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이 사람이 좋아. 짐 품에 꼭 안기는 이 작은 옥체가 그리웠어. 차마 미안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였으되 짐은 항시 이 사람의 향기와 따뜻함을 갈구한 것일지니 짐은 이 사람을 마
음 속 깊이 안곁으로 그리워하고 있는 게야.'
아학! 작은 비명소리가 왕비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거칠고 강대한 지바이를 여리고 메마른
몸으로 받아들이며 아릿한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이 밤에는 부디 가련한 이 사람을 다정하게 대하여지고 하였던 속내를 왕이 또다시 놓치고
만 때문이었다. 도무지 자신을 억제할 수 없게 하는 왕비의 향기로운 체향과 보드라움과 가
냘픔에 취하여 다시금 이성을 잃고 만 것이다.
중전의 여린 듯 청결하고 투명한 알몸을 안는 순간 왕은 마음 속 깊이 다짐한 그 모든 생각
을 까마득히 잊고 만다. 그저 사내의 피를 끓게 하는 향기에 미쳐, 한시 빨리 그 속에 파고
들어 향기로운 여인의 꿀물을 맛보고 싶다하는 격한 욕심을 왕은 그 밤에도 자제할 수가 없
었다.
무작정 강건하고 거대한 용체로 어린 샘에 밀고 들어갔다. 왕을 맞이하는 왕비의 몸은 차갑
고 딱딱했다. 유난히 좁고 아직은 어린 데다 주상과의 교접이 그저 두렵고 무서우니 왕비의
수줍은 샘은 촉촉해지기는커녕 메마른 황무지였다. 그런 터인데 하물며 침입하는 사내는 거
대하고 강건하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그를 맞이하는 여인도 생살이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그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
는 지어미 앞에서 왕 또한 민망하고 불만스러우며 그저 화가 치민다. 마음은 급하고 격하여
야생마처럼 미쳐 날뛰고 싶은데 같이 즐기자 하는 어린 안해는 죽는다 비명만 지르니 대체
어쩌란 말이냐? 참으로 미치고 환장하겠구나!
스스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성급한 열정과 욕심. 목석같이 굳어있는 터이며 아직 계집
으로서의 요염 따윈 알지도 못하는 왕비에게서 어찌 이리도 자신이 격한 욕심을 느끼게 되
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도 자문하는 터이다. 하지만 아무리 헤아려 보아도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미궁이요. 불가사이였다.
젊은 상감마마. 지금껏 숱한 미녀들 품안에서 밤낮을 지새우며 물릴 정도로 밤의 재미를 보
아온 터였다. 온갖 기기묘묘한 방중술 공부하고서 저가 먼저 달려들어 온갖 재주로 주상 당
신을 즐겁게 하여주는 희란마마와 깊이 정분나서 날밤 지새우기 오 륙 년. 영리한 학생이라
능숙하고 풍염한 연상의 누이와 가지각색 즐기었던 그 공부에 이미 능한 터이니 어떤 계집
을 가져다 놓아도 짐이 그깟 것 하나 맘대로 요리하지 못할 것이냐 하는 자신감이 왕에게는
있었다.
하물며 주상 전하 당신은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앉은 지존으로서 뿐 아니라 사내로서도 모
든 계집이 한번이라도 안기기를 열망할 만치 잘나고 당당한 미장부였다.
교태 찰랑이는 꽃 같은 궁녀들이 먼저 눈짓하고 안겨들고 애교 부리는 것에 익숙한 터이니
단 한번도 당신 스스로가 먼저 정신을 잃을 만치 이렇게 급하고 격한 것은 정말 처음이었
다.
짐은 왕이다 하는 그 자의식은 무엇으로도 흠집을 낼 수 없는 단단하고 두터운 벽이었다.
어떤 계집을 가져다 놓아도 자신을 잃을 정도로 빠져든 적은 없었다. 아무리 꽃 같은 궁녀
라 하더라도 그들은 왕 자신의 쾌락을 위한 하나의 도구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분인 전
하께서 무엇이 모자라서 중전에게만은 이토록 집착하게 되는 것이냐?
왕은 자꾸만 웅크리며 그를 거부하는 왕비에게 화가 치밀었다. 결국 무안함과 자존심 상한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여 혀를 차며 버럭 고함을 지르고야 말았다.
"이 세상 모든 계집들이 다 겪는 일이니라! 네가 짐의 지어미 된 지도 이미 두해인데 대체
그대는 짐에게 어찌 이리 무정한 것이냐?"
중전마마, 주상 전하께서 신음소리 내지 말라 고함지르시니 한 손으로 울음소리 배어 나오
는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새어나오는 고통과 괴로움의 신음이 울음소리와
섞인다. 그렇게 새어나가는 중전마마 억눌리고 여린 울음소리에 바깥에 있는 아랫것들 모다
눈물이 핑 도는 것이고..
