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200)

보전하고 누

우신 성덕궁 중전마마 형편은 어떠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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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마마." 

벽쪽으로 돌아누운 작은 어깨는 미동이 없었다. 세상만사 모두 귀찮다 이런 뜻이었다.  애가 

달대로 달은 

윤상궁은 다정한 목청으로 한번 더 간청하였다. 

"부러 사가로 사람을 보내어서 찬모를 들어오라 하였나이다. 즐기시는 녹두죽을 끓였사옵니

다. 잠시 일

어나시어 한 저분이라도 하옵소서." 

"......물리오." 

사흘 내리 식음전폐라, 지금껏 찬물 한 모금 겨우 넘기신 터였다. 마치 시신인 양 그저 돌아

누워 입 봉하

고 계시던 중전마마가 그래도 사흘만에 마침내 하답을 하신  것이 다소나마 안심이었다. 중

전마마 곁으

로 윤상궁은 한 무릎 더 다가앉았다. 사가의 어미인 양 좋은 목청으로 구슬렸다. 

"이미 사흘이옵니다. 지금껏 수랏상을 내치시다니요. 이렇게 마냥 아니 드시면은  옥체가 허

하여져서 큰

일이 나옵니다. 제발 일어나시어 미음 한 저분이라도 하시옵소서." 

"... 싫다 하지 않았소? 도통 아니 먹힐 것 같소이다. 냉수나 주시오." 

어진 분이시되 은근히 속고집이 있으신 것이 분명하였다. 그저  어질고 여리며 가냘프다 하

였는데 아무

리 애원하고 빌어보아도 죽물 한 모금 아니 넘기시는 강단은 어디서 난 것일까? 

이날도 간신히 한 마디 더 하시는데 겨우 냉수 대접을 청하시었다. 윤상궁은 기운이라 하나 

없고 가녀리

기만 한 중전마마의 몸을 부축하여 억지로 자리에 앉게 하였다. 백설처럼 새하얀 작은 얼굴, 

명민한 빛

이 반짝이던 고운 눈동자는 빛이 꺼져있었다. 아무 것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는 공허하기 이

를 데 없었

다. 아랫것들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사흘전 일은 어린 그녀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

던 것이 분명

하였다. 

청하신 냉수대접 대신 윤상궁은 소반 위의 녹두죽을 떠서 중전의 입으로 막무가내 밀어 넣

었다. 짠한 마

음을 억지로 누르며 엄하게 아뢰었다. 

"제발 한번만 드옵소서! 아니 드옵시면 쇤네가 경을 치옵니다." 

"참 윤상궁 자네도 어이없는 사람일세 그려. 내가 수라상 아니 받는다 하는 것이 어찌 자네 

허물이겠는

가?" 

중전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중얼거렸다. 윤상궁은 다시 한번  죽물이 든 은수저를 입

술 가까이 가

져다 대며 눈을 흘겼다. 

   

"그런 말씀일랑 하지 마옵소서. 마마의 옥체를  보살펴드리는 지밀이 바로 쇤네가 아니옵니

까?" 

"자네 충심을 내가 왜 모르겠나? 허나 나도  인간인지라....... 아무리 아니라 한들 속이 문드

러지는 일도 

있는 법일세 그려. 허니 그만 나를 닦달하시게나." 

"이날만큼은 쇤네가 목이 잘려도 감히 마마께  닦달을 하여야겠나이다. 어제도 장내관이 다

녀갔기로 전

하께서 중전마마께서 안즉도 자리보전하시느냐 걱정이  되시어 부러 궁으로 저를  보내시어 

중궁전 사정

을 보고 오라 하명하셨다 하옵니다. 명색의 사직의 안주인이며 만백성의 어미일진대 옥체가 

그리 허하

면 대체 어찌 할 것이냐 역정을 내신 터라 하옵니다. 드옵시고 인제 일어나셔야지요." 

중전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가당찮다  그 말이었다. 그러나 윤상궁은 아랑곳  않고 

계속 말을 이

었다. 

"전하께서 너 닷새 지나면 환궁을 하신다 하는데 그때서는 웃으며 아무 일 없단  듯이 맞이

하여 주셔야하

는 것입니다. 말씀으로는 아니 하셨되 전하께서도 그리 밤을 지내신 후에 많이 속이 상하고 

애잔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일부러 장내관을 보내어 문안을 하시는 것이지요." 

"...맹수가 사냥감 잡아먹을 적에 불쌍하여 눈물을 흘린다 하더니 바로 그 짝이로구먼." 

