 황금 주머니 까지 받았으니 참으로  희희 낙락하고 있구나.

'이러저러하다가 중전 미음 그릇에 비상이라도 타버리면 누가 알 것이냐?제년 몸 약하여 죽은 줄 알지.그렇게만 된다면 다시

이 나라는 큰마마 치마폭 아래다.흥.'

살그머니 선이 년이 사라지고,텅 빈 중궁전 하늘 위 불길한 까마귀가 캬르르 카옥카옥 울부짖으며 날아간다.

그로부터 사흘이 더 지났다.

여전히 중전마마께서 곡기를 끊으시기 계속이다.죽기를 자청하고 고집을 부리시니 온 궐에 또다시 대 난리가 벌어졌다.

중전마마 충격받으시니 가까이 가지말라 하였지만 궁금하고 근심되어서 미칠 지경이라,왕은 그날낮에도 정사 보다가 눈치보아

슬며시 중궁에  듭시었다.왕대비마마와 부원군,그리고 대군댁 대부인 마님이며 명온공주마마까지 모다 입궐하여 제발 한저분

이라도 듭시오,간청하는 것을 가만히 문 바깥에 서서 귀 기울여 들었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아마 중전은 아침처럼 고집스럽게 등을 돌리고 석상처럼 누워 있기만 할 뿐인 모양이다.

서온돌에 한 발을  들이밀던 전하,가슴이 철러덩 내려앉았다.

아침에 본 사람인데 이 몇 시진 상관으로 한결 더 야위고 초췌하여진 듯하였기 때문이다.

겨울 마른나뭇가지처럼 야위어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금세 죽어질 사자의 형국으로 누워 있었다.

그만 딱 속이 뒤집혀졌다.왕대비전하께서도 병인을 근심하사 이  며칠 내내 좌불안석,수라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신다는 망극 

고변 마저 들었다.살살 달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이대로 놓아두면 참말 중전을 다시 잃어버릴 참이라,격하고 급한 왕의 

성질머리에 대면 참기도 참 많이 참았다.

"어른들께서는 다들 나가십시오.중전께서 이렇게 곡기를 끊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바로 짐에 대한 원망이라.이는 짐이 해결한

문제인 듯합니다."

마치 싸움이라도 걸듯이 모다 몰아냈다.

중전 머리맡에 좌정하였다.그러나 기운이 없으니 중전은 전하께서 듭시었다 하여도 미동도 없이 그저 등을 보인채 누워 있기

만 하였다.왕은 주먹을 움켜쥐고 버럭 고함질렀다.

"당장  일어나시오!"

상감께서 분기탱천하여 고함을 꽥 지르니 마지못해 중전은 일어나 앉으려 한다.

윤 상궁이 왕비의 가녀린 몸을 부액하여 앉혀 드리었다.팔걸이를 곁에 놓아드리자 간신히 몸을 가누어 앉는 시늉을 하였다.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초췌한 얼굴이다.만지면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날것같이 온몸에 온기며 물기 하나도 없다.

왜이리 신첩을 귀찮게 하십니까?고개를 숙인 채 바닥만 응시하는 중전의 눈빛은 원망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왕은 가련한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작정 미음상을 들여라 버럭 고함을 쳤다.

소주방 나인이 달달 떨며 미음상을 가져다 놓았다.

왕은 수저를 들어 중전의 손에 쥐어드리는 윤 상궁더러도 나가라 하였다.

"짐이 드시게 할 것이다.나가라!"

윤 상궁마저 나가 버리고 이제는 방 안에 두 사람뿐이다.

왕은 중전의 손에서 홱 수저를 나꿔챘다.미음을 듬뿍 떠서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 있는 그녀의 입 앞에 들이

밀었다.

"드시오,어서 드시오!안드시면 짐이 상을 엎어 버릴 게다!"

정색을 하고 호령질을 하였다.

