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200)

렸다. 처음으

로 자신을 받아들이며 자그마한 교성을 내지르던 입술이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웃음

기 서린 목청

으로 중전을 놀리며 다시 한번 허리에  힘을 꾹 눌렀다. 단단한 몸 아래  담긴 녹아날 듯한 

보드라운 작은 

몸이 움찔 전율하는 것이 느껴졌다.  순진한 중전이 그의 희롱에 넋이  나간 것을 구경하는 

것도 꽤나 짜

릿한 즐거움이었다.     

"허긴...... 요것이 장한 재미야. 짐을 장하게 거부하고  싫어하는 계집은 네가 처음이니 짐이 

앙탈하는 너

를 눌러 억지로 정복하는 맛이 색다른 게지. 어떠하냐? 이 밤에 좋으냐? 말하여 보아라.” 

".......망극하옵니다. 신첩이 못나고 어리석어...... 성상의 즐거움을  맞추지 못하였으니 부덕이 

크옵니

다." 

한동안의 침묵 후, 나지막한 목청으로 중전이 속삭였다. 죄스러운 듯 괴로운 듯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 

스며나는 목청이었다. 안개 같은 한숨이 서린 중전의 말에 그만 왕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

는 듯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차차, 내가 말을 잘못하였구나...... 

그는 자신의 입을 쥐어박고 싶었다.  행복하오? 짐 곁에 있어 주시오  하면 되었을 것을...... 

왜 쓸 데 없

는 말을 하여가지고 이 사람 심기를 어지럽혔을까? 

시도때도 없이 심술맞아지고, 무작정 억지 트집에 심중과는 다른  말이 나오는 것에 대하여 

왕 자신도 만

정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 자신은 왜 이리도 배배 꼬이고 비틀려졌을까?   

"음음음. 밤일만 잘하는 계집, 허기는 사내 잡고 나라 잡아먹는 요물(妖物)이라. 게는 그렇지 

아니하니 

다행이로구나." 

또 실수하였다. 왕은 가만히 그의 품에서 빠져나가 돌아눕는  중전의 좁다란 어깨를 바라보

며 혀를 깨물

었다.   

"......밤이 이슥하였습니다. 곤하시옵니다. 이만 침수하십시오, 마마." 

싫어하는 기색을 뻔히 알면서도 와락 끌어당겨 거칠게 품에 담아버렸다. 답답하다 요동치는 

작은 몸을 

꼭 감고 풀지 않았다. 부드러운 머리타래에 얼굴을 비비며 왕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잘못하

였어. 미안하오...... 

이렇게 두 팔 안에 담겨있는데도, 숨소리까지 하나로 얽혀있는데도....... 죽음이  갈라놓지 않

는 한 평생 

부부지연을 맺은 단 한사람이니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함을 알고 있는데도 왕은 두렵다. 팔에 

담긴 작은 

꽃송이같은 이 사람을 놓칠까봐 무섭다. 서툴고 불친절한 말  한마디로 아프게 한 스스로가 

지독히도 밉

고 싫었다.   

어둠 같은 침묵. 자신을 옥죈 왕의 힘처럼 답답하게 내려  누르는 고통과 아릿한 절망이 무

게가 너무 겨

웠다. 중전은 뒷 목덜미에 다가온 왕의 뜨거운 입김을 느끼며 눈을 감아버렸다. 난 아무래도 

이 분의 마

음에 드는 계집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사모하는 분에게 쓸모 없는 계집이란 것은 얼마나 치

욕적이고 민

망한 낙인인가? 어쩐지 오늘밤만은 달라. 전하께서 다정하시고 달콤하시었어. 

살며시 스며들던 희망이 꽃잎을  벌렸다. 상감께서 원하시는  대로 원자도 낳고  공주도 낳

고...... 이러저

러하여 세월이 흐르고 미운 정도 들다보면.... 아무리 월성궁 계집이 화용월태요 성총을 독차

지하고 있

더라도 나에게 나누어주실 맘도 조금은 생길 것이야. 그러하며  세월이 흘러가면 나도 주상

의 정궁으로 

고개들고 살아갈 날이 올 것이야. 

