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200)

한 줄도 모르

고 그리 웃음이 맺히는 것이다. 윤상궁 억장이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자리옷으로 이불 속에 

다시 파고들

어 금침을 목 위로 끌어올리고 종알거린다. 

"실로 전하께서 나는 겁이 나고 두려우니 차마 용안을 감히 마주 보지도 못할 것이야. 허지

만은 참 잘나

셨어? 그렇지? 나는 그리 잘난 분 못 보았소. 바라보기만 하여도 눈이 멀 것 같아. 나를 적

당한 때에 깨

어 주시오. 헌데... 나, 참으로 잠을 자도 되는 것이오? 흉이 아니오?" 

"예, 마마. 푹 주무시옵소서. 전하께서 중전마마더러 주무시라 하명 하셨사오니 뉘도 무어라 

말을 못할 

것입니다. 교태전의 주인이신 중전마마이시니 감히 누가 허물할  것이던고? 휴우- 나무아미

타불 관세음

보살..." 

윤상궁 한숨 소리 무겁기 그지없었다. 어린 소헤 아씨 중전마마, 그저 이제 번잡하고 복잡하

며 감당하기 

힘든 모든 의례 다 끝나고 홀가분하다 생각하여 좋았을 뿐이다.  눈을 감고 잠이 들어 다시 

뜨면은 이 모

든 일이 꿈인 듯 그저 계산골 조촐한 사가의 초당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인  이 

소녀. 어찌 지

엄한 중궁전의 책무를 감당할 것이며 이미 성총이 다른 여인에게 가 있는 주상 전하 매혹시

켜 지어미로 

대접받으며 원자 아기씨를 생산할 것이던가? 금새 색색 잠이 들어 버린 중전 마마, 아무 그

늘 없고 어린 

얼굴 내려다보며 기어코 윤상궁은 옷고름을 들어 눈물을 찍어낸다. 

'실로 불쌍하도다. 우리 중전마마. 이제부터 매일 매일이 눈물이며 한숨일 것이니 아니던고? 

아직 어려 

철이 없으시고 아무 것도 모르니 기막힌 첫밤을 보내시고도  생긋 웃기까지 하시는구나. 당

신이 초야서

부터 주상 주상께 소박 받았다 함도  모르시는 것이 아니더냐? 아직 어리시니 남녀간  일을 

어찌 알 것이

며 설사 전하께서 옷고름 풀으셨다 하여도 제대로 용체를 받아들이지도 못하였을 것이니 차

라리 이것을 

잘되었다 할 것이던가? 참으로 불쌍하고 가여우시니  팔자가 어찌 이리 기가 막히더냐? 다

른 처자 같으

면은 아직도 부모 슬하에서 응석이나 부리고 귀여움  받을 나이인데... 쯧쯧쯧.. 불쌍하신 우

리 중전마

마....' 

***********

<3> 

세월은 빨라 날아가는 화살이라. 

어린 소혜 아기씨. 열 다섯 어린 나이로 얼떨결에 국모(國母)가 되어 교태전의 주인이 된 지

도 어느덧 

한해가 흘렀다. 

그 길다면 긴 세월. 짧다면 짧은 세월에 그녀가 지아비  왕으로부터 당한 박대와 수모는 참

으로 필설로써 

표현할 수가 없었다. 눈 한번 바로 떠서 보아주지도 않는 그 사내. 사람 대접 아니하며 그저 

뒷방에 쑤셔

넣은 허수아비인 양 중전마마를 대하는데, 대놓고 무안을 주는 것도 모자라 그녀를 불러 옳

은 사람으로

도 아니 쳐주고 <이것, 저것>이라고 망극하게 물건 취급을 하시었는데...... 

그러나, 어린 중전마마 늘 상냥하였다. 생보살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순후하고 정결하고 

어질었다. 

말이 없이 법도에 어긋난 일 한번 하지 않고 지성으로 왕대비전을 모시며 내명부의 수장으

로서 도리를 

다하였다. 가뭄에 콩 나듯이 교태전에 들어와 툭하니 속을  북븍 긁고 뒤통수를 후려갈기듯

이 잔인한 조

롱이나 던져놓고 사라지는 왕을 대함에 있어서도 어진 미소를 잊지 않았다. 

영리한 터이니 중전은 금세 왕이 안해인 그녀를 왜 함부로 박대하고 무시하며 귀찮은 물건

취급을 하는

지 눈치를 챘다. 팔자라 기박하여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사내를 지아비로  맞이하였음이라. 

