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생각하기에 당장 비(妃)에게 필요한 것이다 싶어 골라둔 것이오. 내전에서 여인들이
볼만한 책이며 반드시 익혀야할 글월이라 생각하여 짐이 친히 고른 서책이오. 중궁에 보내
드릴 것이오. 지금껏 곤전과 짐이 다소간 불화하여 왕래가 소원하였지만은, 이렇게 국모께서
강학을 시작하신다 하니 짐이 어찌 그냥 지나치랴? 그나마 지아비 된 도리로 서책이나마 좀
챙겨주어야 할거 같아서 말이야. 공부를 열심히 하시기를 비옵는다 하는 짐의 말을 반드시
전하여주오."
참으로 황읍하고 다정한 분부일세라. 심우정이 전하께 절을 하고 물러나갔다.
이것으로 중전이 짐을 조금은 보아주면 좋겠다. 왕은 고개를 돌려 중궁전 쪽을 잠시 바라보
았다. 짐이 가엾은 그이를 위하여 대체 무엇을 해줄 것이냐? 아침나절 생각하시기 오직 그
궁리였다. 다시 게에 아니 간다 하여도 그이가 마음 붙일 곳은 만들어주어야지. 간청을 한
일이니 빨리 강학이라도 하게 해 주어야겠다 생각하신 것이다.
'이 일로 그이가 다소 즐겁고 사는 것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이가 조금이라
도 행복하다 할 것이면 짐은 좋아. 이 안타까운 마음이 조금은 덜 아릴 것 같아…'
중궁전 윤상궁이 찻상을 들고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그렇게 무도하게 굴고 염치없이 역정
을 내었는데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알뜰하게 차를 챙겨 보내준 왕비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고마웠다. 저절로 벙싯 웃음이 머금어졌다. 따스한 그 사람의 체온처럼 느껴지는 찻잔을 들
며 한마디 감사하다 어렵지만 다정한 답을 윤상궁에게 들려보냈다.
"향기가 좋다. 짐이 고맙다고 전하여라."
사람이라 할 것이면 염치가 있는 것인데…
왕은 향기로운 차의 향기를 음미하며 그런 생각을 하였다.
지난밤, 늙은 사친을 만나고 심란하여 홀로 울고있던 순진한 그 사람. 그런데 위로는 하지
못할망정 별별 억지트집으로 후려잡고 심기를 북북 긁은 자신이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서
다시금 그 여린 사람을 무작정 짓밟아 놓았으니 면구하고 미안하여 그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볼 염치가 없었다.
'짐을 원망하고 있겠지? 이왕에도 차마 더불어 같이 할 수조차 없을 만큼 짐을 꺼리고 두려
워하는 사람인데 하물며 지난밤에 짐이 그리도 사나운 광증까지 부려놓았으니 그이는 인제
짐이라 할 것이면 절대로 옳은 사람으로는 보아주지 않을 것이다…..'
쓰디쓴 후회이다. 혹은 사무친 고통이거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후회이다.
예전에도 왕은 교태전에 버려 둔 어린 중전만 생각하면 어쩐지 가슴 한쪽이 지긋이 아프다
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통증이 훨씬 더 진하고 깊다. 자신의 심장 한쪽이 송두리째
떨어져나간 그런 느낌. 그것은 또한 사무친 외로움이기도 했다. 그랬다. 왕은 자신의 어린
지어미를 생각하며 너무 외롭다고 생각한다. 그 외로움을 그녀 또한 느끼고 있으리라는 것
을 너무도 잘 알기에……
마치 자신의 반쪽인 양 어젯밤 홀로 숨죽여 울고 있던 그녀의 모습에서 왕은 중전의 사무친
외로움을 보았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십여 년 전, 부왕을 잃고 졸지에 용상
에 올라 홀로 우원전 넓은 침전에 누워 울었던 소년왕 자신의 모습을 겹쳐 보았던 것이다.
'짐이 아니 가면 그대는 울지 않을까? 아니, 그렇지 않아! 그렇게 되면 우린 지금처럼 여전
히 남남이라, 평생 서로를 모르게 될 것이고 서로 외면하며 살다 죽게 될 것이야. 그것은 싫
어! 그대가 짐을 바라보고 웃어주고 사모하여 주기를 바래. 그럴 수만 있다면 짐은 날마다
그대에게 갈 것이야. 미운 정도 정이라 하였으니 자주 그대에게 가면 그대도 언젠가는 짐을
꺼려하지 않고 웃어줄 날이 반드시 올 것이야…'
다시는 중전에게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을 왕은 불과 한나절만에 뒤집어 버린다.
자꾸만 가고 싶고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작은 몸을 꼭 안
고 편안한 잠을 자고 싶었다.
