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200)

는 어린 중전의 생각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다. 

"혼인이야 경희궁의 노인 뜻이로되, 동뢰야 짐의 마음이지. 누이. 들어갑시다.  내 오늘 누이

의 고름풀어 

짐의 혼인 첫 밤을 함께 하리라. 누가 무어래도 짐  마음에 유일한 여인은 누이뿐이 아니겠

소?"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니 오시는 님. 

초야부터 중전마마를 버려 두고 다른 계집의 품에 안겨  질탕한 희롱하며 박장대소. 이윽고 

희란마마 비

단 속옷고름 풀어 달큼한 젖통 빨아대다가 어루만지다가 냉큼 올라타고 헉헉대며 용체를 달

리시는 상감

마마. 졸음마저 몰려들어와 앉은 채 하냥 꼬박 꼬박 졸다가  깨다가 하는 어린 중전의 가련

한 사정을 알

리 만무하다.   

아무도 말하여 주지 않으니 중전마마 소혜 아기씨. 방문  바깥에서 벌어지는 망측하고 기막

힌 일은 전혀 

모른다. 그저 기다리면 오시거니...... 아니 오시어도 좋은데. 이 무거운 족두리 좀 풀어주시고 

아래목에 

펼쳐진 이부자리에 들어가 자라고 하면 좋겠는데...... 

병풍 친 문 바깥에 앉은 상궁, 야속하게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는다. 

병든 병아리처럼 중전마마 다시 꼬박꼬박 졸기 시작하였다. 

   

왕이 신방에 들어온 것은 삼경이 넘어 사경에 접어들, 이미 새벽이 가까운 시각이었다. 

방안에서 졸고 있던 어린 중전마마만 모를 뿐, 궐 안  사람 모두다 전하께서 이적까지 신방 

대신 별각에

서 희란 마마와 희롱하다 돌아오신 것을 다 아는 터이다. 

찬바람과 함께 들어온 왕이 중전마마  앞에 털썩 앉았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제 정신이 

아닌 중전더러 

다짜고짜로 묻는 말이 기가 막혔다. 

"너, 몇 살이더냐?" 

대뜸 반말이시다. 중전은 왕이시니 남들에게  항시 이렇게 말씀하시는 줄로만 알았다.  발발 

떨며 작은 목

소리로 대답하였다. 

"열 다섯이 되었나이다." 

"흥, 요렇게 어리디 어린 것을 간택에 내어  보낸  네 아비도 웃기도다. 이런 것을 무에  볼 

게 있다고 짐이 

중전이라 뽑았을꼬? 너, 달거리는 하느냐?" 

"...아직..." 

실로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무리 지아비이시나 이렇게 노골적으로 묻자오시는 

말씀이 여

인으로 수치스럽고 은밀한 이야기라니. 하문하시는 말씀에 대답은 하는데 목청이 자꾸만 모

기 소리만 

하게 잦아드는 것이다. 왕이 비웃음이 분명한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손을 들어 중전마마 수

그린 얼굴을 

세워 들었다. 

"흠 그래? 짐이 그럴 줄을 알았다. 한참 더 자라야 짐의 상대가 될 것이니 명심하여라. 실로 

짐이 보기 

이토록 못난 계집도 네가 처음이라 다소간 신기하여 자세히 보는 것이다. 정말 너는 못났구

나. 갈가마귀

라 하여도 너보다는 어여쁘겠다?" 

박장대소. 아까까지만 하여도 희란마마와 더불어 못난 중전을 조롱하여 별명을 짓기를 갈까

마귀라고 하

였던 것이다. 아무리 그러하여도 그렇지 당사자 앞에서 대뜸 하시는 첫말이 너  못났다라니. 

기가 막힌 

중전마마, 입을 열자 하여도 겁이 나서 두려운지라 입이 천장에 딱 붙어 버린 것이었다.  하

지만 조롱도 

유분수라, 아무리 그러하여도 지아비가 지어미에게 해서는 아니되는 말이 있지 않던가? 

"......꽃이라 볼품없되 뻗치는 향기는 천리라, 천리향을 귀물로 여기옵고, 꽃은 화려하고 아름

답되 벌 나

비 찾지 않는 모란은 그 향기가 없음이라. 화옹이 좋아하는 꽃은 대체 무엇인가? 여인을 찾

으시기 부덕

이 우선인가? 용태가 우선인가?  성상께서 신첩에게 귀이  찾으시기를 대체 어느 쪽이옵니

까?" 

