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110/200)

상감마마 간절하고 정성스런 마음이 닿았나 보다.

꾸르륵 하고 약물이 중전 목으로 슬그머니 넘어간다.와은 서너 번을 더 그렇게 하여 약대접을 전부 비웠다.

백탐이 실로 쓰기가 소태보다 더 한것인데 그 대접 가득한 약물 모다 머금어 중전 입에 넣어주셔도 쓰다 말 한마디 없으시다.

장 내관이 건네드리는 냉수 대접만 단숨에 비우실 뿐이다.

"이것이 효과가 있기는  있는 것이냐?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린 것인데.....아무리 특효약이라 하여도 때가 늦으면 소용이 

없지를 않더냐?"

면건으로 입가를 훔치던 왕은 한마디 낮은 목청으로 홍준에게 확인을 하였다.

"이제는 신도 더 이상 방도가 없음이니 그저 기다리는 일뿐이옵니다.천지신명께서 도우시사 그저 중전마마 진정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나 제발 너무 늦은 것이 아니기 빌 뿐입니다.전하."

홍준이 식은땀을 흘리며 전하께 아뢰었다.

왕은 강렬한 괴로움을 가득히 담고서 고개 돌리어 백랍같이 창백한 중전의 얼굴을 바라본다.

왕의 미간 사이 찡그린 빛이 어쩐지 서슬 푸르렀다.

아무도 전하의 깊은 심사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칼날같이 단호한 결심을 모른다.왕은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그래 죽으면 짐도 같이 죽을 것이야!그러니 깨어나소!그대가 이나라 사직의 안주인이라면 그대는 이나라 보위 후사 책임진 

지엄한 지존이야.그 의무 다하기 전에 죽으면 안되어!짐은 그대 이렇게 혼자 죽게 하고 살지는 않을 것이야.그대 목숨 빼앗

은 이가 짐인데.......우리아기씨 죽인 사람이 짐인데....짐은 짐 목숨으로 그 망극한 죄를 그대에게 씻을 거야!"

전하 이하  궐안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백탐의 효과 나타나기 기다리는데 아니나 다를까?백탐이 그저 지혈에는 특효약

이라. 간신히 중전마마 하혈이 서서히 그쳐 가던것은 그밤 이슥할 무렵이다.

밤다이 흠뻑 내린 비가 마침내 그치고 아침 무지개가 떴다.

상서로운 징조라 그것도 쌍무지개였다.백악산 줄기 희붐한 안개 사이로 화려한 칠색 홍예 그늘아래.성덕궁 교태전.

사흘 밤을 꼬박 혼절하여 온 궐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중전마마.

비로소 간신히 깨어나셨다.아직은 몽롱한 눈빛.

가물가물 아무것도 아니 보이는 듯이 그저 희미한 신음만 흘리다가 하얗게 소금꽃 핀 입술로 무어라 달싹였다.

가장 가까이 앉은 상감마마.

귀에 대고 중전의 그말을 헤아려 듣는데 아버님,하는말이다.사친인 김익현을 찾는 것이었다.

왕은 지금껏 그저 발을 친  윗목에 돌부처처럼 미동도 않고 앉아만 있는 부원군을 불러들였다.

"마마!"

억장이 무너지고 마디마디 창자가 끊어졌던 김익현이 부르르 달려들어 외마디 소리쳤다.

따님의 작은 손을 부여잡는데 너무 아프고 기막힌 늙은 아비.

그리고 더 이상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야윈 옥수 잡아 주름살 가득한 얼굴에 대고만 있을 뿐인데 그 사이로 줄줄 눈물이

젖어들었다.중전마마 그리운 사친 보아지니 그래도 반가워 가냘프게 웃었다.

핏기 하나 없이 투명한 입술을 달싹인다.애절한 한마디였다.

"아버님,소혜를 ......집으로 데려가줍시오.........할머니 보고 잡소."

사무치는 그말에 김익현 눈에 또다시 주르르 피눈물이 흘렀다.

