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난 후, 잊지 않고 은합에 담은 부럼과 약식, 귀밝이술을 노란 비단 궁 보자기에 싸 궐 밖
의 부원군 댁이며 대군 댁이며 하가하신 명온공주마마 댁이며로 내려보내었다.
김상궁을 시켜 사람을 보내 서소통 기민들에게 설설 끓는 잡탕국이며 오곡밥을 지어 그 자
리에서 한 그릇씩 나누어주라고도 하명하시었다.
그 일을 끝내고 나서 창희궁의 왕대비전하께 나간 것이다. 은합에 담은 잣알과 바늘이 두
분께 올려졌다.
"재미이니 우리도 한번 잣불을 켜봅시다 그려. 올해의 운수라 혹여 아오? 교태전의 주인께
서 어린 용을 태에 담으실지 말이오. 헛허허."
왕대비전하께서 어질게 웃으셨다. 왕대비전을 모시는 상궁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인이며 생
각시들 전부다 불러서 삥 둘러 앉혀 놓고 중전마마와 왕대비전하는 잣불을 켜보도록 하였
다. 잣불이란 바늘에다 잣알을 꿰고 불을 붙여 한해의 운수를 점쳐보는 놀음이다. 불이 밝을
수록 오래갈수록 좋은 터라 하였다.
"한번 웃자고 하는 재미가 아니오? 중전도 한번 켜보시구려."
윗전께서 강권하시니 어린 중전마마. 더 이상 사양않고 방긋 웃으며 윤상궁이 건네드리는
잣에 불을 붙여보았다. 작은 잣알이지만 기름기가 있으니 자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환하게
타올랐다. 짧은 순간이지만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밝은 불을 피워올리는 작은 잣알이 대견
하였다.
"필시 올해 좋은 일이 있으리라. 이 자리에 중전 잣불 만큼 장한 것이 없지 않소? 대전께서
종종 중궁전에 듭신다 하니 금년에는 반드시 고적한 대궐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릴 것이다."
".......항시 노심초사하시는 할마마마께 원자를 어르시는 즐거움을 드려야하되, 신첩이 매사
부족하와 성총을 돌리지 못함이라. 민망하옵니다."
덕담을 하시는 왕대비전 앞에서 중전의 작은 얼굴이 갑자기 발개졌다.
연해 달포. 주상 전하께서 이 근래 월성궁에 발길도 아니하신다더라. 대신 사나흘에 한번씩
교태전에 듭시어 중전마마와 동침하신다는 것은 이제 비밀이 아니었다. 두 지존이 정분이
없을 적에는 그저 자주 보아 미운 정이라도 들었으면 하였던 왕대비전하의 소망은 이제 상
감이 중궁전에서 밤을 지새운다 하니 은근히 아기씨로 넘어간다. 어진 분의 한결같은 소망
을 모르는 바는 아니되 문제는 같이 지새는 그 밤의 진실을 아는 이가 과연 누가 있을까?
중전은 궁녀들이 잣불을 켜며 서로 다투며 내가 일등이다 웃음 짓는 광경을 바라보며 애잔
하게 미소지었다.
종종 교태전에 듭시어 한 이불 안에서 주무시기는 하되 왕은 그녀를 더 이상 안아주지 않았
다.
그 욕심 장하시고, 더없이 강건하신 분이었다. 한번 당해보지 않았더냐? 밤을 꼬박 세워가며
지치지도 않고 희롱하고 방탕하심이라. 그와 함께 한 밤은 그야말로 악몽이오 반죽음이니
어린 소녀인 왕비는 왕이 중궁전에 들 적마다 가슴이 철렁 떨어지고 두려워 어쩔 줄을 몰랐
다. 아무리 감춘다 하더라도 그 기색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한 모양이다. 글스승 보내주신 그
밤에 들어오시어 한참동안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푹하고 어깨를 무너뜨리며 한숨을 쉬
었다.
"손만 잡고 잘 것이니 그만 두려워하오."
"예에? 그것이 무슨......."
"......비(妃)가 싫다 하면 짐이 욕심난다하여 함부로 교접은 아니한다고. 꾹 참을 것이오. 부
부지간 은애하는 마음으로 서로 즐거이 어울려야 잉태하는 원자도 성정이 바를 것이니. 음
음음. 허니 그저 짐이 들어오면 덜덜 떨고 하는 모습 보이지 마소, 실로 무안하오."
남들은 절대로 믿지 않을 것이나, 그렇게 하여 꼬박 달포인데 정말로 왕은 중전의 옷고름을
한번도 풀지 않았다.
