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200)

<1> 

조용한 계산골. 삼경을 넘어간 야심한 시각. 초롱초롱한 은하수만 하늘에서 빛나고 있었다. 

"으.. 으.. 으으음... 아, 아... 아악!!" 

윗방에서 자는 유모는 곤한 잠에 빠져 기척이 없다. 아랫목의  어린 아씨만 깊은 꿈에 잠겨 괴로워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린 아기씨,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진땀을 흘렸다. 가위눌린 비명을 지른다. 아무리 깨려 하여도 작은 몸을 휘감고 있는 

악몽은 생시처럼 생생하고 끈질기기만 했다. 

천지분간도 못 할 만큼 어둡고 천둥벼락이 치는 날이다. 생시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황량한 들판. 오도카니 선 소녀를 

노리고 하늘에서 용(龍) 한 마리가 수직으로 달려들었다. 자꾸만 어린 몸을 칭칭 감고 물어뜯으려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도망가자 하여도 발이 얼어붙은 듯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기어코 퉁방울 같은 눈에서 불길이 흐르는 사나운 용에게 

어린 소저는 잡히고 말았다. 아가리를 벌리고 한입에 삼키려드는 용의 입에서 강한 살기가 뻗어나와 소녀를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으.. 으.. 싫어.. 싫어.. 아, 아악!!" 

결국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윗방의 유모도 소녀의 외마디 비명소리를  들었다. 

인제는 잠이 

깨어 깜짝 놀라 장지문을 열고 달려 들어왔다. 

"아이고, 어찌 이러시오? 아기씨, 가위에 눌리셨소? 나쁜 꿈을 꾸셨구려." 

하도 놀란 터라 오들오들 떨며 소녀는 꿈인 듯 꿈이 아닌 듯 낯설게 자신의 방을  휘둘러보

았다. 정답고 

익숙한 작은 방. 틀림없이 그녀는 정갈한 이부자리 안에 자리옷 차림으로 앉아있었다. 아아, 다행이다. 

꿈이었구나……. 비로소 제 정신이 들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땀 투성이가 된 소녀에게 유모가 자리끼  대접을 건네주었다. 한손으로 진땀이 스민 하

얀 이마를 훔쳐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놀라 딱 죽는 알았소. 아, 글쎄... 세상에 내가 용한테 잡아먹히는 꿈을 꾼 것이 아니겠소? 내, 

그런 얼토당토않은 꿈은 난생 처음이야. 아이고, 무서워, 참으로 기함할 꿈이지 않아?" 

아직도 식겁하여 달달 떨리는 목청으로 대답하였다.  아기씨에게 유모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를 하였다. 

"속내가 다소 불편하여 그런 꿈도 꾸는 것입니다.  놀라지 마시오. 꿈인데요, 뭘. 자, 주무시오. 내가 등을 

쓸어줄 것이니 다시 주무시오. 아모 일도 없을 것이오." 

"하.. 하지만... 그렇게 생생한 꿈은 내 생전 처음이었거든. 휴우- 두려워서 다시 잠이 안  올까 걱정이오." 

하지만 어진 유모가 등을 쓸어주고 이불귀를 여며주자 졸린 눈은 금세 감겼다. 다시금 이불에 들어 눈을 

감는 어린 아씨. 아직은 자신이 꾼 그 꿈이 무슨 운명의 징조인지 모른다. 아무런 근심 없이 말간 얼굴로 

다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용에게 휘감긴 꿈을  꾸고 놀라 잠이 깬 열다섯 그 소녀.  소혜 아기씨. 

그 누가 알 것인가? 훗날 세세히  성군(聖君)이라 우러름 받으시는 명종 대왕의 정궁(正宮)이 되실 분이

다. 후대를 잇는 익종 대왕을 고귀한 태로 생산하실 소헌 왕후 김씨 그분이다. 그러나  기막힌 운명은 아

직 아무도 모르는 것일 뿐……. 

검푸른 하늘에는 별빛만 초롱했다. 소박한 기와집 기붕 아래 밤이슬만 소복히 내렸다. 

단(旦) 국. 때는 홍희 8년, 이월 열 이튿날. 도성(都城) 중경. 

청계(淸溪)를 중심으로 옥동과 성동은 권문세족의 기와집이 늘어선 번화가이다. 청계의 반대편. 병풍처

럼 솟아오른 계산 기슭은 선비가문이되 빈한하거나 관직에서 물러난 이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마을들이다. 

아득히 멀리, 북쪽 백악산 아래는 주상전하께서 거하시는 성덕궁과 경덕궁, 창희궁이 위치하고 있었다. 