"예,마마.모셔갈 것입니다!모셔갈 것이오.이 아비가 마마,집에다 모셔갈  것이니 부대 기운 추스르이 빨리 일어납소서."

"할머니....보았어요.아버님.소혜가 ...때도 아닌데  어찌 오느냐 하셨나이다.집에가서.....할머니 보고 싶어요,아버님."

그러고서 중전마마,따뜻한 사친 손에 얼굴을 대고 기운없으시니 다시 잠에 빠지었다.

그래도 밤사이 회복한 듯 한결 얼굴빛이 화사하였다.

한 식경 후에 다시 깨시니 조심조심 미음을  올려,윤 상궁의 시종을 받으며 다 젓수셨다.

홍준이 받쳐 올린 탕제 또 하시고 깊이 잠이 드시니 아아.다행이어라.고마울세라.무사히 위기를 넘기셨다.

"전하,안색이 창백하십니다.잠시 쉬옵소서.예는 신이 지킬참입니다.용체를 보존하시어야 합니다."

사흘 밤낮을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중전 곁을 지키고만 있었다.

수염은 텁수룩하고 용안은 초췌하였다.구겨진 파지 모양 후줄그레한 모습니라.피곤에 절대로 절어 당당하고 아름다운 평상

시 모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진성대군이며 왕대비마마께서 안타까워 쯧쯧 혀를 찼다.전하를  우원전으로 뫼시어라 

하였다.싫다 하였으되 억지로 이끌려 왕은 우원전으로 건너왔다.

침전에 들자마자 그만 보료에 대자로  누워버렸다.잠시만  누워 있다가 일어나 정신 차리고 조하 일부러 보아야지 생각하

였다.그러다가 그만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이내 코 고는 소리가 문밖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몽 상궁이 내관과 같이 살금살금 들어와 전하 용안과 손발 닦아 드리고 의대 풀어드리었다.

살며시 용체를 편안하게 금침안에 모시어도 그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알 만큼 깊은 잠에 빠졌다.

하룻밤하고도 그 이튿날 오정 늦게까지 뉘가 들어와도 모를 만큼 깊이 주무시던 전하.

갑자기 헉!소스라치게 놀라 금침에서 튀어 올랐다.

희빈 어마마마께서 돌아가신 꿈을 꾼 것이다.

헌데 관속에 누운이가 희빈마마가 아니라 어느새 중전으로 변하였다.

조용히 눈을 감고 관속에 누운 지어미 얼굴이 너무도 생생하니 전하,까무라칠 정도로 놀라 제발 깨어나시오!짐만 두고 가지

마시오,중전.애타게 소리치다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용안에 땀이 송알송알 맺혔다.답답하고 무안한 김에 고함을 버럭 질렀다

"웬만하면 깨우지 어찌 이리 하냥 자게 내버려 둔것이더냐?해가 서쪽을 넘었다!그보다 중전 용태가 어떠하냐?혹여 다시 나빠

진 것은 없느냐?"

"고정하옵소서,마마.아무일도 없나이다.중전마마께서는 방금 전 탕약 한번 더 드시고 깊이 잠이 드셨다 합니다."

자리끼 대접 받쳐 올리며 장 내관이 왕을 살살 달랬다.

꿈은 반대라 하더니 중전이 아무 탈 없이 그저 깊이 잠들었다 하니 안심이었다.

왕은 겨우 진정하고 금침에서 벗어났다.

소제 후 의대 갈은 다음 수라상을 받았다.배행한 엄 상궁을 바라보았다.

울적한 표정이었다.가장 두렵고도 시급한 물음을 던졌다.

"엄 상궁,아기씨 일을 중전이 아시느냐?"

"안즉은 모르고 계신 줄 아옵니다.왕대비마마께서 그 이야기 들으시면 병인이 다시 한번 충격이 크실 게다.어지간하게 옥체

환후 좋아지시면은 말씀 올려라 하교하셨다 합니다."

"잘하였다,암,그래야지!작은 충격에도 다시 혼절한 사람인데 그 기함할 이야기 들으면 다시 그이 숨이 넘어갈 것이다!휴우.