중전의 입에서 기어코 가녀린 울음소리가 다시 배어 나오자 전하, 울컥 치솟는 무안함과 면
구함으로 더 큰 호령질이다.
"대체 왜 이러느냐? 이 세상 부부지간이라, 사내와 계집이 만나 사는 것일지니 모다 이리
하고 살아간다 하였다. 헌데 어찌 그대는 이리도 목석이고 서투른 것이냐? 연치로 쳐도 이
미 원자를 낳아질 나이거늘 항상 이리 멍청하니 짐이 무엇이 곱다 할 것이냐? 그리 시신처
럼 있지 말고 딴 계집들이 하듯이 좀 하여 보아라! 이 미련퉁이!"
이런 무도한 타박까지 하시며 무작정 어린 몸을 학대하신다. 중전은 거의 기절할 것 같이
고통스럽고 민망하였다. 육신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중전 자신을 안으시며 다른 계집들이 하
듯이 하여 보라 잔인하게 놀림까지 하시니 딱 죽고만 싶었다.
중전은 수치심으로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다. 마치 찢어발길 듯이 왕이 그녀의 여리고 가
냘픈 두 다리를 억지로 벌렸던 것이다. 애처롭게 여린 몸을 그래도 감추려 애를 써보나 사
내의 그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 수줍어 차마 스스로의 손길 한번도 제대로 가지 못하던 그
고운 샘으로 덤벼드는 사내의 무서운 폭력이다.
아악-하는 여린 비명이 기어코 중전 입에서 터졌다. 생살을 가르는 듯한 아픔과 함께 왕의
거대한 일부가 그녀의 가장 예민하고 깊은 곳에 기어코 완전하게 찌르듯이 파고든 것이다.
어린 왕비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두 선으로 금침의 깃을 손톱이 짓물러지
도록 움켜잡았다.
첫 밤을 치르고 나서 왕이 그녀에게 주었던 모욕이 아직도 비수처럼 꽂혀 점점이 피를 흘리
고 있음을 왕은 알까? 그에게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는 그 느낌. 아무리 하여도 그에
게 다가갈 수 없고 필요한 것을 줄 수 없다 하는 그 절망과 가난함은 너무도 치열한 아픔이
었고 고통이었다.
중전마마 여린 분홍빛 방심, 가례 첫날부터 일편단심 사모하였으니 소녀의 붉은 순정을 가
져가신 분이라. 달라하면은 무엇이든 다 드리고 싶었는데 그 분은 다 싫다 하셨다. 필요없다
하셨고 모자라다 하셨다.
그날에는 목석을 안고 자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수모 주시었다. 하물며 이제는 안았던
다른 계집과 견주어 요염부리고 음탕한 짓거리에 서툴다고 구박하고 재미없어 하시는 지아
비를 도무지 어찌 대하여야 하는 것인지 와들와들 떨 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어린 왕비의 굴욕감도 고통도 알지 못하는 무정한 지아비 전하, 조금치도 부드러움이나 다
정한 배려 하나 없이 그저 당신의 기운이 뻗치는 대로 무작정 용체를 달리실 뿐이다.
사모한다, 은애한다 그런 말씀 대신 오직 그렇게 깊이 그녀의 여린 육체를 소유하는 왕이다.
한 몸이 되는 그 순간 주르르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귓전에 대고 소리치는 왕의 목청은 탁
했고 거칠었다. 그대는 어차피 짐의 계집이니라! 무도한 한마디 협박이 전부인......
"그러니 그대는 평생 짐 곁에 있어야 할 것이다. 이토록 짐을 싫어한다 하여도, 짐을 불측하
고 옳은 사람으로 아니 보아도 상관없다."
짐이 그대를 필요로 하니까! 이토록 미칠 것 같이 그대를 원하니까!'
왕은 그 뒷말을 마음속으로 소리친다. 짐이 너를 놓아줄 줄 아느냐? 너는 평생 짐의 것이다.
그대는 천지신명이 짐에게 지어미로 정하여준 사람이니라! 그러니 그대의 이 따스함도 이
향기도 이 여린 몸도 다 짐의 것이니라. 짐이 원하면 언제든지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란 말
이다!! 네 마음 따위는 알게 무엇이냐? 짐이 달라 하면은 그대는 주어야하는 것이야!
