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200)

게 딱 못을 박아 둘 참이다.' 

주먹을 움켜쥔 희란마마 절로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구나. 기분 같아서는 만약 왕이 제 앞에 

있다 할 것

이면 그의 용안을 손톱으로 벅벅 내려 그어주고 싶은 만치 분하였다. 시퍼런 강새암에 안절

부절 도무지 

심신이 안정되지 못하는 희란마마이다. 

제 맘대로 권세 휘두를 뒷곁이며 무엇이든 내놓아라 하는 대로 주는 화수분 역할로도 그러

하였다. 또한 

오직 한 분 제 불타는 육신 달래주고 흠뻑 물리도록 사랑의 비를 내려주는 사내로서도 왕을 

남 주기 싫

고 저만 독점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얼마나 잘났으면 주상께서 열 두어 살 되던 어린 소년 시절부터 여덟 살이나 위인 희란마마 

저가 먼저 

가슴이 설레어 바라보았을 것인가? 심지어 <단국의 반악>이라는 별명을 타국 사신들이  붙

여줄 만치 늠

름하고 사내다운 기상이 당당하신 미장부라, 천상의 선관(仙官)이라 하여도 그만은 못할 분

이 바로 젊

은 상감마마이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모든 여인네 방심이  저절로 흔들릴 만큼 아름답

고 늠름하신 

분인데 그런 분을 희란마마 저가 지금껏 독점하여 날밤을 질탕하게 희롱하며 진진한 사랑을 

한 것이 아

니더냐? 헌데 그런 깊은 정분의  제 정인(情人)이 지어미라 못난 것  하나 두고서 스리슬쩍 

드나든다 싶으

니 어찌 이리 속이 쓰리고 열불나고 투기가 치미는 것인가? 

한참동안 홀로 씩씩대던 희란마마는 교인당을 불러라! 하고 냅다 패악 섞인 고함을 지른다. 

'아무래도 불안하니 치성을 한 번 들여야지! 사내 정분 붙어지는 비방이라 한 번 푸지게 푸

닥거리를 하

여야겠어. 아이고, 중전 고년! 고 간교한 년.  감히 제 년이 무엇이라고 나의 정인이라 주상

을 은근슬쩍 

욕심내어 제 년 아랫도리로 미혹하여 든다 이 말인가? 고년이 겉볼 적은 어리숙하고 멍청하

여 보였건

만, 은근히 악독하고 미혹하여 수단이 보통이 아닌 게야. 그리 싫다 내치던 주상을 제  침전

으로 불러들

인 것을 볼작시면 요 년이 은근히 간교하고 돌려치는 잔꾀가 장한 계집인 것이다. 한 번 트

기가 힘이 든 

것이지 남녀간 연분이라 한 번 길이 트여지면 뉘도 막지 못한다 하는 것인데... 고년이 작정

하고 주상을 

유혹하려 나서면은 내가 보지 않고 곁에 없으니 어찌 막을  것이냐... 아이고, 분해! 중전 고 

간특한 년이 

새봄에는 장질이나 걸려 피 토하고 죽어져 버리면 좋겠다! 같잖은 년! 못난 것이 감히 어디

라고 나를 대

적해 주상 성총을 욕심내는 것이야? 얄미워 죽겠네. 어디 두고 보라지. 내가 방심하여 이번

의 주상 행보

를 막지 못하였으되 인제 알게되었으니 이 기회에 아주 주상을 다잡아 고년 쪽으로는 고개

도 돌리지 않

게 단단히 버릇 가르쳐줄 것이다!' 

전하께서 심복이라 믿는 김내관 그놈이 이렇게  희란마마 박아둔 눈과 귀라 전하의  은밀한 

행보까지 월

성궁에서 다 꿰고 있는 줄도 모르고 순진한 상감마마이니 어찌하랴? 

희란마마가 강새암과 분함으로 길길이 날뛰며 교인당 불러내어 중전 년 피 토하고 뒈져버리

고 주상 성

총 붙박이로 고정시키는 푸닥거리를 하라 하명하고 있는 줄 모르고 전하께서 재성에 도착하

신 것은 그

날 저녁이었다. 

이미 날이 저물 참이며 이틀거리로 오래도록 말을 타신 지라 곤하실 것인데도 쉬지 않고 바

로 새로 지은 

행궁을 돌아보시겠다 하셨다. 

성밖에 새로 개간한 농장과 보는 내일 아침에 납시어서 보시기로 되어있으며 성벽 쌓아지는 

공사는 그 

오후에, 그리고 금위영의 군사훈련 친림과 무과 시험은 그 이틀 후에 하시기로 예정되어 있

었다. 이 근

래 보기 드물 정도로 분주하고 바쁜 일정이라 할 것인데 전하께서 재성에 행차를 하겠다 갑

자기 하교하

시면서 그리 쉴 틈 없이 일정을 짜라 하시니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늑하고 양지바른 터를 골라 화려하고 번듯하게 지은 재성 행궁이다. 

