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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152화 (152/188)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152화

막 깨어난 참임에도 프시케는 당장 싸움에 말려들었다.

프시케가 마룡왕의 브레스를 피하며 달려들어 마룡왕의 몸을 졸랐다.

프시케의 덩치는 마룡왕에 비해 작긴 하였으나, 놈의 몸을 조르기엔 충분할 만큼 길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란이야?!]

프시케가 단단히 힘을 주며 물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 올라있던 시안이 빠르게 대답했다.

“녀석이 이곳에 사도를 보냈다가 나랑 마주쳤다. 전투가 일어났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놈까지 오게 됐지.”

[사도? 마룡왕의 사도가 내 땅엔 왜?]

“몰라. 다만 온건한 목적이 아닌 건 분명해.”

녀석은 오자마자 설인들의 마을 하나를 쓸어버렸다.

설인들은 게으르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느긋했고, 외지인에게도 결코 발톱을 드러내지 않았다. 실제 시안에게도 그랬으니까.

아무리 이 지옥계가 다툼이 넘쳐 나는 곳이라지만, 그런 평화로운 마을을 몰살시킨 것이 온건하다 보긴 힘들 것이다.

[온건하지 않은 목적으로 내 땅에……? 설마 나를?]

마룡왕의 사도가 프시케를 죽이기 위해 찾아왔다는 것. 그건 사실이었다.

단지 둘 모두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을 뿐.

[그런데 저 할배는 누구야?]

프시케가 마룡왕의 머리 쪽에서 놈과 상대하고 있는 귀마를 보곤 물었다.

그는 쏟아지는 마법을 뚫고 마룡왕의 머리를 베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귀마라는 노인인데, 다 설명하긴 길고. 일단 마룡왕의 적이라고만 알아둬.”

상황이 상황인 만큼 시안이 최대한 간결하게 얘기했다.

당장은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적의 적이란 말이구나? 그럼 동료네!]

“그런 셈이지.”

마룡왕 한 명을 상대하는 귀마, 시안, 그리고 프시케.

마룡왕은 그중에서 귀마 쪽을 가장 신경 쓰고 있었다. 귀마가 계속해서 마룡왕의 머리를 노리고 있기도 했고, 실력적으로도 그가 가장 위협이었으니까.

하지만 몸에 달라붙어 조르고 있는 프시케 또한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이 버러지가!]

마룡왕이 크게 포효하며 손을 들어 프시케를 잡아 떼어내려 하였다.

하지만 마룡왕이 힘을 줄수록 프시케는 더 단단히 조일 뿐이었다.

단순히 힘만으론 안 된다.

마룡왕이 크게 혀를 차더니 더 높이 날아올랐다.

그곳에는 진작 만들어놓았던 태양과도 같이 빛나는 불덩어리가 있었다.

[시안! 나한테서 떨어지면 안 돼!]

프시케의 말을 듣고 시안이 프시케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그들을 매단 채로 마룡왕이 태양 속으로 뛰어들었다.

강철조차 일순간에 녹여 버릴 강렬한 화염이었지만, 그건 마룡왕의 마법이었기에 마룡왕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프시케와 시안은 다르다.

곧 작열하는 불꽃이 그들을 뒤덮었다.

[읍!]

프시케가 숨을 멈추더니 냉기를 둘러 온몸을 감쌌다. 당연히 시안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마룡왕의 화염이 프시케의 냉기를 뚫기 위해 계속해서 압박을 하였지만, 프시케의 기운은 뚫리지 않았다.

아직 미숙하다고는 하나 그녀 역시 마룡왕과 같은 대악마 중 하나였으니.

마룡왕은 태양 속에 뛰어들면서도 프시케를 떼어내지 못했다.

[칫.]

그가 크게 혀를 차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선 귀마가 쏘아 보낸 오러가 쇄도하고 있었다. 마룡왕은 프시케만 상대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사이 프시케가 냉기를 더욱 넓혀 마룡왕의 화염을 완전히 흩어버렸고, 시안은 프시케의 머리 위에서 마룡왕의 등으로 갈아탔다.

디디고 있는 마룡왕의 등이 멀미가 날 것처럼 흔들렸다.

