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83/200)

야다 소반과 상이 들어갑니다. 생과방 나인이 아뢰었다. 들여 오라 하셨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무엄하게 빼꼼 들여다보았다. 두 분 마마, 장난질 치시던 모습이  역력

하였다. 상감

마마께서 중전마마 한팔 부여잡고 수틀을 억지로 빼앗으신 것이다.  중전마마 기어코 그 수

틀 다시 잡으

려고 상감마마 팔에 매달렸다. 팔짝팔짝 애가 타서 돌려주시어요 애원을 하는 참이었다.  아

래 것들이 들

어서자 금세 새침떨고 돌아앉아 수틀 들여다보시는 척 하시는  중전마마나, 모르는 척 서책

을 펼치는 전

하, 비록 시침이야 떼시지만 그 용안에 아직도 물린 웃음기가 선연하였다. 

얼마 후에 선이 그 것이 기수 배설하거라 분부받고 방안에  들어갔다. 한참 전에 들어간 야

다소반과 상은 

손도 아니 대시었다. 이것이 망칙하여라.  항시 단정한 중전마마 머리타래가 헝클어져  있고 

비단 옷고름

이 삐뚜름하였다. 그 짧은 틈을 타서 두 분이 부부지간  은밀한 희롱하시고 정분을 잠시 나

눈 것이 분명

하였다. 

자리옷 갈아입자 하시며 나가시는 중전마마 얼굴이 진한 복사빛이었다. 곁문을 나서는 중전

마마 뒷태를 

바라보는 왕의 눈빛에도 실웃음이 물리었다. 감출 수 없는 그리움이 담겨 있으니 예서 선이 

이년, 두 분 

지존 마마 사이가 실로 심상치 않도다 딱 직감을 한 것이다. 

중전마마 욕간을 하시었다. 염태 가꾸기에  별 관심이 없으시던 분이 몇  번이고 머리 다시 

빗겨라 하신

다. 눈빛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항시 시무룩하던 입가에 수심대신 미소가 머물렀다. 그저 수

수하신 중전

마마께서 이 밤서 어찌 이리 고와 보이시누? 시중들며 나인들이 소곤거리는구나. 

선이 년이 백설같이 새하얀 욧깃 주름을 펴고 봉황 수 놓여진 긴 베개 하나를 놓았다. 중전

마마께서 자

리옷 갈아입고 들어오신다. 밤시중 준비하여  드리는 아랫것들 모두다 재촉하여 물리고,  맨 

나중에 웃음 

머금고 대전 지밀 몽상궁이 병풍 둘러 쳐드리고 나오는구나.  몽상궁과 중궁전 윤상궁이 서

로 단짝이니 

서로 주고받는 눈길이 흐뭇하였다. 

   

"전하께서 날보고 눈을 흘기십디다. 빨리 아니 나간다고 말이오. 실로  전하께서 중전마마와 

새 정분이 

드디어 나신 참이 분명한 지라 저가 그저 즐겁나이다.” 

"그토록 장하게 중궁전 외면하시고 소박주시더니 기어코 고운 심덕으로  중전마마께서 성총

의 물길을 돌

리신 것이니 어찌 감축하지 않으리요? 실로 고운 심덕 이길 장사 없다하는 옛말이 하나 그

른 것이 없소

이다. 이 밤에 덩실하니 회임이나 하고지고. 선이 너는 왜 그리 멍청하게 섰느냐? 네 방  가

서 자거라. 오

늘은 일이 끝났느니라.” 

"예, 마마님.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제 방으로 가는 척하던 선이 년이 뒤란을 돌아가는 척  하다가 슬며시 빠진 참이다. 가만히 

어둠 속에 숨

어 서서 서온돌 벽 뒤에 귀를 댔다. 방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엿듣는구나. 숨죽인  깔깔거

리는 웃음소

리가 다시 흘러나오니 분명 중전의 웃음소리였다. 금세 뒤따르는  것은 전하의 호탕한 웃음

소리가 아니

냐? 얼마 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분명 두 분 침수 드는 형용이었다. 얼마 후 제법 큰 소리

로 비명이라. 

분명 중전의 목청이다. 

   

"마마, 마마! 제발..” 

"앙탈하지 말라 하였지! 이래야 그대가  짐을 기억할 것이니 이게  싫으면은 원자를 낳아라 

이말이다." 

   

방안에서 두 분 지존마마 나누는  희롱이 첩첩하였다. 이윽고 철썩  손바닥으로 후려갈기는 

소리라. 부풀

어 오른 하얀 둔부에 전하, 치아 자국을 슬며시 다시 낸 참이다. 그대로 매끄러운 등을 겹쳐 

타고 입술로 

훑어 올라가던 상감마마, 중전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짐이 그대에게 할 말이 있어... 

