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1/200)

는 스승이다. 경륜이며 인품이며 무엇 하나 모자라는 것이 없어야 할 것인데 말이야. 허면은 

혼인은 하

였는가?" 

"여덟해 전에 성가(成家)하여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둔 터입니다. 그 안해가 바로  한성 부윤

의 둘째 딸입

니다. 부부지간 서로 존경하는 덕이 아름다워 세상의 귀감으로 칭송이 자자한 터입니다.  무

엇으로 보나 

빠진 데 없이 덕성과 학문이 아름다운 인재라. 조하 중신들  모두다 글스승을 잘 골랐다 칭

찬이 자자한 

줄 아옵니다." 

중신들이 하나같이 잘 뽑았다 말한다는 데야 무엇을 어찌 더 말하리. 마지못하여 왕이 고개

를 끄덕였다.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칭찬하고 존경하는 사내라? 이것 더 호기심이 생기는고나.   

   

"듣고 보니 참으로 존경할 만한 인재로군. 알았소. 허기는 중전의 글스승이면 작은  흠도 있

어서는 아니 

되지. 중전의 학문 진척이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하고 그이의 인품이 어떠한지 짐이 직접 눈

으로도 보고 

싶소이다. 경이 내일 중궁전 강학이 끝나면 그이를 데리고 편전으로 들어오시오." 

"그리하겠나이다." 

왕이 자신에 대하여 이상하게 꼬여진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강두수

가 중전마마 

강학을 끝내고 하명 받아 편전에 들었다. 그 다음날 오후였다. 

***********

"전하, 하명을 받자와 중궁전 강학하는 강두수 들었나이다." 

"들라 하라." 

기오헌의 문이 열리고 대제학의 뒤를 따라 하얀 도포차림의 강두수가 허리를 굽힌 채 들어

섰다. 허리 굽

혀 공손하게 절을 하는 강두수를 찬찬히 살펴보며 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내로군. 너무 젊지 않은가 이 말이야.' 

가까이에서 살펴본 강두수. 중전의 글스승이라는  자는 사내인 왕 자신이  보아도 감탄하게 

될 만큼 늠름

하고 아름다운 기상을 지녔다. 원체 관옥 같은 미장부인데다 깊은 지혜와 어진 인품이 그대

로 드러난 고

요한 안색인지라 누가 보아도 저절로 존경심이 끓어오를 듯 하였다. 

지존이신 왕 앞에서도 공손하나 비굴하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법도에  맞게 절을 하고 자리

에 꿇어앉았

다. 깊은 호기심이라, 왕은 그를 자신의 바로 앞에 내려앉아라 명하였다. 

"가까이 다가와 편안하게 앉으시오. 비록 경이 미신(微臣)이되  중궁전 스승이라. 따지고 보

면 짐에게도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 아니련가? 내관은 비의 스승께 방석내어 드려라." 

"망극하옵니다. 전하." 

일어나 자리를 옮기는데 듬직하고 훤칠하였다.  흠. 잘난 사내란 말이지.  참말 잘난 사내란 

말이지. 왕은 

자신도 모르게 서안 모서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자꾸만 비틀어지는 심사를 억지

로 다잡으며 

점잖게 말을 이었다. 

"그래. 짐이 하문하노니, 비(妃)의 공부가 얼마나 많이 진척되었는지 알고 싶구먼. 중전이 일

찌기 부원

군 아래에서 내전 깨나 익혔다 들었으며 성품이 명민하고 부지런하시니 공부도 열심히 하신

다 들었소." 

"황공하옵니다. 마마께서 알고 계신 그대로이니, 중전마마께서는 실로 영민하시고 매사 성실

하시니 이

미 쌓으신 학문 높으시옵니다. 신이 하찮은 글줄 익혀 감히 중궁전 강학을 담당하고는 있사

온데 어찌나 

매섭게 캐물으시고 열심이신지, 매일매일 일취월장. 신이 그저 진땀만 나고 두렵사올 정도이

옵니다." 

"다행이로군. 허기는 중궁전이 훗날 원자의 모후가 될 참이라. 어미가 어리석으면 원자도 따

라 어리석을 

것이 아니던가? 경은 중전을 지존이라 생각지  말고 한낱 학생인 양 대하여 매섭게  꾸짖고 

바르게 이끌

어 주오." 

말씀은 의젓하시었다. 당부하시는 말씀도 사리에 맞았다. 헌데  듣고있는 강두수, 속으로 혀

를 차고 있었

다. 그렇게 말하는 왕 당신. 중궁전더러 공부 열심히 시켜라 하지 말고 당신 처신이나  똑바

르게 하시오 

일갈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였다. 

