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200)

조정에 떼를 지어 포진한 세력이 저들이 대부분이라.

생고집 반 억지 반 하여 저의 심복인 예조좌랑 이문저를 시켜 왕비를 폐서인하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게 하였다.

이틀 후 아침에 도승지가 예조에서 올린 상소문을 소반에 받쳐 들어왔다.

그때까정 왕은 그렇게 대청서 갑론을박 일어난 일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젊은 왕은 그저 하도 괴로운 마음에 무심하게 지나가는 말로 내뱉었을 뿐이다.

그말을 한것조차 이미 잊어버린 터였다.

왕비에 대한 왕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였다.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였다.

그립고,보고 싶고,아뜩하게 연모하는 마음이 반이라면 원망과 미움이 또 그 반이었다.

오락가락 중심을 잃고 하루종일 맴돌이를 하고 있었다.

가장 감추고  싶었던 치부와 죄업이다.

사모하는 사람에게 들켜 버린 민망함.염치없음은 그리도 뿌리깊게 아팠다.

어린 지어미에게 하늘이고 싶고 자랑이고 싶고 당당한 지아비이고 싶었다.

영롱한 눈에 반짝이는 경모와 자랑스러움을 보기를 원하였다.

평생 의지하고 살아갈 든든한 벽이고 싶고 단단한 너울이기를 원하였는데.

'평생 아니 되는 것이지?그렇지?짐은 아닌게지?강상조차 어기고 인간의 도리도 다하지 못하는 폭군은 그대 같은 사람

옆에 갈 자격도 없지.알아,알고 있어.그래도,그래도....잘하여보겠노라 약조하였잖아.짐도 다소간 달라지겠다고 노력

한다 하였잖아.그런데 왜 그러하는 것이니?왜 짐을 대놓고 밀어내고 망신 주는 것인가?그대는 짐이 못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도 경계하고 싶은게야?'

서책을 넘기던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급하디급하고 격한 성질머리를 이기지 못하여 손대기조차 아까운 사람의 볼을 또 후려갈기었다.

그 순간이 지나고 돌이켜 후회하나니,얼마나 아팠을까?벌을 주었으니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그저 답답하였다.

잠도 오지않고 전전반측,후회만 거듭되는가?

잘못은 그녀가 먼저 저질렀다.

그가 건드리지 말고 후벼 파지 말라 하는 금기를 어긴 이는 중전이었다.

어질다 잘났다 잘난 척 하며 대놓고 망신시키고 믿음을 깡그리 짓밟아버린 이는 중전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계집 때문에 가슴 아파야 하는가?왜 그가 후회하고 잘못하였따 반성해야 하는가?

'웃기는 생각!다 필요없다!짐은 어차피 천하에서 홀로이다.그깐것은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다 이말이다.다시는 아니 돌아

볼것이다.절대로 어림도 없다.흥!'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이를 다시 앙다물었다.

항시 기분이 상하면 주변의 모든 사람에 대하여 벅벅 어이없는 노염을 부리고,무작정 모든일에 억지 트집을 잡아 날벼락에

호령질이 잦은 왕의 버릇이다.별 잘못도  아닌것에 대하여서도 무작정 곤장질에 주리를 틀어라 고함을 치지 않나.뻑하면

같잖다 호령하며 상소 두루마리를 중신들 머리통을 겨냥하여 내던져 버리는데 실로 이 며칠,대궐 안 분위기가 살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물론 어리석은 정안로 일파는 왕이 한시 바삐 중전을 폐하라 하는 눈치를 읽지 못하고 저들이 상소 아니 올린 터로 그러

하신다 오해를 하였고.

막 왕이 윤대관의 참례를 끝내고 낮것 수라를 받기 위하여 우원전에 들던 참이었다.

"전하,중전마마께서 강학 전에 듭시라 하여 항시 하던대로 차를 보내셨나이다.가납하리이까?"

기대하지 않았던 목소리가 아뢰었다.

닷새나 반성하고 근신하더니 중전이 먼저 사과를 하는구나.

더럭 반가운 미소가 설핏 왕의 입가에 어찌 할수 없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 그래야지,저가 먼저 짐을 망신 주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런데 그놈의 비틀린 자존심이 문제였다.

덥석 그 차를 받게 하는 것을 거부하였다.겉으로 왕은 시답잖다는 듯이 힐끗 문밖을 바라보았다.

덤덤한 목소리로 가까이 놓아라 하시었다.

그랬기에 아랫것들은 오늘은 전하께서 중전마마의 정성을 가납하시는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왕은 잠시 동안 정갈하게 마련된 상을 노려보았다.