간신히 고비는 넘겼으되 앞날을 생각하니 짐이 첩첩하구나.나가서 홍준을 불러라.짐이 중전 환후 이야기를 들을 참이다."

홍준이 부름받자와 고두하고무릎 걸음으로 들어와 편전 윗목에 엎드렸다.심란한우수가 가득 담긴 용안을 들어 왕은 시무룩이

홍준을 바라보았다.

"중전이 무사한 것은 모다 그대 덕이로다.이제 와서 생각하면 무엇을 할 것이냐 만은 태중 아이가 공주였을까,원자였을까?

짐이 겨우 하나 얻을 뻔할 후사였는데........"

망극하여 홍준은 다만 고개만 조아렸다.짧은 말속에 든 참담함과 괴로움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깊고 진하였기 때문이다.

"휴후,헌데 짐이 궁금한 것이 하나가 있어서 말이야.중전께서 옥체 많이 상하신 터로 나중서 회임하시기 지장은 없겠니?"

"천행이온 줄 아옵니다.낙태하신 후 하혈이 장하셨으니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라 이리합니다.옥체 속에 있어서는 아니 될

나쁜 것들이 모다 다 밖으로 나온 터이기에 깨끗하여지신 것입니다.후에 옥체 회복되시어 다시 승은 입으시면은 금세 회임하

실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홍준의 말에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에 중전이 이 일로 다시 회임을 못한다 하면 정말 중전 앞에 들 낯이 없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그 백탐을 서소문 통  각설이패 꼭지딴이 들고 왔다지?그래,그놈에게  상급은 내렸더냐?"

"만극하옵니다. 그놈이 무슨 심사인지 도통 대가를 받으려 하지 않나이다.국모이신 중전마마를 위하는 일인데 백성이 어찌 그 

은혜를 입고 대가를 바라리까 하였답니다."

"호오,기특한 놈이로고.허나 중전의 목숨을 살린 은인 아니니?짐이 알현하련다."

천하디천한 꼭지딴 놈이 어디서 감히 궐문 넘을 것이며 하물며 전하 용안을 어찌 감히 친견할 것이더냐?양편으로 내관 상궁

안내받아 문을 들어서는데 사시나무인 양 덜덜 떨며 고개도 감히 들지 못하였다.땟국물 줄줄 흐르는 남루한 의대 입고서 벌벌

기며 들어오는구나.눈알만 데굴데굴 거의 제정신이 아니다.편전 앞 석당네 오체복지하여 용상에 앉은 전하께 절을 하였다.

그나마 이놈 덕분으로 중전이 살았다 싶으니 왕은 말태 부드러이 치하하시었다.

"오냐,짐이 네놈 은덕을 입었다.헌데 너의 그 귀한 백탐을 어찌 구할 수있었니?"

"쇠,쇤네가...지,지난번 개천가에서 자,잡았던 것입니다요.흰 족제비가 지,지나가기에 신기하여서 이놈이 돌을 던져 잡은 것

인데 그냥 쓸일이 있을까 하여 그놈 살은 끓여먹고 쓴 쓸개는 그냥 간지 작대에 걸쳐 두었는뎁쇼.그것이 귀한 약인 줄은 비

로소 알았습니다요."

"헌데 네놈은 그 백탐 가져온 대가를 굳이 받지 않으련다 하였다면서?천금을 주겠다 하였다.헌데 너는 그 많은 재물을 싫다

한 이유가 무엇이냐?"

꼭지딴 놈, 땟국물 주르르 흐르는 얼굴이되 그 눈빛이 몹시 순박하였다.

하문하시는 말씀에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천부당만부당하다 아뢰었다.

"중전마마께서 주신 은혜 갚음이옵니다.애당초 대가 바라고 한일이 아니옵니다."

"은혜라니?중전께서 네놈에게 무슨 은혜를 그리 장하게 주었던고?"

구중심처 궐에만 지내시고 바깥이라 한번도 아니 나가신 중전이 이 각설이 놈을 어찌 알아 은혜를 주었다 하는가?의아하여

물으시니는 전하의 말씀에 그놈이 덜덜 떨며 말을 아뢰었다.

