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200)

계집들이 마마의 씨앗을 틔울 몸이 되지 못하여 그런 것일 겝니다." 

"...중전은? 중전도 그런 것이냐? 짐이 중궁에 드는데도 그이는 소식이 없지 않느냐? 혹시... 

중전이... 돌계집은 아니겠지?" 

"아이고, 중전마마 연치가 인제 겨우 열 여덟이 아니옵니까? 달거리 시작하신 지도 겨우 한 

해 꼬박 지났나이다. 여인이 첫 몸을 앓은 연후에 곧바로 회임을 하기도 하옵니다만은, 몸이 

늦게 자라 서너 해 넘어가야 아기씨를 품는 여인도 있다 하였나이다. 중전마마를 신이 진맥 

하오니 다소 가냘프고 옥체가 연약하시니 다른 여인보다 다소 늦되는 분이라. 안즉 여인으 

로 피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 연유이지 중전마마께서 돌계집인 것은 아닙니다. 약방 

상궁이 이르기를 중전마마께서는 그야말로 기름진 밭이라, 나중에 회임하시면 말 그대로 무 

뽑듯이 아기씨를 쑥쑥 생산하실 분이라 이리 합니다." 

"하지만 짐이 그이를 안은 지 벌써 한 해가 넘어가지 않느냐?!" 

   

그런데도 왕비가 잉태할 기미가 없으니 혹시 그이가 돌계집이 아니냐 그런 근심걱정을 드러 

내는 왕에게 홍준은 소리 죽여 되물었다. 

   

"망극하옵니다만, 감히 여쭈옵니다. 전하. 지금껏 도대체 중전마마와 몇 번이나 동침을 하셨 

는지요?" 

"음... 음... 그러니까..." 

   

왕은 얼굴을 벌겋게 붉혔다. 그는 마음속으로 셈을 따져본 다음에 우물거리며 대답을 하였 

다. 염치없고 민망하였다. 다소 과장하여 대답하였다. 

   

"......음, 서너, 아니 너덧 번 남짓 되나보다." 

"옥체를 같이 하신 후 한 해가 넘어가는데 겨우 너덧 번이라고요?" 

   

이것 참으로 기가 막히구나. 혼인한지 세 해가 넘어가는데 지존마마 두 분께서 몸을 섞은 

것이 겨우 너덧 번이라고? 참말 해도 너무 하는구나. 이러니 어찌 중전마마께서 회임을 하 

시겠는가? 씨앗를 뿌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잉태를 하지. 매일같이 중궁전 듭신다 소문은 장 

하되 밤마다 대체 무엇을 하신 것이냐? 말 그대로 손목만 잡고 침수하신 것이냐? 그래놓고 

아기씨 타령은 왜 해? 차라리 우물에 가서 숭늉을 달라하지. 홍준의 목청이 조금 올라갔다. 

왕은 변명하듯이 그 것이 말이야 하고 우물거렸다. 

   

"중궁전에 들어가기는 종종 들어갔지! 하지만 게가 짐을 도통 꺼려하니 옷고름을 못 풀어서 

그런 것이지, 뭐.... 그러니까.. 작년에 처음으로 동뢰를 치른 후에.... 이제 겨우 짐이 중궁들 

기가 어렵지 않아서 말이지. 안즉은 어린 사림이지 않느냐? 옷고름 풀기가 민망하여서 그러 

지 뭐. 하지만 이 달에 들어서 짐이 많이 노력을 하려고 결심하였느니라." 

   

홍준이 손을 꼽아보니 두 지존마마 가례를 치른 지가 벌써 세 해가 넘어가는데 같이 동침하 

여 몸을 섞은 것은 말 그대로 서 너 번이었다. 부부지간 정분이라 하는 것은 밤잠자리에서 

부터 시작된다 하였는데 이 두 분들은 말만 부부이지. 남보다 더 못한 사이였다. 이런 터이 

니 어찌 두 지존 마마 사이가 따스해지고 정분이 돋을 것인가? 왕이 벌개진 얼굴로 그를 힐 

끗 바라보았다. 면구한 용안에 자신이 없는 목청이었다. 