아무도 말하

여 주지 않았지만 실제 중긍전 노릇을 하며 단국의 여황(女皇)  노릇을 하는 계집이 월성궁

이라는 곳에 

도사리고 앉아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감히  내전의 가장 큰 웃전인 중전을 놓아두고,  저가 

참람되게 <큰

마마>라고 불린다는 것도 들었다. 

겉으로는 그녀를 받드는 내명부들조차 중전인 자신보다 월성궁의 여인을 더 겁내하고  두려

워한다 하였

다. 안팎으로 손가락질 받기에 진짜 교태전 주인은 월성궁 마마님이오, 교태전의 중전은  월

성궁 손가락

질 한번에 폐비되어 쫓겨나는 팔자라고 속살거려진다는 것도 들었다. 하물며 그 여인,  왕자

라 주장하는 

아들까지 끼고 있는 처지라 하였나. 

그러나 그 자리에서 중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음이었다. 명목만 내명부 

수장이라 한들 

아직은 어리고 궐 안 능란한 계교에 대하여 무지한 소녀. 영민한 천성과 어진 품성만 잘 갈

고 닦으며 훗

날 훌륭한 중전이 될 것이며 지아비 성총을 받을 수  있겠거니, 순진한 희망만 간직하고 있

을 뿐인데... 

향그런 꽃창포가 막 봉오리를 피워가는 오월의 한 아침이다. 

향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고 그 바람결에 은실보다 더 고운 세우(細雨)가 흩뿌리는 날. 

중전 마마 옥체를 보살펴드리는 박상궁이 근심으로 흐려진 얼굴을 하고서 이제 막 월동문을 

들어서는 

윤상궁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마마. 중전 마마께서 한사코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시니 어찌할 것입니까? 오데 편찮으

시냐고 아무

리 여쭈어도 대답을 아니하시고 한사코 금침자락만 끌어당기며 저를 가까이도 오지  못하게 

하십니다. 

어째 그러하실까요?" 

대 근심이라. 윤상궁과 박상궁이 함께 서온돌로 급히 들어갔다. 대체 왜 그러실까 고개를 갸

웃거리며 서

온돌 침전에 들어가니 어린 왕비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눈만 내놓고 있었다. 

"마마, 어찌 그러하십니까? 혹여 옥체가 많이 미령하십니까?" 

마치 친정어미인양 찬찬히 묻자하는 윤상궁의 말에 열 여섯 중전마마. 울상이었다. 

"나, 어떡하오? 아무래도 내가 죽을 병에 걸렸는갑소!!" 

"마마,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은 하지 마옵소서!! 오데가 편치 않으신 지 말씀을 하소서. 전의

더러 진맥하

고 탕제를 올리라 할 것입니까?" 

"...내가... 내가... 새벽에..." 

얼굴이 시뻘개진 채 중전은 더 이상 말을 못하였다. 문득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윤상궁, 

슬며시 어린 

중전마마 꼭 부여잡고 계신 이부자락  한 자리를 들추었다. 함박웃음을  머금고 박상궁더러 

눈짓을 하였

다. 

"마마께서 달거리를 시작하신 듯 하오!!  실로 경사이니 약방상궁에게 기별하여 들어오라하

시오! 마마, 

아래로 붉은 것이 비추었지요?" 

어린 왕비.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작은 얼굴이  해당화보다 붉어져있다. 새벽에 무

엇인가 칙칙

하여 눈을 떴는데 아무래도 아래가  이상하였다. 이것 내가 혹여 실수를  한 것이 아니더냐 

싶어 깜짝 놀

라 일어나 손으로 확인을 하였다 손에 끈적끈적한 피가 묻어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무슨 

날벼락이더

냐? 내가 피오줌을 싼 것이 아니냐? 

아직은 순진하고 맹한 중전마마, 때가  되면 여인들이 다 그러한 일을  겪는다는 것을 안즉 

알지 못하였

다. 자신이 망신스럽게 실수를 한 것도 낯이 뜨거우나 아무데도 아프지 않는데 아래로 피가 

쏟아지니 혹

여 내가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내내 오들오들 떨었던 것이다. 

이미 동갑인 다른 소녀들 웬만하면 다 시작하였을 그 일을 워낙에 가냘프고 용체 여리시니 

다른 소녀들

보다 늦되어 이제야 시작한 것이다. 

박상궁이 침전으로 욕간통을 대령하였다. 여린 옥체를 정성껏 씻겨드리고  난 후 새 의대로 

갈아 입혀드

리었다. 그리고 미리 보드라운 무명베를 씻고 씻어 솜처럼 부드럽게 만든 후 감침질하여 장

만하여 깊이 

간직하였던 월경대 꺼내어 착착 접어 사용하는 것을 찬찬히 가르쳐드린다. 