허공을 밟으며 자유자재로 검을 휘두르는 귀마를 상대하기 위해, 마룡왕 역시 허공에 가만히 떠 있을 수만은 없었으니.

‘일단 날개를 떨어뜨려야 해.’

흔들리는 공중에서 시안이 눈을 빛냈다.

모든 날개 달린 것들을 상대할 때의 철칙. 우선 날개부터 빼앗아야만 한다.

시안이 놈의 날개를 향해 크게 검을 휘둘렀다.

휘익!

그러나 바로 직전 마룡왕의 몸이 휙 뒤집히더니 검의 타점이 빗나갔다.

팅!

발밑이 불안한 검은 힘이 실리지 못하는 법.

일격은 허무하게 막혀 버렸고, 시안은 놈의 비늘을 잡으며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꼬마야.]

어느 순간, 시안은 마룡왕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가 더욱 가늘어진다.

그것은 마치 비웃음처럼 보였다.

[내가 지금 고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너 때문이 아니다. 너는 얌전히 기다리고만 있거라. 이놈들을 전부 없애 버리고 네 녀석을 데려가 줄 테니까.]

“또 사도가 되라는 말인가? 거절한다고 했을 텐데.”

[네 녀석의 의지 따윈 관계없다. 거기에, 머지않아 너도 이 나의 사도가 된 것에 감사하게 될 날이 올 것이야.]

녀석의 비웃음 소리가 시안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마룡왕의 마력이 시안을 덮었다.

그것은 곧바로 시안의 정신에 영향을 주었다.

‘맞는 말이긴 하지.’

마룡왕의 말은 전부 사실이긴 하다.

귀마나, 힘을 되찾은 프시케에 비하면 자신은 아직 손색이 있다.

그들 사이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하이마스터는 되어야 할 터.

그러나, 파멜라를 이겼다지만 자신은 아직 그 정도 경지엔 이르지 못했다.

마룡왕의 마력이, 시안에게서 무력함을 끌어내려 하고 있었다.

시안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생각을 유도하거나 살짝씩 건드리는 정도가 아니다.

다른 평범한 이에게는 세뇌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하는 정신 마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거였군.’

시안이 검을 들었다.

밀려오는 무력감 속에서 그가 차분히 참마검의 묘리를 외웠다.

귀마가 얘기했던 것. 참마검을 만든 이유.

마룡왕 놈이 뭘 하든 상관없이 자기는 칼질만 하겠다는 심정으로 만들었다던 그 얘기.

[ 상천검(霜天劍) - 천뢰(天雷) ]

시안이 놈의 날갯죽지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그 순간 다시금 발밑이 흔들리며 시안의 균형을 무너뜨리려 하였으나, 이미 그의 발에는 오러로 만든 발판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오히려 몸이 뒤틀린 덕에 마룡왕의 날갯죽지는 시안의 검로에 더욱 활짝 노출되었다.

시안이 거리낌 없이 놈의 날개에 천뢰를 그었다.

카가가가가강!

놈의 몸을 덮고 있는 비늘이 순식간에 깨어져 나간다.

하나하나가 인세에 다시없을 강도를 자랑하는 비늘이었지만, 시안의 천뢰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검에 닿는 모든 비늘이 깨어지며 놈의 속살이 드러난다. 그 살마저 갈라지고, 이윽고 피가 솟구쳤다.

[크아아아!]

날개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마룡왕이 몸부림쳤다.

시안은 놈의 비늘을 단단히 붙잡으며 방금 벤 곳을 살폈다.

역시 한칼로는 안 된다.

오러를 최대한 늘려 베어냈지만 날개와 몸통을 연결하는 연결부의 1/3이나 간신히 베어냈을 정도였다.

아직 마룡왕의 전력은 줄지 않았다.

[이 꼬마놈이!]

날개를 떨어뜨리려 하는 시안의 짓거리가 무척이나 거슬렸는지, 마룡왕이 시안에게 분노했다.

동시에 그에게 화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까의 태양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을 화력이었다.

[시안!]

그러나 그 화염은 프시케의 냉기에 여지없이 막혔다.

마룡왕이 이를 갈았고, 동시에 그런 놈의 턱을 향해 귀마가 검을 휘둘렀다.

고개를 틀어 간신히 피한 마룡왕이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프시케, 귀마.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안.