한번 한다 하면 기어코 하고야 마는 버릇을 누구보다 잘 아는 중전인지라 하는 수 없이 입을 벌렸다.

한입. 또 한 입.그것두 두어 저분이 한계라 더 이상 못하옵니다.하고 왕비는 사정을 하였다.

그러나 왕은 막무가내 미음을 듬뿍 뜬 숟가락을 또다시 들이 밀었다.

"싫어도 드시오,드셔야 살 것이 아니오?죽을 결심이 아닌 다음에야 젓수셔야 한다 이말이오.뉘를 피 말려 죽일 일이 있소?

대체 그대가 무어관대 온 궐 사람들을 다 동동거리게 하는 것이오?할마마마께서 무슨 죄가 있다고 날이면 날마다 수라도 못

하시게 이러는 것이오?드시오,더 드시오!이 그릇을 다 비울때까지 다 드시라 이 말이오!"

억지도 어느 정도다.

지금껏 물도 제대로 마시지 않은 사람에게 아무리 미음이라 한들 한꺼번에 밀어 넣으니 욕지기가 아니 날수가 없었다.

진저리를 치며 억지로 받아먹다가 마침내 입을 막으며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

더 이상은 힘들리라.

먹어라 끝까지 강요할 수 없었기에 왕은 미음 숟가락을 내렸다.

야윈 얼굴에 눈만 퀭하고 검은 그늘이 서린 볼에 눈물이 기어코 한줄기 흘렀다.

허리를 꺾고 괴로워 하다가 그대로 치맛자락 위에 삼켰던 미음을 다 토해내고야 만다.허리를 접고 각혈하듯이 괴로워 몸부림

치는 가련한 모습에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는지는 오직 천하에서 왕 자신만이 알 뿐이다.

그러나 왕은 구역질하는 왕비의 모습에 동정을 표현하기는 커녕 버럭 노화를 내며 들고 있던 수저를 내동댕이쳐 버렸다.

아무리 간청하고 권유하여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녀의 독한 고집에 질러 버렸다.

도무지 방법이 없다 싶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너무 무력하다 느낀다.

하물며 왕비가 이렇게 쇠약해져 사지를 넘나드는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죄책감과 미안함이 더욱 큰 노여움과 짜증으로 변하고 있었다.

"좋소!그렇게 죽기가 소원인 사람.마음대로 하셔야지요!비가 드시든 아니 드시든 짐은 인제 상관도 아니할 테요.그러니 

마음대로 하오!"

흥분하여 울그락불그락하는 용안을 중전의 큰 눈이 괴로움의 눈물을 가득히 담고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제발 신첩을 그냥 놓아 두십시오.

더 이상 신첩을 몰아붙이지 마십시오.

사정하는 표정..

야위고 창백한 모습에 이미 억장이 반은 뒤집혀진 터로 그 눈물에 가슴이 더 미어터진다.

왕은 한 무릎 더 다가앉아 마른 풀꽃처럼 스러져 가기만 하는 어린 몸을 끌어안고야 말았다. 

왕은 생기라고는 하나 없고 꼬챙이처럼 마른 왕비의 몸을 차마 꼭 안을 수조차 없다 여긴다.자신이 좀 더 강하게 죄면 그대로

부셔져 내릴 것만 같아 무서웠다.

그렇게 작고 가엾은 사람.

아아,짐이 어찌하여야만 이사람이 기운을 되찾고 삶의 의욕을 다시 찾을 수가 있을까?

"제발 이러지 마오,중전.잊어버립시다.그대와 짐이 아무리 애통해하고 바란다 한들 이미 잃어버린 아기씨를 어찌하겠소?

빨리 옥체를 회복하여 다시금 아기를 잉태할 생각을 하셔야지.응?인제는 그만하오,중전.응?제발 곡기를 입에 대어보시오.

드셔야 옥체가 회복되시고 아기씨도 다시 가질 것이 아니오?제발 무엇이든 좀 드셔보시오!"