선이 년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도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허나 분명 잠시 후에 자그맣게 

새어 나오는 

여린 신음은 중전의 것이었다. 전하의 승은 입어지면서 내지르는 중전의 귀여운 교성이었다. 

상감마마

께서 중전마마 소박주어 옷고름도 아니 푸시고 허구헌 날 돌아 누어 주무신다 소문 장하더

니 말짱 거짓

이었다. 이밤에 나누는 밤일이라, 이것은  정분이 첩첩한 부부지간 질탕한 잠자리가  아니더

냐? 

'흠, 중전마마가 천하 박색이라 손도 아니 대신다 소문 자자하거늘 이리 전하께서 중전마마 

상대로 은밀

한 정해를 푸시는 줄은 몰랐도다. 큰 마마께서 그동안 말짱 속으신 참이니 전하께서 월성궁

에서 말씀을 

하시기는 중전마마 소박주는 양 하시지만은 실은 성총이라 이미 중전마마 향하여 장한 것이

라. 이 사실

을 알면은 큰마마께서 아주 강새암에 뒤집어 질 것이다.' 

   

선이 년이 흠칫하였다. 저쪽에서 바스락 인기척이  난 것이다. 저가 예서 엿듣고 있는  것을 

보면은 큰 경

을 치는 것이라,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어둠 속으로 도망을 쳐버렸다. 아무도 고 앙큼한 것이 

두 분 지존 

마마 동정을 살피었다 함은 모르는 것이다. 

***********

한편 그 날밤. 집으로 돌아간 강두수. 곧은  자세로 서안 앞에 두고 밤이 깊도록 책을  읽고 

있었다. 허나 

간간이 내쉬는 한숨소리를 보자하니 명경지수(明鏡止水)같은 그 마음에 파랑이 일고 있음인

데... 책장

을 넘기는 손이 툭 떨어졌다. 

'내가 경솔하였던 게야. 내가 경솔하였어.' 

선비의 곧은 기상이라 하는 것은, 옳은 말을 함에 있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꼿꼿이 하고말

고, 불의를 보

면 반드시 간언함이 기본이라 생각하였다. 그 누구도 대놓고 상대하지 못하는 왕을 앞에 두

고 당당하게 

할말 다 하였다 하였는데, 돌이켜 보니 커다란 실수를 한 것이었다. 

'조그만 꼬투리를 잡아도 벌컥 노화  내시는 삐뚤어진 성정이라 하지  않는가. 격한 무안과 

분심을 애꿎은 

중전마마를 상대로 푸실 것이 뻔한 노릇, 내가 혈기만 믿고  그 사이에 끼여 곤욕을 당하실 

우리 중전마

마 사정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야. 내가 잘못한 것이야. 만약 내일 들어가서 주상께서 중전마

마를 상대로 

나 때문에 노화 내신 것을 들으면 내 먼저 중궁전  강학을 그만두겠다 청하리라. 우리 가엾

은 중전마마께

서 나로 인하여 주상께 필요없는 무안을 당할 수는 없지 않는가 이 말이다.'   

밤이 깊어 안방으로 들어서자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부인 문씨가 일어서서 지아비를 맞이

하였다. 젖

먹이 어린 아들이 옹알대며 어미 젖가슴에 붙어있었다. 잠을  재우던 터인지 아들눈이 감겨

가고 있었다. 

"밤이 이미 깊었습니다. 내일 또 새벽같이 나가실 것인데  어찌 하여 이리도 침수가 늦으십

니까? 누우십

시오. 겸이는 이미 잠이 들었나이다." 

"책을 다소 볼 것이 남아서  그리 하였소이다. 우리 인선이와 인경이는  벌써 잠이 든 것이

오? 부인께서도 

밤이 늦었거늘 어찌 주무시지 않았소이까. 곤하시겠소."   

   

강두수는 관을 벗으며 어질게 물었다. 문씨는 남편의 의관을 받아들며 상긋 수줍게 웃었다. 

   

"나으리께서 아직 잠자리에 드시지 않았는데 안에서 어찌 먼저 잠이 온다  하여 침수하겠습

니까? 인경이

와 인선이는 큰방에 가 있나이다. 어머님께서 두 아이를 다 데리고 주무신다 하여 큰방으로 

보내었습니

다. 이미 초당으로 들어가도 모자랄 아이들을 그렇게 노상  안방에서 재우시니 자꾸만 어리

광만 늘어갑

니다." 

"정이 많으신 분 아닙니까? 주무십시다. 나 때문에 늘 부인께서 잠이 늦어 내가 송구하오." 

