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200)

다. 왜 짐은 항시 그대에게 야차처럼 무섭고 먼 사람이  되었을까? 다정하게 대하여야지 하

면서도 입 밖

으로 먼저 나오느니 거친 노염이다. 작은 볼을 부여잡고 나직하게 다시 윽박질렀다.   

"부부지간 다 그렇게 하고 사는 것이지! 짐인들 좋은 줄 알아? 허구헌 날 눈물보라, 대체 게

는 왜 짐만 

보면 저승사자인 양 달달 떨기부터 하는 것이야? 대체 중궁전 상궁들은 게를 어찌 교육시키

었나? 이것

들을 경을 쳐야겠다!" 

"시, 신첩이 무지하고 모자라서...... 심기를 어지럽히었나이다. 상궁들은  아모 잘못이 없나이

다. 전하." 

"흥. 말은 잘하는구먼. 중궁의 책무라, 제 일은 원자를  생산하는 일이 아니야? 짐을 이렇게

나 피하고 두

려워하니 짐인들 흥이 나겠어?" 

"노, 노력하겠나이다." 

"어떻게? 어떻게 노력하겠다는 것인데?" 

무작정 빌고 잘못하였다 말하였다. 헌데 두려운 이 순간을  모면하고 넘어가자 하였던 말이 

되걸렸다. 왕

이 심술궂은 눈초리로 중전을 노려보았다. 커다란 손이 중전의  저고리 고름을 왈칵 움켜잡

았다. 완강하

게 옷고름을 움켜잡고 안 된다 고개 흔들어 거부하는 중전을 내려다보는 왕의 얼굴도 참혹

하였다. 그는 

나직하게 그러나 무섭게 협박하였다.     

     

"서, 성상의 뜻에 그저 순명할 것입니다!" 

"그래, 말은 번드레하구먼. 이레만에 다시 왔거니, 중궁전  상궁들이 밤일 모시는 일을 제대

로 가르쳤나 

보련다. 이미 연치가 열 일곱이며 혼인한 지 두 해가 넘어가는데, 이 일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니? 멍

충이. 이 밤 역시 짐의 마음에 아니 들면 너를 모시는 상궁들 목을 자르련다. 왜?" 

옷고름을 잡았던 작은 손에 힘이 풀렸다.  툭하고 치맛자락 위에 떨어지는 손.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외

면해버리는 왕비의 얼굴이 창호지처럼 하얗다. 손에 잡힌 작은  어깨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

었다. 

"짐을 보라." 

어질다 하였지만 속에 숨긴 고집이 만만찮았다. 중전은 끝까지 싫다 고개를 흔들었다.  왕은 

다시 한번 

속삭였다. 짐을 보라. 제발....... 

마지막 말은 아주 낮았다. 난생 처음 제발이라고 말하였다. 잡아채면 한줌도 아니 될 것  같

은 사람. 작은 

새처럼 애잔하고 여린 지어미에게 왕은 난생 처음 애원하였다. 

짐 좀 보아. 짐의 눈을 좀 보아주어. 짐도 무섭고  두려워. 그대를 아프게 하고 또 상처낼까 

봐서 짐도 지

금 죽도록 무섭다고. 이일이 짐인들 쉬운 줄 알아? 그대를 마냥 아프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는 일이 

짐인들 흔쾌한 줄 알아?               

자꾸만 흐르는 눈물. 결국 왕은 중전의 옷깃을 잡은 손을 힘없이 놓고 말았다. 마치  살아난 

듯 중전은 재

빨리 옷깃을 부여잡으며 몸을 돌렸다. 한시바삐 이 방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그런 얼굴. 차마 

나가지는 

못하고 가능한 한 멀찍하니 떨어져 돌아앉은 중전은 죽어라 옷고름만 잡고 있었다. 

"......지금 게는 짐더러 계집 겁간하는 불한당이 되라는 말이니?" 

왕은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전은 미동없이 다른 곳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차디차

고 무정한 

그 얼굴을 바라보며 왕은 버럭 소리질렀다. 

"짐이 다가가는 것을 이리도 싫어할 줄은 몰랐다. 혼인하여 부부지간, 밤자리도 같이  안 하

면서 어찌 같

이 살란 말이야? 짐이 다른 계집 찾아가는 일은 다 게의 탓이다!" 

"......하, 항시.... 워, 월성궁으로...... 가, 가시어놓고....... 신첩더러 그런  일 아니 하시는 줄 알

고......" 