'이제 짐이 저를 위하여 글 스승도 보내주고 책도 선사하고 그랬으니까...... 저도 어젯밤 짐
이 미안하였소 하는 뜻을 알 것이다. 모르는 척 중궁에 다시 들어가야지! 어차피 중신들도
짐더러 중궁을 아니 돌아본다 비난들을 하였으니 짐이 게로 들면 시끄러운 잔소리들도 아니
할 것이 아니냐? 오늘밤은 좀 그러니 예서 침수하고 내일은 중궁에 들어가야지. 자꾸만 침
수 같이 하다보면 원자도 생길 것이야. 그래야 하고 말고.'
솔직하게 중전이 보고 싶고 그녀에게 가고 싶은 그 마음을 왕은 일부러 빙빙 돌려 자신에게
납득을 시킨다. 못났다 능멸하고 발길로 걷어차고 다닌 어린 지어미를 자신이 먼저 그리워
하고 외사랑하게 된 사실을 끝까지 인정할 수가 없다. 스스로 폭군이다. 어진 그 사람에게
은애받을 만큼 자격도 없다 하는 민망함을 그런 억지로 감추어 버린다.
그 다음날 오정 무렵이었다.
아침 수라 하시자마자 경희궁으로 왕대비전께 문안인사를 마치고 환궁하신 후였다. 막 자리
에 좌정하여 글씨 연습을 하련다 하시었다. 바깥에서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윤상궁
이 들어와 고변을 하였다.
"중전마마, 대제학께옵서 잠시 알현코자 듭셨나이다."
중전은 깜짝 놀라서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혼인하여 중궁전에 앉은 이후, 단 한번
도 조정의 중신들이 중궁의 문턱을 넘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제학께서 듭셨다 하
니 어린 중전은 반갑기보다는 오히려 겁부터 나고 두렵기만 하였다.
"대체 무슨 일로 그 분이 이 중전을 찾으신 것인고? 만약 그분이 이 중전을 보러 중궁전 문
턱을 넘었다는 것을 대전에서 아시면 필시 또 날벼락이 떨어질 것인데…"
항시 지아비 전하께 조롱받고 박대받는 터라 말로만 사직의 안주인이요 정궁마마이시되, 허
수아비나 다름없는 자신의 처지를 왕비는 너무 잘 알았다. 천한 무수리에게서조차 실제 궐
주인은 월성궁 마마요, 중궁의 저 여인은 소박데기라고 은근히 능멸받고 사는 어린 중전마
마, 사친과 교분 깊어 그나마 중신 중에서 신임할 수 있다 싶은 대제학을 맞이하면서도 반
가움보다는 오히려 또 무슨 흠 잡힐 일을 자신이 한 것은 아닌가 두렵다, 혹여 왕이 자신에
게 트집을 잡으려고 일부러 그이를 보내셨는가 싶어 여린 심장이 와들와들 떨리기부터 하는
것이다.
뫼시어라 하는 중전마마의 나직한 답변에 대제학 심우정이 천천히 허리를 굽히고 주렴이 쳐
진 윗방으로 들어왔다. 부복하여 공손히 중전마마께 절을 하는 그의 뒤로 옥색 도포를 입고
책 보따리를 든 선비 한사람이 따라들었다. 심우정이 시키는 대로 엎드려 중전마마께 절을
하였다. 지아비이신 주상 전하 말고는 심지어 내관들도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는 구중심처
중궁에 처음으로 들어선 외간 사내였다.
심우정이 약간 불안하기도 하고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만 있는 중전마마께 주상 전하의
말씀을 전하였다.
"망극하옵니다, 중전마마. 전에 전하께서 신에게 하교하시기를 중궁전 강학을 시작하라 분부
하신 터입니다. 그리하여 신이 감히 수소문을 하여 중궁전 강학을 담당할 성균관 진감을 뫼
시고 왔나이다. 인사를 나누시지요."
중전은 해연히 놀랐다. 진정 그 것이 참입니까? 하고 거푸 되물었다. 놀랍지만 너무 반가운
소리인지라 자신도 모르게 왕비의 맑은 볼에 화사한 홍조가 돋아난다.
"참말 전하께서 이 중전에게 글 스승을 보내주신 것입니까? 아이고, 감사하여라! 이 중전이
무학(無學)하여 항시 답답하였기로 죽을 각오를 하고 성상께 주청하기를 부대 강학을 하게
하여 주십시오. 청을 들였답니다. 헌데 상감마마께서 이 천첩의 소원을 잊지 않으시고 들어
주셨으니 어찌 성은이 망극하지 않으리? 실로 감사하옵니다!"
