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빈은 진정 주상의 참 어미였소이다. 낳기는 희빈이었으되 기르기는 창빈이라. 제 속으로
낳은 의완을
어이없이 잃고 도통 살 뜻이 없어 식음을 전폐하였지요. 안타까운 터로 그이더러 선대왕이
동궁을 창빈
에게 안아다주며 그대가 원자를 훈육하오 하였소이다. 어질고 학문 높고 속이 깊은 터로 참
으로 요조숙
녀라. 피와 살을 베어 동궁을 길렀거늘... 그러하니, 오죽하면 희빈조차 눈을 감으면서까지
창빈 손을 부
여잡고 주상을 부탁하옵니다 피를 쏟으면서 부탁을 하였겠소이까? 그런 터로 주상께서 불측
한 정해에
휘말려 광증을 부려대니 어찌 죽음으로 고변하지 않을 것인가? 오직 한사람, 진심으로 주상
을 지키려던
어미를 그렇게 망극하게 수모주고 쫓아낸 터로 어찌 사람이라 할 것인가? 상감은, 그 일로
인의효덕을
내버린 폭군이 된 것이오."
차마 어미된 꼴로 그 불측한 꼴을 두 눈뜨고는 못 볼 것이다 하여 월성궁 그것 목베라 이리
생고함을 질
렀다 하였다. 이 어미와 월성궁 그것 둘 중서 택하오 목을 늘이었는데 전하께서 미쳐 날뛸
적이니 무에
가 눈에 보이었을까? 먼저 발치에 가위를 던져주며 죽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 고함을 지르고
경덕궁을
뛰쳐나갔다 하였다.
"창빈마마 아하 서모마마께서들 그리 전부 정업원에 드셨다 하는 말을 들으니 저가 실로 마
음이 편치 않
나이다. 이 중전이 어찌 하면 좋겠나이까?”
"그저 알고만 있소. 주상이 그 문제에 대하여는 몹시도 민감하오. 중전이 그 것을 들고 나오
면은 또 자신
의 실책을 지적한다 노화를 낼 것이며 중전을 더 불편하게 여길 것이오. 그때서부터 이적까
지 단 한마디
도 주상이 그 일에 대하여는 입밖에 낸 적이 없어요. 가장 큰 실덕인 줄은 저도 안다 이 말
이겠지요. 허
나 자존심이 강한 주상이 절대로 그 일을 잘못하였다 이리는 못할 것입니다. 특히 창빈이
월성궁 그것을
애초부터 경계하기 심하였던 터라 창빈과 주상이 많이 척이 졌다오. 이모님이라 하여 부부
인을 만난다
하면은 고 계집이 살랑살랑 허리 흔들며 따라 들어오는데 한날 창빈 그이가 그리 말합니다.
그 계집 눈
을 보니 영악하고 계교가 보통 아니며 은근히 어린 주상 서투른 풋정을 자극하는 품이 심히
경계함직 하
다고 말입니다. 실로 창빈이 어질어요. 이런 말을 하면은 무엇하나 실은 희빈이 신분이 미천
하여 은근히
궐 내 여인들로부터 비웃음을 받았다오. 허나 창빈이 그이를 잘 감싸안고 도와주며 보살피
기 친동기간
보다 더 다정하니 희빈이 그것을 모를 것이던가? 희빈이 죽을 적서 오직 창빈만 찾아 그 손
부여잡고 주
상 부탁하옵니다 하고 울었답니다. 그토록 신의있고 어진 그이인데 남의 말 한번 심하게 하
는 적이 없는
창빈이 그런 말을 할 것이면 그 계집 성정이 심히 간교할 것이다 이리 싶어서 내가 급하게
서둘러 그 계
집을 혼인을 시키었지 않았소이까? 헌데 팔자라 그만 돌림병으로 그 계집이 남편을 여윈 것
이라. 이것
이 실로 어린 주상 심기를 더 자극한 것이 되어 버렸으니 고운 누이가 홀몸되어 불상하다,
싶으니 주상
마음이 그 계집으로 더 기울은 것이었다오.. 휴우- ”
원한다면 천하의 어떤 고운 여인이든지 다 취할 수 있는 전하께서 지친이며 나이도 한참 위
인 월성궁 여
인에게 망신인 줄도 모르고 그리 맹목으로 빠진 이유가 항상 궁금하였다. 비로소 왕대비마
마의 말씀으
로 짐작이 되었다. 그 여인에게 전하께서 깊은 정을 준 것은 실은 잃어버린 모친을 그리워
함이라, 월성
궁 여인은 전하께 단지 여인이 아니라 생모의 대신이라 함이었다.
중전의 얼굴이 어둠으로 까맣게 그늘이 졌다. 더없이 착찹해졌다. 전하께서 그 여인을 그리
생각하고 계
실다면 내가 아무리 하여도 영영 그 여인을 끝까지 버리지는 못하실 것이다 하는 절망이 엄
습하는 것이
다.