에구머니,망극하여라!이런 변이 있나.

대전이며 중궁전 아랫것들 전부 다 비명을 삼키었다.왕이 냅다 그 차상을 발길로 걷어차 버렸던 것이다.

"짐이 이렇게 마셨다 하여라.차가 아니라 빨리 죽어라 기원하며 독을 탄것인지 누가 알랴?짐이 빨리 죽어야 제 팔자가

편안할것이 아니더냐?이런다고 하여 짐이 무정한 저를 용서할 줄 알았더냐?인제 이딴짓 그만 하라 전하여라.천하에 

같잖은 것!"

나직하게 내뱉는 목청에는 심술이 뚝뚝,생억지가 울컥울컥.

여전히 주상 당신의 심중에 중전마마에 대한 괘씸함이 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왕은 경악한 내간과 나인이 깨어지고 흩어진 찻잔이며 과즙을 황황히 챙기는 것을 바라보았다.

횡하니 서재로 나가는데 막힌 속이 반은 뚫렸다는 그런 용안이었다.

차 한잔 정성껏 끓여 보내 드리면 항상 반가이 맞이하시었다.

향이 좋다 칭찬하시며 즐겨 드신다 하셨다.

그것이 지아비께 외면 당하는 못난 정궁인 왕비 자신이 지어미로써의 도리를 다하는 유일한 일이 아니던가.

어린 중전마마께서는 언제나 지아비께 올리는 찻물에 순결한 정성과 수줍은 연정을 모두 담아왔던 터였다.

죄인이라 자처하여 서경당으로 들어간 몸이지만 그 정성을 칼로 잘라낸 듯이 뚝 자를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가슴 졸이다가 닷새만에 비로소 용기를 내었다.

신첩이 경솔하고 잘못하였습니다 하는 뜻을 담아 고운 찻 상 보아 보내드리었다.그런데,그런데.......

"뭐,뭐라?전하께서 발길질로 상을 내질러 버리셨다고?"

차마 믿을수가 없었다.다시 재우쳐 묻는 목소리가 바람에 꽃잎 지듯이 여리게 흔들렸다.

그 정성을 어찌 읽지 못하시나,중전이 보낸 그 상을 왕이 냅다 발길로 걷어차 버리며,독을 탔을지 어찌 안다더냐?

하고 극언을 하였다는 데서 무엇인가 마음의 줄 하나가 툭 하고 끊어지던 것이었다.

등골에 소름이 쫙 끼치며 섬뜩한 무서움을 느꼈다.

왕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디 그 한마디 말로 깨달은 것이다.

'전하께서는 나를 당신을 해치려는 독부로 생각하시는구나.아아,무섭다 지아비를 망신주고 항시 꺼려하는 차라.나를

가까이 두었다간 무슨 짓을 더 못하랴 그렇게 여기신 게지.그러고 보면,나는 그분께 차 한잔 올릴 자격도 없는 계집

인 게다.차는 오직 정성이며 마음의 정표인데 나에 대하여 그런 마음을 지니신 분께 내가 아무리 정성껏 차를 올려도

그것은 이미 그분께 독물인 것이다.'

말릴 사이도 없이 주르르 볼 아래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하얀 무명 치맛자락 위로 떨어져 얼룰을 만들었다.

중전은 망연히 노란 물 드는 은행나무 우듬지를 올려다 보았다.

'차마 이런 처지로 나는 전하께 차를 올릴 자격도 없다.이미 그분께 나는 죽어버린 여인인 것이야.'

가슴 에이는 것도 참으며 슬프게 그일을 단념하고 만 중전마마.

그러나 대전에 앉은 왕이 왕비의 그런 민망하고 망극한 마음을 알 수가 없다.

걷어찰 때는 걷어찬 것이고,크흠!또다시 중전이 차를 보내오기를 그저 기다리고 기다리는 엇질이 심사는 무엇이냐.

결국은 아니 오는구나.깨닫는 순간 왕비가 더 괘씸하였다.

볼이 실룩였다.원망 가득한 시퍼런 눈빛이 금원 서경당 쪽으로 향하여졌다.

'아니,짐이 억지 삼아 한번 상을 걷어찼다고 하여 당장 잘되었다 하듯이 해야 할일을 뚝 끊어버려?지아비가 받든

아니 받든,듭시라 하여 그대로 끝까정 올려 받치는 것이 부덕인 게지.무에 이리 건방지고 고약한 계집이 다 있는

것이야?이것,가만 헤아리자 하니 지금껏 차 한잔 짐이 보내라 하니 보내주기는 하였되 그저 무슨 핑계를 대든지

끝을 낼 궁리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야?짐은 그것도 모르고 그저 좋아서 별별 칭찬을 다 하며 그 찻물을 마신 

것이었도다.'