"전하께서 이르시기를 열심히 공부하시어 의젓한 국모의 덕을 쌓아라 당부하셨나이다. 허
고 이렇게 좋은 책들을 친히 고르시어 신 편에 많이 보내주셨나이다. 강학 때 보시옵소서."
대제학 심우정이 책 보따리를 중전마마께 바쳤다. 어진 미소를 머금고 뒤에 앉아 부복한 선
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강학사는 중전마마께 인사를 드리게나. 지엄하신 분이나 스승과 제자의 예로 만났으니 필
히 성심을 다하여 마마를 보필하고 학문에 일가를 이루시도록 도와드려야 할 것이네."
호기심 어린 까만 눈을 들어 저를 바라보고 있는 중전마마를 향해 옆얼굴을 보인 학사가 깊
이 고개를 조아린다.
"중전마마. 첫 문안인사 드리옵니다. 지엄하신 주상 전하 명을 받드사 중궁전 강학을 맡게
된 학사이옵니다. 본관은 진양으로 강씨 성을 쓰옵지요. 같잖은 글줄 익혀 감히 중궁전의 스
승자리를 꿰어차니 참으로 두렵사와 눈앞이 캄캄하옵니다. 천박한 글줄이되 열심히, 그저 성
심으로 임할 것이옵니다. 명일부텀 매일 이 시간에 들어와 강학을 할 것입니다."
"겸손하시네 그려. 마마. 강학사는 당국에 육년이나 공부를 하고 돌아온 후기지수 중 으뜸이
옵니다. 겨우 약관의 나이로 제술 양원 양과의 장원급제까정 하였습니다. 보는 과거마다 장
원이라 이 이의 별칭이 구도장원공라 하옵니다. 헛허허."
대제학 심우정이 덧붙여 중전마마에게 공손하게 아뢰었다.
겸손하게 그러나 위엄있는 얼굴을 들어 말을 잇는 중궁전 글스승. 그 이름은 강두수라 하였
다. 나이는 서른 남짓. 훤칠하니 잘난 얼굴에 키는 컸고 고아한 품위가 맑고 어진 미소를 머
금은 얼굴에 스미어있었다. 한 마리 고아한 학(鶴)인 양, 청신한 심산의 소나무인양 담담하
고 고고한 모습이었다.
강두수는 명가 진양 강씨 가문 종손이었다. 제술 양원 양과를 약관에 장원급제하고 학명 떨
치기 이미 오랜 터였다. 육 년 전에 당국까지 가서 당국의 대학문이라 일컬어지는 동빈 선
생 문하로 글을 익히고 돌아온 지 겨우 한해 남짓 지났다.
대학자 도산 이현 선생의 가장 아끼는 수제자로 마음만 먹자하면 관명을 떨치기 예정된 사
람이다. 허나 성정이 담담하고 심산 청송인양 고고한 인품인 그는 도통 출세에는 관심이 없
었다. 그저 스승을 따라 산림처사(山林處士)로 남아 글을 읽고 있는 터인데 낭중지추(囊中之
錐)라. 그의 빼어난 학문이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학문을 아낀 대제학이 몇 번이고 간청하였다. 제발 성균관에 들어와 학사들 공부 좀 보
아주오 찾아다니니 할 수 없이 성균관 진감으로 입시하였다. 연치 어리나 학문 높기로 이름
난 터라 같은 진감 사이에서도 스승으로 존경받을 정도이니 그 인품이며 학문이 나무랄 데
없다. 그리하여 영의정과 대제학이 중궁전에 강학을 할 스승으로 점지한 것이다.
중전마마. 첫눈에 마치 강두수 그가 마치 피를 나눈 친정 오라비 같이 다정하고 가깝게 느
껴졌다. 어진 인품이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담겨 있는 듯 하였다. 인중지룡이요 군계 일
학이라. 그만 중전마마, 단 한번 만나고도 강학사 그가 탁 의지가 되는 것이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상감마마께서 천첩을 위하여 이리 스승을 보내주시니 그저 황공하고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예에 대제학께서도 계시니 하는 말이지만, 오늘 이후부터 경은 이 중
전의 단 한 분 스승입니다. 열심히 할 것이니 저가 꾀부리고 어리석은 짓을 하면 매섭게 꾸
짖어 주시고 다스리어 주소서. 이 중전이 감히 사직의 안주인을 자처하나 어리석고 미거하
여 천지분간을 못하는 터입니다. 참으로 낯을 들고 살아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헌데 이제
부터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지어 옳은 사람 노릇을 한번 하고자 하니 부대 스승께서는 이
중전을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스승의 가르침을 열심히 따라 저가 모자란 그 허물을 다
소간 씻고자 합니다. 그저 부탁드리옵니다."
