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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151화 (151/188)

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151화

지상에 내려앉은 마룡왕. 시안이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있을 때도 거대하다 생각했지만, 지상에 있으니 체감이 더 심했다.

칼 한 자루 들고 저걸 베겠다고 나서는 귀마가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뭐 자신 역시 비슷한 처지였지만.

[흥.]

마룡왕이 콧바람을 한 번 뱉더니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러자 허공에 수백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아까 보았던 마법진. 작은 용들을 소환하기 위한 소환진이었다.

파멜라를 상대하며 애써 떨어뜨린 용들이 다시 그대로 나타났다.

하늘을 메우며 벌떼처럼 쏟아지는 용들.

그러나.

[ 상천검(霜天劍) - 암우(暗雨) ]

시안이 비검을 높이 던져 올렸고, 이윽고 하늘에선 아까와 같은 검은 비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크어어어!”

“크아아!”

기세 좋게 달려들던 용들이 검은 오러의 비에 휩쓸려 나갔다.

그것만으로 수백에 달하는 놈들을 모두 처리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귀마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시안처럼 오러를 이용해 무슨 기술을 쓰지도 않았다.

그저 일검(一劍).

단 한 번 하늘을 베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귀마에게 달려들던 용들이 일제히 피를 뿜으며 갈라졌다.

[건방진 놈들.]

그때, 떨어져 내리는 작은 용들의 시체를 죄다 쓸어버리며 마룡왕의 꼬리가 쇄도했다.

커다란 꼬리가 지면을 쓸다 못해 아주 갈아버리면서 다가왔다.

피할 곳이라곤 꼬리보다 높게 점프해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귀마는 가볍게 허공을 밟으며 뛰어올랐다.

시안이 간신히 땅을 박차 마룡왕의 꼬리를 피하며, 슬쩍 귀마를 바라보았다.

“그거 어떻게 하는 겁니까?”

“이거? 오러를 잘 쪼물락거려서 뿌리는 건데.”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건데요?”

허공을 밟는 기술. 굉장히 편리해 보인다.

마룡왕 같이 날 수 있거나 산처럼 거대한 녀석을 상대할 때 매우 좋아 보였다.

“가르쳐 주는 건 뭐 일도 아닌데.”

귀마가 눈짓했다.

그 무렵, 허공에선 작열하는 태양이 떨어지고 있었다.

귀마가 검에 오러를 둘렀다. 수백의 용들을 벨 때도 그냥 맨 검만 휘둘렀던 그가 양껏 오러를 뿜어내었다.

서걱.

그가 팔을 휘두르자 태양이 십자로 갈라져 떨어졌다.

콰과과과광!

땅에 착탄한 네 덩이의 불덩이가 그곳의 눈과 돌과 흙을 모조리 녹여 버렸다.

이 차가운 설산에 용암지대가 생겨났다.

“지금 그럴 때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적당히 만들어서 뿌려둘 테니까 알아서 쓰든지 말든지 해라.”

귀마가 그 말대로 적당하게 뭉친 오러를 확 휘둘러 흩뿌렸다.

허공에 수없이 많은 반짝이는 오러들이 자리했다.

시안이 그중 하나를 밟고 섰다.

도저히 안정적인 발판은 아니었다. 크기로 따지면 손가락 한 마디는 되나 싶은.

그래도 그 정도만 있어도 균형을 잡는 것엔 무리가 없었다.

그사이, 마룡왕은 귀마에게 브레스를 뿜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귀마가 브레스에 정통으로 휩쓸린 게 보였다.

순간 걱정이 든 시안이었으나.

그를 살피러 가는 것보단, 역으로 마룡왕에게 달려들었다.

타타탁!

귀마가 뿌려놓은 오러들을 밟으며 시안이 빠르게 마룡왕에게 달려갔다.

마룡왕은 아직 이쪽을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귀마가 멀쩡히 살아있음을 시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브레스를 베고 뛰쳐나온 귀마가 보였고.

그 사이 시안은 마룡왕의 어깻죽지에 도달했다.

‘라비.’

그 즉시 놈의 비늘에 손을 대곤 라비를 불렀다.

시안의 눈에 마룡왕을 향하는 라비의 족쇄가 비쳤다.

그러나.

―캉!

막혔다.

족쇄가 노리던 날갯죽지 부근에 반짝이며 마력이 모이더니 단단하게 경화한 것이다.

단순히 물질적으로 단단해진 것만이 아닌지 라비의 힘이 모조리 튕겨 나갔다.

[어림도 없다!]

펄럭!

마룡왕이 귀찮은 벌레라도 털어버리듯 날갯짓을 하여 시안을 털어버렸다.

강하게 쏘아진 풍압에 떨어질 뻔한 시안이었으나, 간신히 근처에 있던 발판 하나를 붙잡아 올라탈 수 있었다.

