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200)

입 발린 소리이되 전하께서 저들 나라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터였다. 사신의 우두머리 역

시 화답을 아

니할 수가 없었다. 하여 잔에 술을 채우니 궁녀가 다가와 그 잔을 전하께 바치었다. 그런 연

후에 감히 음

흉한 그가 왕에게 수작을 시작한 것이다. 

사신의 우두머리는 점잖게 왕을 향해 읍을 하였다. 

"단국의 전하께서 우리 전하에 대한 충심이 이토록 깊으시니 소신은 그저  감격할 따름입니

다. 헌데 전

하. 소신이 연경을 떠나오기 전에  그저 재미이노라 하시면서 아국의  전하께서 두루마리를 

하나 주시었

나이다. <짐의 이 근래의 희락이 바로 즐거운 수수께끼를 푸는 일인데 듣기로 단국의  국왕

께서 아주 영

명하다 하시었다. 고로 짐과 더불어 수수께끼 놀음이나 한번 하여보자> 이러하신 터입니다. 

이 것은 상

께서 직접 내리신 난제라, 부대  단국의 국왕 전하께서 이 수수께끼  놀음에 동참하여 상의 

작은 즐거움을 

도와다오 이러하신 터입니다." 

"허어, 전하께서 짐에게 수수께끼를 내리셨다? 만리 길을 멀다 않고 품에 넣고 오신 것이니 

필시 풀기 

어려운 난제일 것 같소이다. 짐이 은근히  떨리는구먼요. 헌데 어쩐지 그 뜻이 좀  고약하니 

어리석은 짐

더러 까불지 말라 하는 상의 질타이신 것 같은데… 핫하하. 한번 봅시다 그려! 재미삼아 어

디 한번 그 시

험을 받아 보지요!" 

왕은 사신의 말 한마디로 단번에 당국의 국왕이 전하 당신을 시험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챘

다. 

고약하고 괘씸한 터로 저 망할  놈들을 주리돌림을 하여라!! 일갈을  하고 싶지만은 대놓고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모자란다, 못한다는 말씀은 아니 하시는 분이라 태연한 기색으

로 그 고약

한 시험에 뛰어 드셨는데… 

내관이 사신이 건네는 두루마리를 소반에 담아 전하께 바치었다.  왕은 두루마리를 펼쳐 그 

속에 있는 글

귀를 읽어 내렸다. 겉으로는 태연하시되  그러나 속으로는 아연 당황하신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분의 용

안을 멀리 당국 사신들은 교활한 눈으로 살피고 있는데… 

솔직히 왕은 속으로 진땀이 나는  참이었다. 대국 황제가 보낸 난제는  그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기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슨 말도 되지 않는  말이냐? 내년에는 공물로 <바람>을 보내라니..  게다가 무어

라? 똑같이 자

른 나무토막을 가지고 뿌리 쪽과 가지를  알아내라니? 이것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난제인 

것이냐? 이 망

할 놈이 짐을 골탕먹이려고 아주 작심을 한 것이로구먼!' 

그러나 곧 죽어도 지기 싫어하는 도도한 성미라. 어찌 풀지  못한다 말씀을 하시랴? 심중의 

당황한 뜻을 

태연히 감추며 상감마마, 시답잖다는 듯이 그 두루마리를 곁에  시립한 도승지 황희에게 건

네셨다. 

"지금 이 두루마리를 대하자 하니 심히 재미가 있구려. 하지만  지금 세 살 먹은 아이를 두

고 장난하자는 

것이오? 이깐 것을 난제라 만리를 들고 오다니… 짐은 이미 풀었소이다. 허나, 지금 당장 말

을 하면 재

미가 없을 것이라. 그대들이 도성을 떠날 참에 짐이 그 해답을 하여 주겠소. 가는 정이 있으

면 오는 정이 

있음이라. 그때 짐이 만든 난제도 같이 보낼 것이니 당국의 전하께서 짐의 난제를 풀어보셔

야 할 것이

라. 핫하하. 대국에는 이렇게도 인재가 없는가? 겨우 짐더러 풀어라  한 난제가 이것이라니! 

말을 할 것

이며 실상 이깟 난제 정도는 우리 단국에서는 삼척동자라도 풀겠소이다!" 

대국 사신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모욕감에 사무친 탓이다. 그러나 전하, 조금도 굴하

지 않고 태

연히 자작자음 하시며 사신의 우두머리를 건너다보신다. 