종묘사직이 자리한 장엄하고 화려한 교동, 육의전거리며  장시가 몰려있는 번화한 궁로와는 달리 계산골

은 항상 조용하고 한적하였다. 청빈한 선비들의 고을답게 산수가 빼어나기로 이름난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조촐한 마을의 한 구석, 지붕에 기와는 얹었으되 그 규모로 치자면 겨우 예닐곱 칸 작은 집. 선대왕 장조

의 총신(寵臣)이었으며 도승지까지 올랐던 자산 김익현의 집이었다. 병이 들어 조하를 물러 나와 조용

히 학문을 하고 가난한 살림 청빈을  익히는 처사(處士)였다. 학문이 깊고 인품이 훌륭하여 젊은 학자들

이 마음의 스승으로 여기는 분이다. 가난한 살림이되 찾아드는 객이 많은지라 그 찬거리 장만도 가난한 

살림에 여간한 일이 아니었다. 

"오늘은 유난히 까치가 깍깍거리니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나……." 

그래도 양반 가문이라. 소저의 거처이니 사랑채와 담으로 막혀 돌아선 안채. 손바닥만한  안마당에 채마

밭을 일구고 김을 매던 허리를 들고 까치가 수선스럽게 우는 동구 밖 정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집주인

인 김익현의 외동딸 소혜 아씨. 새벽에 용에게 잡아먹히는 꿈으로  놀라 깬 바로 그 아기씨이다. 

이제 나이 겨우 열다섯. 아직은 어리어 보잘 것 없고 여위었다. 햇볕에 나가 손에 흙을 묻히기 거리끼지 

않으니 가맣게 탔다. 꾸밈 한 바 없으니 촌티가 가시지 않아 다소 보잘 것은 없는 용모였다. 

하지만 머루 알 같이 새까맣고 영채가 도는  눈이 맑고 고왔다. 비록 무명옷이되  정갈하게 차려입고 한 갈래로 땋아 

남빛 댕기로 단단히 묶은 머리통이 영리하고 어여쁘다. 

"유모, 혹시 모르니 주막에 가서 약주 한 병 받아다가 우물 속에 매달아 놓으소. 필시 이 근래 아버님의 

학우들 발길이 뜸하셨으니 오늘쯤 오실 것  같소. 대접 준비를 하여야지. 안주라 할  것이면 내가 어제 복

순이랑 뜯어놓은 두릅이 있으니 박주의 안주는 될 만 하오. 다녀오시오." 

유모가 손에 묻은 물을 행주치마에 닦으며 부엌에서 나왔다.  유모에게 전낭을 건네주며 소저는 스스로 

대견하여 생긋 웃었다. 

"어제 저고리 세 개 말라주고 받은 삯이오. 허고  양식이 떨어져 걱정이었기로 아, 글쎄, 고맙게도 진성대

군 댁 마님께서 쌀가마니나 보내주신다 기별을 하신 터라 합디다.  인제 한 숨을 놓아도 되겠소이다. 허

고 아버님께서 이 며칠 입맛이 없다 하시니 녹두를  담그시오. 밤에 녹두죽을 올려야겠소이다. 가는 길에 

복순이더러 아랫마을에서 맡겨놓은 새 신부 녹의홍상 다 말랐으니 싸 가지고 가라 하오." 

"예, 아씨. 복순이를 휭하니 보낼 것입니다요." 

제 어미가 부르니 뒤란에서 복순이가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걸어나왔다. 이마에 돋은 여드름을 짜다가 

시뻘겋게 약이 오른지라 입이 댓발은 나왔다. 

"씨이. 아씨는 얼굴에 여드름 하나 아니 나는데 나는 어찌 이렇게 날이면 날마다 요것이 돋는감유? 고름

이 노랗게 들어 손으로 짰더니 아프기는 징하게 아프면서 요렇게 약이 올라 버렸소. 아씨는 무엇으로 얼

굴을 씻길래 그렇게 얼굴이 곱소?" 

"요 것 좀 보아라? 똑같이 유모가 만들어준 팥물 비누로 얼굴을 씻는 차에 왠 심술이니? 그렇게 헛된 짓 

할 시간 있거든 유모나 도와주어라! 허고 마을에 다녀와서 채마밭에 있는 얼갈이나 좀 뽑아두렴. 밤새 

녹두죽 올릴 때 아버님 상에 얼갈이 생채를 올릴 것이다. 입맛이 없다 하시니 새 나물을 드시면은 조금 

나아지시려나... 휴우- 약이라도 한 번 제대로 쓰면은 환후가 조금 나아지실 것인데……." 

사랑채를 돌아보는 소혜아씨의 얼굴은 어두웠다. 

소저의 처지로 말하자면 박복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생후 이레만에 산욕열을 앓은 어미를 잃었다. 

어진 조모님 슬하에서 구김살 없이 자랐지만 다정하신  그 분도 소저가 열 살 때 돌아가셨다. 혈친(血親)

으로 남은 이라고는 이제 늙은 부친 한 분 뿐, 그러나 병약한 부친의 건강에 항시 살얼음판 걷듯이 근심이었다. 