"너, 지금 짐더러 말대답을 하였니?" 

기가 막힌 상감마마. 고개를 아래로  숙인 중전마마가 야무지게 되받아치는  말에 헛웃음을 

쳤다. 요것이 

첫참부터 사내 쏘아보는 품이 보통 아니다 하였는데 은근히 매섭고 결기 까다롭구나? 보기

보단 말랑말

랑하지 않겠는걸? 

그 역시 정색한 채 중전을 쏘아보았다.   

"말 잘하였다. 허긴 짐도 너에게  바라기 그것이니라. 중궁전이라 별  것이 아니다. 이 나라 

국모이니 덕이 

높아야 하는 것이지 염태야 바라지 않는다. 못나기야 어쩔 수는 없다 하여도 열심히 학문을 

배우고 덕성

이야 키울 수는 있겠지. 실로 짐이 너를 중궁전 앉힌 것은 한참 더 자라야하고 영 어리석어 

보여서 그런 

것이니 짐이 무어라 하여도 입 봉하고 그저 순명하면 되느니라. 알겠느냐?" 

"명심 봉행하겠나이다." 

"짐은 몹시 곤한 고로 침수를 하련다. 너도 곤하면은 게서 자렴?" 

실로 야속하고 기막히도다. 주상 전하, 중전마마 웃고름도 풀어 주시지 않고 족두리도  내려 

주시지 않은 

것이었다. 길게 하품을 하시는데 여적까지 희란 마마와 질탕하게  즐기신 터라 그저 피곤하

고 졸리신 터

였다. 

소리쳐 신방에 지밀 상궁 들어 오라 하시었다. 의대 벗겨라 하셨다. 그리고는  중전마마가보

든 말든 홀로

이 자리옷 갈아입으시더니 금침에 들어가 그냥 잠이 들어 버리시는 것이 아닌가? 

중전마마 어찌할 바를 몰라 울상이 되어 대전 지밀 상궁만 바라보았다. 여인으로 전하께 외

면당한 모욕

감이 아니라 너무 고생스러웠서였다. 그저 밤 새 앉아  전하 들어오시기만을 기다린 터이니 

실로 곤하고 

대용잠 지른 머리통이 아파 나 좀 살려 주시오 이런 애원이었다. 

대전 지밀 상궁, 어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중전마마, 얼떨결에 신혼 초야 치르시는 중에  이

토록 주상께

서 중전마마 능멸하시어 족두리도 내려 주시지 않은 것이니  불쌍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 

허나 지아비

이신 전하께서 내려주지 않은 족두리를 누가 내려 줄 것이며 전하께서 풀어 주시지 않은 자

리옷 고름을 

감히 뉘가 풀어 줄 것이냐? 도와 줄 길이 없는 것이다. 눈물이 글썽글썽하여 그저 애원하는 

눈빛으로 바

라만 보는 중전마마를 그대로 두고 문을 열고 돌아서는데 실로 사람이라면 할 일이 아니다 

싶은 것이다. 

이리하여 불쌍한 중전마마, 아름다운 초야를 그렇게 망쳐버렸다. 

새벽에 들어오시어 코까지 골며 홀로 주무시는 주상 옆에서 꼬박 앉아 지새웠다. 미명 밝을 

즈음에는 저

도 모르게 기진하여 옆으로 스르르 쓰러져 잠이 들어 버렸다. 전하께서 갈증이 나시어 자리

끼 찾으신 것

은 그때였다. 

'기가 막히다.' 

왕은 냉수 대접을 손수 찾아 들이키고는 윗목에 앉은 채 쓰러져 잠이 든 중전 마마를  바라

보며 혀를 찼

다. 

"어리석은 것." 

곤하면은 제 스스로 의대 벗고 잠을 잘 것이지 저리 앉은 채 쓰러져 잠이 들었더냐? 윗목으

로 다가가 몸

을 흔들려다가 문득 중전마마 얼굴을 비로소 자세히 내려다보는 왕이었다. 

'비(妃)는 어린 새 새끼 같다...'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화려한 비단의대에 담겨진 몸은 작고 어리고 여렸다. 연지분  단장하

였으되 원래 

생김이 볼품이라 하나도 없는 못난  것이니 촌태가 졸졸 흐른다. 이제  겨우 계집아이 티가 

가시는 연치이

며 실로 박색이라. 저절로 왕의 입가에 픽하고 웃음이 서렸다. 지난밤 희란 누이와 중전  조

롱하며 별명

을 짓기 갈가마귀라 하였던 것이 다시 생각이 나서였다. 하지만 긴 속눈썹이 그늘을 드리운 

그 얼굴은 

순수하였다. 염태 빼어나고 세련된 궐 내 여인들과는 너무도 다른 들꽃이라고나 할까? 