   

"...모자라느냐? 이래서는 아무래도 그이가 회임하기가 힘들겠지?" 

"암만요! 모자라도 많이 모자라는 터이옵니다. 아무리 그러하여도 달포에 대여섯 번은 같이 

하셔야지요, 그리 하여도 잉태를 할까 말까 하옵습니다. 전하께서는 안즉 보령이 연소하시고 

또한 혈기방장하시니 사나흘에 한번씩 옥정을 분출하셔도 아무 탈이 없사옵니다. 자주 자주 

중궁에 듭시어 같이 옥체를 나누시옵소서. 그래야 중전마마께서 회임을 하실 수가 있는 것 

입니다." 

"어 어.... 말이야. 참말 짐이 자꾸 그이를 안으면 그이가 곧 배태를 할까?" 

"하실 것입니다. 전하께서 가까이 하시지 않으시는데 중전마마께서 어찌 회임을 하시겠는지 

요? 허고 신이 알기로 여인이 몸과 마음이 다 편안하여야 아기씨를 잉태할 수 있다 하옵니 

다. 중전마마의 마음이 편안하셔야 잉태도 하시는 것이니 부대 전하께서 중전마마를 잘 감 

싸고 즐겁게 하여 주옵소서." 

"...그이가 짐을 애초부터 도통 두려워하고 꺼려하는데 짐이 무엇을 어찌 하여 그이를 편안 

하게 하여 준단 말이냐? 짐이 게로 아니 들어가는 것이 그이 마음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 

냐? 그이를 편안하게 하라 하였으니 짐은 아예 중궁에 아니 들어갈란다." 

   

냉큼 홍준의 말에 되받아치는 왕의 목청에는 심술기가 덕지덕지 붙었다. 홍준은 젊은 왕의 

그 말이 사무친 무안이요 지어미에게 외면당하는 도도한 사내의 삐뚤어진 자존심이라 함을 

재빨리도 눈치챘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그는 고개를 조아렸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옵십니까? 님을 보아야 별을 딴다는 말도 있지 않사옵니까?! 마마, 미 

운 정도 정이라 하였으니 자꾸 만나고 가까이 하고 곁에 두셔야 두 분께서 허물이 없어지고 

마음지간으로 화합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월성궁 마마에게 하셨듯이 다정하게 말씀도 건네 

보시고 선물도 주어 보시고 격구장에도 모시고 나가고 그러하여 보시지요. 중전마마께서 지 

존이시되 안즉은 어린 소녀이시니 그런 것을 좋아하실 겝니다. 아무래도 여인은 사내 하기 

나름이라, 하물며 전하께서 장성한 사내이시니 어린 중전마마를 먼저 살뜰히 보살펴 주셔야 

지요." 

   

"...계집이 사내에게 몸을 열 때... 편안하게 함께 하는 방도는 없느냐?" 

   

왕은 얼굴을 벌겋게 붉히면서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애써 태연한 척 하문하였다. 아무리 덤 

덤한 척 하여도 수치스럽고 무안하니 우물우물 왕은 중얼거렸다. 자신의 사정을 이해해 달 

라는 변명 아닌 변명이다. 

   

"너도 알다시피 짐도 사내인데... 날마다 시신같이 누워서 훌쩍거리는 계집을 아무리 사직을 

위하여 잉태를 시킨답시고 몸을 섞는다 하여도 말이야. 염치가 있지. 그이가 우는 꼴에 짐은 

딱 정이 식어 버린다. 안다가도 정수리에 찬물을 부은 것 같이 싸늘해진다 이 말이다. 그러 

니 어찌 짐이 그 것을 즐겨이 안겠더냐? 그래서 말인데 말이야... 음음음. 방중술 책자에 보 

니 몸이 찬 계집을 치료하는 그런 약이 있다 하더라." 