배배 꼬인 억지가 또다시 시작되었다.

이왕 마음이 비틀어져 있으니 별별 것이 다 트집거리이고 섭섭하였고 분하였다.

왕은 솔직히 자신이 지금껏 마셨던 찻물을 다 토해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열불이 날대로 난 후라,한참 동안 턱을 괴고서 어찌하면 저 목석 같은 것을 짐이 약올려주지?

어찌하면 저 도도하고 같잖은 것의 기를 눌러줄까 별별 궁리를 다 하신다.

오늘 밤에 들어가서 그냥 콱 눌러 버려?그냥 이길로 폐비하여 쫓아내 버려?그도 저도 아니면은 한대 더 후려 갈겨 줘?

대전마마 머리 속에 오락가락하는 억지 궂은 빗줄기 같은 생각은 이리저리 위험하였다.

편전으로 다시 나가 정무를 보아야 한다고 시립한 도승지가 제촉하였다.

막 기오헌을 나서는데 대제학이 엎드려 여쭈었다.

"무엇인가?"

"감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중궁전 글 스승이 궐에 들었나이다.죄인을 자처하여 근신 중이신 터 교태전을 비우신지라,

중전마마 강학을 어찌할까요 하옵니다.이를 어찌 하답할 것입니까?"

"음음음.비가 죄인을 자처하여 근신 중이라는 맞지 않소.다만 사사로이 우리가 부부지간의 일로 서로 심기 상하여 

중전께서 서경당으로 잠시 피접 나가신 셈이라 할 것이오.강학을 그만 둘 이유가 없소이다.대제학이 학사를 모시고

서경당으로 가서 강학을 계속하게 하오,비가 글을 좋아하고 마음의 의지처로 삼는 것이 학문인데 그마져 금한다 하면

짐은 실로 모진 사람일 것이오."

"참으로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너가 지금 감히 곤전을 폐하라 짐에게 상소를 올린자냐?"

왕의 용안에는 희미한 미소마저 배어 있는듯 하였다.

목청도 나직하였다.그러나 곁에 시립한 도승지만은 등에 진땀이 축축이 젖어들고 있었다.

지금 슬깃 올려다본 왕의 용안은 살기마저 스며 있었다.

격한 노염이었기 때문이다.

왕은 두루마리를 다시 들어 눈으로 훑었다.

낭항한 목청이 높아지니 앞에 엎드린 이문저가 올린 상소문을 다시 한번 되씹어 읽어내렸다.

"짐이 비를 폐하여야 한다?그이가 회임을 못하여 석년이니 사직의 대를 잇지 못함이라,일악이요.지아비 전하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여 매사 불화하는 고로 종실에 누를 끼침이라,그것이 두번째 악이오.감히 아녀자가 대전의일에 나서서

주상의 위엄을 침해하니 삼악이라.참이유도 그럴듯하게 잘 만들어내었군."

읽기를 채 마치지도 않은 두루마리를 왕이 냅다 윗목에 엎드린 이문저를 향해 내던졌다.

두루마리는 대청을 날아가 정통으로 정수리에 가서 부딪쳤다.

"너는 허면은 이런 이유가 있어 네 조강지처를 마음대로 내쫓았더냐?짐이 지어미와 불화하면 제발 화합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백성들에게 모범으로 보여주십시오,하고 충고하여야 그것이 예조의 도리이거늘 오히려 내쫓아라 먼저 나서서

짐을 부추겨?기가 막혀서,무에 이런 무엄하고 방자한 것이 다 있느냐?너가 지금 감히 짐더러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고 

지시하는 것이냐?이따위 고약하고 방자한 인간이 예조에 앉아 있으니 짐과 곤전이 더 불화하게 되는것이다!이,이 발칙

하고 고약한!"

"저,전하!고정하시옵소서.전하!"

왕의 곁에 가장 가까이 시립한 황이가 재빨리 달려 들었다.

이문저를 향해 서안위의 벼루를 내던지려는 어수를 감히 잡아 만류하였다.

무거운 벼루가 날아가 정통으로 맞았다간 머리통이 터지는것 뿐만 아니라 잘못되면 왕이 중신을 때려죽였다는 말까정

나올 참이었다.그런일은 있을수 없다 하여 목숨을 걸고 만류를 한것이다.