그렇게 마룡왕이 시안에게 잠시 시선을 돌린 사이, 귀마가 번개처럼 쇄도해 마룡왕의 턱에 검을 휘둘렀다.

[쳇.]

마룡왕은 시안을 보는 것을 그만두고 귀마를 상대해야 했다.

시안과 귀마 중엔, 귀마 쪽이 그에게 위협적이었으니까.

시안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굳이 마력을 모아 막았다는 건 막지 못한다면 타격이 있다는 얘기.’

그렇다면 계속해서 이렇게 견제를 넣어주면 자신의 역할은 하는 것이리라.

마룡왕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분산시키면, 귀마가 결정타를 날릴 것이니까.

귀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의 합격이 이어졌다.

귀마가 지속적으로 마룡왕을 위협하고, 시안이 틈틈이 놈의 날개나 꼬리를 노린다.

서로 상의 한 번 한 적 없는 두 사람이었으나 합이 기가 막히게 맞았다.

지금까지 1년 가까이 대련을 해온 만큼 서로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귀찮은 날벌레들이!]

시안 한 사람 추가된 것으로 상당히 까다로워졌음을 느낀 마룡왕이, 기어코 분노했다.

녀석이 날개를 펄럭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귀마가 바짝 붙어 따라가며, 동시에 시안을 위해 오러 발판을 만들어 주었다.

시안 역시 그걸 밟으며 마룡왕을 따라가려 하였으나.

[언제까지 봐줄 거라 생각하나!]

마룡왕이 크게 울부짖으며 오러 발판을 모조리 깨트려버렸다.

막 다음 발판에 오르려던 시안은 아무것도 밟지 못하고 그대로 허공에 던져졌다.

“꼬맹아!”

귀마야 스스로 발판을 만들 수 있으니 문제 될 게 없었지만, 시안은 그렇지 못했다.

저 높은 허공에서 시안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땅에는.

빛나는 마법진이 그려지며, 땅이 쩌억 갈라져 둥그런 낭떠러지를 만들었다.

그 낭떠러지 표면엔 마물의 것으로 보이는 수십 겹의 이빨이 박혀선 잘그락거리고 있었다.

시안이 떨어진 즉시 씹어 해체해버리겠다며.

“피해라! 그 날아다니던 검을 쓰든 뭘 쓰든!”

귀마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시안이 죽으면 마룡왕과의 싸움이 더 힘들어진다, 그런 것도 있었지만.

1년간 제자처럼 봐왔던 녀석이 죽는 것을 원치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

시안이 으득 이를 갈며 비검을 들었다.

하지만 비검은 날기 위한 검은 아니다. 공중에서 시안의 위치를 약간 비껴놨을 뿐,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바로 아래쪽에서 군침을 흘리는 아가리를 보며 시안이 눈을 번뜩였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하나뿐이다.

그가 오러를 모았다. 그리고 아까 귀마가 보였던 오러의 흐름을, 자신이 몇 번이나 밟았던 발판의 구조를 떠올렸다.

다급한 상황이었으나, 아니, 오히려 그런 상황이었기에 그의 머리는 더욱 팽팽히 돌아갔고.

이윽고 허공에서 그가 멈췄다.

―카아아아!

땅이 솟아오르며 공중에 떠 있는 시안을 씹어 삼키려 입을 뻗었으나,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시안이 바로 검을 휘둘러 놈을 베어버렸다.

“……이렇게 하는 거군.”

귀마와 같이 허공을 밟고 서며, 시안이 마룡왕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엔 눈을 찌푸리며 이쪽을 보는 마룡왕과.

“잘했다, 꼬맹아! 넌 천재야! 크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귀마가 있었다.

* * *

―쿠웅!

깊은 땅속.

멀찍이서 일어난 진동이 이곳에까지 울려 퍼지며 땅속이 흔들리고 있었다.

―쿠웅! 쿠웅!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진동에, 그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하얀 뱀이 움찔거렸다.

“끄응…….”

눈을 감고 있는 하얀 뱀. 그녀가 계속해서 잠을 청했으나 지상에서 울리는 진동은 도저히 가라앉질 않았다.

눈꺼풀을 움찔움찔거리며 당장에라도 눈을 뜰 듯한 하얀 뱀.

그러나 그녀는 이를 악물고 그걸 무시하며 계속 잠을 청했다.

아직은 조금 이르다.

조금만 더 자면 일단락이 나니까…….

―콰아아아앙!

그러나 그녀의 바람에도 무색하게, 기어이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거칠게 부서진 돌덩어리들이 그녀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개중에서도 특히 커다란 돌 하나가, 그녀의 머리에 정통으로 떨어졌다.

[아야!]

