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수라를 남기시옵니까? 시장하시다 하시어놓고요."
"아까 비가 보내준 화전을 다 먹어버렸지 무에야. 중전께서 직접 하여주신 것이라 하니 거
참 맛나더군.
시장한 김에 다 먹었더니 그만 배가 차 버렸소이다."
차수 대접을 받쳐올리며 중전이 보스스 미소지었다. 진달래 빛 온기가 작은 볼에 어렸다. 수
줍고도 고운
미소를 보자 하니 비로소 검붉게 들끓던 심화가 조용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투정하듯이
놀림하듯이
왕은 툭하니 뱉어냈다.
"야속한 지고. 대보름날, 그때 중전께서 약조하시기를 할마마마를 뫼시고 화전놀이를 할 적
에는 짐도 꼭
부르신다 하여놓고서! 그런데 짐이 성균관 나갈 적에 화전 부쳐먹나? 곤전의 심중에 짐은
아예 없는 것
이로다?"
"에그머니, 망극하옵니다. 일부러 작정한 일이었으면 당연히 전하를 뫼시었지요."
중전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부인하였다.
" 허나 금일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할마마마께서 아침 수라 하신 연후에 잠시 쳇기가 있노
라 하시면서
금원에 나오셨거든요. 침향정에서 차 한잔 우려 드리었는데 마침 게 앞에 두견화가 첫 꽃잎
을 펼친 터
라, 꽃전이 그립도다 하시었어요. 그래서 부랴부랴 꽃잎 몇을 따다가 할마마마께 받친 것입
니다. 그래서
전하께 보내드린 것도 얼마 되지 않지요. 신첩은 아예 입도 대지 못한 걸요?"
"맛이 장히 좋더구먼."
왕의 한마디에 다시 볼우물이 패며 작은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버선 벗겨주어 하듯이 발을
불쑥 내미는
왕을 곱게 흘겨보는 얼굴이 갈수록 짙은 복사빛이었다. 무례하기도 하고 짓궂게 지분거리는
왕의 손길
이 사실은 같이 가까이 합시다 하는 친밀한 장난질이라는 것을 이제 겨우 눈치를 챈 중전이
다.
"발씻어 주어. 곤하구먼. 내일이 참례라, 짐이 새벽에 나가야 하니 바로 침수듭시다 그려."
"석강은 아니하십니까?"
"석강 대신 영상이 형판과 더불어 고문서를 참조하여 법전을 새로 집필하자 하는 것을 들어
야 하는데 내
일로 미루었소. 금일 짐이 성균관 나가서 진땀을 뺀 고로 곤하다 도망쳤습니다."
"신첩도 오늘 스승님께 숙제를 덜하였다 엄히 경계를 들었나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할 것
입니다."
은대야에 담아온 맑은 물로 중전이 왕의 손발을 정성껏 씻어주었다. 구정물을 내가자 나인
들이 들어와
침수를 배설하였다. 밤 단장하고 귀밑머리 내리고 나붓이 다가와 금침 옆에 중전이 다가와
앉았다. 촛불
심지를 자르는 중전을 바라보며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음... 짐이 스승을 보내주고도 아직 한번도 그이를 보지 못한 터라. 그래, 글공부는 할 만
하오?"
"어찌나 성실하시고 학문이 높으신 지 모릅니다. 인품 높으시고 매사 어김없고 빈틈없으시
니, 스승님 앞
에만 앉아도 저절로 옷깃이 여며지고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난답니다. 참으로 감읍할 사, 상
상의 은덕으
로 신첩이 날마다 공부를 열심히 하옵니다."
"비는 훗날 사직의 기둥이 될 원자의 어미가 아니오? 더 열심히 하여야지요. 헌데, 그이가
겨우 성균관
진감이라는데 중궁전 글공부가 그 것만으로 충분할까? 음, 음. 비도 이제는 짐과 함께 정사
(政事)공부도
하여야 하지 않나?"
왕은 모르는 척 슬쩍 그물을 던졌다. 처음에는 이 핑계를 대고 석강부터 같이 하는게야. 그
러다가 슬슬
글 스승 바꾸어라 하는 거야. 담쑥 안겨드는 작은 몸을 억센 팔로 감아 안으며 심술맞게 홀
로 웃었다. 연
분홍 작은 젖꼭지를 입안에 넣고 희롱하며 다시 한번 다짐하였다. 어떤 놈도 이 사람을 보
지 못하게 할
것이다......
