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200)

손가락에는 무겁게까지 보이는 묵직한 금지환이 끼워져 있었다. 교태전의 주인이 되었을 때 

받은 것이

겠지. 하지만 이 사람 손에는 작은 꽃반지가 더 어울리겠다... 

으으음... 왕비가 몸을 뒤척였다. 왕은  깜짝 놀라 작은 손을 놓아버렸다.  중전은 왕이 홀로 

깨어 저를 하

염없이 내려다보는 줄도 모르고 그저 깊은 잠에 빠져있었을 뿐이다. 

중전이 돌아눕는 서슬에 금침이 반만 제쳐졌다. 얇은 자리옷  사이로 아슴하게 내비치는 작

은 앵두하나. 

아직은 풋살구 같은 고운 젖가슴이 살짝 내비친다. 상큼한 맛이  날 것 같은 청결하고 작은 

열매. 자신도 

모르게 왕의 입에는 침이 고였다. 마치 금단의 열매를 만지듯이 왕의 손이 거기쯤으로 슬금

슬금 다가가

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라 멀어졌다.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왕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벌갰다. 

왕은 아무것도 모르고 여전히 깊은 잠에 빠진 어린 안해의 어깨위로 이불을 끌어당겨 꼭 꼭 

덮어주었다. 

그녀에게서 가능한 한 멀찍이 떨어져 누워 다시 잠을 청하려 애쓴다. 

왕은 자신이 이 밤에 이 어린 소녀에게 느낀 감정이 더없이 민망하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의 

욕망을 달래

주기에 왕비는 너무 어리고 순수하고 그리고...... 투명하였다. 새큼한 풋살구 같은 여린 젖가

슴을 움켜

지고 혀로 굴려보고 싶다한 자신의  갑작스런 충동이 염치없었다. 투명한 두  다리 사이 그 

덜 여문 꽃잎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사내의 그 욕심을 채우고 싶다하는 욕망을 느낀 것이 민망하다 못해 

죽고싶을 만

치 부끄러웠다. 

한참동안 등을 돌려 외면하였다. 하지만 다시금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왕은 슬며시 다

시 몸을 돌

이켰다. 옆얼굴을 보이며 깊이 잠들은 어린 왕비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꽃

발을 일구며 

머금고 있던 맑은 웃음이 다시 생각났다. 짐의  어린 비(妃)는 너무 맑고 투명하고 여린 여

자... 감히 짐 

같은 불측한 사람은 곁에 다가가기도 부끄러울 만큼 순수한 여자.. 아, 이 여자는 짐에게 이

런 의미였구

나... 

바로 그때, 휘영청 밝은 달빛이 구름을 벗어나 장지문을 타고 젖빛을 흘리며 환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그 달빛 아래 눈의 착각일까? 왕은 순간적으로 화들짝 놀랐다. 

달빛 아래 환하게 빛나는 중전의 맑은 얼굴. 잠결에 무슨  좋은 꿈을 꾸는지 살포시 입가에 

미소가 맺혀 

간다. 그 순간 휘황찬란한 서기 같은 것이 그녀의 얼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마치  관음보살 

같은 맑고 어

진 빛, 그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그녀의 못나고 작은 얼굴이 마치 꽃이 핀 듯이 변하여진다. 

월궁 항아가 

환생한 것일까? 왕이 지금껏 알지 못했던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겹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처 확인도 하기 전에 달빛은 다시 구름 속에 가리워졌고 왕의 옆에는 항시 보아왔

던 못난 중전

의 보잘 것없는 얼굴이 누워있을 뿐이다. 

착각일까? 왕은 너무나도 허전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힘없이  손을 내렸다. 하염없이 왕비

의 잠든 얼굴

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하였다. 

'기이한 일이다. 이렇듯이 비의 얼굴 위로 영 다른 얼굴이 겹치다니! 짐이 착각을 한 것이겠

지? 이 못난 

것을 보면서 천하의 절색이요 뉘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곱다 생각을  했으니... 헌데 대체 

어떻게 된 것

일까? 짐이 아직 헛것을 볼 나이는 아니거늘... 아까 본 그 얼굴이 짐이 지금껏 찾아온 여인

이었다. 항시 

어린 날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여자라... 짐은 이적껏  그 얼굴을 가진 계집을 찾아 헤매었

기로 바로 희

란 누이의 미태가 그 얼굴이라 여겼거늘... 이제 보니.. 다르다함을 알겠어... 어떻게 된  일일

까? 이 못난 

것의 얼굴에 짐이 찾았던 미태가 겹쳐 보이다니...' 

어린 날 자주 꾸었던 꿈이 있었다. 잠시  전, 달빛 아래 어렴풋이 드러난 듯 하다가  사라진 

아름다운 여인

의 얼굴. 왕이 꾸었던 꿈속에서 항시 찾아온 여자. 그녀는 꿈에서 늘 왕을 안아주고는 했다. 

