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200)

“마마의 비(妃)로서 내전을 지키는 몸일진대 마마께서 노염 장하신 그 심기를 알지 못하여 

경망되이 굴

었으니 신첩이야말로 죄가 크옵니다. 오직 전하께서 이 못난  소첩에게 불만이 많으시니 신

첩을 회초리 

치시고 고정하옵소서. 성상께 감히 항명하여 달려든 신첩이니 달게  그 회초리를 맞을 것입

니다. 

작은 목청이되 군소리 한번 붙일 수 없게 딱 부러지는  터라, 그녀가 대놓고 사리분별 따지

고 드는 말에 

왕은 이 고얀, 이 고얀.. 하고 부들부들 떨면서도 맞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허기는 시작부터 억지 트집이었으니 그가 할말도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미 노염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들어온 길이 아닌가.  게다가 그저 자신의 말이라면 

눈 꼭 감고 

무작정 순명하옵니다 하던 중전까지 이 밤에는 감히 주상 당신을 상대로 한번 해보자 맞덤

벼든 것이니 

어찌 그리 무안하고 짜증스럽고 분한가? 

격분을 한 터이니 이제 왕은 옳고 그름은 아예 따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격한 성질머리

만 이기지 못

하여 발을 탕탕 굴렀다. 

"바, 방자한!…그래, 이 같잖은 것! 너 하는 말을 듣자하니 참으로 잘난 계집이구나? 아랫것

의 사정 가려 

저가 먼저 회초리를 맞겠다 감히 나서? 하,  기가 막혀서! 그렇게 네가 나서면 짐이 회초리

를 아니 칠 줄 

알았느냐? 이 방자한 것이 감히 뉘 앞이라고 눈을 치켜뜨고 짐을 상대로 입질이 이리도 교

만한 게야? 이 

같잖은 짓거리를 짐이 경계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짐을 상대로 사사건건 간섭에다  교만하게 

굴 것이니 

너가 필시 회초리를 맞아야겠다! 게 누구 없느냐?-" 

왕은 문을 활짝 열어 벼락같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짐이 이 밤에 내명부의 기강을 잡자하니 상정을 들라 하라! 고약한  저 계집을 회초리 칠 

것이니 당장 

등대하렸다!” 

그렇게 하여 중전마마께서 종아리를 걷고 상감마마께 회초리를 맞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대전의 엄상궁이 추상같은 왕의 명령을 덜덜 떨면서 궁녀들의 죄를 담당하는 상정을 인도하

여 윗방에 

들어섰다. 상정의 비단 주머니에서 회초리가 나오는데 훼가 그이면은 평생가도 아니 지워진

다는 물푸레

나무로 만든 무서운 회초리이다. 

중전은 이성을 잃은 터로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왕을 한번 처연히 올려다

본다. 그리고

는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상정이 꿇어앉은 윗방으로 올라가 치마 자락을 걷고 퇴침 위에 올

라가 섰다. 어

디 때릴 테면 때려 보아라 이런 도전적인 몸짓이다. 

그런 중전의 모습에 왕은 더  흥분하였다. 열분이 나다 못하여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지경이었다. 

그저 신첩이 잘못하였습니다 하고 싹싹 빌면 얼마나 좋으랴? 허면 못이긴 척 그만 둘 것인

데 도도한 저

것이 하는 양을 볼작시니 어디 끝까지 한번 해보자 이러는 것이었다. 그래, 어디 한번  누가 

이기나 해 보

자! 

노염이 장한 터로 으드득 이를 갈았다. 왕은 앉지도 않고 팔짱을 낀 채 이리저리 방을 왔다

갔다하며 버

럭 버럭 억지를 썼다. 

“짐이 하명을 하건대, 저 것이 금일 짐에게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 감히 아녀자가 지아비에

게 불손하였

으니 그 죄가 한 대이며 고약하게 짐더러 항명하여 겁도 없이 달려들었으니 그 죄가 두대이

며 부덕 높아

야 할 중전으로서 그 체모를 훼손하여 웃음소리가 방문을 넘었으니 그 지를 일러 매가 세대

이다. 저 계

집이 명색은 짐의 비로서 지존이라 하나, 오직 짐 앞에서 매우 불손하였다. 허니 너는  저를 

중전이라 생

각지 말고 죄인이라 여기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매우 쳐라!” 