차마밭의 김을 다 맨 터라 소저는 손을 씻었다. 방으로  들어가 게으름을 피는 대신 윗목의 바구니를 끌

어당겼다. 못 다한 바느질거리를 집어 들었다. 

가난한 살림에 가용을 장만하는 가장 큰 벌이는 잽싼  솜씨를 가진 소저의 삯바느질이었다. 어린 나이이

되 소혜 아씨의 바느질 솜씨며 수침은 이미 근동에서 소문 자자한 터였다. 돌아가신 조모께서 저 아이 

바느질 솜씨는 하늘이 내린 것이니 바로 신기(神技)이다 감탄하신 바로 그 손길이다. 

- "하지만 나는 근심하거니 솜씨가 좋으면 그 팔자가 사납다하지 않더냐? 우리 아기는 제발 고이 자라서 

귀한 집에 혼인시켜 편안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내  소원이니라. 너가 장성하여 번듯하게 혼인을 할 때

까지 내가 살아야 할 것인데... 저는  한번도 고운 비단 치마저고리 입지  못한 터로 날마다 남의 비단 치

마 지어주는 일을 하고 있으니 실로 내가 가슴이 아프구나." 

삯바느질을 하던 조모님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짬짬이 바늘을  들려하는 아씨의 등을 쓸어주며 어진 분

께서 하시던 이야기이다. 

"비단 치마 저고리 따위는 부럽지 않아요,  할머니. 저가 못 입으면 어때요?  알몸 내어놓고 사는 것도 아

닌데... 다만 이런 무명옷도 입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거친 베옷이라도 한 벌 입힐 수 있다면 좋겠

어요. 저는 아주 귀한 곳에 혼인을 하고 싶어요. 호사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불쌍한  백성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줄 수 있을까 해서여요. 하지만 저는 못났는데 귀한  집에 혼인을 할 수가 있을까요, 할머니?" 

"우리 아기가 마음도 곱지! 이토록 심덕(心德) 곱고 영리하니 너는 반드시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팔자

가 될 것이다. 우리 아기와 혼인하는 그 도령은 광영일 사. 처복(妻福)은 실로 클 것이야." 

부질없는 옛 생각을 떠올렸다. 아씨는 자신도 모르게 단정한  입술에 미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가는 손가

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윗마을 처자의 혼수거리인 비단 방석에 수를 놓자 하여 바늘에 실을 감았다. 

일을 보는 아랫것이래야 딱 두 사람. 소혜 아씨를 기르다시피  한 유모가 찬모에 침모에 소

세거리까지 다 

맡아보았다. 바깥일은 유모의 남편인 문서방이 담당하였다. 청지기 노릇에다 아버님의  심부

름. 말구종

까지 보는 형편이다. 딸인 복순이가 들고나는 자질구레한 안팎심부름을 다 하는 처지였다. 

막 복순이가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나서던 참이다. 약주를 받을  호리병 하나 품고 문을 나

서는데 <이리 

오너라!> 하는 호령 소리가 있었다. 

궐로 입궐하는 길에 잠시 들렸다 하였다. 부친의 가장 친밀한 벗인 좌찬성 유형원이었다. 항

시 친밀하게 

격의 없이 드나드시는 분이시다. 소혜 아씨에게는 또 다른 친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다. 

허리 굽혀 

인사를 하는 아기씨에게 유형원은 쯧쯧 혀를 차는 소리를 내었다. 

"자산께서 이 며칠 간 병이 깊으셨다 들었느니라. 그런 일이 있을 것이면 당장에 기별을 하

여야지. 그래

야 내가 약첩이라도 가져올 것이 아닌가? 사랑에 계시느냐?" 

"그러하옵니다. 며칠이나 저분질을 딱 끊으시니... 요량이 없어 제가 가시방석입니다." 

"늘상 병약한 이라 알고는 있으되  갑자기 이렇게 병세가 나빠졌다  하니 내가 의아하구나. 

그래, 무슨 일

이 있으셨던가?" 

"소녀가 어찌 사랑의 형편을 알겠습니까. 사흘  전에 진성대군 마마께서 잠시간 들리셨는데 

그 이후로 영 

입을 봉하고 말씀 한마디를 아니  하시는 것입니다. 실로 저가 좌불안석입니다.  아저씨께서 

아버님의 심

중을 좀 알아보아 주셔요, 어찌 그러하시는지 소녀도 모를 일입니다." 

"허어, 기이한 일이로다. 대군대감께서 자산을  두고 무엇을 심기 상하게 하시어  그 꼬장한 

이가 밥술을 

끊는다 말인가? 항시 신분은 다르되 심금을 털어놓고 흉중을 내보이는 친근한 사이였거늘... 