"항시 아비가 중전마마께서 지으신 의대 귀이 여겨 얻어 입었는데 지난 해 죽었나이다.중전마마께서 새 옷을 작년서도 주시어

그 옷 입히어 묻었기로 실로 중전마마께서 이놈 아비 수의를 해주신 참입니다.그 은혜 백골난망이올시다."

"네놈 아비 의대를 중전이 주었다고?이것이 무슨 말인가?호조좌랑을 불러라!중궁전을 드나든 이가 그이뿐이니 이일을 잘 알

것이다.짐이 자세히 이일을 알아볼 참이다."

하용지가 당장에 전하 하명받잡고 불러 들어왔다.

다짜고짜 묻자오신 말이 중전마마 가난한 이 의대 하는 일이라.그가 비로소 입을 열어 지난 몇 해 중전마마께서 하신 어진 

처분을 고변하였다.

중전마마께서 궐에 들어오시던 그때서부터 무명필 사들여 손수 철마다 의대 지어서 서소문 다리밑 가난한 노인들에게 한벌씩 

입힌 일이며,중궁전 내탕금 아끼고 아끼어 규모있게 쓰시고 철마다 혜민국이며 제약원에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 위해 써라

하셨다는 이야기며 사사로이 쓰시는 금전이 남았다 하시면은 모다 백성 세금인데,하시며 다시 돌려 주셨다 하는 말이며 심

지어 비 맞아 못쓴 곡식 이용하여 풀죽 쑤어 내다 팔아 필암정 부서진 돌다리 하라 내어주셨다는 이야기 까지 낱낱이 다 아

뢰었다.

왕과 삼정승,육조관속들이 하나같이 입을 쩍 벌리고 어린 중전마마 선행에 귀를 기울였다.

다들 탄복하여 한숨을 푹 내쉬었다.

"중전의 지난 행적은 실로 내전 여인의 귀감이로다!도승지는 오늘의 이일을 반드시 일기에 기록하여 청사에 남기도록 하여

라!허고 백탐 가져온 이놈 마음씀이 심히 기특하니 속량하여 양민 만들어주고 살만하게 전답을 내릴 것이다.장내관 너는

짐의 의대 한벌 가져오너라.짐의 어처요,이나라 국모의 목숨을 살려 준 은인이다.짐이 입던 의대 하사하여 그덕을 널리

알리라."

소서문 다리 아래서 집도 없이 걸식하던 각설이 놈,졸지에 속량되어 몇십 마지기 전답까지 얻어 팔자 고친 참에 지엄하신

상감마마 의대까정 한벌 하사받았다.너무 엄청난 광영이니 차마 감당하지 못할세라.

싱글벙글,히죽해죽.비단 의대 안고 좋아라 하며 궐문을 뛰어나가는구나.

이리하여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았던 중전마마 자진 소동이 끝났다.

왕은 이 며칠 위급한 일들 중에 고생한 이들 가려 상급 내려주시고 옥체 보살피지 못한 죄인들,벌주면 중전께 좋지 않으리라

하여 너그러이 가벼운 처분을 내리었다.중전마마께서 모다 신첩 잘못이니 아랫사람들은 죄주지 마십시오 부탁하신 덕분이다.

까딱하였으면 잃어버릴 뻔한 지어미.모든게 짠하고 가엾고 미안하고 애련하였다.

다 짐의 심술맞음 때문이 아니냐.쓸데없는 투기심에 궂은 억지 때문에 생긴 일이야.왕은 뼈골에 새기듯이 깊이 반성하엿다.

간신히 중전의 목숨 살려놓고 보니 인제는 슬슬 그녀의 눈치만 보게 되었다.

꼭 벌을 받은 어린애처럼.

무엇 마려운 강아지처럼 중전 곁을 빙빙 돌며 안절부절 못하였다.

