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178화 (178/188)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178화

헥토르가 악마란 것을 알게 된 후로 로데릭의 눈빛이 변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다소의 귀찮음을 동반했던 눈빛이 지금은 완전히 살의를 띄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검격 또한 훨씬 매서워졌다.

-콰앙!

“커헉!”

내동댕이쳐진 헥토르가 정원의 나무에 부딪혀 떨어졌다.

로데릭의 대검에 강타당해 날아간 것이다.

나무에 부딪힌 것 자체는 별일 아니었으나 검에 당한 충격은 일순간 눈앞이 번쩍일 정도였다.

헥토르가 채 정신을 차리기 전에 로데릭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부웅!

“큭!”

간발의 차이로 헥토르가 상체를 숙여 검을 피했다.

콰드드득! 로데릭의 검을 맞은 나무가, 말 그대로 뜯겨 날아갔다.

무서울 정도의 괴력을 보곤 헥토르의 이마에 송골 땀이 맺혔다.

그러나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파지지직!

하늘이 번쩍이더니 헥토르의 손으로 벼락이 떨어졌다.

손에 뭉쳐진 방대한 전격을 헥토르가 로데릭을 향해 흩뿌렸다.

“쳇.”

억지로 나무를 부수고 다음에는 헥토르의 머리를 부수려고 했던 로데릭은, 혀를 차며 뒷걸음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헥토르의 전격이 로데릭을 덮쳤으나 한 발자국의 뒷걸음질, 그 한 걸음 차이로 로데릭은 오러를 둘러 완전히 방비 태세를 갖출 시간을 벌었다.

“간지럽지도 않구나.”

로데릭이 피식 웃으며 하는 얘기에 헥토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 이건 어때?”

동시에 그가, 진작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로데릭의 주변을 지지던 전격이 모이며 솟아오르더니, 푸른 하늘에서 몇 배는 더 커다란 벼락이 떨어졌다.

방금 쏘아 보낸 전격은 거리를 벌리기 위해. 그리고 이 벼락의 타격 지점을 정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 뇌천벽력(雷天霹靂) ]

“……!”

거대한 벼락이 로데릭에게 떨어져 내렸고.

콰과과과과광!

천지를 뒤집을 굉음과 함께 하얀 벼락이 온 사위를 메웠다.

로데릭이 끌어올린 오러를 더욱 단단하고 조밀하게 메우며 전격 속에서 버티었다.

방대한 빛과 열이 쉼 없이 로데릭의 오러를 때리고 지진다. 그 속에서 로데릭은 검을 든 채 더욱 웅크렸다.

‘꽤…….’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는 오러를 보며 로데릭이 눈을 찌푸렸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상대는 자신의 생각보다 강했다.

강림한 악마라고 하더니, 과연 어설픈 흑마법사들보다 훨씬 강력했다.

아까처럼 마냥 비웃을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알았으면 반격할 뿐.’

그러나 이 정도론 안 된다. 아직 자신에게 닿기엔 한 계단 모자랐다.

부웅-!

웅크렸던 그가 전격의 흐름을 파악하고, 대검을 휘둘러 헥토르의 마법을 일거에 흩어버렸다.

“뭣!”

이렇게 파훼될 줄은 몰랐는지 헥토르가 당혹스럽게 눈을 크게 뜨는 것이 보인다.

로데릭이 한걸음에 그에게 접근해 대검을 내려쳤다.

“젠장!”

그 순간 헥토르의 전신이 벼락으로 화(化)했다. 그것으로 로데릭의 검을 흘려보내려 하였으나.

“흡!”

강한 기함성과 함께 로데릭의 오러가 일렁이며 폭발했다.

콰과과과광!

“아아아악!”

그것까지는 미처 흘려보내지 못한 헥토르가,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날아갔다.

전신이 삐그덕거린다. 겉으로 보이는 부상은 크지 않았으나, 속에 입은 충격은 상당했다.

“커헉!”

내장이 진탕이 되었는지 헥토르가 입으로 피를 토했다.

스스로 토한 피를 보며 헥토르가 이를 갈았다.

‘이런 약한 몸뚱이라니!’