행복하다 느낀 뒤끝이었다. 헌데 날벼락같은 한마디, 갈가마귀 같고 목석 같은 너에게  어떤 

매혹이 있다

더냐? 하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저몄다. 그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은 단지 원자. 사직의 대

통을 잇는 

도구 그 이상은 아니라는 말 같아 가슴이 무너졌다. 평생  가야 나는 이분에게 여인으로 은

애받는 사람은 

아니겠구나. 아릿한 아픔은 진하였고 슬픔은 더 아뜩하였다. 

"음음음. 비(妃)는 짐을 사모한다 말하였지?" 

자신은 아니라 하면서도 그녀에게는 하냥 마음을 졸라대는 이기심.  왕이 등뒤에서 다시 한 

번 혼자말처

럼 다짐을 채근하였다. 중전은 그가 원하는 대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가슴  깊이 

묻어둔 이 

내 마음을 하찮은 말 한마디로 어찌  말할까?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주르르 한줄기  가녀린 

눈물이 베개

로 떨어졌다. 

얼마 후 몸을 답답하게 죄고 있던 굵은  팔이 툭하고 풀렸다. 왕이 잠이 든 것이다.  중전은 

숨 하나도 조

심하며 그가 깊이 잠들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얼마 후 사내는 정신없이 코까지 골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중전은 조심조심 왕의 용체를 

밀어내고 옆

으로 빠져 나왔다. 밤 내내 억센 힘에 쓸리고 희롱당한 뒤끝이라 온 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

럼 아프고 맥

이 풀렸다. 왕의 머리 아래 베개를 고여 드리고 가만히 아름다운 분의 용안을 내려다보는데 

다시금 눈물

방울이 볼에서 주르르 흐르는 것이다. 

'가슴 갈라 이 마음을 보여드리면 저를 곱다 하실까요?' 

고운 육신에 홀린 정분은 세월가면 늙어져 주름지는 용색과 함께 사라지고, 남는 것은 오직 

심덕(心德) 

뿐이라고 하였는데....... 그는 다 거짓이야. 심덕 같은 건 눈에 보이지 않고 사내 마음 빼앗는

데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야. 중전은 고개를 떨구었다. 

월성궁 계집처럼 곱고 어여뻤으면 이  분도 나를 은애해주셨을까? 참된 지어미로  대접하여 

주셨을까? 

   

'이대로 서온돌 돌아가 그저 홀로 지친 몸 뉘고 잠이 들었으면...' 

그러나 중전은 한숨을 내쉬며 저만치 떨어져 있는 속적삼을  집어드었다. 새벽에 그녀가 빠

져나간 것을 

알면은 다시 한번 왕에게 경을 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헝클어진 머릿결을 손으로 쓰다듬어 

어깨 한 쪽

으로 넘기는데 왕이 움켜쥐고 희롱한 젖가슴이 새삼스럽게 아파온다.  몇 번이고 사내를 받

아들인 아래

도 쓰라리고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능한 한 멀리 왕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잠을 청하던 참이었다.  옆에 누운 왕이 무어라 중

얼거렸다. 반

사적으로 중전은 발딱 일어나 예, 마마?하고 하답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왕의 잠꼬

대였다. 

어마마마... 

애처롭고 슬픈 한마디. 더듬더듬 왕의 손이 꿈속의 그 누구인가를 찾듯이 허공을  휘저었다. 

중전이 얼떨

결에 그 손을 잡아 드리자 강한 힘으로 움켜잡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었다. 

"가지마오. 제발...... 가지 마오...... 어......마마마." 

잠결에 중얼거리는 말이 아팠다. 그것으로 중전은 왕이 꿈속에서  생모 희빈마마를 만난 것

이고나 짐작

하였다. 문득 왕의 감은 눈 아래로  마른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거짓말처럼 번쩍  눈을 

떴다. 끔인 듯 

꿈이 아닌 듯 비몽사몽. 휑하고 공허한 눈동자가 안타까운 눈으로 왕을 내려다보고 있는 중

전을 응시하

였다. 중전이 처음 보는 쓸쓸하고 외로운 눈빛. 문득  왕이 두 팔로 중전을 끌어당겨 자신의 

단단한 가슴

에 얼굴을 묻게 하고 꼭 안았다. 

"주무시오. 그냥 이리하고 나랑 함께 주무시오." 