지아비인 자신만 대하면 딱 얼어붙고 달달 떠는 왕비 앞에서 얼마나 면구하고 민망한지 당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그와 밤만 같이 하면 시신인 양 굳어지어 훌쩍훌쩍 울기만 

하는 지어미를 대체 어찌 달래란 말이냐? 맹세하기, 너 싫다하는 일 하지 않으련다. 손만 잡 

고 침수하련다 하였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젊으나 젊은 사내가 은애하는 여인 옆에 

두고 아무 일도 없이 침수만 하는 일은 말 그대로 고문(拷問)이라. 이 달포 솔직히 왕은 죽 

을 맛이었다. 하루에도 한 천번쯤 에잇! 그만두고 월성궁 가서 말랑말랑한 희란 누이나 끼 

고 재미나 볼까,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그 자리에 엎드려 죽는 시늉하는 궁녀들을 안아볼까. 

허면 그이가 울 것이야. 속이 상하여 짐을 다시 보아주지도 않고 웃어주지도 않을 것이야.   

에잇! 그냥 눈 딱 감고 그냥 안아버릴까? 남녀지간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하여지고 저도 그 

재미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니 그래 볼까? 별의별 궁리를 하면서 중궁전에 들곤 하였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순진한 눈망울 빛내며 보스스 미소짓는 지어미를 볼 적에 그런 욕 

심이 온데 간데 없이 스르르 사라져버리었다. 손을 잡고 나란 누워 잠을 청할 때면, 불끈불 

끈 치밀어오르는 사내 욕심보다는 이 사람이 곁에 있어 외롭지 않구나 하는 흐뭇한 마음에 

저절로 편안하였다. 하지만 그 마음도 하루 이틀. 사내란 것은 다 똑같은 것이니 차면 분출 

하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 하룻밤에도 몇번씩 가하다는 상감 당신의 알아주는 강건한 힘을 

어쩌란 말이더냐. 도저히 이제는 더 이상 참지 못하리라. 궁여지책(窮餘之策). 기어코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   

"약은 곧 독이라, 전하.. 꼭 달라 하시면 신이 드릴 것이오나... 약을 쓰게되면 한 번은 모르 

지만 여인에게나 상대하는 주상전하의 옥체에나 별로 좋지 않을 것입니다. " 

"짐이 언제 매일 가져다 달라 하였더냐? 한번만 그리 하여 보겠다 이 말이지. 저도 물이 돋 

는 계집일진데 한번 그렇게 하여 운우지락의 절미를 맛보게 되면 짐을 더 이상 꺼려하지 않 

을 것이 아니냐?" 

"그런 뜻으로 약을 달라 하시니 처방을 한번 하여보겠습니다만....... 하지만 전하, 감히 신이 

아뢰옵기 명심을 하시지요. 여인이 몸이 달아오르는 것은 약을 써서가 아니옵고 마음이 열 

려야 몸이 열리는 것입니다. 차라리 다정하게 대하시고 선물을 주시는 것이 더 낫지 않을 

것인지요?" 

   

말을 듣자하니 면구하기 이를 데 없음이라. 눈을 치뜨며 왕은 고함을 질렀다. 민망하고 무안 

하여 용안은 이제 거의 피빛이었다. 

   

"지, 짐이 미쳤더냐? 면구하게 제 안해되는 계집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선물까정 안겨주 

다니! 객쩍은 소리는 하지 말아라! 나가라! 못마땅하다. 짐이 어렵사리 말을 하였으면 척 알 

아차려 대령할 일이지, 무에 이리 건방진가? 짐더러 설교나 늘어놓다니." 

마치 짐승을 몰아내듯이 쌀쌀맞게 홍준을 쫓아냈다. 하지만 노화를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 

하여 보니 그 말이 틀리지는 않는 것 같았다. 당장에 글스승 보내주고 서책 선사하였더니, 

한번이지만 중전이 웃음 지어주지 않더냐? 

서안에 팔을 기대고 이마에 주름살을 지은 채 혼자 중얼중얼 하였다. 