상감마마의 하명이 지엄하니 감히 누가 있어 어길 것인가? 상정 또한 어찌 할 수가 없어 덜

덜 떨며 퇴침 

위로 올라선 중전마마의 여린 종아리를 후려칠 수밖에 없다. 

매운 바람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보기에도 망극한 피멍이 새빨갛게 중전마마 여린 종아리에 

새겨졌다. 

겨우 세대의 회초리이되 지존이 맞은 매질이라. 그 것은  주리돌림보다 더한 능멸이요 가혹

한 모욕이다. 

중전의 종아리에는 매질 자국이 남았으며 왕의 마음에는 피  배인 아픔이 새겨졌다. 회초리

가 중전을 칠 

적마다 마치 제가 맞는 듯이 움찔 하는 그 마음을 천하에서 누가 알랴?   

그러나 왕비는 눈을 내려 깐 채 도도하게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는다. 눈 하나 까딱않고 그 

참혹한 매질

을 감수하고는 내려섰다. 그리고는 왕이 있든지 말든지 바람 소리나게 서온돌을 나가버렸다. 

왕도 그렇거니와 그 누구도 그녀를 잡을 수도 저지할 수도 없었다. 그녀의 여린, 그러나  도

도한 뒷모습

에서 만약 예서 자신을 더 이상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노라 하는 뜻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

었기 때문이

다. 더하시면 신첩이 이 밤에 목을 맬 것이다 이런 표정이었다. 

“등불을 다오!” 

문 밖에서 들려오는 앙칼진 그녀의 목소리였다. 

“저… 저 고약하고 방자한 것이…” 

왕은 기가 끝까지 막혀 이제 헛웃음을 지을 도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끝까지 자신이 잘못하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오만한 상감마마. 저 것더러 매질

을 더 하였어

야 하는데… 하고 중얼거리며 힐끗  힐끗 방안에 시립한 다른 사람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만고에 없는 

망극한 일을 목격한 터로 시립한 모든 아랫것들이 등을 돌리고 돌아앉아 있었다. 말은 못하

지만 그들의 

등은 하나같이 주상 당신더러 부당하였고 잘못하였나이다 하는 뜻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

었다. 

왕은 태연한 안색을 애써 지었다. 그러나 솔직히 참으로 민망하고 무안하여 비실비실 그 정

도로 하고 동

온돌로 피신하였다.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다간 대전이고  중궁전 아랫것들의 눈총에 찔

려 죽을 것 같

았기 때문이다. 

“기가 막혀서! 참말 기가 막혀서!…” 

그러나 도무지 진정을 할 수가 없으니 왕은 계속하여 뒷짐을 쥐고 중얼중얼 방안을 왔다갔

다하였다. 

솔직히 왕은 제 눈으로 보고 제 귀로 들었어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유도 없을 

만큼 순하고 

어질며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 멍청이인 줄 알았던 중전 저 것이 짐에게 달려들어? 은근히 

도도하고 결

기가 차니 감히 짐을 이겨 먹으려 나서는 것이 아니냐? 

'그래, 너 잘났다!' 

왕은 어금니 사이로 비웃음을 꾹꾹 눌러 씹었다. 

‘고집이라 하면 짐도 한가닥을 하며 오기라  하면 짐도 지지 않는다! 어린  계집 주제에… 

말이 없어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기에 부덕이 높다 헛소문만 장하였구나! 요 것이 은근히 짐을 상대하여 고

개를 치켜들

고 이기려 들어? 제길! 계집이 무에 그리 도도하고 뻣뻣한 것이냐? 저가  먼저 고개 숙이고 

잘못하였나이

다 했으면 짐이 못이기는 척 그만두었을 것인데… 에잇! 짜증난다.  이것, 두고두고 또 짐이 

억지 트집을 

잡아 중전을 회초리 치는 수모를 주었다고 또 비난거리가 될 것이 아니냐?’ 

왕은 보료에 발을 뻗고 털썩 주저앉아 휴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당장 이 일이 소문이 나면 벌떼같이 달려들어 부당하나이다 하고 상소질을 할 예조관

리들의 얼굴

이 휙휙 스치고 지나간다. 노화가 나서 방바닥을 두드릴 왕대비전의 엄한 얼굴도 잠시 스쳐 

사라진다. 

