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6/200)

으로 빼어났

다. 천하에서 짝을 찾아보기 힘들 만치 요염하고 고왔다. 어제만 하더라도 곱다 싶었던 경조

도 그 아이 

옆에 서니 태양 빛 옆의 촛불이라 할 것이니 이미 빛이 바랠 정도였다. 

눈에 다소 빛이 없고 맹한 인상이 약간 흠이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것이 오히려 기이한 

백치미까지 

풍기었다. 사내가 보기에는 날로 잡아먹어도 비린내 하나 나지  않을 것처럼 요염하였고 심

지어 혼백이

라도 빼어주마 하고 달려들 만치 빼어난 자색이었다. 

단국의 천하에서 내 미색을 따를 계집이 어디 있을까  자신만만하였던 희란마마, 이토록 제 

가까운 주변

에 저를 수십배 능가하고도 남는 야들하고 탱탱한 계집아이가 있었다 함을 처음 안 것이었

다. 순간적으

로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게다가 요것이 나이 또한 꽃다운 열 아홉이라! 이제 서른인 저하고는  아예 견줄 수조차 없

는 싱싱한 계

집이 아닌가? 꽃으로 치자면 막 봉오리를 벌릴 즈음의 바로 그  때. 마치 꿀과 향기로 만들

어진 듯한 그

런 미색이었다. 

희란마마, 저 잘났다 하는 오만한 자존심이 약간 훼손된 터로 푸르르 강새암이 돋았다. 약오

른 목청으로 

톡하니 물었다. 

   

"그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언, 언년이라 이리 합니다, 큰마마." 

"언년이? 흥, 그 이름이 너무 천격이고 촌태가 졸졸 흘러서 아니 되겠다. 이제부텀은  네 이

름을 옥선이

라 하여라. 생김이 제법 고우니 사내 깨나 후릴 팔자라? 그 낯짝이야 제법 한가락하는 바이

나 벗겨놓으

면 어떠할지...... 네 이년, 의대를 벗어 보아라." 

   

졸지에 옥선이가 된 언년이. 의대를  벗으란 희란마마 하명에 엉거주춤  어찌할까요 하듯이 

교인당을 바

라본다. 새파랗게 치켜 뜬 큰마마 눈빛에 지레 질려 달달 떨였다.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 모르느냐? 너는 지금 지엄하신 주상 전하의 후궁에  들 후

보로 큰마마께 

선을 보이는 것이다! 만에 하나 네 몸에 무슨 병이라도 있어  주상 전하를 모시었다 전하게 

혹여 탈이라

도 난다 할 것이면 너 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큰마마조차도 요참의 형을 면치 못하게  되느

니라. 다른 뜻

이 있는 것이 아니고 네 몸이 건강한지, 병은 없는지 그를 보시려는 것이다. 그러니  하명을 

받들어라! 옆

의 경조도 이미 다 그런 시험을 거쳤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란다." 

   

찬찬한 교인당의 말에 비로소 옥선은 마지못하여 옷고름을 풀어 알몸이 되었다. 

이 대문 안에 들어서던 순간부터  머시속에 새긴 한마디. 큰마마 하명을  어기면 저의 목숨 

뿐 아니라 제 

집 식솔들까지 다 죽는다는 협박에 맹하고 섬약한 넋은 이미  다 나간 상태였다. 그러나 이 

시험을 잘 넘

기면 다른 분도 아니고 주상 전하의 후궁이 될지도 모른다 하는데 옥선은 은근히 가슴이 설

레는 참이다. 

   

"흐음? 살갖이 촉촉하고 매끄러우니 상급이로구나. 게다가 티  한 점도 없으니 그야말로 빙

기옥골이라. 

어디 보자. 머리타래가 검고 윤이 흐르며 입술을 선명한 붉은 빛이라. 이야말로 미인의 조건

을 다 갖추

었구나. 젖통은 풍만하되 미련스럽지 않고 어여쁘며 젖꼭지가 거무스레하지 않고 고운 다홍

빛이니 주상

께서 곱다 하며 한번은 깨물 만하구먼." 

듣고만 있어도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희란마마, 마치 우시장에서 소를 고르며  품평하듯

이 옥선의 육

신 하나 하나를 뜯어보았다. 