그동안은 이 정도로 싸울 일이 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인간의 몸은 약해도 너무 약했다.

인간들 중에는 나름 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단련된 헥토르의 몸이었으나, 천둥산에 있는 뇌력천주 자신의 본체보다 훨씬 내구력이 떨어졌다.

내구력이 약하다는 것은 많은 것에서 지장을 초래한다.

단순히 적에게 맞았을 때의 타격이 큰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공격할 때도 마찬가지.

더욱 강대한 기술을 썼다간 몸이 터져버릴지도 모르기에 항상 신경을 써야 했다.

‘방금 뇌천벽력도 내 몸으로 썼다면 놈의 오러를 뚫었을 텐데.’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기술. 그런데 이 인간의 몸이 버틸 수준으로 사용했더니, 놈의 오러를 뚫을 만한 화력이 나오질 않았다.

“더 하겠느냐?”

몸을 일으키려는 헥토르를 향해 로데릭이 검을 들이밀었다.

목을 겨눈 검을 보며 헥토르가 이를 갈았다.

“더 못 하겠다면 뭐, 놔주기라도 하게?”

“그럴 순 없지. 황자님을 방해할지도 모르고, 애초에 악마인 널 살려둘 이유가 없다.”

단호하게 대답하는 로데릭을 보며 헥토르가 콧잔등을 씰룩거렸다.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건지…….

‘하! 내가 대체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

순전히 타인의 사정 때문에 닿지 않는 상대와 억지로 싸워, 결국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한다.

문득 깨닫고 보니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기회가 되었을 때 강림을 풀고 지옥계로 돌아가는 것이 맞았을까?

괜히 지상 구경을 한다고 남았다가,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그 시안을 다시 만나게 되고.

결국 다시 목줄이 채워져 좋을 대로 부려지고.

‘목줄만 아니었으면 당장 도망갔을…….’

그렇게 생각하던 중, 헥토르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분명 지금 도망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로데릭에게 틈만 보이면 도망칠 준비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무엇도 그를 강제하는 것이 없었다.

본래라면, 시안의 목줄이 그를 억압해야 하는 것인데.

‘설마…….’

헥토르의 눈이 커졌다.

만약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면…… 시안은 강제력을 걸어놓지 않은 것이다.

죽어서라도 놈을 방해하라든지,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놈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라든지.

물러서지 않고 적과 싸우라는 강제력을 걸지 않았다.

도망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도록.

‘어째서?’

그의 눈이 흔들렸다.

이해가 안 되는 게 정상이다. 시안은 해령궁주의 사도를 치러 갔고, 그걸 방해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로데릭의 발을 묶어야 한다.

그런데 그 발을 묶고 있는 자신이 언제든지 도주할 수 있게끔 풀어놓다니.

“젠장…….”

그가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로데릭의 대검의 날을 잡았다.

“?”

갑작스러운 행동에 로데릭의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맨손으로 검을 붙잡다니 대체 무슨 짓이지?

‘상관없나.’

그러나 뭐가 됐든 상관없다. 뭘 하기 전에 그대로 베어버리면 끝날 뿐.

로데릭의 검을 감싼 오러가 다시금 환한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처럼.

-파지지지직!

그리고 그 오러를, 헥토르의 손바닥에서 나온 전격이 감쌌다.

로데릭의 눈이 가늘어졌다.

방금까지의 전격과는 질부터가 달랐다.

결국 자신의 오러를 뚫지 못했던 방금까지와는 달리, 지금의 전격은 당장에라도 오러를 찢어발길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숨겨둔 한 수가 있었군.”

로데릭이 확 검을 빼내어 회수했다.

의외로 헥토르의 손은 쉽사리 검에서 떨어져 나왔다.

로데릭이 다시금 검을 겨누며 2차전을 준비했다.

“딱히 숨겨둔 건 아니고.”

손에서부터 시작된 전격이 헥토르의 전신을 감쌌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몸을 보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을 완전히 부숴버릴 듯, 거칠게 일렁이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해볼까 해서.”

몸에 오는 과부하 탓에 핏줄이 도드라져 보이는 헥토르를 보며.

부웅-!

로데릭이 거침없이 대검을 내려쳤다.