강건한 팔로 꼭 안아주고 항시 다정하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주저주저 부드럽게 입맞춤을
해주기는 하였지만, 살며시 검은 머리타래 귀 뒤로 넘겨주고 어루만져 주기는 하였지만, 그
것이 전부였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왕은 항시 여린 그녀 몸을 꼭 끌어안고 주무시고 있었
다. 편안한 얼굴을 하고 안해의 품에 용안을 묻으시고 잠이 든 모습이 너 싫다 그런 뜻은
아닌 듯 하였다. 하지만 어째서 더 이상은 아니 안아주시고 용정을 나누어주시지 않을까?
말로는 원자 낳아라 하시는데 이렇듯이 손만 잡고 잔다면은 언제 아기씨를 가지랴?
자신이 싫다 하는 교접 아니하시니 감사하고 반갑되, 또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섭섭하고 두
려웠다. 아니 달포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였다.
내가 목석보다 못한 계집이어서 가까이 하기 싫다 하심이련가. 아니면 월성궁에 가면 밤일
에는 일등이라는 요염한 그 계집 끼고 물리도록 재미를 보신 참이니 덤덤한 나에게는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이 말이신가. 그도 저도 아니면 갑자기 그 욕심이 깡그리 사라지신
것인가?
용기가 있으면 여쭈어 보기라도 하련만, 여인네가 점잖지 못하게스리 그런 말을 먼저 하기
로 그러하였다. 만약 여쭈었다가 정작 너 싫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찌 하란 말인가?
왕비의 민망해하는 얼굴을 왕대비전하께서 가만히 건너다보시었다. 말로는 하지 못할 곡절
이 있음에랴. 노인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내미지상 초반 곡절이 심란하다 하더니, 저
여리기만 하고 착하디 착한 어린 사람이 언제 풍파를 딛고 지아비 전하를 잡아 채 제구실하
는 중궁전이 되시려나. 모르는 척 말꼬리를 슬쩍 돌렸다.
"벌써 대보름이라, 이제 입춘이 멀지 않았으니. 새 나물이 그립구먼. 헛허허. 아무리 동장군
이 기승을 부려도 봄기운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려니. 대전의 마음도 그리 풀리려나 하고 나
는 믿습니다."
입춘날에는 궁중에 진산채(進山菜)라 하여 움파, 산갓, 당귀싹(辛甘草), 미나리싹, 무싹 등의
오신반(五辛盤)을 진상하는 법이다. 심신을 청량하게 만드는 봄나물을 즐기시는 왕대비전하.
봄나물을 기대어 슬쩍 한마디, 두 분의 사이가 온유하게 다정하여지기를 기원하시었다.
"슬슬 달구경 준비하여야지요? 이른 수라 받고서 금원으로 나가보십시다. 궐 안의 달구경은
보진재가 최고라오."
"신첩이 모실 것입니다. 조촐하나 주안상 준비하라 하였으니 오랜만에 내명부 여인들끼리
한때를 즐기시지요. 공주마마며 대부인들께는 제가 다시 한번 기별을 드렸나이다. 시각 맞추
어 궐에 들어오소서 부탁하였습니다."
이러는데 바깥에서 창희궁의 상궁이 공손하게 아뢰었다
"왕대비전하, 대전마마께서 문안인사 드셨나이다."
사이좋은 내전의 조손(祖孫) 간, 달구경 앞에 두고 반가운 사람들 만날 이야기에 들뜬 마음
을 함께 하며 다정하게 이러저러하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랐다. 왕대비전하도 그러하
거니와 중전마마도 놀라 문 쪽을 바라보았다.
"무어라? 상감께서 납시었다고? 뫼시어라!"
급히 하답을 하시는 왕대비전의 목청이 흔들렸다. 몸을 일으켜 치마귀 부여잡고 옆으로 서
서 들어서는 왕을 맞이하는 중전의 눈도 놀라 동그래져 있었다.
"주상, 기별도 없이 이 뒷방 늙은이를 찾아주시다니, 망극하오. 어인 바람이 불기에 이리 오
랜만에 옥보를 옮기신 것이오?"
왕은 무릎을 꿇고 할마마마께 강녕하신지를 문안드렸다. 정중하게 인사를 차리는 왕을 바라
보며 반절로 답하는 왕대비전의 목소리는 반가움보다는 의아함이,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이
더 짙게 깔려 있었다.
사실 왕대비전하께서 놀랄 만도 하였다. 실로 전하께서 직접 왕대비마마를 찾아와 문안인사
를 드린 것은 6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왕대비전하께서 창희궁으로 나오신 후 왕은 한번도 직접 할마마마께 문안인사를 하러 듭신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내관을 보내어 의례적인 인사를 차렸을 뿐이다.