선대왕 장조께서는 보위에 있던 그 이십 여 년 동안  평생 피 튀기는 골육상쟁(骨肉相爭)에

다 권력다툼

을 벌인 터라 도성인 중경을 극도로 꺼려하셨다. 그리하여  심중으로 새로이 개발하는 재성

에 도성을 옮

기리라 결심하신 것이었다. 그 준비로써 당신이 보위에 계시던 후반부 십여 년 동안 조직적

으로 성벽을 

쌓고 농장을 개간하여 보를 쌓고 전국서 모여든 기민들을 재성으로 이주시켜 자리를 잡으시

니 인제 재

성은 도성의 규모를 버금가는 거대한 촌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발전하여 변해가는 재성의 중심이 바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십여 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건

축한 재성 행궁이다. 관아 건물이며 장시며 향교며 중심되는  여러 건물들을 내려다보는 양

지바른 언덕

배기 아래 지어진 행궁은 그 전체 규모가  도성의 대궐들에는 비길 수 없다 하여도 법도에 

따라 절도있게 

지은 건물들이 아담하고 단정하며 위엄이 있었다. 

당당하게 선 정문부터 하여 대전, 편전을 거쳐 가장 깊숙한 곳에 지은 내전 별당까지 죽 돌

아보시고는 

전하께서 만족한 미소를 지으신다. 당신 마음으로도 흡족하시다 이런 뜻이다. 망극하게도 고

생한 대목

들을 친히 알현하시어 고생이 많았다 치하하시고 그 공사를 감독한 재성 부윤 정이찬 이하 

모든 이들에

게 상급으로 친히 비단을 하사하신 터이다. 

"단정하고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잘 지은 터이니 부윤이 고생하였다. 고생한 대목이며 인부

들이 많을 것

이니 짐이 어주와 음식을 하사하리라. 허니 그들에게 이 밤서 잔치를 베풀어주어라.  선대왕 

전하께서 이 

궁궐을 마음에 두시고 오래동안 완성하기를 염원하신 터로 자식인 짐이 마침내 완성을 하였

으니 부왕 

전하께서도 저승서나마 즐거워하실 것이라. 선대왕께서 미리 이  궁의 이름을 <강헌궁> 이

라 붙여 놓았

으니 그리 부를 것이며 환궁하는 길에 부왕전하 능에 들러 궁궐을 완성하였다 고변을 할 것

이야. 승지는 

교서를 내려서 짐이 아바마마의 능에 들를 수 있도록 차비하여라.  허고 짐은 예서 이 건물

이 제일 마음

에 드니 짐이 친히 편액을 내리리라!" 

흡족하신 용안으로 치하의 말씀을 하신 연후에 전하께서는 행궁의 대전 건물에 직접 어필로 

남낙헌이라 

하는 편액을 써주시었다. 

"나머지는 광교(명필 오원사의 호)가 글씨를  잘 쓴다 하니 그를 불러  다른 건물에 현판을 

걸라 하라! 내

전은 중전이 머물 자리이니... 서하당이라 할 것이다. 큰 집에 사는 여인이라 오직 정궁일 터

이니 말이

야." 

그러나 말은 그리하였지만 실상 '서하'라 하는 이름은  전하의 생모마마이신 희빈 홍씨께서 

선대왕께 받

은 호이다. 비길 데 없이 깊은 총애를 받은 터이니 선대왕 장조는 서하라는 호를 내리어 한

갓 후궁인 그

녀에게 실상 그대는 짐의 오직 한 분뿐인 안곁이노라 공언하신 것이 아닐 것인가? 그 이름

을 행궁이나

마 내전의 편액으로 하시는 뜻은 아드님이신 전하께서 짐의 생모마마께 중전의 자리를 올려 

드리노라 

이런 뜻이다. 

그렇게 일을 마치신 전하, 받쳐  올리는 수라를 받으시고는 밤이 늦도록  서안을 펼쳐 놓고 

오래도록 교서

를 쓰시었다. 병판 남회를 불러 모레 있을 무과 시험 일정을 다시 설명하라고도 하셨다.  곤

하실 것인데

도 흐트러짐 없이 그저 일만 하시고 물러가라 말씀이 없으시니 배행한 도승지 이하 승지 두 

명이 윗목에 

앉아 졸음에 겨워 꾸벅꾸벅 졸고 있을 참인데 바깥에서 고변이 있었다. 

"전하, 도성 갔던 장내관께서 도착하였이다." 

"들라 하라! 경들은 이제 가서 쉬시오. 짐도 이제 침수 할 것이오." 

