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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163화 (163/188)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163화

숲의 사원은 엘리아 본인이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영혼 전이의 마법진을 그리기 위한 최적화된 공간.

이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녀는 요정의 신물이라 불리는 세계수의 정수를 집어삼켰고, 그 사실은 수백 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본디 빙하백령의 토지에 은총을 내려주던 세계수.

자신이 세계수의 정수를 삼켰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녀는 여왕의 자리를 계속 계승해왔고, 빙하백령의 대지에서 한차례도 멀어지지 않았다.

이번에 이렇게 에버웨일까지 내려온 것만 해도 그녀 입장에선 수십 년 세월에 처음 있던 먼 여행이었다.

이 공간을 구축한 것으로 그녀는 완성되었다.

거인들을 봉인했던 봉인 마법 따위 이곳을 만들며 탄생한 부산물에 불과했다.

이 숲의 사원에서만큼은, 그녀는 신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침입자.’

그렇기에 아주 작은 변화 역시 놓치지 않았다.

이 영역 자체가 그녀의 감각에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녀는 프시케의 침입을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의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지?’

당연하게도 숲의 사원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녀 자신이 허락한 존재가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평범한 이들은 유설의 방안으로 들어오더라도 그냥 평범한 숙소의 방에 들어올 뿐이다.

그런데도 들어왔다는 건, 평범한 이가 아니라는 뜻.

그녀 자신과 견줄 정도로 격이 높은 이란 뜻이었다.

“시안 아그리드는…… 아니네.”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가, 자신의 중얼거림에 스스로가 흠칫 놀랐다.

어째서 가장 먼저 그놈의 얼굴이 떠오른 거지?

이 에버웨일에는 겐 아슬라도 있고 제레흐도 있고 제국의 대장군 로데릭도 있다.

누군가가 사원에 침입했다 한다면 당연히 그들이 먼저 떠올라야 정상.

그런데 그녀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스친 것은 시안 아그리드, 그 건방진 꼬마 놈의 모습이었다.

“……일단 쫓아내자.”

그녀가 이내 고심을 멈추고, 우선 행동하기 시작했다.

* * *

‘전에 갇혔던 봉인 마법과 비슷한데……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프시케가 천천히 이 공간에 대해 살펴보며 사원에 접근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 유설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지만 그래선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뱀의 모습을 유지한 채 그녀가 조금씩 조금씩 사원 쪽으로 다가갔다.

‘여차할 때 지옥계로 도망칠 수는 없겠어.’

가장 먼저 살핀 것은 퇴로.

봉인 마법에서 시안과 함께 지옥계 쪽으로 탈출한 것처럼 빠져나갈 수 있는지 알아보았으나, 안 될 것 같았다.

그녀의 힘이 많이 빠져 있어서 지옥계의 문을 열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만약 힘이 있더라도 불가능할 것이다.

기존의 봉인 마법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 수준까지 비슷한 것은 아니었다.

봉인 마법이 오히려 이 공간의 열화판으로 보일 정도로 이곳의 완성도는 높았다.

‘다음은…….’

다른 퇴로를 살펴보던 프시케가, 문득 느껴지는 기척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곤 전력을 다해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과과광!

바로 방금까지 있던 장소가 폭발하며 사라졌다. 평범하게 터져나간 것이 아니다. 흙과 돌멩이, 풀 따위가, 말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들켰다!’

적이 -아마도 엘리아 여왕- 나타났음을 감지한 프시케가 재빨리 모습을 변화시켰다.

지금의 작은 뱀의 모습은 은밀한 행동에는 적합하나, 전투나 도주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뱀의 육신이 하얀 빛에 감싸이더니, 이내 어린아이의 육체로 변하였다.

5~6살은 됐을까 싶은 작은 아이.

지금 그녀의 힘으로 구현할 수 있는 인간의 육체였다.

-쾅! 콰콰콰쾅!

그사이에도 몇 차례나 멈추지 않고 그녀에게 공격이 쏟아졌다.

특이하게도 투사체 따위가 날아오는 것도, 마력이 날아오는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갑자기 펑펑 터져 나갔다.

그래도, 그 예측 불허의 포화 속에도 아이의 몸이 된 프시케는 거침없이 땅을 박차고 구르며 폭발을 피해갔다.