중전이 훌쩍이면서도 작은 목청으로 되받았다. 무정한 건 중전이  아니라 왕 당신이 아니냔 

말이다. 면구

하기도 하고 골도 나고 해서 왕은 신경질적으로 베개를 발로 걷어찼다. 다시 버럭 소리질렀

다. 

"흥! 그래보았자 천한 잉첩. 곧 죽어도 원자는 낳지 못할 계집이지  않느냔 이 말이야! 게가 

해야할 일을 

지금 누구에게 미루나? 명색이 정궁이면서 사직의 대통을  이어야지. 지금 원자까지도 후궁

더러 낳아라 

시킬 참이니? 엉? 그래?" 

".......그, 그런 것은 아니지만은......." 

"허면 이리 오소. 좋은 말 할 때에.  짐이 게를 죽인다던가? 남녀지간 밤자리 하는 일이  다 

그런 것이지. 

음음음...... 다, 다정하게 대하여 줄 것이오. 그때처럼은 아니할 것이니....... 음음음. 허니 무작

정 그러

지 말고 이리 오소." 

계집 앞에서 이리 저자세인 적이 있었던가? 왕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꾹 참고 중전을 살

살 달랬다. 미

동없이 훌쩍이기만 하는 어린 안해 곁으로 다시 먼저 다가갔다.  한 무릎을 세우고 살짝 젖

은 얼굴을 들

어 입맞추었다. 살살 사탕가루을 발랐다. 

"원자만 낳으소. 그럼 짐이 골내지 아니 하께. 중전이 하잡는대로 다 하여 주께." 

중전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왕은 중전의 여린 몸을 살짝 안았다. 금침 안으로 끌고 가려

다가 그 와

중에 또 도망가면 어쩌나 싶어 그 자리에 눕혔다. 두려움과  긴장에 젖어 빳빳하게 굳은 작

은 몸을 부드

럽게 쓸어내렸다. 희미한 촛불 안에서  양지옥처럼 말갛게 빛나는 중전의 나신이  드러났다. 

물큰 뿜어져 

나오는 짙은 방향(芳香). 향기롭고 고운 작은 꽃 위에 몸을 포개고 왕은 소중하게 그 향기를 

들여마셨

다. 

교태전 서온돌의 불이 마침내 꺼졌다.   

"어이쿠!" 

"에그머니!" 

때아닌 비명소리. 장지문을 새어나온 목청은 분명 왕의 것이었다. 뾰족한 중전의 비명소리도 

같이 새어

나왔다. 문 밖에서 지키고 있던 중궁전 윤상궁의 귀가 쫑긋 섰다. 

준비도 되지 않은 좁은 몸으로 장대한 왕의 일물이  파고들었다. 말로는 다정하게 하여준다 

해놓고 중전

의 사정이야 볼 것 없이 향기에 젖어 욕심이 목까지 찬 참이다. 다짜고짜 저만 좋다고 냉큼 

침입한 터라, 

아파 죽겠고나. 이 분이 진정 나를 죽이시려  함이야! 순명한다 하여 시체처럼 누워 사내의 

손길을 견디

던 중전이 얼결에 제 몸을 휘어감은 왕의 건장한 팔뚝을 물어뜯어 버린 것이다. 

"요것이! 짐을 죽이려하는 게야!" 

"마, 망극하옵니다. 신첩을 용서하여 주옵......" 

"아주 짐을 다 물어뜯어 놓아라? 얌전하고 어질다 하였구만, 그 이 한번 단단하도다. 흥! 일

부러 그랬

지?" 

용체를 훼손한 것이라 새파랗게 질린  중전마마, 이제 내가 폐비되어 쫓겨나는구나.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중전을 내려다보는 왕의 눈빛이 어쩐지 다정하였다 함뿍 웃음

기가 머금어

진 듯도 하였다. 

"짐을 물어뜯었으니 어디 한번 두고 보라지?" 

왕의 하얀 이가 중전의 오른쪽 어깨를 지긋이 물었다. 귓전에 속삭이는 목청이 은근히 만족

스러웠다. 

"내일은 왼쪽에다 새겨주마. 허면은 피장파장이라 아주 짐을 죽여라. 엉?" 

이러고 저러고 하여 주상께서 교태전에 무사히 다시 입성을 하였구나.         

왕이 중궁전에 연하여 이틀밤을 듭시었더라더라. 서온돌에서 중전마마와 긴긴 밤 내내 오롯

이 동품하여 

침수하시었단다, 소문은 번개불처럼 빠르게 퍼져나갔다. 