열 여섯 중전마마, 그날 난생 처음으로 달거리 시작한 이후, 주상 전하 성은 받아지어  아기

씨 가지게 될 

참이며 이는 정궁으로 마땅히 아루어야 할 책무라는 것을 배웠다. 그 밤에 윤상궁은 중전마

마께 팥죽을 

올렸다. 

"어이하여 동짓날도 아닌데 팥죽이오? 기이하오." 

"원래 귀인(貴人)께서 첫 손님 시작하시면 팥죽을 올려 하례드리는 법이옵니다. 드시옵고 옥

체 정히 간

수하사 금새 주상전하 아기씨를 회임하시옵소서, 마마." 

아기씨를 어찌 가진다 저토록 들떠서 수선이고? 남녀간 일에 도통 무지하신 중전마마, 아기

씨 가지는 

그 일이 어찌 이루어지는 줄 모르니 아랫것들 다투어 수선을 떨며 하례 인사드리는 것에 고

개를 갸웃하

였다. 천진난만하게 은수저를 들어 팥죽을 떠 잡수셨다. 

"보시오, 이 중전이 사가에 살 적에 조모님께서 아기는 어떻게 생기나이까? 하니 날더러 씨

를 뿌리는 사

람이 있으면 된다 하셨소. 시절이니 우리도 후원에 아모 씨나 한 번 심어보까? 허면은 아기

씨 생길지 뉘

가 아오?" 

이런 맹한 말씀 천연덕스럽게 하시는 중전마마 앞에서 윤상궁이 고개 돌리고 한숨을 푹 쉰

다. 그것은 김

상궁도 박상궁도 마찬가지이니, 답답이... 답답이..... 벌려앉은 세 여인들 모두다 앞이 캄캄하

였다. 

지아비이신 주상 전하께서는 아예 중궁전에는 얼씬도 아니하시고 고개 한 번 돌려주지 않으

신다. 그 성

총의 물길 돌리셔야 할 중전마마께서는 연치 어리고 이리도  무지하구나. 언제 상감마마 매

혹시켜 회임

을 하시고 월성궁 도사리고 앉아 주상 성총  홀리고 있는 고 요망한 암여우를 몰아 내시려

나? 이러다가 

참으로 뒷방데기 소박 신세 평생 면하지 못하고 허수아비로 앉아만 계시다가 피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가엾은 팔자가 되시는 것은 아닐 것인가? 

내전 상궁들 모다 말은 차마 하지 못하되 근심이 첩첩하였다.  그러나 중전은 꽃씨 뿌릴 생

각으로 들떠 

홀로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을 뿐이다. 

당장에 그 다음날로 중전마마는 내전 상궁 재촉하여 뒤뜰 화계 앞에 손바박만큼 땅을 파일

구라 하신다. 

손수 금잔화며 백일홍 씨 뿌리고나서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장담한다. 

"이제 꽃이 필 것이면 이 중전이 아기씨 가지나 아니 가지나 한 번 보시오!!" 

이런 일이 소문이 아니 날 리가 없는 것이다. 어찌  어찌하여 나인들 수군거림에 올려져 바

람을 타고 돌

아 월성궁까지 날아갔다. 

희란마마, 그 밤에 월성궁 나오신 왕을 앞에 두고 박장대소하였다. 철없고 멍청한 왕비를 조

롱하여 놀림

감으로 삼는다. 그 이야기를 전하여 들으시는 전하께서도 용안에  지긋이 비웃음을 물고 작

히나 멍청하

고 못난 것! 하고 한 마디를 거들었다. 

"참으로 고것이 못나기만 한 줄 알았더니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인줄은 또 몰랐나이

다! 작히나 

막막한 먹통이라. 아니 인간이 꽃씨를  뿌린다고 어찌 아기씨를 가질 것이며  또 그런 말을 

고대로 믿고 

후원에 씨를 뿌린다하는 게 과연 사람입니까? 참말 웃기옵니다?! 명색이 사직의 안주인이라 

하는 것이 

그토록 어리석고 무지하니 참으로 걱정이라!! 홋호호, 전하,  그 어리숙하고 멍청이 같은 계

집을 가르쳐 

데리고 살으실려면 한참이나 힘이 드시겠나이다!" 

"누이가 왜 걱정하오? 그 못난  것을 누이더러 데리고 살라 할까봐?  핫하하. 누이도 한 번 

꽃씨를 뿌려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