매사 모범이 되고 귀감이 되어야할 지존이 망신스럽게  애욕에 눈이 어두워 강상(綱常)마저 

어기고 천하

의 폭군노릇이라. 천하에서 가장 귀하고 고운 지어미를 소중하게 아낄 줄 모르고 허구헌 날 

구박이라. 

내전의 그 분을 감히 물건인양 이것 저것으로  부름하고 발에 낀 때처럼 차고 다니는 꼴을 

모를 줄 아는

가? 그런 터에 말씀은 번드레. 중전마마더러 공부 잘시켜라 당부를 하여? 

강두수, 어진 눈을 치켜뜨고 왕의 용안을 감히 똑바로 응시하였다. 

"연치 어리시고 비록 내전의 분이라 하나  참으로 중전마마께서는 여군자(女君子)라 일컬을 

만 합니다. 

대저 공부라 하는 것은 안으로 스스로를 어질게 하고 밖으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함이라 알

고 있나이다. 

감히 글 스승이라 칭하는 신이 보옵건대, 우리 중전마마께서는 어지시고 알뜰하시며 안팎으

로 공경함이 

바르옵니다. 경전에 나온 가르침에 따라 한 톨의 어김도  없고 손톱만큼의 어리석음도 보이

지 않았나이

다. 허니 군자 중의 군자라. 물론  이런 분을 내전으로 맞아들인 상감마마야말로 성군  중의 

성군이라. 전

하께서도 중전마마 못지 않게 바른 학문 익히시고 강상의 덕을 보여주고 계심을 신은 믿어 

의심치 않나

이다." 

명민하시고 눈치는 빠르다. 가만히 강두수의 말을 듣고있던 왕의 용안이 갑자기 시뻘개졌다. 

얼핏 듣기에는 칭찬이었다. 헌데 곰곰이 헤아려 보자하니 이것, 둘러친 지독한 비웃음이  아

니던가? 아

주 잠시 마주친 시선. 물론 감히 지존의 용안을 함부로 바라본 터라, 금세 강두수가  고개를 

조아렸다. 허

나 그 짧은 순간 오간 눈빛은 치열한 기 싸움이었다. 왕이 강두수의 눈에서 발견한 것은 분

명한 비웃음. 

인간으로 바르지 못하고 어리석은 그를 경계하고 아래로 깔고 보는 조롱이 분명하였다. 

부드럽고 어진 말속에 스며 있는 독한 꾸짖음의 가시 한 개. 곁에 시립한 대제학도 흠칫 놀

랐고, 열심히 

기록하던 좌우승지들도 긴장하여 붓을 멈추었다. 

성질 급하고 도도하고 매사 저 혼자 잘났다 설치는 왕이 별 것 아닌 미천한 선비  강두수에

게 제대로 한

방 먹은 것이다.     

왕 네가 매사 어리석다 비웃고 다니는 그 중전마마, 실로 영리하시고 학문 높으시고 아름다

우신 분이란

다. 헌데 지아비인 너. 왕이라고 용상에 앉아만 있지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천한 계집

의 치마폭에 

푹 파묻혀 허구헌 날 방탕함에  폭군 노릇이라. 왕이랍시고 공부하고  강학 하면 무엇하니? 

네가 인품 다

스리고 백성 사랑하고 왕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 이런 일갈(一喝)이었다. 

'저, 저 죽일 놈이 있나!' 

항상 짐은 어리석은 폭군이다. 강상의 덕도 지키지 못하고 패도만 걷는 소인이다 하는 자격

지심이 강한 

왕이었다. 허니 은근히 꼬아 내려치는 강두수의 말 한마디에 격분을 한 것은 당연지사. 격한 

성질 같아

서는 당장 저 무엄한 놈을 끌어내어 목을 베어라 호령질을  하고 싶었다. 허나 체면과 위신

이 있는 법. 왕

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용포자락에 감추었다. 억지로 웃는 낯을 하였다. 

"짐의 눈이 밝아 아름다운 중전을 맞이한 복을 부러워함인가? 경의 말을 듣자하니  짐이 천

하에서 가장 

고운 이를 내전에 앉힌 참이라. 모름지기 집안이 잘 되려면  안해가 잘 들어와야 하는데 매

사 폭군이라 

비난받는 짐이 어진 중전 맞이하여 낯에 금칠을 하였으니 이도  역시 짐의 복. 앞으로 공부 

잘하는 중전

을 공경하고 잘 모시어야겠군." 