“제길!!…” 

그는 다시 한번 혼잣말로 상욕을 내뱉었다. 

“다시 한번 난리가 나겠군. 짐은 또다시 아무 죄도 없는  중전을 두고 능멸하여 수모를 준 

천하의 혹독한 

지아비가 된 것이라. 필시 강상의 기본을 어겼다 말 많은 선비들이 벌떼 같이 달려들 테지? 

흥, 같잖도

다. 중전 그 계집, 참으로 기가 막히는 구나. 지금껏 얼마나 말짱하게 남을 속였으면 이렇게 

짐에게 고개 

치켜들고 패악질을 부리는 고약한 것인데 그저 어질고 잘났다 명성이 자자한 것이냐? 저가 

이렇듯이 남

들에게 그저 어질고 부덕이 높다 소문이 자자하니 짐이 조금만 저에게 호령질을 하여도 아

무 죄 없는 사

람을 두고 트집을 잡는다지? 아니, 아무 것도 아닌 아랫것 대신 저가 종아리를 맞는다 하다

니? 기가 막

혀서! 실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것이냐? 흥.. 소문은 또 그럴  듯하게 나겠지? 필시 중전

마마께서 어질

어 아랫것들의 사정을 보아주시니 종아리까정 대신 맞았더라 하고 말이야! 같잖은 것! 아까 

독이 올라서

는 짐이 있든 말든 방을 차고 나가는 좀 보라지? 그런 것을 두고서 어질고 부덕이 높다 칭

송한다고?..” 

에잇, 귀찮다! 

그는 벌러덩 보료위에 체모도 없이 드러누워 버렸다. 그러나  중전의 여린 종아리에 그어지

던 시뻘건 훼

를 생각하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다시 일어나 앉았다.  심기가 상하고 분이 오른 만큼 

또 한편으로

는 몹시도 얹짢고 괴롭다. 그는 안절부절못하고 다시 방안에서  이리저리 거닐다가 다시 앉

아 우두커니 

턱을 고였다. 

젠장! 젠장!!.. 

간간이 이를 갈 듯이 왕의 입에서 비틀려 새어나오는 말은  오직 그 하나뿐이다. 이토록 헝

클어지고 심란

한 마음을 어찌 다스려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이.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격한 분노와 흥분이 다소 가시었다. 어쩐지 왕은 이 밤, 중

전과 그 다툼

이 돌이켜 새롭게 보여지는 것이었다. 

‘헌데 실로 중전 저것이 제법 앙칼진 맛이 있는 것이다? 무작정 입을 봉하고 아무 소리도 

아니 하길래 

그저 멍청하다 하였지만 지금에서 비로소 보이는 게야. 저것  고집이라 희란누이는 저리 가

라 하지를 않

느냐?! 지존이라 하는 자리는 때로는 냉혹하고 단호할 때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말이야. 저 

것이 겉으로

는 조용하나 아까 짐을 향해 당당하게 할말 다하며 대들던 방자한 행적이며 그 눈빛을 보아

하니 실로 도

도하고 무서워. 훗날 중전 태를 빌어 원자가 태어나면 실로 제 어미 닮아 그 성정이 어질지

만 도도할 것

이라. 참말 왕다운 왕이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밤이 깊어 가니 왕의 치솟아  꺼질 줄 모르던 격분도 슬슬 잦아들며 고약한 

심술도 조금씩 

죽어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아까 일을  찬찬히 짚어보게 되는데 밀려드는  엉뚱한 생각이 

있었다. 문득 

왕은 그런 생각으로 흠칫 자세를 바로 하였다. 

이 것, 짐이 왜 이러느냐? 지금 짐이 저 건방진 것의  방자한 작태를 두고 오히려 흐뭇해하

고 있는 것이

냐? 

왕은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랬다. 그는 지금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서 기뻐하

고 있는 자

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것이 노화이든 분노이든 간에 중전이 자신을 상대로 속내의 감정

을 보여 주었

다는 것. 그 것으로 왕은 어쩐지 훨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기분을 느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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