시신처럼 누운 어린 지어미 몸 안에서 왕은 홀로 야생마처럼 거칠게 뛰어 논다. 하지만 가
지면 가질수록 가난한 마음. 사무치도록 서럽고 안타깝고 외로운 이 마음. 왕은 어린 안
해의 육신 안에서 거친 숨을 들이쉬며 자신의 힘을 쏟아내지만 그저 죄스럽고 슬프고 가슴
아프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후원의 마른 나무가지에 하얀 눈이 쌓여 툭하고 가지가 부러진
다. 사위어가는 하얀 달빛 아래 눈발이 아른아른 낙화하는 순간. 두 분께서 침수드실 적에
상궁이 부러 피워놓은 달콤한 침향이 재가 되어 스러진 다음에야 미친 바람처럼 거센 폭
풍처럼 넘치던 왕의 격한 욕정이 잦아들었다.
이제 끝이 난 것일까?
고통스러운 힘으로 보드라운 몸을 휘젓던 왕이 무엇인가 쾌락에 젖은 중얼거림을 하며 세차
게 마지막 힘을 쏟더니 잠시간 축 늘어졌다. 남녀간의 운우지락에 대하여 무지하고 경험없
는 어린 왕비는 멍하니 넋을 잃고 그저 무거운 그의 몸을 감당하며 그렇게 생각한다.
얼마 후, 땀에 젖은 깊은 숨을 내쉬며 그가 그녀의 몸 아래로 굴러 떨어지듯이 내려갔다. 날
가슴 그대로 가릴 생각도 없이 왕은 네 활개를 편 채 숨을 고른다. 그의 옆에 누운 종전 또
한 금침 자락 잡아당겨 나신을 가릴 생각도 못하고 그저 미동도 없이 귀밑으로 흐르는 눈물
을 억지로 참고있었다.
한참동안 여린 옥체 제 맘대로 가지고 더듬고 깨물며 온갖 희롱 다하시니 주상이야 사내
욕심 채우셨다 하지만은 그 밑에 깔리어 으깨어진 중전마마는 누더기처럼 더렵혀져서 그저
숨죽이고 귀밑으로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비록 부부라 하더라
도 마음이 아니 닿은 사이에서 오가는 이런 교접은 바로 능욕이니 중전마마, 죽고싶을 만치
절망스럽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넋을 잃은 채 사내의 사나운 욕정을 여린 육신으로 받아들
인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 조차도 귀찮을 뿐이다. 오직 하나 바라기 빨리 그가 자신
을 버려 두고 어디론가 사라져주었으며 싶었다.
그런 왕비의 참담한 심사를 곁에 누운 왕인들 모를 것인가? 한참 후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
왕은 제일 먼저 어린 지어미 볼에 소리 없이 구르는 눈물을 본다.
제발 울지 마오…
왕은 왕비의 볼 아래로 굴러 내리는 눈물을 살며시 자신도 모르게 닦아 주고 있었다. 아까
전의 차갑고 능멸하던 말씀이나, 무작정 여린 몸을 학대하던 그 무정함과는 천양지차인 그
런 다정하고 또 부드러운 손길이다.
'제발 울지 말고 웃어주오. 짐이 이러는 것이 그대를 모욕하고 능멸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대와 함께임을 느끼고 싶어 이리하는 것임을 알아주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이 심사를 이
렇게 몸으로 말하는 것이라 알아주시오.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하되 늘 그리워하고 바라보았
던 짐의 마음을 그대도 제발 좀 알아주시오…'
그러나 입 밖으로 차마 낼 수 없다. 스스로 너무 미안하다, 잘못하였다 죄책감이이 깊으니
왕
은 자신이 그런 말을 할 것이면 왕비가 위선을 떤다 자신을 비웃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상관없어! 왕은 중전의 이마에 흐트러진 구름 같은 수발을 어수로 쓸어올리며 자포자
기처럼 그렇게 생각한다.
짐을 싫어하여도 좋아! 이렇게 짐 곁에 그대가 있으면 되는 것이야! 짐이 그대와 합일할 때
면 그대 또한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짐의 지어미라 함을 느끼겠지! 짐은 그것으로도 만족
해. 오직 그대가 짐의 지어미라 함을 알고있으면 되는 것이야..
왕의 튼튼한 치아가 중전의 소담한 수밀도를 지긋이 물어뜯은 것은 그때이다.
"기억하여라. 그대는 짐의 것이다. 그대는 오직 짐의 계집이야!!"
거칠게 소리치며 젊은 상감마마 중전의 고운 젖가슴에 자주빛 치아 자국으로 자신의 문신을
하나 새겨 놓는다.
'이 흉터가 지워질 때까지는 그대, 싫어도 짐을 생각하겠지. 그래 주기를 바래! 미워하여도
좋으니 짐을 기억하여주기를 바래! 짐이 그대의 지아비라 함을, 이렇게 그대의 몸을 가지는
단 한사람이라 함을 알아주기를 바래! 그대 곁에 이렇게 항시 짐이 존재하고 있다함을 알아
주기 바래!'