무엇을 어찌 하였는지 모르지만 넓은 금침이 굼실굼실 요동을 쳤다. 야릇한 숨소리와 앙탈
하고 호령질
하는 달콤하고 귀여운 소리가 문을 새어나와 지창(紙窓)을 울렸다. 수줍음 많은 어린 중전마
마. 두 손으
로 입을 막으며 날가슴이 된 지아비 왕의 거칠고 욕심많은 손길 안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다.
칠팔 년, 무르녹은 희란마마의 품안에서부터 시작하여 꽃 같은 궁녀들을 이리저리 날아다니
며 마음껏
싫도록 즐긴 그 일인데, 서투를 것도 없고 서두를 것도 없고 급할 것도 없다. 헌데 이상한
일이지. 작고
향기로운 꽃 같은 지어미만 안으면 마냥 급하고 욕심에 입이 마르고 갈증에 차니 참으로 환
장할 노릇이
다.
억센 제 몸으로 딱하니 작은 몸을 눌러놓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비단 자리옷을 풀어
헤치는데, 이
만하면 익숙해질 만도 할 법하건만, 해당화꽃 마냥 붉게 물든 얼굴로 바둥대는 앙탈은 어제
나 오늘이나
똑같았다.
귀엽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였다. 얄밉기도 하고 앙증맞기도 하고 마냥
사랑스럽기도
하여 왕은 짐짓 한 손으로 고운 방초 돋은 그 곳을 지분거리며 귓전에 대고 무섭게 을렀다.
사뭇 오므린
채 도통 풀어주지 않는 다리 사이를 건드리며 희롱하였다. 제발 애 좀 그만 태우고 이만하
면 좀 열어다
오 사정하였다.
"다정하자 약조하지 않았더냐? 참으로 자꾸 이럴 것이니?"
"하, 하지만...... 입만 맞추기로 하여놓고서....... 또 이러시니까......"
"짐더러 살길 마련하고 외소박 놓아라 하였다? 짐이 입 맞추어 주는 것은 좋아하면서, 왜
이것은 싫다
하는 것이니? 꽃가마 탄 듯 하여 준다 하지 않니? 여하튼 짐만 믿고 같이 다정하자 이 말
이다. 어제는 너
도 이리 하는 것이 좋다 하지 않았더냐?"
"어, 언제 신첩이 그러하였다고...... 흡!"
앙탈하고 아니다 반항하는 작은 입술이 난폭하기도 하고 다정하기도 하고 밉살맞기도 한 두
툼한 입술
안으로 스며들었다. 설왕설래. 입술을 타고 넘은 후 새하얀 화선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뜨
거운 입술과
축축하게 젖은 열정어린 혀가 목덜미를 거쳐 가슴을 머금었다. 말도 못하고 음음음 하고 요
동치는 작은
얼굴을 내려다보는 왕의 눈빛이 웃음기로 넘실댔다. 못내 음흉하고 즐겁기도 하고 요 밉살
맞은 것 보아
라 하듯이 지분대는 눈빛을 들었다. 그가 중전의 보드라운 귓불을 핥으며 속삭였다.
"싫다 하면서 왜 갈구하는 신음소리는 내는 것이니? 흥, 요것이 참으로 앙큼하도다. 이리 하
여도 너 자
꾸만 아니한다 뒤로 뺄 것이니?"
"아이고, 아이고, 제발 전하! 제발 그만하옵소... 아이고. 신첩을 죽이려 하심이뇨? 제발 그
만... 아이고,
전하."
방탕하고 염치없고 뻔뻔한 이 양반 하는 짓을 보시오. 굴렸다 안았다 요리조리, 감히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기기묘묘한 애무를 계속하는 왕의 몸 아래에서 수줍고 순진한 왕비는 그 손길과 입
술을 피하여
요동치고 아우성치며 감당하지 못할 일에 신음하였다. 이윽고 거칠고 끈끈한 폭풍이 여린
아래로 밀려
들어왔다. 말로는 아니라 하면서도, 결국은 너 좋고 짐 좋은 일인데 이리 하자구나. 끙끙거
리며 싫다고
앙탈하면 꼭 원자 낳아야지 협박질이었다.
"흥 저도 좋으면서 맨날 이리 빼더라? 이 밤에 잉태하거라. 짐이 날마다 씨를 뿌리는 고로
새 봄이라. 싹
이 터야 할 것이 아니더냐?"