텅빈 침전에 

홀로 울다 잠이 들면 나타나던 그 여자. 꿈속에서 왕은 그녀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그 밤에 전하, 달빛 속에서 중전마마 못난 얼굴 위로  겹친 아름다운 미태를 처음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무엇이더냐? 바로 내미지상을 타고난 중전마마께서 후에 사랑에 빠지면 피어날 

참얼굴이! 

마음을 준 정인의 진정한 은애지정을 받아지면 드러날 천상의 미태(美態)라. 아직은 굳게 닫

힌 중전마

마의 사모지심이 열리면 그렇게 황홀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변화하게 될 것인데 중전마마 그 

참미태가 

피어날 날은 대체 언제일 것인가? 

지아비 전하, 이렇게 깨끗하고 성정 아름다운 사람에게 짐같이  멍창하고 불측한 사람은 가

까이 다가가

는 것도 민망한 노릇이야. 짐은  오직 희란 누이뿐이니 다시는 예에  가까이 오지 말아야지 

스스로 마음 

다잡고 계신 참인데 언제 서로 사모하여 서로가 심신으로 진정한 부부지간이 될 것이냔 말

이다. 

혼인 한 지 한 해가 꼬박 가도록 두 분 마마 이렇게 침수나마 같이 한 것은 겨우 두 번. 아

침에 일어난 터

로 옷고름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다시 헤어지는 사이였다. 아침에 중전마마가 눈을 떳을 

때 이미 전

하께서는 동온돌로 건너가 버린 후였다. 님의 자취 사라진 텅 빈 금침만 덩그러니 남아있구

나. 

그러나 순진하고 멍청한 중전마마,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아 지아비  체취가 남은 옆의 요로 

건너가 전하

께서 덮으신 이불을 몸에 감아보는구나. 전하가 벤 베개를 끌어안고 데굴데굴 구른다.  마치 

그분의 품속

인 양 깊이 코를 박고 아직도 남은 왕의 체취를 들이쉬려 애를 썼다.. 지난 밤 실컷 훔쳐본 

전하의 잘난 

모습을 생각하며 그저 좋아 배싯 웃고 또 웃는 것이다. 

얼마 후 중전마마께서 기침하셨는가 싶어  윤상궁이 들어왔다. 모처럼 오신  님 잡기는커녕 

겁이 나서 다

가가지도 못하고 멀찍하니 떨어져 잔 것이야.  님이 가신 후 좋아라 하며 그  분 요 안에서 

뒹굴면 무엇하

느냔 말이다. 철없는 꼴을 하고 있는 중전마마에게 한심하여 있는대로 눈을 흘겼다. 

혹시나 하였는데 역시나라! 

잠이 들 적에 모르는 척 슬며시  머리라도 기대고 엉기었으면 얼마나 좋아? 한참  춘정돋는 

약관의 전하

가 아니더냐? 치마만 둘렀어도 그 욕심이 동(動)하는 보령이신데, 먼저 모르는 척 안기면 성

은을 주셨을

지 누가 알 것인가? 헌데  보아하니 이 맹한 분이 철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줄이야? 필시 

저만치 떨어져

서 왕이 침수하라 시킨 대로 돌아누워 주무시기만 한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고나서 지아비 

전하 나가신 

이후에나 겨우 베개나 끌어안고 저런 짓이라니... 

그 아침에 그래서 중전마마 심히나 상궁들에게 구박을 받으신다.  그러나 중전은 어째서 자

신이 이토록 

잘못하였소! 하고 타박을 받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였다.  오히려 신이 날대로 나서 

당장에 수틀 

내려라 하시는구나! 

"앞으로도 전하께서 어제처럼 서온돌 듭시어 침수하실 적도  있을 것이야. 그렇지? 이제 내

가 직접 전하 

베개랑 금침에 수를 놓아 장만하여 드릴 것이야." 

수틀 잡고 베갯모 원앙새 무늬 채우기에  골몰하는 중전마마 옆에서 윤상궁 박상궁  김상궁 

모다 앵돌아

앉아 한숨뿐이구나. 이 맹하고 철없는 중전마마야. 배우셔야 할 것은 수놓기가 아니라  바로 

사내 후려잡

는 그 기술이며 밤일하는 애교이거늘, 어찌 이리 담백하시고 순진하신가. 

앞날이 보이지 않아 늙은 중궁전 상궁들. 땅이 껴져라 한숨, 또 한 숨뿐이로구나. 

중궁전에 제가 먼저 들어가라 하여 놓고서도 궁금증  나서 밤새 한 잠도 못 잔 희란마마이

다. 

변덕스런 강새암이 시퍼렇게 타올랐다.   

왕이 교태전에 들었다 하는데 이 밤에 정말 중전 고년 옷고름을 풀어주시는 것은 아닌가? 