행여나 이 사람이 짐을 영영 보아주지 않으면 어찌하지?실상 이런 일을 벌임은 죽어서라도 도망치고 싶어하심이라,그만큼

짐을 미워하고 꺼려함이 아닌가.이리 살려는 놓았으되 마구잡이로 저를 괴롭힌 짐을 영영 옳은 사람으로 아니 보고 밀쳐

내며 어찌하지.그 생각만 하면 기운이 없고 밥맛이 없다.

대근심에 하루종일 대전에 나가서도 한숨이 장하였다.

어찌 하면 중전의 마음을 돌려볼까?환심을 사볼까?평생 구애라고는 해보지 않은 터로 서투르기 이를데 없는 상감마마.

그가 선택한 것은 결국 사정하는 것이었다.솔직히 무릎 꿇고 빌어보자 하는것이었다.

보스라기 솜털 하나 무게도 나가지 않을 듯이 섬약해진 팔목을 잡고 내려 놓지 못하였다.

하룻밤 내내 짐이 잘못하였거든.짐이 잘못하였어.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리기만 하였다.

중전이 대답하거나 말거나,듣거나 말거나 다짐 또 다짐하였다.

"다시는 마음 아프지 않게 잘하여보께.맹세하오,앞으로는 다 잘할 것이야.허니 짐이 하였던 모진말 다 용서해 주구려.인제

부텀은 참말로 중전 말만 들을 것이야.언놈이 무슨 말을 하여도 중전 말만 믿을 참이야."

어미에게 아양 떠는 어린애인 양 지절지절 떠들기도 잘하였다.

뻑하면 무작정 고운 패물을 잔뜩 가져와설랑은 싫다는 사람 앞에 부득부득 놓아주었다.

"인제 옥체 회복하시면은 비취로 만등 요것,비녀 찌르시오.참 고울 것이야.이것만인가?윤 상궁도 용서하였거든.이내 중전

곁으로 돌아올 것이야.사가로 피접도 보내 드릴 것이야.연지에다가 중전이 좋아하시는 백련도 잔뜩 구하여 심어라 하였소이

다.우리 같이 시도 짓고 산보도하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소."

용안에 뻘뻘 땀을 흘리시면서 중전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이렇듯이 죄 많은 상감마마,이 며칠 상관으로 완전히 전세 역전이로구나.

중전을 대함에 있어 솜털처럼 보드라이,보옥처럼 귀이 보살피신다.바라보는 눈길 하나,다가서는 손길 하나하나가 다정하고

애절하고 흠뻑 정이 묻었는데 문제는 중전마마였다.

암흑의 심연에서 깨어나 돌아온 이후 중전마마 영명한 눈빛에는 빛이 꺼졌다.홀라당 생기를 잃고 도통 반응이 없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비가 오면 오는 대로 옆에서 무어라 하든 나는 상관없소,이런 무심한 옥안이다.

몸은 있되 혼백은 다른 곳에 가 있으니 왕의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은 말만 중전이지,걸어다니는 껍질에 불과한 것이라.

그렇지 않아도 말없는 이가 더 말이 없어지고 고개를 사뭇 돌리지도 않으니 홀로 속 끓는 상감마마 얼마나 답답할 것이더냐?

그러나저러나 여하튼 간신히 커다란 고비를 넘긴 중전마마,그 속마음이야 알수 없지만은 겉으로는 지극정성인 상감마마 비호

안에서 제법 기운을 차리셨다.

닷새 만에 제대로 된 수라상을 받고 인제는 좋아지시리라 모두 기대하였는데........

아이고,아이고.다시 일이 터졌구나.

그러니까 깨어나신 지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중전마마께서 회임한 아기씨를 잃어버렸다는 망극한 사실을 알게 되고 말았으니 어쩌랴?물론 이는 희란마마 간특한 사주를 

받은 방정맞은 선이 년의 계획적인 입질 때문이었다.

======제2장   단장(斷腸)===========

거뭇한 땅그늘과 함께 정적만이 가득한 중궁전.

밤이 내려 문이 닫힌 내전에 인적이 있을리 없다.

얄미운 고양이 걸음을 한 선이 년이 살금살금 걸어 들어와 둘레둘레 조용한 뜨락을 살폈다.