알았느니

라. 허고 내가 미리 이야기를 하여 두었으니, 아기는 내 집으로 가서 내자를 찾아 만나거라, 

약첩을 챙겨

서 줄 것이다." 

항시 신세를 지는 형편이라 얼굴을 붉히는 아씨에게 윤형원은 손을 훼훼 저었다. 

"번번이 신세만 지면서 은혜 한 번 갚지 못하니 실로 유구무언입니다, 아저씨." 

"어허,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하였거늘! 어디 자산과 내 사이가 남이더냐? 콩 한 쪽이 

생겨도 나누

어 입에 넣는 사이이니라. 아무 근심말고 집으로 다녀 오거라. 내자도 아기를 보고 싶어하였

다." 

가난한 집이라 가마가 있을 리 없다. 여하튼 아버지의  약첩이라도 구할 심산인지라 아기씨

는 복순이를 

딸린 채 집을 나섰다. 계산골에서 유형원의 집이 있는 번동까지는 이 십여 리. 하루 종일 걸

어서 돌아올 

일이 아득하지만 어찌 할 수가 있나. 장옷으로 얼굴을 깊게 가리고 나선 나들이길. 이월이라 

하나 아직

도 찬 초입이니 고추처럼 맵기만 한 꽃샘바람이 무명옷으로 스며들었다. 연신 춥다 손을 호

호 부는 복순

이와는 달리 소녀는 춥다 한 마디도 아니한다. 

"아씨, 아씨! 저기 방이 붙었나 봅니다요. 사람들이 까맣게 몰려 있구먼요?" 

그래도 나들이 길이다. 집안에만 있던 계집아이들인지라 복순이만 신이 났다. 장시로 접어들

자 구경할 

것도 많은 터.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가는데 도통 정신을 못 차리는 얼굴이다. 호기심이 많으

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말릴 사이도 없이 나풀나풀 달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소혜 아씨는 일별도 아니하고 재게 발걸음 옮길 뿐이다. 소녀의 눈에는 번잡한 저자

의 거리의 풍

경도 고운 비단전의 옷감도 뜨이지 않았다. 오직 병약한 사친에 대한 걱정만이 뇌리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께서 아버님의 심중을 떠 보아주셨으면 좋겠다.  다른 분은 모르되 두곡 아저씨께만

은 심중을 털

어놓으시는 분이니 그렇게나 울적해 하시고  심란해 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 지도 몰라. 

진성대군마마

께서 집에 다녀가신 이후로 딱 입을 봉하고 한숨만 쉬시며 식음을 전폐하시니 대체 왜 그리 

하실까?' 

그러니깐 사흘 전이다. 

"자산(김익현의 호)이 계시느냐? 진성대군 대감께서 오셨노라 알려드리거라." 

아침나절에 기별도 없이 말구종을잡히고 너덧의 호위 무장까지 거느린 객이 드시었다. 비단 

두루마기에 

옥관자 두른 갓을 쓴 그 분은 종실의 큰 어른이신 진성대군이셨다. 빈한한 집이되 찾아오시

는 손님들은 

이렇게 부친의 학명을 듣고 찾아오시는 귀빈들이다. 

"아기씨, 대감마님께서 잠시 사랑채로 나오시라 하시는디유." 

"아버님께서 나를 찾으시어? 손님이 오신 줄 아는데 어찌하여 나를 찾으실까?  혹여 주안상

이 보잘것없

다 흉을 잡힌 것이 아닌가?" 

"그는 아니옵니다. 그저 잠시 보잔다 하시었나이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여하튼 부친께서 부른다 하니 소혜아씨는 사랑채로 나갔다. 

"아버님, 소녀를 찾으셨습니까?" 

대답대신 마당으로 면한 장지문이 드르륵 열렸다. 부친인 김익현과 마주앉은 븐은 진성대군

이셨다. 선

대 효종대왕의 동복아우이시며 금상전하의 숙부이시다. 지체는  다르되 부친과 교우가 깊어 

종종 찾아오

시고 알게 모르게 가난한 집안 살림을  생각하시어 쌀섬이며 귀물 별찬을 종종  보내주시는 

분이다. 항시 

고맙고 또 어려운 분이었다. 소혜아씨는 옆으로 비껴 서서 곱게 허리를 구부려 손님께 공손

하게 절을 하

였다. 

"소녀가 대군마마를 뵈옵니다. 강령하시옵니까?" 

"아기가 장성하니 갈수록 어질어지는 품이 곱도다. 그래, 잘 지냈더냐?" 

"염려하여 주신 덕분에 그만 하옵니다. 아버님, 어찌하여 소녀를 보잔다 하셨습니까?" 

"별일은 아니다. 밤에 대군마마께서 진지를 하실 것이니 그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이니라. 찬

이나 제대로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정성으로 마련하여라. 그 말이니 나가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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