"그 나라 미래를 알 것이면 그 나라 인재들을 보라 하였는데 당국의 미래가 걱정이요! 겨우 

이 따위 시시

한 것을 난제라 하여 짐을 시험하려 하다니… 이런 것도 그 나라 사람들은 제대로 풀지  못

한다 그 뜻이 

아닐 것인가?" 

"망극하옵니다! 허나 심히 그 이야기가 듣기 괴로우니 허면은 단국의 국왕께서는 우리 당국

의 인재들을 

비웃는다 이 말씀이니까?" 

갈(葛). 감히 사신의 우두머리가 몸까지 일으키어 전하를 상대로 맞대답이 당찼다. 

이 건방지고 고약한 놈들이 짐을 능멸하는  것도 모자라서 감히 맞상대질로 호령까지  하는 

것이냐? 이런 

분함도 잠시. 젊은 왕은 격한 자존심을 순순히 억누르며 싱긋이 웃음까지 머금었다. 필시 당

국의 국왕이 

이런 난제를 보낸 것은 보령 젊으신 전하를 감히 시험함이라. 

단국 인재들의 기량을 살펴봄이니 이는 당국과 단국의 기싸움이라  할 것이었다. 그러니 예

서 전하께서 

물렁하게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핫하하. 사신께서는 그리 알아들으신 것인가? 그저 짐의 혼잣말이니 괘념치 마시오. 좋소이

다! 사신께

서는 짐더러 지금 그대의 인재들을 비웃는다  분하신 모양인데 그대의 국왕께서 난제라  낸 

것이 바로 이

것이오. 사신께서 한번 풀어 보시오! 짐이 이 난제를 그대가 풀면 당국의 융성한 문물을 인

정하여 관을 

벗고 자리에 내려앉아 그대에게 절을 하겠소이다!" 

아무리 저들이 같잖게 여기는 소국이라 한 들 주상이시다. 그런 분이 짐이 지면 관(冠)을 벗

고 절을 하

겠다고 나서는 데서 사신의 오만한 입이 막힌 것이다.  장내관이 황희의 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아 사신들

에게 가져갔다. 

대국 사신들, 씩씩대는 얼굴로 두루마리를 펼쳤다. 한참동안 머리들을 맞대고 내려다보며 수

군거렸다. 

그러나 종내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봉한 채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왕은 입귀를 비틀며 도도하게 웃는 용안으로 그들을 대놓고 비웃어주었다. 

"보아하니 하답할 말이 없는 듯 하오? 그 난제를 대함에 있어 풀지 못한다 그 말이 아닐 것

인가? 그러니 

어찌 짐이 당국에 인재가 없다 비웃지 않을 것인가. 짐은 이미 푼 난제를 그나마 당국의 영

명한 관리라 

하는 사신들께서 풀지 못한다?… 핫하하. 국왕께서는 사신들께서 당할 이런 망신을 알고 계

셨는지 모르

겠소이다. 좋소. 우리 쌍방간 공평하게 난제를 풀어봅시다 그려. 짐이 이미 그대들이 도성을 

떠나는 날

에 하답을 할 것이다 하였으니 그때까지 그대들도 궁리하여 이 난제의 답을 짐에게 하여 보

시오." 

그러고서 잔치가 파작이 난 것이다. 

한잔 술에 용안이 대추빛이었다. 술기운까지 겹쳐 같잖은 놈에게  호령질을 당한 분함이 뼈

골에 새겨진 

수모로 차고 올라, 왕은 이를 갈며 내전으로 들었다. 주먹을 움켜쥐고 죄인처럼 따라 들어온 

중신들을 

노려보며 고함을 꽉 질렀다. 

"저 때려죽일 놈들!! 언제고 짐이 능지처참을 하고 말리라!" 

겨우 그래보았자 사자(使者)에 불과한 것들인데, 감히 짐을 상대로 맞호령질이라? 짐은 이날 

당한 수모

와 무안함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훗날 짐이 네 놈들 국경을 쳐서  혼구멍을 낼 적에 

반드시 네놈들 

목을 깃대에 매달고 말리라!! 

노기등등한 용안으로 짜증을 내며 강녕전에 듭시던 전하, 잰걸음으로 따라오며 난제를 진정 

푸셨나이

까? 하고 재우쳐 묻는 정안로를 위시한 정승들을 돌아보았다. 왕은 천만에! 하고 내뱉었다. 

"짐이 무엇 때문에 그 따위 짐을 희롱하고자 하는 같잖은 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인가? 짐

이 미쳤다고 

그 망할 놈의 시험을 가납하옵니다 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이 것은 경들이 해결해야할 것인 

게지. 저들

이 떠나기 전까지 중신들이 모다 모여 이 난제를 풀어내시오!" 