이년이 또 무슨짓을 하려고 이렇게 인기척을 살피며 간교한 눈을 빛내는 것이야?서온돌 누루 기둥 그늘에 숨어 눈만 빼꼼

하였다.

고년 머리 위 회랑을 지나가며 궁녀 둘이 소곤소곤 걱정하는 목소리가 흘러내렸다.

발 아래 쫑긋 귀 세운 살쾡이가 있는줄도 모르고 중전마마 안위를 근심하는 목소리였다.

"오늘도 아니 듭시었니?"

"음,물 한 모금 겨우 드시었단다."

"참말 대근심이다.옥체 상하시면 어찌하시려고 그렇게 저분질을 딱 끊으신 게야?"

"아기씨 일때문에 상심하시어 그러하지.화봉이 년하고 선이년 요것들이 여하튼 경망스러워.엄히 단속하시기를 아기씨 일에

대하여서는 입 봉하라 분부하시었는데 하필이면 왜 중전마마 듣는 데서 수다질을 한 것이야?고년들,매질당해도 싼 게다."

어둠 안에서 선이 년 이를 빠드득 갈았다.

조 목소리는 영소년 목소리겠다?뭐라?내가 매질당한 게 당연하다고?다른 목소리가 편을 들었다.

"둘다 어디 일부러 들으시라 한 말이겠니?옥체 걱정하다가 우연히 나온 말이지 무어야.화봉이도,선이도 중전마마에게 얼마나

충심이니, 왜  그는 부인하지 못하리라."

"허기는 선이도,화봉이도 중전마마에 대하여 참말 충심이 깊기는 하지.어찌하다가 그리 실수를 하여 매질을 당하였을까?그나

저나 내일은 좀 듭시어야 하는데.......지밀마마님께서 내일은 타락죽을 준비하랍신다.소주간에 기별하고 가야 해."

목소리들이 모퉁이를 돌아 멀어져 갔다.

기둥 아래 선이 년,생끗 미소 지으며 치마를 들어 주머니를 꺼냈다.

재빠른 동작으로 기둥 아래 파묻었다.

희란마마가 교인당 시켜 악한 붕술하여 만들어낸 요망한 부적이다.건네주며 몇 번이고 다집하였다.

<요것을 중궁 기둥 아래 파묻어라.중전 고년이 피 콱 토하고 죽어진단다.들키지 않게 잘 하여야 한다.만약 발각이 되면 

나까정도 단칼에 목이 날아가>

선이 년 돌아서며 빙그레 살기 어린 미소를 물었다.

불이 켜져 있되 꼭 무덤처럼 조용하기만 한 서온돌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흥.중전 고년 명줄은 금세 끊어질 터이거든.망가진 몸을 하고 곡기를 끊으면 달포도 아니 되어 죽어 나자빠질 게야.게다가

성궁에서 큰마마와 교인당 마님이 날마다 뒈져라 저주 방술을 하고 있음이야.홋호호,여하튼 내가 머리는 잘 썼지.죄는 

홈빡 화봉이 년이 뒤집어 썼지 무어야?'

눈치 보아 중전마마 빗질하는 창가 아래 모른 척 천연덕스럽게 세답거리 챙겨 나가며 같이 일하는 다른 나인 아이를 충동질

하였다.송알송알 말로는 걱정하는 척하면서 중전마마가 회임한 아기씨를 잃어 어쩔 것이냐.참말 가엾어서 어쩔거나,눈물난

다 마주알 고주알 하지 말라는 말만 골라 납죽납죽 읊어댄 것이다.

창문 안의 중전마마,아무것도 모르고 따스한 볕에 해바라기 하며 머리 손질하시다가 나인 년들 수다를 고스란히 듣고 말았다.

무서운 충격을 받아 그만 그 자리에서 까무라쳤다.

제년 둘은 경망한 입 잘못 놀렸다 하여상정에게 호되게 회초리질 당하였지만,중전마마 심신을 해친 것으로 치자면야 새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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