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200)

중전의 맑은 눈동자를 노려보며 왕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거짓이라도 좋으니 중전이 전

하만을 사모

하옵니다. 은애하옵니다 하는 말을 기다린다. 만약 이 입에서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는 

이 밤에 중

전의 여릿한 목을 꺾어버릴 생각이었다. 

짐의 것. 그대는 오직 짐의 것. 거짓이라도 좋으니  짐을 은애한다고 말하여 주어. 사모하는 

그대의 가슴

에 짐만을 담았다고 말하여 주어. 

두려움에 젖은 눈동자가 말끄러미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떠꺼머리 총각처럼  가슴 조이며 

어린 지어미

의 고백을 기다리는 이 순간. 왕은 더없이 무섭고 막막하다. 아뜩하다. 

"신첩의 주인이며 지아비는 오직 전하이실진대 어찌 그것을 의심하여  신첩에게 하문하십니

까? 신첩의 

목숨은 마마에게 달린 터입니다. 신첩은 죽어도 마마의 비(妃)라.  그 진심을 보여드리지 못

함이 못내 한

이올시다." 

"짐을 은애하느냐 물었다. 네 이 가슴에 짐만이 들어있는지를 물었다!" 

커다란 눈에 말릴 사이도 없이 맑은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똑바로 왕을 바라보며 중전이 

작은 목청으

로 속삭였다. 

"일부종사라. 간택되어 교태전에 앉은 이후로 신첩이 마음에 전하를 아니 담고 감히 누구를 

마음에 담겠

나이까?" 

"짐을 사모하느냐 물었다!!" 

왕의 마지막 말은 거의 고함이었다. 가녀린 어깨를 움켜쥔 손에 퍼렇게 핏줄이 돋았다. 

"......지어미가 지아비를 사모하지 않으면 누구를 사모할 것입니까?" 

     

그대가 짐을 사모한다 하였다. 

왕은 자신도 모르게 푸스스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억지로  몰아붙여 그의 지어미요 그만을 

가슴에 담고 

있다 하는 고백을 들었지만 천하를 얻은 것처럼 가슴이  그득하였다. 철없는 아이들이 어미

에게 당과를 

조르듯이 외사랑 하는 어린 지어미더러 자신을 사모하느냐 은애하느냐 조르고 졸라 들은 한

마디. 더 이

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왕은 심술맞게 웃었다. 귀밑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거칠게 지워버리며 끝까지 을

러댔다. 

"헌데 은애하는 지아비 품에 안겨 있으면서 울기는 왜 우노? 네 말이 거짓부렁인 게다!" 

"아, 아니옵니다. 훌쩍. 울지 않사옵니다......" 

"......만날, 만날 짐과 같이 있으면 울기나 하고!" 

왕은 중전의 어깨를 잡은 손을  놓고 휙 돌아누웠다. 어린아이가  심통부리듯이 이부자락을 

걷어 제 몸에

만 둘둘 감았다. 등만 보인 채 중얼중얼 투덜거렸다. 제 맘은 도통 몰라주는 맹한  중전더러 

야속하다 속

상하다 투정부렸다. 

"한번만 더 짐더러 쌀쌀맞게 하여봐. 네 맘속에 그  재응인지 재수대가리인지 하는 놈이 있

어 그렇다고 

할 것이야. 그 놈, 저 삭주 장성 쌓는 데로 보내버릴 것이다. 흥!" 

"차, 참말로 그러하실 것은 아니시지요?" 

듣자하니 날벼락이 이제 엉뚱하게 튀어 그 불똥이 애먼  재응 오라버님에게로 갈 참이었다. 

중전은 깜짝 

놀라 떨리는 목청으로 확인하였다. 왕이 휙하고 돌아누웠다. 눈을 부라리며 중전을 노려보았

다. 

"그거야 짐의 마음이지. 너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단다?" 

"시,신첩더러 대체 어쩌란 말씀이십니까?" 

답답이, 답답이. 중전은 왕에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도 변덕

이 죽 끓듯 

하고 엉뚱하게 나아가는 <엇질이> 성정이라. 말 한마디 잘못하면 난리가 나고 벼락이 떨어

지는 터라 이

제는 말한마디도 하기 무서웠다. 눈치를 보자하니, 분명 무엇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것 같은데도 

말은 아니하고 빙빙 돌려 사람 심장만 벅벅 긁는 것에 아주 미칠 지경이었다.   