마음속으로 수십 번 소리치며 또다시 왕은 어린 안해의 여린 목덜미와 입술을 물어 삼키었
다.. 마치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처럼 왕비의 여린 육신을 몇 번이고 격렬하게 소유하
고 또 소유하는 왕이다.
새벽이 다 되어갈 무렵에야 겨우 그녀의 몸 위에서 지치지도 않고 세찬 물결을 타던 왕이
몇 번째인지도 모를 파정을 하고 축 늘어진다.
마치 손때 난잡한 어린애가 가지고 놀다가 내던진 망가진 인형인 듯, 여린 몸 전부가 멍투
성이가 된 중전마마이다. 그의 체액과 체취로 더럽혀진 채 널부러져 있는 왕비를 힐끗 내려
다보던 왕은 그러나 곧바로 마치 더러운 것에서 벗어나듯이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 병풍 바
깥으로 나가버린다. 훌훌 그 방을 벗어나는 왕의 등을 왕비는 그저 망연한 눈으로 바라보고
만 있을 뿐이다.
"짐이 동온돌 건너갈 것이다. 짐의 의대 챙겨라!"
병풍 바깥에서 아랫것을 불러 의대 시중을 하명하는 왕의 목청은 마치 하기싫은 의무를 다
하여 홀가분하다 하는 것처럼 들리었다.
여인으로도 지어미로도 지아비에게 즐거움도 주지 못하는 나란 계집은 대체 어찌 살아야
할까?… 아니 살아서 밥술을 뜰 자격이라도 있는 것일까? 서러움과 비통함이 여린 그녀의
가슴을 난도질하는 것이라 다시금 차디찬 눈물이 주르르 왕비의 귀밑으로 흐른다.
왕비는 왕이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한참동안 그저 알몸으로 흐트러진 금침안
에 누더기처럼 버려진 채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후에 억지로
일어나 풀려진 머리타래를 여며본다. 마치 산산히 부서지고 짓뭉개친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
다는 듯이…
그러나 결국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여린, 그러나 깊은 핏물 같은 속울음을 다시
금 터뜨리고야 마는 것이다.
'어진 중전이 되어야 한다 하였다. 부덕높은 정궁이니 하물며 눈멀고 귀멀고 앞 못보기 꼬
박 두해라… 지아비께서 귀하게 여기받지 못하는 지어미이니 이름만 왕비로구나. 궐에 들어
온 후 내가 얻은 것이라고는 이런 수모와 구박 조롱뿐이로구나.. 나도 인간인데.. 나도 여인
인데… 나도 알뜰한 정분 나누며 어진 지아비께 귀애함 받으며 곱고 어여쁜 아기 키우며 사
랑하며 살고 싶은데… 한번도 중전 되기 원한 적 없었는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내
가 무엇을 그리 잘못하여서?! 타고나기이 내 낯이 비록 다소 보잘 것 없다 하나, 나도우리
아버님의 귀하디 귀한 딸인데… 피눈물 흘리며 키우신 귀한 여식인데… 팔자가 어찌 이리
기박하여서 이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남도 아닌 지아비께 받으며 살아야 한다더냐?
'싫다. 나는 이제 싫다!!'
그러나 그 인간으로의 피맺힌 항명은 입 밖으로는 내놓을 수 없는 슬픈 속울음에 불과한 유
약한 것이었다. 한번 중궁전으로 앉은 운명이니 그 지엄한 책무이며 골수에 사무친 의무감
을 어찌 벗어날 것이더냐? 그 막막한 운명에 그 부당함에 분노라도 하듯이 헝클어진 머리타
래를 대강 쓸어 모듬으며 왕비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지르고 있다.
"박상궁은 들어와 내 욕간 준비하시오!!"
평소 조용하고 어진 중전마마, 난생 처음 내보는 큰 목청이다. 거의 발악 같은 고함소리이니
그는 인간으로서 여인으로서 벼랑에 몰린 중전마마의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했다.
중전은 단 한시도 더 이상 왕의 체취에 젖어있기 싫었다. 왕비는 아직도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왕의 손길과 체취가 못 견디도록 불결하고 싫다. 가능하다면은 그녀는 왕의 체취와 정
액으로 더럽혀진 자신의 몸을 박박 닦아내고 싶었다.
왕이 아까 자신을 상대로 하였던 모든 수치스런 일들을 다시 떠올리는 어린 중전마마, 맑은
물에 들어가서도 갑자기 입을 막고 오래도륵 구역질을 했다. 그 심사를 짐작하는 박상궁, 욕
간통 대령하여 중전마마 조근조근 욕간시켜 드리면서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님… 하고 안타
까워할 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