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200)

"예, 전하. 사신들은 여장을 풀고 숙소에서 여독을  풀고 있사옵고, 대국 상인들은 장시에서 

이미 교역을 

시작하였다 하옵니다." 

"돈 버는 일이라 역시 상인들 발이 빠르구먼. 허면, 그들은 이번서는 무엇을  가져왔다 하던

가?" 

"늘 하던 대로 비단이며 서책이며  또 갖가지 대국의 산물들이라  하더이다. 저들이 바라기 

이번에 아국에

서 사 가지고 갈 것들은 인삼과 종이. 모시피륙이며 또한  황금과 은을 다소간 구할 참이라 

하였나이다." 

"짐이 윤허하니 나라에서 비축한 피륙과 인삼과  호피와 종이를 그들에게 팔아도 좋소이다. 

모시도 그들

이 구한다 하니 호조에 비축한 모시필 중에서 수천여 필  내놓아도 좋소. 대신 짐이 바라기

는 대국의 서

책들이며 또한 서역국에서 들어온 여러 가지 기계가 많다 하니 그 것을 구하고 싶소.  허고, 

그들에게서 

짐이 말을 오백여 필 구할 참이라, 호조에서는 그 값으로 은을 지불하면 될 것이오.  곧바로 

그 말들은 바

로 제주도로 보내되 잘 키워서 그  수를 늘려야 할 것이야. 허면은 이  번에 들여온 말까정 

하여 제주도에 

있는 말이 몇 필이 되는 것인가?" 

   

호조판서 하윤지가 장부를 열고 비점을 친 터로 고두하여 아뢰었다. 

   

"모다 사천 삼백  마리가 되는 줄  아옵니다. 조랑말과 교배하여  그 수를 늘린  것은 육천  

  

두이옵고 여진

족서 들여온 한혈마와 교배한 수는 이천 오백 두. 모다 만 이천 칠백두라 하였습니다." 

   

"모자라!! 십여년 간 키워온 말이 겨우 만여 두라... 앞으로 그 수가  세배가 될 때까지는 더 

키워야 하오! 

짐이 생각하기 당국서 들여오는 말은 한계가 있으니 지난번처럼 봄철에 여진족에게  미곡을 

풀어 말을 

사들이시오! 내년 봄까지 그 수를 오천여 두 더 늘려야 할 것이오." 

"분부대로 노력하여 하명을 반드시 이루겠나이다. 전하, 허면은 금은 어찌하실 것인지..." 

"호조에서 비축한 황금은 모다 몇 근이오?" 

"장부로는 지금껏 호조에서 비축한 금이 삼천  칠백 오십 근이며 지방 관아에 있는  것까정 

하면은 오천 

이백근이니 모다  팔천 구백 오십근이옵니다."   

   

전하, 고개를 끄덕이셨다. 대강 당신이 어림짐작 심중으로 헤아리기 그만 할 것이다  싶었던 

계산이 나오

니 굳이 장부를 볼 필요가 없다 하셨다. 

   

"허나 짐이 근심하기 금점의 생산이 작년보다 부진하니 그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

은 혹여 금점

의 관리가 허술하여 중간에서 도적질을 당하는 것이 많아 그런 것은 아니더냐? 호판은 관리

를 보내 각

처의 금점 현황을 다시 한번 철저히 확인하여라. 허고, 당국서 그 사정이 급하다 하니  황금

은 이천 근쯤 

내놓아도 좋을 것이다. 그 대신 요동성의 농지는 아국이 관리를  할 것이니 그를 잘 구슬려 

뜻을 이룰 수 

있어야 할 것이야!" 

"신이 잘 의논하여 전하의 어지를 반드시 봉행하올 것입니다." 

   

호조판서의 말이 끝나자 기다렸던 듯이 곁에 있던 정안로가 한마디 나섰다. 

   

"당국 사신들이 전하께 알현을 청하옵니다. 전하께 바칠 공물을 산더미같이 끌고 왔다 자랑 

자랑하였는

데요. 헛허허. 언제쯤 사신들을 알현하여 주실 것인지요?" 

"좌상은 말을 바로 하오. 짐에게 공물을 받치려 함이  아니라 금 내놓아라 협박하려 함이겠

지! 기껏해야 

당과자 부스러기 몇 점 내어놓고  미주알 고주알 트집잡아 짐을 들들  볶는 그들 버릇이라. 

짐이 그 것을 

모를까봐? 짐이 수일 내로 그들이 여독이 풀리면은 알현을 할  것이오. 비록 마음에 차지는 

않으되 손님

이라. 동방예의지국인 아국에서 어찌  찾아온 손님인 그들을 박대하리?  이조와 예조에서는  

그들을 대접

함에 있어 불편함이 없게 잘 차비할 것이며 모자람없이 융숭하게 잘 대접하시오. 이번 사신

들 접대는 우

상이 전담하여 맡되 다른 이들도 잘 도우시오. 물러가오!" 