   

'다정하게 선물도 주고 말도 곱게 좋이 하고 마음을 달래 보라고? 짐이 잘못하였다 비는 일 

은 죽어도 못하지만... 무어, 선물쯤은 가져다줄 수가 있겠지. 그 정도쯤은 양보할 수 있다 

고... 지아비인 짐이 제 안해에게 다정하게 한다고 누가 비난할 것인가? 암, 그럴 것이야. 게 

다가 짐이 하는 이 일 모다 다 사직을 위하는 길이거든? 중전과 짐이 한 몸 한 마음으로 화 

합하여 동침하여서 잉태한 아기씨만이 그 성정이 바를지니 훗날 성군이 되지 않을 것이냐? 

짐이 이러는 것은 다 사직을 위함이요, 천하를 평안케 하기 위함이야.' 

요렇게 마음 돌리고 스스로를 기만하며 벌떡 일어섰다. 결심하였으면 당장에 하는 일이지. 

효심이 지극한 중전이니, 항시 말은 아니하되 그더러 못되었다 한 일이 바로 할마마마께 문 

안인사 아니 가는 일이라 알고 있었다. 핑계도 대기 좋음이라, 달구경하신다 하였으니 에잇. 

이것을 기화로 어름어름 문안인사 하자구나. 짐더러 한 분뿐인 할마마마까정 버려두고 외면 

하는 폭군이라고 비난하는 놈들. 어디 두고 보자. 흥. 내전의 두 분을 모시고서 짐도 함께 

달구경하여야지. 정인(情人)끼리 손목잡고 달구경 가는 것이 예사이니 이는 흠이 아닐 것이 

다. 요런 철없는 셈속을 하고 경희궁으로 나온 상감이었던 것이다. 

둥두렷이 달이 떠올랐다. 달의 기운이 맑으면 풍년이 들고 피빛이면 나라에 환란이 생긴다 

하였다. 동산에 걸린 달빛은 붉지도 맑지도 않았다. 항시 떠오르듯이 황색 달기운이 뻗어있 

었을 뿐이다. 

늠름한 무장들이 서로 힘을 겨누어 격권다툼을 하고 씨름을 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언덕에 

올라 내관들이 커다랗게 달집 태우는 것도 보시고 벌겋게 화롯불 피워놓은 보진재 털방석에 

앉아 여인네들이 모여 윷놀이도 하시었다. 

같은 편이라, 나란히 앉아 윷가락을 던지던 진성대군댁 대부인께서 웃음을 머금었다. 

"참 중전마마. 부원군의 가장 친한 벗이라 하였는데...... 들으셨는지요? 두곡 대감께서 며칠 

전에 며느리를 보았답니다." 

"아이고 그러합니까? 제가 모르는 사이 두곡아저씨 댁에 경사가 있었구먼요. 이렇듯이 구중 

심처에 홀로 있는 사람이라, 저가 사람 사는 도리도 못합니다 그려. 미리 알았으면 부조나 

할 터인데......" 

"홋호호. 알음알음 들은 이야기옵니다만은. 이미 지나간 이야기이되, 그 도령께서 마마께서 

사가에 계실 적에 은근히 혼담 오가던 사이라구요?" 

"에구머니. 어찌 그리 이 중전을 우세시키시느뇨? 홋호호. 재응 오라버님은 말 그대로 오라 

버님이라. 그런 뜻은 이쪽이나 저 쪽이나 조금도 없었나이다. 대부인께서는 한없이 이 중전 

을 민망하게 하십니다 그려." 