왕은  신임하는 도승지의 간청에 그 격한 성정을 간신히 억제하였다.

그러나 들들 끓는 심화를 속시원하게 터뜨리지 못한 참이니 대신 어수에 쥐었던 벼루를 바닥에 대던져 박살을 내버렸다.

발로 용상을 부서져라 내지르며 일갈하였다.

"갈잖고 방자하기가 하늘을 솟구치는구나!그래,말이 나왔으니 말을 하여보자!짐이 말을 한다면은,할말이 없는줄 아느냐?

예문 밝다하여 예조에 앉은 것일지니 그런 너가 잘 모르는것이 있어 짐이 알려줄 참이다!칠거지악이 있달지면 짐은 그

를 내쫓을 수 없는 삼불거도 알고 있을터,말하여 보랴?돌아가도 의지한 데가 없으면 내칠수 없고,같이 시부모의 삼년상

을 치렀으면 내칠수 없으며,가난하였으나 같이 고생하여 부귀하게 되었을 적에 역시 내칠수 없다 하였다.비는 세해전에

짐과 혼인하여 오직 한분 할마마마를 잘 모시어 궐을 화락하게 하였으니 그덕이 하나이니 짐이 어찌 그를 내칠수 있으랴 

집안이라 늙고 병들은 사친 한 사람이 오직 남아 있는 터인데 부원군이 졸하면 천지간 남는 이가 그이뿐이니라.그렇게

본다하면 그이가 폐하여 지면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이라 할것이다.그런데 짐이 그를 내쫓아야 한다고?짐과 그이가 불화한

터로 짐이나 그이가 서로 가까이 가지 못한 참에 생긴 일이었다.이제 잠시간 가까워지려고 서로 노력하니 불화하여 내

쳐야 한다는 말도 도리에 맞지 않다.그런데 감히 네가 무엇이라고 짐더러 비를 폐하라 먼저 나서는 것이냐?"

줄줄줄 말씀도 잘하시지.

청산유수도 이만은 못할지라.숨도쉬지 않고 좔좔좔.

중전마마를 옹호하여 일갈하시는 표정이 엄하고 단호하였다.

며칠 전에는 먼저 폐비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이문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너가 짐이냐?짐이 흉중을 너에게 읽기라도 하였느냐?대체 너가 무어라고 감히 나서서 이따위 상소질을 하는것이냐?

짐은 한번도 그이를 폐서인하여야 한다는 생각 해본적 없으니 이런 부질없고 쓸데없는 상소는 다시 올리지 말라!감히

이딴 것으로 짐과 비를 이간질 할것이면 네 목을 벨 것이다.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라!같잖은 것이 감히 왕인 짐을

가르치려 들어?괘씸한 것들!"

망신을 있는대로 당하고 왕의 쩡쩡 울리는 불호령에 놀란 이문저가 벼루에 맞아죽기 일보 직전에 간신히 벗어나서 진땀을

찔찔 흘리며 대전을 나서 정안로에게 달려간다.

정안로가 입맛을 쯧쯧 다셨다.

영 일이 되어가는 형편이 자신의 짐작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란마마 몹시도 태연하였다.

"폐비하실 마음이 없다고요?흠,그래요?과연 그럴까요?"

"큰마마,하교를 하여주십시오.도무지 성상의 마음을 헤아릴수 없음이랴.어찌하면 좋겠습니까?폐비하는 일이 헛수고가 될까

두렵나이다."

"며칠만 기대려 보세요.우리가 손을 쓰지 않아도 주상께서 먼저 중전 고년을 목 베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희란마마,장담하였다.

성덕궁 쪽을 바라보며 자신만만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 웃음에 피냄새가 물씬 풍기니 불길 하여라.대체 중전마마 앞날에 무엇이 기대리고 있는 것인가?

*************

희란마마가 장담하여 벌인 일이다.

폐비 소동보다 더 얄궂고 망측한 일은 이내 벌어졌다.

가문 들판에 매운 들불이 번져 나듯이 중전마마와 글 스승 강두수에 대한 망칙하고 흉악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그 며칠후 , 풍년가를 부르며 농부들이 추수 준비를 하던 그 무렵이었다.

아니다,아니다 하여도 더 사실인 듯이 퍼져 가는 것이 헛소문,게다가 작정하고 나서서 그 흉측한 소문을 사실로 만드는 

일파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음에랴.