중전마마, 학사에게 당부하였다. 왕이 강학을 하게 스승을 보내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고 고
마웠다. 이 일 하나로 이 며칠 간 전하께 받은 상처는 금세 아물어버리는구나.
'어제는 엄히 노화내시고 삿대질까정 하시며 길길이 꾸짖으시더니 그래도 이리 스승을 보내
주시는 바를 보아함이라, 이 몸 생각을 그래도 하여 주시는 것이다.'
모진 지아비, 모처럼 마음쓴 일로 중전마마 감격하여 심지어 눈에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부대 열심히 공부하시어 의젓한 국모의 덕을 쌓으시라 당부를 하셨나이다. 허고 이렇게 좋
은 서책들을 많이 보내 주셨나이다."
"아이고, 전하께서 서책까정 보내주시었다고요?"
글스승을 보내주신 것만으로도 왕을 용서하였다. 하물며 직접 공부 열심히 하라 하시며 서
책을 골라 보내주셨다니 이런 황감할 데가 어디 있을까?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터라 중전은
그날 밤 서온돌 건너온 왕을 대함에 있어 난생 처음으로 고개 바로 들고 방긋이 웃을 수가
있었다. 처음 보는 지어미의 웃는 모양에 왕은 그저 얼띠어 행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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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정월 대보름을 일러 상월 또는 망일이라고도 한다. 이런 날은 수라상에도 오곡수라가 오르
는 법이다. 해마다 망일이 되면 궐 밖의 은무사에서 호두, 잣, 밤, 대추, 황밤을 각각 한 가
마씩 들여오는 것이 관례이다. 이 부럼들을 생과방에서 일일이 껍질을 까서 자줏빛 전박에
담아 올리면 윗전의 전하들께서 일단 깨물어보시고는 아래로 내려보내시는 것이다.
허나 상원절식의 으뜸은 약식(藥飯)이었다. 새벽에 사직에 나갔다 돌아온 상감마마께서 차를
다오 하시면서 중궁전으로 들어왔다.
차와 함께 절식이라, 기름, 꿀, 잣, 밤, 대추 등을 넣어 만든 호화로운 약식을 올려드리니 대
전마마 벙싯 웃으셨다. 사양치 않고 맛나게 자시는데 옆에 앉은 중전마마를 돌아보며 한마
디 치하를 하시었다.
"또 한해가 시작임에랴. 짐은 약식을 좋아하는데, 올해 중전과 함께 받는 상이라 더 맛난 것
같구려. 대전으로 나갈 터이니 중궁에서 빈청으로 다담을 보내주오. 허고 날마다 번을 서는
이들도 고생이니, 선전관청으로 하여서 내금위 지밀위사들에게도 한상 내려주구려. 물론 상
이 나갈 것이나, 중궁전 약식이 더 맛이 있으니 짐이 내전의 자랑을 한번 합시다 그려."
"소첩을 참으로 우세시킴이시니, 이렇게 보잘 것 없는 것을 어찌 대신들에게 보이리요? 허
나 좋은 날이라, 하명하신대로 상을 보내드릴 것입니다."
"대보름이라, 할마마마께 문안드리러 가시겠소?"
"예, 마마. 윤허하신다면, 할마마마를 뫼시고 달구경을 할까 합니다. 신첩이 금일은 좀 늦게
환궁할 것입니다."
"언제나 되어서 환궁하시느뇨? 비록 호위밀이 모신다 하여도 마땅찮음이니, 아녀자가 너무
늦다이 왕래하심은 옳지 못한 일이 아니겠소?"
네가 어디로 가든 말든 상관없다. 들어오든 말든 나는 모른다 하던 분이 대뜸 하잡는 말씀
이라, 언제 돌아오느냐는 것이었다. 혹여 또 트집을 잡으실까 두려워 중전은 작은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하고 간청하였다.
"금일은 다 아녀자들이 달구경 다니는 날이 아니옵니까? 신첩이 일단 창희궁으로 나가 할마
마마 모시고 밤수라 같이 한 다음에 금원으로 자리 옮기어 내명부 여인들 뫼시고 달구경을
할 것입니다. 윤허하여 줍시오. 소첩이 시정거리로 나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이까?"
"아, 내가 억지를 잡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는 말을 하는 것이지. 금원서 노실 것이면 짐
이 걱정을 덜었소이다. 짐은 비(妃)가 궐을 나가 즐기심으로 알았소이다."
그러고서 왕이 대전으로 나갔다. 하지 말라 가지 말라 하는 말씀은 없는 것이라 윤허를 받
았다 싶었다. 중전은 왕이 하명한 대로 다담상을 고루고루 궐의 빈청이며 궐내 각사로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