   

그날 저녁, 앓아서 죽네 사네하는 말을 들은지라 어디 한번  사정을 보고지고 하여 왕은 근 

두어 달포만

에 월성궁에 납시었다. 

막 별당의 월동문을 넘는데 어쩐지 내당 안이 소란하였다. 어찌된 영문인가 하여 왕은 용안

에 다소간 주

름살을 지으면서 대문을 넘었다. 

막 전하께서 내당에 발길을 들이밀자마자기다렸던  듯이 터지는 아랫것들의 비명이  장하였

다. 

   

"큰 마마!!- 제발 마옵소서!! 제발 하지 마옵소서!! 마마. 고정하시옵소서!!" 

   

보란듯이 소복으로 갈아입은 희란마마가 막 대들보에 맨 하얀 끈에 목을 들이밀고 있는 참

이었다. 왕은 

너무 놀라 용안이 하얗게 질리어 우뚝 석상이 되어 마당에 서 버렸다. 

   

"아... 아니, 누.. 누이... 이 것이 무슨 흉한 꼴이오? 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몰라서 물으시니까? 진정 모르시어  물으시니까? 정인에게 버림받은  계집. 살아서 무엇하

리? 온갖 수모 

견디며 망극한 꼴 참아내고 오직 한 분 전하께  진심받쳐 순정을 드렸거늘... 이날서 신첩을 

헌신짝처럼 

버리시니... 인제 이 누이가 죽으렵니다. 돌아가시옵소서! 이미 이  계집은 전하께 죽어진 계

집이니 돌아

가시옵소서. 전하. 만수무강하시오. 이 누이는 전하의 소원대로 죽어버리렵니다! 흑흑흑" 

희란마마 아무 말도 못하고 벌겋게 낯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하는 왕의 모습을 보자 분한 

열불이 더 치

밀었다. 버선발로 마당에 뛰어내려가 흙바닥 위에서 대굴대굴 구르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천

박하고 기

막힌 패악질에 이미 혼이 반이 나간 터로 어찌 이러시오? 하고 저를 일으키는 왕의 용포 자

락을 감히 움

켜쥐고 고래고래 성난 고함질로 악독한 패악을 내지르고야마는 것이었다. 

   

"예는 왜 오신 것이야요? 늙고 못난 이 누이는 딱 버리시고 죽어라 하시지 예는 다시 왜 오

신 것이야

요?- 분하여라! 분하여서 죽을 것이다아!-  오직 이 누이 뿐이라고 날이면  날마다 맹세 또 

맹세라! 짐의 

심중에 오직 한 분 정인은 오직 누이요 하신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그 말씀을 하

신 지 몇 달이

나 되었다고 이리 이 누이를 기만하시고 배신을 하신답니까? 죽을 것이여요! 말리지 마옵시

오! 이 누이

가 딱 죽어버릴 것이니 그 후에 못난 중전 년하고 알콩달콩 재미나게 사시옵소서!" 

"허어- 누이!! 체통이 있습니다. 이러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십시다!! 짐이 다 잘못

하였소!! 다 

잘못하였으니 이러지 마시오!! 아니 뉘가 누이더러 죽어라 하였다고 이런 소동을 피우는 것

인가?"       

"신첩이 대체 뉘 때문에 천하의 요망한  것이라는 막말까정 듣는 수모를 겪고 사는  것입니

까? 팔자라 기

박하여 청상 과부가 된 몸으로 평생 동안 정조를 지키며 살 것이다 한 터로 오직  누이만을 

사모하였소 

한 전하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지성으로  마마의 성체 받아들인 죄 뿐인  이 몸입니다. 헌데 

인제 이 누이 

늙어지어 군내 난다 이 말이니 슬슬 딴 눈 돌리시옵고 이 몸을 배신하고 기만하심이니 훗날 

전하께서 이 

몸더러 비수 쥐어주며 죽어져라 할 줄 뉘가 알 것인가?  그래서 이 꼴 저 꼴 아니 보고 딱 

죽어지려 한 것

인데 왜 막으시었니까? 책임도 지지 못할  것이면서 왜 막으시니까? 흑흑흑... 못살  것이다, 

못살 것이

다.. 이렇게 전하께서 이 희란을 버리시고 배신하심이니 대체 내가 뉘를 믿고 살 것인가? 말

리지 마시어

요!! 저가 이 날서 딱 죽어질 것입니다!!-"     

   

그 기막힌 패악질로도 분심이 가라앉지 않으니  인제는 희란마마 제 머리카락 와드득  잡아 

발기고 목 아

래 시퍼런 은장도까지 빼어들었다. 말려 줍시오 이런 뜻인데 순진한 상감마마. 누이가  정말 

일을 낼 모

양이로다 싶어 간이 쪼그라든다. 짐이 그저 잘못하였으니 누이 제발 이러지  마오!! 하고 그

저 쩔쩔 매며 

심지어 손 모아 싹싹 빌 지경에 이르렀다. 