"목선은 다소간 짧되 어깨가 조붓하니 의대를 입혀 놓으면 그 자태가 고울 것이고 엉덩이가 

딱 올라붙었

으니 이런 계집은 속집 맛이 기이하다 하였다. 게다가 방초도 가지런하고 윤기가 있으며 가

늘기 비단실

이라, 요런 것은 사내의 양기를 받아들이기 적당한 계집이란 증거이지. 허벅지가 딱  달라붙

은 것은 타고

나기 요분질을 잘 할 수 있다하는 것이니, 요런 계집 안에 들어가게 되면 당장 사내가 하얀 

피를 토하며 

혼백을 빼앗기는 법이다. 내가 너를 보자 하니 시정서 보기 드문 육신을 가진 바 분명한 계

집인데... 교

인당, 옥선이 요년이 처녀가 분명하겠지?" 

   

심지어 옥선의 입까지 벌리게 하고서 가지런한 치아까지 확인한 다음이었다. 희란마마는 미

덥지 못하다

는 듯이 교인당을 돌아보았다. 

   

"당연하옵지요 마마. 쇤네가 이미 검사를 하였나이다. 확실한 처녀이옵니다." 

"요년 겉볼 자태는 빠질 것 없이 곱되... 그래, 자네가 보기에 경조  저것과 요년을 비교하여 

속집은 둘 중

에 누가 낫던가?" 

"쇤네가 보아하니 두 아이 다 엇비슷하게 달금한 속집을  가진 듯 하였나이다. 경조는 다소

간 좁고 빡빡

하니 그런 대로 맛이 각별할 것이며 옥선이는 야들야들 보드라운 맛이 주인만 잘 만나면은 

극미라 할 것

입니다. 주상께서는 어떤 맛매를 더 즐기시는지..." 

"예전에 성은을 받은 년들과 저 둘을 비교하면 누와 더 닮은 터인가?" 

"글쎄요... 아무래도 경조와 비슷하다 그리 싶사옵니다만은.." 

"내가 보자 하니 이 두 아이 모다 주상께서 점고하실 만한 매혹을 나름대로  지니고 있음이

야. 내가 며칠, 

밤일 공부를 단단히 시킬 것이니 이  아이들을 별궁에 데려다 놓게! 내가  특별히 가르쳐서 

그 중 나은 아

이를 궐에 들여보낼 참이다." 

   

희란마마 궁녀들을 내보냈다. 창문을 반만  열고, 아기작아기작 걸어가는 두 계집의  자태를 

바라보았다. 

얼음이 얼 듯이 싸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네 년들이 심중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안다. 주상 성은 받아져서 호사 누리겠다 

단단한 결심

을 하고 있을 것이다만, 그래보았자 네년들은  어차피 내 허수아비인 게야. 감히 어디서  네 

년들이 주상 

성총을 탐낼 것이더냐? 네 년들이 내 눈을 피하여 딴 짓을 하는 그 순간이 바로 네 년들이 

죽는 날이다. 

흠.' 

사흘 후 오정이었다. 희란마마, 거한 아침상  받고 나서 분단장 곱게 하고 있는데  정안로가 

들어왔다. 근

신 풀리고 조만간 주상전하를 다시 제 치마폭에 쌀 수 있겠거니 하는 터라 모처럼 명랑하게 

아비를 맞이

하였다.   

"그나저나 아버님. 저가 궁금하니 어째서 왕대비전  잔치가 낼모레인데 저더러 잔치에 참석

하라 하는 봉

첩이 아니 내려오는 것인지요? 예조에서 일을 어찌 이리 늦장을 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미인 정경부인은 이틀 전에 궐에서 내려온 봉첩을 받았다 하였다. 저에게는 언제 오나 이

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는데 영 종무소식이다. 다소간 신경질이 났다. 

주상 전하 성총을 한 몸에 받고있는 제일첩(第一妾)이 바로  희란마마 저가 아니더냐? 중전

마마나 입으

시는 봉황문 그려진 스란치마 감히 무엄하게 마련하여 두고  기다리는 잔치였다. 항시 그러

하던 대로 대

궐 잔치 할 적마다 전하께서 부르시니, 상감마마 곁에 딱 하니 붙어앉아 잘난 체 성총을 시

위하리라 싶

었다. 예전부터 잔치 때마다 짐 곁에서 누이 고운 얼굴로 기쁘게 하여 주시오? 하고 미리부

터 다정하게 

약조를 하였다. 

그 날은 반드시 왕비인양 전하 곁에 붙어 앉아 만인 앞에서 내  위세 뽐내어 볼 참이야. 중

전 고년을 단단

히 눌러두고 기를 팍 꺾어버려야지! 이를 아드득 물고 작정을 하고 또 하였다. 아무리 중전 

고년이 잘난

체 하여도 소용없다. 오직 나만이 전하의 안곁이요 실제 교태전 주인이라 하였던 맹세를 남

들 앞서 보여 

줄 것이다. 