   

어린 아들을 부부가 눕는 이부자리 옆 작은 요에다 곱게  누이고 문씨가 촛불을 껐다. 지아

비가 기다리고 

있는 이불 사이로 들어왔다. 늘 하던 대로 듬직한 지아비의  팔이 다정하게 팔베개를 해 주

었다. 남편의 

팔베개를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이런 저런 집안의 대소사 의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를 도란도란 

나누며 잠을 청하는 이 시간이 그녀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금슬이 좋은 만큼 강두수와 부인 문씨 사이에는 대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에 탄생한 이제 일

곱 살. 다섯 

살인 두 딸과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 아들이 어엿이  태어났다. 명가 진양강씨 가문의 종손 

강두수, 집안

끼리 정한 인연이되 안해를 생각하고 대접하기 어질고 지극하여 부부지간 아름다운  덕으로 

많은 사람들

의 칭송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젊은 나이로 중전마마의 글스승까지 된 광영이라.  안팎으로 

남들이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복 받은 팔자라 하였다. 

헌데 늘 감춤 없이 다정하던  지아비의 기색이 어쩐지 오늘밤은 달랐다.  잠을 쉬이 이루지 

못하고 전전반

측 한숨이 짙다. 근심이 된 터라 문씨는 돌아누워 부드러이 물었다. 

   

"나으리. 심중에 어쩐지 근심이 있으십니다. 어찌 그러하십니까?" 

"......별일 아닙니다. 내가 오늘 무엇을 좀 깊이 생각할 일이 있어 그렇습니다." 

"말씀하여 보십시오. 소첩이 바깥일을 간섭하지는 못하되 들어드리기는 할 것입니다. 살아가

면서 지는 

짐은 평생 우리 둘이 같이 나누자 첫날밤에 약조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 부인께서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될 일입니다. 괜한 근심 마시고 주무시구려." 

쌀쌀맞은 것도 아니다. 대놓고 내친 것도  아니다. 헌데 순간 문씨는 말도 못하게  섭섭하여 

눈물이 핑 돌

았다. 지금껏 비밀이라고 없고 심중의 말을 다 털어놓던 지아비와 자신의 사이에 어쩐지 벽 

하나가 생긴 

듯 하였기 때문이다.   

남들은 모른다. 허나 알게 모르게 부인 문씨는 늘 인품 훌륭하고 나무랄 데 없는 지아비 강

두수를 모시

고 살면서 그에게 깊은 존경심과 더불어 일종의 불편함과 어려운 느낌을 항상 지니고 있었

다. 

너무 잘난 지아비를 모시고 사는 것이 꼭 행복만은 아닌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모자란 점

이 더 민망하

고 부끄러웠다. 게다가 그녀의 친정집안 아비가 월성궁 마마의 심복이었다. 허니 바른말  곧

잘 하여 산림

으로 쫓겨난 서림파 거두인 시아버지 강제남과는 가는 길이  달라진 형편이라, 도무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형편이었다. 허나 남편 강두수가 이미 오래 전에 정혼한 터로 어찌 파약(破約)을 

하겠느냐 

하여 혼인은 하였다. 허나 어려운 시집살이라 걸음걸이 하나 눈치가 보이고 말 한마디가 조

심스러워 문

씨는 솔직히 마음 고생이 만만치 않았다. 

심중에 그런 열등감과 불안함을 항상 지니고  사는 그녀에게 예전같지 않는 남편의  기색은 

두렵고도 섭

섭한 것이었다. 그녀의 마음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진 것일까. 한숨을 쉰 강두수가 

일어나 앉

았다. 

     

"부인, 내가 아무래도 중궁전 강학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소." 

"네? 아니 그것이 무슨 말씀이셔요?" 

문씨는 깜짝 놀라 따라 일어나 앉았다. 강두수는 솔직하게  안해에게 오늘 편전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였다. 

"내, 젊은 혈기로 감히 주상전하를 상대하여 한말씀 올렸지만 이것이 결국은 우리 중전마마

에게 누가 된 

일 같습니다. 나로 인하여 애꿎은 중전마마께서 다시 상감마마께 애먼 경을 친다면 내가 참

으로 면목이 

없소이다. 내가 내일 중궁전 들어가서  먼저 스스로 강학을 그만 둘  것입니다 하고 청원을 

할 생각입니

다." 

"뜻대로 하시어요. 소첩이 나으리의 결심을 어찌  반대하겠습니까? 바깥으로 보이는 광영보

다도 나으리

의 마음이 편안하셔야지요. 저는 오직 한 분 나으리의 현명한 판단을 믿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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