".....들자 하여도.....목이 꽉 막히고,칼날을 삼키는 듯 쓰라리어.........넘어가지를 않사옵니다.신첩도......노력하지만

.......넘어가지를 않는 것이니 어찌하리요.마마,제발 더 이상 소첩을 재촉하지 말아주소서.괴로워서.......더 아니 넘어갑

니다."

힘없는 중전의 대답은 그러하였다.이렇게잠시 앉아 있는것도 힘든 것인지 야윈 이마 위로 송알송알 진땀이 맺히고 있었다.

지그시 이를 악물며 곧 스러질 듯한 야윈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왕은 더 모질게 엄한 화를 내었다.

"허나 조금이라도 드실 엄두는 내셔야 하는것이 아니오?도통 그렇게 딱 곡기를 끊으시니 어찌 속이 받아들일 것인가?이날서

짐이 말하건대,부부지간은 일심동체라 하였소이다.중전이 이렇게 식음을 전폐하고 아니 드시면 짐도 따라서 굶을 것이오!

그대가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것은 결국 짐을 원망함이라.짐은 이 노릇이 짐더러 따져 묻는 시위라 보여지오.그래요.짐 또한

그대에게 지은 죄가 많으니 따라 굶어 죽어서 이 망극한 죄를 씻겠소이다.마음대로 하오!짐은 이제 더이상 사정하지 않을 

것이오."

"전,전하.어이 그런 망극한 말씀을 하옵시는지요?제발 무서운 말씀은 거두어주옵소서.주상께서 어찌 못난 이 몸으로 인하여

곡기를 끊으실 것입니까?신......... 첩이 도모지 ...........미음이 넘기지 못하는것은,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그런것도 

아니옵고.....하물며 전하에 대한 원망 때문도 아니옵니다........그저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신첩도......

사직의 정궁이라,그 지엄한 책무를 다하여 함을 잘 알고 있나이다.허나 노력하여도 넘길 수가 없음이라.....제발 더 이상

......신첩을 궁지에 몰아넣지 말아주소서."

끊어질 듯 이어질 듯,큰 눈에 가득히 눈물을 담고 간신히 말을 잇는 중전에게 왕은 다시금 벌컥 골을 부렸다.

"그대가 더 이상 삶에 애착이 없으니 그렇게 되는것이 아니오?그대가 어미로 아기씨를 잃은 것이 애통하듯이 짐도 그 아이의

아비거늘!핏줄을 잃은 마음이야 똑같으니 짐 역시 분하고 참담하거늘!허니 글로 쓸데없이 고집 피우지 마소! 중전은 일어나야

하겠다는 강한 뜻이 없으니 이러는 것이오."

쌀쌀맞게 내뱉는 말이 사실은 창자가 끊어지는 쓰디쓴 아픔이요,슬픔이었다.

왕의 눈꼬리가 위로 사정없이 치켜 올라갔다.

"마음대로 하되,한가지만 알아두오!중전이 죽어지면 짐이 어떤 짓을 할지 몰라.사직의 어미로서 책무도 다하지 못하고 스스로

죽어진다 함은 도저히 있을수 없는 괘씸한 일이라.그대를 기른 사친을 불충으로 목을 벨 것이며 또한 중정전 아랫것들 역시

비의 옥체을 잘 보필하지 못한 터라 전부 참할 것이오!이미 그대의 몸을 잘 살피지 못한 죄목으로 박상궁과 중궁전 전의들이

모다 옥에 들어가 있으니,그대가 만약 잘못되면 그 인간들 모다 능지처참에 삼족을 멸하여 버릴 것이다."

중전의 하얀 얼굴이 너무도 잔인하고 섬뜩한 말에 새파랗게 변하였다.

왕은 한 손을 들어 중전의 얼굴을 어루만진다.손길은 부드럽되 눈빛은 써늘하고 더없이 냉혹하였다.