오호통재라. 

주상 전하, 대체 이 위기를 어찌 넘기시려나? 

***********

왕의 호령에 억지로 아랫것들이 밀고 안아 방안에 모시었다. 그러나 간교한 희란마마, 이 기

회에 완전히 

어리숙한 왕의 혼백을 빼놓을 것이다 작정을 한 터라 쉽사리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처연하

게 흑흑 울며 

에고 머리야 펴놓은 금침 안에 보란 듯이 드러누웠다. 줄줄  울며 신세 한탄만을 장하게 하

였다. 

왕이 방에 들어섰을 때도 벽 쪽을 바라보고 앉은 채  꼼짝하지도 않았다. 잔뜩 화가 났다는 

시위였다. 왕

은 말없이 도포 자락을 떨치고 그녀 옆에 앉았다. 

처음 방에 들어올 적만 하여도 그러하였다. 

아무리 희란마마 하는 양이 마음에 차지 않는 구석이 있었어도 여하튼 그녀를 버려두고 발

길을 하지 않

은 것은 자신이었다. 누이가 섭섭하여 심기가 무진장 상하였을 것이니 병까지 난 터라, 어지

간하면 비위

를 맞추어주리라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존이며 정인(情人)이라, 주상 당신이 모처럼 들어오셨을 것

이면 아무

리 분하여도 그렇지, 아무리 몸이 편안치 못하여도 몸을 일으키어 인사는 하여야지  말이다. 

그저 내가 

못마땅하니 전하께서 먼저 엎드리어 빨리 신첩 비위를 맞추시오 하고 시위하듯이 고집을 피

우고있는 꼴

이 갑자기 탁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그래도 왕은 꾹 참고 말없이 묵묵히 앉아서 희란마마가  진정하기만을 기다렸다. 허나 깡고

집은 희란마

마도 만만치 않음이라. 한참 동안 침묵만이  오갔다. 어디 누가 이기나 서로가 견주어  보는 

꼴이다. 

한참의 시각이 흐르고 나서, 왕은 한숨을 푹 쉬었다. 장부인 내가 여인에게 져주어야지 어쩔 

수 없지. 마

지못해 먼저 입을 열었다. 

"짐이 미안하였소." 

그 한마디에 마치 봇물처럼 흑흑 장한 울음보가 다시 터졌다. 희란마마는 제 손으로 머리카

락을 쥐어뜯

으며 악을 쓴다. 

"신첩이… 흑흑흑.. 딱 죽어버릴 것이어요!" 

월성궁에 나오지 않은 내내 연하여 왕이 중전을 찾아갔다는  대목에서 숨이 턱하고 막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밤마다 끼고 누워 질탕하게 승은을 주었다는 대목에 이르면 저절로 살이 퍼들퍼들 

떨렸다. 이

러하다가 한창 물오르는 열 여덟. 중전 고년이 회임이라도 한다면  몇 년 내내 꿍심으로 짜

고있던 속셈이 

한방에 헛다리가 될 참이었다. 

왕이 중전 쪽으로는 고개 돌리지도 않고 저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하여도 다 들어

주던 지난 시

절. 왜 그를 매섭게 다잡아 소생 혁이를 왕자로 인정받지 못하였나 사무친 후회까지 겹쳤다. 

천려일실

(千慮一失)이라. 자신에 대한 왕의 성총을 너무 자신한 탓이었다.   

만에 하나 중전이 회임이라도 한다...... 

희란마마 눈앞이 캄캄하였다. 보령 높아지는데 소생 없어 고민중인  왕의 마음이 어디로 넘

어갈지 손에 

잡혔다. 

그것말고도 제 정인인 왕이 늠름한 모습을 하고 어린 중전 그년을 끼고누워 밤새워 흐뭇하

게 희롱하고 

있다는 생각만 하여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악!! 소리를 지르게 될  정도였다. 내 주상인

데, 내 정인인

데 중전 그 죽일 년이 감히 도둑괭이처럼 주상을 채어가? 

참을 수 없는 강새암에 투기심으로 억장이 완전히 뒤집어진  희란마마였다. 허나 자신이 그

것을 다 꿰고 

있다는 것을 발설도 하지 못하는 것이 더 뼈아팠다. 

지난번 경솔하게 입을 잘못 놀려 왕 곁에 눈과 귀를 심어둔 것이 발각난 것이 새삼  서럽고 

아쉬웠다. 지

금도 후회하느니, 왕ㅇ의 성질을 잘못 건드린 것이었다. 물론 아직도 중궁전의 나인  계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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