왕이 비로소 히죽 웃었다.  무엇을 원하느냐는 중전 말에  만족한 것이 분명하였다. 반듯이  

   

누워 두 팔

로 팔베개를 하여 천장을 바라보며 모르는 척 아닌 척 대꾸하였다.   

"금년에는 원자 낳아다오." 

"예에?" 

원자야 낳아야지. 중전의 제일 책무가 바로 그 일인데. 하지만 그 일을 어찌 신첩 혼자서 하

란 말씀입니

까? 중전은 되묻고 싶었다. 왕은 계속하여 주절주절 읊고 있었다. 

"그담으로 내년 겨울쯤 하여서는 공주  낳아다오. 궐에 아기 울음소리  끊어진지 이미 이십 

년이라. 사람

사는 곳이 아닌 듯 적적하고 심심하단다. 원자를 낳아줄 것이냐?" 

"......신첩이 혼자 하는 일은 아니온지라....... 하늘서 점지하는 아기씨 일을 어찌 맹서하라 다

그치십니

까?" 

"이런 천하의 답답이! 그대는 어찌 그리 항시 맹하더냐? 짐의 품에 냉큼 안기란 말이다! 금

일 함께 원자

를 만들자는 말이니라."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왕이 벌떡 일어났다.  억센 팔로 중전의 몸을 휙 끌어당겼다.  그대로 

얇은 명주에 

감싸인 가슴골로 덤벼들어 세차게 빨기 시작하였다. 얇은 천이 금세 흠뻑 사내의 타액에 젖

었다. 오백사

(絲) 거미줄처럼 야리한 명주천이 찰싹 달라붙어 드러난 것은 진분홍빛 귀여운 젖꼭지. 옷고

름이 흘러

내리고 아름다운 나신을 가린 매끄러운 껍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육중한 몸이 작은 몸을 

덮었다. 틈 

하나 없이 밀착된 몸 사이로 오가는 체온이 따뜻하였다. 

아학! 난생 처음 중전의 서툰 입술  사이로 꿀같이 농밀한 신음이 여리게  말가니 새어나왔

다. 한 손으로 

뿌듯하게 움켜쥔 젖무덤을 베어 물던 거친 입술이 아래로 미끄러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마, 마마! 제...... 제발! 아니 되옵니다. 제발 아니 되옵......니다...... 아학!" 

중전은 혼미한 정신을 억지로 가다듬으며 본능적으로 민망하고 부끄러운 자신의 신음과  애

원을 감추기 

위하여 입을 막을 그 무엇을 잡아채려 손을 더듬었다. 잡히는  것은 방금 왕이 벗겨 던져버

린 속적삼이었

다. 아니 그 것이 다른 무엇이래도 상관없었다. 단  한번도, 스스로의 손조차 접근하지 못하

였던 은밀하

고 수줍은 곳으로 다가온 그의 손길과 뜨거운 입술. 이런 일이 있다함도 상상조차 할 수 없

었던 일에서 

벗어나고자, 괴롭고도 끔찍하고 야릇하고 민망하며 수치스러운  그 감각에서 벗어나려 안간

힘을 다하였

다. 울고 싶었다. 죽어버리고 싶었다. 아니 더 계속되기를 바랬다. 아니 아니, 당장 그만두기

를 바랬다. 

간질간질하고 비릿하고 슬프고 두려운 어떤 것에 흠뻑 빠져 정신을 잃었으면 하였다.     

질끈 이로 물고있던 천을 누군가가 억지로 빼앗아갔다. 학학  배어나는 향그러운 입김을 베

어물며 귓전

에서 그가 속삭였다. 

"누가 허락하였던가? 그대더러 이것을 감추라 한 적 없다." 

".....마, 망극하옵니다...... 아, 아랫것들이...... 귀를 기울...... 으흡!" 

교접하며 내지르는 민망한 일들을  근심하는 어린 소녀, 종알거리는  작은 입술이 지아비의 

뜨거운 혀로 

인하여 막혀버렸다. 충분히 적셔두었으니 이 밤은 다소 나으리라. 왕은 홀로 가늠하며  가냘

픈 허리를 난

짝 안아 자신의 몸 위로 올렸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기기묘묘한 경험들에 얼이 빠진 작은 

얼굴이 울 듯

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왕은 히죽 웃었다.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우뚝 솟은 몸에  내려앉

혀 두 사람의 

몸을 일체로 만들었다. 