"명심하소,비의 이 한 목숨에 수십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고 있음을!그리 못할 줄 아오?짐은 이미 광인이오!짐 때문에 그대와

우리 아기씨 목숨이 경각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이미 맨 정신이길 포기하였소!오직 그대가 살아야 이 미친 피바람을 잠재울

수 있음이랴.그대가 만약 짐 곁에서 떠난다 할 것이면 짐은........."

그의 억센 손이 아래로 내려와 중전의여린 목줄을 지그시 눌렀다.

정색을 한 무서운 눈빛이었다.절대로 농담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짐 안전의 모든 인간들 목줄을 이렇게 눌러 버릴 것이야!"

서온돌을 박차고 나오는 왕의 미간에는 퍼런 심줄이 서 있었다.

가엾을손,중궁이 또 한번 난리가 났다.

상감마마께서는 무슨 말을 어찌하였기에 이러하신 것인가?중전마마께서 혼절하여 쓰러져 계시는 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윤 상궁은 끌끌 혀를 차며 그저 원망스럽게 상감마마의 등을 바라보며 눈만 흘기고 있다.

그날 저녁.우원전.

대전마마 앞에 밤수라가 올랐는데 일별도 아니하시었다.단한마디..물려라!하셨다.

처음에는 다들 예사로 생각하였다.

중전마마께서 계속 곡기를 끊으시사 쇠약해지시니 몹시 심기가 상하시어 상감마마께서도 한끼 내치나 보다 이렇게만 생각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그 다음날 조수라도 역시 손도 아니 대신다.

그 일이 하루를 넘어가자 아연동동 온 궐 안팎이 뒤집혀지고 말았다.

세상 만고에 없는 변란이 일어났다!주상께서 수라상을 내치다니.

옥체의 안위를 어찌 다스리시려고 저리하시나.아이고,아이고.이 일을 대체 어쩌나.

상감께서 수라를 아니하시는데 아랫것들이 감히 밥술을 뜰수가 없다.

곤혹스러운 삼정승 육조판서 죄다 베옷 차림을 하고 대전 앞에 엎드려 곤욕을 치르는 소동까지 일어나고야 말았다.

제발 수라를 받기를 간청하였으나 도통 묵묵부답.일별도 아니하시고 교서 두루마리만 넘기신다.

그일이 사흘로 접어들자,인제는 참으로 궐내 분위기가 흉흉망극 해지고 말았다.

기함할 기별을 받으신 황대비전하와 진성대군 효성군께서 내달아 대전으로 듭시었다.

대전께 수라상을 받기를 간청하였다.허나 소용없었다.어려운 분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내내 하답이 없으신다.

진성대군의 속상하고 노하여 아이고,인제 이 숙부도 모르겠소.

상감마마 맘대로 하시오,하고 위목에 휙 돌아앉았다.왕대비전하 역시 불안하고 불편하여 눈물만 뚝뚝 흘리신다.

구구절절 속 아픈 넋두리를 하시었다.

"안팎으로 이 노인 속을 아주 뒤집으시오?부창부수,답답하고 고집 세기가 어찌 그리 똑같으시오?아이고.사직에 드디어 망조

가 들었구랴.방탕하여 국고 탕진한 임금은 여럿 보았으되 쌀알 아까워 굶어 흥한다는 임금을 인제 드디어 보겠소이다.

이 늙은이가 무엇 좋은 꼴 보려고 이리 오래 살아 상감이 저분질 끊는 망극한 꼴까정 보고 살아야 하노.흑흑흑."

대전의 이런 소동이 중전마마 귀에 들어간 것은 그날 오후였다.

놀라 몸을 일으키는 중전의 작은 얼굴이 덮고 있는 이불깃처럼 새하얗다.참말이오?하고 묻는 목소리가 두려움에 떨렸다.