“당신은 누구죠?”

십여 차례의 포화를 더 쏟아낸 후에야,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엘리아. 공중에서 천천히 하강하는 그녀를 프시케가 올려다보았다.

프시케를 본 엘리아가 눈을 찌푸렸다.

“당신 그 모습…… 유설이 어렸을 때와 쏙 빼닮았네요.”

지금 프시케의 모습은, 엘리아가 보았던 6살 때의 유설과 똑 닮아 있었다.

복장이 다르고 유설보다 표정이 더 풍부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 말고는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태연자약한 그녀의 모습에 프시케가 얼굴을 구기며 소리쳤다.

“설아는 어딨어!”

“설아?”

엘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르는 모양새나 하는 말을 보니 역시 유설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살짝 찡그리며 프시케를 자세히 살피던 그녀가, 이내 무언가를 눈치챈 듯 얘기했다.

“설마…… 지옥계의 악마인가?”

스산하게 빛나는 눈으로 엘리아가 중얼거렸다.

프시케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이 없는 그 자체가 엘리아에겐 답을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랬군, 그랬어. 이제야 다 알겠네요.”

태어날 때는 분명 평이하기 짝이 없던 유설이, 어째서 특정 시기를 기점으로 그릇이 확장되었는가.

처음에는 그냥 그런 체질이겠거니 생각했다.

본디 모든 사람은 자라면서 그릇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유설이 유독 변화폭이 큰 것일 뿐, 별다른 이유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이유가 있던 것이다.

‘이 영역에 침범할 정도라면, 마룡왕과 동급일 정도의 대악마일 터.’

다만 그런 대악마의 개체 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그녀의 기억 속엔 눈앞의 아이와 같은 악마는 본 기억이 없다.

그 말은 곧, 수백 년 사이 새로 탄생한 대악마라는 뜻.

“혹시 프시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건방진 흑마법사나 악마들을 잡아 족치다 들은 적이 있었다.

새로이 태어난 어린 악마가 북쪽 땅을 평정하고 둥지를 틀었다고.

겨울의 뱀 프시케.

분명 그런 이름이었다.

“……내가 그렇게 유명인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프시케가 엘리아를 향한 경계를 풀지 않고 얘기했다.

그러나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속으로 끊임없이 탐색을 하고 있었다.

일단 정면으로 싸우면 필패다. 최선은 도망치는 것이다만, 유설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이상 그것도 안 된다.

‘아마 한 번 나가면 끝이야.’

저 하늘에 떠 있는 요정여왕 엘리아는, 그녀가 본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마도사였다. 마룡왕을 빼고.

아마 그녀라면, 다시는 자신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게끔 이 공간을 수정하는 것도 쉬운 일일 것이다.

사실 그 생각과 달리, 숲의 사원은 오로지 영혼 전이의 대법만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기에 술식을 수정하거나 할 순 없었지만, 그 사실을 프시케가 알 수는 없었다.

양손에 냉기를 모으며 그녀가 당장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엘리아는 그저 웃으며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당신이었군요. 유설의 그릇을 넓혀준 게.”

“그릇을 넓혀?”

“당신 덕분에 유설이 내 영혼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했거든요.”

엘리아의 말에 프시케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대체 왜 빙하백령의 여왕이 유설을 이런 공간에 데려왔는지 지금까지도 전혀 추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말로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모종의 마법으로, 유설의 영혼을 밀어낸 후 그 육신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마치 악마가 강림한 계약자의 영혼을 집어삼키고 그 몸을 차지하는 것처럼.

‘나 때문에 유설이 표적이 되었다고?’

유설은 본래 그렇게 재능이 넘치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 사실은 프시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유설과 십여 년을 함께하는 바람에 성장한 것이다.

그 때문에 유설이 엘리아의 눈에 들게 된 것이고.

프시케가 없었다면 오늘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뜻이었다.

‘……구해야 돼.’

프시케가, 안 그래도 열의를 불태우던 와중에 더욱더 의지를 다졌다.

무슨 수를 써서든 구해야 한다. 지금 도망가면 다시는 유설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녀의 첫 계약자이며 동시에 첫 친구인.

“당신에겐 아무런 원한도 없고,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지만. 여기 들어온 이상 그냥 보내줄 순 없겠네요.”