지난 동안 교태전의 처마 끝도 바라보지 않던 상감이 아니신가? 헌데 무슨 변덕이람? 오라 

하지 않았는

데도, 주상 당신이 제 발로 먼저 들어가 밤을 지새우다니. 

그 방안에서 벌어진 일이라, 어린 중전 앞에 두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별의별 일을 다 

한 주상의 불

쌍한 처지. 안타깝고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 그 사정은 아무도 모르는 바였다. 겉으로 

드러난 일

이니, 오직 상감마마께서 대차게 소박놓으시던 중전마마와 새정이 돋는 것이 아닐 것이더냐 

이런 수근

거림이었다. 

그 일을 월성궁 희란마마가 가만히 놓아두고 볼 리가 없지. 

강새암으로 새파랗게 날을 세우고 있는 터라 며칠  후 누이를 한번 볼까 하고 월성궁 듭신 

차에 왕은 희

란 마마에게 야무지게도 닦달을 당하게 되었다. 

중전의 달거리가 시작된 것이다. 우원전  나가시어 침수하옵시오 하였다. 꿩 대신  닭이라고 

허면은 월성

궁이나 나가볼까? 

제법 오랜만에 전하께서 월성궁 듭시는 차였다. 상긋 웃으며  버선발로 뛰쳐나와 반기며 안

아줄 것을 기

대하였다. 그런데 애초부터 방문 들어서는  왕을 바라보지도 않고 돌아앉아  외면하는 희란 

마마의 옆얼

굴이 북풍한설(北風寒雪)처럼 쌀쌀하였다. 

아직도 김내관 놈의 속살거림으로 전하께서 중전마마와 초야를 치른 것을 그녀가 꿰고 있다 

함을 모르

시는 터이다. 하물며 저에게는 기별도 아니하신 터에 환궁하시자 말자 전하께서 중전마마부

터 찾으셨다 

하는 것에 희란 마마 억장이 더 무너지고 열불나서 죽을 참이라는 것은 꿈에도 짐작치 못하

신다. 다만 

짐이 보름이나 넘게 찾지 않은 터이니 누이가 섭섭하여 짐에게 앙탈하는 것이로구나 이렇게

만 짐작하셨

다. 

그래서 속으로 짜증난다 싶으면서도 웃는  용안으로 다가앉으셨다. 누이가 왜  이리 짐에게 

쌀쌀맞은 것

이야? 하고 좋은 말씀으로 손목 잡으신 참이다. 

새파란 비수같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하고 희란 마마는 감히 전하의 어수를 탁 털어냈다. 그

러고는 왕의 

턱 밑에 다가앉아 눈을 표독하게 치켜뜨고 다짜고짜로 어린 년 풋살구 맛이 곱다 하니 중전 

년한테 가시

오! 하고 패악질부터 시작하였다. 

"흥, 무어라고요? 천하 박색  갈가마귀라 가까이 보기만 하여도  구역질이 나셨다 하였사와

요? 헌데 그런 

년을 손목잡아 승은 주신 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인제 슬슬 늙어지는 이 누이는 계집 꼴도 

아니다 이런 

뜻입니까? 배신이라, 오직 이 누이 품안에서 천지분간  못하고 사모하오 별별 사탕발림하시

며 이 누이 

딱 죽이고 게로 가시지 예는 또  왜 오셨노? 환궁하시자마자 이 누이 찾으시기는커녕  중전 

고년부터 찾

으셨다더니 예는 또 왜 오시어? 이 누이 마음이라 그런 것으로 달래질 줄 알았던가? 흥, 이

말 저말 할 것

도 없사와요! 인제 필요 없으니 딱  이 누이더러 죽어라 하시오! 이 꼴  저 꼴 보기 싫으니 

나더러 죽어라 

하시오오오!~~" 

감히 용안 앞에서 손톱까정 치켜들고 난리를 치는구나. 미친년처럼  꺼이꺼이 울다가 제 머

리타래까지 

와드득 뜯었다. 바닥에 대굴대굴 구를 지경에 이르렀다. 이만하게 저가 난리를 쳐대면은  전

하께서 고양

이 앞의 쥐처럼 누이 잘못하였소! 하고 설설 기어야지. 

그런데 묵묵히 희란 마마 패악 섞인 고함질을 그저 듣고 계시던 전하, 문득  잠깐!! 하고 손

을 들어 말문

을 막았다. 용안에는 서리서리 불쾌함과 의구심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것 듣자하니 실로 기함할 일이군! 누이, 짐이 교태전에 들어 중전과 밤을 보낸 것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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