* * *

-콰아아아앙!

바깥쪽에서 굉음이 들려오며 건물 전체가 흔들린다. 창을 통해서 빛이 번쩍거렸으며 바닥과 벽은 지진이라도 난 듯 떨려왔다.

그리고 그 곳곳에, 갑옷과 검, 창을 든 병사, 기사들이 맥없이 쓰러져 있었다.

바로 어젯밤까지만 해도 똘망똘망한 눈으로 별궁을 경호하던 병사, 기사들.

바닥에 엎어져 쿨쿨 자고 있는 그들 사이를 아이작이 유유자적 걷고 있었다.

“벌써 왔나 보군.”

올 사람이야 한 사람밖에 없다.

마룡왕의 사도, 시안 아그리드.

해령궁주의 힘을 빌려 펼친 도시의 안개는, 그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것으로 설령 하이마스터라 하더라도 재울 수 있는 술법이다.

물론 그쯤 되면 그저 숙면을 취하게 하는 정도라, 죽이려고 들면 살기를 느끼고 깨어나겠지만 역으로 말해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

아그리드 후작을 포함한 도시민 전부가 잠들어 있는 이 도시에서.

스스로 일어나 자신을 방해하러 올 사람이라곤 시안밖에 없었다.

이 안개는 악마의 힘에 익숙한 자에겐 효력이 극도로 떨어지기에.

‘아무리 빨라봐야 늦었어.’

그러나 아무리 빨리 왔다고 하더라도 이미 늦었다.

자신은 별궁 안이고, 바깥은 로데릭이 지키고 있는 상황.

자신이 헬레네를 죽이기 전에 시안이 로데릭을 뚫고 자신을 방해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이윽고 아이작이 한 큼직한 문 앞에 도착했다. 헬레네의 침실이었다.

딸깍.

거침없이 문을 연 아이작이 흙 묻은 발로 카펫을 짓밟으며 안으로 향했다.

그곳엔 곤히 자고 있는 그의 동생 헬레네가 있었다.

“미안하구나 동생아.”

그가 품에서 은으로 장식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단검을 검집에서 빼 크게 치켜든 아이작.

이윽고 그가 헬레네의 심장을 향해 단검을 내려쳤고.

-카앙!

그 검은 누군가에 의해 막히었다.

“……?”

뭐지? 그가 의아한 얼굴로 눈앞에 등장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검은 로브로 몸을 감싼 검은 머리의 여성.

대충 알고는 있었다. 최근 헬레네의 호위대에 들어왔다던 에르제라는 이름의 평민.

“하아…… 하아…… 황녀님껜 손가락 하나 못 대요.”

그녀가 침침한 눈을 부여잡으며 아이작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녀를 보고, 정확히는 그녀가 깨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던 아이작이 이윽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 안개 속에서 자신의 허가 없이 깨어나 있다는 것은 한 가지를 뜻했다.

그 몸에 악마의 힘을 품고 있다는 것.

“하, 동생아, 혼자 고고한 척은 다 하더니만 결국 너도 흑마법사를 수하로 들였구나.”

“……?”

아이작의 말에 에르제는 영문 모를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흑마법사란 건 악마의 힘을 빌린 칠흑마탑의 소속원을 뜻하는 것.

여기까지는 그녀도 알고 있었으나, 왜 황자가 자신을 흑마법사라 부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뭐가 어쨌든, 자신의 임무는 황녀님을 지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눈앞의 적을 격퇴해야 한다.

그녀가 검을 들었다.

어쩐 일인지 쏟아지는 잠 때문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카앙!

“아악!”

그때,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그녀의 몸이 튕겨 날아갔다.

어느새 꺼내 든 것인지 수려한 물의 검을 든 황자가 그녀의 앞에 서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걸 보니 그리 강력한 악마는 아닌 모양이구나.”

아이작이 킬킬 웃으면서 검을 들어 올렸다.

에르제가 어떻게든 버둥거리며 일어서려 하였으나, 안개의 탓에 그녀는 균형조차 잡기 어려웠다.

“목숨을 건 그 충심은 다소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내 앞을 막았으니.”

그러곤 아이작이.

“죽어라.”

에르제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