윤상궁이 이리 저리 사정 돌려  좋게 아뢰는 그 말로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되받아치는 

중전의 목청은 

나직하나 쌀쌀하였다. 인간으로도 여인으로도 지아비 전하께  대접받지 못하고 능멸당한 피

맺힌 자존심

의 상처는 깊고 뼈아팠다. 인간으로서 차마 그러지는 못할 지니, 참자 참자 하여도 불길  같

이 일어나는 

분노가 확연하게 담긴 목소리였다. 

중전은 왕이 자신을 걱정하여 장내관을 부러  행차 도중에 궐로 돌려보냈다는 말을  절대로 

믿지 않으련

다 생각하였다. 그런 분이 허면 그 밤에 나를 그렇게  모욕하고 무안을 주시며 처참하게 하

신다더냐? 내 

마음에 이제 그 분은 지아비도 아니오, 이미 천만번은 죽어진 분이니라. 

어질고 조용하나 고귀하고 깊은 자존심은 더없이 강한 소녀이다.  오히려 어린 왕비는 장내

관을 시켜 왕

이 중궁전 문안을 하였다는 대목에서 더 화가 치밀어올랐다. 

'앓아 누웠다 하는 내 사정이 안타깝다고? 그래서 문안을 보내어? 기가 막혀서! 허면 그 밤

에 나를 대놓

고 능멸하신 것은 무엇이더냐? 혼인하여 이태라, 겨우 초야를 치르는 터로, 쌀쌀맞기 북풍한

설이며 괴

물도 그런 괴물이 없음이라, 삭신을 짓밟아놓고 속내를 뒤집어엎은 것으로도 모자라서 무어

라? 들으라

는 듯이 월성궁 가자 하시며 또다시 비수를 꽂으신 분은 대체 누구냐? 아이고, 위선도 그런 

위선이 없으

니 병 주시고 약 주자 함이더냐?' 

아무리 상감이라 한들 중전 마음에 이미 인간 이하라. 중궁전 위엄을 더럽힐세라, 법도를 어

길세라 보아

도 못본 척, 들어도 못들은 첫 마냥  참고 속 깊게 살던 그녀도 더  이상은 못 참을 것이다 

싶었다. 그나마 

상감마마라, 돌려서 좋게 말하는 윤상궁에게 가시 같은 독설(毒舌)로 쏘아붙였다. 그 정도로 

그녀의 심

사가 뒤집어지고 문드러졌다는 말이었다. 

"이미 나란 존재는 전하께 발길에 걷어차이는 돌멩이 보다 못한 존재이거늘 죽든 살든 상관

하지 말라 하

시게나! 아니, 내가 죽어져야  당신 또한 명문대가 미인  찾아 정궁으로 맞이하사 즐거움을 

누리실 것인데 

새삼스레 왜 이 보잘 것 없는 못난 것에 신경을 쓰시는고? 당신도 그러하면 그 밤에 나에게 

하신 일들이 

심하였다 후회하심인가? 다 부질없고 쓸 데 없는 것이니 그만 두시게! 인제 나는 대전 쪽의 

말이라 하면 

듣고 싶지도 않소! 허니 괜히 없는 말 만들어 내 맘을 위로하여 하지 마시오. 다 헛된 일이

니 내가 그에 

속을 사람이 아니오." 

입밖으로 내어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 전부가 얼음조각이 되어 바스러졌다. 중전은 그러고서 

윤상궁이 

다시 떠 넣어주는 녹두죽을 마다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만 두고 물을 다오 하셨다. 

"그만 할 것이오. 입에 넘어가지 않소이다. 나중에 다시  들여오오. 내 윤상궁 낯을 보아 다

시 한번 강잉

하게 들어보겠으되 지금은 힘이 드오." 

"겨우 반 그릇 남짓이옵니다. 이도 못잡수시면 참으로 옥체가 상하실 터라. 제발  두어 저분

만 하옵소서." 

아무리 윤상궁과 박상궁, 김상궁이 옆에 앉아 다투어 꼬드기고 호령하고 권하여도 마다하시

는 고집

이  매섭다. 결국 윤상궁이 돌아안장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이 늙은 것이 중전마마 

잘 보필하지 

못하여 이날 이토록 망극한 꼴을 당하게 하옵니다 하고 자책의 눈물을 흘릴 즈음에야 어린 

중전마마 한

숨을 쉬며 이마를 괴었다. 