그사이 엘리아가 다시 마법을 준비했다.

프시케를 보는 그녀의 눈은 웃고 있었으나, 그 안쪽엔 살의가 가득했다.

어차피 프시케는 악마였으니 죽이는 것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그녀였다.

그녀가 양손을 꽈악 틀어쥐었다.

“!”

동시에 프시케의 전신에 쭈뼛쭈뼛 소름이 돋아왔다.

아까 받았던 공격들과 같았다. 아무런 전조 없이 그녀 주위의 마력들이 갑자기 날을 세운다.

그러곤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일점으로 뭉치곤.

콰과과과광!

터져 나간다.

프시케가 땅을 박차곤 뒤쪽으로 훌쩍 뛰었다.

동시에 그녀의 손에서 풀려나온 냉기가 날카로운 다이아몬드 더스트를 만들었다.

먼지처럼 작은, 그러나 두꺼운 강철조차 종이짝처럼 베어버릴 날카로운.

한 번 호흡하는 것만으로 폐와 내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천, 수만 개의 더스트가 엘리아를 붙잡으려 하였다.

“흥.”

엘리아가 가소롭다는 듯이 콧바람을 뱉고는 손을 휘둘렀다.

그 손을 따라 유영한 바람의 장막이 사방에서 그녀를 덮치는 다이아몬드 더스트를 모조리 날려버렸다.

반짝이는 얼음 먼지들을 털어내고선 다시 땅을 보았다.

그녀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느새 프시케가 사라져 있었다.

‘하아…… 하아…….’

잠깐 눈을 가린 사이에 몸을 피한 프시케가 그림자 뒤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방금의 더스트도 그렇고, 순간적으로 거리를 벌리기 위해 상당한 마력을 소비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곧 사원이다. 저 안쪽에 분명 유설이 있으리라.

“어딜.”

그러나, 허공에 마나 멍울이 맺히더니 갑작스럽게 엘리아가 나타나 그녀를 막았다.

프시케가 경악했다. 워프를 이렇게 간단히 한다고?

엘리아가, 깜짝 놀라는 프시케의 뒷목을 잡아올려 그대로 옆으로 던져 버렸다.

쿵!

프시케의 작은 몸이 홱 날아가 그대로 나무에 부딪히곤 떨어졌다.

“컥, 커헉……!”

일순간 폐가 쪼그라들며 호흡이 가빠졌다.

그리고 그것은, 급히 호흡하며 채우고 있던 마나의 흐름이 순간적이나마 흐트러졌다는 뜻이었다.

프시케가 다급히 호흡을 되돌려 보았으나, 그 순간 이미 엘리아의 마법은 쏘아진 후였다.

‘죽여야 돼.’

거대한 폭풍과도 같은 바람과 방금 프시케가 뿌리고 갔던 다이아몬드 더스트를 뭉쳐 만든 폭풍의 구체.

프시케가 뿌렸던 공격이 역으로 엘리아의 마법이 되어 프시케에게 쏘아졌다.

‘작은 변수도 용납할 수 없어.’

영혼 전이는 무척이나 섬세한 마법이다.

아주 작은 변수로도 크나큰 차이를 불러올 정도로 예민한.

때문에 이 이상 프시케가 휘젓고 다니게 둘 수는 없다.

“하아, 하아.”

폭풍의 구체가 쇄도하는 것을 보며 프시케가 급히 마나를 모았다.

이미 바닥을 보이던 것을 억지로 비틀어 모으느라 마나의 길이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으나,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당장 눈앞의 공격을 회피하고 봐야 했으니.

그리고 그때.

-쿠구구구구궁!

하늘에서 검은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떨어진 벼락은 폭풍의 구체를 강타했고, 그곳의 바람과 얼음 결정을 모조리 사방팔방으로 흩어 버렸다.

기혈을 뒤틀면서까지 회피를 위한 마력을 모으던 프시케가, 구체가 있었던 장소를 쳐다보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마법을 쏘아 보낸 엘리아 역시.

두 사람의 표정이 완전히 반대로 변하였다. 한 사람은 안도의 표정을, 다른 한 사람은 일그러진 얼굴을.

““시안 아그리드!””

흑검을 든 그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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