오래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으시고 지금껏 교서를 쓰면서도 기다린  것은 바로 그였나 보다. 

전하께서는 

비로소 고개를 들고 손을 저어 도승지 이하를 물리셨다. 그들을 스쳐 허리를 굽히고 장내관

이 들어와 윗

목에 엎드렸다. 

"전하, 부름을 받자와 쇤네가 급히 말을 달려 궐에 갔다가 인제야 도착하였나이다." 

왕은 손짓하여 그를 가까이 오게 하였다. 마치 다른 사람이  들을까 두렵다는 듯이  나직하

게 장내관에게 

하문하였다. 

"짐이 궁금하여 너에게 하명을 한 것이다. 그래, 안즉 비는 자리보전하신다 하더냐?" 

"망극하옵니다. 아직은... 허나 금새 일어나리라 윤상궁에게 말씀을 하셨다 하옵니다." 

왕의 훤칠한 미간에 신경질적인 기운이 다소 솟았다. 입꼬리를 비틀며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쯧쯧쯧... 못난 것. 명색이 사직의 안주인이라  하는 것이 어찌 그리 무지하고  섬약한 것이

야? 이미 이틀

이나 지난 터인데 아직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다니! 그런 것이니 짐이 저를 무엇이 곱다 

할 것이며 

무엇을 아껴줄 것이냐?" 

한없이 냉랭하고 쌀쌀맞은 어조였다. 궁금하다 하여 재성으로 오는 도중에 장내관을 일부러 

궁궐까지 

다시 보낸 분이 아니냐? 왕비가 어찌 하고 있는지 알아 보라 하명하실 적과는 완전히 또 다

른 용안이시

니 왕비가 죽든 말든 상관도 없다, 그저 짜증스럽고 귀찮다! 이런 표정이었다. 

"알았다! 짐이 너덧 새는 더 지나야 환궁을 할 것이니 너는  다시 돌아가 중궁전에 그리 알

라 하여라. 설

마 그때까지는 일어나겠지! 허나 계속하여 이렇게 섬약하고 국모로써 체통이나 위엄이 부족

하다 할 것

이면 짐이 생각이 달라지느니라. 너는 중궁전 상궁에게 그 말을 반드시 전하여라. 벌써 그이

가 교태전 

주인이 된지 세 해이며 짐의 지어미로 산 것이 오래인데 이토록 무지하고 멍청하니 대체 중

궁전 아랫것

들은 제 주인 보필을 제대로 하는 것이냐? 딴 것은 모르되 제발 밤일 공부는 좀 시켜라 하

여라! 흥, 그리 

멍청하고 못난 것을 짐더러 지어미로 데리고 살아라 하였던가? 짐이 대체 무엇을 어찌하였

다고 망신스

럽게 그리 자리보전하고 시위(施威)를 하는 것이야? 같잖은 것! 천하박색 못난 것이 꼴값은 

골고루 하는 

것이다." 

당신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듯 북풍한설 같은 말씀이 그리도 모질고 잔인하시다. 

전하의 그 모지락스럽고 쌀쌀맞은 말씀에 중전마마 가엾은 꼴을 제 눈으로 보고 온 장내관

의 노안(老

眼)에 눈물이 울컥 솟는 지경이다. 지아비이신 전하께서는 어찌 이리 어질고 고운 중전마마

에 향해서만 

무정하시고 차가우신가? 사람으로서의 인정이라 도무지  찾을 길이 없으니 이 분이  이토록 

모질고 부당

하신 분이던가? 사정보고 오라 궐에 보내실 때는 언제고 정작 사정을 말씀드리니 또 이렇게 

울컥 노화

를 내시며 중전마마를 능멸하시니 대체 이 분 진심은 무엇이던가? 

아무리 그러하여도 이번서는 전하께서 심히 냉혹하시고 부당하시니 내가 죽을 각오하고  한 

말씀 드려야

겠다 싶어 장내관은 나직한 목청으로 찬찬히 아뢰었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하지만 쇤네가 생각하기에 어디 중전마마께서 위엄이 부족하거나 덕이 

없사와 그

런 것일 것입니까? 아무래도 워낙에 갑작스런 일을 당하시니 충격을 받아 그러하신 것이라 

사료되옵니

다. 중전마마께서 대례 이후 안즉은  연치 어리시고 그 일에 무지하시어  그리 놀란 것이라 

할 것이니, 그 

사정을 지아비이신 전하께서 가리어 주셔야 그것이 주상전하의 덕이라 할 것입니다." 

"부부지간 사는 일이 다 그런 것이지!" 

벌컥 되받아치는 목청이 심술맞았다. 지금  짐더러 잘못하였다 네 놈이  가르치려드는 것이

니? 장내관을 

노려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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