왕이 그런말을 하였을때 중전은 솔직히 설마 그러시려구 하였다.

심기 몹시 상하시어 한번 해본 헛된 말에 불과하다 무심코 넘겼다.

?지 못하였다.헌데 정말 상감마마께서 사흘거리로 수라상에 손하나 아니 대시었다 하니 이럴수가 없다.

화들짝 놀라 모깃소리만 하게 윤 상궁에게 확인하였다.

"대체 대전께서....왜 수라상을 내치신다는 게야?아랫것들이 어찌 모시기에 그러하시오?"

"쇤네가 어찌 아옵니까?그러하시니 그런줄 아옵지요.중전마마께서 곡기 입에 아니 대시면 따라서 굶는다 하셨다면서요?그래서

그런가 봅니다."

속도 상하고 두렵고 안타까웠다.

대전께서 저분질을 아니하시니 지금 내쳐 아랫것들도 전부 따라 굶는 참이라.궐 안 사람들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이 소동의 끝은 오직 중전마마 처분에 달렸나이다.무언으로 아뢰는 윤 상궁의 눈빛을 외면하며 중전은 가만히 고개를 떨어

뜨렸다.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은 채 일단 한다면 하고야 마는 못된 그 성질 머리가 기어코 터진 모양이다.

그날의 용안,불꽃 튀는 왕의 눈빛을 가만히 떠올렸다.

억지가 반인 노여움의 껍질 속에 담긴 슬픔.좌절감과 도무지 어찌 할수없는 무력한 울분이 가득 스미어 있었다.

중전이 스스로를 자해하고 아기를 잃었다는 그 대목에서 이미 자신은 옳은 사람 되기를 포기하였다고 짐도 이제 이판사판으로

가겠다 자포자기하는 목청이었지.

그대가 어미로 아기를 잃었듯이 짐도 아비거늘!핏줄을 잃어버린 슬픔은 그대와 짐도 똑 같거니!고함을 치던 그마음.

아마도 사실임에랴.스스로의 모진 죄로 그리되었다 자책하는 그마음은 나보다 수천배 더 애끓고 단장의 참담함이시겠지.

중전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들어 말없이 간청하는 윤상궁 이하 중궁의 아랫사람들을 힘없이 바라보았다.

아침에 듭신 왕대비마마께서도 근심걱정으로 수라상을 내쳐 받지 않으셨다 하였지.

부원군이신 사친 역시 따님이 곡기를 잇기 전에는 물 한 모금 아니하신다 고집 부리신다는 전갈도 들었다.

내가 어찌해야 하나?이일을 어이하나.

참으로 기분같아서는 아무것도 입에 대고 싶지 않았다.

딱 이대로 죽고 싶었지만,그렇다고 지존을 굶게 하는 불충은 저지를  수 없었다.

왕대비전하와 사친을 따라 굶겨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슬픈 얼굴로 마지못하여 중전은 미약한 목청으로 속삭였다.

"어떻게 지존께서 곡기를 끊으신단 말인가?윤 상궁, 내 먹을 것일세.먹어볼것이니 자네는 대전에 나가 수라상을 올리게."

"제 눈앞에서 드십시오.감히 상감마마께서 거짓을 고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강단있는 상감마마께서 이렇게 중전마마 고집을 마침내 꺾으시누나.속으로 좋아라하면서도 윤 상궁이 엄포를 놓았다.

냉큼 나인이 마음상을 들어 중전마마 앞에 놓았다.

윤 상궁의 재촉에 중전마마.마지못하여 은저분 들어 미음 몇 술을 입에 흘려 넣었다.그리고 다시 윤 상궁을 재촉하였다.

"중궁에서...수라상 장만하여 모시게.자네가 가서...전하께서 젓수시는 것을 반드시 보고 오게.꼭 다 젓수시는지 확인하여야

하네."

중전의 하명에 인제 되었다 웃음기를 머금은 윤 상궁이 편전으로 나아갔다.