사실 선대왕께서 살아 계실 적에도 어린 세자는 할마마마가 어렵고 힘들었다. 항시 다정하
고 제 앞에서는 웃음 짓는 궐의 어른들 중에 유일하게 할마마마만은 동궁을 경계하고 항시
엄하여 조금만 잘못했다 하면 회초리 질도 서슴지 않았다. 사람 마음은 다 그런 것이다. 저
를좋다 하는 사람이 좋은 법이고 싫다 하는 사람은 꺼려지는 법. 언제나 저를 두고 흠을 잡
고 깐깐하고 잘못하였다 호통치는 할마마마 앞에서 어린 왕은 항시 두려움 반, 분하고 억울
한 맘 반이었다. 월성궁 희란마마가 왕대비전하와 왕을 이간질하기 쉬웠던 것은 왕의 마음
속에 잠긴 그런 열등감이나 사랑받지 못하여 섭섭한 맘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월성궁 여인으로 인하여 척이 진 마음이 언 땅처럼 차갑게 뭉쳐 여태껏 풀리지 않았다. 어
린 왕이 정안로와 희란마마의 간살거림에 속아 친정(親政)을 한답시고 <명일옥사>을 일으
켰을 때 선대왕시절부터 보필해오던 서림파 신하들과 함께 왕대비전을 옹위하고 있던 친정
덕수 이씨 가문을 작살내었다. 오직 상감께서 성군(聖君)되어라 기원하시며 장성한 어른이
되어 친정(親政)할 때까정 내가 힘을 보태리라 하였다. 헌데 간절한 마음도 몰라주고 친가의
혈육들을 내치고 죽였으니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왕대비마마의 응어리 진 피멍을 더
이상 일러 무엇하랴?
그런 형편에 갑자기 기별도 없이 왕이 창희궁으로 거동하였으니 모든 사람이 놀라 자빠질
뻔한 것도 당연하였다.
6년만에 처음 문안인사를 찾아온 상감마마. 면구하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어제 오고 오늘 또
온 사람처럼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대보름이 아니옵니까? 온 도성 곳곳 사람들이 달구경한다 난리라. 짐도 은근히 호기심이
나서요. 명색인 지존인 짐이 멀리 나가서 시정 잡배들처럼 웃고 즐기지는 못할 참이나 마침
곤전께서 할마마마를 뫼시고 금원에 나가 달구경을 한다 들었습니다. 모르면 할 수 없되 짐
이 알게 된 참이라, 소손도 잠시 그 즐거움에 동참하려 합니다. 짐이 내전의 두 분을 모시려
하는데 상관이 없으시겠지요?"
"아이고, 황감하여라. 내전의 여인들이 조촐하게 즐기는 자리를 주상께서 참여하신다 하니
반갑기는 합니다만......"
말씀은 감사하나...... 왕대비전의 목청이 늘어졌다. 반갑다 말로는 하였지만은 한번도 그런
적이 없던 이가 갑자기 좋아라 나서니 좋다는 마음보다는 더럭 의심이 생기었다. 이 이가
지금 갑자기 무슨 변덕으로 이런 일을 하는가 싶어서였다. 작년도 달구경 핑계대고 월성궁
으로 나가서 일주야나 부어라 마셔라 하며 환궁도 하지 않아 속을 뒤집지 않았는가 이 말이
다. 왕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마마마께서 좋은 빛을 보이시니 짐도 반갑나이다. 이미 짐이 내관을 시켜 보진재 앞에
차일을 치고 조촐하게 연회 준비를 하라고 하명하였나이다."
"내전의 여인네들 몇몇 모여 달구경하는 일에 주상이 나서시어 이토록 마음을 써 주시니 더
욱더 감사합니다만은......"
"비(妃)와 할마마마께서 모처럼 즐거움을 찾으시는 일이 아니옵니까? 시정에서는 끼리끼리
모여 윷놀이도 하고 그런 답니다. 짐이 비단필을 내 걸 참이니 누가 윷놀이에 최고인지 궁
금하옵니다. 허고 마침 짐을 배행하는 지밀위사들이 한가한 날이라 격권에 씨름판을 벌린다
하였나이다. 그 구경도 좋을 것입니다. 이만하니 짐과 함께 일찌감치 나서시지요."
급한 성정답게 당장 대궁으로 나가시지요 먼저 자리에 일어나며 하도 날치니 얼떨결에 왕대
비전하와 중전마마도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저이가 왜 저러는 것인고? 왕대비전하
의 눈짓에 중전마마도 영문을 알 수 없어 그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두 분 내전마마가 탄 여를 딸리고 전하께서는 말을 타고 각 궐들을 잇는 내문(內門)인 함인
문. 함경문을 지나 금원(禁苑)으로 나가시었다. 이미 설핏 뒤따라오는 중전의 가마를 돌아보
는 왕의 입술에 슬며시 미소가 머금어졌다.