속으로 은근히 미안하고 불쌍한 마음이 든 것은 그때였다.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초야인데 교접이야 아니하였더라 하더라도 족두리나 벗겨주고 잠이나 

편히 재울 

것을... 문득 후회가 들었다. 워낙에 희란 마마가 단속하여 중전 고것 옷고름에 손을 대면 이 

누이 죽어

지옵니다!! 하고 강새암에 기승을 부리니 누이 소원대로 하오! 하고 장하게 소박 주신  터이

나 어린 중전

이 윗목에 쓰러져 잠이든 꼴이 불쌍한 것이다. 

작은 몸을 안아 아래목 금침 위로 옮기는데 무게도 나가지 않을 것처럼 가볍다. 

족두리 벗겨주고 무거운 용잠 빼어 던지고 눕혀 놓으니 그것도 모르고 그저 색색 잠이 들은 

어린 소녀. 

무슨 좋은 꿈을 꾸는지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허, 웃는 모양이 참으로 귀엽구먼?' 

중전의 그 형용이 왕에게는 은근히 한 사람을 기억하게 하였다. 바로 주상이 일곱 살 때 죽

은 누이 의완 

옹주인데 너무 어려 죽은 터라 기억은 희미하나 이리도 작고 어리고 귀엽고 순수하였다 싶

은 것이다. 

날이 밝은 터라 바깥서 흠흠 헛기침이 났다. 

"전하. 동창이 밝아진 고로 무리죽 올릴까하옵니다." 

기침하셨느냐 하는 고변이다. 인기척에 중전마마,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어느새 비단 이불

에 누워있었

다. 대체언제 내가 잠자리에 들었지? 왕이 돌아앉아 손수 창을 열고 있었다. 

"짐은 동온돌서 받을 것이다. 중전이 곤한 터이니 더 재우게 하라." 

초야가 끝난 것이라 지밀 상궁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 왕의 용체를 모시고 나간다. 중전마

마는 일어나

야 하는 것인지 그냥 그대로 더 자야 하는 것인지 분간이 아니 되니 그냥 멍청하게 금침 안

에 누워있기

만 하였다. 중궁전 지밀상궁인 윤상궁이 들어 온 것은 그때였다. 

   

"... 내가 일어나야 하오? 아니면은 전하 말씀대로 더 자야 하는 것이오?" 

   

윤상궁 중전마마 그 말씀에 기가 막히고 가엾고 심란하여 한  숨을 푹 쉬었다. 실로 불쌍한 

중전마마, 초

야에 족두리도 아니 벗겨주시었다 이미 소문이 장하니 첫날로 소박이라. 게다가 두 분 마마 

손끝도 아니 

닿은 것이 분명하니 기가 찰 노릇인데 이 어린 중전마마,  뭐가 뭔지도 모르고 저가 소박을 

맞은 것인지, 

그것이 슬픈 일인지도 모르는 얼굴이라. 

"실로 내가 곤하오. 아마 앉아서 잠이  들었나 보오. 전하께서 아마 나를 금침에  옮겨 주신 

것 같으니 실

로 고마운 일이라. 나, 더 자면은 아니 되오?" 

"... 의대 벗으시고 편안하게 더 주무시옵소서,.. 허고 주상 전하께서 어젯밤에 무어라 하시던

가요?" 

"전하의 상대가 되려면은 한 참 더 있어야 하고 자라야 하니 중궁전서 잘 배우라 하시었네. 

중궁다운 어

진 덕성과 학문을 익히고 배우라 하시었지. 실로 다정하신 말씀이 아니신가? 그리고 나더러 

너도 의대 

벗고 게서 잠을 자렴, 하시었지. 헌데 내가 무서워서 전하 가까이 못 간 터이기로  전하께서 

이리 족두리 

내려 주식 용잠 빼 주시니 실로 은혜라.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끝난 것이지?" 

"..예. 잘 하셨니다... 할 일 다 끝나셨니다. 이제 그만 주무시옵소서...  아마 전하께서 다시는 

중전마마 

찾지 않으실 것이니... 그저 편안히 주무시옵소서..." 

중전마마 번잡스런 옷을 스스로 벗으며 생긋 웃었다. 어린 중전마마, 저가 지금 무슨 꼴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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