'비록 전하께서 이 중전을 생각하시기 하루하루 달라지시고 조금씩 그 마음을 여시는 것이
보이지만은,
월성궁 계집은 아무리 하여도 떼어낼 수가 없을 것 같아. 그 간교한 것이 다시금 전하를 미
혹하면 그 분
의 여린 심성이라, 모질게는 못하실 것인데..... 그리 되면 나는 다시 한번 가을 부채 신세
라.'
향기 좋은 녹차를 한 모금 마신 중전은 오래 전서부터 궁금하였던 것을 망설이다가 작정을
하고 왕대비
에게 물어보았다. 중전의 말에 왕대비는 마시던 찻잔을 놓고 휴우- 한숨부터 내쉰다.
"할마마마, 저가 한가지 궁금하기로... 선대왕께서 두분 정궁 마마께서는 요절을 하시었다 이
리 알고는
있사옵니다. 허나 법도가 지엄하니 중궁전이라 한시도 비워지지 못할 참인데 어찌하여 전
하의 생모이
신 희빈 마마께서 중궁전에 앉지를 못하신 것인가요?”
"내가 반대하였소이다. 그래서 주상이 이 할미를 그리도 미워한다오.”
늙은 왕대비전의 노안(老顔)은 쓸쓸하고 괴로웠다. 어쩌면은 후회도 스며 있는 듯 했다. 두
손을 깍지끼
고 왕대비는 찬찬한 어조로 어린 중전에게 지난 날 왕실의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허나 알아주오, 중전. 비로소 이날 내가 이제 진심을 중전에게 털어놓는데 내가 희빈 그이
를 미워하지
않았소. 단 한 분 대통 이을 원자를 생산한 이요, 심덕이 고왔으며 지성으로 선대왕 모신 여
인인데 내가
왜 미워하리. 사람들 말하듯이 신분이 미천하여서도 아니었소이다. 승은 입어지어 세자의 생
모이니 따
지고 보면은 중궁전 올려라 함이 도리지요. 허나 금상은 모르되 희빈이 선대왕 간호를 하다
가 이미 가슴
앓이 병이 옮았어요. 붉은 피를 토하는 것을 내가 본 것이라. 어찌 그런 이를 중궁전으로 앉
히리? 선대
왕이나 저도 그 사정을 아니 차라리 창빈 마마를 중궁전 올리소서 희빈 저가 먼저 사양한
터랍니다. 그
리 하려던 참에 선대왕이 갑자기 흥한 것이라오."
"그런 사정이 있었구먼요. 저는 까마득히 몰랐나이다."
"중전, 내가 선대왕 마음을 잘 아니, 선대왕께서 실로 총애하고 진심으로 아낀 여인이 오직
희빈이라오.
실은 그이가 장경왕후 시중들던 나인이었는데 한날 선대왕이 그리 말합니다. 며칠 전, 중궁
전 들어가는
데 비 오는 처마 밑에 홀로 앉아서 막대기로 글씨 연습을 하고 있는 여아가 있더라 하였소.
그 것이 무엇
을 하느냐 보았더니 그 방안에서 중궁전이 강학을 하고 있는 것이라. 그 흘러나오는 소리
엿들으면서 홀
로 공부를 하는 계집아이가 있기 심히 기특합니다 합디다. 그 계집아이가 그리 상감 눈에
띄여 손목을
잡히었지요. 덩실하니 금방 회임을 한 것인데 생산하니 또한 아드님이라. 그래서 정 일품 희
빈이 된 것
이오. 금상이 총명하다 소문 자자한데 아마 혼자 창 밑에 앉아 글공부하던 희빈의 그 핏줄
은 때문일 것
이오."
"예, 그리 짐작되옵니다."
"중전, 내가 희빈을 입으로 내여 말은 아니 하였어도 참 좋아하였소이다. 그 인품이 실로 꽃
이라, 용색도
고왔지만 겸손하고 착하고 고왔소. 선대왕이 워낙에 어질고 법도를 따르시니 간택하여 모신
정궁에게
다정하니 존중하시고 나머지 다른 여인들에게도 살뜰하셨으되 깊은 속정으로 마음이 쏠리기
는 오직 희
빈이라. 그러니 그 병환 중서 주위 모다 물리치고 오직 희빈만 곁에 두고 간호를 받으시었
지. 물론 원자
를 낳은 단 하나 여인인 탓도 있으되 그 정분도 두 분이 실로 첩첩하여 깊은 사랑을 받은
지라 아마 선대
왕이 진심으로 사랑한 여인은 오직 희빈이었소이다.”
중전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연경당에서 솔포 쓰고 몰래 입맞춤을 나눈 후에 왕은 그
렇게 말하였
다. 아바마마와 희빈 어마마마도 우리처럼 다정하고 정분이 지극하였어 하고...