물론 왕도 너무 어이없어 처음에는 픽 웃음을 물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별 미친놈들이 할일 없어 그런게야?비와 짐을 이간질 하려 하는 짓거리니라.누가 그것을 믿노?조잘거리는 그 경망스러운

입들을 찢어버려라!비와 짐이 격조한 것을 두고 별의별 구설들이 다 일어나는구먼."

허나 아무리 거짓이라 하여도 자꾸 들으면 그것이 사실이 되는 이치가 또 사람 사는 일이다.

누가 그런 헛소문을 믿나.없는일이다.그만 입 다물라 하였지만 그것으로 끝날일이 아닌것이다.

날마다 정안로와 희란마마의 사주를 받은 대신들이 몰려와서 망측하오,민망하고 부끄럽소,사직의 수치이오,통촉하여 

주옵소서.진상을 밝히시고 주상의 위엄을 더럽힌 간부들을 처결하시오.어쩌고 저쩌고.....

썩은 고기에 달려드는 개 떼처럼 전부 다 몰려들어 상감마마를 압박하였다.

일파만파 .

소문이 사그라지기는커녕 갈수록 무성하여지고 살이 붙어 나돌았다.심지어는 중전마마와 강두수가 배까지 맞추어보았다더라.

서로 오간 정표가 만만찮더라.상심하고 배신당한 강두수 부인 문씨가 은장도로 가슴찔러 자결을 하려다가 간신히 살아났

더라.더없이 망측하고 잔혹하였다.

너무 더러워서 입에도 담지 못할 상스러운 구설들이 그동안 상감마마께서 중전마마를 장하게 소박 주었던 과오와 맞물려

그만 사실이 되고 말았다.

허기는 그리 장하게 버림받고 잉첩에게 밀려 그림자처럼 살던 분이니 마음의 이지처나 작은 위로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매일같이 만나는 사이였지 않더냐?

눈정들면 속정들고,속정들면 손도 잡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 연유이니 학사 강씨가 감히 눈 치켜들고 상감마마를 대적하여 쓴소리를 할수 있었던 게다.

제 목숨 내어놓고 덤벼들던 버리장머리는 실상 중전마마를 사이 두고 맞붙은 연적의 기상이었던 게지.

저가 감히 무어라고 중전마마께 새를 바치고,가락지를 준다더냐?

허기는 중전마마도 학사에게 유난히 다정하시었다.

글을 핑계대고  궐문이 닫힐 때까지 그를 곁에 두기 예사였다.

심지어는 상감마마가 교태전에 들지 않을 적에는 야심한 시각까지 함께 있기도 하였단다.젊으나 젊고 늠름한 장부 아니냐?

한참 춘정 돋는 어린 중전마마가 마음이 흔들릴 만도 하지.암만!정분이 나고도 열번은 나고 남지!

사실과 거짓.

음해와 진실.

소문과 결백이 뒤섞였다.

아무리 아니라 한들,강하게 지아비인 왕이 비호한다 하여도 가릴수 있는 도를 넘었다.

또한 청백지신에 허물이 낀 터라,청천 날벼락.기함하여 까무라친 중전마마 청명한 이름에 씻을수 없는 상처가 난것이다.

서경당의 중전마마,날벼락 같은 구설에 하도 어이없고 기막혀서 입도 차마 벌리지 못하고 까무라쳤다.

사실은 이미 뒷전,명색이 사직의 안지존이요,상감마마의 한분 정궁으로 한점 부끄러움없이 살아온 자신의 삶이 하릴없음에랴.

망신은 이미 다 당한것인데 사실이 가려지면 또 무엇하리.

까맣게 타서 핏기 하나 없는 입술을 열어 중전마마,탄식을 하였다.

이미 흘릴 눈물은 다 말랐다.

차마 배어 나오지도 못하는 물기가 다시 짓무른 눈가에 살포시 맺혔다.

"......내가 죄가 많소.내가 처신을 잘못한 게지.내가 구설거리 생길 빌미를 준것이야."

"그런 말씀은 절대로 마옵소서.둘러보고 또 돌아보아도 마마께서 처신을 잘못하시고 법도를 어긴 것은 하나 없나이다.이 

모든 일이 그 월성궁의 무도한 계집이 마마를 해치고자 작심하여 벌인 일이 아니겠습니까?마음을 강잉하게 잡수시고 담대

하게 대처하십시오.허구한 날 그 악독한 것을 어진 덕으로 비호하사 내버려 두었더니 기어코 고년이 이런일을 벌이는구만요."

"맞습니다,마마.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시면 아니 됩니다.내명부의 기강을 들어 감히 정궁마마를 해치려는 그 계집을 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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