잠꼬대하듯, 우는 아기를 달래듯 나직나직  중얼거리는 목청이 다정하였다. 아까 전  중전을 

능멸하고 조

롱하며 괴롭히던 때의 무도함과는 천양지차였다.  중전은 왕이 잠시간 꿈에  만나 어마마마 

대신 누군가

를 껴안고 싶어한다 생각하였다. 

'외로우신 분이로고.' 

왕의 눈가에 묻은 마른 눈물자국이 어린 소녀의 가슴을 적셨다. 보위에 오른 지엄한 지존이

시며 약관이 

넘은 장성한 사내인 왕이 아직도 잠결에 돌아가신 어마마마를 부르며 흐느끼는 분인 줄 누

가 알 것인

가?.. 

그런 생각을 하니 아까 그에게 괴롭힘 당하며 원망하던 생각이 어느새 사라지고 양지설처럼 

녹아 자취

를 감추었다. 중전은 주저주저 왕의 용안을 쓰다듬어 주고 두 팔로 꼭 껴안아 드리었다.  꿈

속의 전하, 다

정하고 어진 지어미의 향기로운 품에 얼굴 묻으시고 다시  잠에 빠지는데 비몽사몽, 어마마

마 슬픈 꿈을 

다시는 꾸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짐에게는 이리 작고 고운 지어미가 있사옵니다, 어마마마. 어마마마 닮은 어질고 고운 지어

미가 이 욱

제에게는 있어요...' 

어느 사이 중전도 가녀린 숨소리 흘리면서 지아비 넓은 품안에 얼굴을 묻고 지친 잠에 빠진

다. 가슴에 

묻어둔 고통과 굴욕이, 심장 깊이 뼈아프게 묻어둔 괴로움은 잠에 밀려 사라지고 서로의 온

기를 위안삼

아, 그래도 그대가 곁에 있으니 행복하다 쓸쓸하게 다짐하는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월 초이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월성궁에서 가마  한 대가 나와 대궐로 내달렸다.  겁도 없이 당당하게 

창화문을 넘어 

제 집 찾아 들어가듯이 주상 전하의 거처인 우원전으로 스며들었다. 가마에서 내린 이는 월

성궁 아랫것

이었다. 처마 그늘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내관과 머리를 맞대고 무어라 속닥속닥 하였다. 

"무어라? 월성궁 누이가 앓아 누웠다고? 언제부터 그러하였더냐?” 

조수라를 막 물리시고 양치를 하시던 전하, 김내관의 말에 힐끗 고개를 돌리셨다. 

"자리보전 하신 지는 벌써 며칠 되었다 하였나이다. 이제나저제나 월성궁으로 납시실까  큰

마마께서 하

냥 까치발을 하고 밤마다 늦게까정 뜨락에 내려 기대리셨다  하옵니다. 헌데 마마께서 아니 

가신 터이니 

그 섬약한 분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한데서 밤을 꼬박 세우다시피 하신 것이 여러날이라. 

어찌 탈이 

나지 않을 것입니까?" 

"어련히 조하 일이 한가하면 한번 나가까? 별스럽게 구는구먼." 

"많이 편찮으시다 하옵니다. 어젯밤에 어지럽다 하시더니  방을 나서시다가 그만 혼절을 하

시었다 합니

다. 그리고는 자리보전을 하시었는데 간간히 헛소리를 하시고 열이 펄펄 끓어오르고 미음도 

채 넘기지 

못하시니 온 집안이 아주 난리가 아니라 합니다.” 

말은 덤덤하게 내치었으되 병이 심하다는 말에 왕이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심란하시

다는 뜻이었

다. 김내관이 입혀 드리는 용포에 팔을 꿰며 왕은 다소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누이가 짐을 기대리다 병이 났다  그 말이구먼? 듣고보니 다소 미안하군.  짐이 갈 때까정 

근신하며 기대

려라 하였거늘, 어지간한 이가 참다못해 심홧병이 난 것이다. 김내관 너는 지금 약을 챙겨서 

전의와 함

께 월성궁에 나가거라. 전의더러 그이를 진맥하고 환후를 잘 살펴라 일러라. 조하 일이 그만

하면 날을 

보아 게로 갈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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