"그만 하오. 그것이 어찌 윤상궁의 죄일 것인가? 모다 이 몸이 못나고 모자란 탓이지... 이제 

내가 대강 

진정이 되었으니 너무 걱정을 마오. 내가 그만하니, 내일은  일어날 것이오. 지아비 침수 모

셨다가 자리 

보전하는 지어미라... 그는 망신이지. 허기는, 지아비 전하께서 지어미인 나를 밤에 찾아주셨

으니 나야 

망가졌다 하더라도 전하께서는 지아비로서의 책무를 다하심이라.  나를 뒷방에 버려둔다 말

하는 대신들

의 입방정들은 쑥 들어가게 되었으니 감축할 만한 일이오.  어쩌면 그것을 바라고 전하께서 

듭신 것인지

도 모르지. 그 밤 그렇게 드옵셨다가 내가 못마땅하여도 그렇지, 냉큼 날 버리고 월성궁  가

신 것이

니...... 그 천한 계집을 앞에 두고 나의 매사가 못마땅하고 못났더라 웃음거리로 삼으신 것은 

아닐까? 

내가...... 딱...... 그 생각만 하면 죽고 싶소이다." 

한숨 끝에 다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하얀 볼을 굴렀다. 중전마마 옷고름을 들어 젖은 눈

시울을 찍어

냈다. 윤상궁이 손사래를 저었다. 

"아이고 어찌 그런 망극한 말씀을 하오십니까? 전하께서 그 밤에 월성궁을 가시다니오!" 

"그 밤에 그렇게 호령하시었잖아? 나에게도 귀는 있소이다." 

"천부당만부당 하옵십니다. 중전마마, 아무리 상감마마께서 차가우신 분이라 하여도 그런 경

우 없는 일

은 아니하신 터입니다. 그 밤에 무안하신 터이니 우원전으로 가자 하시었지요." 

"......월성궁 나가신 것이 아니었다고?" 

"암만요! 무안하고 민망하시니 서온돌을 박차고 나가시기는 하였되 월성궁은 아니 나가셨나

이다. 우원

전으로 나가시어 침수하시고는 다음날로 곧바로 재성 행차를 하신 것이니 월성궁  근처로는 

발길도 아니

하신 터입니다. 쓸데없이 심기 상하지 마소서. 전하께서는 겉으로는 불퉁하셔도 워낙에 사리

분별 명확

하사 이유없이 잔인하신 분이 아니옵니다." 

"... 이유 없이는 잔인하지 않으시다? 허면은 그 밤에는 이유가 있어 나를 그렇게 모질게 대

하셨다 그 말

인가? 천하 못난 박색이며 계집의 요염이라 하나 없는 터이니... 허기는, 내가 지아비 전하께 

소박 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음이라. 모다 자업자득이니 그리 따지자면 내가 할말이 없소이다." 

위로하려다 하였다가 말 한마디 잘못하여 왕비의 속을 더  뒤집은 셈이었다. 윤상궁이 낯을 

벌겋게 붉히

며 어쩔 줄을 몰라하였다. 어린 중전마마.  지금껏 의지하여 곁에 둔 노인을 아무리  자신이 

심사 상하였

다 하여도 대놓고 무안을 준 것이다. 어진 분이라, 어찌 마음이 편안하시랴? 얼마 후에 한숨

을 쉬며 윤

상궁에게 미안하다 사과를 하시었다. 

"... 내가 말을 잘못하였소. 어디 윤상궁이 나를 무안주려 그리한 말일 것인가? 내가 하도 속

이 뒤집어져

서 괜스리 그대만 타박을 한 참이오. 나는 인제 괜찮소이다. 어차피 한 번은 일어나야 할 일

이었으니 지

어미 된 도리로 지아비를 피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일 것이며 또한, 그대 말도 틀

린 것이 없으

니... 내가 월성궁 계집보다 나은 점이 있다 할  것이면 전하께서 나를 두고 못마땅해하시지

는 않았겠지. 

모다 못난 나의 잘못이오. 나가시오. 내가 이 밤만 잘 마음을 다스리고 일어날 것이오. 나도 

인간이니... 

아무리 애를 써도 진정하기 힘든 때도 있는 법이라... 그는 그대들이 이해하소." 

아랫것들이 모다 나간 쓸쓸한 침전. 두터운 비단 금침, 명주솜 이불 안에 누워있어도 왕비는 

한없이 춥

다 여긴다. 검은 심연 같은 침묵이 바닥에 깔렸다. 그 안에서 어둠에 물든 그녀 홀로 잘라도 

잘라지지 않

는 아픔과 굴욕감을 다시금 씹고 또 씹고 있을 뿐. 

외롭다... 중전은 돌아누웠다. 팔로 자신의 몸을 꼭 끌어 안아보았지만 뼈 속 깊이 파고든 무

청처럼 새파

란 한기(寒氣)는 가시지 않았다.  이대로 무(無)로 돌아가  버렸으면. 중전은 자신도 모르게 

자그맣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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