붉은 궁보 씌운 상을 머리에 인 나인 내관 거느리고 삼정승 육조관속 다 엎드린 사이를 조심조심 지나쳐 석계로 올랐다.

"상감마마,중궁전 상궁 들었나이다."

"무엇이냐?"

"전하,대전께서 수라상을 내친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 듣잡고 중전마마께서 아연 놀라시어 상을 보내셨나이다."

문 안에서는 하답이 없으시다.

윤 상궁은 왕이 다음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목청을 더 높여 싱긋 웃음기마저 머금고 큰소리로 아뢰었다.

"기뻐해 주십시오.금일 중전마마께서 미음을 젓수셨나이다.소인이 그릇을 다 비우시는 것을 확인하고 나왔습니다."

"오오,그것이 참이냐?들라!"

반가운 옥음이 새어 나왔다.

"참말이니?비가 수라하시었니?"

윗목의 잔성대군 효성군마마,왕대비전하께서도 반가워 바라보고 계시다.

전하께서 즐겁고 들뜬 목청으로 묻자오시었다.윤 상궁은 절하고 아뢰었다.

"예.어전에 어찌 감히 거짓을 아뢰리까?미음 젓수시고 전의가 올리는 탕제도 비우셨나이다.인제부텀은 강잉하게 수라를 

하리라 하셨습니다.대전의 소식을 듣자와 대경하시었습니다.제발 수라를 합시오.간곡히 부탁하셨나이다."

왕이 벙싯 웃었다.득의양양.그럼 그렇지!너가 이기니 내가 이기니?짐의 고집에 감히 댈려고?짐의 계교가 참으로 기발하였거

든?다시 한 번 씩 웃으신다.안심하였다는 용안이시다.

"어,그럼그럼.짐도 수라하거니.너는 당장 중궁 들어가서 보내신 상을 짐이 다 하였다고 아뢰어라.전하기를.짐이 밤서 들어

갈 것이니 짐 앞에서 수라합시는 아름다운 모습 보여주시오 전하여라."

"아뢰겠나이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저가 굶으면 짐도 따라 상을 내칠 것이야.짐을 편안케 하려면 저 먼저 기운내어 수라 드시고 옥체를

보존하시어야 할 것이야.반드시 알려 드리거라."

너무 쉽게.너무 순순히 지금껏 동동거리고 마음 졸인 사람들이 화가 날 정도로 고집을 버리셨다.

온 궐을 뒤집은 상감마마 단식이 끝났다.

중전마마 미음 듭시었다는 그 한마디에.

돌아서는 모든 사람들,참으로 원망스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여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인제 보니 상감께서 수라상을 내친 이유가 오직 식음전폐하신 중전마마 마음을 돌리기 위한 수단이었던 게다.

그만큼 중전마마는 왕의마음에 귀한 꽃이라.

지존이신 당신의 체면과 위엄마저도 버려가며 보살피고 사모하는 뜻이 뜨거운 터였다.

이를 어쩌누?천근만근,돌아서는 중신들 눈앞이 캄캄하다.

감히 중전마마와 상감마마 사이 음해한 놈들.중전이 죽어지면 내딸을 중전 올리랴 미리 김칫국 마신 인간들.

월성궁 계집의 끈줄 따라 정조에 구설난 중궁.폐비시켜라,쫓아내라 난리 치던 인간들.눈앞에 희번득한 망나니 칼날이 오락

가락.피보라가 치고 목이 댕겅 떨어지는 착각에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절로 풀린다.

중전마마께서 옥체 회복하시기 전까지는 짐이 참으나 어디 한번 두고 보렴?우리 둘의 정분 음해하고 깨뜨리려 하며 이간질

한 놈들 다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버럭버럭 호령질하는 상감마마 부릅뜬 눈이 허공에서 떠돌았다.

초헌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좌의정 정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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