       

내외함이라, 저 쪽에서 따로 상을 받으시고 허물없는 지밀위사들과 윷가락을 던지시던 왕이 

힐끗 고개를 돌렸다. 무심코 엿들은 이야기인데 이것 무슨 해괴한 말이더냐? 무어라? 중전 

이 사가에 있을 적에 혼담이 오가던 놈이라? 갑자기 귀가 쫑긋하여졌다. 갑자기 기분이 나 

빠진 터로 입이 만리는 튀어나온 왕이 안 듣는 척 하면서 귀담아 듣는 줄도 모르고 대부인 

과 중전은 한가로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지막한 목청에다 둘만 아는 이야기라 설마 왕 

이 듣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이번에 혼인한 그 도령이 공부가 장하여 단번에 과거에 합격하였다 하옵니다. 그리하여 이 

번에 저 홍문관에서 일을 보는 오가(家)하고 사돈을 맺었답니다." 

"재응 오라버님이 인품이 온유하고 매사 열심이라. 그 안해 되시는 분은 두고두고 혼인 잘 

하였다는 말이 나올 것입니다." 

"소문을 듣자하니 그 도령, 풍신도 늠름하다지요? 홋호호. 아이고, 이제 우리 차례이옵니다. 

마마, 던져 보시지요." 

이렁저렁 중전마마와 대부인. 윷가락 던지는 일에 정신이 팔려 그 순간 바로 일없이 나누던 

이야기를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오직 한사람 왕만이 가시처럼 재응도령 이름을 심중에 기억 

하여 두었으니 이것 심란하구나. 

입꼬리를 비틀며 왕은 힐끗 중전을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모르고 던진 윳가락에 모가 나온 

터로 환하게 웃는 중전마마 옆얼굴을 노려보는 눈빛이 칼날이었다. 

'그 놈. 필시 예전에 짐이 사냥길에 말 타고 궐에 돌아올 적에 비(妃)와 내외하는 법도도 잊 

고 희희낙락 같이 길을 가던 그 놈이 분명하렸다? 무어라? 성품이 온유하고 매사에 열심? 

풍신이 늠름하여? 쳇! 명색이 지존이라 하는 계집이 사사로이 사가의 인연을 기억하여 짐 

앞에서 들어라 하는 듯이 외간 사내를 칭찬하여? 흥 이것! 참으로 웃기지 않느냐? 짐더러 

들어라 하는 소리이더냐? 지아비인 짐을 앞에 두고 겁도 없이 외간 사내 이름을 입에 담다 

니, 중전 저것은 짐을 무어라 생각하는가? 참으로 짐을 지아비라 여긴다면 저리 할 수는 없 

다!' 

즐거운 달구경, 평안한 마음이 파사삭 살얼음 바닥처럼 깨어졌다. 

이 밤에 중궁전 듭시면 반드시 감사하다 말씀드려야지. 혹여 손내밀어 옷고름 풀어도 싫다 

아니하여야지 결심하는 중전마마 속내와는 전혀 다르게 엇길 가는 주상의 심술맞은 속내라. 

이것 큰일이로구나. 

***********

밤이 이슥하여 내전의 즐거운 달맞이 놀이가 끝이 났다.  격권 겨루기에서 일등한 무사들에

게 비단필과 

숙마(길들인 말) 등속으로 상을 내리시었다. 윷놀이 진 편 얼굴에 붓으로 먹점을 찍어 조롱

하며 자지러

지게 웃기도 하였고 한해 운수를 점치면서, 도성 언덕 언덕에서 아기들이 쥐불놀이 하는 것

이며 달집 태

우는 광경도 보시었다. 

"아이고, 참으로 오랜만에 실컷 놀았도다. 이렇듯이 화락한 웃음소리가 퍼진 것이 대체 얼마 

만인가?" 

"장경왕후마마 세상 버리시고 겨우 석달 만에 다시 선대왕께서 병증(病症) 깊어지어 흥하시

었지요. 게

다가 그 이태만에 또 희빈께서 따라 가시니...  줄줄이 곡성(哭聲)만 가득하였거늘, 이렇듯이 

대궐 안에 

웃음소리 드높았던 것은 근 십년 만에 처음이온 줄 아옵니다." 

왕대비전하의 말끄트머리를 상감마마의 고모되시는 명온공주께서 받아 이었다. 중전은 민망

하여 고개

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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