이제 겨우 방초 돋아나는 어린 계집년 안아보고는 풋살구 색다른 맛에 취하시면 어찌하지? 

열 계집 가

져다 놓아도 싫다 마다하는 사내 없다  하였는데, 또 모를 일이 아닌가?  박색 중전 고년이 

의외로 호리낭

창 세류요(細柳腰) 흔들며 요분질을 잘하여  젊은 상감을 미혹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

가? 

심복인 교인당을 앉혀놓고 짐짓 대범한 척 하여보지만 마음  한구석이 영 찜찜하였다. 불안

하고 신경이 

쓰였다. 

"무엇을 그리 걱정하십니까? 설말 상감마마께서  천하의 화용월태(花容月態) 큰마마를 놓아

두고 헛눈 파

실까봐 그러합니까?" 

"아이고ㅡ 그런 말은 하지 말게. 내가 무어? 다만......" 

"다만 무엇이옵니까? 마마의 근심을 말하여 보소서. 제가 푸닥거리라도 할랍니다." 

"그것이...... 이보게, 교인당. 계집은 어차피 벗겨놓고 불을  끄면 다 아랫도리 그 맛이라. 중

전 고년이 천

하박색에다 주상의 소박을 받고는 있다하되 그래도 색다른 별미라.  상감은 이적 내 품안에

서 즐기신 분 

아닌가? 이제 겨우 달거리 하는 풋살구  같은 그 맛을 아직 몰신단  말이야. 중전 고년에게 

은근히 홀리시

지는 않을까?" 

     

희란마마는 짐짓 마음 넓은 척 왕을 등 떠밀어 중궁전  보내놓고서 기대한 것이 있었다. 곧

바로 다음날 

저녁에 득달같이 나오시어 미주알고주알 다 그 밤의 일을 다 말해줄 것이라고 말이다. 

왕은 항시 희란마마가 받친 다른 계집을  품고 나서는 그녀에게 별별 이야기를  다하여주었

다. 고것을 요

렇게 저렇게 희롱하였소이다 하며 입으로 죄다 낱낱이 일러주고는 그래도 짐은 누이가 역시 

최고야 하

시었다. 다시 한 번 그대로 희란마마 저를 끼고 질탕하게  놀아주시던 것이 젊은 상감의 버

릇이었다. 그

것처럼 지난밤 상감이 중전 고년과도 교접을 하였는지 안  하였는지, 하였으면 어떤 체위로 

어떻게 성은

을 주셨는지, 그 계집이 그때 어떻게 반응을 하였으며 희란마마 저와 비교하여서 어떤 매혹

이 있는지 그

런 시시콜콜하고 은밀한 이야기까지 다  미주알 고주알 고백하여 주기를  바라였다. 그러면 

저도 그에 맞

추어 대비라도 하고 준비를 할 것이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이것 보아? 전하께서 며칠 동안 기별도 소식도 없이 아니 나오셨다. 

이것이 큰일이다. 분명 무슨 사단이 난 것이다. 사흘 내내 안달복달하던 희란마마는  도저히 

참을 수 없

어 입궐을 하였다. 어수룩한 왕을 다시 한번 후려치고 단속을 할 적정이어다. 

어렵소? 이것 보아? 전하께서 어제  오정에 화성 공사 일을  친림하여 보시러 군사 이끌고 

원행을 나가셨

다 하였다. 최소한 닷새는 지나야 도성으로 환도하신다 하였다. 

하릴없이 월성궁으로 돌아온 희란마마, ? 대신 닭이라고 직접  못들을 것이면 남들 통하여 

듣지. 전하 

곁에 심어둔 눈과 귀를 불러 들였다. 대전의 김내관 놈이다. 

"그래 낱낱이 말하여 보아라., 전하께서 교태전에 드신 것이야?" 

"쓸 데 없는 근심을 왜 하십니까요. 큰 마마. 걱정따위는 하지 마옵소서."" 

간특한 웃음을 머금은 채 김내관 놈 자불자불 입을 잘도 놀리는구나. 그 놈 말이,  중궁전에 

듭신 터로 주

상 전하, 금침 두 채 펴게 하시었단다. 중전마마 옷고름을 풀어? 손목한번 잡기는커녕  눈길 

한 번 마주 

아니 하시고 그저 잠만 주무시다 나오셨다 하였다. 희란마마, 그래도 안심이 아니 되어 중궁

전에 심어둔 

은밀한 끄나풀까지 불러내어 그 밤일을 탐문하였다. 

"중전마마께서 어리석은 터라 도통 계집의 요염을 부릴 줄 모른다고 상궁마마들께  온갖 타

박을 받았다 

합니다. 넓은 방에서 금침 두 채 따로 펴게 하시고 남남인 양 주무시었는데 새벽에 눈 뜨자

마자 전하께

서 동온돌로 건너가셨삽고, 금세 우원전으로 나가셨다 들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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