"음. 그것이 큰마마.... 일이 다소간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정안로가 쯧쯧 입맛을 다셨다. 패악질 장한 딸의 신경질을 어찌 감당할까 잠시 말을 골랐다. 

이날 정안

로가 일찌감치 월성궁으로 들어온 것은 실상 희란 마마를 달래려 온 것이었다. 

왕대비전 진갑잔치가 낼모레인데 그 잔치에 희란 마마는 참석을 할 수가 없는 것으로 결정

이 났다. 도무

지 방법이 없었다. 다른 이가 반대한 것도 아니고 상감마마께서  희란 마마를 궐 잔치에 참

석치 말라 분

부를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명부 잔치에 참석할 이들 첩지 올립니다 예조에서 말하길래  펼쳐보았다. 헌데 다른 내명

부 이름은 다 

들어가 있는데 오직 희란 마마만 없었다. 왜 월성궁 큰마마 이름은 없느냐? 버럭 따졌다. 그

랬더니 통나

무 같이 뻣뻣한 예조판서 김장집이 헛 하고 감히 비웃었다. 

"상감마마께서 분부하신 일을 저가 어찌합니까? 하명대로  하는 것이지. 따지시려거든 전하

께 따지시

오!" 

"뭐 뭐라고요? 전하께서 큰마마를 잔치 참석케 말라 하였다고요?" 

"그렇나이다. 내 말이 거짓일까 싶거든 직접 아뢰어 보소서. 나는 다만 그 말만 하오." 

단걸음에 달려들어가 감히 전하께 따져물었다.  항시 참석케 하시던 월성궁  큰마마를 어찌 

하여 이번 진

연에는 빠트리신 것입니까? 여쭈었다. 상감마마,  생각지도 못한 듯이 그래요? 하고  되물었

다. 긴가 민가 

의아한 눈빛으로 예판을 불러라 하였다. 

"짐이 진연 참석 명단을 보았거니와 건성으로 보았던 듯  싶다. 어찌 월성궁 누이가 진연에 

빠진 것인가? 

중전께서 그리 하라 시켰더냐?" 

"아니옵니다. 전하께서 그리 분부하시었나이다." 

"뭐라? 짐이 그리 하명하였다고?" 

"예, 전하. 그전에 진연의 준비를 아뢰면서 여쭙기로  모든 행사를 '법도대로' 할 것입니까? 

여쭈었습니

다. 그때 전하께서 그리하라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삼정승 다 계신 터였으며 승지가 기록하

기 틀림없나

이다. 하여 신은 전하께서 월성궁 큰마마 일을 그리 정하신 줄을 알았나이다. 첩지 없는  분

이니 그 분이 

잔치 참석할 것이면은 전하께서 따로 하명을 하심이 타당한데 그저 <법도대로> 하시라  하

기에 그분은 

못 올 것이다 이리 알았나이다. 의심이 나시면은 승정원 일기를 보옵소서. 전하께서 그리 말

씀하셨나이

다." 

   

김장집의 되받아치는 말에 왕도 유구무언(有口無言). 정안로도 마찬가지였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예판이 거짓을 말한 것은 없었다. 그 전에서 모든 잔치를 법도대로  할 

것입니까? 

하기에 당연히 그러하여야지! 하였는데 그것이 덫이었다.  뉘든 궐 안팎으로 법도 어기면은 

모다 큰 경을 

칠 것이다 추상같이 하교하신 분이  전하였다. 희란 마마 한 사람을  잔치에 참석케 하고자 

그 분부를 이

제 와서 왕 당신이 먼저 뒤집을 수는 없음이었다. 

"아무리 귀하고 총애하는 여인이라 하여도 짐이 왕 된 위엄까지 훼손해가면서 그 뒷곁 보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오, 오직 짐이 법도대로 하라 하명하였기로 그대로 가야지 별 수가 없소. 허니 월성궁 

누이는 입

궐케 마오." 

   

왕도 그러하거니와 정안로 저가 아무리 따져보아도  내명부 직첩이 없는 희란 마마가  궐의 

공식적인 잔

치에 참석할 명분이 없었다. 딱 하나 방법은 상감마마의 비호가 있거나 잔치의 주인인 왕대

비나 중전이 

너그럽게 처분하여 먼저 희란 마마를 부르면 되기는 되었다. 

허나 오직 한분 월성궁 마마를 비호하실 전하께서 <법도대로 하라> 하면서 먼저 뒤로 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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