'이렇듯이 짐이 저를 위하는 뜻을 보여주었으니 아무리 무정하고 목석이라 하여도 인제는
짐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이야. 흠흠흠, 마음이 열려야 몸이 열린다 하였지. 음음음. 그래야
비가 회임을 할 수 있다 하였지. 음음음. 하루 빨리 중전이 잉태를 하면 좋겠다. 그래야 짐
이 불안하지 않고 저도 당당한 중궁전의 위엄을 갖추지 않겠냔 이 말이야.'
무엇이든 받는 데만 익숙하고 남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을 잘 모르는 상감께서 이렇듯이
6년만에 왕대비전에 인사를 들이고 달구경 같이 하자 운을 띄운 것은 이유가 있었다.
오정에 중전이 창희궁에 달구경 나갑니다 하면서 떠나고 난 후 상감마마. 홀로 기오헌에 앉
아 서책을 뒤적였다. 명절이니 참례도 없고 조하 일도 한가하여 활줄 매었다가 서책 뒤적였
다가 하는데도 마냥 심심하였다. 도무지 얼어붙은 강물처럼 시간이 지나가지 않았다. 헤아려
보니 달구경을 마치고 중전이 교태전에 들어오려면 이미 이슥한 삼경 무렵은 되어야 할 듯
싶었다. 그때까정 짐이 무엇하며 홀로 기대리나 아득하였다.
보고 있어도 그립고, 곁에 있어도 쓸쓸하여 마냥 바라보게 되는 지어미. 손을 잡고 같은 잠
자리에서 그 사람의 향기로운 체취를 맡으며 안고 침수를 하여도 허전하고 안타까웠다.
지은 죄가 장하고 정결한 그 사람에게 은애받을 자격조차 없다 생각하는 자격지심 속에서
홀로 말도 못하고 어린 지어미에 대한 수줍은 외사랑에 속을 끓이는 왕에게 새로 생긴 병이
바로 그것이었다. 왕비가 중궁전을 비우거나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혹여 그 사람이 도망갔
을까 저절로 불안하여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병이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음을 알지만은,
아랫것들 수십이 겹겹이 싸고 모시는 분이니 제 마음이 그러하다 하여도 그럴 수 없음을 알
지만은 그래도 두렵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때 입시한 이가 내의원의 수장인 전의감
홍준이었다.
"올해는 덩실하니 중전이 원자나 회임하였으면 소원이 없겠구먼. 소격사의 도사가 며칠 전
에 짐더러 올해는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신수를 보아주었기로 참으로 그리할까?"
내밀한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인지라 왕은 신임하는 그를 앞에 두고 저절로 한탄이라, 한숨
을 푹 쉬었다.
"망극하옵니다. 아기씨 일이야 하늘이 점지하시는 일이니 기대리시면 꽃소식이 금세 올 것
입니다."
"하지만 안즉 짐의 씨앗을 받아 회임한 계집이 하나도 없으니 그러하지! 월성궁 누이야 혁
이 놈을 생산한 이후 산욕을 앓아 다시는 잉태치 못할 몸이 되었다 하니 두어 두고라도....
짐이 중전도 그러하거니와 월성궁에서 계집들을 안은 것이 십 수명이되 아직 잉태를 하였다
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으니 하는 말이 아나더냐? 이는 계집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
니라 짐의 몸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도도한 왕으로서 그런 말까지 입 밖으로 낸 것은 날이 갈수록 은근히 스며드는 심중의 근심
과 불안함이 깊었기 때문이다.
주상의 보령 어느덧 스물 둘로 접어들었다. 중전마마와 혼인을 하신 지도 이미 세 해이며
종종 월성궁 여인이 천거하는 열 여덟 아홉쯤 되는 아릿다운 궁녀들을 안으시었다. 허나 어
떤 계집도 잉태를 하였다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없으니 이것 혹여 주상 당신의 옥체에 모자
람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닌가 근심함이 당연한 일. 하물며 당신께서는 후사를 이어 사직의
혈통을 이어야할 막중한 책무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 아니냐? 약간은 긴장한 채 왕은 홍준의
말을 기다렸다.
"전하. 사내와 여인이 몸을 섞는다고 해서 언제나 잉태를 하는 것은 아니옵니다. 여인의 몸
이 싹을 틔울 수 있도록 기름지게 되어야 비로소 사내의 옥정을 받아 회임을 하는 것입니
다. 여인의 몸은 참으로 기묘하여 달포에 한번씩 달거리를 하는데 그래야만 사내를 보아 잉
태를 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항시 방사를 치루었다 하여 잉태를 하는 것이 아니옵고 그 때
가 있는 듯 하옵니다. 월성궁에서 여인을 보셨어도 그 들이 잉태를 하지 않은 것은 아마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