"허… 허면은.. 어째서 사신들 앞서는 그리 자신만만하게 난제를 이미 풀었다 확언을 하셨는

지요?" 

왕은 당황해하는 중신들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 까닭도 모르느냐 짜증스런  빛이 훤칠한 

왕의 얼굴에 

역력하였다. 

"망신스럽게스리! 그러면은 짐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하는 꼴을 그 무도한 인간들 앞에서 

보여야하였

단 말이오? 죄위정 그대가 지금껏 짐을 도와 별별 계교, 기기묘묘한 묘책을 많이 만들어 내

었으니 이번

도 짐을 대신하여 그 난제를  풀어줄 것이라 믿고서 큰소리를 쳤소이다.  그러니 경이 부대 

짐의 근심을 

덜어주오. 짐은 오직 외숙만 믿소이다! 핫하하." 

그러고서 전하, 짐덩이를 남에게 떠맡긴 터로 도망치듯이 강녕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안로 

이하 중신

들은 기가 막혀 멀거니 전하의 뒷모습만 지켜보며 서있을 뿐이었고… 

이제 큰일이로구나. 난제의 해답을 찾아내라 하는 짐덩이가 이제  졸지에 조하 중신들 몫이 

되어 버린 것

이다. 

그 다음 날. 낮강을 마치고 왕은 대궐에 입시한 중신들 모두를 편전인 사정전으로 불러들였

다. 당신 마

음에 그나마 지혜롭고 의지할 만한 이들이다 하신 사람들이었다.  학문 높고 지혜롭다 소문

이 난 이들이 

모다 모인 것이니 그깟 난제하나 못 풀랴 쉽게만 생각하신 듯 하였다. 

"그래, 짐이 어제 하명한 바, 그 난제를 풀었소?" 

"마… 망극하옵니다. 전하." 

하나같이 진땀만 흘릴 뿐 아무도 풀었다 대답을 하는 자가  없었다. 훤칠한 미간 사이에 신

경질을 주저리

주저리 달고 왕이 냅다 고함을 꽥 질렀다. 

"기가 막히다! 아니, 중신들이라 하는 것들이 이렇게 많고 많은데 그 중에서 이깟  수수께끼 

하나 풀지 못

하는 것이냐? 명색이 과거 시험  합격하여 글줄이나 익혔다 자부하는  인간일 진데 말이야. 

이런 것에 도

움하나 되지 못하니, 쯧쯧쯧… 답답이, 답답이… 이것을 풀지 못하면 대체 아국의  체면이며 

짐의 낯이 

무엇이 되겠는가 말이다! 대체 경들은 녹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에잇! 밥벌레들 

같으니!" 

정안로 이하 중신들 모두다 망극하여 식은땀을 흘리며 고두하였다.  그 중에서 특히 정안로

는 제일 난처

한 입장이라 할 수 있기에 더 좌불안석이었다. 

지금껏 정승 자리를 차고앉아 왕을  제치고 조하 일을 주무르기 오래였다.  주상 앞에서 감 

놓아라 배 놓

아라 간섭도 자주 하였다. 헌데 정작 주상께서 도와다오 하시는데도 입을 열 수가 없음이라 

도무지 체면

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은 두어두고 자신만을 치켜 뜬  눈으로 흘겨보는 왕의 시

선이 저에게 

돌려 친 힐난이었다. 어찌 이리 앉은자리가 가시방석이더냐? 

전하, 격한 성정답게 이맛살에 내  천자를 그리면서 주먹으로 서안까지 내려쳤다.  용마루가 

날아갈 듯이 

골을 벌컥 내시었다. 

멍청한 밥벌레 노릇을 하는 대신 모다 관복  벗고 강물에 가서 빠져 죽어라 이런 극언까지 

서슴지 않으셨

다. 이런 힐난에 주상의 노염을 받았으니 어찌 망극하지 않으랴?  윗방에 꿇어 엎드린 중신

들 모다 민망

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였던 것이다. 

"당국 사신들이 뜨기 전에 이 난제를 풀지 못할 것이면  다들 죽을 각오를 하라. 짐을 망신

시켰으니 입이 

열 있어도 할말 없으렷다? 흥. 이날서 새남터 물이 핏빛이겠구나?" 

듣기만 하여도 피가 흐르고 덜덜 떨리는 독한 확언(確言)을 하시었다. 한다 하시면 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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