"이렇듯이 비는 짐이야. 짐과 일체이니라. 명심하여야 해.  평생 이렇듯이 그대는 짐의 사람

인 게야" 

끄덕끄덕 중전의 고개가 아래위로 흔들렸다. 다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본

능적으로 알아들은 듯 하였다. 그가  부드럽게 예민한 귓불과 목덜미를  핥아내리자 중전의 

몸이 움찔 전

율하였다. 그 순간, 좁은 몸 안에 가득 찬 그가 신음을 내지를 정도로 강렬한 자극이 느껴졌

다. 이미 야

수가 된 지 오래. 그 순간부터 왕은 미친 짐승이 되어 어린  몸을 광풍인 양 학대하기 시작

하였다. 

밀물과 썰물로 오가는 거친 사내의 힘을 고스란히 받아내다가 견디지 못한 터로 가냘픈 중

전의 몸이 뒤

로 꺾여 내려앉았다. 이탈된 왕의 분신은 아직도 하늘을 뚫을 듯이 기운차기만 하였다. 망설

이지 않고 

왕은 쓰러진 아내의 몸에 겹쳐 덤비었다. 어둠 안에서 부옇게 빛나는 우유빛의 날씬한 다리 

하나를 어깨

에 걸고 다시 한번 격렬하게 밀고 들어갔다. 

그들의 밤은 이제 비로소 시작되고 있었다. 

***********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그야말로 한 몸이 되어 거친 숨을 고르며 중전은 아뜩한 눈을 들어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았

다. 물큰 코

를 찌르는 사내의 땀냄새가 더 이상 싫지 않고 어쩐지 은근히 정겹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상 당신의 장난감인가? 밤 새 내내 눕혀 놓았다가 엎드려 놓았다가 옆으로 굴려놓았다가 

하며 제 맘

대로 중전을 가지고 희롱하시는데 마치 악동이 장난감을 가지고 싫증이 날 적까지 더럽히고 

빨고 깨물

고 걷어차며 노는 격이라. 지칠  줄 모르고 파고드는 사내의 힘을  감당하기 힘들어진 어린 

중전은 다시 

한번 파고드는 왕의 강건하고 거대한 용체를 가득히 받아들이며 가냘프게 신음하였다. 

제발 이제는 그만 하옵소서...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애처로운 애원.  왕이 쿡쿡 웃었다. 

귓가에 대고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미안하지만은 그리 못해. 네게 가득히 씨앗을 뿌릴 참이야. 이리 씨를 뿌려두면은 언젠가는 

회임을 하

겠지. 짐이 말하건 짐과 교접함을 싫으면은 빨리 원자를 낳으란 말이다." 

"이리 하시면 요, 용체 상하시리라. 제발....... 아흑! 전하!!" 

다시 한번 중전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메아리쳤다. 하나가 된 두  개의 나신이 땀에 젖어 똑

같이 바르르 

떨었다. 꽃송이가 떨어지듯이 왕이 얼굴을 중전의 목덜미 사이로 푹 꺾었다. 충일한 만족감. 

비로소 진

정한 부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중전도 그의 마음과 같거니. 왕은 혀로 진한  꽃내음이 

풍기는 땀방

울을 핥으며 지분거렸다.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야. 너란 계집은  실로 이상하구나. 생긴 것은 갈가마귀에  하는 짓은 

영판 목석인

데, 도통 계집의 재미라는 것은 없는데...... 어째서 항시 너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이미 그대가 짐의 마음속에 박히어서 그런 게지. 아니라 하였지만 짐이 그대를 바라게 되어

서 그런 게

지. 자꾸만 자꾸만 가까이 하고 싶고 손을 잡고 싶고 그대 옆에  누어 정결한 잠을 자고 싶

은 욕심 때문인 

게지. 

왕이 농(弄) 조로 한마디하면 찰싹 달라붙어 음탕하게 희롱하는 희란마마와 같을 것이라 착

각하였다. 

간드러진 웃음소리에 눈까정 흘기며 신첩을 사모하신 그런게지요 하고 맞장구를 칠  것이라 

잘못 알았

다. 흠칫 굳어져 막막한 눈을 감아버리는 중전의 작은 얼굴이 절망감으로 굳어지는 것을 왕

은 어둠 속인

지라 미처 보지 못하였다. 손가락으로 작은 입술을 어루만지며 왕은 다시 한번 그녀를 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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