"천지신명이 정해주신 일이라, 어찌 신첩에게 날마다 강요를 하십니까? 아이고ㅡ 마마. 제발
그만 하십
시오. 신첩이 죽사옵니다. 아이고......"
저절로 앓는 듯이 비명소리가 왕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랫것들이 빙 둘러 지켜 앉아있
는 침전이라,
왕과 교접하며 교성을 흘리는 것이 체모에 어긋나는 짓이라. 꼭꼭 참으려 애를 썼지만 견딜
수가 없었
다. 뿌듯하게 움켜쥔 손 사이로 비어져나온 풍요로운 젖무덤을 빨아 삼키며 왕이 흐흐거렸
다. 항상 입을
꼭 다물고 목석같이 참으려 애를 쓰던 어린 아내의 입에서 참지 못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온
것이 무척 만
족스러운 듯 했다.
"한번 죽어보렴?"
"마마처럼 짓궂은 분도 없으셔요!"
"흐흐. 인세의 극락이니 이리 하여 더불어 살고 지고. 좋으냐? 좋다면 말하여 보거라. 요것
이 앙큼하게
정숙하다 소문이 난 터로 은근히 짐을 죽이거든?"
새콤하고 달콤한 입술이 다시 마주쳤다.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좋기
도 하고......
여하튼 금침 안에서 벌어지는 이 일이 어린 그녀에게 있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모순 투성
이이고 갈등
인데, 하나 확실한 것은 왕이 이 일을 몹시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항시 입만 맞추고 잘 것
이야, 옷고름
은 싫다 하면 아니 푸께. 이런 식으로 약조를 하였다. 손목만 잡고 잘 것이니 곁에 오소 감
언이설로 속였
다.
-참이지요?
-암만, 참이지!
말은 넙죽넙죽 잘하시었다. 헌데 결국은 항시 이런 꼴이 나는 것이었다. 저가 싫어하든 말
든, 원하든 원
하지 않든 종국에는 둘이 엉켜 연리지처럼 비목처럼 하늘을 날며 한 몸이 되는 참이라. 대
체 이것이 무
슨 조화인지 모를 일이었다.
밤 내내 그러고도 모자란가? 참례 있다면서 일찍 대전으로 나가야 한다면서 새벽에는 왜 또
손목 잡아
끌어당겨? 금침이 땀에 젖어 축축해지도록 함께 얼려 밤을 지샌 것이었다.
이제 중전마마께서 상감마마와 정분 회복하시었으니 아무 걱정도 없습니다. 윤상궁, 대전의
제조상궁인
엄상궁과 마주 앉아 좋아라 하는데, 대전마마의 성총 홀라당 빼앗기고 제 살길조차 첩첩하
여진 월성궁
희란마마와 그 무리들이 가만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몰려올 폭풍이 언제 예고하고 몰려들
던가? 월성
궁에서 지금 벌어지는 흉악한 일은 두고두고 훗날 볼일이로다.
한편, 아무 것도 모르는 대제학 심사정이 그 다음날 아침 편전에 들었다. 무슨 긴요한 일이
있어 입조하
자마자 부르시나 의아하였다. 성급한 성품답게 앉아라 말도 없이 거두절미 그를 바라보며
바로 찔러들
었다.
"중궁전 강학을 하는 이가 대체 뉘냐? 짐이 갑자기 궁금하여서 말이다."
"강씨 성을 가진 성균관 진감 일을 하는 이인데 이름은 두수라 하옵니다. 그 아비가 바로
선대왕 시절에
호판을 지냈던 강제남이올습니다. 제술.양원 양과를 두루 장원급제하고 곧바로 낙향하여 도
산 이현의
수제자로 공부만 하였답니다. 강권하였으되 사양만 하고 입조를 하지 않았는데 몇해 전에는
당국으로
건너가서 동빈선생 제자로 삼년을 있다 돌아온 터라 전하께서는 잘 모르실 것입니다."
"흠. 그래? 벼슬자리에는 관심도 없이 학문만 하는 이라고? 기이한 사내로군. 허면은 나이는
몇이냐?"
"이제 갓 서른이 넘은 줄 아옵니다."
왕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대제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이제 겨우 이립(서른)이라. 중궁전 강학을 하기에는 너무 젊지 않느냐? 그래도 사직의 안주
인을 가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