[정말로 나를 화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

그 직후.

마룡왕이 사라졌다.

놈을 꽁꽁 묶고 있던 프시케가 허공에 홀로 남겨졌고, 귀마와 시안 역시 놈을 놓쳤다.

그 거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놈이 다시 발견된 것은 더욱더 높은 허공에서였다.

그곳에, 용의 형상이 아닌 한 노인이 이쪽을 보며 눈을 번뜩이고 있다.

[미티어 스트라이크.]

그리고 하늘에선 별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 *

유성우.

그것은 한 세상의 멸망을 노래하는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시안은 어째서 그런 것인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유성이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풍경은, 그야말로 멸망에 걸맞은 것이었다.

“킁.”

귀마가 크게 땅을 박차고 올라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은 작달막한 유성 몇 개를 베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아무리 그라도 이 많은 유성우를 모조리 베어낼 순 없었다.

그가 발악하는 모습을, 저 높은 상공에서 노인이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취한 마룡왕.

어째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단순히 프시케를 떨궈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마법을 쓰기 위한 무언가의 조건이 있는 것인지.

그러나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새는 없었다.

[시안! 이리로 와! 할아범도!]

가장 시급하게 움직인 것은 이 땅의 주인인 프시케였다.

그녀가 시안과 귀마를 불러 모으더니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냉기를 쐐기처럼 만들어 흙과 돌을 분쇄하고 밀어내며 깊숙이 들어갔다.

지나쳐 온 대지가 유성을 막을 방패가 되길 원하며.

[소용없는 짓을.]

지하로 파고드는 그들의 귓속으로 마룡왕의 중얼거림이 울려 퍼졌다.

비웃음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프시케가 요리조리 땅을 파고들어 오더니 어느새 주변은 그냥 흙바닥이 아닌 유적 같은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프시케가 힘을 되찾기 위해 잠들었던 장소.

[아무튼 머리 조심하고 입 꾹 닫고 있어!]

시안과 귀마가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

그리고 이윽고.

쿵!

땅이 크게 한 번 흔들렸다.

분명 커다란 진동이긴 했으나 하도 멀어서 그런지 이곳까지 많이 흔들리진 않았다.

이걸로 끝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쿠구구구구궁-!

충격이 연달아 지하를 강타했다.

충격을 직접 받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시안은 전신의 뼈가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쿠구구구구궁-!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영원과도 같던 시간이 지나고, 시안이 정신을 차렸다.

온몸이 삐거덕거리고 곳곳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다행히 일단 죽지는 않았다.

어디 뼈마디가 다 부러졌는지 몸을 움찔거릴 때마다 통증이 올라왔지만 시안이 돌무더기를 걷어내고 일어났다.

그러곤 주변을 보았다.

분명 지하 깊숙이 피했음에도, 더 이상 지하가 아니었다.

저 위쪽에 주홍빛 석양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프시케?”

프시케가 그들을 감싸며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전신의 비늘이 쪼개지고 드러난 살이 뭉개져 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바다를 이룰 지경이었다.

힘없이 늘어져 있는 모습.

“너…….”

시안이 부르니, 그녀가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시안…… 미안한데 또 팔뚝 좀 빌려도 될까?]

팔뚝을 빌린다니. 처음 지옥계에 왔을 때처럼 말인가?

[너, 악마 힘 가져갈 수 있었지? 내 힘 좀 가져가라.]

“뭐?”

그 말은 곧, 자신에게 힘을 넘겨주고 이전처럼 힘 잃은 작은 뱀으로 돌아가겠단 소리였다.

하지만 그때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한 가지.

지옥계로 오기 위해 사용한 힘은 다시 회복할 수 있었지만, 시안이 흡수한 힘은 회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힘의 총량 자체가 낮아지게 되는 것이기에.

그것은 대악마로서의 격이 격하된단 소리기도 했다.

[착각하지 마. 네가 이뻐서 주는 거 아니니까. 설아가 너를 부탁한다 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프시케는 뇌력천주의 때와는 다르다. 적으로 만났던 녀석이랑은 달리, 프시케는 처음부터 아카데미의 동료로 만났었으니까.

그러나.

[우선 한 마리.]

이쪽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는 마룡왕이 보인다.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시안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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