"주상께서도 신첩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나이다. 어린 시절 두 분 마마께서 서로 은애하는
모습을 동궁이
신 전하께서 직접 눈으로 보았다고 말입니다. 두 분 마마께서 연경당 마루에 걸터앉으시어
손을 잡고 그
저 말씀도 없이 계신데 두 분 마음이 하나로 흐른다 그리 느끼셨다 하셨습니다.”
"그 말이 사실일 것입니다. 지엄한 궐 안 지존의 자리, 상감이라 하는 분은 남들 보기는 화
려하나 실로
쓸쓸하고 고독한 자리입니다. 헌데 희빈은 선대왕을 깊이 이해하고 사모하니 실로 선대왕
마음곁이라.
말 한마디 없어도 선왕 뜻을 알아차린 이였어요. 내가 보았을 때도 선대왕께서 무어라 말도
없는데 척척
필요한 것을 대령하여요. 눈만 보아도 상감이 필요하신 것이 무엇인지 아옵니다 그리 합디
다. 깊이 마음
이 하나이고 은애하는 사이였으니 희빈도 그토록 빨리 선대왕 따라 간 것이라 나느 생각합
니다. 휴우,
내가 그때서 희빈을 중전으로 올렸어야 하였소이다. 모다 이 할미 실덕이오.”
왕대비마마께서 깊이 한숨을 쉬시었다. 중전은 전하께서 할마마마를 깊이 오해하신다 그제
야 깨달았다.
단 한 분 조모이시고 손자이신 주상과 왕대비전 사이가 왜 그리 멀고 서로 고개도 아니 돌
리는지 늘 궁
금하였던 중전이다. 어느 날, 조용히 윤상궁에게 물어보았다. 주상께서 생모이신 희빈마마를
할마마마
께서 미워하여 어마마마께서 상심하사 가슴앓이로 빨리 돌아가셨다 원망하십니다 하고 대답
이 돌아왔
다. 헌데 이 모든 것이 실상은 주상의 오해였다.
"그 말씀을 주상께 하시지 그러셨니까, 마마?”
"하면은 무엇을 할 것이오? 허구헌 날 그 정경부인, 이모되는 이와 월성궁 그 계집이 하도
귀밑에서 속
살거린 때문에 내가 그이 미워하고 구박하였다 그리 알고만 있거늘. 내가 나서서 반대하여
중궁전 아니
올렸다 이리만 믿고 있는 주상 아니요? 소생이라 하나 없던 선대왕이 단 한 분 얻은 원자라
그리 하여
모다 떠받들고 자란 탓이라 주상의 성정은 급하기도 하거니와 다소 편협하오. 그래서 남 말
을 잘 아니
듣고 저가 좋은 것만 듣고 믿는 버릇이라... 하물며 주상이 이 할미를 어려워하는 이유가 또
있소이다."
어진 노안에 깊은 후회가 어렸다. 쯧쯧 혀를 찼다.
"오직 한 분 왕자로 탄생하시어 모다 귀애하고 떠받들은 것이라 주상에게는 도통 저보다 어
렵고 높은 이
가 없었지요. 아비인 선대왕께서도 병환 중이시며 워낙에 어지시니 큰소리로 꾸짖음 한 적
없고 한번도
노화라 내신 적이 없으시니 누가 그 성질을 경계할 것이오? 하여 돌아가신 대왕대비마마께
서 내게 신신
당부를 하였소. 항시 그리 오냐 오냐만 하고 귀애함 만이 넘치면은 무엇이 옳고 그른 지 사
리분별은 어
찌할 것이며 지엄한 보위를 어찌 감당할 것이냐고요? 한 분이라도 윗전으로 어렵고 엄한 이
가 있어야
주상이 두려워하며 스스로 몸을 삼가는 법을 배울 지니 그 역할을 이 할미가 하여야 할 것
이라고 말이
오. 실로 그 말씀이 옳으시니 그 악역을 내가 맡은 것이라. 그러니 상감 생각에 저가 아무리
잘하여도 흠
을 잡아내고 더 잘하라 다그치고 경계하기 항시 못한다 하니 저인들 좋을 것인가? 자연히
이 할미 보기
를 싫어하고 만나도 어려워하니 마음이 자꾸 닫힌 참이라. 자꾸만 더 멀어지는 것이오. 결국
서는 이 할
미에게 정이 없는 참이라 그 포근한 정을 그리워하다 보니 월성궁 고것에게 미혹을 한 것이
오. 휴우..”
왕대비께서 어두워지는 중전의 손을 부여잡아 위로하듯이 토닥거리었다.
"휴우- 내가 중전에게만 털어놓는데, 속은 그렇지 아니한데 주상이 겉으로는 좀 인정도 없
고 박하오.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