하얀 뱀이 눈을 번쩍 떴다.

세로로 갈라진 푸른 눈동자가 짜증과 분노로 거칠게 떨려왔다.

[뭐야 대체! 누구야!]

이젠 더 못 참겠다는 듯, 그녀가 곧바로 지상을 향했다.

* * *

콰아아아아!

불의 해일이 온 산을 뒤덮으며 덮쳐왔다. 동시에 하늘에선 집채만 한 얼음덩어리들이 무수하게 떨어졌다.

도시 하나쯤은 가볍게 멸망시킬 만한 재앙이 연이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사이를 두 작은 인영이 필사적으로 피하고 베고 있었다.

“하아…… 하아…… 이거 끝은 있는 겁니까?”

“끝? 무슨 끝 말이냐?”

“이 마법들이요. 무슨 전장에서나 볼법한 대마법이 기본 마법마냥 쏟아지고 있잖아요. 아무리 놈이라도 마력이 고갈되지 않겠습니까?”

“아서라. 예전에 녀석이랑 일주일 밤낮을 싸운 적이 있는데, 그때도 이런 마법이 일주일 내내 날아왔다. 그냥 놈의 마력은 무한이라고 생각하고 싸워.”

“끙.”

소모전으로 승리하는 길은 막혔다는 얘기다.

마법사를 상대할 때, 생각보다 높은 승률을 가지는 승리 방식이 소모전인데.

“목을 베야 해. 심장을 가르거나.”

“그렇군요.”

아무리 놈이라도 목이 잘리고 심장이 베여서 살아있을 리가 없다.

그걸 해내야 한다.

‘저 많은 마법을 뚫고 말이지.’

마룡왕의 주위에서 천지를 개벽하고 있는 수많은 대마법들을 뚫고 말이다.

한쪽에선 아까와 같은 불타는 태양이 자리하고 있었고, 곳곳에 벼락이 떨어진다.

자욱하게 펼쳐진 독안개는 덤이었다.

수많은 마법 자체가 녀석을 지키는 방패이자 적을 베는 검이었다.

‘그걸 뚫고 들어가더라도 놈의 비늘을 벨 수 있을지.’

그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어려운 점이었다.

녀석이 굳이 방어를 위한 마법을 사용하는 걸 보면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100% 역시 아니었으니.

그때.

―쿵! 쿵, 쿵!

갑자기 아래쪽 땅이 흔들렸다.

그것에 눈치를 챈 시안이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애초에 지금 이곳은 마룡왕의 마법 하나하나에 지형이 뒤바뀌고 있는 중이다.

이제 와서 조금 흔들린다고 주의를 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땅이 갈라지며 거대한 뱀 대가리가 튀어 오르는 것이 아닌가?

[대체 어떤 놈들이야!!]

시안이 눈을 크게 뜨며 뱀을 바라보았다.

프시케. 잠에서 깬 그녀였다.

더욱이 예전과 같이 팔뚝에 감길 정도로 작은 몸이 아닌, 마룡왕에 버금갈 정도로 컸다.

놈에 비하면 조금 더 작긴 했지만.

“프시케?”

[시안! 대체 뭐야! 뭐 때문에 이렇게…… 응? 저 용은…….]

시안에게 마구 화를 내려던 프시케는 앞에 보이는 마룡왕을 보고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겨울의 뱀. 역시 있었군.]

마룡왕이 프시케를 확인하곤, 그 커다란 입을 벌렸다.

그곳에 마력이 보이더니, 이윽고 브레스를 쏘았다.

콰아아아아!

[으악!]

이제 막 잠에서 깬 프시케가 기겁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아직 그녀의 몸 절반은 땅에 박혀 있었기에, 피하는 건 무리였다.

그런 그녀의 앞을, 시안이 막았다.

[ 상천검(霜天劍) - 천뢰(天雷) ]

검은 벼락이 브레스를 가른다.

어떻게든 직격타는 피했다.

급히 막아내느라 손이 좀 떨리긴 하였으나 그래도 부상은 없다.

시안이 그대로 프시케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고, 고마…… 앗, 야! 너 내 머리를…….]

머리를 밟았다고 한마디 하려던 프시케는, 시안의 상태를 보곤 입을 다물었다.

시안은 아까부터 마룡왕과 싸우며 몸 곳곳에 부상을 입은 채였다.

이마에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몸 전체가 삐걱거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방금의 브레스를 베느라 더 무리를 한 것이다.

말문이 멎은 프시케를 시안이 힐긋 내려다보았다.

“시끄럽고, 너도 도와라.”

[도, 도우라니 뭘……?]

시안이 대답했다.

“당연히 저놈 대가리 따는 일이지.”

마룡왕. 이 지옥에서 가장 강대한 군주를 가리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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