"망극하옵니다. 겸손하게 낮추시고 내전을 높이시는 성상의 그 말씀이 참으로 아름다웁나이

다. 이미 학

문 높다 소문 자자하신 상감마마이신지라, 소인의 말에 행여  중전마마 글즐 실력 알아보련

다 나서실까 

두렵나이다. 허나 공부란 것은 글씨 외어 내려쓰는 것이 아니옵고 성품과 행동을 바르게 갖

춤이니, 다만 

그를 경계하여 중전마마께 알려드리고 있나이다." 

"흠. 공부란 글줄 많이 익힘이 아니라 바른 성품과  행동을 갖춤이라? 짐더러 학문 높다 슬

쩍 돌려치는 

말이 묘하구먼?" 

왕은 히죽 웃었다. 꽉꽉 어금니를 물면서도 한마디, 한마디 의젓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

내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건방지고 망할 저 글 스승이라는 놈의 건방진 면상을 향해 벼루라도 던져버렸

으면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학문 높은 만치 어진 성품  갖추고 제대로 정사(政事)를 보는 왕이  되어라 경계하는 말로 

들리는 게

야.  곧은 선비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 말을 하는 터라 하였는데, 이 날 짐 앞에서 두렵

다 하지 않고 

직언(直言)을 고하는 진정한 선비 한사람을 보았음에랴. 과연 경은 중궁전 글스승의 자격이 

있다 할 것

이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감히 지존을 향하여 불충한 신을 부디 내치시고 벌주시옵소서." 

"강직하고 곧은 터라,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하는 의기(義氣)가 아름답다 이 말이야. 

짐이 경을 

위하여 서책을 내릴 것인 즉, 공부를 많이 하여 중궁전에게 아름다운 부덕과 학문을 가리키

라. 짐은 다

만 이 당부만 할 참이다." 

"명심 봉행하옵나이다." 

물러가라는 하명을 받은 강두수. 대제학과 함께 뒷걸음으로 조심스레 문을 나갔다. 그때까지 

꾹꾹 눌러 

참은 분노와 무안함이 화르륵 돋아올랐다. 

같잖은 놈! 으드득 이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음산한  눈빛을 들어 방금 강두수가 나간 문

을 노려보는 

눈빛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감히 네 놈이 짐을 능멸해? 네 놈은 어질고 학문높다 그 말이지. 인간의 도리 지키고 매사 

어김없이 존

경받는 사내다 이 말이지? 건방지고 고약한 놈을 보았나? 감히 짐더러 대놓고 도리 지키지 

못하는 폭군

이라 돌려치다니! 천하에 괘씸한 놈.  너 같은 놈이 글스승이라 이리  하여 중전 옆에 찰싹 

붙어 앉아 날마

다 속살거리기를, 매사 짐을 어리석은  인간이라 쫑알댈 것이 아니더냐?  허니 어찌 그이가 

짐을 존경하

고 지아비로 순응하겠느냔 이 말이지.' 

제가 이적까지 한일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대놓고 뒤통수를 후려박은 강두수가 무작정 

밉고 불만

스러웠다. 중전과 왕 자신이 화합하지 못하고, 그녀가 자신을 꺼려하는 것은 글스승  강두수

가 중전더러 

저를 폭군이라 욕하고 같잖게 보라 꼬드겨서 그렇다고 생각하였다. 

왕의 입술 사이에 다시금 이 갈리는  소리가 불길하게 새어나왔다. 고약한 놈. 짐이  언제고 

네 놈을 내쫓

아 버리지 못할 줄 아느냐? 어디 두고 보자. 이놈. 중전이 네 놈을 신임하고 아낀다 하니 지

금은 잠시 두

고 보겠으되 아주 작은 꼬투리만 잡혀라. 저 멀리 삭주에다 귀양보내 버릴 것이다. 

왕이 분함을 참지 못하여 홀로 씩씩대고 있는 시각. 한편 편전을 물러나온 강두수. 대제학에

게 가벼운 

꾸지람을 듣고있었다. 

"허어. 이보게, 석전(강두수의 호) 상감께  너무 심하지 않았나 이 말일세.  무안하여 용안이 

시뻘개진 터

라. 참으로 내가 다 민망하였네 그려."     

"아무리 지존이라 한들 잘못하였으면 꾸지람을 들어야지요. 귀하시고 강하시나 아무도 경계

하심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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